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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恬
(? ~ 기원전 209년)
1. 개요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장군. 몽무(蒙武)의 장남이자, 몽의(蒙毅)의 형.2. 생애
몽염이 속한 몽씨 가문은 몽오(蒙驁)-몽무-몽염과 몽의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서 진(秦)나라의 공을 세우며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다. 기원전 224년, 몽염은 이신과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몽염과 이신은 각기 침(寢)과 평여(平與)에서 초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으나, 이신이 언영(鄢郢)을 격파하고 성보(城父)에서 몽염과 합류하려다가 항연의 기습을 받고 크게 패하는 바람에 달아났다. 때문에 진시황은 이신과 몽염 대신에 왕전과 몽무에게 초나라 정벌을 지시하였다.기원전 221년, 제나라를 멸망시킬 때 큰 공을 세워서 내사에 임명되었다. 특히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그에게 대군을 주어 흉노와 융족 등의 북방의 기마민족들을 견제하게 하였다. 이때 몽염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흉노족을 쓸어버렸는데, 이때 빼앗긴 땅을 흉노는 묵돌 선우가 나오기 전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유방이 흉노족에게 압도적으로 발린 걸 생각하면 능력이 뛰어난 편.[1]
여하간 몽염이 북방전선을 담당하는 동안 ' 호인들이 감히 남하하여 말을 기르지 못했다(胡人不敢南下而牧馬)"는 기록이 있을만큼 몽염은 대 북방전선에서 흉노를 상대로 큰 활약을 했고, 이후 분열기에 빠진 흉노는 묵돌선우가 등장할 때까지 진나라에게 수세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몽염은 점령한 하남 지역에서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조, 연, 진 세 나라가 쌓은 장성을 하나로 연결 및 보수를 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만리장성이다.
그러나 진시황 사후, 진시황의 첫째 왕자 부소와 함께 있던 몽염은 평소 원한 관계에 있던 진시황의 환관 조고에 의해 반역 혐의를 뒤집어 쓰고, 진시황의 후계자 호해에게 자살을 강요받아 음독자살했다고 한다. 특히 호해가 즉위한 후, 조고는 호해의 면전에서 몽염을 비롯한 몽씨 일족들에 대한 험담을 많이 했다. 또한 호해 역시 기록을 보면, 자신 대신 부소를 지지한 몽씨 일족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2] 또한 몽씨 가문은 거슬러 올라가면 제(齊)의 땅 출신으로 연구자들에 의하면 아마도 유가의 영향을 깊이 받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래서 유가를 신봉하는 공자 부소와 정치적 입장을 같이 했다는 설도 있다. 여하간 선왕의 구신(舊臣)들은 숙청되고, 조정의 권력을 조고가 손아귀에 쥠에 따라 몽염의 숙청도 피할 수 없었다.
3. 여담
- 죽기 전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백기처럼 "내가 왜 죽어야 되나?" 하며 울부짖다가 "아, 허나 내가 죽을 이유가 있기는 있다." 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내가 만리장성 만들면서 땅의 지맥을 끊었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것. 사마천은 몽염이 죽으면서 지맥이 어쩌고 한 것은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고 비웃었다. 그리고 왕전과 마찬가지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폭정을 잘못됐다고 간하기는커녕 시황제의 비위를 맞추려고 만리장성 축조 같은 노역으로 백성을 힘들게 한 것이 진짜 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천자문에 '염필륜지'(恬筆倫紙)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몽염이 붓을 만들고 채륜이 종이를 만들었다'는 말로, 몽염이 최초로 토끼털로 붓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만 이전에도 붓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실제 장사성 주공산의 전국시대 무덤에서 붓 유물이 발견되어서 기존의 붓을 몽염이 개량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애초에 천자문은 서사시에 가깝지 역사책이 아니다. 다만, 무인인 몽염이 붓을 개량한 것으로 보면 문무를 겸비했던 것으로 보여지며 이래저래 진나라에서는 아까운 인재를 자기 손으로 제거한 돌이킬 수 없는 병크였다.
4. 대중매체에서
삼국지 시리즈 |
- < 삼국지 10>에서는 통솔력 90/무력 85/지력 70/정치력 73/매력 80. 특기 13개에 각 내정, 통솔력, 계략, 일기토, 설전, 칭호에 특기가 배치되어 만능형이다. 칭호계 특기인 명사를 가지고 있다. 위압이 있긴 하지만 몽염은 설득하기보다 무력으로 때려잡아야 이득이다. 명사가 있어서 인재 등용 임무 없이 인재를 등용할 수 있고 사병 편제 시 돈이 들지 않아 플레이하기 수월하다.
- < 삼국지 11>에서는 통솔력 88/무력 85/지력 69/정치력 65/매력 80. 창, 극, 노병적성이 A, 기병적성이 S다. 만리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때문인지 특기가 축성. 축성이 건축물 건설 및 수리 할 때 쓸 만하긴 하지만 내정계 무장들이 갖고 있는 특기이고 전투형 무장이라 미묘하긴 하다. 기병적성이 S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질주 같은 공격계 특기를 주는 게 더 이득이다.
- < 삼국지 12>에서는 통솔력 87/ 무력 86/ 지력 71/ 정치력 61. 특기는 명사, 병심, 연병, 감시, 보수, 일기, 공성. 병과는 기병이고 전법은 돌파. 소수 게릴라과 백도어 용으로 쓴다.
- <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다. 통솔력이 80대라 임무장을 2개 쥐어 줄 수 없고, 중신특성이 없다는 점에서 가치가 떨어진다. 특기는 훈련 7 / 순찰 7 / 신속 5 / 분전 3 / 연전 6 / 공성 7 / 견수 6 / 일기 6. 병종은 A/A/A의 올라운드 형. 특화된 점은 없지만 싸움터에 보내면 밥값 이상은 한다. 다만, 전법인 맹장돌격의 채배가 8인지라 쓰기 부담된다는 게 문제.
- <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고대무장으로 등장. 병종은 경기병계고 성우는 홍후백. 장수로서의 성능은 병종의 한계로 그저 그런 편.
- 게임 < 왕자영요>에서는 탱커 영웅으로 등장한다. 병사를 소환하는 기술을 갖고 있어서 광역기를 가진 영웅에게 약하다.
[1]
다만 진나라 사람들은 중원에서 융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민족과 부대껴 살아왔다는 점은 감안해야한다. 이런 진나라의 장군이라면 당연히 대기병 전략이나 이민족의 전술에 한나라 사람들보단 해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당시 한나라는 초한전쟁의 여파로, 특히 항우가 하도 학살을 해대는 통에 장수들조차 말이 아닌 소를 타고 다닐 정도로 생산력이 떨어져있었다. 또한 뛰어난 지도자의 유무에 따라 전력차이가 확연히 나는 유목민족 특성상 묵돌이라는 걸출한 리더가 있었던 한고제 때의 흉노와 그렇지 않은 흉노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2]
몽의에게 사자를 보내, 왜 선왕이 나를 세우려 했는데, 반대했냐고 힐책했다. 이에 몽의는 그때는 호해의 능력을 몰라봤다는 답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