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국왕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서백 西白
|
||||
초대 국군 후직 |
2대 국군 부줄 |
3대 국군 국 |
4대 국군 공류 |
5대 국군 경절 |
|
6대 국군 황복 |
7대 국군 차불 |
8대 국군 훼유 |
9대 국군 공비 |
10대 국군 고어 |
|
11대 국군 아어 |
12대 국군 주공 |
13대 국군 태왕 |
14대 국군 왕계 |
15대 국군 문왕 |
|
서주 西周
|
|||||
초대 왕 무왕 |
2대 왕 성왕 |
3대 왕 강왕 |
4대 왕 소왕 |
5대 왕 목왕 |
|
6대 왕 공왕 |
7대 왕 의왕 |
8대 왕 효왕 |
9대 왕 이왕 |
10대 왕 여왕 |
|
공화기 정공 · 소 목공ㆍ 간왕 |
11대 왕 선왕 |
12대 왕 유왕 |
비정통 휴왕 |
||
동주 東周
|
|||||
13대 왕 평왕 |
14대 왕 환왕 |
15대 왕 장왕 |
16대 왕 희왕 |
17대 왕 혜왕 |
|
비정통 폐왕 |
18대 왕 양왕 |
비정통 후폐왕 |
19대 왕 경왕頃王 |
20대 왕 광왕 |
|
21대 왕 정왕 |
22대 왕 간왕 |
23대 왕 영왕 |
24대 왕 경왕景王 |
25대 왕 도왕 |
|
비정통 서왕 |
26대 왕 경왕敬王 |
27대 왕 원왕 |
28대 왕 정정왕 |
29대 왕 애왕 |
|
30대 왕 사왕 |
31대 왕 고왕 |
32대 왕 위열왕 |
33대 왕 안왕 |
34대 왕 열왕 |
|
35대 왕 현왕 |
36대 왕 신정왕 |
37대 왕 난왕 |
|||
분열 (西)
|
분열 (東)
|
||||
국군 환공 |
국군 위공 |
국군 혜공 |
국군 무공 |
||
국군 혜공 |
국군 무공 |
국군 소문공 |
국군 동주공 |
||
국군 문공 |
|||||
주읍 周邑
|
|||||
초대 국군 문공 |
2대 국군 평공 |
ㆍㆍㆍ
|
?대 국군 정공 |
ㆍㆍㆍ
|
|
?대 국군 환공 |
?대 국군 희공 |
?대 국군 희기보 |
?대 국군 희열 |
?대 국군 희초 |
|
삼황오제 ·
하 ·
상 · 주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진(秦) ·
한 삼국시대 · 사마진 · 오호십육국 · 남북조 · 수 · 당 오대 · 십국 · 송 · 서하 · 요 · 금 · 원 · 명 · 청 중화민국 국가원수 · 중화민국 총통 · 중화인민공화국 |
}}}}}}}}}}}}}}} |
시호 | - |
군주호 | 공백(共伯) 또는 간왕(干王) |
성 | 희(姬) |
씨 | 공(共)(?) |
휘 | 화(和) |
생몰 기간 |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
재위 기간 | 기원전 841(?) ~ 기원전 828(?) |
[clearfix]
1. 개요
공백(共伯) 또는 간왕(干王) 화(和)는 고대 중국 주나라 시대의 제후로 공(共)나라[1]의 군주(백작)였다. 주나라의 공화(共和)시기에 집권했다고 전해지며[2] 간왕(干王)을 칭했다고 한다. 역사학계에서도 그의 정체는 논의가 분분하다.2. 문헌에 등장하는 공 화
사기(史記)에 의하면 기원전 841년 주여왕의 폭정으로 국인(國人)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주여왕은 도망가고 태자(희정, 훗날의 주선왕)는 소주(小周)의 제후 소목공(召穆公)의 집으로 숨었다. 그 후 주정공(周定公)과 소목공(召穆公)이 천자(天子)를 대신해 함께 정무(政務)를 관리하면서 제후들이 공동통치를 했다는 의미인 공화시기라 불렸다 한다.그런데 죽서기년(竹書紀年)에 의하면 공백 화가 국인들의 폭동을 주도하여 주여왕을 쫓아냈고 이후 제후들의 추대를 받아 천자를 대행하게 되어 그의 이름에서 공화시기가 유래했다고 한다. 4년 뒤 공백 화는 정권을 주선왕에게 넘기고 자신은 공산(共山)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계년(繋年)에는 주여왕이 쫓겨난 뒤 공백 화가 14년간 재위한 것으로 나오며, 주선왕이 즉위하자 송나라로 돌아갔다고 나온다.[3]
자세한 것은 공화시기 참조.
[1]
지금의
허난성 신샹시.
[2]
죽서기년,
계년의 기록.
[3]
공백 화가 돌아갔다고 나오는 송(宋)을 종(宗)의 오기로 보기도 한다. 종국(宗國)은 본국(本國)을 의미하기 때문에 공백 화가 돌아간 곳은 그의 본국인 위(衛)나라라고 볼 수 있다. 공(共) 땅은 위나라에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