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1:32:17

류현진/선수 경력/프로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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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아시안게임 · 2007년 ABC · 2008년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 본선) · 2009년 WBC · 2010년 아시안게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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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SK 와이번스는 왜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았나
3.1. 포수가 필요했던 팀 상황3.2. 동산고 출신에 대한 불안감3.3. 팔꿈치 수술 경력과 아버지에 대한 악성 루머3.4. 김광현의 존재3.5. 결론
4. 롯데 자이언츠는 왜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았나
4.1. 나승현의 급부상4.2. 수술 경력과 악성 루머
5. 총평6. 지명 이후, 여담

1. 개요

류현진의 프로 지명 당시 에피소드를 모은 문서. 더 정확히는 SK 와이번스 롯데 자이언츠가 류현진을 지명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지명하지 않았던 이유와 정황에 대한 설명이다. 지금까지도 류현진이 활약할 때마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SK/롯데는 왜 류현진을 안 뽑았나요?"라는 질문글이 올라오고는 하는데, 이 문서가 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서는 류거이(류현진 거르고 이재원), 류거나(류현진 거르고 나승현)로도 들어올 수 있다.

2. 상세

2006년 신인 드래프트 후보들에 대한 평가는 광주동성고등학교 투수 한기주가 압도적 최대어였고, 그 다음 티어로 천안북일고등학교 유원상, 동산고등학교 좌완 류현진, 인천고등학교 김성훈, 광주제일고등학교 사이드암 나승현 등이 거론되고 있었다.

그리고 각 팀이 연고지 신인을 우선적으로 뽑을 수 있었던 1차 지명에서 류현진의 고향 팀 SK 와이번스는 그를 뽑을 기회가 있었다.[1] 그러나 SK는 의외로 류현진 대신 포수 이재원을 선택하였고, 류현진은 2차 지명으로 넘어가게 된다. 2차 지명의 1순위 지명권은 2004년 최하위를 기록했던 롯데 자이언츠에게 있었다. 그런데 롯데 역시 류현진 대신 나승현을 선택하였다. 결국 류현진은 SK, 롯데 2개 팀이 거른 후 1라운드 2순위인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게 되었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
지명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4~2009).sv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1차지명 손용석
(부산고,
내야수)
유원상
(북일고,
투수)
김기표
(경기고-경성대,
투수)
이재원
(인천고,
포수)
한기주
(광주동성고,
투수)
김용성
(덕수정보고,
투수)
김효남
(경주고-건국대,
투수)
-
2차
1R
나승현
(광주일고,
투수)
류현진
(동산고,
투수)
신창호
(경동고,
투수)
김성훈
(인천고,
투수)
손영민
(청주기공,
투수)
김용성
(덕수정보고,
투수)
차우찬
(군산상고,
투수)
강정호
(광주일고,
포수)
물론 신인 드래프트는 원래 어려운 법이라 뛰어난 재능의 선수를 놓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 중인 김하성은 2차 3라운드에서야 지명이 되었는데, 그 말인즉슨 모든 팀이 그를 두 번 이상 걸렀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류현진을 거른 사례가 특히 더 회자되는 이유는 (물론 가장 성공한 KBO 리그 출신 선수인 점도 크겠지만) 프로에 와서 급성장한 김하성과 달리 류현진은 고교 때에도 최상위에 뽑힐 만한 재능을 보여주었던 데다, 구단에서 뽑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 안 뽑았다는 보도 기사도 떴기 때문에 해당 팀 팬들이 더욱 아쉬움 혹은 분노를 느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편 KBO 리그 역사상 1차 지명이 유력하게 점쳐지던 선수가 2차 지명까지 넘어온 사례는 1998년, 2003년, 2004년, 2006년, 2007년, 2008년 정도 있었다고 평가받는데, 이 가운데 2차 1번 지명권을 가진 팀이 해당 선수를 거른 사례는 이때가 유일하다.

3. SK 와이번스는 왜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았나

3.1. 포수가 필요했던 팀 상황

SK 와이번스는 2003년 준우승 이후 우승 트로피에 목말라 있는 상황이었는데, 2005년 봄에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연고 지역 고교인 인천고 동산고가 나란히 2004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와 2005년 3월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최우수고교 야구 대회, 6월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를 제패하고 1차 지명감 선수들이 두 학교에서 셋이나 나왔기 때문에 누구를 골라야 할 것인지 고민이 생겼다.

당초 2005년 초까지만 해도 SK의 유력한 1차 지명 대상자는 인천고 투수 김성훈이었다. 1학년 때부터 인천고의 에이스 노릇을 했고, 2학년 때는 한기주와 함께 초고교급 투수로 이름을 날리며 대통령배에서 전 경기 등판, 전승으로 MVP를 따내는 등 팀 창단 후 첫 번째 우승까지 이끌었기에 단연 유력한 1차 지명 후보였다. 이 시기만 해도 류현진은 SK의 계산에 없었다. 물론 류현진도 1학년 때부터 사실상 팀 내 에이스 역할을 했으나, 2학년 때였던 2004년에 토미 존 수술을 받았고 2005년 초까지만 해도 재활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5년부터 상황이 달라진다. 3학년이 된 김성훈은 혹사의 여파인지 2학년 때 146km까지 나왔었던 최고 구속이 많이 떨어져 버렸고, 그 사이 재활을 초고속으로 마친 류현진은 다시 팀의 에이스로 돌아와 청룡기에서 좋은 구위를 보여주면서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 류현진 외에 주목을 받은 선수가 1명 더 있었는데, 당시 고교 야수 1위로 꼽히던 인천고 포수 이재원이었다.

SK는 류현진과 이재원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타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투수진을 강화하기 위해 류현진을 선택해야 하는지, 아니면 주전 포수 박경완의 대를 이을 후계자로 이재원을 택해야 하는지 고민했다.[2] 다만 류현진을 뽑기에는 2004년의 토미 존 수술 사례가 걸렸고, 이재원을 뽑기에는 포수로서의 기본적 역량 부족이 걸림돌이었다.[3] 결국 고민 끝에 SK 프런트는 류현진을 1차 지명하기로 내부 결정을 했는데, 조범현 당시 SK 감독의 이재원을 지명해 달라는 강력한 요청[]요청 정도가 아니었다. 스카우트 팀에서 류현진 지명의 당위성을 강조하자 분노한 조범현 감독이 고성을 지르며 험악한 협박조로 이재원을 뽑으라고 했다는 증언이 있다. 당시에는 감독이 신인 1차 지명을 좌우할 정도로 권한이 컸다.]에 류현진을 뒤로 하고 이재원으로 급히 선회하게 된다. 지명 직후 다른 구단 스카우트들 사이에서도 의외의 지명이라며 놀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3.2. 동산고 출신에 대한 불안감

두 번째로 SK 와이번스가 동산고 출신을 뽑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스포츠동아의 SK 담당 기자였던 이재국 기자가 라디오볼에서 밝힌 바로는, SK는 동산고 위주로 픽을 해왔는데 생각보다 성장세가 더딘 경우가 많자 SK 구단 고위 간부가 동산고 지명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었다고 한다.
사실은, SK가 류현진 선수를 그때 지명하지 않았던 이유중에 하나도 그 이전에 SK가 동산고 출신들 계속 뽑았잖아요. 정상호 선수라던지 송은범 선수라던지. 그때만 해도 그 선수들이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은 거에요. 그러니까 윗선에서.. 그때 사장님이 좀 약간 다혈질이셨는데 "앞으로 동산고 뽑지마!" 이런식으로 나와가지고 동산고와 인연이 조금 안 좋았어요. 류현진 선수가 물론 수술도 한 전력도 있고 이러겠지만, 동산고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스카우트들이) 또 잘못 뽑았다가 (구단 고위직에게) 또 혼날수도 있으니까 그랬던 부분이 사실 있었거든요.
2016년 6월 27일 라디오볼
여기에는 특히 류현진의 동산고 3년 선배이자 2003년 1차 지명으로 SK에 입단한 송은범의 사례도 한몫을 했다. 송은범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성적 문제도 있었지만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으로 지적을 받았는데, 프로 입단 이후에도 밤마다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흥청망청 유흥에 빠져 산다는 증언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구단에서조차도 제대로 통제를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풍류은범'이 되었을까. 같은 동산고 출신인 류현진 역시 고교 시절부터 담배를 핀다는 등 스카우터들에게 노는 과로 소문이 났고, 이러한 연관성은 SK가 그를 포기하게 만든 한 원인이 되었다.

3.3. 팔꿈치 수술 경력과 아버지에 대한 악성 루머

전술했듯 류현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토미 존 수술을 받았고 3학년 초까지 재활을 했다. 지금이야 투수들이 흔하게 받고 또 복귀 성공율도 높은 수술이지만, 당시만 해도 재활이 어렵고 부상의 재발 위험이 높다는 인식이 있던 시기라 SK 와이번스 입장에서는 선뜻 류현진을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여기에 팔꿈치를 수술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아버지 류재천 씨에 대한 루머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이 당시 야구계 안팎에서는 "류재천 씨가 인천에서 소문난 조직폭력배의 두목이다"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러나 이는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류현진이 2012년 12월 미국 진출을 앞두고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한 언급에 따르면, 당시 류현진의 팔을 최초 진단했던 인하대학교병원에서는 그냥 쉬면 된다는 처방을 내렸는데 그래도 계속 팔이 아파서 다른 병원에서 재검진한 결과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날 정도로 격분한 아버지가 앞선 병원을 다시 찾아가 병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었다고 한다.[5] 해당 기사

이후부터 "야구선수를 아들로 둔 아버지가 병원에서 무섭게 난동을 피운다"는 이야기가 퍼졌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류현진의 아버지가 인천에서 주먹으로 소문난 사람이라더라"라는 소문으로 둔갑했다. 아울러 작지 않은 체구에 다소 험상궂게 생긴 류재천 씨의 외모 역시 이런 루머에 힘을 더했다. 결론적으로 류재천 씨는 조폭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평범한 시민이자 아들 류현진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좋은 아버지였다.

3.4. 김광현의 존재

SK 와이번스에게는 바로 다음 해 1차 지명 후보로 안산공고 좌완 김광현이라는 특급 유망주가 있었기 때문에 류현진을 걸렀다는 설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아마추어에서는 전년도에 동기들 중 최상위였으나 부상 등으로 인해 갑자기 성장세가 더디어 드래프트 순위가 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6][7] 당장 당해 년도에도 최초 1차 지명을 염두에 두었던 김성훈은 2학년 때 김명제, 한기주와 고교 야구 빅3라고 불리며 최고 구속 146km에 청소년 대표에 뽑힐 정도로 기사 대형 유망주였지만[8], 3학년에 접어들어 성장세가 더디어 지명 순위가 뒤로 미뤄졌던 점 등을 보면 다음 해의 신인 지명까지 미리 생각하면서 이재원을 찍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의견이다.

투수는 1군엔트리의 절반을 차지하고 야수와 다르게 특정포지션에 1~2명만 필요한게 아니라 이왕이면 다다익선이고 괜히 상위 지명자의 절반 가량이 투수인 게 아니다. 더군다나 좌완투수는 귀해서 유망주 랭킹이 낮아도 상위 순번에 지명되는 경우가 자주 있으나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MLB에서도 손에 꼽히는 선발 투수가 된 한국 역대 최고 투수를 거르고 김성근이 포수가 아니라 지명타자 전용으로 볼 정도로 절대 1군 주전으로 봐줄 수 없는 수비력과 전성기 기준 괜찮은 타격 능력은 있지만 나태해 빠진 대형 포수 조무사를 뽑은 역대급 눈깔 조범현과 스카우터의 핑계일 뿐이다. 류거이를 하지 않았다면 그저 한국 올타임 넘버원 투수와 동시대에 바로 그 다음가는 투수를 보유하기나 했겠지 류거이보다 마이너스인 상황이 나왔겠는가.

이런 얘기가 나온 이유는 2006년에 류현진이 대성공을 하고 이재원이 부진해 SK 프런트에 대해 비난이 들끓자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신인 김광현을 띄우는 언론 플레이를 해 나왔다. 기사

3.5. 결론

결국 SK는 조범현 감독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성장이 더디고 군대까지 가버린 정상호를 대체할 선수가 필요하다.'란 이유로 류현진을 지목하지 않고, 대신 이재원을 1차 지명했다. 지명 직후 스카우터들 사이에서도 의외의 지명이라며 놀라는 분위기였다.

이재원도 분명히 좋은 타격 퍼포먼스를 보여준 시즌이 종종 있다. 전성기 시절엔 공격형 포수로 떠오를 정도로 타격능력만 따지면 주전포수값 이상을 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주전 포수를 꿰찬 2014시즌 이후부터는 부상으로 거의 한 시즌을 날려먹은 2020시즌을 제외하고는 100경기 이상씩 꾸준히 출장하고 있었고 2018시즌 기적적인 SK의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성적만 놓고 보면 절대 실패한 1픽이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실패한 1픽들이 훨씬 많다는걸 감안하면 이재원 또한 성공한 픽이다. 물론 1픽으로 실패하지 않은 것이지 FA로는...

하지만 하필 이재원 말고 뽑을 수 있었던 카드가 데뷔 시즌부터 신인왕+MVP를 휩쓴 괴물투수 류현진이었다는 게 문제. 이재원은 데뷔 초기에는 별 활약을 못했고 군 제대 후 27살이 되어서 포텐이 터졌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류현진과 더더욱 대비되어 욕 먹었다. 그리고 수비력이 주전포수라고 보기는 힘들 정도라서 약점이 뚜렷한데다가, FA 계약 후 2할도 힘겨운 한심한 타격과 고질적으로 나빴던 수비로 먹튀의 정점으로 등극하여 2019년 말부터 시작된 SK의 몰락의 정점을 찍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4. 롯데 자이언츠는 왜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았나

4.1. 나승현의 급부상

2005년 청룡기에서 동산고가 기적의 대역전 우승을 거두면서 류현진은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해졌고, 당시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SK의 강력한 1차 지명으로 거론되었다. 그런데 SK가 1차 지명으로 이재원을 픽하자 모두들 의외의 지명이라는 분위기였고[9], 2차 지명 순위 1번을 가진 롯데 자이언츠가 환호를 질렀다. 롯데 팬들도 류현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미리 환영 인사로 도배를 하는 등 류현진이 롯데에 들어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스카우트들 사이에서도 당장 롯데 선발진 진입이 가능한 투수라고 평할 정도였다. 기사 8월 전까지만 해도 류현진이 강력한 2차 1번으로 점쳤고, 그 뒤로 김성훈, 나승현 순이었다. 나승현 본인도 그것을 알고 2차 3번을 가진 LG 트윈스에 입단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다. 기사

그러나 2차 지명 직전에 열린 봉황대기에서 류현진이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대신 광주일고의 나승현이 준결승에서 최대어 한기주를 이기는 등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그러자 롯데는 고민에 빠졌고, 지명 일주일 전 류현진과 나승현 50대 50이라는 의견을 표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은 롯데가 류현진의 계약금을 깎기 위해 저런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생각했지 진지하게 나승현을 고민한다는 생각을 한 이는 많지 않았는데, 기사, 윤동배 스카우트와 양상문감독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롯데가 진짜로 2차 1순위로 나승현을 지명하는 일이 벌어진다. 나승현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놀랄 정도. 기사

당시 고교 4대 메이저 대회의 결과를 보면 대통령배는 한기주의 광주동성고가, 청룡기는 류현진의 동산고가, 황금사자기 강정호와 나승현의 광주제일고가 차지했고, 마지막 대회인 봉황대기는 배장호 갑툭튀한 활약으로 수원유신고가 차지했는데 이때도 나승현은 뛰어난 활약을 하며 팀을 결승전까지 이끌었다. 즉 나승현의 고교 무대 퍼포먼스가 대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당시 롯데 팬 중 류현진의 지명을 기대하고 있었던 측에서는 나승현으로 지명 선수가 바뀌자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4.2. 수술 경력과 악성 루머

앞서 SK가 우려했던 점과 같다. 첫째는 류현진이 토미 존 수술 경력이 있었다는 점인데, 특히나 롯데로서는 그 이전 2003년 드래프트, 2004년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이 유력했지만 지역 연고팀이 1차 지명으로 뽑지 않아 2차 드래프트로 흘러나온 김대우, 김수화를 2차 1번으로 뽑았지만 고교 시절의 혹사와 부상의 여파로 프로에서 결과가 좋지 못했고 수술 경력의 선수에 대해 더더욱 꺼리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둘째는 SK가 들었던 '류현진의 아버지가 조폭이다'라는 소문이 롯데의 귀에도 들어갔다고 한다. # 안 그래도 류현진은 흡연을 하고 송은범처럼 노는 걸 즐겨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는데, 조폭들과도 인연이 있다하면 어느 팀이라도 그 선수를 영입하는데 주저했을 것이다.

물론 이는 헛소문이었다. 훗날 류현진이 방송에서 설명하기를 '자신이 팔 부상 검진을 받았는데 첫 번째 병원에서는 괜찮다고 했지만 두 번째 병원에서는 인대가 끊어졌다고 하자, 분노한 아버지[10]가 첫 번째 병원을 다시 찾아가 뒤집어 놓은 일화 때문에 그런 소문이 퍼졌던 것 같다'고 밝혔다. 훗날 '99쇼'에 출연한 부친 류재천 씨가 밝힌 일화로 '전에 처조카가 결혼을 하는데 같은 예식장 2층에서 조폭의 결혼식이 있었다. 처조카 결혼식이 1층이었고, 결혼식 양쪽 입구에서 조폭들이 죽 서 있어서 들어갔는데 그분들이 내가 손님인 줄 알고 인사를 해 인천의 주먹이라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게 마침 롯데 자이언츠 스카우트들 귀에 들어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5. 총평

상기한 이런저런 이유로 SK와 롯데가 류현진을 걸렀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모두 핑계일 뿐이다. 왜냐하면 류현진은 잠깐의 프로 적응 기간도 없이 프로 무대를 바로 씹어먹었기 때문이다.
류현진의 프로 데뷔 시즌(2006년) 기록
첫 경기 7.1이닝 무실점 10탈삼진 승리[11]
첫 달 4경기 28⅔이닝 2승 무패 ERA 1.57 36탈삼진
시즌 최종 30경기(28선발) 201⅔이닝 18승 6패 1세이브 ERA 2.23 204탈삼진[12]
투수 트리플 크라운 달성, 사상 최초 신인왕+MVP 동시 석권
이 정도면 구단이 키운 게 아니라 고교 때 이미 거의 다 갖추고 있던 타고난 재능러였다는 뜻인데, 이런 선수조차도 못 알아보고 걸렀던 스카우트 팀은 자격이 없는 수준이며 그 당시엔 거를 만했다며 쉴드쳐주는 팬들도 우스워진다. 만약 류현진이 몇 년 정도 담금질을 하고서야 대성했다면 그래도 원석형 선수였으니 결과가 그래서 그렇지 이재원이나 나승현을 뽑을 만했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겠지만, 데뷔하자마자 리그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류현진은 그에 해당될 수가 없다.

또한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구대성에게 배웠기에 한화가 아닌 다른 팀에 갔다면 지금같은 투수가 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류현진은 MLB 진출 후 커터나 슬라이더도 배우자마자 금방 써먹을 정도로 구종 습득 능력이 말이 안 되게 뛰어난 선수였다.[13] 류현진은 그냥 어느 팀에 가도 성공했을 재능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6. 지명 이후, 여담

2006년 후 SK 와이번스 롯데 자이언츠의 스카우트진은 모두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특히 SK는 한국 올타임 넘버원 투수 류현진과 동시대 바로 다음가는 투수 김광현을 원투 펀치로 보유할 기회를 날렸다는 점에서 더더욱 뼈아픈 실책이었다.[14]

심지어 조범현이 2006년 직후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유가 부진한 성적과 더불어 류현진 대신 이재원을 선택한 이 1차 지명 때문이었다고 한다. 애초에 SK는 류현진을 1차 지명으로 생각했으나 이 과정에서 같은 포수 출신 이재원을 1차 지명으로 원하던 조범현 감독과 트러블이 장난이 아니었다는데, 결국 SK 구단은 조범현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 결과는 아주 참담했다. 이 일로 분노한 SK는 2006년 시즌이 종료된 후 조범현 감독을 해임하였다. 후임인 김성근 감독도 SK가 류현진을 1차 지명했다면 자기가 아니라 조범현이 아직도 감독이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 이후 조범현은 다행히 같은 인하대학교 출신인 당시 KIA 타이거즈 조남홍 사장이 낙하산으로 꽂아준 덕에 다시 지도자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2009년에 전 소속팀 SK를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류현진 대신 나승현을 뽑는 데에 일조했던 롯데 윤동배 스카우트는 문책성 징계로 스카우트직에서 잘리고 상동구장 소장으로 좌천됐다. 이후 2015년이 되어서야 스카우트 매니저로 돌아왔다.[15]

드래프트 이후 세 선수의 행보는 다음과 같다.
  • 류현진
    데뷔하자마자 KBO 리그를 씹어먹었고 베이징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도 활약하며 KBO 리그 최고의 투수로 등극했다. 그리고 2013년 한국 선수 역대 최고의 포스팅 금액으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하며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고, 첫 해부터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천재성을 또 한 번 보여줬다.[16] 2019년 시즌에는 평균자책점 1위와 사이 영 상 2위에 오르며 최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8000만 달러라는 대박 계약을 체결했고, 2020년 시즌 사이영 상 3위와 워렌 스판 상 수상까지 추가하면서 박찬호를 넘어 대한민국 역대 최고 투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17]
  • 이재원
    데뷔 초기에는 별 활약을 못했지만, 군 제대 후 27살이 되어서 나름 포텐이 터졌다. 주전 포수를 꿰찬 2014년 시즌 이후부터는 부상으로 거의 한 시즌을 날려먹은 2020년 시즌을 제외하고는 100경기 이상씩 꾸준히 출장하였고, 2018년 시즌에는 SK의 기적적인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다만 수비력이 주전 포수라고 보기는 힘들 정도로 약점이 뚜렷한 데다가, FA 계약 후 2할도 힘겨운 한심한 타격과 고질적으로 나빴던 수비로 먹튀의 정점으로 등극하여 2019년 말부터 시작된 SK의 몰락의 정점을 찍는 원흉이 된다.
    이렇듯 말년이 안 좋긴 했지만, 이재원도 분명히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시즌이 꽤나 있었고 전성기 시절엔 KBO 리그에서 손꼽히는 공격형 포수로 떠오를 정도로 타격 능력만 따지면 주전 포수값 이상을 하는 편이었다. 통산 성적을 보았을 때도 충분히 1차 지명으로 픽할 만했다. 1차 지명자여도 실패한 사례들이 훨씬 많다는 걸 감안하면 분명히 이재원은 성공한 픽이다. 하지만 하필 이재원을 뽑기 위해 걸렀던 카드가 괴물 류현진이었다는 게 문제.
  • 나승현
    데뷔 해인 2006년 시즌 중반에 팀의 마무리로 승격되면서 16세이브를 올렸고, 이는 지금까지도 고졸 신인 최다 세이브 기록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후 본인의 전성기 시절 폼을 다 잃은 채 2군을 전전하다 서른 살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은퇴하게 된다. 즉 이재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실패한 픽이 되었다. 애초에 이재원은 성공한 픽으로 꼽힌다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1차 지명이 한 명으로 바뀐 1991년 드래프트 이후 단독으로 지명된 2차 1번 선수가 통산 WAR 3 이하를 기록한 경우가 세 번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승현이다. 그런데 나머지 둘도 롯데( 김대우, 김수화)이다.

2014년 당시 롯데 감독이던 양상문은 9년 전 '역대 왼손투수 가운데 최고라는 생각이 들더라. 투구 메카닉이 고교생 같지 않았다' 라고 운을 떼며 구단에 지명을 요청했다라고 인터뷰 했지만, 사실 드래프트 직전 양상문 감독은 류현진은 기복이 크다는 약점이 있지만 나승현은 1학년 때부터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라고 말하며 나승현을 추천한것은 기사 이미 업계에 유명했기에 말바꾸기를 한다며 비난을 받았다. 기사, 기사

2010년대 후반인 현재까지도 동산고는 SK/ SSG 팬들의 드립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원준을 뽑느라 걸러버린 김혜성의 별명이 졸지에 '동산고 홀대의 희생양'의 줄임말인 '동홀희'가 되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동산고에서 1차 지명으로 데려온 이건욱 오타니 쇼헤이와 비교당하기도 한다(...). 이후 김혜성은 키움 히어로즈의 주전 내야수로 당당히 발돋움한 반면, 이원준은 안 터지는 유망주로만 남다가 SSG 랜더스 2군 구타 및 가혹행위 사건의 주모자로 찍히면서 방출됨에 따라 이 지명도 류거이 못지않은 희대의 실책으로 회자되고 있다.

2020년, 나승현이 류거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

2021년 7월, 류현진과 동산고 동기이자 배터리를 이뤘던 최승준 스톡킹에 나와 이와 관련된 썰을 풀었는데, 드래프트 날 같이 PC방에 가서 새로고침을 누르며 결과를 지켜보다가 2차 1번에 나승현이 뜨자 류현진이 빡쳐서(...) 그대로 컴퓨터를 끄고 PC방을 나갔다고 한다.

2024년, 이재원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고 류현진이 2024년 2월 22일 한화에 복귀하면서 류거이의 당사자들이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


[1] 실제로 1차 지명 발표 직전 류현진을 1차 지명으로 생각했다. [2] 당시 SK 포수진은 2001년 메이저 리그 팀들과의 경쟁을 물리치고 입단시킨 초대형 포수 유망주 정상호가 좀처럼 성장하지 못한 채 군대를 가버린 상태였고, 주전 포수 박경완도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었기에 박경완의 뒤를 대비할 포수 자원이 필요했다. [3] 이재원은 프로 입단 당시만 해도 주자 견제를 위한 송구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 [5] 류현진은 방송 당시 "아버지가 돌으셔서(...) 병원에 쳐들어가 깽판(...)을"이라고 말했다. 류현진의 거침없는 단어 선택에 당시 진행자였던 강호동, 유세윤, 황광희가 나란히 놀란 것은 덤. [6] 대표적인 경우가 안인산 오원석이다. 그리고 드래프티들 사이에서도 두산 베어스의 사례를 보면 프로 1년차부터 기량 차이가 역전되더니 급격히 벌어지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7] 반대로 이 해 드래프트에서 2차 3번을 받은 신창호는 2학년 때까지 크게 주목받는 유망주가 아니었으나, 3학년 때 투수로 전향하여 한 달마다 구속을 3km씩 올리며 최상위권 지명을 받았다. [8] 프로야구 최초로 대통령배 우승을 지역 연고 프로팀이 초청해 행사를 열었을 정도이다. 기사 [9] 의외를 넘어 이해할 수 없는 지명이라는 관계자도 많았다. [10] 병원의 오진 때문에 아들의 야구 인생이 날아갈 수도 있었으니 화가 안 나면 이상한 거다. [11] 4월 12일 LG 트윈스 [12] 포스트시즌에서는 5경기(4선발) 23이닝 1패 ERA 4.30 19탈삼진으로 정규시즌에 비해 비교적 부진했다. 하지만 큰 무대 경험이 없는 프로 1년 차 시즌임을 고려하면 참작할 만하며, 심지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흔들려서 그렇지 한국시리즈에서는 3경기(2선발) 1패 13탈삼진 평균자책점 2.25로 호투했다. [13] 게다가 이 논리가 맞으려면 2006년 이후 한화 투수진이 화려해야 하는데, 한화는 안영명 이외에 제대로 된 투수 하나 키워내지 못할 정도로 안습한 코칭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14] 투수는 1군 엔트리의 절반을 차지하고, 야수와 달리 특정 포지션에 1~2명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이왕이면 다다익선이다. 괜히 상위 지명자의 절반 가량이 투수인 게 아니다. 특히나 좌완 투수는 더욱 귀해서 유망주 랭킹이 낮아도 상위 순번에 지명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저 MLB에서도 손에 꼽히는 선발 투수가 된 한국 역대 최고 투수를 거르고 포수가 아니라 지명타자 전용으로 볼 정도로 절대 1군 주전으로 봐줄 수 없는 수비력과 전성기 기준 괜찮은 타격 능력은 있지만 나태해 빠진 대형 포수 조무사를 뽑은 역대급 눈깔 조범현과 스카우터의 핑계일 뿐이다. [15] 여담으로 2021년 일본 롯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나, 당시 스카우터들은 전혀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차라리 한국 롯데가 더 피드백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일본 롯데의 경우는 이구치 타다히토 감독이 마키 슈고를 1라운더로 뽑자는 것을 나카무라 쇼고의 자리를 빼앗으면 안 되니 2루수는 안 된다는 이유로 구단 스카우터들과 본부 운영팀에서 강제로 스즈키 쇼타 지명을 강요하여 1년차부터 20홈런을 넘긴 2루수를 놓쳐버린 초대형 실책. 정작 그 스즈키는 4년차에야 겨우 1군에 자리잡았고 그나마도 셋업맨이다. 셋업맨으로 활약이 좋다고는 하지만 마무리도 아닌 셋업을 20홈런 치는 센터라인 내야수와 비교하기엔 너무 밀리고, 대졸이 4년차에 1군에서 자리잡았다는 것은 한국의 군필 대졸 이상으로 시간을 까먹었다는 셈이니 성장 속도와 누적 기록에서도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16] 류현진이 미국 진출 후 첫 완봉승을 거뒀을 때 SK 팬들은 자기들이 류거이해서 키웠다는 드립을 쳤다. LG 트윈스 팬들은 자기들이 류현진을 만들어줬다고 묻어갔다. 그리고 이재원과 나승현은 류현진과 비교당하면서 까이고 있다. [17] 한편 류현진은 메이저 리그 진출 이후에도 꾸준히 한화 이글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면 본인은 한화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