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백야극광)

　레디젤 렌치 이카루가의 대장, 라비 보고합니다. 뭐? 이카루가라니까! 「후방조 제1철수 소대」 따위가 아니야! 오늘부터 너희들이 어떻게 돌진하고, 회전하고, 공격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책임지고 도와줄 거라고! 누군가의 당부처럼 계획 세우기의 첫걸음은 서로 알아가기야!
　전에 레디젤 렌치에서 살았는데 자주 욕을 먹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즐거웠어. 욕먹은 것도 내 탓이었거든. 땅 파기 좋아하는 걸 어쩌라고, 하하.
　그곳에서 난 내 삶의 가치를 찾았어. 대장은 날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내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 줬어. 생명의 은인이자, 재능을 발견해 준 사람이었지. 이제 내 후방조 제1 철수 소대도 커졌어. 매일 안전하게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철수를 우습게 보지 마!

철수... 아, 아니야, 회전 공격 계획의 두 번째 단계, 음... 아니야, 파일 계획의 두 번째 단계라고? 다 똑같아, 똑같다고.
라비는 레디젤 사막의 유일한 오아시스, 에메랄드 호수에서 태어났어. 호수가 크진 않지만 황량한 사막에 에메랄드처럼 박혀있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지. 그곳의 주민들은 낮에는 버려진 채굴소에서 폐품을 줍고, 저녁에는 제이드 호수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는 폐품 속에서 날 주웠어. 날 데려갈 사람을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어, 내가 굶어 죽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날 데리고 왔고, 그 후로 쭉 함께 살았어. 폐품을 주울 때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항상 잃어버린 아이를 아는지 항상 물어봤어. 그렇게 오랜 시간 결과 없이 지내다가 내가 7살이 되던 해에 누군가 할아버지 집에 찾아왔어...　

그녀를 보는 순간 첫눈에 누군지 알겠더라고. 루비 같은 맑은 눈동자에 작은 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 따위 없었어. 익숙한 낯섦이었지. 그녀는 그 당시 날 품에 안고선 사방팔방으로 품팔이를 했지만, 그곳에는 위험이 가득해서 날 데리고 생계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어. 그래서 날 버려진 채굴소에 놓고 누군가 데려갈 때까지 멀리서 바라봤대. 지금은 재혼했고, 전보다 많이 부유하지는 않지만 내게 무언가 보상을 해 주고 싶다더군.
레디젤 사막에 살면서 그런 사정이야 많이 봐와서 나도 그녀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어. 어쨌든 나도 할아버지와 잘 지내고 있으니 그녀도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해. 게다가 나도 할아버지를 무척 사랑하고, 할아버지와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어. 그리고 지금 생활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어.　

내 인생은 그날로 바뀌었어. 암귀의 부락 습격은 종종 발생했지만, 모두 우리와 멀리 떨어진 부락이었어. 그래서 나와 할아버진 도주로를 계획하고 계속해서 예행 연습을 할 수 있었어.
그런데 그날 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보니 밖에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가득했어. 암귀가 온 거야! 주변은 순식간에 공포의 분위기에 휩싸였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 난 너무 무서웠는데 할아버지가 침착하라고 말씀하시더니 계획해둔 도주로로 도망가고,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리 준비해놓은 짐을 멨어. 할아버지를 부르려고 고개를 돌리니, 새빨간 두 눈을 한 암귀가 암흑 속 악마 같은 모습으로 할아버지 앞에 서 있었어. 할아버지는 큰소리로 어서 가라고 외쳤고, 나는 허겁지겁 텐트 밖으로 빠져나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길에는 온통 시체뿐이었지. 그때 바로 절망에 빠진 내 앞에 사메야마가 나타난 거야. 나는 그에게 부탁해서 어서 할아버지를 구해달라고 했지만 이미 늦었지.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망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