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4:15:40

창덕궁 돈화문

돈화문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5
대보단
건무문 광지문 수문
청의정 태극정 농산정 옥청문
농포
소요암 옥류천
소요정 수문
취한정
수복방 신선원전 진설청
괘궁정 취규정
재실
능허정
의효전 사가정 청심정 천향각
몽답정 산단
백운사
천성동 태청문
청연각
존덕정
외삼문 폄우사 척뇌당
관람정
한려청 반도지
승재정
부군당
반빗간 태일문
통벽문 우신문 농수정
연경당 선향재
국출신직소 수인문 장양문
장락문
창덕궁 애련정 수궁
어수당 애련지
불로문
석거문 금마문 영춘문
운경거 의두합
희우정 천석정
서향각 주합루
어수문
사정기비각 부용지 영화당 춘당대 서총대
부용정
요금문 수문장청 서소 개유와 열고관
창송헌 수정전 가정당
수궁 습취헌 집상전
영모당
생물방 경복전 경훈각 징광루 함원전
소주방 청향각
숙경재 의풍각 융경헌 대조전 흥복헌
수랏간 관리합
만수전 태화당 재덕당 정묵당 요휘문 경극문 창경궁
경추문 수문장청 보경당 선평문 양심합 여춘문 병경문
함양문
서북 진설청 내재실
선원전
서남 진설청 동남 진설청
만수문 건중문 희정당 자선재 영안문
양지당 만안문 관광청 선정전 유덕당 건인문
책고 인정전 관물헌 석유실 어휘문
봉모당 억석루 연경문 만복문 향실 선정문 성정각 보춘정 양성재 중희당 칠분서 해당정 수방재 연영합 평원루 취명문
운한문 영의사 예문관 서방색 소주방 선화문 자시문 삼삼와 승화루 한정당 보화문
숭범문 선전관청 장방 영현문 전의사 취운정 협문
훈국초관인직소 이문원 검서청 약방 내삼청 광범문 대전장방 내반원 낙선재 석복헌
훈국초관인직소 홍문관 당후( 승정원) 문서고 궁방 사옹원 등촉방 대은원 수강재
훈국군파수직소 정청 육선루
악기고
승정원 상서성 연영문 협양문 무예청 장락문 주명문
남소
위장청
인정문 + 양사( 사간원) 공상청 사알방 누국
수문장청 금천교 진선문 숙장문 건양문 일영대
금호문 결속색
정색
내병조
(창덕궁관리소)
호위청 상서원 배설방 금위군번소 패장직소 별감방 전루 문기수번소 저승전 낙선당
무비사
의장고
전설사 빈청
(어차고)
진수당 장경각 계방
수문장청 돈화문 수문장청 교자고 상의원 치미각 시민당 군옥재 춘방 등룡문
원역처소 수문장청 전루 별감방 등촉방 배설방 훈국군번소 사주문
단봉문 종묘 북신문 +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 · 경희궁
}}}
}}}}}}}}} ||
창덕궁 돈화문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덕수궁의 원래 정문은 인화문이었으나 후일 폐쇄되고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덕수궁 대한문
德壽宮 大漢門
창덕궁 돈화문
昌德宮 敦化門
덕수궁의 원래 정문은 인화문이었으나 후일 폐쇄되고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정문 · 중문 · 금천교 · 정전 정문 · 정전 · 내정전 · 태후전 · 선원전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보물
382호 383호 384호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 창덕궁 돈화문 창경궁 홍화문
}}} ||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보물 제383호
창덕궁 돈화문
昌德宮 敦化門
소재지 <colbgcolor=#fff,#2d2f34>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 1동
지정연도 1963년 1월 21일
제작시기 조선 시대, 1412년 창건, 1608년 중건
파일:donwhamun.jpg
<colbgcolor=#bf1400> 돈화문

1. 개요2. 이름3. 역사4. 구조5. 여담

[clearfix]

1. 개요

창덕궁의 정문, 대한민국의 보물 제383호이다.

2. 이름

'돈화(敦化)' 뜻은 '(백성을) 도탑게(화목하게) 하고 교화시킨다'이다. 유교경전 사서 중 하나인 《 중용》에서 따온 말이다.
萬物竝育而不相害
만물은 함께 커도 서로 해치지 않으며

道竝行而不相悖
도(道)는 함께 행해져도 서로 어긋나지 않아서

小德川流 大德敦化
작은 덕은 시내처럼 흐르고 큰 덕은 두텁게 감화시키니

此天地之所以爲大也
이것이야말로 천지가 위대한 까닭이다.
중용》 30장 中.

3. 역사

파일:동궐도 돈화문.png
<colbgcolor=#bf1400> 〈동궐도〉 돈화문
태종 때에 창덕궁 내부 전각들을 다 지은 후에야 궁궐 경계를 확정하여 1412년( 태종 12년)에 건립했다.

임진왜란 때에 창덕궁 전체가 불에 탔으나 궁의 외곽에 있는 돈화문도 같이 탔는 지는 모른다. 다만, 1598년 5월 9일 자 《선조실록》 기사에 돈화문을 활용한 내용이 있으므로 남은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건물 양식이 조선 전기와는 꽤 달라서 어느 쪽이 맞다고 확인하긴 힘들다. 저 실록에 나온 돈화문이 중층 정식 건물이 아닌, 임시로 세운 문을 일컬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반소(半燒)되고 남은 문이었을 수도 있다.

현재 건물은 1608년( 광해군 즉위년)에 재건되었다. 실록에는 별도의 언급이 없으나, 1977년 돈화문을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관련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4. 구조

  • 정면 5칸, 측면 2칸이다. 지붕은 우진각이고 처마는 겹처마, 공포는 다포이다. 정면 5칸 중 양끝 두 칸이 막혀있는데, 이는 황제국의 문틀은 5개, 제후국의 문틀은 3개를 조성할 수 있는 규율에 따라 칸수는 황제국의 궁궐 문처럼 5칸이지만 실제 문으로 사용하는 칸은 3칸으로 재치있게 절충한 결과이다.
  • 원래는 장대석(長台石) 기단과 층계가 있었다. 이는 19세기 초에 그린 〈 동궐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순종 즉위 후 차량 통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일제가 도로 표면 높이에 맞춰 묻어버렸다. 이후 약 90년 동안 돈화문 바로 앞까지 도로가 깔려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에 문화재관리국에서 대대적인 창덕궁 복원사업에 맞춰 월대를 발굴했다. 그럼에도 월대와 돈화문 앞을 지나는 율곡로의 높이가 달라서 월대 앞에 1.5m 높이의 옹벽을 두었고, 이때문에 월대 앞이 막혀있어 관람 동선의 불편 및 위엄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2019년에 창덕궁 관리소와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에서 협업하여 율곡로 높이를 월대 계단 높이에 맞춰 낮추고 막힌 월대를 트는 공사를 계속 진행하여 2020년 11월에 드디어 완공했다. 월대가 탁 트일 때까지 약 10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 건축 양식 자체는 예전 왕조의 건축 유물 및 유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유사한 양식이 보인다. 고려왕조의 본궐이 있던 만월대의 유적을 보면 궁성 정문 승평문, 신봉문, 창합문, 회경문은 돈화문과 똑같이 천자국 제도인 5칸으로 세워졌었음을 알 수 있다. 허나 《 고려도경》에 따르면 저 네 대문이 모두 3문 형식이었다 하니 돈화문과 똑같이 5칸으로 세우되 3문만 이용한듯 하다. 즉 돈화문은 유서깊은 건축양식의 전형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5. 여담

  • 광해군 시기 인왕산 자락에 지었던 인경궁의 정문인 '명화문(明化門)'이 돈화문을 본떠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경궁 자체가 공중분해되면서 현재엔 전하지 않는다.
  • 이괄의 난 진압 후 난을 진압한 심기원, 신경진, 장만 등이 이괄 군에게 왕으로 추대받은 왕족 흥안군 이제를 이곳에서 죽였다.
  • 동궐도〉를 보면 돈화문 지붕 모양이 우진각이 아니라 팔작이다. 화공의 단순 실수인지, 아니면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저렇게 그린 건지는 모른다. 창경궁 홍화문 부분에도 같은 오류가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