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bc002d><colcolor=#fff> 대구 여중생 실종 사건 | ||
발생일 | 2001년 12월 8일 0시경 | |
발생 위치 |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7동 북부정류장 인근 | |
실종자 | 김기민(당시 15세), 민경미(당시 14세) | |
유형 | 실종,([dday(2001-12-08)]일 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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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1년 12월 8일 김기민 양과 민경미 양이 대구광역시 서구 북부정류장에서 실종된 사건.
2023년 6월 3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둘은 대구 지역에서 소위 얼짱으로 통했다고 한다. 둘 다 중학교 3학년 동급생이었지만[1], 또래 친구들에 비해 큰 키와 돋보이는 외모를 가져 인기가 많았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동네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 가게에 가고 오락실의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는 평범한 두 여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건 2001년 12월 8일. 그로부터 [age(2001-12-0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두 사람의 행방 및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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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개
위에 언급된 목격담을 감안해서 실종 전날인 2001년 12월 7일 금요일 오후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2001년 12월 7일 오후 3시경~ 12월 8일 오전 0시경 실종자 2명의 경로(파란색이 김기민 양의 경로, 빨간색이 민경미 양의 경로다.) (출처: 그것이 알고싶다 1354편 본편) |
실종 전날에 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력한 위치(검은색 : 둘 다 있었던 곳, 빨간색: 김기민 양만 있었던 곳)[2] |
- 민경미
- 김기민
3. 가설
아직 실종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추측으로 남았지만 굳이 나누자면 가설을 3가지로 나눌수 있다.3.1. 인신매매설
김기민 양과 알고 지내던 그 '오빠'가 사실 성매매 업소에 여성을 팔아넘기는 소개업자이고 그녀와 그의 친구인 민경미 양과 같이 만 북부정류장에서 태운 뒤 부산역이나 자갈치역까지 가서 두 명을 인근의 사창가[4]나 유사 성매매 업소였던 티켓다방에 넘겼다는 설이다.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제일 신빙성이 높은 가설이다. 사실 성매매 특별법과 실종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신매매당해서 성매매 업소에 유입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5] 인신매매당해서 감금당한 성매매 여성과 포주가 같이 타죽었던 군산 화재 참사가 2000년, 2002년이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실제로 前 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이자 現 성매매해결전국연대 대표인 신박진영이 해당 가설을 지지한 바 있으며 성매매당사자네트워크 뭉치의 활동가들도 비슷한 수법으로 성매매 업소에 유입되었던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 426화(바로 위에 인용된 영상), 1354화(제일 위에 인용된 영상)에도 언급되었다시피 2000년대엔 여고생, 심지어 여중생까지 납치한 뒤 성매매 업소나 티켓다방에 넘겼다가 청소년보호법으로 기소된 조직폭력배와 이들과 연계된 조폭이 적지 않았고 집창촌의 하위 문서인 집창촌/대한민국 문서에도 서술되었듯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았던 부산역이나 자갈치역 인근엔 성매매 업소[6]가 많았고[7][8] 당시 유흥업소 포주로 활동했던 사람도 미성년자 중에서 자발적으로 유입된 사람은 없었다고 증언한 것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높다.
후술한 문단에서 언급한 "살려주세요"란 말을 감안하면 이 가설이 정설일 가능성이 더욱 더 높아지는데 보통 위급한 시기에 나오는 메세지와 이 사건에 대한 그것이 알고싶다의 방영 바로 하루 전인 6월 2일 그알 저알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방송예고 영상에 달린 댓글 중 ‘그 날 실종자 두 명이 어떤 남자의 차에 타고 가는 걸 목격’했다[9]는 목격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지방경찰청도 이 가설을 유력하게 보는데, 당시 경상권 지역에 다이너스티와 각그랜저를 이용해 성매매 업소나 티켓다방 등에 여성을 공급하기 위해 인신매매를 조직적으로 행한 인신매매단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도 그런 집단의 소행일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마지막 메세지가 저랬던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한데 위에 언급된 뭉치 회원의 진술에 의하면 경찰 단속 때 잠깐의 자유 시간동안 김기민 양은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걸려서 포주나 감시자에게 잡혀서, 민경미 양은 PC방에서 세이클럽으로 해당 내용을 보냈다가 포주나 감시자에게 잡혀서 감금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런 케이스라면 현재까지 감금당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긴 하지만 전술한 탈출 실패로 인해 무기력이 학습되어서 감금 상황이 아니어도 인근 지역에서 오랫동안 탈출하지 못했거나 탈출에 성공했더라도[10] 당사자 두 명 모두 이름을 바꿨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되는데 당시 행정이 현재보다 미비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상을 사용해서 행정이나 의료 업무를 봤을 가능성이 높은 데다[11] 이런 케이스를 겪은 여성들인 경우는 '가족에게 미안해서' 등의 이유로 연락하지 못한 채 이름을 변경하고 다른 사람처럼 살고 있을 가능성이 꽤 있기 때문이다.
3.1.1. 해외로 인신매매?
이 사건이 터진지 몇 년 뒤에 일어난 양산 여학생 실종 사건에서도 제기되었던 의견이다. 즉, 알고 보니 한국 성매매 조직이 아니라 해외 인신매매 조직과 연계되었고 이로 인해 일본, 중국 등 인근 국가로 팔려갔다는 설이다.사실 1990년대의 일이긴 하지만 경찰청 사람들에서도 유학원에서 여대생을 유인해서 해외로 팔아넘겼던 사례를 방영한 적이 있었기 때문애 이런 의견도 충분히 제기는 가능하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위의 가설보다 훨씬 더 발견 가능성이 희박한데 전자라면 인상착의 등을 보고 한국에서 찾을 수라도 있지 후자라면 해외로 넘어가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아래의 SOS를 감안하면 이럴 가능성도 그렇게 높지 않다. 실종 3개월 뒤에 메세지로나마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12]
3.1.2. 경찰의 부실대응, 실종자들의 SOS
사실 이 사건은 경찰[13]이 초동 대응만 잘 했어도 늦어도 2002년 봄이 오기 전까지는 해결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던 사건이다. 하지만 경찰 측은 4번의 천금같은 기회를 날리고 결국 장기 미제사건이 되어 버렸다.실종 여학생이 다음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실종자 중 한 명의 부모는 대구서부경찰서[14]에 수사 요청을 했지만 남녀불문하고 미성년자가 실종되면 집중수사하는 2020년대와 달리 당시 미성년자는 13세 미만이 아닌 이상 실종되더라도 집중수사 대상이 아니었고 해당 경찰서는 이 사건을 단순 가출로 단정짓고 수사를 하지 않았다.[15][16] 그래서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했고 담당 경찰관까지 배당되었지만 그 뿐이었다.
김 양과 민 양이 실종된 지 20일~25일 정도 됐을 무렵(12월 28일~1월 2일 사이) 김 양의 어머니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수화기 너머로 김 양이 다급하게 “엄마, 나 좀 살려줘! 살려줘!”라고 소리치면서 지금 부산역에 있다고 말한 후 끊어졌다. 전화를 받자마자 어머니는 부산역 인근 파출소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파출소 경찰은 여관이나 찾아보라는 식으로 일관하며 협조하지 않았다.[17]
2002년 3월경에는 실종 후 연락이 끊겼던 민 양이 세이클럽에 접속하여 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 왔다고 한다. “친구야, 무섭다. 나 좀 찾으러 와줘.”라는 메시지를 남기자마자 대화방을 나갔다.[18]
그렇게 두 차례의 짧은 구조 요청이 두 사람으로부터 온 마지막 연락이었다.
당시 실종자의 남자친구였던 남성에게 의문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자기를 실종자의 새 남자친구라고 소개하는 발신자는 통화로 해당 남성을 도발하였고 말싸움 끝에 직접 만나기로 하였으나 정작 발신자는 약속 장소였던 팔달시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남자친구는 상대방이 직접 팔달시장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근처에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동시에 사라졌고 직접 구조 요청을 했던 점과 생활반응도, 목격자도 없으나 아직까지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두 사람이 살아 있지만 돌아올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이로써 인신매매단의 납치설이 더욱 더 가능성이 높아졌다.
3.2. 단순가출설
15년 뒤에 터진 대전 여대생 실종 오인 사건처럼 단순가출 + 도피까지 같이 했다는 설. 당시에도 가출하는 청소년이 없지 않았고 심지어 모범생이어도 가출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다만 이런 경우라면 아래의 복합설이 아닌 이상 SOS 연락이 이뤄질 가능성이 없는 데다 이 사건이 단순 가출 사건이라면 길어봐야 2~3년 정도는 몰라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종 상태일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 않다.3.3. 복합설
단순가출로 시작했지만 인신매매에 휘말렸을 가능성도 더러 있다. 심지어 2016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의외로 생각해 봄직한 가설이다. 다만 위의 지인의 말을 조합하면 위의 단순가출설과 같이 가능성이 매우 낮다.4. 실종자 정보
아래 신상정보는 실종 당시를 기준으로 했으며 이 두 사람을 보셨거나 알고 계시다면 국번없이 182, 대구지방경찰청, 그것이 알고싶다 등에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
4.1. 김기민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김기민 Kim Gim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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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6년 3월 13일 (실종 당시 15세) |
신체 | 173cm |
가족 | 부모님 |
학력 |
대구죽전초등학교 (졸업) 원화여자중학교[19] (재학 중 실종) |
특징 | 한국방송연극영화예술원을 다녔음. |
시력이 낮아 렌즈 착용, 지문이 동그란 편, 계란형 얼굴 | |
실종 일시 및 장소 : 2001년 12월 8일, 대구 북부 정류장 | |
실종 당시 착의 : 검은색 긴바지, 가디건, 반지, 목걸이 |
4.2. 민경미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민경미 Min Kyungm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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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7년 2월 25일 (실종 당시 14세) |
신체 | 165cm, 48kg |
가족 | 할머니[20] |
학력 |
대구인지초등학교 (졸업) 대구여자중학교 (전학)[21] 신당여자중학교 (전학)[22] 평리여자중학교[23] (재학 중 실종) |
특징 | 눈이 나쁨, 안경 착용, 갸름한 얼굴형, 긴 머리 |
실종 일시 및 장소 : 2001년 12월 8일, 대구 북부 정류장 |
5. 둘러보기
[1]
다만 민경미는 빠른 생일이라 세는나이가 1살 적다.
[2]
주의: 다만 해당 지도의 기준이 2023년이기 때문에 당시의 교통 상황과는 많이 다른 것을 감안해야 한다.
[3]
몇몇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김기민 양과 매우 친했던 사이로
각그랜저나
다이너스티를 끌고 다녔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4]
텍사스거리나 완월동을 말한다.
[5]
성매매특별법에서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 피해자라고 언급한 이유가 바로 이런 사례들 때문이다. 참고로 2023년에도
피해자의 연령대만 다른 비슷한 사건이 터질 뻔 했고, 2024년엔
이 사건과 흡사한 사건이 터졌다., 차이점은 후자인 경우는 이 사건과 달리 집에 무사히 귀가를 했다는 점이지만.
[6]
충무동(부산) 문서의 여담 문단에 서술된 그 곳 맞다. 흔히 완월동이라고 불린다.
마산합포구에 있는 동명의 지역이 아니니 주의해야 된다.
[7]
충무동에서 부산역까지는 불과 차로 10여분 거리밖에 안 되며 도보 기준으로도 40~50분 정도 걸린다.
[8]
참고로
부산서부경찰서에서도 충무동까지 도보로 30여분, 차로 8~9분 거리 정도 밖에 안 걸린다. 위에서 언급된 활동가들의 증언과 당시 김 양의 어머니가 부산역 근처를 수색했는데 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과 당시 그알 채널에 예고편이 올라왔을 때 해당 영상의 댓글창에 2018년 즈음까지만 해도 완월동 등지에서 목격되었다는 목격담이 꽤 많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쪽에 있거나 있었을 가능성도 꽤 있다고 봐야 한다.
[9]
예고편에 나오는 실종자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이의 인터뷰 내용 중에 이런 멘트가 있다. ‘애들이 실종되고 15일 쯤 지났나? 전화가 걸려왔대요. ‘엄마 나 좀 살려줘’ 라고.’
[10]
실제로 426화에도 비슷한 나이 또래(17~18세) 정도의 여학생 둘이 티켓다방에서 탈출해서 둘이 함께 사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즉, 처음엔 무기력했을지라도 천운으로 탈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11]
특히 이는 미성년 시기에 인신매매 당한 케이스라면 더더욱 가능성이 높은데, 대한민국의 주민등록증 발급 나이는 지금이나 당시나 만 나이 기준으로 16세였기 때문이다.
[12]
물론 해외에서도 이런 연락이 가능하긴 하지만 당시는 지금보다도 인터넷 속도가 매우 느렸고 "나 좀 구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한 점 등을 감안하면 이럴 가능성도 극히 적다고 봐야 한다.
[13]
특히
부산동부경찰서와
대구서부경찰서
[14]
두 학생의 거주지나 북부정류장 모두 이쪽 관할이다.
[15]
사실 2020년대에는 청소년의 실종이 집중 수사 대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장기 미제로 흘러가는 일이 별로 없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아주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결코 집중 수사 대상이 아니었고 가출로 단정짓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렇게 해서 납치/살인 등임이 농후한데도 초동 대응에 실패한 사례만 해도 수십 수백 가지가 되었으며 이 중에서
나무위키에 개별 문서가 등재된 사건만 해도
정유리 실종 사건,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송혜희 실종 사건, 그리고 이 사건이 있다.
[16]
물론 대구서부경찰서 측도 변명할 건덕지가 없지는 않다. 당시 CCTV가 전국에 보급되기 이전이어서 자세한 위치를 찾기 어려운 것도 있거니와 전날인 12월 7일에
대구 총포사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해당 사건에 수사 인력이 몰려 버린 것도 있었다. 물론 후술하겠지만 이것도 참작 사유가 될 뿐, 결코 대구서부경찰서의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즉 까여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17]
어찌보면 이게 사실상 결정적으로 이 사건이 장기미제가 된 이유이기도 한데 설령 대구서부경찰서 측에서 단순 가출사건으로 여겨서 초동 대응에 실패했더라도 당시 CCTV의 보급이 미진했던 데다 전술했다시피 비슷한 시기에
대구 총포사 살인 사건에 역량이 쏠렸다는 참작 사유가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구서부경찰서 측에서 초동 대응에 실패했더라도 해당 파출소를 관할하는
부산동부경찰서 측에서 인근의 사창가(
부산역 부근 혹은 완월동)만 뒤졌어도 늦어도 2002년 봄이 되기 전엔 해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18]
물론 현재와 달리 당시엔 인터넷 관련 수사의 정확도가 충분히 보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IP를 잡았다고 해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앞에 쌓인 경찰의 병크가 워낙 많은지라 경찰측에선 할 말이 없지만.
[19]
現
원화중학교. 1999년 입학하였다.
[20]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댁에서 지냈다고 한다.
[21]
現
대구일중학교. 1999년 입학하였고 2000년 전학하였다.
[22]
現
신당중학교. 2000년 입학하였고 2001년 전학하였다.
[23]
現
대평중학교. 2001년 입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