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15:05:54

놀란 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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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라이언 재키 로빈슨 지미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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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스캇 놀란 라이언 돈 윌슨 재키 로빈슨 래리 디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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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벨트레 놀란 라이언 재키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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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그리치 짐 프레고시 돈 베일러 로드 커류 놀란 라이언
지미 리즈 브라이언 다우닝 척 핀리 진 오트리 2002 에인절스
바비 커눕 딘 챈스 팀 새먼 마이크 위트 개럿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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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엘스턴 밀로 해밀턴 조 모건 조 니크로 셰인 레이놀즈
J.R. 리차드 놀란 라이언 마이크 스캇 짐 움브리히트 돈 윌슨
지미 윈 랜스 버크먼 세자르 세데뇨 로이 호핀츠 로이 오스왈트
빌리 와그너 밥 왓슨 테리 풀 탈 스미스 빌 브라운
빌 도란 르네 카데나스 켄 캐미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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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허프 자니 오츠 놀란 라이언 짐 선드버그 버디 벨
퍼기 젠킨스 톰 반더그리프 마크 홀츠 존 웨틀랜드 러스티 그리어
토비 하라 루벤 시에라 톰 그리브 케니 로저스 에릭 나델
이반 로드리게스 톰 셰퍼 후안 곤잘레스 제프 러셀 마이클 영
조시 해밀턴 리차드 그린 아드리안 벨트레 척 모건 이안 킨슬러
존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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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Ryan%20Nolan%20Plaque_NBL.png
놀란 라이언
헌액 연도 1999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8.79% (1회)

놀란 라이언의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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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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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놀란 라이언
Nolan Ryan
포지션 투수
득표수 992,040 }}}

파일:1969메츠우승로고.gif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69

보유 기록
통산 최다 탈삼진 5,714개
통산 최다 볼넷 2,795개
통산 최다 노히트 노런 7회
통산 최저 피안타율 0.204
9이닝당 최소 피안타 6.56개[1]
최다 300+ 탈삼진 시즌 6회[2]
최다 볼넷왕 시즌 8회
통산 최다 도루 허용 629회
}}} ||
}}} ||
파일:tripleryan.jpg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No.30 휴스턴 애스트로스 No.34 텍사스 레인저스 No.34
린 놀란 라이언 주니어
Lynn Nolan Ryan Jr.
<colbgcolor=#003278> 출생 1947년 1월 31일 ([age(1947-01-31)]세)
텍사스 주 리퓨지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앨빈 고등학교
신체 188cm / 88.5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종교 개신교( 감리교)[3]
프로 입단 1965년 드래프트 12라운드 (전체 226번 / NYM)
소속팀 뉴욕 메츠 (1966~1971)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72~1979)
휴스턴 애스트로스 (1980~1988)
텍사스 레인저스 (1989~1993)
프런트 텍사스 레인저스 사장 (2008)
텍사스 레인저스 공동구단주 (2010~2013)
기록 2회 무결점 이닝 (1968.4.19.[4], 1972.7.9.[5]),
7회 노히트 노런 (1973.5.15., 1973.7.15., 1974.9.28., 1975.6.1., 1981.9.26., 1990.6.11., 1991.5.1.)[6]
1. 개요2. 놀란 라이언이 남긴 기록
2.1. 놀란 라이언 이상의 장수 사례들
3. 선수 시절
3.1. 초인적인 체력과 내구력
4. 명예의 전당 입성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은퇴 이후6. 피칭 스타일 및 평가
6.1. BABIP 컨트롤 능력6.2. 낮은 BABIP에도 불구하고 FIP보다 ERA가 높음6.3. 뉴스쿨 투구폼의 아버지
7. 가족 관계8. 연도별 성적9. 여담10. 어록1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텍사스 레인저스의 공동 구단주 겸 사장, 현 사업가.

선수 시절 보직은 투수였다. 파이어볼러, 탈삼진 머신, 이닝이터, 금강불괴를 언급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꼽히는 투수 중 한 명이다.

2. 놀란 라이언이 남긴 기록

통산 성적은 324승 292패, 평균자책점 3.19이며, 특히 삼진은 무려 5714개로 압도적인 통산 1위. 리키 헨더슨의 통산 도루와 함께 사실상 경신이 불가능한 기록이다. 2위인 랜디 존슨의 기록(4875개)보다 900개 가량 많다. 이 엄청난 누적 수치의 삼진의 비결은 놀란 라이언의 롱런으로, 놀란 라이언은 27년 동안 메이저 리그에서 뛰면서 연 평균 211.6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그가 선수 생활 동안 기록한 5714개의 삼진은 1년에 300K씩을 잡아대도 19년을 던져야 세울 수 있는 기록으로, 시즌 300K는 2002년 랜디 존슨이 기록한 이후 2015년 클레이튼 커쇼가 기록하기까지 13년이나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200K씩 잡아내면 28년하고도 반 시즌이 더 걸리고, 최근 탈삼진왕들이 잡아내는 정도인 250K로는 23번째 시즌 말미에나 가까이 갈 수 있다. 후술하겠지만 그의 5000K 희생자는 1989년 8월 22일 경기에서의 리키 헨더슨이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3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그처럼 5000K에 도달한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지금까지 단 한명도 없었다.

다만 제구력은 그렇게까지 좋지 않았던 선수였다보니, 통산 볼넷도 무려 2795개로 압도적인 1위이다. 이 역시 2위 스티브 칼튼의 1833개를 900개 넘는 격차로 이기는, 경신이 불가능한 기록이다. 물론 이 역시 라이언이 롱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파일:ryan7th.jpg
1991년 5월 1일, 통산 7번째 노히트 노런 달성 모습[7][8]

통산 fWAR는 역대 6위인 106.74로 1위는 로저 클레멘스, 2위는 사이 영, 3위 월터 존슨, 4위 그렉 매덕스, 5위 랜디 존슨이다. 클레멘스는 라이브볼 시대에 무려 133.7이라는 넘사벽 수치를 찍었지만 금지약물을 복용했고, 사이 영과 월터 존슨은 라이언보다 확연히 위대하다고 볼 수 있지만 데드볼 시대 투수이다. 즉 fWAR로 볼 때, 현대 야구 최고의 투수들로 평가받는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과 정상으로 평가받는다. 반대로 얘기하면 93년도 라이언의 은퇴시점에서 기록은 사이 영과 월터 존슨 다음이었다는 얘기이다. bWAR은 역대 20위. ERA보다 FIP가 0.3이나 낮게 나와서 bWAR과 fWAR의 괴리가 매우 큰 편이다. 메이저리그 Elo 레이팅 1911 - 33위. 로저 클레멘스,아모스 루이스와 공동 33위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득표율 역시 98.79%로 전체 4위, 투수 3위인데 그렉 매덕스나 랜디 존슨도 이 기록을 깨지 못했다.[9]

1960년대에 데뷔한 선발 투수가 오늘날의 특급 불펜 투수들을 능가하는 구속을 유지하며 1990년대까지 무려 27년[10]이나 현역으로 뛰었다. 최근 메이저리그 추세에 따라 선발투수들의 평균구속도 계속 오르고 이에 따라 이닝소화도 과거보다 떨어지는 추세에서 강속구 투수들이 너도나도 할 거 없이 몇 년 못가고 수술대에 오르고 IL에 가는데, 데드볼 시대도 아니고 라이브볼 시대에 구속, 구위, 이닝소화 어느것도 놓치지 않고 27년동안 압도적 정상에 군림한 선발 파이어볼러 라이언은 현 시대에 저스틴 벌랜더[11]가 있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상으로는 놀란 라이언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야구 역사상 최고의 금강불괴 중 한 명이다.

라이브볼 시대 선수 중 통산이닝 2위, 메이저리그 역대 5위이다. 1, 2, 3위는 19세기말과 데드볼 시대의 레전드 사이 영, 퍼드 갤빈, 월터 존슨이고, 4위이자 라이브볼 시대 1위는 너클볼의 황제 필 니크로.[12] 통산 역대 최저 9이닝당 피안타수[]6.6 그의 커리어가 27년임을 생각하면 정말로 엄청난 기록이다. 현대의 최강 투수로 뽑히는 페드로가 통산 7.1이다. 물론 그는 타고투저 시대를 통과했고 라이언은 전형적인 투고타저 시대에 뛰었긴 하지만 놀란의 이닝 이팅이 페드로의 2배에 가까운 것을 감안한다면…]역대 최저 피안타율[14]2할4리이다. 2위는 2할5리의 샌디 쿠팩스이지만 샌디 쿠팩스는 2300이닝을 조금 넘긴 것에 비해 놀란 라이언은 5300이닝을 훌쩍 넘게 던졌다. 3천 이닝이 넘는 어마어마한 커리어 차이이다. 그런데도 피안타율이 더 낮다.], 노히트 노런 7번[]당연히 역대 최고 기록. 2위인 샌디 코팩스가 4번. 메이저리그 전체를 두고도 2위와 기록 차이가 이렇게 큰 경우는 드물다.] 등 각종 누적 기록 최상위 랭킹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16] 은퇴 시 나이는 한국 나이로 불혹을 훨씬 넘겨 지천명을 바라보는 47세로 메이저리그 선수 기준으로 역대급으로 늦은 나이까지 현역으로 뛴 것인데도 1993년 9월 22일, 46세가 된 라이언의 마지막 투구는 자그마치 158km였다.[17] 그리고 이 공을 던진 직후, 팔에서 펑 터지는 느낌을 받았던 놀란 라이언은 그렇게 경기 중 은퇴를 선언해버리며 역사적인 27년의 커리어를 마감했다.

라이언은 실제로도 거의 은퇴 시점까지도 시속 강속구를 꾸준히 던졌으며 이는 현대 야구에서도 매우 빠른 정도인데, 라이언이 활동하던 시대의 야구판에서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 영 상은 한 번도 없는데, 사실 그 때엔 이닝이팅 및 탈삼진 능력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승리와 ERA가 중요했는데, 이닝이팅과 탈삼진이 압도적이었지만 실점과 자책점이 매우 적은 타입은 아니었고 유난히 패배가 많았던 라이언에게 악조건이 있었고, 또한 그가 뛰었던 팀들이 전부 약팀이었던 것도 한 몫 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아래에도 나와있듯이 불안한 제구력으로 인해 그가 당시 어떠한 팀의 에이스들보다 이름값이나 성적이 좋았음에도 제구력이 좋지 못한 투수라고 낙인찍혀 사이 영 상을 못 받은 것이 크다. 물론 제이콥 디그롬같이 승수가 적어도 승리기여도 및 탈삼진 수가 높으면 상을 주는 현재였으면 받았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전적으로 구시대적 관점 때문이라고만 보긴 힘들다. 라이언이 잘한 시즌에는 언제나 라이언보다 잘하거나 라이언만큼 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예시로 라이언이 2위를 한 1973년 AL 1위는 296.1이닝-22승-평균자책점왕(2.40)의 짐 파머였는데 라이언은 326이닝-21승-2.87-탈삼진왕이었다.[18] 지금 라이언의 기록들을 본다면 라이언의 완투와 이닝 기록들이 독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저 시대에는 라이언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이닝/완투를 소화한 선수들이 있었고 그 선수들이 평균자책점-다승에서 앞섰기에 라이언이 아닌 그들이 1인자로 인정 받은 것이다. 그들의 통산 이닝/완투 기록은 라이언에 미치지 못할 것이나 단일 시즌을 기준으로 보면 라이언의 통산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2.1. 놀란 라이언 이상의 장수 사례들

물론 놀란 라이언보다 더 많은 나이까지 오래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기록도 종종 있지만, 그들 모두가 역사에 남을 대선수로 기록될 정도는 아니었다. 마이너리그 경력이 중간중간 많던지 해서 대체로 라이언의 누적성적에 비교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 유명 선수들 중 놀란 라이언 이상의 장수만세 사례로 인정받는 선수가 두 명이 있는데, 첫 번째는 라이언 은퇴 나이보다 2살 더 먹고 은퇴한 메이저리그 사상 최강의 너클볼러 필 니크로다. 이 경우도 라이언 이상이라고 하기는 애매한 게 니크로는 20대 후반까지 10년 가까운 오랜 기간 마이너리그에 있었던 후보급 선수 출신이어서 라이언보다 메이저리그 주전생활 기간이 오히려 꽤 부족하다. 한국나이 22살부터 주전생활이 시작되어 26살부터 규정이닝을 채웠던 라이언에 비해 니크로는 10년 가까운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한국나이 29살이 되어서야 겨우 주전이 되고, 이후 비로소 명성을 얻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관절에 가는 부담의 차이를 고려해도 너클볼 전문보다 강속구 전문으로 선수 생명을 지속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건 누구나 아는 사실. 탈삼진, 평균자책점, 다승 등 대부분의 기록도 놀란 라이언이 조금씩은 다 앞선다. 그러나 필 니크로가 말년에 꾸준한 성적으로 라이언의 메이저리그 통산 소화이닝을 20이닝 정도 넘은 것도 사실이고, 더 많은 나이까지 메이저리그 선수로 버텼기에 이론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까지는 아니다. 투수 WAR의 경우 니크로는 97bWAR/78.1fWAR이고 라이언은 83.6bWAR/106.7fWAR.

두 번째는 제이미 모이어이다. 모이어는 성적에서는 놀란 라이언이나 그 다음으로 언급되는 필 니크로와는 비교가 되지 않으나 그래도 그 근성과 철저한 관리는 50대가 되도록 메이저리그에 있게 한 힘이었다.

그 외에 사첼 페이지가 있다. 페이지는 MLB에서 활동한 기간은 놀란 라이언이나 그 다음으로 언급되는 필 니크로, 심지어 제이미 모이어와도 비교가 되지 않으나 이건 그의 전성기가 하필이면 MLB가 흑인 선수들을 받아들이지 않던 시절이라 그렇고 니그로리그에서 수많은 전설을 쌓았던 미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다.

3. 선수 시절

파일:external/cdn.bleacherreport.net/12.10_display_image.jpg
데뷔 초기 뉴욕 메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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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말년을 보낸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1966년 뉴욕 메츠에서부터 시작하여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은퇴하였다. 올스타에 8번 선정되기도 했다. 당연히 1999년 쿠퍼스타운에 입성했다. 레인저스, 애스트로스의 34번이 그의 영구결번이며, 에인절스의 30번도 영구결번되었다.[19] 무려 세 팀이 라이언을 기념해 결번하였는데, 재키 로빈슨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구단에서 영구결번된 선수로 기록되었다.[20] 눈물나는 사실은, 데뷔 3년차의 별볼일 없던 5선발 시절인 1969년 어메이징 메츠의 첫 우승이후, 단 한번도 월드시리즈에서 던져본 적이 없다는 것.[21] 확장 프랜차이즈 초기의 신생팀이었던 에인절스, 애스트로스, 레인저스 등을 돌아다니며 역투했지만 디비전 우승을 하면 리그 챔피언쉽에서 번번이 눈물을 마셨고 때문에 은퇴때까지 다시는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3.1. 초인적인 체력과 내구력

메이저리그 투수 중 데드 볼 시대 최고의 금강불괴가 사이 영이라면 라이브볼 시대는 단연 놀란 라이언이라고 할 수 있다.[22]
  • 1972년부터 7시즌 중 6시즌이나 탈삼진 볼넷 1위를 동시에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통산 기록 또한 탈삼진 5714개, 볼넷 2795개로 둘 다 역대 1위다. 라이언의 통산 9이닝당 평균 피안타 개수가 겨우 6.55[23]였으니, 대부분의 타자들을 삼진이나 사사구로만 처리한 셈이다. 오늘날에 삼진, 볼넷 둘 다 높은 투수라면 투구수 제한에 걸려서 5이닝 정도가 한계지만, 당시엔 딱히 그런 제한이 없었던 시대였다. 라이언은 경기당 140-150구씩 던진 다음에 3일씩 쉬고 다시 등판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커리어 내내 평균 구속이 95마일 이상이였으니 정말로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 30대 중반을 기점으로 이닝당 볼넷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구위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40세가 되는 시즌부터 탈삼진왕 4번, K/9 1위를 40세부터 44세까지 5년 연속으로 기록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보여주었다.
  • MLB에서 공식적으로 투구수 기록을 하기 시작한게 1988년인데, 1989년에 42세의 놀란 라이언의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127구, MLB 1위였다. 오늘날 금강불괴라고 불리는 저스틴 벌랜더의 2012년 (당시 29세) 기록이 114구를 훨씬 앞서는 기록이다. 출처.
  • 1974년 6월 14일, 당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소속 놀란 라이언은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13이닝 동안 235구를 던졌다. 그날 경기결과 경기는 15이닝까지 가서 에인절스의 승리로 끝났고, 라이언보다 더 고생했던건 상대팀 투수 루이스 티안트인데, 무려 14.1이닝을 던지고 완투패를 당하고 말았다. 라이언은 그날 13이닝, 19 삼진을 잡았고, 이중에서 레드삭스 1루수 세실 쿠퍼는 6번이나 삼진당했다.[24] 경기 후 3일의 휴식을 취한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6이닝을 던졌고, 이어지는 6월 22일, 27일, 7월 1일 경기에는 3번의 완투(완봉 한번)를 했다. 그해 소화 이닝이 332.2이닝으로 그의 커리어 하이였다.[25]
  • MLB 역사상 유일하게 19삼진 경기가 3번 있다. 모두 연장전 경기.
  • MLB 최장 출전 시즌 기록인 27시즌을 현역으로 뛰었다.[26] 더군다나 놀란 라이언은 선발 투수, 그것도 가장 몸에 무리가 가는 유형의 파이어볼러였는데도 던진 이닝 수가 5386이닝으로 역대 5위다.
  • 1986년에 리그에서 6번째로 나이가 많은 선수였고 1990년부터 1993년까지 4년간 리그 최고령 선수였다.
  • 한 경기당 소화 이닝이 7이닝에 육박한다.
  • 1986년 팔꿈치 통증을 느꼈고 의사가 토미존 수술을 제안했지만 이제 곧 40살인데 수술하고 15~18개월동안 재활 거쳐서 복귀할 자신이 없다며 그냥 참기로 했더니 얼마 후 갑자기 통증이 사라지고 그 후로 7시즌을 더 뛰고 은퇴했다. 출처

4. 명예의 전당 입성

연도 득표율(%)
1999 98.8
파일:external/www.dallasnews.com/BBO-BASEBALL_HALL_OF_FAME-INDUCTEES_3134228.jpg 파일:external/www.smackbomb.com/hofplaque.jpg
좌측에서 올란도 세페다[27], 로빈 욘트, 놀란 라이언, 조지 브렛 동판
1999년 98.79%의 득표율로 첫해에 여유롭게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라이언의 득표율은 입성 당시 전체 1위인 톰 시버의 득표율 98.84%와는 단 0.05%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기록이다. 비록 커리어는 가장 짧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고향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모자를 쓰고 입성했다.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놀란 라이언 84 254 256 56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31st)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놀란 라이언 81.8 43.3 62.6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5.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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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후 마이너리그 팀 구단주도 하고, 2008년에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사장에 취임했으며 2010년엔 파산위기에 직면한 텍사스 레인저스를 척 그린버그와 공동 매입해 레인저스의 구단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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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2010년 10월 30일, 월드시리즈에서 환갑을 넘긴 라이언이 시구를 했는데 구속은 무려 130km 이상이었다. 그리 힘들이고 던지지도 않았으니 몸 좀 풀고 전력 투구하면 아직도 145가 나올지 모른다. 참고로 대한민국 현역 프로 투수들의 평균 직구 구속이 141~142km/h를 넘나든다. 이 거 어느 분 시구에서 본 거 같은데 유희관, 의문의 1패 사회인 야구를 뛰었으면 사기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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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5일 ALCS 1차전 시구 영상, 당시 만 63세의 고령에다 면바지 + 벨트의 조합이었음에도 86마일(138km/h)이 나왔다(...)

올드스쿨에 충실하고 훈련량이 상상을 초월했던 연습벌레답게,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가 되면서 자신의 투구 철학을 적극적으로 소속 선수들에게 지도했다. 그 효과인지 현재의 텍사스 레인저스는 과거 1990년대 막장 선발진이 아닌 준수한 5인 선발로테이션을 갖춘 밸런스가 좋은 팀으로 거듭났고 2010년, 2011년 2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우승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전부 다 월드시리즈 준우승이라는 것.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 보고 2013년 10월 17일 CEO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2014년부터는 아들이 일하고 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자문 역할로 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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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소고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홈페이지 예전부터 라이언은 소고기를 무지 좋아하는 걸로 유명했는데 은퇴 이후에는 아예 소고기 사업을 시작했다. 심지어 소고기를 활용한 레시피 북도 출간했다.

사업용 페이스북 페이지도 있는데 틈틈히 자신의 현역시절 사진을 #tbt라는 태그와 함께 올리신다.

6. 피칭 스타일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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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평균 95마일의 패스트볼로 삼진을 잡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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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세에 패스트볼로 선수생활 마지막 삼진을 잡는 모습[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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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마일 파워커브

그의 나이 45세 때의 인터뷰(한글 번역, 35초부터):
"어떻게 이렇게 노화하지 않는거죠? 비결이 뭐죠?"
"저도 비결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도대체 어떻게 당신 나이에 95마일을 던지는거죠?"
"(웃으면서) 비결같은 거 없어요. 저도 몰라요.'

야구 역사상 최고의 파이어볼러이자 가장 극단적인 파워 피처이다. 정통파 올드스쿨 파워피쳐답게 27년의 긴 선수 생활 동안 쓰리피치를 한결같이 고수했으며, 그 대신 공 하나하나의 위력이 압도적이었다. 평균 시속 90마일대 후반의 파괴적인 포심 패스트볼과 최고 89마일까지 나오는 파워 커브, 그리고 85마일 언저리의 서클 체인지업을 던졌다.

라이언의 패스트볼은 라이언이 은퇴한지 30년이 지난 2020년대에 와서도 야구 역사상 최고의 패스트볼 중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로 위력적인 구종이다. 라이언의 패스트볼을 설명하기 위해선 MLB의 구속 측정 방식의 변화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데 라이언이 현역시절이던 70-80년대는 2020년대에 쓰는 스탯캐스트는 물론이거니와 2006년부터 도입되었었던 스탯캐스트의 전 단계인 PITCHf/x도 도입되기 전의 시대였다. 그리고 Pitch f/x 도입 시기당시 구속변화에 대해선 설왕설래가 오가고있지만 적어도 스탯캐스트을 도입한 2020년대 이후론 구속 측정위치의 변화로 인해 투수의 구속이 올랐다는 사실에 대해선 대부분 인정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저러한 변화를 겪기 전의 시대에서 90마일 후반대를 뿌린 라이언의 패스트볼은 현재 측정 기준으로는 월등히 빨랐을 것으로 추정되며 몇몇 호사가들은 스탯캐스트 측정방식으로 저 당시 라이언의 패스트볼을 측정하면 최고 108마일(173.8km)이 나온다는 의견도 있다.[29]
어쨌든 본론으로 들어가서 패스트볼의 구속인 평속 90마일대 중반~최고속도 100마일은 지금도 충분히 빠른 구속인데, 라이언이 70~80년대 주로 활동했던 투수임을 고려하면 모든 투수를 통틀어서 시대 대비 압도적 최고의 구위[30]를 자랑했는데, 구속도 구속이었지만 포수 좌측으로 크게 꺾이는 수평 무브먼트가 특징이었다. 출처 1 출처 2 심지어 나이가 40대 중반에 다다랐을 때에도 90마일대 중반을 밥먹듯이 던졌다.[31]

변화구의 경우 라이언의 파워커브는 일반적인 커브와 달리 손목을 심하게 비트는 동작이 없어 롱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낙차가 커서 헛스윙을 매우 잘 이끌어 내는 결정구였다. 구속도 90마일에 근접해 패스트볼 못지않게 위력적인 구종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투구폼과 릴리스 포인트가 매우 일정했는데, 영상을 보면 스트존에 떨어지는 변화구와 얼굴로 향하는 위협구를 타자들이 혼동할 정도였다. 출처: 33초 부분 더욱 놀라운 것은 홈플레이트 근처에 가서나 공이 꺾였다는 것.

통산 5위에 해당하는 5,386이닝을 던질 정도로 내구력과 체력은 주무기인 패스트볼과 더불어 야구 역대 최강 중 하나였다. 1980년에서 1988년 사이 라이언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8회(94.6마일)가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이 9회(94.5마일)였다. 특히 라이언은 마흔이 넘은 후에도 95마일 이상의 강속구를 뿌렸는데, 이러한 전설적인 꾸준함 덕분에 나이 40이 넘어서도 200이닝을 던지고 노히트 노런을 기록할 수 있었으며, 압도적인 통산 삼진 기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줬다.

라이언의 압도적인 구위의 패스트볼과 롱런의 기반은 단순히 체력과 강한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32] 강한 키킹 동작부터 피칭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허리와 다리의 유연성과 내구성이 그의 파이어볼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키킹 높이가 필수적으로 높은 그의 투구 동작은 허리에 보통 무리가 많이 가는 편에 속하지만 그것을 버텨냈다는 것은 내구성과 유연성을 모두 갖췄다는 증거다. 라이언 이후 수많은 파워피처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야구 전문가들이 놀란 라이언처럼 20년 넘게 롱런하면서 힘이 유지되는 강속구 투수가 다시 나오기 힘들다고들 평가하는 것은 라이언 수준으로 탁월한 유연성과 내구성, 강한 어깨의 힘을 모두 가진 선수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파워피처 대부분이 10년 이상 선수 생활하면서 나이를 먹으면 어느 순간부터 구속과 구위가 급속히 떨어지며 컨트롤 위주로 투구 패턴을 바꾼다.[33] 라이언처럼 무려 20년 이상 리그 최강급의 구위를 변함 없이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롱런하는 파이어볼러들은 신장을 비롯한 전체적인 체구가 큰 경우가 많은데,[34], 라이언은 당대에도 선발 투수 평균 수준, 현재의 잭 그레인키와 비슷한 체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의 파이어볼러이자 역대 최고의 금강불괴 중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탁월한 재능과 더불어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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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파 우완 파이어볼러의 상징답게 당대 근성의 상징이었다. 2회에 턱에 타구를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7회까지 투구를 계속하던 모습은 장엄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그러나 이러한 구위에도 불구하고 사이 영 상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으며, 73년 2위, 74년 3위, 77년 3위에 들은 것이 최고 기록인 전형적인 콩라인 에이스였다. 당대에 짐 파머, 캣피시 헌터 등 뛰어난 에이스 투수가 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통산 볼넷이 9이닝 당 4.71개로 제구력이 불안한 편이었다.[35] 또한 그가 소속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텍사스 레인저스는 밑바닥 성적을 계속 찍었기 때문에 아무리 2점대 후반 평균자책점을 기록해도 승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패가 쌓였다. 사이 영 상을 못탄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아무리 잘 던져도 꾸준히 쌓이는 패배 때문이었다.[36] 특히나 가장 불운했던 시즌은 41세 시즌인 1987년인데, 당시 라이언은 211이닝을 던져 ERA 2.76, 270 탈삼진으로 평균자책점, 탈삼진 2관왕에 올랐지만 무려 8승 16패를 기록했다.[37] 통산 성적에선 전설의 사이 영 퍼드 갤빈[38] 다음으로 가장 많은 패배 (292패)를 기록하였다. 실제로 팀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기록으로 10K 이상 완투패가 무려 통산 27회로 압도적 1위다. 그래도 무려 27시즌이나 현역으로 뛰면서 21시즌을 10승 이상 기록했고 20승 이상은 두 번이다. 그것만 봐도 라이언의 경기운영이 절대로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46살까지 현역으로 뛰는 자기관리만 봐도 보통 투수는 아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공은 98마일짜리 강속구인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39]


1989년 8월 22일, 통산 5,000번째 탈삼진 동영상. 상대팀은 당시 호세 칸세코, 마크 맥과이어의 강타선을 보유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오클랜드 어슬래틱스였고, 5,000번째 탈삼진의 제물이 된 인물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리드오프이자 대도 리키 헨더슨이었다. [40]



1991년의 7번째 노히트게임 영상.[41] 이때 나이가 무려 44세이다. 전성기보다 속구의 위력이 줄어서 주로 커브로 결정을 짓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위력 떨어진 속구의 구위가 영상으로 보는걸로도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1. BABIP 컨트롤 능력

통산 6번의 300+ 탈삼진 시즌에, 11번의 최다탈삼진 타이틀을 갖고 있는 투수이면서도, 맞춰 잡는 능력도 그 못지 않게 뛰어났던 선수. 톰 글래빈과 함께 BABIP를 컨트롤 할 수 있었던 투수로 평가 받는데,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것도 있지만, 압도적인 구위 덕분이었다.

놀란 라이언의 커리어를 보면, BABIP가 리그 평균에 비해 꾸준히 낮게 나오며, 그의 커리어에서 리그 평균을 넘긴적은 총 4번인데 그 중 2번은 그의 데뷔 첫해와 은퇴하기 전 해이며 나머지 두번은 각각 리그 평균보다 0.003,0.001 높았을 뿐이었다. 그의 통산 BABIP는 0.265이며 가장 낮은 해인 91년에는 0.230을 마크했다. 91년 리그 평균 BABIP가 0.305 였다. BABIP를 통제 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 선수인 톰 글래빈이 커리어 통산 0.280이다.

보통 소화 이닝 수가 길면 길수록 수치가 안좋아지고, 때문에 마무리 투수들이 선발 투수보다 수치가 좋게 나온다. 트레버 호프만, 마리아노 리베라는 0.263을 마크 했다.

이러한 맞춰잡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파이어볼러 임에도 27년간 단 한번의 부상도 없이 롱런했으며, 라이브볼 시대 2위인 5386이닝을 소화[42]하며, 통산 7회라는 압도적인 수치의 노히트노런[43], 역대 최저 9이닝당 피안타 갯수, 최다 1피안타 경기 타이기록(18회), 최다 2피안타 경기(13회)를 기록했다.

6.2. 낮은 BABIP에도 불구하고 FIP보다 ERA가 높음

라이언은 매우 낮은 BABIP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언의 통산 ERA FIP에 비해 높은 편인데, 그 이유는 FIP가 놓치는 부분인 투구 외의 부분이 상대적으로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라이언의 투수 수비력은 역대 최악을 논할 정도로 나빴었다. 2차대전 이후 5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최다 실책(90개), 최저 필딩율(.895)기록자이다. 또한 2차대전 이후 최다 폭투(277개)를 기록했으며, 통산 757개의 도루를 허용할 정도로 일단 출루시키면 도루를 자주 허용했다. 도루 저지율은 25%에 불과하다. 그리고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의 피 OPS가 주자가 없을 때에 비해 11.7% 높다.

즉 라이언은 역대 최고의 안타 억제 능력을 가졌지만 수비력 면은 좋지 못했다. 물론 최다 실책, 폭투, 도루허용 같은 경우 누적기록이기 때문에 27시즌이나 활동한 라이언이 나쁠 수 밖에 없긴 하지만.

라이언의 경우 워낙 오랜기간 활동했기 때문에 현대 투수로 오해할 수 있으나 사실 라이언은 60년대 말에 데뷔한 투수 분업화 이전의 투수다. 이 시절 에이스들에 대한 혹사는 극심하여 200이닝은 물론이고 300이닝 이상, 40경기를 선발 등판한 경우도 많았다. 당연히 투구 수 관리도 되지 않았다. 일례로 1974년 6월 14일 경기에서 라이언은 무려 235구를 던졌다. 때문에 철저한 투구 수 관리와 체계화된 불펜진의 지원을 받는 현대 투수들과 달리 경기내적 요소 전반이 현대 투수들과 비교되기 어려우며 현대 투수들을 기준으로 라이언의 수비력 등이 평가되기도 어렵다. 27시즌, 5000이닝을 뛴 선수가 고작 90개 정도의 통산 실책[44]을 범했다는 이유로 수비력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수비 기회까지 포함한 수비율이 90%도 안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라이언의 수비는 좋게 평가하긴 힘들다.

이러한 아웃라이어들은 1945년부터 1980년대 말 투수분업화가 자리를 완전히 잡을 때까지 많은 수가 나타났으며 라이언 정도의 괴리를 보여주는 인물로는 워렌 스판이 있다. 이러한 괴리의 원인을 정확히 알기는 힘들며 결과만 가지고 평가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6.3. 뉴스쿨 투구폼의 아버지

놀란 라이언은 삼진 등의 기록만으로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다. 야구의 역사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는데 바로 새로운 투수의 피칭 매커니즘, 즉 현대의 뉴스쿨 투구폼이 탄생하는데 지대한 족적을 남겼다.

80년대 말 데드암 증상을 겪던 놀란 라이언은 투수코치 톰 하우스와 만나 새로운 투구폼으로 변화했는데 이것이 과거 올드스쿨 투구폼에서 현대의 뉴스쿨 투구폼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계기가 된다. 라이언은 부활에 성공했고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노히터, 역대 최다 삼진 등 그의 누적기록들에 원동력이 됐다.

과거 올드스쿨 투수들이 웨이트보다 유산소 위주의 훈련을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체중 증가에 따라 체력 소모가 극심하고 밸런스가 무너진다는데 있다. 반면 관절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덜해서 과거 에이스 투수들이 한 경기에 200구 이상의 투구, 300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것이 가능했다.[45] 그래서 대부분 투수들의 은퇴는 노화(혹은 혹사)에 따른 체력저하 때문에 구속이 감소해서 였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2010년대에도 올드스쿨 투구폼을 유지하던 펠릭스 에르난데즈의 케이스다.[46][47]

반면 뉴스쿨은 구속이 증가한 대신 관절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졌다.현대 투수들이 과거 투수들과 달리 막대한 이닝이팅이 불가능해진 것 역시 여기에 근원한다.
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메이저리그의 구속혁명은 이러한 피칭 매커니즘의 변화에 그 원인이 있고 이는 메이저리그에 큰 변화를 일으켰는데 바로 90년대 투수분업화가 급격히 이뤄진 이유 중 하나가 뉴스쿨 투구폼의 도입이다.

이렇듯 이러한 변화의 결정적 전환점이자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놀란 라이언이다. 그의 도움을 받은 랜디 존슨이 각성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7. 가족 관계

  • 린 놀런 라이언 (부)
    • 쥬디 라이언 (첫째 누이)
    • 린다 라이언 (둘째 누이)
    • 매리 루 라이언 (셋째 누이)
    • 진 라이언 (넷째 누이)
    • 로버트 라이언 (형)
  • 마르타 리 행콕 (모)

8. 연도별 성적

파일:MLB 로고.svg 놀란 라이언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66 NYM 2 0 1 0 0 3 15.00 5 1 3 0 6 2.667 28 -0.1 -0.2
1967 메이저 기록 없음
1968 21 6 9 0 0 134 3.09 93 12 75 4 133 1.254 98 0.5 0.9
1969 25 6 3 1 1 89⅓ 3.53 60 3 53 1 92 1.265 104 1.5 0.5
1970 27 7 11 1 0 131⅔ 3.42 86 10 97 4 125 1.390 118 1.0 1.5
1971 30 10 14 0 0 152 3.97 125 8 116 15 137 1.586 86 0.5 -0.3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72 CAL 39 19 16 0 0 284 2.28 166 14 157 10 329 1.137 128 5.4 6.4
1973 41 21 16 1 0 326 2.87 238 18 162 7 383 1.227 123 8.7 7.7
1974 42 22 16 0 0 332⅔ 2.89 221 18 202 9 367 1.272 118 6.3 5.9
1975 28 14 12 0 0 198 3.45 152 13 132 7 186 1.434 102 2.4 2.6
1976 39 17 18 0 0 284⅓ 3.36 193 13 183 5 327 1.322 99 5.3 3.5
1977 38 19 16 0 0 299 2.77 198 12 204 9 341 1.344 141 6.6 7.8
1978 31 10 13 0 0 234⅔ 3.72 183 12 148 3 260 1.411 98 5.0 2.6
1979 34 16 14 0 0 222⅔ 3.60 169 15 114 6 223 1.271 113 5.1 3.8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0 HOU 35 11 10 0 0 233⅔ 3.35 205 10 98 3 200 1.297 98 4.3 1.5
1981 21 11 5 0 0 149 1.69 99 2 68 1 140 1.121 195 4.2 5.1
1982 45 16 12 0 0 250⅓ 3.16 196 20 109 8 245 1.218 105 3.4 3.1
1983 29 14 9 0 0 196⅓ 2.98 134 9 101 4 183 1.197 114 3.0 2.1
1984 30 12 11 0 0 183⅔ 3.04 143 12 69 4 197 1.154 109 3.8 1.7
1985 35 10 12 0 0 232 3.80 205 12 95 9 209 1.293 91 4.3 1.5
1986 30 12 8 0 0 178 3.34 119 14 82 4 194 1.129 107 2.9 2.0
1987 34 8 16 0 0 211⅔ 2.76 154 14 87 4 270 1.139 142 6.0 4.8
1988 33 12 11 0 0 220 3.52 186 18 87 7 228 1.241 94 3.0 1.7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9 TEX 32 16 10 0 0 239⅓ 3.20 162 17 98 9 301 1.086 124 7.0 5.1
1990 30 13 9 0 0 204 3.44 137 18 74 7 232 1.034 114 5.2 3.5
1991 27 12 6 0 0 173 2.91 102 12 72 5 203 1.006 140 4.9 5.2
1992 27 5 9 0 0 157⅓ 3.72 138 9 69 12 157 1.316 103 3.5 2.0
1993 13 5 5 0 0 66⅓ 4.88 54 5 40 1 46 1.417 86 0.7 -0.6
MLB 통산
(27시즌)
807 324 292 3 1 5386 3.19 3923 321 2795 158 5714 1.247 112 104.5 81.3

굵은 글씨는 리그 1위, 빨간색은 MLB 전체 1위(투수 한정).

9. 여담

  • 1973년에 383삼진으로 샌디 코팩스의 단일시즌 382삼진기록을 경신했는데, 이 기록을 깨는 시즌 마지막 등판 경기가 극적이였다. 15삼진을 잡아야 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경기에서 첫이닝부터 3실점의 고전을 했지만, 11이닝까지 가는 접전끝에 마지막 타자를 15번째 삼진으로 잡아버리며 383삼진으로 시즌을 마감했다.[48]더욱 놀라운 것은 1973년이 지명타자가 도입된 첫해였다는 것(!). 즉, 9번 타석에서 투수라는 프리패스의 혜택이 없이 383삼진을 잡았다.
  • 그의 두 번째 노히터 때, 마지막 타자였던 놈 캐시가 방망이가 아닌 책상다리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는 기행을 저질렀다. 영상 7분 20초 이를 마운드 위에서 눈치 챈 라이언이 심판한테 어필했는데, 심판은 이를 확인 후 폭소를 터뜨리며[49] 방망이를 갖고 오라고 지시했고, 이에 캐시는 책상다리를 던져버리며 "왜? 어차피 치지도 못할텐데"라고 답했다. 곧 볼보이가 방망이를 가져왔고, 캐시는 플라이로 아웃되며 라이언의 두 번째 노히터가 완성되었다.
  • 고교야구부 시절 몇몇 타자들은 그의 제구 안잡힌 강속구가 너무 무서워서 자진해서 헛스윙삼진을 당했다. 출처
  • 그가 15세가 되던 해, 그는 짝사랑하던 13세 소녀에게 다가가 "너랑 영화 한편 보고 싶은데 네 어머니가 허락하실까?"라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 출처 이 소녀가 훗날 그의 부인이 되는 루스 홀도프다.
  • 부인과 고등학교 동창이였는데 학교 앨범에 각자 "가장 잘생긴 남학생/여학생"에 투표로 뽑혔다고 한다. 실제로 젊었을 때 사진을 보면 영화배우 같은 조각 미모를 자랑한다.
파일:external/throughthefencebaseball.com/nolan-ryan-headlock-robin-ventura1.jpg
  • 박찬호가 발차기로 인해 ESPN 선정 역대 벤치 클리어링 순위권 영상 10위 안에 올랐을 때, 놀란 라이언은 1위에 올랐다. 당시 시카고 화이트 삭스 선수였던 로빈 벤추라[50]에게 빈볼을 던져 벤추라가 달려나오는데, 벤츄라의 머리를 간단히 붙잡아 헤드락을 걸고 해머링을 수차례 날렸다. 무서운 점은 당시 놀란 라이언은 은퇴하던 해인 46세였고, 벤추라는 26세의 팔팔한 청년이었다[51] 이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빈볼을 맞은 벤추라가 화가나 투수에게 뛰쳐나가긴 했는데 메이저리그 전설 중의 전설이자 최고참인 라이언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헤드락이 걸렸다. 이 소스가 꽤 감명 깊었는지 불암갑도 웹툰에서 소재로 사용한 적이 있다. 사실 라이언 본인에게 대단히 위험한 장면이였던게, 몰려든 시삭스 선수들에게 깔려 실신직전까지 갔었다. 위험한 순간에 상대팀 화이트삭스의 외야수 보 잭슨[52]이 선수들을 떼어내 그를 구해줬다. 경기후 라이언이 그에게 따로 감사의 전화를 했다고 한다.
    워낙에 '유명한 난투극'이라 요즘도 랭킹쇼를 하면 심심치않게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인 2016년 호세 바티스타 vs. 루그네드 오도어 난투극 때 ESPN Sports Center Top 10 - 역대 최악의 난투극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파일:external/www.sportressofblogitude.com/nolan-ryan.jpg
  • 그 후 20년이 지난 2012년 로빈 벤츄라가 시카고 화삭의 감독이 되어 팀을 이끌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에 원정오자 라이언은 구단주 자격으로 쿨하게 덕아웃으로 찾아가 행운을 기원했다는 훈훈한 미담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텍사스 홈구장인 알링턴 구장에서는 그 패드립 장면을 전광판으로 틀어주어 벤츄라에 대한 야유를 유도했다나...
  • 선수시절 불같은 강속구와 성실성으로 워낙 유명하다보니 올드 스쿨 투 피치 투수들에게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다. 비록 비율 스탯 상으로는 라이언에 견줄 수 있거나 뛰어넘은 투수들이 MLB에 있었고 현역 시절에도 사이영상을 못받았지만, 강속구와 성실함과 꾸준함이 어우러져서 소위 말하는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투수로 꼽힌다. 젊은 시절 박찬호가 놀란 라이언 특유의 하이키킹이나 하체단련 프로그램[53]을 통해 강속구 투수로 거듭난 것이나 공은 빠른데 영점 못 잡고 헤매던 랜디 존슨을 굇수로 각성시키게 한 것 등의 이야기로 유명하다.[54]
  • 박찬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각주에서도 나오지만 박찬호는 놀란 라이언의 투구폼을 참고하였었고, 여러 차례 놀란 라이언을 가장 존경하는 투수로 꼽았었다. 박찬호가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놀란 라이언을 직접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놀란 라이언은 박찬호에게 "무조건 많이 뛰라."는 조언을 해줬고, 이후 박찬호는 러닝 매니아가 되었다.[55]
  • 1981년 9월27일 34세 328일의 나이로 역대 최초의 노히트노런 5회 달성자가 됐다. 경기 후 라이언은 "이제는 나이 들어서 더 이상은 못 할 거 같다"고 소감을 밝혔지만 1990년(43세 131일)과 1991년(44세 90일)에 두 번을 더 추가했다. 통산 노히트노런 기록은 총 7회.
  • 그의 별명 '라이언 익스프레스(Ryan Express)[56]'를 직역하면 라이언 특급으로 생각하면 될 듯. 이후 몇 년간 강속구 투수들에게 'OO 특급'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이 별명의 영향이다. 1980년대의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궈타이위엔 등이 있지만, 역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위에 설명된 코리안 특급.
  • 2004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주인공 감사용(이범수 분)이 동경하는 대상으로 나온다. 감사용은 마루에 누워서 놀란 라이언 포스터를 보고 허공에 공을 던지며 최고의 투수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 일본의 야구 만화 메이저의 등장인물 조 깁슨의 피칭 폼이 이 사람에게서 따왔다.

10. 어록

' 퀄리티 스타트'라... 제가 현역일 때 겨우 6이닝을 던지고 3실점을 했다면 전 바로 강판당했죠. 감독이랑 단장의 곱지않은 시선은 덤이고요. 전 제 스스로의 마무리투수였어요." 출처

11. 관련 문서



[1] 통산 최소 피안타율과 그 성격이 매우 유사한 기록이지만, 어쨌든 MLB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이를 분명한 하나의 기록으로 취급하고 있다. [2] 랜디 존슨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둘뿐인 기록 [3] 참고 [4] 클로드 오스틴, 웨스 파커, 조일로 베르사예즈 [5] 칼튼 피스크, 밥 버다, 후안 베니케스 [6] 현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 [7] 사실 이 경기에는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경기 전 놀란 라이언은 감독에게 오늘 자신의 컨디션이 좋지 못하니(빨리 강판당할 것 같으니) 불펜진을 빨리 대기시켜 놓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고 말했던 놀란 라이언은 이 날 무려 16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노히트 노런을 완성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때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았는데, 그 삼진으로 잡았던 타자가 옛날에 자신과 같은 팀에 있었던 동료의 아들인 로베르토 알로마였다. [8] 여담으로 이 날은 오클랜드의 리키 헨더슨 루 브록의 통산 도루 개수 938개를 뛰어 넘었던 날이기도 하다. 즉, 같은 날에 2개의 대기록이 세워진 셈. 물론 정확하게 본다면 대기록 달성은 리키 헨더슨이 먼저 달성했으므로(경기가 끝나야 인정되는 노히트 노런과 다르게 도루 기록은 경기 중에 세울 수 있으므로) 스포트라이트는 리키 헨더슨이 먼저 받았다. [9] 투수 1, 2위는 마리아노 리베라 톰 시버. [10] 사실 66년도에 콜업돼서 탈탈 털리고(...) 67년을 마이너에서 보낸 뒤 68년에 메이저에서 본격적으로 뛰게 된다. [11] 벌랜더가 라이언이랑 비교해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부분은 제구력과 ERA가 있다. 이 문서는 라이언을 띄워주지만 라이언은 전형적인 투고타저 시대의 선수다. 2021년 시즌까지 벌랜더는 2,988이닝-3.33ERA/129ERA+-3,013K's를 기록했다. 라이언은 1980년까지 2,925이닝-3.18ERA/110ERA+-3,109K's를 기록했다. 탈삼진만 봐도 비슷하고 조정 평균자책점 차이는 크다. 동일한 이닝을 소화했을 때 기준으로는 라이언이 오히려 벌랜더에게 미치지 못한다. 물론 라이언은 2,000이닝 이상을 더 투구했으므로 벌랜더가 2,000이닝 이상을 투구하더라도 이기기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라이언 팬들은 이닝 차이를 얘기하겠지만 영/존슨과의 시대 차이로 라이언이 그들의 이닝을 넘을 수 없었듯이 벌랜더도 시대 차이로 라이언의 이닝을 넘길 수 없는 것뿐이다. [12] 그러나 퍼드 갤빈의 경우는 내셔널리그만 있던 시절, 아메리칸 리그 전신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소속이었던 시절의 700이닝 기록을 포함한 것이라 순수 메이저리그 기록으로 인정되는 내셔널 리그 성적만 보면 라이언보다 적다. 그렇게 치면 라이언이 4위가 된다. 참고로 퍼드 갤빈은 체인지업의 원조라 불리기도 하며 내셔널리그가 생기기 직전부터 야구 선수 생활을 했던 레전드이다. 내셔널리그 최초 300승도 갤빈이 달성했다. 그러니까 사이 영보다도 훨씬 선배이며 사이 영이 데뷔할 때쯤 은퇴했다. 윌 화이트와 함께 메이저리그 통산 1시즌 최다 투수 선발출장 기록인 75회ㄷㄷㄷ를 가지고 있다. 작은 체구에도 강한 공을 던져서 별명이 '작은 증기기관'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초의 약쟁이라는.. [] [14] 통산 [] [16] 덤으로 2795 볼넷으로 통산 최다 볼넷ㆍ최다 볼넷왕 시즌 기록(7회)도 가지고 있다. 2위 스티브 칼튼의 1833개와는 역시 넘사벽의 차이(...)에 볼넷왕을 라이언 다음으로 많이한 맥도웰은 5회이다. [17] 허나 그 공에 당시 시애틀 소속이었던 댄 호위트한테 만루홈런(...)을 맞았다. [18] 근래 탈삼진의 가치가 격상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탈삼진은 그냥 아웃카운트를 잡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고 탈삼진이 적어도 사이 영 상을 받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탈삼진이 사이 영 상에 그렇게 중요했다면 피트 부코비치(1982년 223.2이닝 105K's), 스티브 스톤(1980년 250.2이닝 149K's)는 어떻게 사이 영 상을 받았겠는가. 게다가 이 시즌 라이언은 볼넷왕이기도 했다. 시즌 다승왕은 24승의 윌버 우드였는데 겨우 5위였다. [19] 에인절스에서는 라이언이 레인저스로 떠난 직후, 고로 라이언이 아직 현역이였을때 영구결번을 해 줬는데, 이런 경우는 진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20] 7년 가까이 뛰기도 한 에인절스 레전드기도 해서 라이벌 팀인 레인저스의 구단주가 된 라이언을 초청하여 시구를 맡기는 대인배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존경받는 선수라는 것. [21] 1969년 월드시리즈 3차전에 출전해서 2.1이닝 1세이브를 거두었다. [22] 타자는 시대 따질 것 없이 피트 로즈가 출장 경기수, 타석, 타수 등이 2위와 차이가 꽤 나는 통산 1위라 역대 최고 금강불괴이다. 그 다음은 행크 아론(출장경기 3위, 타석 3위, 타수 2위) 또는 칼 야스트렘스키(출장경기 2위, 타석 2위, 타수 3위)이며 이 둘의 출장 관련 통산 기록은 비슷한 편이다. [23] 메이저리그 역대 1위. 2위는 6.74의 클레이튼 커쇼. 참고로 라이언은 9이닝당 피안타 갯수 단일시즌 1, 3위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두 기록이 각각 1972년과 1991년으로 19년이나 차이가 난다. 커리어 내내 매우 적은 안타를 허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4] 주목할만한 점은 쿠퍼가 삼진 잡기 어려운 타자였다는 것이다 (커리어 통산 삼진율이 11.5%). 해당 시즌 74삼진을 당했는데 그중 6번을 이 한 경기에서 라이언에게 당했다. [25] 결국 이 혹사가 탈이 나서 다음해에 198이닝에 그쳤으나, 바로 다음 해부터 284.1이닝으로 페이스를 되찾았다. [26] 오직 그와 캡 앤슨만이 가진 기록. [27] 베테랑 위원회로 입성했다. [28] 마지막 던진 공은 아닌데, 마지막 던진 공은 무려 158km에 육박했지만 만루홈런을 맞았다. 하단에 후술하겠지만 현대의 구속 측정방식으로 측정하면 저 98마일은 최소 100마일이 넘는 패스트볼이라는 추측이 있다. [29] 물론 이에 대해선 반대 의견도 있는데 이에 대해선 이 글을 참고 하지만 이 의견도 108마일까진 안나온다지 지금의 측정방식으로 하면 100마일 중반대를 기록했을것이라고 주장하기에 라이언의 패스트볼의 가치가 크게 내려가는 주장은 아니다. [30] 동 시대 선수 중에선 구스 고시지 등 일부 마무리 투수를 제외하고는 라이언과 패스트볼 구위로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는 투수는 없었다. [31] 심지어 현대의 측정방식으로 잰다면 지금 기준으로 말년에도 100마일을 우습게 넘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구속하나 만큼은 제이콥 디그롬급 혹은 그 이상 수준이었다고 추정해 볼 순 있다. 공식 기록만 따지자면 디그롬이 우위지만, 이런 비교 자체가 민망한것이 라이언은 저런 구속을 27년 내내 던졌다. [32] 현 시점에도 라이언에 비견되는 수준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들이 존재하긴 하나, 대다수 불펜 투수 혹은 이닝을 잘 먹는 선발 투수더라도 부상 위험이 극도로 높다고 여겨진다. [33] 대표적으로 잭 그레인키가 있다. 그레인키의 경우엔 전형적인 파워 피쳐였는데, 구속이 심하게 줄어서 스타일 자체가 기교파로 변했다. 물론 원체 타고난 야구 천재라서 스타일을 변화시키고도 재기에 성공했다. [34] 키 208cm의 랜디 존슨은 말할 것도 없고, 로저 클레멘스도 193cm의 키에 110kg에 육박하는 거구였다. 지금의 저스틴 벌랜더 또한 196cm의 키에 105kg에 육박한다. [35] 다만 이건 젊은 시절 너무 볼넷을 많이 줘서 그렇다. 캘리포니아 시절까지 9이닝당 볼넷은 무려 6점대를 마크 했지만 휴스턴 이적 이후 평균 3.8을 기록했을 정도로 양호해졌다. 물론 이 수치도 사이 영 상을 수상한 다른 투수들에 비해선 다소 높은 편이다. [36] 당시엔 사이 영 상 투표에서 기자들이 고려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승률이었다. 이 때문에 '비슷한 평균자책점으로 적게 던지고 승패없음을 기록하는 투수'보다 '많이 던지고 완투패하는 선수'가 팀 공헌도가 더 높음에도 더욱 저평가받았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선 피칭퀄리티에 더욱 눈독을 들이는 기자들이 많아지며 다승은 사이 영 상 경쟁에 있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37] 이는 불운의 대명사인 2023년 주니치 드래곤즈 선발투수이나 2022년 알버트 수아레즈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38] 동물 고환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약인 Brown-Séquard elixir를 선수 말년기인 1889년에 주사맞으며 사용했던 것을 언론에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 시대는 '금지약물'이란 걸 따로 지정하지 않던 시대이니 깎아내릴 이유는 없지만. [39]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마지막 패스트볼의 종착지는 좌측담장이었다. 그것도 주자 만루 상태에서. 참고로 이 홈런을 쳐냈던 댄 호이트는 별볼일없는 선수였는데, 그의 93시즌 성적은 2홈런 8타점이었고, 해당 홈런은 그의 현역 시절 마지막 홈런이었다. [40] 다만 이때 일부러 헨더슨을 상대로 5000K를 달성하기 위해 사포를 이용한 부정투구를 사용했단 뒷이야기가 있다. [41] 나이도 많고, 무릎과 등의 통증도 있었던데다 경기 전 불펜피칭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여 당시 텍사스의 투수코치였던 톰 하우스가 바비 발렌타인 감독에게 이번 경기는 위험하니 빨리 계투를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었다. 발렌타인은 이 경기가 혹시나 라이언의 마지막 경기가 될까 노심초사했다. 그 경기는 당대 AL 최강팀으로 꼽히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였고, 마지막 순간에 삼진으로 아웃되는 타자는 토론토 최고의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2루수 로베르토 알로마. [42] 라이브볼 시대 1위는 필 니크로다. 니크로 옹이 너클볼러임을 감안한다면... [43] 참고로 원히터는 12회 기록했으며 이 중 9회 노히터 무산은 5회 [44] 시즌 평균은 3.33 정도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등판횟수, 소화이닝이 지금보다 훨씬 길었다. [45] 다만 팔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으나 대신 허리랑 무릎에 무리가 많이간다. 예시로 박찬호는 허리 통증, 구대성은 무릎 통증으로 고생했다. [46] 2020대에도 MLB에서 올드스쿨 투구폼을 유지하는 유명 선수는 사실상 클레이튼 커쇼밖에 없으며 커쇼도 2018년부터 구속이 감소하고 있고 지속적인 허리 통증을 겪고있다. [47] 저스틴 벌랜더도 과거에는 올드스쿨형 투구폼을 가지고 있었으나 뉴스쿨로 투구폼을 수정했다. 한국에서는 김광현이 같은 케이스로 김광현도 전형적인 올드스쿨형 투구폼을 가지고 있었으나 2015년부터 뉴스쿨 투구폼으로 수정했다. 이 둘은 투구폼 수정 후 구속이 올랐으나 몇년 뒤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뉴스쿨 투구폼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확인할 수있는 사례다. [48] 다시말해 11이닝까지가는 행운도 따라줬다는 것. [49] 몸이 앞으로 숙여질 정도로 웃었다. [50] 2012시즌 부터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신임감독으로 선임됐다. 첫 경기가 레인저스전이었는데 라이언이 벤추라에게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51] 두 사람의 생년은 딱 20년 차이다. [52] 본업은 미식축구 선수고 겸업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뛴 걸로 유명한 선수다. [53] 라이언은 달리기 뿐만 아니라 오프시즌에 사이클링으로 하체를 단련했다고 한다. [54] 1992년 7월 8연패에 빠졌을때 존슨이 상대팀 선수인 라이언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라이언은 흔쾌히 존슨을 도와주었고 자신의 전담코치까지 붙여주며, 교정에 적극 도움을 줬다고 한다. [55] 실제로 투수들의 러닝에 심폐지구력 유지 이외에는 그리 명확한 효과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강속구 투수들에게 러닝은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수많은 강속구 투수들이 꾸준한 러닝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야구사상 최고의 마무리라고 불리는 강속구 투수 오승환선수는 러닝을 거의 맨날 해서 스케줄상 기본 운동을 쉬는 날도 개인적으로 러닝 하나만은 무조건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56] 1965년작 영화 'Von Ryan's Express'(한국에선 탈주특급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