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19:11:53

조 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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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생 동명이인 야구 선수에 대한 내용은 조 모건(1930)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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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F / No.15

CF / No.20

RF / No.30

SS / No.13

2B / No.8

3B / No.14

1B / No.24

C /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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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모건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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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시내티 레즈 엠블럼(1972~1992).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75 1976

파일:1966 MLB 올스타전 로고.gif 파일:1970 MLB 올스타전 로고.gif 파일:1972 MLB 올스타전 로고.gif 파일:1973 MLB 올스타전 로고.gif 파일:1974 MLB 올스타전 로고.gif 파일:1975 MLB 올스타전 로고.gif 파일:1976 MLB 올스타전 로고.gif 파일:1977 MLB 올스타전 로고.gif 파일:1978 MLB 올스타전 로고.gif 파일:1979 MLB 올스타전 로고.gif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66 1970 1972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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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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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1 No.5 No.8 No.10 No.11
<rowcolor=#ffffff> 프레드 허친슨 자니 벤치 조 모건 스파키 앤더슨 배리 라킨
<rowcolor=#ccac00> No.13 No.14 No.18 No.20 No.24
<rowcolor=#ffffff> 데이브 콘셉시온 피트 로즈 테드 클러주스키 프랭크 로빈슨 토니 페레스
<rowcolor=#ccac00> No.42
<rowcolor=#ffffff> 재키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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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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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ffffff
폴 데린저 어니 롬바르디 프랭크 맥코믹 자니 밴더미어 버키 월터스
이발 굿맨 에파 릭시 유얼 블랙웰 에드 러시 로니 프레이
빌리 워버 휴이 크리츠 버블스 하그레이브 테드 클러주스키 루브 브레슬러
해리 크래프트 하이니 그로 누들스 한 거스 벨 피트 도너휴
프레드 허친슨 래리 코프 레드 루카스 월리 포스트 자니 템플
제이크 도버트 마이크 맥코믹 빌리 마이어스 돌프 루케 빌 맥케치니
샘 크로포드 조 넉스홀 워렌 자일스 짐 오툴 로이 맥밀란
고디 콜먼 짐 말로니 밥 퍼키 스모키 버제스 브룩스 로렌스
베이다 핀슨 프랭크 로빈슨 토미 헴스 클레이 캐롤 레오 카데나스
웨인 와그너 게리 놀란 잭 빌링엄 자니 벤치 조 모건
제리 린치 토니 페레즈 사이 시모어 스파키 앤더슨 데이브 콘셉시온
밥 유잉 마리오 소토 돈 굴렛 비드 맥피 조지 포스터
더미 호이 켄 그리피 시니어 밥 호섬 윌 화이트 에릭 데이비스
호세 리호 조지 라이트 해리 라이트 톰 브라우닝 리 메이
톰 시버 세사르 헤로니모 어거스트 허먼 조이 제이 배리 라킨
페드로 보본 크리스 세이보 토니 뮬란 션 케이시 댄 드리센
존 렐리 켄 그리피 주니어 데이브 파커 론 오스터 제이크 베클리
피트 로즈 애덤 던 프레드 노먼 데이브 브리스톨 마티 브레너먼
대니 그레이브스 브론슨 아로요 게이브 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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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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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ffffff
밥 아스프로몬테 제프 배그웰 크레이그 비지오 호세 크루즈 래리 디어커
진 엘스턴 밀로 해밀턴 조 모건 조 니크로 셰인 레이놀즈
J.R. 리차드 놀란 라이언 마이크 스캇 짐 움브리히트 돈 윌슨
지미 윈 랜스 버크먼 세자르 세데뇨 로이 호핀츠 로이 오스왈트
빌리 와그너 밥 왓슨 테리 풀 탈 스미스 빌 브라운
빌 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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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Morgan%20Joe%20236_NBL.png
조 모건
헌액 연도 1990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81.7% (1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5년 ~ 197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스티브 가비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조 모건
( 신시내티 레즈)
조지 포스터
( 신시내티 레즈)

파일:MLB 로고.svg 197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게임 MVP
프랭크 로빈슨
( 볼티모어 오리올스)
조 모건
( 신시내티 레즈)
바비 본즈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3년 ~ 197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2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펠릭스 밀란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조 모건
( 신시내티 레즈)
데이비 롭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2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매니 트리요
( 필라델피아 필리스)
조 모건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자니 레이
( 피츠버그 파이리츠)

휴스턴 콜트 포티파이브즈 등번호 12번
팀 창단 조 모건
(1963)
네이트 콜버트
(1966)
휴스턴 콜트 포티파이브즈 등번호 35번
짐 골덴
(1962~1963)
조 모건
(1964)
짐 레이
(1965)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18번
지미 윈
(1963)
조 모건
(1965~1971)
바비 펜윅
(1972)
신시내티 레즈 등번호 8번
대니 브리덴
(1969)
조 모건
(1972~1979)
라파엘 란데스토이
(1983)
데이먼 베리힐
(1995)
영구결번
휴스턴 콜트 포티파이브즈 등번호 8번
루이스 푸홀스
(1978~1979)
조 모건
(1980)
데이브 로버츠
(1981)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8번
데이브 레이더
(1971)
조 모건
(1981~1982)
조엘 영블러드
(1983~1988)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8번
팻 코랄레스
(1982)
조 모건
(1983)
후안 사무엘
(1984~1989)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8번
릭 피터스
(1983)
조 모건
(1984)
롭 피콜로
(1985)
}}} ||
}}} ||
파일:Joe-Morgan-1978.jpg
<colbgcolor=#c6011f><colcolor=#ffffff> 신시내티 레즈 No. 8
조 모건
Joe Morgan
본명 조 레너드 모건
Joe Leonard Morgan
출생 1943년 9월 19일
텍사스 주 본햄
사망 2020년 10월 11일 (향년 77세)
캘리포니아 주 댄빌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캐슬몬트 고등학교 - CSUEB - 메리트 칼리지
신체 170cm / 72kg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62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 HOU)
소속팀 휴스턴 콜트 포티파이브즈-애스트로스 (1963~1971)
신시내티 레즈 (1972~1979)
휴스턴 애스트로스 (198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81~1982)
필라델피아 필리스 (198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84)

1. 개요2. 휴스턴 애스트로스 : 최고의 선두타자3. 신시내티 레즈 : 빅 레드 머신의 중심타자4. 저니맨5. 명예의 전당 입성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6. 이후의 행보7. 조 모건과 세이버메트릭스8. 연도별 기록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3.bp.blogspot.com/joe_morgan78.jpg 파일:external/joemorgan8.com/Joe-Morgan-Headshot-e1443026827806.jpg
빅 레드 머신 시절 2015년 사진인데 한국나이로 무려 73세이다(...) 무려 이 분과 동갑이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창단 초창기를 이끌었던 선수이자 신시내티 레즈의 '빅 레드 머신'의 중심 타자로 활약한 2루수.

키가 170cm 밖에 안되는 작은 체구였지만 특유의 야구 센스와 재능으로 팀에 엄청난 도움을 가져다 주었고 말년에는 야구 해설로 활약하며 해설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통산 기록은 타율 0.271, 출루율 0.392, 장타율 0.427, 2517안타, 268홈런, 1133타점.

2. 휴스턴 애스트로스 : 최고의 선두타자

아직 인종차별이 일상적이었던 시기, 모건은 흑인이었고 거기다가 키까지 작았다. 뛰어난 야구 실력과 센스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건은 1962년 11월 1일에 신생구단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간신히 계약을 맺고 선수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계속 공부를 하길 원했는데 나중에 대학교에 진학한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인종차별을 피부로 직접 겪었지만 모건은 이를 실력으로 극복했고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1965년부터 애스트로스의 타선을 이끌어나갔다.[1] 모건은 드넓은 외야를 지닌 애스트로돔에 스스로를 적응시켜 장타보다는 단타와 2루타 위주, 그리고 넓은 외야를 활용한 스프레이히팅을 발전시켰고 출루시에는 빠른 발을 활용하여 많은 도루를 했다. [2]

그러나 1971년 시즌이 끝난 후, 모건은 에드 암브리스터, 잭 빌링험, 세사르 헤로니모[3], 데니스 메인키와 함께 토미 헴즈, 리 메이, 지미 스튜어트를 상대로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레즈의 거포 리 메이의 영입때문이었지만 사실은 해리 워커 감독과 모건을 비롯한 몇몇 유색인종 선수들의 갈등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애스트로스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중 하나로 뽑힌다.

3. 신시내티 레즈 : 빅 레드 머신의 중심타자

이 당시, 신시내티 레즈의 감독이었던 스파키 앤더슨은 모건의 능력을 알아보고 모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4] 또한, 드넓은 애스트로돔을 벗어난 모건은 그간의 타격습관을 버리고 당겨치기와 어퍼스윙을 익혀 장타력도 끌어올린다.

이 당시, 신시내티 레즈에는 자니 벤치, 피트 로즈, 토니 페레즈, 데이브 콘셉시온, 그리고 모건과 함께 온 세사르 헤로니모등이 타선을 구성했는데 이 타선은 빅 레드 머신으로 불리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타선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에는 630개의 홈런을 친 타자 아버지까지 가세하면서 힘을 더했다.

모건은 빅 레드 머신에서 3번을 치며 활약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모건이 팀에 가장 큰 활약을 했던 분야는 자신의 천부적인 센스를 활용해 상대 투수가 무엇을 던지는지, 언제 상대 팀이 투수를 교체하는지, 언제 상대 팀이 도루를 시도하는지등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 팀이 적시에 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모건은 5번의 골드 글러브와 2번의 내셔널 리그 MVP 수상을 하며 최전성기를 보낸다.

4. 저니맨

1976년 월드 시리즈 우승과 1977년의 골드 글러브 수상이후, 모건의 기량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고 1979년을 끝으로 레즈와도 헤어진다.

이 후, 1984년에 은퇴하기까지 모건은 5년간 4개의 팀에서 뛰게 되는데, 1980년에는 친정 휴스턴 애스트로스, 1981년과 1982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었다.[5]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e5549686c37d86d4c0a951a5e2e5e9eb.jpg
1983년에는 알 홀랜드와 함께 마크 데이비스, 마이크 크루코, C.L. 페니거를 상대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어 필리스에서 뛰었는데, 이 때 필리스에는 모건과 함께 레즈에서 활약했던 피트 로즈, 토니 페레즈등이 있어서 사람들은 필리스의 타선을 빅 그레이 머신이라고 불렀다.

결국, 1984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뛴 것을 마지막으로 모건은 22년간의 메이저리거 생활을 끝마친다.

5. 명예의 전당 입성

은퇴 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첫 해에 81.8%의 투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조 모건 15 131 172 56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Second Base (4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조 모건 100.3 59.1 79.7
2루수 HOF 입성자 평균 69.4 44.5 56.9

6. 이후의 행보

이 후, 모건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학교를 졸업한 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해설자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는데, 풍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천부적인 직관력을 통해 최고의 인기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한 독점 전국중계인 ESPN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에서 20년간(1990~2010) 캐스터인 존 밀러와 콤비를 이루면서 방송을 진행한 것이 유명하다.

명예의 전당 부의장을 맡고 있으며, 2017년 11월 경기력 향상 약물(PED) 복용자의 쿠퍼스 타운 입성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6]

2020년 10월 11일, 지병인 말초신경병증으로 인해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7]

7. 조 모건과 세이버메트릭스

영화 머니볼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즌 막판 20연승 행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에서 또 한번 실패를 겪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빌리 빈의 한계를 지적한 "아무도 야구라는 스포츠의 본질은 바꾸지 못한다"(Nobody reinvents this game)는 논평의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조 모건이다.

모건은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연히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시초이자 거두인 빌 제임스와의 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이며 둘은 서로 공개적으로 디스하는 관계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빌 제임스는 역대 최고의 2루수로 조 모건을 뽑았으며, 그의 성적은 세이버메트릭스에 의해 재평가받았다. 물론 세이버메트릭스 이전에도 훌륭한 선수라는 평가는 변함이 없었으나 그때까지는 소위 "기록보다 기억에 남는 선수" 쪽에 가까왔다. 세이버메트릭스 이후 기록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것으로 인정받아서 "기록으로도 기억에도 남는 선수"가 되었다.

22년 동안의 선수시절 동안 장타력이 폭발한 건 약 5년 정도로 통산 장타율 .427, OPS .819, 홈런 268개에 불과했고 3할 타율도 2번밖에 없었다. 때문에 몇 년 동안의 예외적인 전성기 시절을 빼면 오래 뛰었다는 것 말고도 별로 돋보일 것이 없는 선수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통산 출루율은 .392 라이브볼/현대야구 시대의 선수들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축에 든다. 적은 삼진과 많은 볼넷, 뛰어난 주력 덕분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지표들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8] 다만 골드 글러브 4회 수상과는 맞지 않게 실제 수비는 거의 도움이 안 되다시피 한 수준으로 드러나서 이에 불만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거기에 테드 윌리엄스처럼 레벨 스윙보다는 어퍼 스윙을 통해 공을 높이 띄우는 타법을 선호했는데, 이는 2010년대 후반의 뜬공 혁명을 통해 효율성이 증명되었다.

8. 연도별 기록

파일:MLB 로고.svg 조 모건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63 HOU 8 30 6 0 1 0 5 3 1 5 5 .240 .367 .320 .687 0.0 0.1
1964 10 43 7 0 0 0 4 0 0 6 7 .189 .302 .189 .492 -0.2 -0.2
1965 157 708 163 22 12 14 100 40 20 97 77 .271 .373 .418 .791 5.1 6.2
1966 122 528 121 14 8 5 60 42 11 89 43 .285 .410 .391 .801 3.3 3.6
1967 133 580 136 27 11 6 73 42 29 81 51 .275 .378 .411 .789 4.5 5.0
1968 10 27 5 0 1 0 6 0 3 7 4 .250 .444 .350 .794 0.2 0.1
1969 147 657 126 18 5 15 94 43 49 110 74 .236 .365 .372 .737 3.5 3.7
1970 144 658 147 28 9 8 102 52 42 102 52 .268 .383 .396 .779 3.5 3.4
1971 160 689 149 27 11 13 87 56 40 88 52 .256 .351 .407 .757 5.4 5.6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72 CIN 149 680 161 23 4 16 122 73 58 115 44 .292 .417 .435 .851 8.7 9.3
1973 157 698 167 35 2 26 116 82 67 111 61 .290 .406 .493 .899 9.5 9.3
1974 149 641 150 31 3 22 107 67 58 120 69 .293 .427 .494 .921 8.6 8.6
1975 146 639 163 27 6 17 107 94 67 132 52 .327 .466 .508 .974 11.0 11.0
1976 141 599 151 30 5 27 113 111 60 114 41 .320 .444 .576 1.020 9.5 9.6
1977 153 645 159 21 6 22 113 78 49 117 58 .288 .417 .478 .895 5.8 5.8
1978 132 533 104 27 0 13 68 75 19 79 40 .236 .347 .385 .773 1.5 1.6
1979 127 538 109 26 1 9 70 32 28 93 45 .250 .379 .376 .756 2.6 2.7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80 HOU 141 562 112 17 5 11 66 49 24 93 47 .243 .367 .373 .740 4.0 3.7
<rowcolor=#fd5a1e>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81 SF 90 378 74 16 1 8 47 31 14 66 37 .240 .371 .377 .748 2.3 2.1
1982 134 554 134 19 4 14 68 61 24 85 60 .289 .400 .438 .838 5.2 5.1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83 PHI 123 504 93 20 1 16 72 59 18 89 54 .230 .370 .403 .773 3.5 3.2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83 OAK 118 438 89 21 0 6 50 43 8 66 39 .244 .356 .351 .707 1.3 1.6
MLB 통산
(22시즌)
2649 11329 2517 449 96 268 1650 1173 689 1865 1015 .271 .392 .427 .819 98.8 100.4
  • 볼드체는 당해 시즌 리그 1위
  • 청색 글씨는 당해 시즌 MLB 전체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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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5년 4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루 브록[1974년8월]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조 모건
( 신시내티 레즈)
밥 왓슨
( 휴스턴 애스트로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5년 6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밥 왓슨
( 휴스턴 애스트로스)
조 모건
( 신시내티 레즈)
데이브 킹맨
( 뉴욕 메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6년 8월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조지 포스터
( 신시내티 레즈)
조 모건
( 신시내티 레즈)
스티브 가비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 이 당시 애스트로스의 홈구장 애스트로돔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릴만큼의 찬사를 받았지만 드넓은 외야와 파울지역으로 인해 타자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구장이었다. MLB의 대표적인 친투수적 구장인 다저스타디움과 다름없을 정도. [2] 모건의 도루는 좌투수와 우투수상대로 성공률이 별 차이 없었으며 오히려 좌투수를 상대로 더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다. [3] 훗날 모건과 함께 빅 레드 머신의 일원으로 활약한다. [4] 휴스턴에서의 마지막 해에 첫 인연이 있었는데, 당시 내야 플라이를 친 뒤 1루까지 천천히 걸어간 조 모건을 본 앤더슨 감독이 "아까 자네는 야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플레이를 한 것일세." 라는 일침을 직접 날렸고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미 진작부터 스파키 앤더슨 감독이 있는 신시내티로 간 것은 조 모건에게 있어서 최고의 전환점이었다. [5] 1982년에 선수로서 마지막 기량을 불태우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를 차지한다. 물론 모건은 젊은 시절에 더 뛰어난 타자였고 75년과 76년에 리그 OPS 1위, 76년에는 리그 장타율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 시절에는 실버 슬러거가 없었다. [6]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com에 따르면 모건은 명예의 전당 투표권을 보유한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기자 전원에게 직접 ‘PED 복용자들에게 투표권을 행사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모건은 “약물 검사에서 적발됐거나 스테로이드 복용을 시인한 선수 그리고 ‘미첼 리포트’에 이름이 포함된 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해선 안 된다”며 “비록 모든 명예의 전당 입성자들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많은 헌액자가 이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7] 모건 외에도 2020년 한해 동안 메이저리그 역사를 빛낸 대스타들이 여럿 타계했다. 구체적으로는 알 칼라인, 톰 시버, 루 브록, 밥 깁슨, 화이티 포드 등이다. 이들 모두 소속 구단의 영구결번자이자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며, 화이티 포드를 제외하면 모두 첫 투표를 통해 헌액된 기록을 갖고 있었고, 이후 필 니크로까지 사망하면서 미국 야구계는 2020년 한 해에만 7명이나 되는 명예의 전당 선수들을 잃게 되었다. [8] 대표적으로 1974년 AL MVP 투표에서 .366/.433/.446 218안타 38도루를 기록한 로드 커류가 7위에 그치고, 턱걸이 타율 3할+턱걸이 장타율 5할과 25홈런을 기록한 제프 버로우스가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이후 커류는 1977년 타율 .388을 기록하고 나서야 MVP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같은 해 NL MVP 투표에서 스티브 가비 마이크 슈미트, 루 브록 등을 제치고 강탈해간 것에 비하면 약과다. 아이러니하게도 모건 역시 이 해 가비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거둠에도 불구하고 8위에 그치는 등 손해를 입었다. 때문에 이 해의 MVP 투표는 1979년 윌리 스타젤의 공동 1위 사건과 함께 최악의 MVP 투표로 여겨지고 있다. [1974년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