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12:42:56

김용주(야구선수)

김용주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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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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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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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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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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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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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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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2025년 2026년
정우주 (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전면 드래프트 시행 년도 1R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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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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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퐁황.jpg 2009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한화 이글스 등번호 64번
장민제
(2009)
<colbgcolor=#000> 김용주
(2010)
박병우
(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58번
황재규
(2009~2010)
김용주
(2011)
장재훈
(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64번
박병우
(2011)
김용주
(2012~2013)
박한길
(2014)
한화 이글스 등번호 57번
윤기호
(2014~2015. 8. 20.)
김용주
(2015. 9. 29.~2015)
정우람
(2016~)
한화 이글스 등번호 56번
최우석
(2015)
김용주
(2016~2017)
백진우
(2018~2020. 6. 8.)
kt wiz 등번호 46번
배제성
(2017. 4. 19.~2017)
김용주
(2018)
김태오
(2019)
kt wiz 등번호 17번
김성윤
(2018)
김용주
(2019)
허도환
(20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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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kt 김용주.jpg
김용주
金龍珠|Kim Yong-Ju
출생 1991년 10월 23일 ([age(1991-10-23)]세)
충청남도 천안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온양온천초 - 온양중 - 북일고
신체 178cm|85kg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2010년 1라운드 (전체 4번,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10~2017)
kt wiz (2018~2019)
지도자 야탑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4~)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3년 12월 23일~2015년 9월 22일)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한화 이글스 시절
2.2.1. 2013 시즌2.2.2. 상무 피닉스 야구단 시절2.2.3. 2015 시즌2.2.4. 2016 시즌2.2.5. 2017 시즌
2.3. kt wiz 시절
2.3.1. 2018 시즌2.3.2. 2019 시즌
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충청남도 천안시 출신으로, 충청권 최대 야구명문이자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천안북일고에 진학하여 고3 시절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었다. 2009년 천안북일고는 고교야구 3대 전국대회에서 황금사자기 준우승, 청룡기 준우승, 봉황대기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북일고의 에이스 투수였던 김용주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김용주는 실제로 3개 대회에서 도합 93이닝 동안 단 8점만을 내주며 10승 1패를 기록하였다. 1패조차 마지막 대회인 전국체전 결승전에서 승부치기를 3회나 가면서 생긴 1패이다.... 이런 대활약으로 2010시즌 드래프트를 앞두고 스카우터의 관심을 끌게 된다.

비록 지역연고 우선지명제인 1차 지명이 사라졌지만, 한화 이글스는 최우선적으로 그를 지명하고자 했다. 아무래도 한화그룹이 운영하는 재단 산하 학교 출신이기도 하고 실력 자체도 출중했으니까. 한화보다 지명순위가 빠른 LG 트윈스, 넥센 히어로즈, KIA 타이거즈는 각각 대졸 최대어인 신정락, 광주의 두 에이스 김정훈 심동섭을 지명할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한화의 김용주 지명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1]

그러나, 신인 지명을 앞두고 많은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일단은 한국 학원야구 최대의 폐해라 할 수 있는 혹사 문제. 김용주는 그 정도가 심해서, 황금사자기에서 35⅔이닝, 청룡기에서 21⅓이닝을 던져 대회출전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8강전과 4강전에서 연이어 완투를 해내고 결승에선 선발 등판한 후배 투수가 부진해서 1회부터 구원등판하질 않나, 청룡기 준결승에선 서스펜디드 선언된 게임을 이틀 연속으로 혼자 던졌다. 혹사에 따라오는 신체적 문제를 들어 김용주를 지명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교야구에 좀 관심있던 사람들은 혹사가 아니라도 상위 지명은 절대 안된다고 결사 반대했다. 175cm에 불과한 단신에 속구 최고구속이 130km/h대에 불과해 고교야구에서조차 제구와 완급조절로 먹고 살던 김용주는 아마와는 차원이 다른 프로야구에서 도저히 통할 타입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130km/h대 구속은 하체까지 적절히 잘 이용하는 안정된 투구폼에서 나오던 구속이었는데다 키도 너무 작았기에 근력 훈련 및 투구폼 교정을 통한 구속 상승도 기대하기 힘들었다.[2]

그러나 이런 수많은 우려 속에도 한화는 그를 1차 지명하여 계약금 1억 8천만원, 연봉 2400만원에 계약하고 스프링캠프에도 동행시키는 등 많은 기대를 걸었다.[3] 사정을 아는 팬들은 그놈의 북일고 타령이 또 팀을 망쳤다며 성토했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사실 이 시절에는 아마야구에 무관심한 사람이 많았고, 애초에 이 해 드래프트 자체가 1라운드 지명은 전면 드래프트였음에도 1라운드에 뽑힌 선수들은 한화 이후 그나마 살아남은 선수가 마지막 1라운드 순번이었던 SK의 문광은이었을 정도로 역대급 흉년이었기 때문에 크게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본인도 당차게 봉중근을 목표로 하겠다며 신인왕을 차지하겠다고 밝혔다.

2.2.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5093001003154000223701.jpg

아니나다를까 2010년 시즌 내내 2군에 있었다.

시즌 막바지에 테스트 목적으로 1군에 합류, 9월 11일 SK 와이번스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했으나 1⅓이닝 동안 5실점하며 강판당했고, 1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도 선발등판했으나 ⅔이닝동안 3볼넷 2홈런 4실점을 허용하며 강판당했다.

이후 곧바로 2군행. 그리고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최종 기록은 2경기 2패 2이닝 9실점 평균자책점 40.50.

2011시즌 들어서는 KBO 퓨처스리그에서도 몇 경기 못나오고 있다. 어깨가 완전히 고장났다는 말도 있고...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보류선수에서 제외되었다. 방출은 아니고 신고선수로 전환되는 듯 했으나 2013 시즌 다시 등록되었다.

2.2.1. 2013 시즌

2013년 KBO 퓨처스 올스타전에 북부리그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9월 1일 부로 확대 엔트리를 통해 3년만에 1군에 복귀했고, 2010년에 비하면 굉장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며 시즌 말미에 기대를 남겼다. 시즌 성적은 6경기 7이닝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3.86. 이에 대해 김응용 감독이 기대하고 있다는 멘트를 남겼다.

2.2.2. 상무 피닉스 야구단 시절

하지만 2013 시즌이 끝나자마자 상무에 지원했고 최종합격, 2014시즌부터 상무에서 뛸 예정이다. 그래도 상무에서는 그럭저럭 잘 던졌다.

2015 시즌 상무에서 22경기 97⅓이닝 66K 50사사구 ERA 4.53을 거두며 프로 데뷔 후 최다이닝을 소화했다. 다만 이닝소화가 늘어나면서 후반기 페이스가 떨어졌다. 특히 마지막 세 경기는 각 5⅓이닝 10피안타 1실점, 3이닝 6피안타(1피홈런) 4K 3볼넷 6실점, 1⅔이닝 2볼넷 2피안타 2실점을 거두며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결국 등판하지 못했다.

2.2.3. 2015 시즌

그리고 상무에서 전역한 지 1주일 만인 2015년 9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무려 5년 만에 1군 경기 선발투수로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엔트리 공간 부족으로 조정원, 채기영 임의탈퇴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술했듯 체력적 부담으로 인해 페이스가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한화 이글스가 김용주의 선발 등판이라는 모험을 택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으나, 5이닝 3피안타 3볼넷 2K 2실점(구원투수 송창식의 승계주자 실점)으로 깜짝 호투를 선보이며 데뷔 첫 승리를 기록했다. 속구의 구속은 시속 130km대 후반에 불과했고 중간중간 제구가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빠른 템포의 과감한 승부와 빼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삼성 타선을 5회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4] 한화 이글스의 실낱같은 5강 진출 희망을 이어감과 동시에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하였다.

10월 3일에 열리는 시즌 마지막 경기인 kt전에서의 선발등판이 결정되었다. 전역 후 복귀 경기에 이어서 3일 쉬고 선발등판이다. 그러나 3이닝 1피안타 3볼넷 1K 1실점으로 조기강판되었고, 그간 혹사당하던 송창식의 피홈런이 더해지며 팀이 패해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좌절되었다.

평가를 하자면 기대치에 비해선 깜짝 활약을 했으나, 김용주를 등록해버리고 보호선수 명단에 집어넣은 탓에 정우람, 심수창을 영입하면서 박한길, 조영우를 뺏겼다. 물론 그 와중에 선방한 편이긴 했으나.. 참고로 조영우는 2020년에 아쉬운대로 SK 1군에서 추격조 겸 땜빵 선발로 나오는 주전급으로 활약중이며,(물론 방어율이 5점대긴 하지만 WAR는 거의 1에 가깝다.) 김용주는 2016년 폭망하고 결국 한화에서 통산 WAR 음수를 찍고 한화를 떠났다.

12월에 있었던 독수리 한마당 후기에 의하면 FA로 팀에 합류한 정우람에게 57번을 양보하고 본인은 56번으로 바꿔단다고 한다.

2.2.4. 2016 시즌

3월 8일 첫 시범경기 선발로 나서 3이닝 3피안타 3삼진 1실점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초반 밸런스가 잡히지 않아 고생했으나,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니 점점 나아졌다고 한다.

3월 13일 삼성전 시범경기 선발로 나와 3이닝 5피안타 4볼넷 4실점으로 부진했다. 1회에 2아웃을 잘 잡고 백투백 홈런을 맞고 또 안타를 맞아서 1회에만 3실점했다.

3월 27일 KIA전 세 번째 투수로 나와 한 타자만 상대하고 김경태와 교체되었다.

4월 9일 퓨처스경기 선발로 등판, 7이닝 10피안타 5K 1실점했다.

4월 13일 1군으로 올라왔고, 14일 선발투수로 예고됐다. 막장이 된 선발투수진 속에서 어떤 투구내용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4월 14일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했다.[5] 첫 번째 타자 허경민을 볼넷, 두 번째 타자 정수빈을 볼넷으로 내보내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세 번째 타자 민병헌이 병살타를 치면서 이닝이 무난하게 마무리 되나 싶었으나, 네번째 타자 에반스에게 다시 볼넷을 허용하고 다음 타자 양의지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점수를 내줬다. 다음 타자 오재원마저 볼넷으로 누상에 내보내며 ⅔이닝 32구를 던진 끝에 송창식과 교체되었다. 뒤이어 등판한 투수 송창식이 오재일에게 초구 만루홈런을 맞은 건 덤. 자세한 비극은 2016년 송창식 혹사 사건 참고.

4월 16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퓨처스리그에선 4월 19일 삼성전에서 5⅔이닝 3피안타 1실점 승패 없음, 4월 24일에는 6⅓이닝 5피안타 2실점으로 승을 챙겼다. 현재 한화 2군에서 19이닝으로 제일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5월 6일 안영명을 대신해 1군으로 올라왔다. 패색이 짙은 kt전 7회 말 등판해 안타-볼넷-볼넷으로 무사 만루를 자초하고 박경수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아 2실점. 이후에는 8회까지 2이닝을 꾸역꾸역 막았다.

5월 7일 8회 말에 등판해 7구를 던지며 두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은 뒤 정우람과 교체되었다.

5월 18일 선발등판해서 1회부터 불안불안 하더니 결국 1이닝 4실점으로 터졌다.

5월 22일 이후로 등판기록이 없다가 권혁이 팔꿈치 통증으로 내려가는 상황이 발생한 뒤 대체 자원으로 일단 1군으로 올라갔다.

8월 25일 13:1로 크게 뒤진 상황에 올라와 2이닝을 22구 무실점으로 막았다. 시즌 ERA 11.57.

8월 27일 12:4로 크게 앞선 상황에 올라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던진 6번째 공이 볼이 되어 볼넷 하나를 허용하자마자 바로 강판당해 정대훈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정대훈이 남은 2이닝동안 실점하지 않아 실점하지는 않았다.

9월 10일 SK전에 장민재- 에릭 서캠프의 뒤를 이어 마지막 투수로 올라와 공 7개로 삼진 2개를 잡아냈고, 8번째 공이 이성열의 호수비로 플라이 아웃이 되어 무사히 경기를 무실점으로 마무리지었다. 참고로 이 날 한화가 SK를 14:0으로 이기자 이제서야 투입시키는 것으로 보아 김성근이 젊은 투수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점수 차이는 최소 10점 이상인 듯.

9월 27일 두산전에 나와 정재원, 김범수와 함께 무실점으로 경기를 막아냈다. 채 1이닝도 못 던졌지만 김범수가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낸 뒤 타선이 기적적인 역전승을 만들어냈기에 기록은 없었지만 승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셈이 되었다.

9월 28일 두산전에 나와 ⅓이닝 14구 2피안타 1볼넷 1실점(1자책)으로 부진했다. 평균 자책점도 9.77로 상승했다.

2.2.5. 2017 시즌

2군에 박혀있다. 문제는 9경기 0승 3패 ERA 8.87로 개판이다.

6월 29일 현재까지 ERA가 6점대로 높지만 최근 10경기는 4점대 초반으로 많이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4점대가 낮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 한화 2군 선수 중 꾸준하게 경기를 나오면서 평자가 3점대인 선수는 이충호밖에 없는 점을 고려하면 굉장히 준수하다고 볼 수 있다.

끝내 1군에 못 올라오고 시즌을 마감했다.

2.3. kt wiz 시절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t로 이적하였다. 북일고 출신 선수가 떠나는 것을 보는 몇몇 팬들은 수원 가서도 잘 하라거나 내친 김에 아예 5선발 자리를 꿰차라며 응원해주는 분위기였다. 여담으로 2차 드래프트에서 kt가 뽑은 3명은 모두 좌완 투수다.

2.3.1. 2018 시즌

3,300만 원으로 전년도와 같은 연봉에 계약을 체결했다. 몇 안 되는 동결자.

2월 1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평가전에서 주권의 뒤를 이어 3회 등판하여 첫 타자부터 홈런을 허용했으나, 이후 2이닝 동안 무실점했다. 특히 좌타자를 슬라이더 위주의 공략으로 잘 상대하는 모습을 보여 의외로 중간계투로 유용할 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2월 19일 청백전에서 강백호에게 홈런을 맞았다.

3월 16일 시범경기에서 마무리 투수인 김재윤이 4점차에서 나온 박경수의 어이없는 실책으로 흔들리자 등판해 팀이 2점차로 앞선 무사 1, 2루 상황을 장진혁을 뜬공으로, 지성준을 6-4-3 병살타로 아웃시켜 종료시켰다. 시범경기 첫 세이브는 덤.

5월 25일 LG와의 홈경기에서 임시 선발로 나왔다. 피로 증세가 있던 피어밴드의 회복이 늦어지는지라 같은 좌완인 김용주라도 써보려는 듯. 2이닝 4실점을 기록하면서 물러났지만 팀 타선이 폭발하면서 팀이 스코어 13-7로 승리를 거두며 노 디시전 경기가 되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초고속으로 다시 익산행 버스를 타고 말았다. 대신 1군에 등록된 선수는 외야수 김진곤.

2.3.2. 2019 시즌

퓨처스 리그에서조차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고, 시즌 후 배우열, 윤근영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었다.

3. 지도자 경력

2024년 야탑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0 한화 2 2 0 2 0 0 0.000 40.50 6 2 6 1 9 9 5.500
2011 1군 기록 없음
2012
2013 6 7 0 0 0 0 0.000 3.86 8 0 4 9 4 3 1.714
2014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복무
2015 2 8 1 0 0 0 1.000 3.38 4 0 6 3 3 3 1.250
2016 17 15⅔ 0 2 0 0 0.000 9.77 19 2 15 12 18 17 2.17
2017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8 kt 1 2 0 0 0 0 0.000 18.00 5 1 2 2 4 4 3.50
2019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5시즌) 28 34⅔ 1 4 0 0 0.200 9.35 42 5 33 27 38 36 2.14

5. 여담

  • 여러모로 같은 해 신인지명에서 팀 3순위로 지목된 안승민과 비교되어 까이고 있다(…). 알만한 사람들 전부 반대하는데 고집부려 뽑았으니 누굴 원망하겠느냐만. 지명을 이따위로 한 탓에 한화 내부에 이른바 '북일고 파벌'이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파일:/image/111/2009/08/17/1250487438340_1.jpg
* 드래프트 당시, 지명되지 못하자 울먹이는 안승민을 위로하는 모습. 물론 안승민은 불법도박으로 무너졌으니[6] 인생사 새옹지마.
  • 아마시절의 호성적이나 좌투수에 보이는 야구만 잘해보인다고 덥썩 상위지명을 하면 폭망한다는 반면교사를 심어준 선수이기도 하다. 헌데 한화에서만 그런 사례가 있는게 아니라 과거 삼성 라이온즈 시절 선동열좌완뽕에 취해 삼성의 라이트팬들조차 실링이 떨어지고 구속이 절대 오르지 않을거라며 거품물고 반대했음에도 고교 에이스에 좌투수라는 이유로 덥썩 상위지명을 한 박민규도 김용주와 아주 흡사하게 고교야구 레벨에서나 에이스 놀이를 하는 공만 왼손으로 던지는 느린볼 투수였다. 역시 죽을 힘을 다해도 130km/h 언저리였고 결국 몇 년안가 아무 족적도 못남기고 방출.
  • 김용주를 반면교사 삼아서 그랬는지 최근 드래프트에서는 프로 구단들에게 외면받은 구속 느린 에이스급 좌완투수들이 좀 있었다. 2019년 드래프트에서 각 학교의 1선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명되지 못한 임양섭(고려대), 박승수(동국대) 등... 근데 2020년 드래프트에는 최이경(동국대), 성재헌(연세대)같은 키가 175cm로 작고 구속은 느린데 아마에서는 에이스놀이를 하던 좌완투수들이 프로에 진출했다.[7] 사실 구속이 느리다고 무조건 망하는 것도 아닌 것이, 유희관처럼 속구 구속이 130km 초반대 수준이지만 변화구 로케이션과 완급 조절을 아주 잘해서 좋은 성적을 꾸준히 올린 유형도 있고, 백정현같이 디셉션을 잘 활용하여 느린 구속을 보완하는 유형도 있다. 또 멀리 보면 무려 국가대표로 뽑혀 일본전에도 등판한 흑마신 전병호 같은 사례도 있고... 심지어 한국보다 수준이 높은 일본에서도 종종 평균구속 130km/h대가 에이스 놀이를 하거나, 에이스 놀이는 아녀도 1군에서 살아남는 사례가 있다. 미국 MLB에서도 말년의 제이미 모이어처럼 느린 구속으로도 롱런하는 케이스 또한 제법 있다.

6. 관련 문서


[1] 실제로 3팀은 언론의 예상대로 지명했다. [2] 고교야구보다 더 팜이 죽어가는 한국대학야구를 보면 이런 이유로 본인보다 더 실력이 떨어지는 동기도 프로에 가는데 정작 에이스인 본인은 프로에 못 가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경우는 고교야구 시절부터 에이스였고 대학야구 시절까지 7년 내내 에이스급 활약하고 프로에 못 가기도 한다. 김용주와 비슷한 케이스로 광주진흥고- 고려대 출신의 좌완투수 임양섭은 고3 때 에이스였으나 프로지명 실패로 고려대로 진학했고, 3, 4학년 및 프로 지명을 위해 유예까지 한 기간 동안 에이스급 활약을 했음에도 결국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한 후 독립구단 및 프로구단 입단테스트까지 봤으나 최종적으로 프로로 진출하지 못하며 야구를 접은 케이스가 있다. [3] 훗날 박동희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하여 한화 프런트의 스카우트 전략을 비판했다. 아마추어 레벨의 변화구 구사력과 경기운영능력을 아무리 한화 스카우트진들이 높게 평가해봤자 프로야구 수준에는 한참 모자라는데 왜 지명을 했냐면서 꼬집었다. 이 말을 들은 박명환도 경기운영능력은 어차피 프로에 와서 다시 배워야 한다고 언급했다. [4] 근데 원래 삼성은 구속 느린 좌완을 처음 만났을 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전통이다(...) [5] 이 경기는 상대 선발이 상대 선발인지라 승리를 기대하는 한화팬은 없었다. [6] 심지어 방출된 시기도 김용주보다 1년 빨랐다. [7] 그러나 현실은.. 성재헌은 항목에도 나오지만 임선동의 지도 하에 144km/h까지 구속을 늘려서 그나마 8라운드에 지명됐다. 최이경도 구속은 140km 초반까지 나온다고 하고 제구력이 좋다고 한다. 참고로 둘 다 키는 같은 175c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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