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16:19:40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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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 ignotus: 불명
  • incertus: 불확실, 가이우스 세키우스 캄파누스가 계속 집권하였거나 아니면 불명의 다른 인물이 선출되었는지 불명확함
황제 겸 집정관 }}}
1년 1년 보결 2년 2년 보결 3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라미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발레리아누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3년 보결 4년 4년 보결 5년 5년 보결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카투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볼레수스 가이우스 비비우스 포스투무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가이우스 클로디우스 리키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그누스 가이우스 아테이우스 카피토
6년 6년 보결 7년 7년 보결 8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 루킬리우스 롱구스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8년 보결 9년 9년 보결 10년 10년 보결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가이우스 포파이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파피우스 무틸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말루기넨시스
아울루스 비비우스 하비투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퀸투스 포파이우스 세쿤두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블라이수스
11년 11년 보결 12년 12년 보결 13년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실리우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가이우스 비셀리우스 바로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13년 보결 14년 15년 15년 보결 16년
아울루스 카이키나 라르구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센나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16년 보결 17년 17년 보결 18년 18년 보결
가이우스 비비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비비우스 마르수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이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폼포니우스 그라이키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볼루세이우스 프로쿨루스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리비네이우스 레굴루스
18년 보결 19년 19년 보결 20년 21년
가이우스 루벨리우스 블란두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바르바투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빕스타누스 갈루스 루키우스 노르바누스 발부스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막시무스 메살리누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1년 보결 22년 22년 보결 23년 23년 보결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데키무스 하테리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그나이우스 트레멜리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가이우스 비비우스 루피누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가이우스 스테르티니우스 막시무스
24년 24년 보결 25년 25년 보결 26년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아비올라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
루키우스 비셀리우스 바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아그리파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26년 보결 27년 27년 보결 28년 28년 보결
퀸투스 유니우스 블라이수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피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가이우스 벨라이우스 투토르
29년 29년 보결 30년 30년 보결 31년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수르디누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루벨리우스 게미누스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세야누스
31년 보결 31년 보결 31년 보결 32년 32년 보결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푸블리우스 멤미우스 레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섹스투스 테디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 루키우스 풀키니우스 트리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카밀루스 스크리보니아누스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33년 33년 보결 34년 34년 보결 35년
루키우스 리비우스 오켈라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파울루스 파비우스 페르시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소라누스 가이우스 케스티우스 갈루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라이나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티투스 루스티우스 눔미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노니아누스
35년 보결 36년 36년 보결 37년 37년 보결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섹스투스 파피니우스 알레니우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루푸스 그나이우스 아케로니우스 프로쿨루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플라우티우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폰티우스 니그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게르마니쿠스
37년 보결 38년 38년 보결 39년 39년 보결
아울루스 카이키나 파이투스 마르쿠스 아퀼라 율리아누스 세르비우스 아시니우스 켈레르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퀸투스 산퀴니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푸블리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칼푸르니우스 세라누스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카이시아누스
39년 보결 39년 보결 40년 40년 보결 41년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 아울루스 디디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ignotus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페르 sine collega 퀸투스 테렌티우스 쿨레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41년 보결 41년 보결 41년 보결 42년 42년 보결
퀸투스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푸티우스 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케스티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세이우스 바라누스 푸블리우스 수일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이키나 라르구스
42년 보결 43년 43년 보결 43년 보결 43년 보결
코르넬리우스 루푸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섹스투스 팔펠리우스 히스테르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루키우스 페다니우스 세쿤두스 ignotus 스푸리우스 오피우스
44년 44년 보결 45년 45년 보결 45년 보결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티베리우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아일리아누스 아울루스 안토니우스 루푸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폼페이우스 실바누스 스타베리우스 플라비아누스
46년 46년 보결 46년 보결 46년 보결 46년 보결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카메리누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툴리우스 게미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47년 47년 보결 47년 보결 47년 보결 47년 보결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칼페타누스 란티우스 세다투스 그나이우스 호시디우스 게타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마르쿠스 호르데오니우스 플라쿠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바겔리우스 가이우스 볼라센나 세베루스
48년 48년 보결 49년 49년 보결 50년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퀸투스 베라니우스 루키우스 맘미우스 폴리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루키우스 빕스타누스 포플리콜라 메살라 빕스타누스 갈루스 가이우스 폼페이우스 롱구스 갈루스 퀸투스 알리우스 막시무스 마르쿠스 수일리우스 네룰리누스
51년 51년 보결 51년 보결 52년 52년 보결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디에누스 오르피투스 루키우스 칼벤티우스 베투스 카르미니우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티티아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소라누스
52년 보결 53년 53년 보결 53년 보결 54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 푸블리우스 트레보니우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루소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살비디에누스 루푸스 살비아누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안토니누스 퀸투스 카이키나 프리무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마르켈루스
54년 보결 55년 55년 보결 55년 보결 55년 보결
마르쿠스 아이풀라누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누메리우스 케스티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마르쿠스 트레벨리우스 막시무스
ignotus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55년 보결 55년 보결 56년 56년 보결 56년 보결
푸블리우스 팔푸리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 안나이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루푸스
티투스 쿠르틸리우스 만키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티투스 쿠티우스 킬투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프로쿨루스
56년 보결 57년 57년 보결 58년 58년 보결
루키우스 두비우스 아비투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아그리파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트라세아 파이투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카이시우스 마르티알리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58년 보결 59년 59년 보결 60년 60년 보결
아울루스 페트로니우스 루르코 가이우스 빕스타누스 아프로니아누스 티투스 섹스티우스 아프리카누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아울루스 파코니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마르쿠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마닐리우스 보피스쿠스
61년 61년 보결 62년 62년 보결 62년 보결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투르필리아누스 그나이우스 페다니우스 푸스쿠스 살리나토르 푸블리우스 마리우스 퀸투스 만리우스 타르퀴티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마룰루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카이센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루키우스 아피니우스 갈루스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니게르 티투스 클로디우스 에프리우스 마르켈루스
63년 64년 64년 보결 65년 65년 보결
가이우스 멤미우스 레굴루스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퀸투스 파비우스 바르바루스 안토니우스 마케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베스티누스 아티쿠스 푸블리우스 파시디에누스 피르무스
65년 보결 66년 66년 보결 66년 보결 67년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피우스 가이우스 루키우스 텔레시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아프리누스 마르쿠스 아룬티우스 아퀼라 루키우스 율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아니키우스 케리알리스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 가이우스 파키우스 아프리카누스 마르쿠스 베티우스 볼라누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67년 보결 67년 보결 68년 68년 보결 68년 보결
아피우스 안니우스 갈루스 티베리우스 카티우스 아스코니우스 실리우스 이탈리쿠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나탈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베룰라누스 세베루스 푸블리우스 갈레리우스 트라칼루스 가이우스 루키우스 텔레시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69년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세르비우스 갈바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오토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그나이우스 아룰레누스 카일루스 사비누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
티투스 비니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티티아누스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보피스쿠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아울루스 마리우스 켈수스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70년 70년 보결
파비우스 발렌스 그나이우스 카이킬리우스 심플렉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알리에누스 로시우스 레굴루스 가이우스 퀸크티우스 아티쿠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
70년 보결 70년 보결 71년 71년 보결 71년 보결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디누스 가이우스 루틸리우스 갈리쿠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바수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ignotus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카이키나 파이투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그나이우스 페디우스 카스쿠스 가이우스 칼페타누스 란티우스 퀴리날리스 발레리우스 페스투스
71년 보결 71년 보결 72년 72년 보결 72년 보결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핌브리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콜레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바르바루스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두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72년 보결 73년 73년 보결 73년 보결 73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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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74년 보결 74년 보결 74년 보결 74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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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클로디우스 에프리우스 마르켈루스 […]on[…] (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74년 보결 74년 보결 75년 75년 보결 75년 보결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파트루이누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루키우스 파시디에누스 피르무스
76년 76년 보결 76년 보결 76년 보결 7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탐피우스 플라비아누스 갈레오 테티에누스 페트로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마르쿠스 폼페이우스 실바누스 스타베리우스 플라비아누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길로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77년 보결 77년 보결 77년 보결 78년 78년 보결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보피스쿠스 가이우스 아룬티우스 카텔리우스 켈레르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 데키무스 유니우스 노비우스 프리스쿠스 (루푸스) 퀸투스 코렐리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아룬티우스 아퀼라 ignotus 루키우스 케이오니우스 콤모두스 루키우스 푸니술라누스 베토니아누스
78년 보결 78년 보결 79년 79년 보결 79년 보결
섹스투스 비툴라시우스 네포스 퀸투스 아르티쿨레이우스 파이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카이센니우스 파이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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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보결 80년 80년 보결 80년 보결 80년 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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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보결 80년 보결 80년 보결 81년 81년 보결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포스투무스 브라두아 섹스투스 네라니우스 카피토 마르쿠스 티티우스 프루기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실바 노니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로스키우스 코엘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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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 보결 81년 보결 81년 보결 82년 82년 보결
루키우스 베티우스 파울루스 가이우스 스코에디우스 나타 피나리우스 루키우스 카르미니우스 루시타니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세르바이우스 In]noc(ens)
티투스 유니우스 몬타누스 티투스 테티에누스 세레누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움브리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코케이아누스
82년 보결 82년 보결 82년 보결 82년 보결 83년
[…]an(us) [가이우스 아리니우스 Mo]dest(us)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파트루니우스 마르쿠스 라르키우스 마그누스 폼페이우스 실로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ignotus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사투르니누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퀴에투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루푸스
83년 보결 83년 보결 83년 보결 84년 84년 보결
마르쿠스 안니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테티우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칼벤티우스 섹스투스 카르미니우스 베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가이우스 피시우스 사비누스 테렌티우스 스트라보 에루키우스 호물루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니그리누스 쿠리아티우스 마테르누스 가이우스 오피우스 사비누스 ignotus
84년 보결 84년 보결 85년 85년 보결 85년 보결
가이우스 툴리우스 카피토 폼포니아누스 플로티우스 피르무스 ignotus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디누스 가이우스 루틸리우스 갈리쿠스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갈리카누스 ( 마르쿠스 라이키우스 또는 푸블리우스 글리티우스) 갈루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비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 메살리누스 루키우스 바이비우스 호노라투스
85년 보결 85년 보결 85년 보결 86년 86년 보결
푸블리우스 헤렌니우스 폴리오 데키무스 아부리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살비우스 리베랄리스 노니우스 바수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세키우스 캄파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헤렌니우스 폴리오 퀸투스 율리우스 발부스 [코르넬리우스] 오레스테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페트로니아누스
86년 보결 86년 보결 86년 보결 87년 87년 보결
incertus 섹스투스 옥타비우스 프론토 아울루스 부키우스 라피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크라수스 프루기 리키니아누스
퀸투스 비비우스 세쿤두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칸디두스 마리우스 켈수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티디우스 토시아누스 루키우스 야볼레누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87년 보결 87년 보결 88년 88년 보결 88년 보결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나탈리스 가비디우스 테바니아누스 가이우스 킬니우스 프로쿨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Ⅳ 데키무스 플로티우스 그리푸스 퀸투스 닌니우스 하스타
가이우스 두케니우스 프로쿨루스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미니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루필리우스 프루기 보누스
88년 보결 89년 89년 보결 89년 보결 90년
마르쿠스 오타킬리우스 카툴루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 푸블리우스 살루스티우스 블라이수스 아울루스 비키리우스 프로쿨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Ⅴ
섹스투스 율리우스 스파르수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사이니아누스 마니우스 라베리우스 막시무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푸시오 안니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루스티쿠스 퀸투스 아카이우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바이비우스 이탈리쿠스 루키우스 알비우스 풀라이에누스 폴리오
세르비우스 율리우스 세르비아누스 가이우스 카리스타니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아퀼리우스 프로쿨루스 그나이우스 피나리우스 아이밀리우스 키카트리쿨라 폼페이우스 롱기누스
90년 보결 91년 91년 보결 91년 보결 92년
마르쿠스 툴리우스 케리알리스 (또는 마르쿠스 투키우스 케리알리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데키무스 미니키우스 파우스티누스 퀸투스 발레리우스 베게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Ⅵ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카툴리누스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마리누스 푸블리우스 메틸리우스 사비누스 네포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92년 보결 92년 보결 92년 보결 93년 93년 보결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몬타누스 아프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스테르티니우스 아비투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실라누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콜레가 티투스 아비디우스 퀴에투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켈수스 폴레마이아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아룰레누스 루스티쿠스 퀸투스 페두카이우스 프리스키누스 섹스투스 루시아누스 프로쿨루스
93년 보결 94년 94년 보결 94년 보결 95년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라루스 섹스티우스 Na(so) 루키우스 노니우스 칼푸르니우스 토르콰투스 아스프레나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파울리누스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실리우스 데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Ⅶ
[투키우스 Ceria]lis 티투스 섹스티우스 마기우스 라테라누스 가이우스 안티우스 아울루스 율리우스 콰드라투스 티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
95년 보결 95년 보결 95년 보결 96년 96년 보결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마르켈루스 아울루스 부키우스 라피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폼포니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만리우스 발렌스 퀸투스 파비우스 포스투미누스
푸블리우스 두케니우스 베루스 루키우스 바이비우스 툴루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티투스 프리페르니우스 [파이투스]
96년 보결 97년 97년 보결 97년 보결 97년 보결
티베리우스 카티우스 카이시우스 프론토 임페라토르 네르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폴리나리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icus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프리스쿠스 섹스투스 헤르멘티디우스 캄파누스
97년 보결 97년 보결 98년 98년 보결 98년 보결
퀸투스 글리티우스 아틸리우스 아그리콜라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임페라토르 네르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페르 쿠르비우스 툴루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마테르누스 마르쿠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네르바 트라야누스
98년 보결 98년 보결 98년 보결 98년 보결 98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티투스 베스트리키우스 스푸린나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피우스 아울루스 비키리우스 마르티알리스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루푸스 아킬리우스 [Pri]scus 코엘리우스 스파르수스
루키우스 마이키우스 포스투무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페록스 리키니아누스
98년 보결 99년 99년 보결 99년 보결 99년 보결
퀸투스 풀비우스 길로 비티우스 프로쿨루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팔마 프론토니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크레티우스 바르바 퀸투스 파비우스 바르바루스 발레리우스 마그누스 율리아누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페록스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루푸스 퀸투스 소시우스 세네키오 세네키오 멤미우스 아페르 아울루스 카이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ignotus
100년 100년 보결 100년 보결 100년 보결 100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네르바 트라야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마르쿠스 마르키우스 마케르 루키우스 헤렌니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아쿠티우스 네르바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가이우스 킬니우스 프로쿨루스 폼포니우스 마밀리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투스쿠스
100년 보결 100년 보결
가이우스 율리우스 코르누투스 테르툴루스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마이키우스 켈레르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이킬리우스 세쿤두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사케르도스 율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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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
라틴어: Gaius Suetonius Paulinus
파일: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webp
생몰년도 미상 ~ 미상
출생지 로마 제국
사망지 로마 제국
지위 에퀴테스
국가 로마 제국
가족 미상
참전 부디카의 난
네 황제의 해
직업 로마 제국 집정관
로마 제국 집정관
임기 66년
전임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피우스
가이우스 아니키우스 케리알리스
동기 가이우스 루키우스 텔레시누스
후임 마르쿠스 안니우스 아프리카누스
가이우스 파키우스 아프리카누스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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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의 군인, 정치인. 부디카의 난 진압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장군이다.

2. 행적

기원 및 초기 생애는 알려진 바 없다. 그나마 알려진 정보는 고향은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이탈리아 도시 피시우룸(오늘날의 이탈리아 페사로)이며, 동시대 역사가이자 원로원 의원 타키투스가 그를 파울리누스라고 부른 점 정도다. 참고로 얼핏보면, 푸닉 출신의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와 친척 같지만, 수에토니우스와는 어떤 관련도 없으며,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아버지로 네 황제의 해에 참전했다는 수에토니우스 라에투스와도 어떤 관계가 없다.

그나마 남은 기록들에 의하면, 칼리굴라 황제의 신임 아래 서기 40년 법무관에 선임됐고, 칼리굴라 시대부터 황제의 도움 아래 승진을 거듭할 만큼, 파울리누스가 칼리굴라 측근 세력이었다는 것 정도다.

그는 마우레타니아 왕국의 국왕 프톨레마이오스가 로마에 방문한 뒤, 황제와 원로원이 벌인 프톨레마이오스 제거 직후, 원로원과 황제가 왕국을 나누고 속주화를 명할 때, 칼리굴라 황제의 강력한 추천 아래 마우레타니아 초대 총독으로 부임했다. 부임 직후, 칼리굴라 황제의 명에 따라 마우레타니아 왕국 병합과 함께 유바 2세 치세기부터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모두를 골치 아프게 한 마우레타니아 내전 문제인 동서 갈등 부분을 군사작전으로 처리했다. 이때 그는 지역 반란을 유도한 인사들을 관리하면서, 치안 유지를 맡아, 원로원과 황제가 함께 통과시킨 마우레타니아 왕국의 속주화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41년 1월 칼리굴라 암살 사건이 벌어졌다.

칼리굴라가 암살된 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등극한 직후 로마가 혼란해진 상황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해방노예 아이데몬이 주민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파울리누스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인사조치로 마우레타니아에 온 그나이우스 호시디우스 게타와 함께, 이를 진압했다. 칼리굴라의 명을 받고 마우레타니아에 왔을 때부터 이곳 지리, 사회 환경을 조사해 파악 중이었던 까닭에, 그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 이를 보고했고, 이를 기반으로 로마 제국은 반격했다. 파울리누스는 이때 왕국의 수도, 프톨레마이오스 지지자들이 중심이 된 동쪽을, 게타는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에 벌어진 타크파리나스 전쟁 당시 베르베르인들이 로마에게 격렬히 저항했던 서쪽 사막 일대 토벌을 담당했다. 대 플리니우스의 < 박물지>에 따르면, 그는 로마 역사상 최초로 군대를 이끌고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간 장군이었다고 한다.

칼리굴라 생전에 벌인 마우레타니아 속주 작업을 완수했고, 호시디우스 게타와 함께 아이데몬의 반란을 진압한 뒤, 로마로 나란히 귀환했다. 이후 58년, 임기 중 병사한 퀸투스 베라니우스를 대신하여 브리타니아 총독에 부임했다.

파울리누스는 전임 총독이 이끌었던 웨일스 부족에 대한 정복 정책을 이어갔다. 특히 60년 모나(현재 앵글시) 섬의 드루이드 성지를 공격해 드루이드 신자들을 학살하고 그들이 섬기는 떡갈나무 숲을 파괴했다. 그러던 61년, 이케니족의 여족장 부디카가 이웃 부족인 트리노반테스 족을 설득해 반란을 일으켰다. 갖은 수탈과 탄압을 가하는 로마 제국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부족들이 이에 호응했고, 나중에는 브리타니아 전체가 반란의 물결에 휩쓸렸다. 당시 로마군은 웨일즈의 모나 섬에 가 있었기 때문에, 브리타니아 본토에 남아있는 로마군은 얼마 되지 않았다. 부디카는 이 틈을 타 봉기하여 여러 초소에 흩어져 있는 로마군을 급습하고 로마 요새를 습격했다.

모나 섬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파울리누스는 제14 게미나 군단에서 약간의 분견대를 론디니움(오늘날 런던)으로 급파해 반란군보다 빨리 도착하게 했다. 그러나 그곳을 지키기에는 병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도시를 버리기로 하고 주민들에게 자신과 함께 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많은 주민은 정착촌을 떠나지 않고 남았다가 반란군에게 모조리 살육당했다. 반란군은 론디니움을 철저히 약탈하고 불살랐다. 그 후 부디카의 군대는 와틀링 스트리트를 따라 로마와 동맹을 맺은 카투벨라우니 족이 거주하는 베룰라미움으로 진격하여 역시 약탈하고 파괴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약 7만 명의 로마인 및 로마와 동맹을 맺은 브리튼인이 반란군에게 피살당했다고 한다.

한편, 트리노반테스족은 부디카의 이케니족과는 별도로 카물로두눔의 퇴역병 식민도시를 공격했다. 이 식민도시에는 방벽이 없었고 소규모 방어 수비대만 있었기 때문에, 총독 카투스 데키아누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무장이 덜 된 병사 200명만 보냈고, 그들은 반군에게 섬멸당했다. 카물로두눔은 곧 함락되었고, 그곳에 살던 로마인 전원이 학살당했다.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는 제9 히스파니아 군단을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하려 했으나 참패하여 보병을 전부 잃고 기병과 함께 요새화된 진영으로 후퇴해야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데키아누스는 공포에 질려 갈리아로 도망쳤다.

파울리누스는 제14 게르마니아 군단, 제20 발레리아 빅트릭스 군단과 보조 부대로 구성된 약 10,000명의 병력을 집결시킨 뒤 엑서터에 주둔하고 있는 제2 아우구스타 군단에 합류를 명령했다. 그러나 군단장 포에니우스 포스투무스는 가망이 없다고 보고 거부했다. 이후 파울리누스는 주민들과 함께 브리타니아를 완전히 떠날 지, 아니면 운명을 건 일전을 벌일 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전력상 절대 열세이지만 로마군의 전투력을 믿고 회전을 벌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숲을 배경으로 협곡과 접한 평야를 전장으로 선택해, 매복을 두려워할 필요 없이 탁 트인 평원에서 적 앞에 섰다. 전투 장소가 어디 인지는 타키투스가 기록하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으나, 현대 학계는 두 군대가 런던을 북서쪽으로 연결하는 와트링 스트리트를 따라 나란히 진군하다가 애서스톤 또는 맨케스터 인근에서 만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로마 군단병은 중앙에 배치했고 양익에 보조병을 배치했으며, 극좌익과 극우익에 기병을 배치했다고 한다. 반면 8만에 달하는 브리튼인은 무질서한 무리를 이루었으며, 후방에 수레 무리를 가득 배치하고 아이와 아내들을 그 위에 올려놓아서 전사들이 도망칠 틈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타키투스는 부디카가 동지들을 모아놓고 아래와 같이 연설했다고 밝혔다.
"나는 지금 고귀한 혈통의 후손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종족의 대표자로서 잃어버린 자유, 채찍질당한 내 몸, 내 딸들의 잃어버린 순결에 복수하려 한다. 로마인의 정욕은 너무 멀리 가서 우리의 인격은 물론 순결마저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지 않다. 하늘은 의로운 복수자의 편이다. 감히 우리와 대적하려 했던 군인은 파괴되었다. 나머지는 진영에 숨어 있거나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돌격과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이의 함성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대들이 아군의 위력과 전쟁의 원인을 잘 따져본다면, 우리가 이 전투에서 승리하거나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수에토니우스는 이에 대응하여 군단병들에게 아래와 같이 연설했다고 한다.
"저 야만인들의 소란은 무시하라. 그들의 지휘관은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그들은 군인이 아니다. 그들은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우리는 전에도 그들을 이겼으며, 그들이 우리의 무기를 보고 우리의 투지에 직면할 때 산산조각날 것이다. 함께 맞서 싸우자. 창을 던지고 나아가라. 방패로 놈들을 쓰러뜨리고 검으로 숨통을 끊어라. 약탈은 잊어버려라.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현대 학계는 타키투스가 연설을 꾸며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만 일각에서는 당시 브리타니아에서 장교로 활동했던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가 파울리누스의 휘하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타키투스가 장인 아그리콜라로부터 파울리누스의 연설을 전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후 벌어진 와트링 스트리트 전투에서, 로마군은 완승을 거두었고 부디카는 자결했다. 전투에 참가하길 거부했던 포에니우스 포스투무스는 파울리누스가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자 제2 아우구스타 군단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에 부끄러워하며 자살했다. 이후 파울리누스는 이케니 족과 트리노반테스 족에 대한 징벌 원정에 착수해 수많은 이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네로는 파울리누스가 브리튼인을 학살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접하고 또다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파울리누스를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투르필리아누스로 교체했다. 페트로니우스는 더 이상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고, 브리튼인들을 좀더 온건하게 대했다.

브리타니아 총독에서 물러난 파울리누스는 로마로 귀환한 뒤 66년 가이우스 루키우스 텔레시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출되어 1월부터 6월까지 임기를 수행했다. 68년 네로 황제가 자살한 뒤 69년 네 황제의 해가 벌어졌을 때, 파울리누스는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황제에 의해 총사령관에 선임되어 비텔리우스 라인강 방면 로마군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그가 이끌게 된 군대는 프라이토리아니 검투사, 해방노예로 구성된 잡다한 병력이어서 게르만족과의 오랜 전투로 단련된 라인강 방면 로마군의 전투력에 비할 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69년 3월 말 아울루스 카이키나 아일리우스가 이끄는 비텔리우스군을 격파했다. 그런데 동족상잔을 벌이는 것에 심적 부담이 컸는지 당장 추격해서 섬멸하자는 요구를 묵살하고 적이 크레모나로 후퇴하는 걸 내버려뒀다.

카이키나는 크레모나에서 병력을 재정비한 뒤 파비우스 발렌스의 또다른 군대와 합세해 재 공세를 벌일 준비를 갖췄다. 그들이 베드리아쿰으로 진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토는 군사 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파울리누스 등은 도나우 방면 로마군이 도착할 때까지 전투를 회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토의 형제 티티아누스와 근위대장 프로쿨루스는 당장 전투를 벌이자고 주장했다. 오토는 고심 끝에 아군이 저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서 사기가 크게 올랐으니 기세를 이어가면 또다시 이기리라 여기고 진격 명령을 내렸다.

오토 본인은 포 강 남쪽 둑에 있는 브릭셀리움에 상당한 예비군과 함께 남았고, 파울리누스 등이 이끄는 본대는 베드리아쿰으로 진군했다. 그러나 이어진 전투에서 압도적인 수적, 전투력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4만 명의 로마인이 죽었다고 한다. 오토는 브릭셀리움에서 패전 소식을 접하자 자결했고, 그는 비텔리우스 일당에게 체포된 뒤 자신이 베드리아쿰에서 의도적으로 패배했다고 주장해 사면받았다. 이것이 사실인지,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건지는 불분명하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