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라틴어: Manius Acilius Glabri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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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95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아들)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91년 |
전임 |
마르쿠스 툴리우스 케리알리스 (또는 마르쿠스 투키우스 케리알리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카툴리누스 |
동기 | 트라야누스 |
후임 |
데키무스 미니키우스 파우스티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마리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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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 유대교 또는 기독교를 신봉했다는 이유로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처형되었다.2. 생애
기원전 191년 집정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집정관을 배출한 노빌레스 가문인 아킬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그는 도미티아누스 치세인 91년 1월 미래에 황제가 될 트라야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가 3월에 집정관 직위를 데키무스 미니키우스 파우스티누스에게 넘겼다.로마의 저명한 시인 유베날리스에 따르면, 도미티아누스는 그가 강철 체력과 강력한 힘을 갖춘 것을 보고 그더러 경기장으로 내려가서 거대한 누미디아산 사자와 싸우라고 명령했다. 그는 사자를 몽둥이로 처단한 뒤 군중의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이에 질투심을 느낀 도미티아누스는 구실을 꾸며내어 추방한 뒤 몇 년 후 죽여버렸다고 한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도미티아누스는 95년 제국에 대한 음모를 꾸민 혐의로 그를 비롯한 여러 원로원 의원과 집정관을 처형했다고 한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조카이며 69년과 72년에 집정관을 역임한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의 아들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가 유대인의 관습에 이끌려 "무신론"( άθεότης )에 빠진 혐의로 처형된 이래 글라브리오를 비롯한 여러 인사가 똑같은 혐의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이에 따른다면 그는 유대교 또는 기독교를 믿다가[1] 처형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24년 집정관을 역임한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는 그의 아들로 추정된다.
[1]
서기 1세기의 로마 사회에서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분파로 볼 뿐 다른 종교로 취급하지 않았기에 실제로는 기독교인인데 '유대인의 관습을 받드는 자'로 취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