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14 14:09:00

TSV 1860 뮌헨

파일:1200px-3._Liga_logo_(2014).svg.png
2019-20 시즌 참가 클럽
{{{#!wiki style="color:#FFFFFF; margin: -0px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color:#555555"
파일:MSV.png
파일:Magdeburg.png
파일:Mannheim.png
파일:Meppen.png
파일:1200px-SC_Preußen_Münster_logo_(2018).svg.png
파일:1860Munchen.png
파일:E.Braunschweig.png
파일:V.Köln.png
파일:Würzburger_Kickers_Logo.png
파일:1200px-SG_Sonnenhof_Großaspach_logo.svg.png
파일:SpVgg_Unterhaching_Logo_2012.svg.png
파일:C.Z.Jena.png
파일:Uerdingen.png
파일:309px-FSV_Zwickau_logo.svg.png
파일:Kaiserslautern.png
파일:Chemnitzer.png
파일:Rostock.png
파일:Hallescher.png
파일:Ingolstadt.png
파일:Bayern.png
◀ 2. 분데스리가 참가 클럽 보기 레기오날리가 참가 클럽 보기
노르트
· 노르도스트 · 베스트 · 쥐트베스트 · 바이에른
}}}}}}}}} ||
파일:1860Munchen.png
TSV 1860 뮌헨
TSV 1860 München
정식 명칭 Turn- und Sportverein München von 1860
별칭 Die Löwen(사자들), Sechzger( 바이에른 방언으로 "60"이라는 뜻)
창단일 1860년 5월 17일
소속 리그 독일 3. 리가 (3. Liga)
연고지 바이에른 뮌헨(München)
홈 구장 그륀발더 슈타디온(Grünwalder Stadion)
(15,000명 수용)
라이벌 FC 바이에른 뮌헨 - 뮌헨 더비[1]
회장 로버트 라이징거(Robert Reisinger)
감독 미하엘 쾰너(Michael Köllner)
주장 펠릭스 베버(Felix Weber)
지난 시즌 성적 레기오날리가 바이에른 지구 1위
공식 웹 사이트 파일:1860Munchen.png
우승 기록
오베르리가 남부 (1부)[2]
(1회)
1962–63
분데스리가 (1부)
(1회)
1965-66
2. 분데스리가 (2부)
(3회)
1955, 1957, 1979
3. 리가 (3부)
(3회)
1984, 1990-91, 1993
레기오날리가 바이에른 (4부)
(1회)
2017-18
DFB-포칼
(2회)
1942, 1963-64


1. 개요2. 역사3. 역대 시즌
3.1. 2015-16 시즌3.2. 2016-17 시즌3.3. 2017-18 시즌3.4. 2018-19 시즌3.5. 2019-20 시즌
4. 홈 구장5.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관계6. 기타7. 유명 선수

1. 개요

흔히 1860 뮌헨이라 불리는 1860 뮌헨 체조 스포츠 클럽은[3] 독일 바이에른 뮌헨을 연고로 하는 스포츠 클럽이다. 축구, 체조, 레저, 골프, 농구,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 부서를 운영하고 있으나 본 문서에서는 축구 팀을 위주로 서술한다.

2. 역사

19세기 초중반 당시 독일 자유주의 성향을 지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체조 동호회를 창설하고 해당 모임 안에서 교류를 갖는 것이 유행했다. 1860 뮌헨 역시 이러한 체조 동호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3월 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848년 7월에 뮌헨 내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젊은이들이 체조 동호회를 만든 것이 바로 1860 뮌헨의 시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3월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체조 동호회는 당국에 의해 곧바로 폐쇄되지만, 이미 시대의 흐름은 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고 결국 바이에른 왕국 역시 국민들의 결사의 자유를 인정해 줘야 했다. 이에 따라 TSV 뮌헨은 1860년 5월 17일에 공식적으로 재설립되었다. 이 시기에는 말 그대로 순수한 체조 동아리였고, 축구팀은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1899년에야 창단한다.

1902년 최초의 공식 경기를 치른 데 이어 1911년에는 팀의 명칭을 지금과 같은 TSV 1860 뮌헨으로 변경한다. 1920-1930년대 내내 바이에른 지역 리그에서는[4] 강호였지만 당대 독일 내 최고의 팀이었던 FC 샬케 04에게[5] 연이어 발목을 잡히면서 독일 챔피언에 오르는 데 실패한다. 특히 1931년에는 결승전에 올랐지만 헤르타 베를린에게 밀리면서 통한의 콩라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몰락하고 나치 독일이 수립된 뒤에도 이러한 양상은 이어져서, 바이에른 내에서는 강호이지만 전국적으로는 어정쩡한 지위의 팀이었다. 그래도 1942년에는 오늘날 DFB 포칼의 전신이 되는 챠머 포칼(Tschammer Pokal)에서[6] 샬케를 2-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팀 역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도 바이에른 지역 리그에서 강호로 활동하다가 1963년 분데스리가가 설립되자 지역 라이벌 FC 바이에른 뮌헨을 제치고 분데스리가 창립 멤버로 참여하는 영예를 누린다.[7] 1960년대 중반은 여러모로 1860 뮌헨 역사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던 시기였다. 1964년에는 팀 역사상 두번째로 DFB 포칼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1965년에는 UEFA 컵위너스컵 결승 진출.[8] 1966년에는 마침내 서독 챔피언을 차지하였으며, 1967년에도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당시 독일 내 최강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라이벌 FC 바이에른 뮌헨 프란츠 베켄바워를 필두로 1960년대 후반부터 황금 시대를 열어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1860 뮌헨은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급기야 1970년에는 2부리그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고, 무려 7년동안 2부리그를 전전한 끝에 1977년 1부 리그에는 복귀했지만 1시즌만에 다시 강등됐다. 1980년 다시 1부 리그에 복귀했지만 1982년에 다시 2부리그로 강등되었는데, 이 당시 팀의 재정 악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프로 자격을 박탈당해 3부리그로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겪는다. 1992년에 베르너 로란트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분위기가 뒤집혔고, 1994년에 12년 만에 분데스리가로 재진입하는데 성공한다. 베르너 로란트 시기는 팀 역사상 나름대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는데, 우승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1부리그로 팀을 승격시켰고, 승격 이후 1부리그에서도 꾸준히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었다.[9] 특히 99-00 시즌에는 리그 4위를 기록하면서 근 40년만에 다시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쾌거를 기록하기도 했다.[10]

베르너 로란트가 지휘봉을 내려놓은 후에도 2시즌 동안 중위권의 성적을 기록했으나, 결국 03-04 시즌을 끝으로 2부리그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도 워낙 유서깊은 구단인 탓에 팬층이 두터워서 05-06 시즌 평균 관중 42,000여 명을 동원하였는데, 이는 04-05 시즌의 2만 명과 1부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된 03-04 시즌의 2만 8000명을 초과한 것으로 2부리그에서 가장 많은 평균 관객 동원 기록이다. 이 시즌 TSV 1860 뮌헨의 평균 관객 수는 분데스리가 1부를 포함해도 8위에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 승격을 하지 못하고, 2부리그에서도 중위권에 머물자 점차 관객 수가 감소하여 2만여 명 선으로 내려왔다. 12-13 시즌에는 6위, 13-14 시즌에도 13승 9무 12패 승점 48점을 기록하며 7위에 그쳤다. 14-15 시즌에는 부진에 빠져 16위에 가라앉아 강등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상대는 3부리그 3위인 홀슈타인 킬이었고, 1차전 원정 0:0 무승부, 2차전 홈에서 2:1 승리를 기록하며 2부 리그 잔류에 성공하였다.

3. 역대 시즌

3.1. 2015-16 시즌

15-16 시즌에도 부진을 거듭하면서 17위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막판에 3연승을 거두고 강등 경쟁팀들이 부진하면서 강등권 마지노선인 15위를 기록했고 2부리그 잔류에 성공하였다.

3.2. 2016-17 시즌

16-17 시즌에도 연패와 승리를 챙기는 것을 반복하면서 강등권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최종전에서 하이덴하임에게 1:2로 패배하면서 최종순위 16위를 기록, 3부리그의 3위 얀 레겐스부르크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뤘다. 원정에서 치뤄진 1차전에선 일단 1:1로 가까스로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2차전에서 0:2 패배를 당하며 3부리그로 강등되었는데, 라이센스 문제로 3부리그에서도 참여하지 못하면서 결국 4부리그인 레기오날리가 바이에른 지구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3.3. 2017-18 시즌

17-18 시즌은 시즌 시작부터 승리를 챙기면서 레기오날리가 바이에른 지구 2위를 기록했다. 5라운드가 끝난 뒤에는 1위 자리릍 탈환했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 자리를 유지했다. 최종 성적 승점 83점을 기록하면서 1위를 확정지었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레기오날리가 남서부 지구의 우승팀 1. FC 자르브뤼켄이었고 도합 1승 1무를 기록하면서 3. 리가로 승격했다.

3.4. 2018-19 시즌

시즌 내내 중상위권을 유지하면서 2부리그 승격을 노렸으나, 시즌 막판에 5연패를 하면서 12위까지 떨어지면서 승격이 좌절됐고, 오히려 강등권팀과의 승점차도 4점차로 좁혀지면서 잔류 걱정을 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37라운드에서 포르투나 쾰른에게 3:2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잔류를 확정지었다. 최종 성적은 12승 11무 15패, 12위를 기록했고, 강등권인 17위와의 승점차는 단 2점차였다.

3.5. 2019-20 시즌

18라운드가 끝난 현재까지 7승 4무 7패로 리그 10위에 랭크돼있다.

4. 홈 구장

2017-18 시즌부터 그륀발더 슈타디온를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11]

이전에는 FC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를 사용하다가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알리안츠 아레나를 홈구장으로 사용했다.[12] 알리안츠 아레나를 FC 바이에른 뮌헨과 공동 소유하고 있었으나 심각한 재정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50%의 지분을 매각하였으며, 구장을 임대하는 형태로 사용했었다. 그러나 17-18 시즌에 레기오날리가로 강등되면서 구장을 임대할 여건이 되지 않아 그륀발더 슈타디온으로 홈 구장을 옮겼다. 이 경기장은 바이에른 리저브 팀과 U-19팀의 홈구장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5.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관계

비슷한 시기[13]에 창설된 두 팀이지만, 초창기에는 별다른 라이벌 감정이 없었다. 애초에 1963년 분데스리가의 창설 이전까지 독일 내에서는 지역 단위의 리그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바이에른 단위의 지역 리그에서 두 팀은 매 시즌 맞붙었고 게다가 두 팀 이외에도 뮌헨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은 수두룩했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이 좀처럼 생겨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두 팀 사이의 라이벌 의식은 분데스리가가 창설된 1963년을 기점으로 대폭 증가된다. 독일 축구 협회는 분데스리가를 창설할 당시 한 도시 내에서 두 개의 팀이 동시에 참가하는 것을 규제했고, 이에 따라 처음에는 TSV 1860 뮌헨이 분데스리가에 참가했고, FC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원년 입성이 좌절되면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대폭 커지게 된다.

게다가 FC 바이에른 뮌헨이 분데스리가 진입에 성공한 1960년대 중후반에는 양팀이 모두 독일 내 최고의 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뮌헨 더비는 독일 전역을 들썩이게 하는 최고의 더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후 1970년대에 FC 바이에른 뮌헨이 전성기를 맞은 것과 반대로 1860 뮌헨이 몰락하면서 두 팀은 좀처럼 만날 일이 없었다. 오히려 이 시기 뮌헨의 최대 라이벌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였다. 1994년에는 1860 뮌헨이 분데스리가에 다시 진입했지만, 이미 두 팀 사이의 격차는 너무 벌어진 상황이었다.

양 팀 팬들 사이의 입장을 보면 1860 뮌헨 팬들이 일방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FC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1860 뮌헨에게 1. 분데스리가도 못올라오는 약팀으로 보는 등 무관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2015년에 1860 뮌헨 팬들이 FC 바이에른 뮌헨 팬 한 명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담당 판사가 바이에른 뮌헨 머천다이스샵에 가서 60만 원어치 굿즈를 사거나 감옥에서 15개월을 보내거나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판결을 내렸고, 피의자인 1860 뮌헨 팬들이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전자를 선택해서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분데스마니아 요약 빌트 지 (독일어) TZ (독일어)

17-18시즌 1860 뮌헨이 레기오날리가 바이에른 지구로 내려오면서 FC 바이에른 뮌헨 리저브 팀과 격돌하게 되었다. 홈경기인 1차전에서는 0:1로 패했고, 원정인 2차전에서도 1:3으로 패배했다.

19-20시즌에 FC 바이에른 뮌헨 리저브팀이 1860 뮌헨이 있는 3. 리가로 승격함에 따라 다시 맞붙었다. 1차전 홈경기에서는 1:1로 비겼다.

두 팀의 통산 전적은 204전 104승 50무 50패로 FC 바이에른 뮌헨의 압도적인 우세이다. 마지막 매치가 2008년 DFB 포칼 8강에서 맞붙었던 경기로 이 경기 이후 10년이 넘도록 더비 매치가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이 경기는 홈팀인 바이에른 뮌헨이 1-0으로 이겼다.

6. 기타

인천 유나이티드 무고사가 뛰었던 팀이기도 하다.

7. 유명 선수


[1]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1860 뮌헨이 1부, 바이에른 뮌헨이 2부에서 시작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1860 뮌헨이 더 강팀이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부 리그 소속이었다. [2]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 [3] Turn- und Sportverein 혹은 약칭 TSV가 이를 의미한다. [4] 이 당시 독일은 지역마다 리그가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해당 지역 리그의 우승팀들끼리 토너먼트를 거쳐 독일 전체의 챔피언을 가르는 시스템. 독일 전국적인 단위의 리그가 도입된 것은 1963년 분데스리가가 열리면서부터다. [5] FC 샬케 04는 분데스리가가 창설되기 전까지 독일 내 최다 우승팀이었다. 정작 분데스리가가 창설되고 나서는 우승한 적이 없다. [6] 돌격대의 수장이자 체육부 고위 관료를 지낸 한스 폰 챠머의 이름을 따왔다. [7] 당시 독일 축구 협회에서 한 지역에서는 한 팀만이 분데스리가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FC 바이에른 뮌헨보다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았던 1860 뮌헨이 분데스리가의 창립 멤버가 될 수 있었다. FC 바이에른 뮌헨이 분데스리가에 승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2년이 뒤난 1965년. [8] 결승에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를 만나 2-0으로 졌다. [9] 로란트 감독의 지휘에 있는 동안 1860 뮌헨은 분데스리가에서 94-95시즌부터 00-01 시즌까지 7시즌동안 각각 14위, 8위, 7위, 13위, 9위, 4위, 11위를 기록했다. [10] 조별단계 진출을 위한 3차 예선 라운드에서 리즈 유나이티드 FC에게 도합 1:3으로 패하면서 일찍 탈락했다. [11] 이 경기장은 1911년부터 1995년까지 1860 뮌헨이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경기장이기도 하다. [12] 이걸 놓고도 굉장히 말이 많았다. 처음에 구단주가 FC 바이에른 뮌헨과 공동으로 홈구장을 쓸 계획임을 밝혔을 때 분노한 팬들이 데모를 벌였을 정도였다. [13] TSV 1860 뮌헨이 1860년에 설립된 것은 맞지만 처음에는 그냥 체조 동아리였다. 축구 팀이 창설된 것은 1899년이다. FC 바이에른 뮌헨 역시 비슷한 시기인 1900년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