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4 19:31:57

프란치스코 페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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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rancois_Febus.jpg
Frantzisko I.a Nafarroakoa
가문 푸아 왕조
생몰년도 1467년 12월 4일 ~ 1483년 1월 7일
출생지 푸아 백국 베른
사망지 푸아 백국 베른
재위
기간
나바라 왕국 국왕 1479년 - 1483년
아버지 비아나 공 가스통
어머니 발루아의 마들렌
여동생 카탈리나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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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바라 왕국 31대 국왕.

2. 생애

1467년 12월 4일 푸아 백국 베른에서 비아나 공 가스통과 프랑스 국왕 샤를 7세의 딸 마들렌의 아들로 출생했다. 여동생으로 카탈리나가 있었다. 아버지 가스통은 푸아 백작 가스통 4세와 아라곤 국왕 추안 2세의 딸이자 나바라 왕국 왕위 계승자인 레오노르 1세의 아들로, 레오노르의 뒤를 이어 나바라 왕이 될 것으로 예정되었다. 그러나 1470년 11월 23일 보르도 인근의 리부르에서 열린 마상창시합에 참여했다가 입은 부상이 악화되면서 사망했고, 이로 인해 당시 3살이던 그가 차기 국왕으로 지명되었다.

1472년 할아버지 가스통 4세가 사망한 뒤 할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았고, 1479년 2월 12일 할머니 레오노르가 재위 15일만에 사망하면서 나바라 왕위에 선임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나바라 왕국, 베른의 독립 자작국, 푸아 백국, 비고라 백국, 마르잔 주, 카스텔보 자작국, 안도라 공국을 소유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기에 어머니 마들렌의 섭정을 받았고, 가스통의 형제이자 베른 주교, 아를의 대주교였던 푸아의 피에르가 조카를 도왔다.

당시 나바라 왕국은 나바라 왕국의 평야 지대인 레린 백국에서 세력을 키운 보몽(Beamont) 가문과 피레네 산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그라몽(Agramont) 가문 간의 심각한 내전으로 인해 혼란스러웠고, 이로 인해 나바라 국왕 대관식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가 내전이 진정된 1481년이 되어서야 나바라 왕국으로 들어왔고 그해 12월 9일 팜플로나 대성당에서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이후 1482년 2월 베른으로 돌아갔다.

한편, 그의 결혼 상대가 누가 될 것인지는 국제적 이슈가 되었다. 삼촌이자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는 포르투갈 국왕 아폰수 5세의 미망인이자 이사벨 1세에 맞서 카스티야 왕국의 정당한 왕위 승계자라고 주장하는 후아나 라 벨트라네하와 그를 결혼시키자고 제안했다. 아라곤 국왕이며 이사벨 1세의 남편인 페란도 2세는 이에 대응해 이제 갓 3살된 딸 후아나와 결혼시키자고 제안했다. 모후 마들렌은 이에 대한 대답을 최대한 미루면서 가능한 한 많은 이득을 챙기고자 했다.

그런데 1483년 1월 30일, 프란치스코 페부스는 16세의 나이에 베른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기록상에 전해지는 증세로 보건대 결핵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당시에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사후 레스카 대성당에 안장되었고, 나바라 왕위는 여동생 카탈리나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