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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so VI.a Nafarroakoa | ||
가문 | 세메노 왕조 | |
생몰년도 | 1132년 4월 21일 ~ 1194년 6월 27일 | |
출생지 | 나바라 왕국 팜플로나 | |
사망지 | 나바라 왕국 팜플로나 | |
재위 기간 |
나바라 왕국의 국왕 | 1150년 - 1194년 |
아르타호나 왕국의 국왕 | 1157년 - 1158년 | |
아버지 | 가르치아 5세 라미리츠 | |
어머니 | 레글의 마르그리트 | |
형제 | 수리아, 마르가리타, 로드리고, 산차(이복 형제) | |
배우자 | 카스티야의 산차 | |
자녀 | 나바라의 베렝겔라, 안초 7세, 수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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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바라 왕국 16대 국왕. 그의 시대부터 '팜플로나 왕국'이라는 명칭이 배제되고 '나바라 왕국'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2. 생애
1132년 4월 21일 나바라 국왕 가르치아 5세 라미리츠와 노르망디 공국의 남동쪽 경계에 자리잡은 영주 레글 가문의 질베르의 딸 마르그리트의 아들로 출생했다. 친형제로 수리아, 로드리고가 있었고, 이복 형제로 산차가 있었다. 아버지가 1150년 11월 21일 데예리에서 사망한 뒤 나바라 왕국의 새 국왕이 되었다.그가 즉위할 당시 나바라 왕국의 입지는 상당히 불안정했다. 1076년 아라곤 국왕 산초 라미레스가 나바라 국왕을 맡은 이래, 나바라 왕국은 50여년간 아라곤 국왕의 통치를 받았다. 1134년 9월 7일 알폰소 1세가 사망한 뒤 나바라 왕위에 오른 가르치아 5세 라미리츠는 1135년 아라곤 왕국의 봉신이자 아라곤 국왕 라미로 2세의 아들을 자처했다가 나중에는 아라곤 왕국에 등을 돌리고 레온과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7세의 봉신을 자처했다. 하지만 1137년에는 포르투갈의 아폰수 1세와 동맹을 맺고 알폰소 7세와 전쟁을 벌였다. 이후에는 카스티야 왕국과 평화 협약을 맺었고, 아라곤 왕국을 공격해 타우스테를 공략한 뒤 알폰소 7세의 중재하에 아라곤 왕국과 화해했다.
이렇듯 아라곤과 레온-카스티야 왕국을 상대로 봉신을 자처하다가 전쟁을 일으켜서 이득을 챙긴 뒤 화해하는 식으로 일관했으니, 두 나라가 나바라 왕국을 좋게 볼 리 만무했다. 레온과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7세와 아라곤에서 바르셀로나 백작이자 아라곤 여왕 페트로닐라의 남편으로서 왕권을 행사하던 라몬 베렝게르 4세는 1151년 1월 27일 투딜렌 협약을 체결해 나바라 왕국의 영역을 분할하기로 했다. 두 강대국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안초 5세는 투딜렌 협약을 따르겠다고 맹세해야 했다.
이후 자신의 여동생 수리아를 알폰소 7세의 장남인 산초와 결혼시킴으로써 알폰소 7세의 호의를 얻어내려 애썼다. 1153년 중반에는 소리아에서 알폰소 7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대가로 봉신 협약을 갱신했으며, 1157년 6월 2일 카리온 데로스콘데스(현재 팔렌시아)에서 알폰소 7세의 딸 산차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폰소 7세는 1157년 중순에 라몬 베렝게르 4세와 레리다에서 만나서 나바라 왕국을 분할하기 위한 새로운 협약을 맺었다. 안초 6세에겐 다행히도, 알폰소 7세가 레리다 협약을 이행하기 전인 1157년 8월 21일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레리다 협약 집행이 미뤄졌다.
이후 알폰소 7세의 아들 산초 3세가 레온-카스티야의 새 국왕으로 등극했으나, 1158년 8월 31일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왕관이 갓난아기였던 알폰소 8세에게 넘어갔다. 이후 섭정을 놓고 레온과 카스티야 귀족들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면서, 레온-카스티야 왕국은 나바라 왕국에 더는 신경쓰지 못했다. 여기에 1162년 8월 8일 라몬 베렝게르 4세가 사망한 후 홀로 통치를 이어가던 페트로닐라 여왕이 1164년에 7살된 아들 알폰소 2세에게 양위하면서, 아라곤 왕국 역시 나바라 왕국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졌다.
안초 6세는 이 때를 틈타 세력 재건에 착수했다. 우선 아라곤 왕의 섭정을 맡은 인사들과 13년간의 휴전을 체결했다. 이후 'Pampilonensium Rex(팜플로니아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더 이상 쓰지 않고 'Rex Navarre(나바라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겠다고 선포했다. 1162년 가을, 안초 6세는 카스티야를 침공해 라리오하 지역 일부를 공략했다. 1163년에는 무와히드 왕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무르시야의 타이파 무함마드 이븐 마르다니스(Muhámmad ibn Mardanix)[1]를 지원함으로써 무슬림의 공세를 받을 위험성을 줄였다. 1165년 1월 28일 카스티야 왕국으로부터 떨어져나간 레온 왕국의 페르난도 2세와 투델라 협약을 체결해 빼앗겼던 영토를 돌려받았고, 1167년 10월에는 카스티야와 휴전을 맺었으며, 1168년 12월 19일 아라곤의 알폰소 2세와 만나 무슬림으로부터 정복한 땅을 분할하기로 했다.
1170년 6월 카스티아 국왕 알폰소 8세와 아라곤 왕 알폰소 2세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의 중재로 사하군에서 어떠한 적을 만나든지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합의하고 과거에 알폰소 7세와 라몬 베렝게르 4세가 맺었던 투딜렌 협약을 재차 비준했으며,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알폰소 8세의 고모인 산차와 알폰소 2세의 결혼을 주선하기로 했다. 여기에 헨리 2세는 자신의 딸인 엘레오노르를 알폰소 8세에게 시집 보내기로 했다. 이로 인해 나바라 왕국은 또다시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에 포위된 형세에 몰렸고, 여기에 잉글랜드까지 두 나라에 도움을 줬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버거워졌다. 나바라 왕국의 일부 귀족들은 대세가 떠났다고 여기고 아라곤이나 카스티야 왕국에 귀순했다.
하지만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 모두 내부사정과 무슬림과의 전쟁으로 인해 나바라 왕국에 큰 압박을 가하지 못했고, 상황을 가만히 살펴보던 안초 6세는 1173년 카스티야를 공격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뒤 알마잔에서 빼앗은 영토를 귀족들에게 분배했다. 그러나 1174년 봄,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군대가 나바라 왕국을 합동으로 공격했다. 그해 7월 아라곤 왕 알폰소 2세는 밀라그로 성을 공략하고 파괴했으며,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8세는 나바라군을 격파한 뒤 안초 6세가 있던 르귄 성을 포위 공격해 함락시켰다. 안초 6세는 가까스로 빠져나가 산골짜기로 도주했고, 양군은 나바라 각지를 파괴한 뒤 철수했다.
1175년 여름 아라곤과 카스티야 연합군이 재차 나바라를 침공해 타격을 입히고 돌아갔고, 1176년 여름엔 카스티야군이 쳐들어와 르귄 성을 재차 공략했다. 이에 안초 6세는 그해 8월 25일 알폰소 8세와 7년간의 휴전 협약을 맺은 뒤 영국 국왕 헨리 2세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1177년 3월 16일, 알폰소 8세와 안초 6세는 헨리 2세의 중재에 따라 협약을 맺었다. 이에 따르면, 두 나라는 1158년의 국경으로 돌아가야 했다. 안초 6세는 로그로뇨, 나바레테, 엔트레나, 아우세호를 반환해야 했고, 알폰소 8세는 레귄 등 여러 성을 복구하기로 했다. 또한 알폰소 8세는 안초 6세에게 10년간 매년 3,000 마라베디를 보상금으로 지불하기로 했다.
1179년 4월 15일, 안초 6세와 알폰소 8세는 나헤라와 로그로뇨 사이의 지점에서 만나 국경을 명확하게 정의해 영토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도로 평화 협약을 맺었다. 이때 나바라 왕국은 더이상 카스티야 왕국의 봉신이 되지 않고 오로지 아라곤 왕국에 복종하겠다는 문구가 협약서에 삽입되었다. 이후 두 나라는 서로에게 빼앗았던 영토를 상호 반환했다.
안초 6세는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간의 분쟁을 종식한 뒤 내치를 다지는 데 힘을 기울였다. 세금 징수를 개선하기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했으며, 여러 도시에 특권을 부여하고 무역을 장려했다. 1190년 9월 7일에는 아라곤 국왕 알폰소 2세와 보르하에서 맞아 상호 우호 및 원조 협정에 체결했다. 두 왕은 1191년 7월에 타라조나에서 다시 만나 서로간의 우정을 재확인했다. 또한 카스티야의 알폰소 8세에 대항하는 우에스카 동맹(아라곤의 알폰소 2세, 레온의 알폰수 9세, 포르투갈의 산슈 1세)에 가입하라는 제의를 받아들이고 1192년 아라곤 왕국과 함께 카스티야 왕국을 침공하여 소리아 일대를 황폐화시켰다.
한편, 안초 6세는 푸아티에 백작을 맡고 있던 리처드 왕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리처드는 1186년 아라곤 왕 알폰소 2세와 안초 6세의 분쟁을 조정해준 적이 있었는데, 안초 6세는 이때부터 그를 눈여겨봤던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의 어머니이자 잉글랜드의 왕비인 엘레오노르 다키텐가 헨리 2세에 대한 반란을 촉발했다는 잉유로 유폐되었을 때, 그는 산차 왕비와 함께 엘레오노르의 석방을 요청했다. 1190년 2월 잉글랜드 왕이 된 뒤 나바라 왕국 국경 근처까지 영지를 순회하던 리처드 1세는 안초 6세와 서신을 주고받은 끝에 그의 딸인 나바라의 베렝겔라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리처드는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착수하면서 베렝겔라를 함께 데려가기로 마음먹고 리처드의 모후 엘레오노르를 나바라를 방문해 자신이 있는 곳으로 베렝겔라를 데려오게 했다. 베렝겔라는 결혼을 위해 시어머니가 될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함께 시칠리아의 메시나에 도착한 뒤, 리처드 1세의 누이이자 서거한 시칠리아 선왕의 왕비였던 조안과 함께 지중해를 항해하는 리처드를 따라갔다. 그러다가 폭풍우를 만나 베렝겔라와 조안이 탄 배가 키프로스에 표류했는데, 키프로스에서 황제를 자칭하고 있던 키프로스의 이사키오스 콤니노스에게 납치되었다. 리처드 1세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키프로스를 공격해 이사키오스 콤니노스를 체포하고 베렝겔라를 구출한 뒤 1191년 5월 12일 비로소 결혼식을 거행했다. 이후 나바라 왕국은 푸아티에 백국의 후원을 받았다.
1194년 6월 27일, 안초 6세는 나바라 왕국의 수도 팜플로나에서 사망했다. 사후 아들 안초 7세가 나바라 왕국의 새 국왕에 등극했다.
3. 가족 관계
- 카스티야의 산차(1139 ~ 1179): 레온과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7세의 딸.
[1]
일명 '루보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