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22:44:01

가르치아 5세 라미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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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tzia V.a Ramiritz
가문 세메노 왕조
생몰년도 1112년 ~ 1150년 11월 21일
출생지 아라곤 왕국 몬손
사망지 팜플로나 왕국 데예리
재위
기간
팜플로나 왕국의 국왕 1134년 - 1150년
아버지 라미로 산체스
어머니 크리스티나 로드리게스
배우자 레글의 마르그리트, 우라카 라 아스투리아나
자녀 안초 6세, 수리아, 마르가리타, 로드리고, 산차

1. 개요2. 생애3. 대중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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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팜플로나 왕국 15대 국왕.

2. 생애

1112년경 아라곤 왕국 몬손의 영주 라미로 산체스와 엘 시드의 장녀 크리스티나 로드리게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 안초 가르체이츠는 팜플로나 국왕 가르치아 4세 산치츠 사생아였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몬손의 영주가 되었고, 르그도뇨를 보유하기도 했다.

1134년 아라곤과 팜플로나의 국왕 알폰소 1세가 전투에서 입은 부상에 악화되면서 사망했다. 알폰소 1세는 유언장에서 자신의 왕국을 성전 기사단, 구호 기사단, 성묘 기사단에 양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라곤과 팜플로나 귀족들은 이를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아라곤 귀족들은 알폰소 1세의 동생이며 수도 생활을 하던 라미로를 속세로 꺼내 아라곤 국왕 라미로 2세로 추대했다. 팜플로나 귀족들은 처음에는 아라곤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인 아타레스 가문의 일원인 페드로 데 아타레스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지만, 그가 무척 거만한 태도를 보이면서 자신들을 깔보자 마음을 바꿔 가르치아 라미리츠를 새 국왕으로 추대하기로 했다.

아라곤에서 왕으로 추대된 라미로 2세가 그의 즉위에 반대하면서 양국간 내전이 벌어질 조짐이 보였지만, 1135년 1월 양자는 바돌루엥고 조약을 통해 화합했다. 가르치아 5세는 아라곤 왕국이 팜플로나 왕국의 주권자임을 인정하며 라미로를 아버지로 모시기로 했고, 라미로 2세는 그가 팜플로나에서 통치를 행사하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르치아 5세는 1135년 7월에 입장을 바꿔 자신이 레온과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7세의 봉신이라고 선언하고 알폰소 7세의 보호를 받았다. 알폰소 7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가르치아 5세에게 사라고사를 봉토로 내줬다. 그러나 1137년 바르셀로나 백작 레이몬드 베렝가르가 사라고사를 가로채면서, 팜플로나 왕국의 사라고사 통치는 1년만에 종식되었다.

1137년, 가르치아 5세는 포르투갈의 아폰수 1세와 동맹을 맺고 알폰소 7세와 전쟁을 벌였다. 그러다 1139년에서 1140년 사이에 평화 협약을 맺은 뒤 카스티야와 동맹을 맺고 1147년 카스티야 왕국이 알메리아를 정복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1146년에는 아라곤에 속한 타우스테를 공략했고, 알폰소 7세의 중재하에 아라곤 왕국과 평화 협약을 맺었다. 1150년 11월 21일 데예리에서 사망했고 팜플로나의 산타마리아 라레알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사호 장남 안초 6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노르망디 공국의 남동쪽 경계에 자리잡은 영주 레글 가문의 질베르의 딸 마르그리트와 결혼하여 안초 6세와 수리아, 마르가리타를 낳았다. 수리아는 카스티야 국왕 산초 3세와 결혼했고, 마르가리타는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 구기에르무 1세와 결혼했다. 1141년 아내 마르그리트가 사망한 뒤 알폰소 7세의 사생아인 우라카 라 아스투리아나와 재혼하여 딸 산차를 낳았다. 산차는 베아른의 가스통 5세와 결혼했고, 가스통 5세 사후엔 나르본 자작이자 몰리나 영주인 페드로 만리케 데 라라와 재혼했다.

3. 대중 매체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1134년 이후 등장, 할아버지부터 히메네스 왕조가 아닌 나바라 왕조로 분가되었기에 그의 가문은 나바라 왕조가 된다. 나바라 왕국을 복구한 왕이라 그런지 복구자라는 칭호를 달고 있다. 땅은 팜플로나 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