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13:49:12

필리페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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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hilip_III_of_Navarre.jpg
Filipe III.a Nafarroakoa
가문 에브뢰 왕조
생몰년도 1306년 3월 27일 ~ 1343년 9월 16일
출생지 프랑스 왕국 에브뢰 백국
사망지 나바라 왕국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
재위
기간
나바라 왕국의 국왕 1328년 - 1343년
아버지 에브뢰 백작 루이
어머니 아르투아의 마르그리트
형제 마리, 샤를, 마르그리트, 잔느
배우자 호아나 2세
자녀 호아나, 마리아, 루이스, 블랑슈, 카를로스 2세, 필리페, 아녜스, 루이스, 호아나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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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바라 왕국 26대 국왕.

2. 생애

1306년 3월 27일 프랑스 왕국의 에브뢰 백국에서 에브뢰 백작 루이와 아르투아 백작 필리프의 장녀 마르그리트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마리[1], 샤를[2], 마르그리트[3], 잔느[4]가 있었다. 12살 때인 1318년 3월 27일에 당시 6살이었던 샹파뉴 백국 상속권자 잔느와 약혼했고, 그해 6월 18일에 두 사람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그 후 잔느는 필리프의 할머니인 브라반트의 마리에게 양육되었지만, 두 사람 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1324년까지 합방하지 않았다.

131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에브뢰 백국을 상속받았지만 아직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삼촌 샤를 드 발루아가 후견인을 맡았다. 1322년 잔느를 밀어내고 프랑스 왕위를 가졌던 필리프 5세가 아들 없이 사망했고 뒤를 이은 동생 샤를 4세 마저 1328년 아들을 낳지 못한 채 사망했다. 이에 필리프는 아내 잔느와 함께 프랑스 왕위에 도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세력은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에 비할 바 아니었기에 프랑스 왕이 될 가망은 별로 없었다.

이에 잔느와 필리프 부부는 나바라 국왕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필리프 6세는 여기에 문제를 제기했다. 나바라 왕국과 샹파뉴 백국, 에브뢰 백국이 통합된다면 프랑스 국왕의 권위를 위협할 정도로 강대한 국가가 탄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필리프 6세는 과거 외드 4세와 필리프 5세가 약속한 대로 브리와 샹파뉴 백국을 잔느에게 넘겨주기를 거부했다. 그 대신에, 코탕탱 반도의 일부인 모르탱, 벡생, 퐁투아즈, 보몽 쉬르 우아즈, 아스니에르 쉬르 우아즈를 넘겨주기로 했다. 이때 앙굴렘 역시 양도하기로 했지만, 필리프 6세는 죽을 때까지 앙굴렘을 넘기지 않았다.

그렇게 합의를 이룬 후, 잔느와 필리프는 쉴리의 영주 앙리 4세와 필리프 드 멜룬을 나바라 총독으로 선임해 통치를 대행하게 했으며, 통치 권한을 놓고 나바라 왕국의 귀족들과 긴 협상을 벌였다. 나바라인들은 잔느를 여왕으로 받드는 데엔 동의했지만, 지금까지 나바라 왕국과 별 관련이 없던 에브뢰 백작 필리프까지 왕으로 추대하는 것엔 주저했다. 하지만 잔느가 총독들을 통해 남편 역시 공동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그들은 1328년 11월 론체스발레스에서 열린 나바라 회의에서 이 문제를 놓고 협의했다. 그 결과, 그들은 필리프를 공동 왕으로 옹립하기로 했다. 다만 새 군주가 방패에 오르거나 군중에게 돈을 던지는 등 대관식의 모든 전통적인 요소들은 오직 잔느만 수행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였다.

1329년 초 나바라로 향한 잔느와 필리프는 3월 5일 팜플로나 대성당에서 각각 '호아나 2세'와 '필리페 3세'로서 나바라의 공동 왕으로 등극했다. 그 후 두 사람은 나바라 통치에 긴밀하게 협력했다. 두 사람의 통치 기간 동안 발효되어 현재까지 전해지는 85개의 왕실 법령 중 41개의 문서가 두 사람의 이름으로 발행되었다. 호아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법령은 38개였고, 필리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문서는 6건이었다.

한편, 호아나와 필리페가 나바라 귀족들과 장기간 협의하고 있던 사이에 팜플로나에서 반 유대 폭동이 벌어져 많은 유대인이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두 사람은 즉위식을 마무리한 뒤 폭동 주모자들을 처벌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또한 왕궁의 요새들을 수리하고 카스텔레노에 새로운 성을 세웠다. 투델라 주변의 건조한 들판을 관리하는 관개체계도 두 사람의 지원으로 조직되었다.

또한 두 사람은 아라곤, 카스티야 왕국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기를 희망했다. 1329년 아라곤 국왕 알리폰소 4세의 아들 페로(훗날 페로 4세)와 맏딸 호아나와의 약혼에 대한 협상을 시작했으며, 1330년 3월 15일 살라망스에서 카스티야 왕국과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 호아나와 페드로의 결혼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1336년 두 번째 딸 마리아와 페드로의 결혼이 성사되면서 나바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의 결혼 동맹이 맺어졌다.

부부왕은 1331년 9월 나바라 왕국을 일시적으로 떠나 각자의 영지를 관리했으며, 프랑스 총독들이 그들을 대신해 나바라 왕국을 관리했다. 1335년 카스티야 왕국과의 국경지대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졌지만 규모는 크지 않았고, 1336년 2월 28일 평화 협약이 재차 체결되었다. 1336년 4월, 두 사람은 나바라로 돌아와서 1337년 10월까지 직접 통치를 행사했고, 이후에는 다시 프랑스의 영지로 돌아갔다. 필리페는 몇년 후에 나바라로 이동했지만, 호아나는 프랑스에 계속 머물렀다.

1343년, 필리페 3세는 그라나다 토후국을 향한 십자군에 참가했다. 그해 7월에 100명의 기사와 300명의 보병을 이끌고 알헤시라스 공방전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 해 9월 초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은 후 중병에 걸렸다.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11세가 보낸 주치의는 식단을 바꾸라고 권했지만, 나바라 왕궁 주치의는 고기를 즐겨먹는 식단을 고칠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필리페 3세는 나바라 주치의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팜플로나로 귀환하다가 1343년 9월 16일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에서 병세가 악화되면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팜플로나로 옮겨졌고, 심장은 파리로 이송되어 쿠벵 드 자코뱅에 안장되었다. 이후 호아나 2세가 나바라 왕국을 단독으로 다스리다가 1349년 10월 6일 페스트에 걸려 사망했고, 아들 카를로스 2세가 나바라 국왕으로 등극했다.

3. 가족 관계

  • 호아나 2세(1312 ~ 1349): 나바라 여왕.
    • 호아나(1326 ~ 1387): 아라곤 왕자 페드로(훗날 페드로 4세)와 혼사가 오갔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나중에 롱샹의 프랑치스코회 수녀원의 수녀가 되었다.
    • 마리아(1329~ 1347): 아라곤 국왕 페드로 4세의 왕비.
    • 루이스(1330 ~ 1334): 요절
    • 블랑슈(1331 ~ 1398):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의 왕비.
    • 카를로스 2세(1333 ~ 1387): 나바라 국왕.
    • 필리페(1336 ~ 1363): 롱그빌 백작. 프랑스 국왕 1353년 장 2세를 축출하고 프랑스 왕위를 쟁취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했다.
    • 아녜스(1334 ~ 1396): 푸아 백작 가스통 3세의 부인.
    • 루이스(1341 ~ 1372): 보몽레로제 백작, 두라초 공작.
    • 호아나(1342 ~ 1403): 로앙 자작 장 1세의 부인.


[1] 1303 ~ 1335, 브라반트 공작 장 3세의 부인 [2] ? ~ 1336, 에탐페스 백작 [3] 1307 ~ 1350, 오베르뉴 공작 기욤 12세의 부인 [4] 1310 ~ 1370, 프랑스 국왕 샤를 4세의 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