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07:45:44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
파일:탐태창2.jpg
장르 대체역사, 환생
작가 코락스
출판사 (주)제이트리미디어
연재처 문피아
네이버 시리즈
연재 기간 2023. 07. 03. ~ 연재중
이용 등급 전체 이용가

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역대 표지5. 특징6. 등장인물7. 설정8. 개변된 역사
8.1. 국내8.2. 국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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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코믹 대체역사물 웹소설. 작가는 《 죽지 않는 왕-무왕 단종》, 《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를 집필한 코락스. 약칭은 탐태창, 또는 변경 전 제목에서 따온 조선뒤주.

시대 배경은 1748년( 영조 24년)부터 시작한다.

2. 줄거리

조선에 떨어졌다. '게장의 영조대왕'과 '뒤주의 사도세자' 사이에서 영의정이 되어야만 한다.
비누도 총도 증기기관도 만들 줄 모른다.
본격 문과형 대체역사소설 시작합니다.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3년 7월 3일부터 연재를 시작하였다. 본래는 '조선 뒤주 서바이벌 : 나는 영의정이다.' 라는 제목이었으나 제목 변경 공모전을 통해 8월 11일 자로 현재의 제목인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이 되었다. 제목을 바꾼 효과가 있었는지 8월 19일자 문피아 무료 소설 3위에 올랐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8월 23일부터는 유료로 전환되었다.

4. 역대 표지

역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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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탐태창 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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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표지 2차 표지 }}}}}}}}}

5. 특징

현대인이 화약과 비누라는 기술 치트나 빠른 문명개화 같은 현대인 천재론으로 승승장구하는, 클리셰적인 전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점이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이세계라고 생각될 만큼 낯선 사회상으로 이뤄진 18세기 조선에 주인공이 철저하게 적응해서 조선의 논리와 방식으로 출세의 계단을 하나씩 밟아가는 전개를 보여준다. 한국 대체역사 웹소설에서는 대체로 배척되는 상태창이 작중에서 적극 활용되는 것도 특징. 대체역사물이 아니라 '18세기 조선이라는 이세계'에 현대인이 떨어지는 이세계 전생물에 가까운 작품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컨셉은 승경도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작 중 내에서는 초반에만 잠깐 언급되고, 중간중간에 조금씩만 언급되어서 잘 알아보기 어렵지만, 작품 공개 전에는 '영조가 주인공을 말 삼아서 승경도 쥬만지를 하는 작품' 이라는 스포일러가 알려져 있었다.

조선의 미시적인 생활사나 조선인들의 사고 방식이 매우 상세하게 고증되어 잘 묘사된 작품이다. 마치 작가가 정말 18세기를 체험하고 온 듯한 생생한 조선 묘사가 돋보인다. 하지만 이런 고증으로 인해 문체가 딱딱하다거나 읽기 어려운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전전작 죽지 않는 왕-무왕 단종에서 꽃 피고 전작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에서 영근 블랙코미디적 서술이 이 작품에 와서는 여물대로 여물어서 시종일관 쏟아진다. 전작들과 달리 주인공 김운행 시점의 1인칭 시점 서술이 메인인데, 빙의한 지 몇 시간도 안 돼서 조선의 사대부의 사고방식을 완벽하게 체화하여 현대인들이 알아듣기 쉬운 형태의 비유로 쏟아내는 서술들이 그 자체로 이 작품의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그러나 나로서도 입의 혀 같은 장복이를 몇 번 데리고 다녀보니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대의 하인은 단지 가사 노동만 맡는 것이 아니다. 외출 시에도 필수적이다. 스마트폰, 키오스크, 자동차, 장바구니, 혹은 불미스러운 사태 발생 시의 대전사(代戰士)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수행하는 만능 비선형 컴퓨터인 것이다. 없으면 생활이 안 된다.
5화. 너 내 동료가 돼라(1)
가장 멍청한 노비조차 21세기의 어떤 최첨단 AI로도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 판단력과 유연성을 보여준다. 음성 인식과 얼굴 인식은 기본. 밥만 주면 충전도 알아서 한다. 심지어 복사도 된다!
17화. 스나이퍼 엘리트(1)
서신을 여기저기 몇 장 쓰고 나자 저녁 먹을 때가 됐다.
나는 음성인식을 시도했다. 하이, 관노비.

"게 아무도 없느냐? 때가 되었는데 왜 저녁이 나오지 않는가. 속히 들여라."

대답이 없다.
뭐지? 펌웨어 오류?
31화. 15. 1+1=3(2)
...대략 이런 식이다. 게 아무도 없느냐 = 하이 빅스비 특히 이런 식으로 노비를 스마트폰에 비유하며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숨 쉬듯 나와서 독자들을 요절복통에 시달리게 한다. 이런 기가 막힌 드립의 향연에 독자들은 작가가 직접 조선 사대부로 빙의했다가 돌아온 거 아니냐는 댓글을 달게 된다. 이렇게 밈과 인터넷 유행어를 드립과 블랙코미디에 자유자재로 녹여서 서술이 밈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꽤나 긍정적인 부분이다. 보통 이런 웹소설은 당대의 밈이나 유행어를 무작정 우겨넣는 식으로 반영했다가 거기에 휘둘려서 서술 자체가 어색해지거나 나중가서 구식으로 보일 수 있는데 서술 자체에 힘이 있어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은 작가의 필력에 물이 올랐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한편 자칫하면 가벼워 보일 정도로 넘쳐나는 블랙 코미디와는 달리, 이전작들에서도 보인 강점인, 인물 간의 대화는 정말 조선인 당대인들의 대화처럼 생생한 문체를 보여준다는 점 역시 유지되는 중. 상반된 두 문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장점만 뽑아내고 있다.

전작들인 죽왕과 혁내취도 그런 소설들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현대인이 역사를 현대인으로서 바꾸는 소설이었다면 이 소설은 완전히 전근대인(에 가까운 현대인) 입장에서 바라본 조선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죽지 않는 왕에서 불사신 먼치킨 주인공의 대활약상을 통한 블랙코미디에서,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에서 작가는 점점 더 현실적 주인공 상에 접근해갔고 마침내 이 작품에서 더욱 현실적인 이세계 조선 블랙코미디를 그려내는 데 한층 더 성공적인 작품을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단 본문도 본문이지만 작가가 작품을 쓰면서 수집한 18세기 조선, 주변국들의 현실이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인물들에 대한 지식들을 푸는 것도 매우 상세한데, 이것만으로도 본 작품을 직접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6.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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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설정

7.1. 승경도

회원은 승경도의 최종지점인 의정부 영의정에 도달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주어진 12개의 필수 목표와 숨겨진 부가 목표를 완료해야 합니다
목표를 완료함으로써 수강료를 납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목표를 완료할 때마다 스킬이 개방되고 다양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는 대부분 진행에 유익할 것입니다
수강료를 전부 납부할 경우 계약이 종료되며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다만 수강료를 납부하지 못하고 육체적인 사망, 영구적인 무력화 등으로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할 경우(사후 추증은 인정되지 않습니다.)영혼에 대한 강제추징 절차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회원의 영혼은 당사의 영구적 관할하에 놓이며, 절대로 벗어나거나 소멸할 수 없습니다.
작중 주인공이 약관을 읽지 않고 참가 사인해버린 게임이자 상태창 능력. 12개의 필수목표를 달성하면서 영의정에 올라야 한다는 정신나간 난이도를 자랑한다. 대신, 목표를 클리어하면 치트 능력을 보상으로 제공하기에 주인공은 유용하게 써먹는다.[1] 스킬 이름들이 죄다 '(사람이름)의 ***' 식의 형식인데, 초반엔 무슨 스킬인지 알아보기 쉬웠으나 갈수록 바로 알아보기 어렵게 이상하게 꼬여 있다. 유교에 대한 지식이 좀 있으면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스킬 종류들이 조선의 사대부들이 가져야할 필수 교양(육예)과 관련된 것들이라는 점도 특징.[2] 다만 주인공에 의해 조선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엇나가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주어지는 스킬들도 육예와 엇나가게 된다.

[ 튜토리얼 ]
* 튜토리얼 - 집으로 돌아가기
빙의되자마자 제시된 미션. 다만 그 시점이 면신례 현장이었고...
* 추가목표 - 면신례 통과 (실패)
선배 관료를 몽둥이로 후려쳐서 실패. 덕분에 '타구봉'이라는 별명이 붙어버리고 나중에는 호가 되어버린다. 달성 시 보상은 튜토리얼이라 마제은 대신 보너스 스킬이 지급되는 것이었으나 클리어하지 못해 무슨 스킬이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소설 초반의 추가목표 보상이 마제은 30~40개 정도라 캐시 상점의 병~무급 뒤주에서 나올 수준의 스킬로 추정된다.
* 보상 - 한석봉의 필체(액티브)
첫째 스킬이라 조선시대를 아직 체화하지 못한 운행은 이런 쓸데없는 거 말고 완전최면 같은 기술 없냐고 화냈지만 2달간의 수련을 거쳐 완벽한 활자판 해서 통상의 3배속도로 붓으로 뽑아낼 수 있게 되어 본인이 직접 최고 수준의 사수 역할을 맡을 수 있었기에 과거 레이드(...) 팀을 짜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사실 조선 시대라는 특성상 사대부가 명필이라는 것은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특성이라 꽤 많이 활용된다.[3]

[ 첫 번째 필수목표 ]
* 첫 번째 필수목표 - 과거에 합격하기
  • 부가목표 - 10번째 내에 답안지 제출 (성공)
    목표 달성 보상은 마제은 30개.
  • 추가 선택 목표 - 갑과 이상으로 전시 합격 (성공)
    목표 달성 보상은 마제은 40개. 여기에 초과 달성(장원) 보상으로 선견지명 스킬(숨겨진 부가 목표 확인 가능) 획득.
  • 보상 - 이성계의 궁술(액티브), 정력증강(패시브)
    이성계의 궁술의 경우 '내가 무과도 아닌데 어디 써먹으라고'라며 불평했지만 이훤과의 호감작에 쓰이는 등 소소히 쓰이다가 대호를 활로 잡아버리는 위력을 보였다. 다만 궁술 실력은 이성계의 것이지만 몸뚱이는 본인의 것이기에 활을 여러 번 당기면 금방 지친다.
    정력증강의 경우 쓸데없다고 생각했지만 잦은 야근을 하는 데 도움을 줬으며 결혼 후 참으로 쓸 데 많았다. 동시에 전 현생 통틀어 총각이었음에도 너무나 절륜하였기에 부인에게 온갖 여자를 후리고 다닌 난봉꾼으로 오해받는 부작용이 생겼다.

[ 두 번째 필수목표 ]
* 두 번째 필수목표 - 송덕비를 획득[4]하십시오
  • 부가 목표 - 본인의 혼례 거행 (성공)
    세화의 계략에 넘어가 혼인당해서(?) 성공. 달성 보상은 마제은 60개.
  • 특별 보상 - 암중모색 (개시에서 상자 개방 전, 스킬의 대략적인 종류 확인 가능)
    담당지 목천은 물론 옆 고을 직산에서까지 송덕비를 받아서(...) 얻은 특별 보상.
  • 보상 - 이혈의 친화력(액티브), 장각의 부적(아이템)
    이혈의 친화력은 애완 원숭이에게 옷까지 해 입히려다 신하들에게 타박당할 정도로 동물 애호가였던 드루이드 킹 성종에게서 모티브를 따 온 스킬. 어지간한 동물은 순식간에 길들일 수 있다. 승마를 수월하게 하거나 집안의 쥐들 중 절반을 떠나게 만들거나, 군집을 이룬 쥐들의 생리를 이용하여 일거에 소탕하는 등 유용하게 써먹는 액티브 스킬. 다만 어디까지나 '친해지는' 것에 불과하기에 장난으로 날린 냥냥펀치 한방에 이승을 하직시킬 수 있는 육식동물 상대로는 시도할 엄두를 못냈다. 또한 동물들을 맘대로 조종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저 경계심을 극도로 낮추고 무언가를 이렇게 해달라고 '청탁'하는 것에 가깝다. 머리가 좋고 통제에 잘 안 따르는 동물들은 확률적으로 뇌물만 먹고 생까는(...) 경우도 발생하며, 머리가 나쁜 동물은 복잡한 부탁을 하면 실행하지를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장각의 부적은 일회용이지만 육체적 병을 완쾌시킬 수 있는 효과를 지녔기에 비장의 수단으로 아껴두다, 병에 걸린 왕세손(본래 역사에서는 사망)을 살리는 데 사용한다.

[ 세 번째 필수목표 ]
* 세 번째 필수목표 - 3명 이상을 탄핵하여 귀양 보내십시오.
  • 부가 목표 - 당상관을 1명 이상 탄핵하십시오. (성공)
  • 부가 목표 - 왕으로 하여금 본인의 간언을 가납하게 하십시오. (성공)
    목표 달성 보상은 마제은 150개.
  • 보상 - 관우의 인내심(액티브)
    통증이나 감각을 둔화시키거나, 역으로 민감하게 만들 수 있다. 유래는 연의에서 화타의 외과 수술을 맨정신으로 바둑 두며 견뎌냈다는 일화. 본래 받을 보상은 이게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나, 목표 달성 중 김운행의 행로가 비정상적인 것을 감지한 시스템 측에서 이걸로 지급했다.

[ 네 번째 필수목표 ]
* 네 번째 필수목표 - 아카마가세키(赤間關, 지금의 시모노세키)의 특산품 붉은 벼루를 10개 이상 입수하십시오. 왜관을 통한 거래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김운행의 개입으로 역사의 물줄기에 큰 개변이 발생하며 변경된 필수목표. 제한조건부터 부가목표까지, 대놓고 국가 공무역의 범위를 벗어난 필수목표이다. 나중에 밝혀지기로는 계속해서 상태창의 의도를 벗어나고 잡지 못할 변수를 추가하는 김운행을 숙청하기 위한 목표.
* 부가목표 - 일본에 국가 소유가 아닌 선박을 보내십시오.
달성 보상은 마제은
* 보상 - 을지문덕의 불꽃(액티브)
살수대첩의 수속성으로 유명한 을지문덕에게 갑자기 화속성이 붙어서 역사의 그 불꽃 어그로인 줄 알았으나, 실제로는 그 수속성에서 기인한 화속성 면역기였음이 밝혀진다.

[ 다섯 번째 필수목표 ]
* 다섯 번째 필수목표 - 세자 이훤을 조선 국왕으로 만드십시오. 이훤은 살아 있어야 하며, 사후 추숭 및 존호 등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기한은 임오년(1762년)까지입니다.
역사를 엄청나게 꼬아버린 덕분에 시스템이 GG치고(...)[5] 목표 설정을 김운행에게 맡겼다. 원역사에서 세자 이훤이 뒤주실험을 당하는 임오년까지라는 기한을 제시해 수강료를 단숨에 3회 지불하게 되었다.
세자 이훤의 왕위 계승 자체는 1757년 정축하성과 1758년 건륭제의 양위 허가로 달성되지만 기한 설정 때문에 완료는 1762년까지 버티고 나서야 달성.
* 보상 - 한니발 바르카의 전술(액티브)
한 쪽 눈을 감으면 휘하에 있는 모든 병력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휘하 병력은 김운행의 상관인 조선 국왕 이훤의 허가와 해당 병력이 대표자로 인정하는 인물의 동의를 모두 얻을 경우에만 인정된다.

[ 여섯 번째 필수목표 ]
* 여섯 번째 필수목표 - 청나라를 군사적으로 공격해 승리하십시오. 종전 조약에는 영토, 인구, 재화 등의 양도 내용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북벌. 인류의 주인 건륭제와의 대결인만큼 수강료 5회분을 건 최후의 퀘스트.
* 부가목표 - 중국 강남에 상륙한 유럽 원정군의 전쟁 개시 이전의 형태로의 완전한 철수.
김운행 본인이 원하는 스킬 하나를 가불받는 대가로 직접 설정한 부가목표.

7.2. 개시

작중 시스템이 제공하는 캐시상점 기능. 추가보상으로 얻는 마제은으로 상자(김운행 왈 뒤주)를 열어서 그 안의 스킬을 얻는다.
  • 신숙주의 절개
    병丙급 뒤주(마제은 100개)를 구입했을 때 얻은 스킬. 이름만 들으면 없으니만 못한 쓰레기 스킬 같지만, 보이는 인물의 '전 분야에 걸친 가치'에 가까운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왕의 경우는 무슨 지상에 강림한 외신에 가까웠을 정도. 운행은 강약약강의 신들린 줄타기 처세를 보인 신숙주의 삶을 체현한 스킬로 파악했다. 술을 마시면 1주일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 제한 사항도 아마 신숙주가 술마시고 세조에게 관절기를 건 일화(...)와 숙주나물의 재배기간이 1주일인 것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작중 묘사에 의하면 김운행이 가진 이 스킬의 정밀함에는 비하지 못해도 조선 사람들은 한눈에 상대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간 있었어도 없어지기에 누구나 패시브로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고 한다. 이 스킬 이펙트를 두고 영압이라느니 선비력이라느니 하며 드립치던 김운행도 '인류의 주인' 건륭제의 기운을 보고는 노을(...)이라고 착각하며 말을 잃었다.
  • 이명복의 ???
    가장 급이 낮은 무戊급 뒤주의 알멩이를 암중모색 특성으로 살펴봤을 때 나온 스킬
    워낙에 장점이랄 게 없는 고종 베이스 스킬이기에 김운행이 보자마자 기겁하며 급 낮은 뒤주를 열어볼 생각을 완전히 포기하게 만들었다.
  • 진회의 간교함
    갑甲급 뒤주의 보상으로 나왔으나 김운행이 태생부터 간교해서 그런지 중복이라며 뽑기가 무효화 되었다. 열받은 김운행이 상태창을 후려치려다가 실수로 을乙급을 누르는 바람에 이연의 속도를 얻게 되었다. 김운행의 능력과 중복이라고 판정된 것을 보면 말발이나 설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정신계 간섭 계열[6]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 이연의 속도
    을乙급 뒤주의 보상. 진회의 간교함이 중복처리로 무효화되자 화를 내다가 실수로 뽑은 능력. 마차나 가마의 속도를 크게 늘린다.

8. 개변된 역사

8.1. 국내

작중 김운행은 병조정랑에 올라 균역시무삼조를 영조에게 올리는데, 불필요한 지방군을 해체한 후 장용영을 세우면서 조선 중앙군을 소수정예화하고 근대 우편산업의 토대가 되는 통신 정비, 재정 확충까지 이루어내면서, 절대왕정국가로 가는 시초를 닦는 개혁 정책을 깔끔히 수행하여 영조의 눈에 든다. 이게 다 본인이 해처먹으려는 수작질이긴 해도, 당대 조선의 골칫덩이였던 균역법으로 인한 재정과 군대의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고 근세-근대의 시초를 이루는 개혁을 이루는 데 성공해서 역시 능력은 있는 인물이라는 찬사를 댓글과 대역갤에서 받고 있다.
  • 조선의 우편 제도 도입
    이전에도 파발이나 역마가 물론 존재했고, 양반들은 이런 것들을 사적으로 활용하고 역졸 등은 이 사적 활용에서 뇌물을 받는 것으로 생계에 보탬했는데, 김운행의 시무로 우표와 우편제도를 만들고 음지에 있던 이런 사적 배달들이 그대로 중앙 재정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우표 값이 아깝거나, 귀중한 물건을 공공기관에 맡기기 힘들었던 사족들의 우편은 '김운행'의 해상 우편업체가 수요를 흡수했다(...).
  • 조선의 평시선덕관 도입
    김운행의 시무 3조 중 하나. 원래 역사에서도 영조가 균역법을 시행한 후 빵꾸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균역청을 운용하였으나, 지방 관아의 환곡을 장부상에서 이관하거나 어염세를 걷었을 뿐이어서 재정은 재정대로 펑크나고 부족한 재정을 수령들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것으로 때우려고 하는 부작용이 심했다. 여기선 김운행에 의해 한양 도성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서 소비세가 부여되는걸로 대체되었고 영조가 무척 마음에 들어할 정도로 세수가 증대되었다. 이 세수는 새로이 증강된 장용영의 재원이 되었다. 원래 역사의 조선은 물품의 유통에 대해 세를 메긴다는 개념이 없었고 배, 그물, 전답 등 생산 수단에만 세금을 메겼다. 이로 인해 발생할수 있는 서울 지역의 물가 상승은 박문수가 지방의 물자를 서울로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공급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해결했고 나중에는 굳이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도 물류가 알아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증대되어, 결과적으로는 조선 전체의 유통 수요를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선덕관 자리 팔아먹는 데 눈이 뜨인 영조는 팔도 전체에 도입하려고 했지만, 그나마 선덕관 수수료가 더해져도 물가가 거기서 거기인 한양이라 괜찮지, 지방에서는 그냥 장사 접을 게 뻔해서 박문수가 필사적으로 막는다. 결국 1,2년 후에는 팔도 전체로 퍼진다. 또한 이 선덕관들은 '소비세'가 늘어야 이득을 더 보기 때문에 어떻게든 장사를 번성시키는 데에 적극적이다. 상업은 천한 것이라며 거리를 두고 뇌물이나 받아먹던 기존 문무관들과는 체질부터가 다른 셈. 명절 선물이 커지는 걸 유행시키거나, 지방 1차 산업을 어떻게든 더 끌어들이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하기에 조선 상업은 근간부터 체급이 커지고 있다.
    • 부르주아의 등장
      평시선덕관은 관직이기는 하지만, 양반 계층에서도 가장 말단인 잔반, 중인, 서얼들 등이 주로 임명받았다. 기존의 사농공상 질서에서는 이미 반쯤 외면당한 신세던 이들은 적극적으로 상업의 확대를 꾀했는데, 보통이라면 이들을 경시하거나 핍박해야 할 기존 기득권층은 오히려 평선관들이 바치는 소비세 덕에 국고와 자신의 주머니가 동시에 불러오는 것에 오히려 그들의 성장을 지원했다.

      평선관들은 물목의 확대와 이득 증대를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했다. 외국 작물을 기르거나, 오리를 기르고 어장을 치는 등 농축산의 다각화는 안 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천하만물변증논고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 온갖 지식을 빨아들였고 심화 지식은 하나의 거래 수단이 되었다. 단위와 규격의 표준화는 이미 진작에 정리가 끝났다. 문화와 예술에 발을 걸친 평선관들은 시장을 키우면서 조각가, 화가, 평론가 등 관련업종에 지식을 쌓고 때로는 비싸게 고용해 시장을 새로이 만들었다.

      평선관들의 활약장은 국내만이 아니었다. 김운행이 만든 거대한 해외 시장(의주, 제주) 등에서는 일본어, 청어 통역 겸 브로커 업무를 통해 부를 모으는 이들도 이들도 생겼다. 자연히 평선관들은 부와 전문지식, 인맥을 전부 가진 조선땅에서 전례가 없는 하나의 새로운 계층이 되었다.
  • 지방 수군영 해체 및 장용영과 해방별대 창설
    장용영은 본래 정조 시대에 만들어지나, 김운행에 의해 영조 대에 만들어지게 되었다. 상인들과 조졸들이 조세를 운반하는 체계를 해체하고 그 인력들을 활용하여 창조된 친위부대라 볼 수 있다.

    해방별대는 해체된 수군영에서 병사들 중에서 재모집한 조직으로, 본래 창설 취지는 해안 밀수, 밀매를 단속하고 어염세 등을 걷는 일종의 관세청 조직으로 만들어졌으며, 실제로 처음에는 인근의 불법 조업선을 잡는 것에 열중했으나 사실 김운행의 표적은 청-일본-서양의 무역선이었고, 이후 몇번의 일본, 네덜란드인과의 충돌 과정에서 이게 쏠쏠이 돈이 되며 노략질을 해도 타국에서 항의할 일이 없다는 일을 알아채고 조선 주변 해역을 항해하는 중국, 일본, 서양 선박을 조선에 위협이 된다는 명목하에 마구잡이로 긴빠이나포하고 있다. 현대적으로 비유하면 명목은 관세청인데, 실제 행태는 사략선 역할을 하며 활약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관세 100%

    명목상으로는 군대도 아닌 조직이 조선 후기에 어울리지 않게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게 된 비결은 수군영 해체 과정에서 배를 불하할 때 군선이 딱히 민간에선 쓸모가 없어서 불하가 안 된지라 해방별대로 그대로 이관된 점과, 조선시대 특성 상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수군인데도 작 중 표현에 따르면 '자기가 이순신이라고 착각하는지 수상할 정도로 장구류를 철저하게 챙기고 정예한 병사들'이 일부 남아 있었고, 그들을 해방별대로 재투입한 결과이다. 황해도 해방별대가 수군 정예를 흡수해 악명을 떨친 시초이고, 그 후 경상지역의 해방별대가 일본 밀무역선 사이에서 날뛰고 있다. 정예선별에서는 떨어졌거나, 군에 남는 걸 거부한 사람들이 주축이지만, 전역하고도 다시 배를 탄 데다가 당시 사회상에서 세도 잡히는 합법 해안 경비대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황해도 정예가 아니라도 정예함은 보통이 아니다. 조선-왜 합쳐 수가 두배는 되는 무장 밀수업자들이 울산 해방별대에게 전멸했다.

    정식명칭은 해방별대지만 백성들이 편한대로 해병대라고 부르고 있어서 아마 이것이 후대에 해병대로 고착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해방별대는 당시 서양과 무역이 상당했던 일본, 중국의 무역선들도 닥치는대로 털기 때문에 외국 문물이 자연스럽게 조선에 유입되고 있다. 감자와 고구마는 이미 남부지방에 상당한 기세로 퍼지고 있을 정도.

    개혁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평시선덕관과 함께 조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주요 변화로 언급된다. 이제 해방별대는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직업이 되었고, 바다 건너 서양 세력의 존재 등은 특별한 게 아니라고 한다.
  • 세손의 수명연장
    원 역사의 의소세손이 무사히 살아남아 세손이 되었고 차남인 이산은 세손이 아닌 왕자로서 용두군에 책봉된다. 세자는 세손에게 본인의 목숨을 구한 사람에 대해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 김운행이 세자의 후계인 세손시대에도 왕의 총신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부산포 왜관 토벌
    김운행이 일본에서만 만드는 벼루를 얻어야 한다는 퀘스트에 맞추기 위해 부산포 왜관이 난을 일으켰다고 날조하면서 토벌하여 공무역을 폐하고 대신 본인의 목적을 위해 밀수를 동반한 민간 사무역을 증진시킴으로써 조선-일본간의 사무역을 발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 이 과정에서 콩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상관 설립을 요구하며 접근한 네덜란드인들이 조선을 침공하려 했다고 김운행이 누명을 씌워다가 잡아왔는데 이 때문에 조선이 자꾸 왜구나 네덜란드인들이 나라를 침범하려 한다고 오해(?)하여 군기시정을 맡은 김운행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다시 확충하게 되었고, 조선에 들어온 네덜란드의 선박 플류트 제조기술 및 각종 서구 문물이 조선에서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작 주인공이자 미래인인 김운행은 '나라는 오직 덕으로 다스려야 하니 흉참한 서양 선박 따위는 불태워버리자' 고 주장하고 조선인들이 서양 선박을 복제하는 기괴한(...) 전개를 자랑한다.
  • 살곶이 공과대학 설립
    왜관 토벌과정에서 잡혀온 네덜란드인들의 기술(크로노미터)를 보고 세자가 관심을 가져 김운행과 최천약에게 명해 연구하게 하면서 만들어진 공방. 당대 조선 특징 상 이런 일은 원래 관료가 사제를 털어서 해야하는 일인지라 운행은 돈도 안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튈지 궁리하고 있었으나, 마침 명의도용을 당해 빡쳐 항의하려고 온 홍대용이 그걸 보고 자신이 아는 실학자들을 총동원해 부르고 최천약은 그 상황을 세자에게 직간하여 김운행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바람에 설립된다. 명목 상으로는 군기시의 하위 기관이다.

    공과대학이라고 이름 붙인건 김운행의 현대 관련 개드립으로, 연구와 후학 양성을 목적으로 모인 본격적인 서구의 대학이라기보다는 물건을 실제로 제조하는 공방이며, 최천약과 홍대용의 권력 남용 및 김운행에게서 비용을 빼와서(...) 딱히 관료가 아닌 실학자나 공인들도 들여와서 다 같이 모여 연구하는 친목회 성격도 있다. 말하자면 대학보단 동시대 서구의 호기심의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 같은 곳. 김운행이 미래에도 왕십리에 공과대학이 들어서는거 보면 이게 역사의 복원력인가 보다라고 드립을 치는데, 왕십리에 있는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을 두고 한 말로 보인다. 김운행은 Salgoji Institute of Technology를 줄여서 SIT이라 부르는데, 이건 영화 억셉티드에 나온 남하몬대학교(SHIT, South Harm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가능성이 크다.

    김운행은 돈이 안되는 이 공방에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지 궁리하다가 태엽으로 돌아가는 카라쿠리를 만들거나 왜관에서 잡은 일본인들을 동원해서 태엽 진동 딜도를 만드는 등 기상천외한 사업을 한다. 세자가 서양 학문에 관심없는 운행을 회유하려고 이런저런 서양 학문 책을 주곤 하는데 운행은 그 책들을 다 이곳에 모인 실학자들에게 월급 대신으로 짬처리(...)하기도 한다.

    후에는 채제공이 군기시정으로 임명되며 김운행의 손을 떠나며, 김운행이 있는 동안에는 딱히 돈 안되는 무기 사업 개발은 운행의 만류 때문에 지지부진 했으나 채제공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서구의 포를 복제하거나 새로운 화포술을 발명하는등 군기시 하위기관으로써 일을 충실히 수행한다.
  • 조선풍 춘화의 유행
    김운행이 부산포 왜관 토벌의 정당성을 갖추기 위한 날조 증거 제작 목적으로 당대 최고 화가들을 끌어들여 만든 현대 만화적 화풍이 가미된 조선식 춘화가 널리 국제적 인기를 얻게 되었다. 춘화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당대 일본에도 조선 춘화가 일본 춘화의 위상을 밀어낼 정도.

    참고로 부산포 왜관 토벌이 마무리 되고 난 뒤 김운행은 왜관 대표로 나온 일본인들 앞에서 자신이 만든 춘화가 날조 증거로써 일본인들을 추궁하는 데에 쓰이자, 혹시나 일본인들이 본고장(?)의 춘화와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 때문에 증거의 신뢰성에 대해 태클을 걸면 어쩌나 하고 속으로 잔뜩 쫄려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 춘화를 본 일본인들 역시 어찌됐던 춘화집들을 몰래 가지고 다니고 있었던 것 자체는 사실이었기에 당사자인 일본인들마저도 진짜로 자기들이 들고 온 춘화 모음집들 중에 새어 나간 건가 싶어서 전혀 의심을 못 했으므로(...) 그 자리에서 일본인들이 진짜로 가지고 있던 춘화집들까지 모두 압수되며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김운행 본인은 결과적으로는 증거 날조도 들키지 않고 목적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은 어메이징한 춘화집들이 정말로 만연해 있던 당대 일본의 현실을 목도하고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 나주 괘서 사건의 규모 확대와 영조의 권력 축소
    김운행이 벌인 여러 책략들 때문에 원역사에서는 반란이 시작되기도 전에 진압된 나주괘서사건이 네덜란드와 손을 잡은 소론 준소의 대대적인 반란으로 확대된다. 이 과정에서 영조가 김운행의 책략으로 여러 실책을 저질러 정치력이 약화되고 대리청정을 맡고 있던 사도세자와 세자의 총신 김운행의 힘이 대폭 커지는 계기가 된다.
  • 낙선당 화재
  • 영조의 정축하성과 사도세자의 즉위
    대비 김씨는 사도 세자를 지키는 방벽이었다. 때문에 영조는 독살까지 고려했으나, 이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나 대비 김씨는 얼마 못가 1757년에 사망했는데 양위 허가라는 초대형 폭탄을 떨어뜨려 자신을 증오하던 영조를 엿먹인다. 이제 사도가 살아있는 한 영조는 '양위하겠다고 대비를 압박해 허가를 받았음에도 양위하지 않은' 이란 오점을 짊어지게 될 판이었다. 때문에 세자를 찾아 죽이려고 편집증에 걸린 영조는 김운행이 퍼뜨린 청나라가 세자를 즉위시키기 위해 병력을 요동으로 집결시켰다는 역정보에 제대로 속아 남한산성으로 도주하는 실책을 저지르고야 만다. 이 사이 잠시 뒤주로 몸을 피했던 세자와 김운행은 궁으로 환궁하고, 이를 저지하려고 세자를 공격한 구선복을 처지하며 정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결국 정권을 차지한 세자파에 의해 고립된 영조는 사실상 세자에게 항복하고 모든 조선의 권력은 세자, 그리고 그의 유일한 총신 김운행에게 돌아간다.
  • 제주의 국제 무역항
    조선에서 나지 않는 물자들 중 가장 필요했던 두 가지. 설탕과 구리를 얻기 위해 계획되었다. 삼해 사황(해방별대)[7]와 제주 목사의 협조로 실행된다.
    사실 이 시대에 대한 오해 중 하나로 류큐에서 설탕이 나기는 하지만, 해당 항로는 너무 남쪽이고 해방별대의 사정권에 들어올 때는 사쓰마 번과도 가까워서 함부로 치기 애매했다. 무엇보다 장사할만한 양이 아니기도 하고... 이 시대 진짜 일본에 들어오는 설탕은 대부분 중국산이었다. 물론 이것도 함부로 건드리기는 애매한데, 남중국 해적들과 청나라가 신경쓰는 구리 공무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8]
    사실 김운행은 이 정도로 만족했지만... 당시 사도 정권은 입장상 국내 반발을 사지 않는 범위에서 친청 행보를 보여줘서 건륭제의 호감을 사야했다. 그래서 꺼낸 것이 중계무역이었다.[9]

    나가사키를 향해 가던 중국 상선들 앞에 2~30척이 넘는 네덜란드 양식 해적선이 나타나자, 관선들은 부드럽게 상선만 버리고 빠졌고, 해적선들은 느릿하게 상선을 제주도까지 표류시킨다.
  • 조선의 화과자, 고구마, 감자 대중화
    해방별대와 춘당 소속 실학자들의 활약으로 원 역사보다 고구마, 감자의 대중화가 빨라져 1760년대 기준으로 이미 고구마, 감자는 임금인 이훤의 조서에서 가난한 이들도 즐겨먹는다 할 정도로 대중화 되는데 성공한다. 또 해방별대의 활동으로 인해 설탕이 널리 보급되고 카오루를 통해 일본식 화과자가 도입되면서 설탕을 사용한 풀빵류의 과자들이 아이들의 간식이 되는 장면들이 나온다.
  • 조선의 북벌
    청나라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북방 유목민 전쟁, 일본 원정, 강남 반란군과 영국과의 남방 전쟁에 이어 화북에서 백련교의 난까지 일어나면서 무한해보이던 국력을 거의 소진하게 된다.
    청나라는 메말라가는 국고를 지방 착취로 해결하려 했고, 이는 30만 적기군으로 나타나 북방 러시아를 거의 패퇴시키고, 화북 백련교군도 거의 패퇴시킨다. 그러나 아직 강남 일대를 휘젓는 영국군과는 치열한 혈투 끝에 양쪽 공멸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시기. 정축하성 즉위 이후 계속 국력을 증진한 조선은 정병 6만에 달하는 동원력을 갖게 된다. 명분이라도 남아 유사시 대군을 징병할 지방군을 혁파했기에 상비군과 해병대만 남았지만, 질적으로는 배 이상 강력해진 상태였다.

8.2. 국외

  • 조선에 관심을 가지는 네덜란드 쇄국을 강화하는 일본
    김운행이 왜관을 토벌하고 여기에 관심을 가지던 네덜란드인들을 때려잡아 국제적인 분쟁거리가 된 탓에 일본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추방하고 쇄국정책을 강화하게 되었으며, 네덜란드인들은 조선인들이 자신들과 분쟁이 있어서 배를 탈취한 사실을 깨달아 조선에 개입할 준비를 하게 되어, 일본은 쇄국하는데 조선이 100년 먼저 서구와 개항을 두고 부딪치게 생겼다. 이 과정에서 급진개화파와 온건개화파, 위정척사파 등의 파벌들이 훨씬 일찍 탄생하게 되는데 재미있게도 원 역사에서 위정척사파가 꽤 세력이 있었던 반면 본작의 위정척사파(?)인 김운행은 이상하게 외국에 관련된 일만 되면 꼰대가 된다면서 외국문물을 적당히 이용하고 싶어하는 조선인들에게 뒷담화를 당한다.
    김운행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사대부들이 무역으로 얻는 돈 맛을 알게 되었고, 이훤의 개화 의지가 워낙 굳건하기 때문에 대놓고 개화를 반대하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 심지어는 김운행 파벌에서도 '사실 김운행도 개화를 지지하지만 겉으로만 쇄국을 부르짖는다'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 청의 대외전쟁
    • 청의 준가르 원정 난이도 상승
      준가르족은 청나라와 여러번 마찰한 끝에 건륭제 시대에 수십만 청나라 대군의 공세에 멸망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약간의 변수가 추가되는데 건륭제가 김운행이 퍼뜨린 영조 관련 불온한 소문이 도는 조선을 견제할 목적으로 병력 1만 정도를 나누어 조선과 접경한 심양에 파견한데다가 본래 칸 자리를 노리고 청나라에 투항한 흑역사를 가진 칸인 아무르사나가 조선의 반청 거병을 과장해 조선군이 십만 군세로 심양을 공격할 거라고 허세를 부려 명분 삼아 일시적으로나마 준가르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데에 성공한다.
      또한 청나라에서 당시 매우 무도한 태도로 문제가 되던 러시아 공사관을 나름 사이가 가까워진 조선에게 내준다고 쫓아내고 김운행에 의해 굴욕적으로 쫓겨난 러시아 공사관이 준가르를 지원하게 된다.
      조선에서 영조의 정축하성이 종료될 무렵 근황이 나오는데 놀랍게도 진짜로 청군의 포위망을 벗어나서 세력을 유지하며 항전을 잇고 있었다. 심양의 1만 기병들은 원정군 전체를 보면 적지만, 기동력 부분에선 훨씬 비중이 컸던지라 사달이 난 것. 또한 조선을 명분으로 쓴 경험으로 발전한 아무르사나가 적극적으로 러시아 방면에 원병을 청하면서 전쟁은 장기화 된다. 심지어 몽골 일부 지역과 티베트까지 반란에 가담하면서 십전무공의 절반 정도가 한번에 초대형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 전쟁은 결국 청의 서북 국경을 명나라 시절로 후퇴시켰고, 3년이 넘는 십만 단위의 원정을 이어가고서야 티베트와 몽골을 간신히 제압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엘리자베타 여제의 수명이 연장되어 7년 전쟁을 승리로 끝낸 러시아가 중앙 아시아에 준가르와 군소부족들을 소집한 대병력을 투사해 청을 압박하면서 서북 전선은 끝도없이 길어진다.
    • 청의 유구왕국 구원(사쓰마 학폭위원회 개최)
      영국 함대가 조선으로 향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조선 조정은 서양에 대해 잘 아는 김운행을 남해진무사로 파견하는데 수사들과 회의중 유구왕국이 사쓰마 번에 삥뜯기는 사실을 감지하고는 영국의 조선행을 망치기 위해 적극행정으로 유구에서 큐슈로 향하던 사쓰마번의 연락선을 습격하여 확보한 사쓰마의 유구침탈을 입증하는 증인과 증거문서들을 항주로 보내 건륭제에게 일러바치고 여기에 김운행의 예상보다 3배 더 격노[10]한 건륭제가 함대를 파견하면서 유구의 수도 나하는 청과 영국, 사쓰마, 유구가 얽힌 난장판이 벌어졌다. 청은 영국과 사쓰마가 한패라 오해하고 영국은 청과 유구의 함정이라 오해하여 청의 함대와 해전을 벌이는 한편 유구왕성을 기습점거하여 사쓰마관리를 목베고 사쓰마는 청과 영국이 싸우는 와중에 유구침탈의 증거를 인멸하기위해 유구왕성공략을 시도하다가 이미 왕성을 점령한 영국군과 전투를 벌이고 불쌍한 새우-유구왕국은 고래들의 싸움에 등이 터지는 대환장파티중.
      결국 사쓰마는 영국군에게 격퇴되고 영국함대는 화력의 우세에도 압도적인 숫적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주[11], 조선의 거문도로 표류하게 되고 일련의 상황을 보고받은 건륭제는 사쓰마번 정벌을 명하는 한편 서양과의 무역을 아예 금지하면서 청과 조선, 일본, 유구 모두 서양에 대한 쇄국에 들어간다.
      게다가 건륭제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준가르를 멸절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 걸 알게 된 건륭제는 십전무공 퀘스트의 표적을 변경. 3만의 몽골팔기를 큐슈로 파병했다. 당연히 조선 반도를 거쳐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시 조선은 남서북 삼방에서 오랑캐들과 전쟁을 벌이던 청에게 있어 유일한 우방이었고. 애신각라 홍염처럼 전재산을 청-조 밀수업에 투자한 청나라 거물들도 있었기에 취소되었다.
      3만 몽골팔기는 순풍을 타고 큐슈에 상륙, 오천 선봉대 몽골팔기가 1만 사쓰마 군을 분쇄하고 큐슈 전역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약 1년여에 거친 전쟁 결과 큐슈의 20개국이 전부 망했다. 다누마 오키쓰구를 비롯해 당시 막부의 실권자들이 어떻게든 원군을 보내려고 했지만 '너무 오랜 평화 탓에 실전 감각도 없고, 각자도생 기질이 강해진 혼슈 다이묘들 탓에 소집도 지지부진했다. 결국 1년을 버티던 사쓰마 번도 멸망한다.
    • 청의 양면전쟁
      준가르 토벌이 위구르-티베트와의 연계반란에서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남쪽에서는 영국군이 함대를 끌고 나타났다.
  • 옐리자베타 여제의 생존과 프리드리히 대왕의 패사
    원 역사에서는 7년 전쟁 막바지에 숨을 거둔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여제가 조선과 접촉한 러시아인들이 가져온 홍삼을 처방 받고 병세에 차도가 생겨[12] 7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텨낸다. 반대로 원 역사에선 옐리자베타 여제의 사망으로 기사회생했던 프로이센 왕국[13] 거의 모든 영토를 잃고 빈사상태에 빠진다. 궁지에 몰린 프리드리히 대왕이 최후의 돌격을 시도하다가 전사함으로써 7년 전쟁은 프로이센의 대패로 끝나게 되었고, 프리드리히 대왕을 존경하던 표트르 3세는 옐리자베타의 눈밖에 나 간첩 혐의로 유폐된다. 한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러시아는 유럽 전선에게 생긴 여유를 두고 청의 준가르 원정에 개입하게 되어 건륭제의 준가르 정벌은 다시 난국을 맞게 된다.
  • 아편전쟁과 조지 워싱턴의 대두
    7년 전쟁이 프로이센의 패배로 끝나며 그레이트 게임에서 한수 밀린 영국은 정책을 바꿔 중국을 침탈하고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식민지를 강탈할 계획을 꾸민다. 중국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육군의 상륙이 필수적이었고 버지니아 민병대 중령 조지 워싱턴을 중국으로 파견한다. 워싱턴의 군재를 높이 사서는 아니였고, 미대륙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민병대에게 줄 포상이 마땅찮았고, 워싱턴이 중국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높으신 분들 뜻대로 처분하기 쉬운 팻감으로 여겼기 때문. 즉 이겨놓고 시작하는 전쟁에 짬처리를 해버린 셈인데 워싱턴은 성공 보수는 가서 정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영국은 이를 별 생각없이 받아들였다.

[1] 특히 유용한 것이 언어 적응능력인데 이게 당대 조선어 뿐만 아니라 당대 존재했던 모든 언어들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지라 네덜란드어, 일본어, 중국어, 만주어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가능해서 김운행에게 큰 도움을 준다. [2] 육예는 공자의 커리큘럼인 예(禮: 예의), 악(樂: 음악), 사(射: 활쏘기), 어(御: 말타기), 서(書: 글쓰기), 수(數: 수학)을 뜻한다. 이중 한석봉, 이성계, 이혈의 스킬이 각각 서, 사, 어에 속한다. [3] 사실 한석봉의 글씨체는 현대 인쇄물의 주요 서체로 이용될 정도로 대단히 내용이 명료하게 인식되는 서체라 공문서용으로 적합하기도 하다. 작중에서도 그런 점이 윗선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나온다. 왜관 문제처리과정에서 동래 대도호부사가 김운행의 필체를 언급하며 자신의 장계를 정서해 줄 것을 부탁하자 기꺼이 받아들인 김운행은 동래부사의 장계내용에서 몇글자를 가감하여 자신의 의도에 더 적합하게 편집(?)했다. [4] 송덕비 자체만이 아니라 이를 조정으로부터 공인받아야 한다. [5] 원래 주어진 목표를 수행하면 영의정까지 올라갈 수 있게(난이도와는 별개로) 설계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김운행이 뒤틀린 방식으로 수행해버려서 대차게 꼬였을 뿐. [6] 보상이나 가챠로 얻는 스킬들은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서술도 있다. 반대로 사람을 제외한 동물에게는 이혈의 친화력이나 이연의 속도처럼 스킬의 대상으로 시전하여 영향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7] 이미 중국-일본 직무역이 활성화된 상황이었으나, 직통 항로에서 네덜란드 VPN 켜고 해적질로 분탕을 치며(...) 제주도를 이용하도록 유도했다. [8] 마구잡이로 건들다간 정상결전 치러야 할 판이라고 한다. 일단 관선이 없는 시기에 네덜란드 상선으로 위장하고 터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만족스러운 양도 아니다. [9] 이 시기 청은 김운행 나비효과로 준가르, 티베트, 몽골의 연쇄반란이라는 개망신 일보 직전의 국책사업을 치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내심 언제든 그쪽에 붙어도 이상하지 않은 조선이 갑자기 우호적 행보를 보여주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는 것. [10] 아마도 중화천조질서에 대한 침해라는 기본적인 분노에 더해 준가르정벌이 뜻대로 되지않고 만주어 표문까지 올린 유구왕의 행동이 실상은 황제인 자신에게 구원을 청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심증이 더해져 3배 분노한듯. [11] 심지어 슈리왕성을 점거한 영국군은 함대가 패퇴하자 도주하며 왕성에 불을 질렀다. 이로인해 간신히 빠져나온 유구 왕과 신하들이 사쓰마보다도 더한 놈들이라고 치를 떨게 되어 유구도 서양에 대한 쇄국이 이루어진다. [12] 홍삼의 약효가 아니라 홍삼을 복용하는 동안 사혈 관장 등 사람 잡는 유럽식 치료법을 중단한 덕분에 몸이 덜 축나서 늦게 죽은 것이다. [13] 원 역사에서 여제의 사망이 왜 이렇게 연결되는가 궁금하다면 표트르 3세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