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09:43:07

헝가리-크로아티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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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크로아티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중세2.2. 근세: 합스부르크 제국2.3. 19세기2.4. 20세기2.5. 21세기
2.5.1. 2000년대2.5.2. 2010년대2.5.3. 2020년대
3. 문화 교류4. 경제 교류5. 교통 교류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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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 크로아티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 헝가리 왕국 아르파드 왕조 시절부터 동군연합을 구성했으나 15세기 헝가리 왕국의 달마티아 상실, 1848년 헝가리 혁명 당시 크로아티아인 장군 요시프 옐라치치의 진압 등으로 인해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현재는 양국 모두 유럽연합 NATO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솅겐 협정에 가입하여 국경 이동도 자유롭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크로아티아 국왕 드미타르 즈보니미르 헝가리 왕국의 국왕 라슬로 1세의 누이 일로너와 결혼했는데 드미타르는 아들 없이 사망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스체판 2세가 즉위했으나 일로너는 오빠 라슬로 1세에게 크로아티아 왕위에 도전할 것을 부추겨 라슬로 1세는 사바강 북쪽의 슬라보니아 일대를 점령하고 크로아티아 국왕을 칭했다. 크로아티아 귀족들 일부는 라슬로 1세에 반발하여 페타르 스나치치를 옹립하였으나 라슬로 1세의 조카 칼만은 크로아티아를 굴복시켰고 크로아티아의 법과 관습, 언어, 문화를 존중하는 조건으로 즈보니미르의 왕관(Starohrvatska kruna)을 받아들여 헝가리-크로아티아 동군연합이 형성되었다.

크로아티아 왕국은 헝가리 왕국의 여러 대외 분쟁에 휘말렸고 왕권이 강하지 못했던 아르파드 왕조의 통치는 사실상 몇몇 태수(Ban)들이 난립하는 호족 군웅 할거의 시대였다. 1377년 보스니아 지역이 보스니아 왕국으로 독립해 떨어져나갔고, 15세기에 들어서는 마리어 지기스문트 국왕이 나폴리 왕국, 베네치아 공화국과의 전쟁에 말려들어 달마티아를 베네치아 공화국에게 빼앗겼다.

2.2. 근세: 합스부르크 제국

1490년 보헤미아 왕국의 블라디슬라프 국왕이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국왕 울라슬로 2세로 선출되어 리투아니아 대공국- 폴란드 왕국 출신의 야기에우워 왕조가 들어섰으나 울라슬로 2세는 무능함의 극치를 보였고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은 서서히 해체일로를 걸었다. 1526년 오스만 제국 파디샤 쉴레이만 1세가 대규모의 오스만 제국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섰고, 울라슬로 2세의 아들 러요시 2세 모하치 전투에서 종조부 브와디스와프 3세 바르나 전투에서 했던 실책을 똑같이 반복해 패주하여 도망치다 물에 빠져 죽었다.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 3국 모두 오스트리아 대공국 합스부르크 가문 페르디난트 1세를 국왕으로 선출했으나 헝가리 동부 에르데이에서는 서포여이 야노시를 국왕으로 옹립했고, 서포여이 야노시는 쉴레이만 1세의 지원을 받아 동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결과적으로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헝가리, 오스만 헝가리, 동헝가리 왕국으로 3분할되었고 크로아티아는 합스부르크 제국 산하 크로아티아 왕국과 슬라보니아 일대의 오스만 헝가리로 갈라졌다.

크로아티아인 귀족들은 새로이 헝가리 왕국의 수도가 된 프레스부르크로 이동하거나 크로아티아에 남아 국경을 지키는 선봉장 역할을 했다. 프랑코판 가문(Frankopani), 즈린스키 가문(Zrinski), 유리시치 가문(Jurišić) 등은 오스만 제국과의 수 차례 전쟁에서 큰 공헌을 세웠다. 1664년 버슈바르 조약에 불만을 품은 몇몇 크로아티아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모반이 있었으나 레오폴트 1세에게 제압되었다. 이 모반 사건으로 부친을 잃은 퇴쾨이 임레에 의해 제2차 빈 공방전이 일어났으나 오스만 제국군은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에게 격퇴되었고 이어진 대튀르크 전쟁에서 사부아 공자 외젠의 활약으로 카를로비츠 조약이 체결되어 바나트를 제외한 헝가리 전역과 에르데이 공국, 슬라보니아 일대가 합스부르크 제국령이 되었다.

2.3. 19세기

프랑스 혁명과 그로 인해 촉발된 나폴레옹 전쟁으로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에도 민족주의가 퍼졌다. 헝가리가 민족주의를 강화할수록 크로아티아 역시 그 반동으로 일리리아 민족주의를 강화하였다. 양국의 감정은 1848년 헝가리 혁명으로 폭발했다.[1] 헝가리 독립 운동은 요시프 옐라치치에 의해 제압되어 코슈트 러요시는 망명했고 헝가리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사형당했다. 크로아티아 왕국은 헝가리 왕국과 영구 분리되었으나 양국 모두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주도하는 신 절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제국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과의 이탈리아 통일 전쟁, 프로이센 왕국과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연달아 패전하여 위신을 잃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제국의 제2세력인 헝가리인 대타협을 추구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수립되었다. 헝가리인 성 이슈트반 왕관령을 가혹하게 탄압하여 헝가리화하려 했으며 크로아티아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인의 청원이 먹혀 프란츠 요제프 1세는 헝가리-크로아티아 상호 타협을 주도하였고 성 이슈트반 왕관령 산하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이 수립되어 크로아티아인은 헝가리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 헝가리는 여전히 헝가리어 병기 등을 강요하였으나 그 이상의 간섭은 하지 못했다.

2.4. 20세기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대부분이 소멸하자 크로아티아인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기로 결정했으나 혼자 독립한다면 이탈리아 왕국의 압력을 이겨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여 세르비아인과 손잡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형성하였다. 헝가리 역시 독립국이 되었으나 트리아농 조약으로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인정했고 영토의 2/3을 상실했다.

전간기 이후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접점은 사라졌다. 냉전 시기 헝가리는 소련 위성국으로 굴러떨어졌고,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일부였다.

동유럽 혁명으로 헝가리는 민주화되었고,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끝에 독립했다. 헝가리는 1992년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인정했다.

2.5. 21세기

2.5.1. 2000년대

2004년 헝가리가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양국 모두 자유화되고 크로아티아도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후폭풍에서 벗어나면서 많은 헝가리인이 달마티아를 관광 방문하였다. 2006년부터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양국의 고위 관료들은 정상회담을 상설화하였다.

2.5.2. 2010년대

2013년 크로아티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2010년대부터 양국의 고위 관료 회담이 잦아졌다.

2.5.3. 2020년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연합에서는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해안을 통한 헝가리의 가스 수입을 모색하고 있다.

3. 문화 교류

양국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하다.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모두 양국에 서로 소수민족으로 일부 국민이 남아있으며 크로아티아 의회에서 헝가리 정당은 1석을 보장받는다. 양국 모두 독일어권과의 교류가 많아서 독일어가 주요 외국어에 속해 있다.

외교공관 현황은 헝가리는 자그레브에 대사관을, 스플리트 리예카에 영사관을 두고 있으며, 크로아티아는 부더페슈트에 대사관을, 페치와 너지커지너에 영사관을 두고 있다.

4. 경제 교류

양국 모두 경제 교류가 활발하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의 대외 교역에서 헝가리가 차지하는 비중 대비 헝가리의 대외 교역에서 크로아티아가 차지하는 부분은 미미한 편이다.

5. 교통 교류

양국을 잇는 철도, 도로,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철도가 부더페슈트에서 자그레브, 리예카를 거쳐 두브로브니크 근처 플로체 항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하루 1회 운영되고 있다. 부더페슈트-자그레브 버스는 하루 3회 운영되고 있다.

6. 관련 문서



[1] 이때 오스트리아 황제가 중립을 지키는 동안 헝가리 국왕이 크로아티아 국왕에게 선전포고를 했는데 그 3명의 군주는 같은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