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16:42

쿠사노 마사무네

<colbgcolor=#4682B4><colcolor=#fff> 쿠사노 마사무네
草野マサムネ | Masamune Kusano
파일:쿠사노 마사무네.jpg
이름 쿠사노 마사무네 ([ruby(草野, ruby=くさの)][ruby(正宗, ruby=まさむね)])[1]
출생 1967년 12월 21일 ([age(1967-12-21)]세)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니시구[2]
(現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사와라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싱어송라이터
활동 1991년 – 현재
악기 보컬, 기타, 하모니카, 탬버린
소속 밴드 스핏츠(1987년~)
소속사 Road & Sky
레이블 유니버설 J
신체 167.5cm, 53kg, O형
학력 후쿠오카 현립 쵸난 고등학교 (졸업)
도쿄조형대학 (중퇴)
무사시노미술대학 (기초디자인학과 / 학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데뷔 이전2.2. 스핏츠2.3. 기타 활동
3. 음악 스타일
3.1. 작곡3.2. 작사3.3. 보컬
4. 여담5. 관련 문서6.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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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스핏츠 쿠사노.gif

일본 싱어송라이터.

밴드 스핏츠의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이며, 하모니카와 라이브에서 휘파람도 담당한다. 대부분의 작곡과 모든 곡의 작사 또한 쿠사노가 하고 있다.

2. 생애

2.1. 데뷔 이전

파일:patipati03.jpg

3남매 중 장남으로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사와라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자란 곳에는 이 많아서 그 안에서 벌레나 물고기를 잡거나 신사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평범한 아이였다고 한다. 쿠사노는 인터뷰에서 "이른바 ' 오타쿠' 같은 성격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관찰이나 사육을 좋아하는 자세는 그대로 음악으로도 이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는 몸이 약했기 때문에 학교를 자주 쉬었다고 한다.
몸이 약해서 학교를 자주 쉬었죠. 특별한 병이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 열이 나더라고요. 그러니까 학교에 2일 갔다가 이번에는 열이 나서 이틀 쉴 것 같은 아이였죠. 꽤 그게 음악을 많이 듣는 계기이기도 한데요.
쿠사노 마사무네 #

' TV를 보면 열이 나기 때문에 TV는 안 된다'고 어머니가 말해서 라디오로 음악을 들었으며, 특히 라디오 음악 방송 '카운트다운 프로그램 베스트 10'을 매주 들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칩 트릭, 록시 뮤직, 킹크스, 데이비드 보위, 섹스 피스톨즈 등 록 음악과 하마구치 쿠라노스케(浜口庫之助), 이노우에 요스이, 요시다 타쿠로(吉田拓郎), 시미즈 켄타로 포크 음악과 가요곡을 좋아했다. 처음으로 산 앨범도 칩 트릭의 'Dream Police'였으며, 가장 영향을 받고 가장 많이 들은 밴드로 칩 트릭을 꼽기도 했다. # 또한 사람들이 "좋다"라고 말하는 음악은 안 좋아했기 때문에, 비틀즈같은 유명 밴드는 별로 안들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에는 1학년 1학기에 테니스부에 재적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육상부로 전과를 했다. 육상부에서 부장을 맡고 있었지만, 그렇게 빠른 발은 아니었고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참석률이 좋은 학생이었기 때문에 부장이 됐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주로 딥 퍼플의 ' Highway Star' 등을 울리며 달렸는데, 전혀 빠르지 않았다고. 이때부터 몸도 튼튼해져서 3년동안 개근상을 받았다고 한다. 기타를 시작한 것도 중학교 재학중인 14살 무렵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저도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은 14살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가 젊었을 때 치다가 그냥 때려놓은 너덜너덜한 기타가 집에 있어서, "코드 누르는 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치던 게 14살 정도인가. 부모님이 젊었을 때 읽던 오래된 기타 입문 같은 책이 있었네요. 손가락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그걸 따라 누르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손가락이 아팠죠. (중략) 14살 때는 아예 (노래를) 안 불렀어요. 14살이 되었을 때 일렉트릭 기타를 샀거든요. "일렉트릭 기타, 대단해!"라고 생각해서 기타를 연습하다가 처음에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쿠사노 마사무네 #

고등학교 시절에는 동아리 활동은 재적하지 않았고, 귀가부(帰宅部)에서 밴드 활동을 했다. 당시 '래디시(ラディッシュ)'라고 불리는 커버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하드 록, 펑크 록 계열의 음악을 주로 연주했다. 쿠사노는 보컬과 기타를 담당했다. 일렉트릭 기타를 좋아해서 고등학생 때부터 기타리스트를 목표로 했다고 한다. 보컬을 맡게 된 이유는 밴드를 결성할때 다들 보컬을 하기 싫어해 가만히 있어서, 친구가 "쿠사노는 높은 소리가 날 것 같으니 불러봐"라고 해서 불렀더니, 그대로 보컬로 낙점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문화제에서 밴드를 선보이면서, 학교에서 기타를 잘 치는 학생으로 알려졌다.

고등학교 졸업후에는 도쿄조형대학에 입학했다. 쿠사노는 도쿄조형대학에 입학한 이유에 대해서 "어쨌든 도쿄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도쿄조형대학 시절에 소속한 경음악 써클 '시게네(重音)'에서, 후일 스핏츠의 베이스 기타를 담당하는 타무라 아키히로와 의기투합해 스핏츠의 전신이 되는 밴드 '더 치타즈(ザ・チーターズ)'를 결성했다. 당시 도쿄조형대학 음악 서클에서 카네이션, 플라잉 키즈같은 밴드들도 탄생했다. 그러나 펑크 록 밴드 블루 하츠의 노래 '사람에게 상냥하게(人にやさしく)'를 듣고 충격을 받은 쿠사노는 밴드 활동을 중단했다. 쿠사노는 후일 인터뷰에서 "자신이 추구하던 음악을 이미 연주당하고 말았기 때문에 중단했다"라고 말했다.[3]
이런 밴드( 블루 하츠)가 있다면 '나 밴드 해도 소용없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무렵 하던 밴드를 일단 그만두었습니다.
쿠사노 마사무네 #

이후 쿠사노는 도쿄조형대학을 중퇴하고 무사시노미술대학 조형학부 기초 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도쿄조형대학 시절 결성한 밴드는 자연스럽게 해체됐지만, 베이시스트 타무라 아키히로와는 교류를 계속했기 때문에 새로운 밴드를 재결성했다. 당시 타무라와 패밀리컴퓨터를 같이 했는데, 게임 동료여서 둘이서 방에 틀어박혀 게임을 한적도 있었다고 한다. 1987년 쿠사노는 새로운 멤버로 미와 테츠야와 사키야마 타츠오를 영입해 밴드 ' 스핏츠'를 결성했다. 그리고 1991년 3월, 23살에 스핏츠의 첫 싱글 '종달새의 마음(ヒバリのこころ)'으로 메이저 데뷔를 장식했다.

2.2. 스핏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스핏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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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핏츠는 데뷔 이후 고난의 시기도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 많은 곡들을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전성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세대를 초월해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의 국민 밴드 중 하나가 됐다.

쿠사노 마사무네는 스핏츠의 모든 곡을 작사했으며, 거의 모든 곡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대부분의 곡을 작곡했다. 가사 역시 다른 멤버들이 쿠사노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4] 쿠사노 마사무네 = 스핏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밴드의 큰 비중을 담당하고 있다.

2.3. 기타 활동

PUFFY - 愛のしるし 히라이 켄 - ブランケット

스핏츠 활동 이외에도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노래를 제공하기도 했다. 가장 크게 성공한 노래는 puffy의 ' 사랑의 표시(愛のしるし)'다.[5][6] puffy의 프로듀서인 오쿠다 타미오가 쿠사노에게 작사, 작곡을 의뢰해서 실현됐다. 이외에도 puffy의 '사랑의 애튀드(恋のエチュード)', 히라이 켄의 '블랭킷(ブランケット)', 요나하 토오루[7]의 '새벽(夜明け)', 노미야 마키[8]의 'Never on Sunday'[9], 쿠시비키 사야카의 '돌아오는 길(帰り道)', Chappie의 '수중안경(水中メガネ)'[10] 등을 만들었다.
시이나 링고 - 灰色の瞳 KREVA - くればいいのに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에 게스트 보컬이나 피처링으로 참여한적도 있다. 2002년 시이나 링고의 커버 앨범 ' 唄ひ手冥利~其ノ壱~'의 수록곡 '회색의 눈동자(灰色の瞳)'에 게스트 보컬로 참여했으며, 2003년 우루후루즈의 앨범 'ええね'의 수록곡 'Sleep John B'에 코러스로 참여했다. 2007년에는 래퍼 KREVA의 노래 '오면 좋을텐데(くればいいのに)'에 어쿠스틱 기타, 후렴 부분 작사, 피처링 보컬로 참여했다. 2009년에는 히라이 켄의 커버 앨범 'Ken's Bar II'의 수록곡 ' 이별가(わかれうた)'에 듀엣으로 참여했다.
木綿のハンカチーフ 水中メガネ

트리뷰트 앨범에도 참여했다. 2007년 일본의 유명 작곡가 츠츠미 코헤이[11]에게 헌정하는 앨범에 참여해 '목면의 손수건(木綿のハンカチーフ)'을 불렀다. 2015년에는 작사가 마츠모토 타카시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해, 자신이 작곡한 '수중 안경'을 불렀다. 2018년 5월에는 시이나 링고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했다. 커버한 곡은 正しい街으로 the ウラシマ's라는 유닛[12]에서 보컬을 맡았다. 참고로 시이나 링고 역시 스핏츠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한 적이 있다.

2018년 1월부터 FM 도쿄에서 SPITZ 쿠사노 마사무네의 록 대륙 만유기라는 이름의 라디오를 1주일에 한 번 진행하고 있다. 쿠사노에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3. 음악 스타일

3.1. 작곡

ロビンソン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것은 건강할 때나 기운이 없을 때도 들어옵니다. 멜로디도 연주도 정성스럽게 만들고 싶습니다. 기세만으로 만든 것은 기운이 날 때는 신나고 즐겁지만 피곤할 때, 약해질 때는 별로 듣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힘이 없을 때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쿠사노 마사무네 #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로 평가받고 있으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굉장히 잘 만든다. 특유의 애틋하고 아련한 멜로디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의 음악은 세대를 초월한 팬들이 많다.

데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음악 스타일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쿠사노는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변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재주가 없어서요. 어쩌면 헤비메탈을 해도 스핏츠처럼 되어버립니다"라고 말했다. 데뷔 초에는 일렉트릭 기타를 전면에 내세워 청량한 쟁글 팝 인디 팝(기타 팝)을 많이 만들었다. 1970~80년대에 유행했던 파워 팝, 쟁글 팝, 슈게이징[13], 펑크 록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뮤지션으로 파워 팝 밴드인 칩 트릭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쇼와 시대 '가요곡(歌謡曲)'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성향이 반영된 대표적인 노래가 ' 사랑의 노래(恋のうた)'다.

1994년에 발매한 앨범 ' 하늘을 나는 방법(空の飛び方)'과 1995년에 발매한 앨범 ' 벌꿀(ハチミツ)'은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정립한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앨범들은 그가 트렌디한 인디 팝과 기존의 쇼와 가요곡 그리고 얼터너티브 록 요소를 접목시킨 앨범들이다. 당시에 애수 어리고 신선한 멜로디로 주목 받았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스핏츠스러운 사운드가 탄생한 것도 이 시기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심플한 밴드 사운드이면서도 중후하고 세련된 어레인지를 가미한 음악들을 많이 만들고 있다. 특히 팝 노선을 개척하기 위해서 브라스 스트링를 많이 도입하고 있다. 쿠사노는 인터뷰에서 "스핏츠는 변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말하지만, 의외로 유행을 어레인지에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눈치채지 못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멤버들에게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면서 들려주고, 그 다음에 사운드를 더해 가는 방식으로 곡을 완성시켰다. 2000년대 이후에는 쿠사노가 직접 만든 데모 테이프를 멤버 모두가 듣고, 곡의 이미지를 이야기하고 방향성을 정한 후 각자 자신의 파트의 프레이즈를 생각하거나 연습하는 방법으로 곡을 완성하고 있다. 쿠사노는 2010년 잡지 인터뷰에서 ' Pro Tools LE'라는 PC의 DAW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데모 테이프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드럼 파트는 우치코미(打ち込み)[14]를 사용하지만, 기타와 베이스는 쿠사노가 직접 연주하고 있으며, 멜로디와 가사도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데모 테이프로 상당 부분 노래를 완성하고 있다. #

3.2. 작사

스핏츠의 쿠사노 씨의 가사 세계라는 것은 역시 정말 유일무이하네요. 저는 이제 그의 세계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가사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타니무라 신지 #
(스핏츠의 매력은) 가사죠, 역시. 마사무네 씨가 쓰는 가사는 반쯤 속에 가까운 가사거든요. 꿈속은 앞뒤가 맞지 않거나 하잖아요.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잖아요. 그에 가까운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더 반복적으로 듣고 싶고, 같은 꿈을 다시 꾸고 싶어요.
아이묭 #

대선배인 타니무라 신지가 인정할 정도로 작사가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곡의 제목과 가사의 세계관에 절묘한 거리감이 있어서, 리스너가 저마다 가사의 이미지를 그리며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가사로 유명하다. 리스너들이 자신의 가사를 여러가지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노래의 해설을 잘하지 않는다. 또한 개성적인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고 있으며, 매력적인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등장인물에게 고유명사가 부여되어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쿠사노의 가사는 비유적 표현이 풍부한 가사로 알려져 있다. 사랑 노래인데도 ' 사랑'이라든지 '좋아해' 같은 직접적인 단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 또한 가사가 굉장히 난해한기로 유명하다. 본인도 이에 대해 알고 있는지 라디오에서 "의미를 잘 모르겠다거나 특이한 가사라 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굳이 그렇게 말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와 닮지 않은 표현을 목표로 할 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
뭐, 가사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해석할 수 있는 사용법을 하고 있습니다만…(중략)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그러니까, 가사 전체에, 누구나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순일한 의미를 갖게 하는 것에, 저로서는 그다지 의의를 느끼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깊은 무언가를 주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아무것도 주지 않는 듯한 가사야말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것 때문에 조금 슈르한 내용이 되거나 이상한 말의 조합이 되거나 하는 것이 스핏츠의 가사라는 느낌일까요. (중략) 그래서 팬레터를 받는 중에서도, '뭔지 모르겠지만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웃음), 그러한 반응이 실은 가장 기쁘기도 해요.
쿠사노 마사무네 #

곡을 먼저 짓는 타입으로 멜로디에 맞는 말을 줄줄이 실어서 콜라주처럼 가사를 엮어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다음에 올 말을 예상하면서 듣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단어 선택에 굉장히 집착하는 듯하며 영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거창한 말도 가볍게 쓰지 않는다. 가사에 동물 식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다. 또한 쿠사노는 자신의 가사를 "조금 비굴하고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스핏츠를 잘 모르는 사람은 쿠사노에 대해 연약하고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는 1994년 6월 인터뷰에서 가사의 영원한 주제에 대해 섹스와 데스( 죽음)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 두 주제와 관련된 가사는 데뷔 초창기부터 많이 썼다.
저는 노래나 의 영원한 주제는 섹스와 데스(죽음)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건 항상 있죠. 제 안에서도 가장 큰 주제이고 항상 깊은 곳에 그것들이 있어요. 옛날에는 오히려 테마가 섹스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것이, 최근 점점 데스(죽음) 쪽으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쿠사노 마사무네 #

또한 메세지성이 강한 가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래라든가 멜로디라든가 음악이라든가 하는것 이전에, 메세지만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략) 특히 가사 말이에요. 일단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걸 전하기 위해서 음악이라는 수단을 쓰고 있다는 건... 그래도 괜찮은데. 그걸로 완성됐으면 좋겠는데 뭔가 메세지만 더 강한 게 있으니까. 그런 것을 듣고 뜨거워지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별로에요.
쿠사노 마사무네 #

일본의 작가 겸 작사가 타카하시 쿠미코는 쿠사노에 가사에 대해 "아름다움이나 상냥함과 등을 맞대고 숨어 있는 광기 같은 것. 제가 스핏츠에 끌려간 이유는 그거인 것 같아요. 제 자신이 가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스핏츠 가사의 대단함을 새삼 실감합니다. 후렴구는 캐치이지만 '실은 …'이라는 것이 스핏츠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좋은 의미에서의 위화감이 있습니다. 단어 자체는 알기 쉬운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조합에 의해 섬뜩한 문구가 되고 있어요."라고 평했다. #

3.3. 보컬

쿠사노 마사무네의 고음을 들을 수 있는 영상[15] 2020년 라이브
쿠사노씨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게 되는 목소리다. 이 목소리에서 나오는 말은 어떤 것이든 아름답다. 고음은 물론 저음 부분의 믹스 보이스가 이렇게까지 듣기 좋은 보컬리스트는 쿠사노 씨밖에 없고, 이 노랫소리가 TV에서 흘러나오면 누구나 스핏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와타니 에논 ( 게스노키와미오토메의 보컬) #
음정이 무너지는 것도 본 적 없고, 그 엄청난 안정감 그리고 고음도 후~ 하고 뭔가 여유롭게 나오고 괴롭게 노래하는 것은 본 적이 없어요. 가라오케에서도 여유롭게 아무거나 불러버리더라고요.
히라이 켄

부드러우면서도 허스키한 하이톤의 보컬로 알려져 있다. 쿠사노의 음색은 굉장히 독특해서 스핏츠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을 안들이는 창법으로 유명한데, 쿠사노는 음원은 물론 팬들이 열광하는 라이브에서도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샤우트하는 듯한 큰 소리를 일절 내지 않는다.

어떤 때에도 미간에 주름 하나 생기지 않는 얼굴로 어깨에 힘이 빠진 편안한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쿠사노는 나른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숨을 많이 내쉬고 목소리를 온몸에 울리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입이 열리는 정도를 의식하여 작게 함으로써 노랫소리를 조금 어둡게 울리고 있다. 부드러운 노랫소리로, 음역대도 넓은 편이고, 음정의 안정감도 뛰어나서 라이브를 굉장히 잘하는 가수로 유명하다.

일본의 음악 웹진 OKMUSIC은 쿠사노의 보컬에 대해 '일본 록씬에서 가장 청량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라고 평했다. # 가수 히라이 켄도 쿠사노의 보컬을 극찬했다. # 다만, 쿠사노는 "자신의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높은 톤의 목소리는 거친 록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이기 팝 같은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

2017년 일본인 2,900명이 뽑은 '노랫소리가 좋은 남성 보컬리스트 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다. "쿠사노 씨밖에 낼 수 없는 부드러운 고음이 너무 좋습니다", "여러 가지 경치가 떠오르는 신기한 목소리", "저음도 고음도 일정한 텐션으로 노래하는 느낌을 남들은 따라할 수 없다"라는 코멘트가 달렸다. #

4. 여담

  • 스핏츠의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미혼이다. 2018년 일본에서 조사한 '독신이라고 해서 놀란 유명인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 스핏츠 가사의 1인칭은 ' 보쿠(僕)'이기 때문에 쿠사노 본인도 '보쿠'라고 말할 것 같지만, 평소에는 자신을 ' 오레(俺)'라고 말한다.[16]
  • 파일:c970067c87b9aa354cd2a8502bb715ff.jpg
    미대 출신이라서 그림을 상당히 잘 그린다. 미대 출신이라는 경력을 살려서 스핏츠 굿즈의 디자인이나 로고를 만들고 있다. 투어 용품과 세트 디자인 등도 쿠사노가 직접 제작하고 있다.
  • 자타가 공인하는 짠돌이. 옷에도 돈을 들이지 않고 티셔츠는 SPA 브랜드 저스코, 유니클로만 산다고 한다. 음악으로 번 돈은 아까워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취미는 산책이며, 공원을 자주 다닌다고 한다. #
  • 모 BS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성격을 소심하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용기를 낸 것은 중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빼먹던 양키에게 발차기를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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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상한 외모라서 여성팬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상당한 동안으로 2023년 기준 50이 넘은 나이에도 변하지 않는 젊음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고등학생 시절에는 상당한 노안이었던데다가 인상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어서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
  • 비주얼이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섬세함을 보여준다. 인터뷰나 평소 라이브 등에서 말하는 모습을 보면 완전한 초식남.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당시 갑작스럽게 스트레스 증세를 받아 쓰러져서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지진 재해의 충격으로 식사조차 할 수 없게 되어 급성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 스토킹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장기간에 걸친 악질적인 스토커로 2000년경부터 무려 11년간이나 피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
  • 완고하고 삐뚤어진 면이 있어서, TV 출연은 NG, 일본 무도관 라이브도 NG라는 시기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둥글어졌는지 스핏츠 단독의 일본 무도관 공연은 2014년에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완고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는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스핏츠의 이나 스타디움 공연은 단 한 차례도 없다.[17]
  • 한국 드라마 마니아로 한국에 몇번 왔다간 적이 있다. 김태희의 팬으로, 한국에 와서 굿즈(머그컵)를 사기도 했다고... 한국말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지[20], 2008년 내한 당시에는 MC를 한국어로 반 이상 진행하기도 했으며 앵콜곡으로 내 이름은 김삼순 OST인 '아름다운 내 사람아'를 불렀다. 또한, さざなみCD의 수록곡 Na・de・Na・de ボーイ에 한국어 가사('알았어'[21])를 넣기도 했으며같은 앨범에 수록된 ルキンフォー는 서울거리를 걸으면서 느낀 감정을 적은 곡이라고 밝혔다. 2020년에는 사랑의 불시착을 라디오에서 언급했다. #
  • 비흡연자다. 스핏츠 멤버 전원은 담배를 피지 않는다. #
  • 2020년 라디오에서 "가능하면 저도 평생 현역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평생 밴드맨을 목표로 할 것임을 표명했다. #
  • 스핏츠 덕후인 아이묭은 한 방송에서 "스핏츠의 쿠사노 마사무네 씨가 나의 (私の神様)"이라고 말하며 존경을 표했다. #

5. 관련 문서

6. 외부 링크



[1] 작사와 작곡을 할 때는 '草野正宗'라고 크레딧에 기재한다. [2] 시이나 링고, 하마사키 아유미와 같은 지역 출신이다. [3] 쿠사노가 하고 싶었던 펑크 록풍의 음악은 2000년에 발매한 스핏츠의 앨범 ' ハヤブサ'에서 들을 수 있다. [4] 다만 편곡은 밴드 멤버들과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한다. [5] 쿠사노 마사무네가 15분만에 만든 곡이라고 한다. [6] 2022년 일본 TikTok에서 화제가 되어, 재생회수가 10억회를 넘었다. [7] 오키나와의 민요 가수 [8] 피치카토 파이브의 보컬 [9] 작곡만 했다. [10] 작사는 마츠모토 타카시가 했다. [11] 역대 일본 작곡가 싱글 판매량 1위의 빛나는 전설적인 작곡가다. # [12] Vo.쿠사노 마사무네, G.키타 켄스케( ASIAN KUNG-FU GENERATION), Dr. 스즈키 히데야( Mr. Children), Ba. 코레나가 료스케(雨のパレード) [13] 라이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영향을 받았다. [14] 드럼머신, 시퀀서 등에 미리 연주 정보를 입력해 놓고 그것을 재생함으로써 연주를 실현시키는 기법. [15] 옐로우 몽키의 보컬 요시이 가즈야와의 듀엣 [16] 근데 스핏츠는 생각보다 가사에 '오레'를 쓰는 노래도 꽤 있는 편이다. [17] 팬들은 쿠사노가 워낙에 상당한 야빠이기 때문에 돔 공연을 거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18] 요네즈 켄시는 스핏츠를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꼽기도 했다. [19] 비슷하게 미스터 칠드런의 보컬인 사쿠라이 카즈토시 또한 스핏츠 노래는 종종 듣는다고 하며, 특히 1집은 가사를 보지 않고도 전부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고 한다. [20] 2022년 라디오에서 NHK에서 방송한 한국어 강좌를 보고 반년 정도 공부했다고 말했다. [21] 가사집에도 카타카나가 아니라 한국어로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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