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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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Đội tuyển bóng đá quốc gia Việt Nam
파일:최원권베트남.jpg
<colbgcolor=#b50017><colcolor=#ffffff> 이름 최원권
崔源權 | Choi Won-Kwon
출생 1981년 11월 8일 ([age(1981-11-08)]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 / 체중 70kg
직업 축구 선수 ( 풀백, 윙어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b50017><colcolor=#ffffff> 선수 안양 LG 치타스/ FC 서울 (2000~2010)
광주 상무 불사조 (2009~2010 / 군 복무)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1~2013)
대구 FC (2013 / 임대)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2014)
대구 FC (2014~2016)
지도자 대구 FC (2016 / 플레잉 코치)
대구 FC (2017~2020 / 코치)
대구 FC (2021~2022 / 수석 코치)
대구 FC (2022 / 감독 대행)
대구 FC (2023~2024)[1]
베트남 대표팀 (2024~ / 수석 코치)
국가대표 4경기 ( 대한민국 / 200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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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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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50017><colcolor=#ffffff> 학력 서울신정초등학교 (1991~1994)
동북중학교 (1994~1997)
동북고등학교 (1997~2000)
종교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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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시절3. 국가대표 경력4. 지도자 경력5. 전술 스타일
5.1. 장점5.2. 단점
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축구 지도자로 前 대구 FC 13대 감독이자 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이다.

2. 선수 시절

어릴 적에는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체육 시간에 축구 시합을 하다가 축구부에 발탁 받아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축구 명문 동북중, 동북고에 진학하다 보니 각종 대회에서 준우승 내지는 3위권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승을 한 번도 못했다고 한다. 준우승을 하고도 혼났다고.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고 2000년 드래프트를 통해 지역 연고 고등학교 우선 지명으로 안양 LG 치타스에 지명되며 프로 선수가 됐다. 입단 동기로 최태욱, 박용호, 김동진 등이 있다.

K-리그 데뷔전은 2000년 4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원정경기였다.[2] 그 해 아디다스 컵을 포함하여 4경기를 뛰는데 그쳤지만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2001년에서야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경기 출전 횟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주로 윙어로 활약하였으나 풀백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3]하여, 2001년 K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22경기 출전해 4도움을 기록했다. 이 시기에 안양은 슈퍼컵, 리그컵에도 우승했다.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4] 준우승, K리그에서는 준우승을 했는데 20경기에 출장해 2도움을 기록하였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 서울특별시로 연고복귀하고 구단 명칭을 변경한 FC 서울에서 계속 활약하였다.

2005시즌을 앞두고 포항 스틸러스 트레이드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시 서울은 포항에서 새로 영입한 이민성의 FA 보상금 대신 최원권을 트레이드하려 했다. 그러나 선수 본인의 반대와 포항 코치진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현금 트레이드로 대체됐다. 당시 포항은 유스 출신 유망주 오범석을 적극적으로 키울 생각이라 최원권이 간절하진 않았던 듯. #

2006년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프로 통산 첫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008년 K리그 준우승에 기여한 후 광주 상무 불사조로 입대하게 된다. 제대 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므로 FC 서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다. 안양/서울에서 183 경기에 출장 3득점, 14도움을 기록했다.

2009년 군 복무를 위해 광주 상무에 입대하여, 주 포지션인 풀백 역할 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며 멀티 플레이어로서 활약하였다. 전반기에 광주 상무가 1위로 치고 나갔으나, 곧 DTD를 시전하였다. 2년차엔 동기 대표로 주장을 역임하며 광주에서의 상무 마지막 주장이 됐다. 광주에서 50경기 8골 5도움을 기록하는 등,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제대했다.

제대 직후, 2011 K리그를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세부 계약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다. 2012시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일본 팀과의 연습경기에 지지 않아, 박경훈 감독의 방울뱀 축구가 좀 더 완숙해진 것 같다는 인터뷰를 했다. 한동진, 마철준을 제외하면 고참이 없는 등, 젊은 선수들이 제주의 주축이 되어잇기에, 팀을 잘 이끌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파일:attachment/최원권/2.jpg
2013시즌 출전 기회가 줄어들자 대구 FC 이진호와 맞임대로 임대이적했다. 대구 FC 입단 당시 표정이 좋지 않아 대구팬들에게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였다. 결국 최호정과 로테이션으로 출전하게 된다.

7월 13일 토요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 우측 윙백으로 선발출장 했다. 0:1로 뒤진 상황에서 이양종의 공을 사이드라인을 따라 몰고 가면서 송창호가 동점골을 넣게 만드는 기점 역할을 하는 등, 공수에서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반 42분에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중거리 슛을 날렸지만 아쉽게도 골은 들어가지 않았다.

7월 16일 화요일 성남 일화 천마와의 K리그 클래식 19라운드 경기에 왼쪽 윙백으로 출장했다. 익숙지 않은 포지션이었지만, 빠르게 공을 가져가는 템포에서 우세한 모습을 보여주며 활약했다. 팀은 1:0으로 승리하며,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7월 31일 수요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20라운드 경기에 왼쪽 윙백으로 선발 출장했다. 아무래도 왼쪽으로 포지션을 옮기게 된 듯 하다. 초반엔 전북을 밀어붙이는 듯 했지만, 결국 0:1로 패배한다.

8월 3일 토요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 클래식 21라운드에선 우측 윙백으로 선발출장했다. 비가 와서 수중전이어서 양팀 다 힘든 경기였지만, 결국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패배로 팀은 3승 6무 12패를 기록하게 된다.

8월 11일 일요일 전남 드래곤즈와 2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우측 윙백으로 선발 출장하였다. 이 날은 지루한 공방 끝에 양팀이 1:1로 비겼다.

8월 25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K리그 클래식 24라운드 홈 경기를 대구 스타디움에서 치르게 되었다. 경기 시작전 대구 FC의 LTE 축구와 수원 삼성의 블루 타카의 맞대결이라며 선전했지만, 대구는 0:2로 패배했다. 최원권은 왼쪽 윙백으로 선발 출전했지만, 후반 시작하고, 부상으로 인해 이준희와 교체되었다.

대전 시티즌과의 25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우측 윙백으로 선발출장했다. 지난번의 부상이 심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있어 체력 저하가 우려된다. 송창호, 황일수, 한승엽의 골을 앞세워 3:1로 승리했다.

2014년 겨울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이적한다. 이적 기사가 나지 않은 듯. 조용하게 이적했다.


K리그 클래식에서는 모르겠지만 K리그 챌린지에서는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이 많았고, 결국 2014년 7월 31일 대구 FC로 다시 이적하였다. 이후 9월에 조광래가 사장으로 대구에 부임하며 약 10년 만에 자신을 프로 데뷔 시켜준 감독과 재회했다.

2015년 키프로스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노병준과 함께 대구 FC의 고참으로서 챌린지에서 베테랑이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했다. #

2016년부터는 플레잉코치로 합류하였다. 선수로서 출전한 경기는 없이, 그렇게 마지막 시즌을 조용히 보내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3년 올림픽 하계 대표팀 예비명단에 포함되었다. 이때 본인 피셜로 프로 계약 때보다 더 기뻤다고.[5] 2004년 아테네 올림픽대표로도 포함되면서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2003년 12월 4일 동아시아 축구선수권 대회에서 A매치 데뷔를 가졌다. 다만, 활약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리그에서의 활약과는 다르게 국가대표팀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좁은 시야를 보여주었다. 오만과의 경기에서 골문 앞에 안정환이 있었으나, 오만 선수에게 날아갔다. 다행히 오만 선수의 자책골로 당시 경기에 첫 골이 들어갔다.

다만, 이 이후로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적이 없다.

4. 지도자 경력

4.1. 대구 FC

4.1.1. 코치

2016년부터 플레잉 코치로 보직을 변경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군 리그인 R리그에서 유망주들을 지도하면서 코치 수업을 하고 있는 듯 하다.

2017 시즌을 앞두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향후 구단 행적을 보니 은퇴식은 따로 없었던 것같다. 노병준 대구 FC 포항 스틸러스 두 곳에서 일주일 사이에 2번의 은퇴식을 가진 것에 비하면 조촐한 모습.

5월 21일 경기도 안산시에서 열린 안산 그리너스 FC의 축구 클리닉에 KFA 1급 지도자 교육생들 중 하나로 등장했다. 축구클리닉은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 및 중·고교생과 성인 등 각각 4개 연령별 맞춤형으로 실시됐다. 흥미를 위해 놀이를 접목시킨 기본기 교육 시간을 포함해 자세교정을 포함한 밀도 높은 수업이 진행됐다.

2021년부터는 이병근 감독을 보좌하기 위해 수석코치로 승진되었으며, 2022 시즌 가마 감독 체제에서도 수석코치로 잔류했다.

4.1.2. 감독 대행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구 FC/최원권호 문서
4.1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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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1.3. 감독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구 FC/최원권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022년 11월 7일, 대한축구협회에서 2023년 P급 지도자 강습회 수강생에 선발되었다고 발표함에 따라 감독이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었으며, 이에 구단에서 2023시즌부터 최원권 감독대행을 제13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 이로서 2023시즌 K리그1, K리그2를 통틀어 최연소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안익수 감독이 사퇴한 FC 서울의 김진규 감독 대행으로 인해 깨졌으며, 9월 26일 남기일 감독이 사퇴히면서 정조국 코치, 그리고 김병수 감독 경질로 인해 염기훈 감독 대행에게도 깨졌다.

11대 이병근 감독에 이어 대구 FC 역사상 2번째 구단 선수 출신 감독이 됐다.

2024년 4월 19일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 감독 대행은 정선호 코치가 대전 하나 시티즌만 맡고 동반 수석코치직을 내려놓게 되며 팀에 잔류하게 된다.

후임으로 박창현 홍익대학교 감독이 부임하게 된다. 서동원 B팀 감독이 수석코치를 맡게 된다.

4.2.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24년 5월 3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부임한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김상식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가 될 예정이고 5월 9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합류하였다.

5. 전술 스타일

기본적으로 역대 대구의 감독들과 매우 비슷하다.

수비적으로 나서다가 공을 탈취한 후 빠른 전진을 통해 득점 찬스를 만들어 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제카나 에드가 같은 타겟형 스트라이커 유형의 선수를 측면에 배치하고 세징야를 원톱에 두는 전술을 대구에서 많이 보여주고 있다.

초보 감독들이 그렇듯 첫 시즌에는 베스트 일레븐 의존도가 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징야 의존도가 아주 크고, 세징야가 없으면 공격 전개가 거의 안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6] 아직은 점검이 필요한 감독.

2023년 딸깍 축구라는 별명을 가진 극단적인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들고 왔는데 일단 파훼법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막기 어렵지만 문제는 이 전술이 세징야, 고재현, 에드가 이 셋의 극단적인 혹사를 부르는 전술이라 우려를 사고 있다.[7] 더군다나 세징야, 고재현이 막히거나 안 나오면 에드가의 헤더 말고는 루트가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세징야가 후반기 갈비뼈 부상을 당하고 파이널 라운드에서 1승 1무 3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엄밀히 말하면 딸깍축구와 역습 축구는 다르다. 진짜 딸깍축구는 90분 내내 두들겨 맞고 볼소유도 거의 못하다가 행운으로 한 골 넣고 이기는 거다. 이게 가장 들어맞는 경기가 10R 수원 삼성과의 원정 경기였다. 반면 최근 대구의 모습은 몇 년간 꾸준히 해온 잘 풀리는 역습 축구였다. 그래도 팬들 입에도 잘 붙고 감독 본인도 본인의 축구에 별명이 붙은 걸 만족하기에 부정적인 의미에서 나름 중의적인 의미가 되었다.

5.1. 장점

팬들에게 딸깍축구라며 조롱당하지만 어쨌든 이 전략이 나름 먹힐 때도 있기는 하다. 훈련시간 상당수를 수비에 할애한다고 하는데, 비록 두들겨 맞더라도 어찌어찌 버텨내서 승점을 따내기도 하니 소위 딸깍 컨셉이 아예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다.

5.2. 단점

이전 대구 감독들과 같이 세징야와 에드가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는 것은 동일하나, 경기력의 기복이 상당히 심하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두 선수의 에이징 커브. 분명 시즌 초에는 세징야, 에드가 의존도를 줄이고 젊은 선수를 키워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 현재는 정확히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빌드업의 체계가 짜여져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이다. 최원권의 빌드업 방식은 그동안 무전술로 비판받은 감독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소위 U자 빌드업 방식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냥 빌드업과 관련된 전술이 없다.

센터백 선수들이 왼쪽 윙백인 홍철에게 볼을 전달한 뒤, 곧바로 전방의 에드가나 세징야에게 롱볼로 공을 투입한 후 나오는 세컨볼로 공격을 풀어나간다. 더불어 대구가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잘 이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선수가 바셀루스라고 볼 수 있는데, 역습에서의 빠른 볼 운반을 해주고 더미 런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수인 바셀루스를 자주 교체로 빼거나 신뢰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로 인해 수비 전술을 제외한 모든 부분의 전술에 이해도가 부족한 것 같다는 평을 받으며, 빌드업과 공격 세부 전술이 여실히 부족함을 매경기 드러내고 있다. 결국 공격 전술과 빌드업 전술 모두 공격진과 미드필더진의 컨디션에 과하게 의존하는 감이 있으며, 특히 바셀루스의 컨디션에 따라 그날 역습의 날카로움이 달라진다. 사실상 바셀루스가 없는 경기에서는 측면 공격 옵션이 아예 죽어버려 윙백의 크로스에만 의존하는 공격 패턴을 보이기에 빌드업이나 공격 전술이라고 할 것도 없는 지경이다. 전술에 대한 이해도뿐 아니라, 선수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결국 대구가 윙백과 윙들의 측면 돌파와 크로스를 주 공격 패턴으로 삼을 것이라면 고재현을 우측 윙으로 써서는 안 된다. 고재현은 온더볼이 아닌 오프더볼에 강점이 있는 선수이며, 2022 시즌 가마 감독이 활용했던 것처럼 윙보다 스트라이커에 가깝게 써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선수이다. 우측에 배치를 하더라도 주어지는 역할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될 수 있는데 고재현에게 직선적이고 클래식한 윙어 역할을 맡기면 고재현의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 드러나게 되는 꼴이다. 이러한 와중에 우측 공격수로 주로 고재현, 에드가를 출전시키다보니 더더욱 대구는 바셀루스와 홍철, 황재원/장성원의 드리블과 크로스가 유이한 공격 패턴이 되는 것이다.

세징야와 에드가 두 선수의 컨디션이 안좋거나 경기에 결장할 경우 이를 해결할 전술은 전혀 없다. 대구의 볼 점유와 공격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 세징야를 제외한 중원에 있는 미드필더진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그대로 “중원 삭제”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징야가 경기 중 부상으로 빠질 경우 극단적인 텐백으로 전환하며, 사실상 공격 옵션이 전무한 축구를 보여주어 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빌드업 전술도 부족하고, 세드가가 없을 경우 옵션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최원권 체제에서 대구는 공격 전술이 너무 빈약하다. 감독 본인이 인터뷰에서 훈련 시간의 7~80%는 수비 훈련에 할애한다고 직접 밝힌 만큼 현재 최원권의 대구는 수비 전술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구가 선수비 후역습을 지향하는 만큼 수비 전술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둘 수는 있지만 너무 과하게 수비에만 치중한 나머지 공격에서의 세부 전술이 너무 부족하다. 공격 상황에서의 약속된 플레이는 찾아보기 어렵고, 선수 개개인의 기량에 의존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왼쪽에서 바셀루스나 세징야가 볼을 잡았을 때 가끔 장거리 슈팅을 시도할 때가 있는데, 보면 대부분 줄 곳이 없어서 무리해서라도 슛을 가져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누군가 볼을 잡았을 때, 공격 진영에 있는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뛸지에 대한 사전에 약속된 플레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대구의 경기를 자주 챙겨본다면 알겠지만, 수비진에서 볼을 잡을 경우 거의 대부분 홍철을 향해 볼이 가고, 홍철 역시 중원을 거치기보다 바셀루스나 세징야를 찾는다. 사실상 대구의 빌드업 전술이 빈약하다는 말과 공격 세부 전술이 없다는 말은 일맥상통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대구는 결국 포지션 플레이와 패턴 플레이에 대한 약속된 부분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K리그 내에서 가장 유하게 해설하기로 유명한 이상윤 해설 위원도 직접 경기력에 대해 쓴소리를 할 만큼 대구는 역습을 위한 수비 축구가 아닌, 실점을 줄이기 위한 수비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이고 수비가 성공했을 때도 효율적으로 공격을 이어나가고,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공격을 전개하기보다 그저 수비 진영에서 상대 진영으로 밀어내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센터백이 끊으면 홍철에게, 홍철은 바셀루스에게 주는 그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드필더진의 기량 부족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현대 축구에서는 대부분 3명 이상의 미드필더를 많게는 4~5명도 두는 팀들이 많은데 대구만 2명을 두며 축구를 하고 있기에 미드필더들이 잡아도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된다. 결국 홍철에게 리턴 패스를 주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어지는데, 이럴 바에는 속도감을 살려 바셀루스나 세징야를 보고 바로 붙여주는 편이 효율적일 수밖에 없고, 상대는 이를 알기에 바셀루스와 세징야에게 더욱 거센 압박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3 시즌에는 세징야를 제외한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적고, 홍철의 폼이 좋았기에 이것이 먹혀들었지만, 주전 선수들의 잦은 부상에다 홍철에게 더 많은 압박이 가해지자 2024 시즌에 대구는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수비 상황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도 문제지만, 제일 큰 문제는 박스 안에서의 약속된 움직임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2024 시즌 들어 이러한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상대 진영에서 볼을 잡았을 때 근본적으로 공격 숫자가 부족하다보니 공격의 날카로움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선수들이 상대 수비를 끌어내주는 모습이 거의 없다. 물론 이는 공격수들에게 과한 수비 부담을 주다보니 생기는 문제도 있고, 대구의 라인 자체가 하프라인 아래까지 내려가게끔 낮게 형성되어 있어 공격수들이 박스 근처에 가면 이미 슈팅을 할 힘이 떨어져있다는 문제가 크다. 역습으로 전환하는 라인 자체가 이미 낮고, 상대 박스까지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드가 동시 기용은 고사하고 세드가를 아예 선발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고려를 해야하는데, 오히려 부상이 있음에도 출전을 강행해 다시 부상을 입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으니 팬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점유율을 낮게 가져가고, 주된 공격 루트가 역습인 만큼 대구는 더욱 효율적이고 약속된 패턴으로 확실한 공격을 해야한다. 대구가 좋은 성적을 내던 2018 ~ 2021년, 작년의 대구를 봤을 때 물론 세징야가 건재했던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수단의 에너지 레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그래서 세부 전술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많이 뛰고, 빠르게 뛰는 만큼 더 위협적이고 간결한 역습이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공격 전술을 더 세밀하게 짜서 확실한 포지션 플레이, 패턴 플레이로 득점을 만들거나, B팀을 활용해서 에너지 레벨이라도 높여야 하는데 두 개 다 하지 못하고 있으니 팬들에게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대구라는 팀의 단점이라기보다 최원권 감독의 기량적 아쉬움에 더 가깝다. 최 감독이 갑자기 감독직을 맡게 되고, 현재 K리그에서 가장 어린 감독인 만큼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음과 받을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수비 조직력과 수비 전술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중요한 부분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있음은 확실하다. 더 좋은 감독이 되고, 더 좋은 성적을 내려면 공격 전술에 대한 많은 연구와 변화가 필요하다.

전술적으로 종합하자면 수비수 출신인 만큼 수비 전술과 수비 조직력에 있어서는 그나마 괜찮지만[8] ,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전혀 쓸 줄 모르고 빌드업과 공격 전술에 있어 매우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가지 단점은 매니지먼트 능력 부족. 성격부터가 지나치게 다혈질적이라 프로 경기임에도 선수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감독 눈치를 보고 뛴다는 말도 있으며, 선수 시절에도 다혈질 기질이 있었는데 감독이 된 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 나타내주는 것이 그의 과격한 언행인데, 코치 시절에도 유명했지만, 이때는 개인의 비공개 SNS 상의 글이라 어찌저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식 감독이 된 이후에도 심심하면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을 저격하며 혼내고 있다. 그런데 모든 선수를 동일한 기준으로 혼내는 게 아니라 특정 선수들만 혼낸다. 바셀루스는 심심하면 저격하고, 최근에는 벨톨라에게도 뭐라한다. 젊은 선수들은 걔네 투입해서 실점 많아졌다고 깐다. 반면 세드가, 고재현 등은 아무리 죽써도 혼내기는커녕 굳건하게 신뢰하고 있다.

선수단 운영 능력도 엉망이다. 노장 에드가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선발 풀타임 출전으로 신나게 갈아먹었고 덕분에 에드가는 괜히 욕을 먹고 있다. 세징야 혹사는 여전하며, 고재현은 황선홍에게 이상한 걸 배워서 중미로 돌리며 고자기를 잃었고, 황재원도 신나게 갈아서 황재원은 번뜩이는 모습은 줄고 턴오버가 많아졌다. 대구 스쿼드가 결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애초에 전북, 울산 빼면 스쿼드가 풍족한 팀은 없어서 변명거리도 되지 않는다. 상술한 고재현 활용법은 물론이며 바셀루스, 김영준 등 공격수 활용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고재현의 경우 박스 안에서 위협적인 선수인데 상대 측면 수비수와 일대일을 가져가게 하고, 측면으로 넓게 빠지도록 활용하여 오히려 선수의 단점만 드러나고, 선수의 체력만 빠지는 효과를 낳고 있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체력 관리, 동기부여 등에 있어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특히 선수단 체력 관리가 많이 부족하다.

당장 광주 FC를 보자. 대구 FC보다 더 적은 예산으로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면서도 제대로 된 훈련장이 없어서 고생하는 구단이다.

또한 누구보다 젊은 선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해야할 팀의 수장이 어린 선수 기용은 고사하고 장성원이나 케이타 등의 카드가 있음에도 베스트 11 위주의 믿음 축구를 선사하고 있다. 그래놓고 매번 선수가 없다고 징징거리기나 한다. 2023 시즌에는 장성원, 케이타, 김강산을 많이 활용하지 않아 비판 받았고, 2024 시즌에는 B팀을 많이 활용하지 않아 비판받고 있다. 현재 대구 FC의 뎁스가 얇고 주전 선수들의 의존도가 심한데다 연령까지 높아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는 만큼, 전반전 10분 20분이라도 B팀 선수들을 기용해서 많은 압박과 활동량을 요구하고 이후에 기존 선수들을 투입하는 등 변화가 필요함에도 세드가를 갈아넣어 부상과 컨디션 저하, 경기력 저하를 유발하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다. 다른 팀들은 U-22 룰 때문에라도 B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유독 대구 FC만 경기당 교체를 1~2장 쓰는 등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감독 최원권의 영향이 크다.

더하여 대구 FC B팀이 K4리그에서 좋은 경기력과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B팀 선수 기용에 매우 소극적이다. 김영준은 선수랑 맞지도 않는 에드가 롤을 몇 번 시키더니 바로 B팀으로 보냈고 김희승[9]이 있음에도 여전히 노장 이용래만 믿고 있으며 이원우가 좋은 모습을 보여줘도 센터백 라인은 고정이다.[10] 김영준과 박용희 등이 있음에도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지 오래인 안창민을 스트라이커로 투입하고,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임에도 교체 카드를 2장만 사용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비판 받고 있다.

정식 감독 1년차라 발전할 여지가 있다며 실드 위주로 단점항목이 수정되기도 했지만, 2년차에도 여전히 쓸놈쓸, 믿음의 축구, 기괴한 인터뷰[11]를 남발하며 대구 FC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2024 시즌이 되면서 감독 3년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나 선수의 스타일에 대한 파악이 전혀 되지 않고 있고 B팀에 대한 불신과 책임을 전가하는 인터뷰로 팬들의 거센 사퇴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버텨 오다가, 대구 FC가 2024년 4월 17일 에서 열린 충북 청주 FC와의 코리아컵 3라운드에서 역전패해 코리아컵에서 탈락하며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사퇴하고 말았다.

감독 사퇴 후 후임 박창현 감독이 적극적으로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였고 u22 선수인 박재현, 정재상, 박용희가 데뷔골을 넣고 팀 전체적으로 경기력도 개선되면서 어린 선수들 안 쓰고 복붙 축구하는 최원권이 또 비판받았다.

6. 여담

  • 사실 플레이 스타일로 보았을 때 윙백보다는 플레이 메이커로 놓는 게 어울려 보인다고 한다. 혹자는 이관우를 윙백에 배치해 놓으면 어떻게 될 거 같냐는 말까지 했다. 최원권은 리그에서 윙백 자리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그냥 일단은 그 자리에 익숙한 것이라고.
  • 2012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던 당시, 결혼에 골인하였다, 아내와는 선수와 팬의 관계로 교류하다가 결혼에 성공한 케이스다.
  • 300경기 출장이 목표라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300경기에 9경기 남겨놓고 은퇴하게 된다.
  • 은퇴 후의 목표는 축구하는 선교사라고 한다. 선교사는 목표이고, 축구는 좋아하는 거니까 두 개를 다 하고 싶다고. 인터뷰에서는 태국[12]을 예로 들며 메이저 대회에 나가지 못하니 그곳에서 선수를 키워 K리그에 역 수출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부임하며 어느 정도 동남아에 적응할 시간을 벌게 되었으며, 베트남 역시 동남아에선 무시못하는 팀인 만큼 좋은 선수들을 K리그에 역수출한다면 평가가 엄청나게 올라갈 것이다.
  • 나이가 있음에도 인스타그램을 잘 이용하는 편이며 진솔한 마음을 잘 담아내는 편이다.
  • 대구 FC 감독 시절 별명은 '즙동'으로, 감독 대행 시절 2022년 31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5대0으로 대패한 후, 팬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조금만 더 지켜봐달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 전북전 이후 대구는 7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기존 11위로 강등권이었던 순위가 최종 8위까지 상승하며 기적적으로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1] 2024 시즌 도중 자진 사임. [2] 지지대 더비였다. 당시 교체 투입되었으나 결과는 5-4로 패배했다. [3] 이 당시 감독은 짐작할 수 있다 시피 조광래다. [4] 지금은 AFC 챔피언스 리그로 이름을 변경했다. [5] 이때 같은 올림픽 멤버였던 동갑내기 최태욱, 이천수, 조재진 등과도 친해지면서 스스로를 치킨패밀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6] 2023년 FA컵 3라운드 천안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로테이션을 냈다가 한석희 한 명을 제대로 못 막아서 PK 동점골을 실점해 연장까지 갔으며 연장 후반 막판 바셀루스의 페널티킥 골로 겨우 이긴 바 있다. [7] 세드가 혹사는 안드레, 이병근 시절에도 유명했는데, 그때는 세드가가 젊기라도 했지, 지금은 나이도 더 먹었고, 부상도 잦아졌다. 최원권 본인도 알고는 있는데 눈에 띄는 개선점은 없다. 고재현도 지금은 젊지만 부상 이력이 있는 선수다. 이들 외에도 황재원의 혹사도 심하다. [8] 훈련의 70% 이상이 수비훈련인데 실점이 많다. 23시즌에도 득실차 -1이었고 24시즌에는 7경기 10실점 중이다. 그나마 괜찮다는 수비가 이 모양이니 나머지는 판단에 맡긴다. [9] 결국 2024 시즌 팀을 떠났다. [10] 2024 시즌 4월 말에 김강산의 입대가 예정되어 이원우가 무조건 준주전급으로 올라설 수밖에 없게 됨에도 이원우에게 출전 시간을 주지 않아 비판받고 있다. [11] #, 인터뷰 [12] 다만 태국도 최근 투자를 거듭해 동남아시아에서는 강호로 자리 잡았고, J리그와 협약을 맺어 선수 교류를 추진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