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06:05:05

초정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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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은 조선시대 당시 기준 }}}}}}}}}
파일:초정행궁 복원모습.jpg
<colbgcolor=#bf1400> 재현 및 복원한 초정행궁의 모습
초정행궁 홍보영상
1. 개요2. 상세3. 건물과 행궁의 구획
3.1. 탕실구역3.2. 외행전(외전) 구역3.3. 침전구역
4. 재현 복원5. 복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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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椒井行宮

조선시대의 초수행궁. 초수행궁은 목욕, 질병 치료, 휴양 등을 목적으로 지은 행궁을 말한다.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다.

2. 상세

세종대왕이 눈병 등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짓고 머물렀던 행궁이다. 1444년( 세종 26년) 1월에 건립했으며 이후 세종이 머물며 이곳에서 한글창제를 마무리했다. 총 121일을 이곳에 행차했으며 행궁이 건립될 당시에는 탄산수가 솟아나는 곳을 기준으로 구획이 나뉘었다. 《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 등의 자료에 의하면, 1444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세종대왕이 이곳에 행차하여 초정행궁에서 117일 동안 요양하면서 초정 광천수로 눈과 피부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당시 지은 행궁은 1448년(세종 30년) 방화로 불에 타 사라졌다. 1464년(세조 10년)에는 세조가 초정 일대에 행차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초수(​椒水)는 고을 동쪽 39리에 있는데 그 맛이 호초 같으면서도 차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 세종과 세조가 일찍이 이곳에 행차한 일이 있다.''

3. 건물과 행궁의 구획

행궁은 크게 4군데로 나뉘게 된다.
  • 1.왕이 탕에서 치료를 하는 탕실구역.
  • 2.왕이 머무는 침전구역.
  • 3.관청이 들어선 내전구역.
  • 4.수라간을 포함한 기타 관청이 들어선 외전구역.

3.1. 탕실구역

파일:노천합탕.jpg
파일:초정약수.jpg
<colbgcolor=#bf1400> 청주시에서 복원한 '노천탕' 모습 <colbgcolor=#bf1400> 현재 남아있는 '영천'의 발원지인 '상탕'의 모습

행궁의 중요 부분중 하나인 탕실구역은 크게 3구획으로 나뉜다.

* 1.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했다고 하는 상탕
* 2.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마셨다는 원탕.
* 3.목욕을 할 수 있는 노천탕.

이 우물 3개를 일러 탕마당이라고 했다 한다. 즉, 행궁의 탕실의 건물 이름은 '탕마당'인 듯 하다.

행궁을 만든 계기가 되었던 초정약수는 본래 '영천'이라고 불리며 우물 3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는 탄산수 우물이 한 군데밖에 없다는 점을 볼 때, 1448년(세종 30년)에 방화로 행궁이 불탄 이후 우물이 잊혔고, 결국 세월이 지나며 2군데가 사라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다만 2020년 복원된 초정행궁에는 현재 전해지는 탄산수 우물이 '상탕, 중탕, 노천탕' 중에서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2000년대까지 떠서 마셨고 현재 남아있는 탄산수 우물을 상탕으로 추정하여 유일하게 복원한 것이다.

참고로 행궁을 복원할 때 첫 계획은 우물 3개를 모두 복원하는 것이었으나, 위치를 몰라서 철회했다. 행궁 재현 당시, 노천탕을 다시 재현하여 놓기도 했다.

3.2. 외행전(외전) 구역

파일:초정행궁 내행전.jpg
<colbgcolor=#bf1400> 초정행궁 외행전
행궁의 정전인 외행전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신하들과 업무를 했다.

3.3. 침전구역

행궁의 중심부분이다. 이곳에서 세종대왕이 머물면서 한글창제를 마무리 했다. 내행전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한글창제를 하며 치료를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다만 현재 건물은 재현한 것이기 때문에 건물 자체의 문화재적 가치는 없다고 볼 수 있다.

4. 재현 복원

복원을 하기 전, 청주시에서는 문화재청에 발굴요청을 했으며, 그에 따라 문화재청에서는 초정행궁 주변의 행궁 추정터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발굴 당시에는 일제가 1912년 작성했던 토지대장에 이 일대가 조선 왕실의 궁궐인 창덕궁 소유로 적혀 있어서 발굴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특히 주춧돌과 기단석 등 행궁과 관련한 유구가 나오면, 유구가 오랜 시간이 지나며 교란되어도 청주시 문화재청에서 복원 사업을 벌일 수 있고, 천연기념물 등재가 무산된 초정약수의 천연기념물 지정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계기이자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청주시와 문화재청은 한 장소만이 아닌, 초정행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9개 지점을 조사했다.

초정행궁의 재현 계획은 2015년부터 짜여 있었다. 당시 남아있던 초정약수를 중심으로 발굴조사를 했으며, 발굴을 통하여 행궁의 유구가 나오면 그 자리에 발굴을 통하여 밝혀진 구조와 형태를 바탕으로 복원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청주시 문화재청의 예상과는 다르게 초정행궁의 유구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결과적으로 행궁의 유구로 보이거나 추정되는 유물은 없었다.

결국 청주시에서는 2017년 12월부터 2019년 12월 4일까지 약 2년 간, 초정리 초정문화공원 일대에 있던 3만 7651㎡ 부지에 초정행궁 재현공사를 진행했다. 무려 165억 7,800만 원을 들인 대규모 공사였다. 공사 완료 후 약 6개월간 행궁의 영역별 실내장식, 전시, 집기류 비치 등 내부 공간 정비를 거쳐 2020년 6월에 개장했다. 6월에 개장하려했던 이유는 초정약수축제가 그 달에 열리기 때문이었다. 비록 코로나 19로 인해 축제는 취소되었으나 개장은 예정대로 진행했다. 현재의 초정행궁은 바로 그 결과로 나온 것이다.

정리하자면 진짜 초정행궁터는 따로 있고 현재의 초정행궁은 그냥 초정행궁의 느낌을 내는 한옥호텔 정도에 가깝다.

5. 복원 논란

초정행궁을 고궁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궁궐건축 요소를 가미하고 지형에 따른 공간 위계를 고려하여 재현했다고 하지만, 전혀 행궁으로서의 느낌과 전통 기법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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