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 베켓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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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베켓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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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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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 2007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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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2009 | 2011 |
2003년 월드 시리즈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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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글로스 ( 애너하임 에인절스) |
→ |
조시 베켓 ( 플로리다 말린스) |
→ |
매니 라미레즈 ( 보스턴 레드삭스) |
2007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 ||||
플라시도 폴랑코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 |
조시 베켓 ( 보스턴 레드삭스) |
→ |
맷 가자 ( 탬파베이 레이스) |
200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 ||||
요한 산타나 ( 미네소타 트윈스) 왕젠민 ( 뉴욕 양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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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베켓 ( 보스턴 레드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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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리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트로이 글로스 ( 애너하임 에인절스) |
→ |
조시 베켓 ( 플로리다 말린스) |
→ |
키스 폴크 ( 보스턴 레드삭스) |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61번 | ||||
리반 에르난데스 (1996~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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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AA6> 조시 베켓 (2001~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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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 애버크롬비 (2006~2007) |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21번 | ||||
채드 앨런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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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베켓 (2003~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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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보르하르트 (2006~2007) |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19번 | ||||
존 올러루드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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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베켓 (2006~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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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하라 고지 (2013~2016)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61번 | ||||
박찬호 (1994~2001,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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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베켓 (2012~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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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버두고 (2017~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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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베켓 Josh Becke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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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조슈아 패트릭 베켓 Joshua Patrick Beckett |
출생 | 1980년 5월 15일 ([age(1980-05-15)]세) |
텍사스 주 스프링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스프링 고등학교 |
신체 | 196cm / 104kg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번, FLA) |
소속팀 |
플로리다 말린스 (2001~2005) 보스턴 레드삭스 (2006~201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12~2014) |
기록 | 노히트 노런 (2014.5.25)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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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3년 우승 SI 커버 | 2007년 우승 SI 커버 |
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소속 우완 투수.
2. 선수 경력
2.1. 플로리다 말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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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절엔 미국 야구 역대 최고의 고교 투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당시 전체 1픽을 쥐고 있던 탬파베이 데블레이스가 역대 최고의 고교 야수 툴가이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조시 해밀턴을 선택하면서 전체 2픽을 소유한 플로리다 말린스의 지명을 받았고 입단했다.
앞서 지명된 조시 해밀턴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무너지는 바람에 한때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1위로 꼽혔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등판을 했으나 성적은 평범했다. 당시의 인식은 젊지만 유리몸[1]인 유망주 투수로 평가받았다. 강력한 스터프를 가진 동갑내기로 늘상 비교되던 투수는 바로 마크 프라이어였다. 이들은 향후 10년간 메이저를 이끌고 나갈 투수로 각광받았다.
2003년에는 24경기 142이닝 9승 8패 ERA 3.04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했다. 와일드 카드로 올라온 말린스는 전력상 그다지 강팀은 아니었고, 선발진도 신인으로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돈트렐 윌리스를 포함, 브래드 페니와 마크 레드먼이 14승을 올리고 칼 파바노도 있었지만 에이스감은 누가 봐도 베켓이었다. NLDS에서는 1차전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제이슨 슈미트에게 완봉승을 내주며 패전을 기록했다. 이후 2, 3, 4차전은 엎치락 뒤치락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한 끝에 말린스가 모두 승리하며 NLCS에 진출했다.
NLCS에서 1차전은 6.1이닝 6실점을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2] 이후 시리즈는 2차전에서 브래드 페니, 4차전에서 돈트렐 윌리스가 컵스 타선에 탈탈 털리는 등 컵스가 2, 3, 4차전을 모두 승리하여 염소의 저주를 푸는 데 1승만을 남겨두게 되었으나, 5차전 선발로 나선 베켓은 2피안타 1볼넷 11삼진 완봉승으로 컵스 타선을 잠재워 버린다. 이어진 6차전엔 그 유명한 관중 스티브 바트만의 파울볼 수비방해가 터지며 말린스가 다시 승리했고, 마지막 7차전. 말린스는 그나마 3차전에서 선방한 선발 마크 레드먼마저 털려 나가고 있었으나, 마침 컵스 선발 케리 우드 역시 흔들리면서 말린스는 5회초에 6:5로 역전한다. 말린스는 마무리 우게스 어비나 외에는 불펜조차 막장인 상황. 이에 115구 완봉승을 거둔 베켓이 이틀 쉬고 5회말에 릴리프로 올라왔다. 베켓은 홈런 한 개를 허용하긴 했지만 나머지 타자들을 무볼넷 무안타로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4이닝 1실점 홀드를 기록한다. 마침 타선도 더 힘을 내면서 말린스가 9:6으로 승리했다.
1차전에서 부진한 것도 있고 시리즈 MVP는 이반 로드리게스에게 넘어갔지만, 염소의 저주를 거의 다 깨는 듯했던 컵스를 주저 앉힌 1등 공신은 5차전 완봉에 이틀 쉬고 7차전에서 다시 컵스 타자들을 꺾어버린 조시 베켓이었다. 아무리 포스트시즌이라도 완봉승 이틀 뒤에 다시 3~4이닝의 멀티이닝까지 완벽하게 소화한 역사는 드물다.[3]
하지만 이것도 그의 포스트시즌 화려한 역사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지는 월드 시리즈에서는 그야말로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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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의 타선을 상대로 마이크 무시나와의 선발 대결에서 3차전 7.1이닝 2실점 패전한 것은 불운이라 쳐도, 말린스가 3-2로 리드하던 상황, 말린스는 6차전에서 경기를 끝내기 위해 베켓을 3일 쉰 상태에서 조기에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그리고 베켓은 6차전에서 양키스 타선을 압살하며, 다시 완봉승을 거두며 월드 시리즈 우승을 확정한다. 이 활약으로 월드 시리즈 MVP에도 선정된다. 이때 이후로 21세기는 마크 프라이어와 조시 베켓의 시대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물론 지금 돌이켜 보면 영건의 미래를 예지하는 건 의미없는 일이라는 말의 또 다른 예가 되었지만 말이다.[4]
2.2. 보스턴 레드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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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부상은 부상대로 입었지만 성적은 상승세를 타며 2005년 15승을 달성[5]했고, 에이스 투수로 자리잡게 되나 그해 시즌 후 3루수 마이크 로웰과 투수 기예르모 모타와 함께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 된다.[6] 이적 첫 해인 2006년 레드삭스 선수로서 35년만에 투수 홈런을 치고 커리어 처음으로 200이닝을 던지는 데 성공했으나 ERA는 5.01로 시궁창을 달린다.[7] 하지만 절치부심한 2007년 20승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에 도달한다.[8]
게다가 2007년 포스트 시즌에서 그야말로 무적 포스를 선보였는데,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과의 ALDS 1차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ALCS 1차전과 5차전,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압도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4승을 쓸어담았다. 그의 피칭으로 인해 ALCS에서 1:3의 위기에 놓였던 레드삭스는 분위기를 반전시켜 펜웨이 파크에서 6, 7차전을 대승으로 장식시키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ALCS MVP는 베켓의 몫이었다.[9] 월드 시리즈에서도 락토버로 불리면서 연승행진을 달리던 로키스를 1차전에서 제압하면서 기세를 꺾어 버렸다. 스윕하는 바람에 더 등판할 필요는 없었다.
2009년 시즌 중반 드디어 100승을 달성했고, 최종 성적 32경기 212.1이닝 17승 6패 ERA 3.86을 기록하며 동료인 존 레스터와 함께 보스턴이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는데도 일조했다. 다만 2008년부터는 그동안 쌓아올린 명성이 무색하게도 포스트 시즌 성적이 매우 좋지 않았다.
2.2.1. 2010년
초반에 매우 부진하다가 부상자 명단으로 내려간 다음 7월부터 다시 올라와 나름 호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탈탈 털렸다.[10] 과거와 같은 포심의 무브먼트와 구속이 전혀 살아나지 않았고[11] 커브는 밋밋했고 싱커는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제구력 난조까지 더해져 9이닝당 1.4개의 홈런에 3.2개의 볼넷을 허용하는 막장 피칭을 선보였다. 결국 최종 성적 21경기 127.2이닝 6승 6패 ERA 5.78로 마무리하며 보스턴의 안티 팬들은 빅 게임 피처는 빅 게임에서 뛰셔야 하기때문에 스몰 게임은 신경도 안 쓰시는 것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2.2.2. 2011년
시즌 첫번째 선발 등판에서는 5이닝 5피안타 4볼넷 3실점의 막장 피칭을 선보이면서 또 다시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4월 10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8이닝 2피안타 1볼넷 10탈삼진의 완벽투를 선보이면서 일단 한숨 돌렸다. 그 뒤로는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필리스 원정 전까지는 1점대 ERA를 자랑했다.그런데 베켓이 등판하는 날이면 타자들이 일제히 배트를 거꾸로 잡고 나오는 것인지는 몰라도 득점 지원이 처참한 수준이었다. 같은 팀의 존 레스터나 존 래키가 받는 득점지원에 비하면 영 형편없었다. 하지만 시즌 막판 들어 불어닥친 보스턴의 저주에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후반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전 시즌부터 연마했던 커터가 잘 긁히면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최종 성적 30경기 193이닝 13승 7패 ERA 2.89 175탈삼진으로 시즌을 잘 마무리지었다. 흠이라면 시즌 중반에 당한 잔부상으로 인한 결장으로 인해 200이닝은 채우지 못했으며, 레드삭스는 극적으로 와일드 카드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팀 케미스트리를 망친 선수들이 있다면서 감독직에서 사퇴하고 테오 엡스타인 단장마저 시카고 컵스로 떠나면서 존 레스터, 클레이 벅홀츠, 존 래키와 함께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자기들 경기 안하는 날엔 덕아웃에서 경기 보는 게 아니라 클럽하우스에서 치맥을 뜯고 비디오 게임을 했다고 하며 본인은 이 문제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가 2012년 스프링 캠프 시작과 함께 팀메이트들에게 사과했다.
2.2.3. 2012년
시즌 첫경기부터 짝수해 징크스의 기운이 엄습했다. 디트로이트전에서 4.2이닝 동안 미겔 카브레라와 프린스 필더에게 홈런을 두개씩 조공한 것을 포함 홈런 5개를 조공하며 7실점 강판했고, 팀은 10-0으로 완패했다.그리고 5월에는 컨디션 안좋다고 등판을 한번 거르고 벅홀츠와 함께 골프를 치러 간 것이 들통나서 곤욕을 치렀다. 팬들은 디비전 꼴찌로 떨어진 성적에 멘탈이 붕괴되었는데 거기다가 뒤통수를 또 맞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반기까지는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14경기 89.1이닝 ERA 4.43로 신나게 얻어터졌는데, 그래도 위안을 삼을 것은 심하게 낮았던 잔루율과 ERA에 비해 낮은 FIP을 보면 바운스백을 어느 정도 기대할 수는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등판 띵기고 골프치러 다니는 그런 멘탈로 바운스백을 기대할 수 없었고, 보스턴 팬들은 이미 기대를 접은지 오래였다.[12]
2.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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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2012년
결국 2012년 8월 25일 칼 크로포드, 아드리안 곤잘레스, 닉 푼토, 현금과 함께 이반 데 헤수스, 제임스 로니, 앨런 웹스터, 추후지명선수[13]를 상대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며, 덕분에 보스턴의 팬덤은 축제 분위기였다.[14]다행히 다저스 이적 후의 7번의 선발등판에선 2점대 ERA를 기록하며 어느 정도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고, 최종 성적은 170.1이닝 7승 14패 ERA 4.65을 기록했다.
2.3.2. 2013년
2013시즌 4월 3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왔지만 파블로 산도발에게 2점 홈런, 헌터 펜스에게 솔로홈런 등을 맞으며 6이닝동안 5실점을 당하며 강판당했고, 팀도 5:3으로 패배했다. 이날 상대 투수인 팀 린스컴이 정상적인 투구를 하지 못했는데, 베켓은 그보다 더한 바람에 졸지에 개막 2선발로 나왔던 류현진이 선방했다는 드립들이 쏟아졌다. 뭐 2013 시즌만 놓고 보면 이건 드립이 아니라 비교 자체가 류현진에게 미안한 일이 되어 버리긴 했다.4월 9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 등판해 1회부터 윌 베나블에게 홈런을 내주는 걸 시작으로 계속 얻어맞으며 불안한 투구를 반복했고, 결국 5이닝 3실점을 하며 강판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저스 타선도 중요할 때 앞서가거나 따라잡는 기회를 자꾸 날려먹는 물방망이를 또 보여줬고, 믿었던 불펜은 8회말에 6실점이나 하며 와르르 무너져 충격적인 대패를 당했다.
4월 14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는 팬들이 원하던 베켓의 모습을 보여주며 호투했지만 다저스 타선이 다시 물타선을 과시한 덕분에 단 1점도 득점지원을 받지 못했고, 결국 9회말 폴 골드슈미트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완투패를 당했다. 지난 경기들이야 못해서 졌으니 억울하진 않은데 이번 경기는 잘 하고도 져서 매우 원통할 경기였다.
4월 20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잘 던지다가 급격히 무너지며 팀의 연패도 이어졌다.
4월 26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해 초중반까지는 호투했지만 4회초 라이언 브론에게 솔로홈런을 내주고, 그 뒤에도 5회초 유니스키 베탄코트에게 동점 홈런을 내주고 진 세구라에게 역전 적시타를 맞는 등 다시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반복하였다. 결국 6회초 주자 1, 2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 이번 시즌 첫승은 다음으로 미뤄야했다.[15]
5월 1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1회부터 두들겨 맞으며 무너졌다. 다저스 타선은 2회말 아드리안 곤잘레스가 친 공이 연타석 홈런이 될 수 있던 것이 호수비에 막히면서 다시 갑갑함이 이어졌고, 결국은 다시 팀과 함께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썼다.
5월 14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조던 짐머맨과 맞대결 하였지만 3회까지 4실점을 내주며 조기강판을 당하며 5연패를 찍었다. 다저스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노릇인데, 마비 증세가 와서 커리어를 지속할 수 없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왔다. 일단 2013년 내 복귀를 목표로 재활에 매진한다고 했지만 결국 시즌 아웃을 선언하며 2013 시즌은 그저 먹튀로만 기억되었다. 8월달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지만 다저스 팬들은 순간 못 알아봤다고 한다.
진단 결과 베켓의 마비 증세의 원인은 흉곽 출구 증후군으로, 쇄골이 혈류과 신경을 압박해 팔에 마비와 통증을 안겨주는 것이다. 보통은 수술까진 가지 않으나 베켓의 경우에는 증상이 심각했는지 결국 수술로 해결한 모양이다.[16] 베켓 본인은 반등에 대한 의지가 강해 보이나 이 증후군을 앓았던 투수들이 대개 수술을 택하던 재활을 택하던 증상을 진단받은 후 성적이 좋지 않고 반등에 실패했기 때문에 베켓의 반등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2.3.3. 2014년
2014년 역시 전망이 밝지는 않다.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의 자리는 넘볼 수가 없는 영역이고 류현진의 자리 역시 공고하다. 만약 리키 놀라스코라도 계약을 하게 된다면 베켓은 잘해야 5선발에서 던지게 될 텐데, 이미 2014년에는 나이가 만으로 34세에 접어들고 꾸준히 패스트볼 구위가 떨어져 온 역사를 볼 때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반등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거기에 하필 계약이 14년 딱 1년 남아있고, 2012년 이후의 다저스는 메이저 역사를 통틀어 최강의 현질 구단이라는 걸 감안할 때 베켓의 1년치 연봉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셈 칠 수 있는 구단이다. 이미 2013년 테드 릴리가 연봉을 다 받고 쫓겨났는데,[17] 그 모습을 보며 베켓은 적잖이 위기감이 들 듯하다. 분명한 사실은 2014년에도 베켓에게 기회는 얼마 없으며, 그 얼마 안 되는 기회 동안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다저스는 냉정하게 그를 버릴 수 있는 구단이라는 점이다. 리키 놀라스코는 후반부와 포스트 시즌에서 부진했고, 다저스와 계약에서 의견 차이가 나온 끝에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했지만, 1년 계약이지만 댄 해런이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다저스로 옮겨왔고 여기에 토미 존 수술 후 복귀할 채드 빌링슬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온 폴 마홀름까지 있어서 그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다.3월 2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펼쳐진 시범경기에 등판하여 2이닝동안 삼진 3개를 얻어내며 무실점으로 마쳤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부활의 기대를 걸어볼 수 있던 등판이었지만 3월 8일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한 시범경기에서는 홈런만 3방을 맞으며 5실점이라는 실망스러운 피칭을 했으며 이후 시카고 컵스와의 시범 경기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클럽 하우스에서 문을 닫다가 손가락을 다친 이후 손가락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등판이 취소될 뻔 했는데 예정을 뒤엎고 그대로 선발로 나왔다. 이 경기에서는 3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손가락이 말썽을 일으켜서 강판되었다. 다행히 손가락 상태가 더 악화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저번 경기에서의 부진을 씻어줄 좋은 기회였는데 이래저래 운도 정말 없다. 이후 마이너에서 재활 과정을 거쳤는데 여기서도 번트 수비를 하다 다치는 등 불운이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재활을 마치고 4월 9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였다. 2회에 디 고든의 수비 에러에 이어 투수 아니발 산체스에게 2루타를 맞아 실점 하긴 했지만 3회 투아웃을 잡아낼 때까지는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투아웃을 잡은 후 빅터 마르티네즈와 오스틴 잭슨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갑자기 흔들려 닉 카스테야노스에게 쓰리런 홈런을 허용했으며 결국 4회까지만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4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위기도 몇 번 있었지만 5이닝 4탈삼진 무실점으로 저번 경기에 비해 훨씬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나마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4월 20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는 감기로 고생중인데도 불구하고 5이닝 1피안타 2볼넷 7삼진 무실점으로 확실히 부활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4월 25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는 2회 트로이 툴로위츠키와 코리 디커슨에게 홈런 2방을 맞았지만 그외에는 8이닝동안 4피안타 2실점 6탈삼진 무사사구로 자신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승을 얻지 못했다. 4월 동안 1승도 얻지 못했는데 5월 8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6.2이닝동안 5피안타 3볼넷 4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고도 역시 타선이 점수를 내지 못해서 노디시전 처리되었다.
5월 14일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6.1이닝동안 4피안타 3볼넷 6탈삼진 1실점 비자책으로 호투하였고 타선도 6회부터 점수를 잔뜩 몰아주면서 드디어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18] 5월 20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는 5이닝동안 8피안타 2피홈런 2볼넷 6탈삼진 4실점으로 전 경기들보다는 안좋았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아 2승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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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데뷔 첫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다![19] 마지막 타자 체이스 어틀리를 루킹 삼진으로 잡아낸 후 기뻐하는 것이 백미로, 월드 시리즈 우승에 MVP까지 달성하며 최전성기를 누리던 때도 노히트 경기는 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실로 그에게는 의미있는 기록이다. 경기가 자신의 노히트 노런으로 끝날 때까지 투구 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감독이 투구 수에 대해 말해줬다면 경기 도중 내려갔을 것이라며, 아직은 내 공이 상대에게 통한다고 믿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메이저 이 주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다만 세이버메트릭스로 분석한 조시 베켓의 부활은 상당 부분 운빨에 의존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베켓은 삼진도 많이 잡고 볼넷도 적게 내 주고 있지만 이런 공격적인 피칭을 하게 되면 상대 타자들이 정타로 공을 맞추기가 쉽다. 예전의 베켓은 이런 타자들의 컨택을 힘으로 누르고 들어갔지만, 지금와서 공에 힘이 떨어진 마당에 그런 피칭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홈런을 많이 내주는 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2점대 ERA를 유지하는가? 그건 안타를 안 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BABIP 항목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투수는 상대적으로 공이 방망이에 맞고 난 뒤에 그게 안타가 될 지 안 될 지 여부에 대해 영향력을 많이 끼치지 못한다는 게 현대 세이버메트릭스의 정설이다. 제구와 무브먼트 등에 의해 소폭 조정 가능은 하지만 사실상 선발 투수에게는 예외로 꼽히는 소수의 선수들을 제외하면[20] 웬만해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었으며 그리고 베켓은 이 공이 방망이에 맞고 난 뒤 안타가 된 빈도 인 BABIP가 7월 30일 기준 .249 로 리그 선발 투수 평균인 .297 에 비해 낮다. 사실 이것도 많이 오른 거다. 한창 때에는 .200 에 근접하게 떨어진 적도 있다. 그게 소화 이닝수, 표본 크기가 늘어나며 노이즈가 사라지고 평준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 때문에 ERA와 달리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수비에 의지하지 않고 투수의 퍼포만스만으로 평가하는 FIP로 따지면 4.29로 거의 폐급 투수다. 실제로 베켓의 게임 로그를 보면 운빨이 걷혀가는 7월 즈음부터 경기 내용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비록 7월 30일 시점에서도 ERA는 2.74로 나쁘지 않아 3.44인 류현진과 비교가 안 되는 투수지만, FIP에 바탕하여 실적을 평가하면 fWAR 0.3 으로 2.3 가량인 류현진의 1/8 밖에 안 되는 가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건 베켓은 극도로 운이 좋고 류현진은 상당히 운이 나빠 두 사람 사이의 클래식 스탯 차이가 커져 버렸기 때문에 더 대비됐었지만 BABIP이 투수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으로 재평가되면서 또 다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막말로 FIP는 ERA와 비교할 수도 없이 가치가 떨어지는 스탯이기 때문이다. ERA가 좋고 FIP가 나쁜 투수는 운빨러가 아니라 그냥 A급 피네스 피처, 혹은 땅볼 유도형 투수일 확률이 높고 ERA가 나쁘고 FIP가 좋은 투수는 불운한게 아니라 그냥 제구 불안 파이어볼러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베켓의 그 때까지의 커리어와 이후 행보(14시즌 중 당한 부상으로 그대로 은퇴)를 보아도 베켓의 14시즌이 운빨이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다.
8월 3일 경기에서는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5이닝을 채우지 못하며 3실점을 하고 교체된다. 이날 경기는 다저스 타선의 집중력이 발휘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베켓도 볼질을 계속하다가 투수 에드윈 잭슨에게 2루타, 1번 타자 크리스 코글란에게 2점 홈런을 내주는 갑갑한 피칭이 나왔다.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에 당한 엉덩이 부상 때문에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다 결국 15일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래라면 수술을 받아야 할 부상인데 당장 내년이 FA이고 수술을 받을 경우 시즌 아웃될 가능성이 높다 보니 주사 처방으로 근근히 버티었지만 결국 한계가 찾아온 것이다. 그나마 MRI 촬영 결과에 의하면 2012년 클레이튼 커쇼가 당한 부상과 비슷한 상태여서 정규 시즌 내에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 안도거리였지만 9월 확장 로스터가 된 시점까지 베켓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돈 매팅리 감독은 이미 베켓이 시즌 아웃도 될 수 있다는 암시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베켓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의 내년 FA나 팀의 포스트 시즌 모두 긍정적인 효과는 얻기 힘들다.
3. 은퇴
2014년 9월 5일 켄 거닉의 기사를 통해 은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언급됐다. 시즌 아웃은 공식적으로 확정됐으며, 은퇴는 시즌이 끝난 뒤 아내와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지만 스스로 언급한만큼 은퇴 가능성은 적지 않은 편이었고, 결국 10월 8일 은퇴를 발표했다. 이제는 몸에 한계가 왔다는 것이 은퇴 이유였다.4. 피칭 스타일
커리어 초반기에는 전형적인 텍사스산 우완 파이어볼러였으며, 당시 기준 상위권에 해당되는 구속이었던 평속 94마일에 달하는 패스트볼을 구사했는데, 구속과는 별개로 엄청난 구위를 자랑했기에 구사율이 높았다.[21] 클래식한 투수답게 포심, 커브의 조합을 즐겼고 체인지업을 함께 던졌다. 그리고 2009년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싱커로 포심의 일부를 대체하며 타자들을 상대하였다.그러나 포심 - 커브 - 체인지업의 단조로운 피칭은 파훼법이 드러나면서 2010 시즌 대차게 말아먹는 요인이 되었다. 2010 시즌 후반에는 떨어진 구위를 대신할 투심 패스트볼도 연마했지만 영 재미를 보지 못했다. 부진을 극복하고자 여러 새로운 실험들을 시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컷 패스트볼의 장착이다. 평속 90마일의 커터를 이용해 2011시즌 수많은 타자들을 잡아내는 반면, 커브의 비중은 16%대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베켓의 커브는 위력적이며 낙차폭은 MLB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그외 코너웍과 완급조절 능력도 뛰어난 편이다. 특히나 두둑한 배짱과 묵직한 포심 / 종변화구 조합은 제 2의 커트 실링[22]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구위를 감안했을 때 피홈런이 많은 편인데 이게 다 가운데에 쑤셔넣는 베켓의 성깔 때문이다.
00년대 중후반기를 장식한 MLB의 헤드 헌터다. 속칭 빈볼도 전략을 구사했는데 본인의 불같은 강속구와 가운데와 몸쪽을 서슴없이 찔러넣던 성향이 겹쳐지며 타자들이 자신 앞에서 까부는 행위를 할 경우 보복도 서슴없이 진행한 편.[23][24]
커리어 자체가 나쁜 편은 아니나 유망주 시절의 기대에는 어째 못 미치는 느낌이다.[25] 말린즈 시절에는 잔부상이 많은 편이라 경기 출장 수가 적기도 했고, 보스턴 시절에는 홀짝 징크스가 심한 편이라 커리어 기복이 좀 있기도 했다. 다만 클래식 스탯과는 달리 FIP와 같은 스탯은 2006년과 2013년을 빼면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걸 봐서는 짝수 시즌이 유달리 운이 없던 시즌이었던 걸로 보는 것이 맞다.[26]
다만 2013년에 들어 포심의 구위가 급격히 떨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다저 스타디움을 홈으로 쓰는 투수치고 심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진행중이긴 하지만 FIP와 ERA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냥 못 던지는게 맞는데, 문제는 자신이 여전히 패스트볼에 대한 고집이 있어[27] 위기 상황을 못 벗어나고, 여기에 커브도 말을 잘 안들으면서 설상가상이다.
2014년에 들어와서는 부상회복으로 포심은 작년보다는 좋아졌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베켓 본인도 인지했는지 포심의 구사 비율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대신 커브의 구사 비율이 30% 정도까지 올랐다. 그러면서 성적도 작년에 비하면 상당히 좋아졌다.
슬라이드 스텝이 상당히 빠른 편에 속했다. 무릎을 거의 들지 않는 수준이다.
5. 연도별 성적
조시 베켓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C9C0BB>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01 | FLA | 4 | 2 | 2 | 0 | 0 | 24 | 1.50 | 14 | 3 | 11 | 1 | 24 | 1.042 | 286 | 0.4 | 0.7 |
2002 | 23 | 6 | 7 | 0 | 0 | 107⅔ | 4.10 | 93 | 13 | 44 | 1 | 113 | 1.272 | 98 | 1.5 | 0.5 | |
2003 | 24 | 9 | 8 | 0 | 0 | 142 | 3.04 | 132 | 9 | 56 | 2 | 152 | 1.324 | 138 | 4.0 | 3.8 | |
2004 | 26 | 9 | 9 | 0 | 0 | 156⅔ | 3.79 | 137 | 16 | 54 | 6 | 152 | 1.219 | 108 | 3.4 | 2.0 | |
2005 | 29 | 15 | 8 | 0 | 0 | 178⅔ | 3.38 | 153 | 14 | 58 | 7 | 166 | 1.181 | 118 | 4.6 | 3.9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06 | BOS | 33 | 16 | 11 | 0 | 0 | 204⅔ | 5.01 | 191 | 36 | 74 | 10 | 158 | 1.295 | 95 | 1.2 | 2.9 |
2007 | 30 | 20 | 7 | 0 | 0 | 200⅔ | 3.27 | 189 | 17 | 40 | 5 | 194 | 1.141 | 145 | 5.7 | 6.5 | |
2008 | 27 | 12 | 10 | 0 | 0 | 174⅓ | 4.03 | 173 | 18 | 34 | 9 | 172 | 1.187 | 115 | 4.2 | 3.2 | |
2009 | 32 | 17 | 6 | 0 | 0 | 212⅓ | 3.86 | 198 | 25 | 55 | 7 | 199 | 1.192 | 121 | 4.3 | 5.1 | |
2010 | 21 | 6 | 6 | 0 | 0 | 127⅔ | 5.78 | 151 | 20 | 45 | 8 | 116 | 1.535 | 75 | 1.0 | -1.0 | |
2011 | 30 | 13 | 7 | 0 | 0 | 193 | 2.89 | 146 | 21 | 52 | 9 | 175 | 1.026 | 149 | 3.7 | 5.7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12 | BOS/ LAD | 28 | 7 | 14 | 0 | 0 | 170⅓ | 4.65 | 174 | 21 | 52 | 5 | 132 | 1.327 | 89 | 1.8 | 0.8 |
2013 | LAD | 8 | 0 | 5 | 0 | 0 | 43⅓ | 5.19 | 50 | 8 | 15 | 1 | 41 | 1.500 | 69 | 0.1 | -0.8 |
2014 | 20 | 6 | 6 | 0 | 0 | 115⅔ | 2.88 | 96 | 17 | 39 | 5 | 107 | 1.167 | 121 | 0.7 | 2.4 | |
MLB 통산 (14시즌) |
335 | 138 | 106 | 0 | 0 | 2051 | 3.88 | 1897 | 238 | 629 | 76 | 1901 | 1.232 | 111 | 36.7 | 35.7 |
6. 기타
- 존 스몰츠나 커트 실링 같은 대투수들에게는 밀리지만, 베켓 역시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로서 충분히 명성을 떨쳤다. 경기수 부족으로 누적이 딸리고 2008년과 2009년의 부진으로 비율 스탯도 까먹긴 했지만, 2차례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견인했고 두 번 모두 팀이 1:3으로 챔피언십 시리즈 탈락 위기에 몰렸을 때 완벽 투구로 팀을 구해내기도 했다. 통산 3차례의 완봉은 역대 2위. 특히 5번 선발에 1번의 4이닝 릴리프 등판을 했던 2003년 단일 포스트시즌 성적은 42.2이닝으로 4위, 47탈삼진으로 2위에 올라 있다. 비슷한 커리어의 선수로 잦은 부상으로 커리어가 꼬였지만 두 차례 카디널스 우승의 주역 크리스 카펜터를 꼽을 수 있겠다. 다만 카펜터가 세인트루이스에서 뼈를 묻으며 박수를 받고 은퇴한 것과 달리 베켓은 소속팀과 마찰을 빚고 어그로를 끌었다는 점이 흠이다.
- 메이저에서 불펜 등판 3번을 포함하여 총 335회 등판하였는데, 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삼진을 기록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스포츠 계에선 소문난 사슴 사냥꾼이다.[28] 그외에 자신의 이름으로 자선 볼링 대회를 개최하는 등 봉사에도 노력한다. 그외에 좋아하는 야구 선수 카드를 1만장씩 모으는등 꽤나 매니아적인 취미도 가지고 있다.
- 2009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과의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는데, 이후 인터뷰에서 "에인절스에 아덴하트[29]의 망령이 남아있다."라는 고인드립을 작렬하면서 몇 달 동안 계속 까였다. ALDS 2차전에 선발로 나왔을 때 하필이면 상대가 에인절스였고, 그들의 홈이어서 야유를 바가지로 먹었다. 거짓말 안치고 들어오기 시작할 때부터 강판당할 때까지.
-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구장인 U.S. 셀룰러 필드에서 안타를 친 첫번째 투수로 기록되어 있다.[30] 2004년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플로리다 말린스의 경기가 허리케인 때문에 열리지 못하자 대안으로 U.S. 셀룰러 필드에서 경기를 한 것이다.[31]
- 플로리다 말린스 시절 심정수가 초청선수 자격으로 말린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적이 있었는데, 심정수가 훈련을 하다가 야구화 밑창이 찢어졌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베켓이 자신의 스파이크를 선뜻 심정수에게 줬다고 한다. 하지만 심정수는 자기를 거지 취급하나 불쾌해했고 한 번 신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하며 나중에서야 자신에게 신발을 준 사람이 그 유명한 조시 베켓이란 걸 알고 경악했다고 한다.
- 특이하게도 짝수 해에 부진하고 홀수 해에 잘하는 징크스가 있다. 3번의 올스타와 2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모두 홀수 해에 이루었다.
-
류현진의 통역인 마틴 김에 의하면 2013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상대로
NLDS 3차전에 등판해 죽을 쒔던 류현진이
NLCS에서 3차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상대로 등판할 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 줬다고 한다.
"포스트시즌은 준비하는 게 조금 다르다. 본인이 잘하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정규시즌에는 6회 정도까지, 혹은 투수를 아끼기 위해 조금 더 던지는 경우도 있지만, 포스트시즌은 공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던지지 않으면 빨리 끝날 수 있다. 넌 1년동안 굉장히 잘해왔고 잘될 때는 계속 잘하는 경향이 있으니, 네가 잘하는 것만 계속 던져라, 상대방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팀이니까. 장점에만 집중해서 던지면 문제없을 거다."
사실 해 준 조언 자체는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하던 대로 하면 돼. 다만 좀 더 세게 던지고.' 라는 뻔한 이야기에, 베켓 뿐만이 아니라 릭 허니컷 투수코치, A.J. 엘리스 등 류현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저런 조언을 해 줬다. 그래도 가을의 사나이로 꼽히는 베켓의 조언이기도 하고, 보스턴 치맥 사건 이후 대한민국 야구 커뮤니티에서 멘탈레기로 찍힌 그였기에 후배를 챙기는 조언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엠팍 및 야구 커뮤니티에서 그의 이미지가 조금 좋게 변하긴 했다. 결국 류현진이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기도 했고.
- 은퇴 후에는 고향인 텍사스에서 농장을 꾸려 살고 있다.
- 2020년도 명예의 전당 첫 후보로 입성했는데, 임팩트는 있었지만 누적 성적이 많이 부족해 탈락이 예상됐는데 한표도 얻지 못하고 탈락했다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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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 <rowcolor=#000> 1위 | 2위 | 3위 | ||
2000년 | 페드로 마르티네스 | 팀 허드슨 | 데이비드 웰스 | |||
2001년 | 로저 클레멘스 | 마크 멀더 | 프레디 가르시아 | |||
2002년 | 배리 지토 | 페드로 마르티네스 | 데릭 로우 | |||
2003년 | 로이 할러데이 | 에스테반 로아이자 | 페드로 마르티네스 | |||
2004년 | 요한 산타나 | 커트 실링 | 마리아노 리베라 | |||
2005년 | 바톨로 콜론 | 마리아노 리베라 | 요한 산타나 | |||
2006년 | 요한 산타나 | 왕젠민 | 로이 할러데이 | |||
2007년 | CC 사바시아 | 조시 베켓 | 존 래키 | |||
2008년 | 클리프 리 | 로이 할러데이 |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 |||
2009년 | 잭 그레인키 | 펠릭스 에르난데스 | 저스틴 벌랜더 |
}}}}}}}}} ||
[1]
플로리다 시절에는 고질적인 손가락 물집, 손톱 문제가 있었다.
[2]
하지만 경기는 연장전에서 말린스가 승리했다.
[3]
그런데
11년 뒤 월드 시리즈에서
더욱 무시무시한 선수가 나타났다.
[4]
그래도 베켓과 프라이어가 같이 묶일 급은 아니다. 베켓은 시대를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훌륭한 성적을 남겼던 반면 프라이어는 이 해를 끝으로 바로 내리막에 접어들고 만다.
[5]
다만 부상 때문에 200이닝을 채우는 데에는 실패했다.
[6]
이 트레이드로 말린스는 레드삭스의 유망주인
헤수스 델가도,
하비 가르시아,
핸리 라미레즈와
아니발 산체스를 받아왔다.
[7]
여담으로 이 해 8월 3일
추신수에게 만루홈런을 맞았다.
[8]
다만 이 해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CC 사바시아가 비슷한 승패와 ERA를 기록했지만 이닝을 40이닝 정도 더 먹으면서 사이 영 상을 차지했고 베켓은 2위에 그쳤다.
[9]
여담으로 ALCS 5차전 클리블랜드에서 베켓의 등판이 예정된 경기에서 국가 제창을 한 가수는 베켓의 당시 여자친구인 대니엘 펙이었다. 클리블랜드가 베켓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자 일부러 클리블랜드 팬으로 알려진 여자친구를 섭외했다고 한다.
[10]
8월 3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 3회초 데드볼로
추신수를 맞춘 적도 있었는데, 물론 베켓도 고의로 그런건 아니었는지 당황해서 바로 추신수 쪽으로 쭉 걸어가긴 했지만 이에 대한 보복인지 8회말 클리블랜드의
젠슨 루이스가
아드리안 벨트레에게 빈볼을 날리자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하기도 했다.
[11]
포심 평속이 90마일 초반에 머물렀다.
[12]
여담으로 8월 19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연타석 홈런을 허용하기도 했다.
[13]
루비 데 라 로사,
제리 샌즈
[14]
여담으로 다저스 이적 후 등번호를
박찬호가 사용하던 61번을 달았다. 이 번호는 베켓이 플로리다 시절에 달았던 등번호인데, 이후
로저 클레멘스 동경해 21번으로 변경했고, 보스턴으로 이적한 이후에도 21번을 달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
[15]
3:3 상황에서 내려와 다행히 패전은 면했다.
[16]
수술은 혈류와 신경을 압박하는 쇄골 뼈를 일부 제거한다.
[17]
테드 릴리는 얼마 뒤 다저스의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을 맺었으나 얼마 안 지나 자이언츠에서도 방출됐고, 은퇴 소식이 나오자 아니라고 했다가 이내 은퇴를 결정하며 메이저 경력을 마감했다.
[18]
베켓의 이번 승은 2012년 10월 1일 이후 15경기, 약 19개월만에 따낸 승리다.
[19]
2014년 정규 시즌 첫 노히트 노런이며 역대 노히트 노런 달성자 중에서 40세였던
랜디 존슨에 이어 고령 부분 2위를 달성했다.
[20]
톰 글래빈,
클레이튼 커쇼,
요한 산타나 등이 있다.
[21]
다만 본인의 패스트볼에 과도한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 좋은 커브를 가지고 포심만 때려넣다가 맞는 홈런이 매우 많았다. 야구 IQ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말도 간간히 커뮤니티에서 나오기도 했을 정도이다.
[22]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커트 실링은 전성기 90마일 중후반대의 강속구와 리그 최고의 스플리터를 던지던 투수였다. 다만 커트 실링도 야구 실력 외에 알아주는 핵이빨로 유명했다.
[23]
이런 헤드헌터 성향의 투수는 꽤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돈 드라이스데일을 시작으로 80~90년대에 로저 클레멘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스 등의 선수들이 의도적으로 빈볼을 섞어가며 상대 타자에게 공포감을 유발했던 투수들.
[24]
이들이 은퇴하고 조시 베켓이 활동하던 시점부터 이런 성향의 사라지더니 조시 베켓이 은퇴한 이후 리그의 에이스급 투수들은 이전에 수준급 투수들에 비해서 노골적인 헤드 헌팅은 자제하는 편이다. 이런 투수들의 젊잖은 성향과 젊은 시청자들의 흥미가 결합되며 타자들의 배트 플립 유행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는 평가가 있다.(당장 헤드헌터들이 판을 치던 당시에는 신경전 정도면 모를까 베트 플립은 알버트 벨이나 베리 본즈, 켄 그리피 주니어같이 빈볼 던져봐라 같은 깡있던 타자들 몇몇을 제외하면 할 생각도 못했다.)
[25]
베켓은 2001년 BA 전체 유망주 3위, 2002년 BA 전체 유망주 1위 (2위는 마크 프라이어)를 기록했던 슈퍼 유망주다. 예전에 이 항목에는 그저 그랬던 유망주라 표기되었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다. 당시 메이저 팬이라면 조시 베켓과
조시 해밀턴, 2년 후의
마크 프라이어가 받던 기대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조시 해밀턴과 함께 뛰어든 1999년의 아마추어 드래프트를 조시 드래프트로 만든 주역이 베켓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알수 있다.
[26]
다만 비교되던 마크 프라이어가 아름다운 1년을 보내고 산화한 것에 비하면 성공한 커리어가 맞다.
[27]
구사 비율은 약간 낮아지긴 했는데 결정적 순간에는 계속 포심을 던지다 털린다.
[28]
이 때문인지 몰라도
2003년 월드 시리즈 우승 이후 미국 총기 협회의 광고 모델을 할 정도며 이와 별도로 자신의 고향인 텍사스 주에 사슴 농장을 운영한다.
[29]
닉 아덴하트를 언급하는 것으로, 에인절스의 유망주였으나 취객의 음주운전으로 인해 사망했다.
[30]
#
[31]
당시 선발로 맞붙은 투수는
김선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