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폴크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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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
2004 |
200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롤레이즈 구원 투수 상 | ||||
빌리 코치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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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폴크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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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 리베라 ( 뉴욕 양키스) |
200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세이브왕 | ||||
에디 구아다도 ( 미네소타 트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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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폴크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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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 리베라 ( 뉴욕 양키스)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38번 | ||||
윌슨 델가도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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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폴크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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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크루즈 (1997) |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44번 | ||||
대니 윈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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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폴크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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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 시에라 (1998) |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29번 | ||||
토니 페냐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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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폴크 (1998~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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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존슨 (2012)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29번 | ||||
제프 탐 (2000~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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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폴크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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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해몬드 (2004) |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29번 | ||||
게이브 캐플러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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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폴크 (2004~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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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마가단 (2007~2009)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29번 | ||||
댄 존슨 (2006~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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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폴크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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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케네디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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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찰스 폴크 Keith Charles Foul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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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72년 10월 19일 ([age(1972-10-19)]세)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사우스다코타 주 엘스워스 에어 포스 베이스 |
학력 | 하그레이브 고등학교 - 갈베스턴 칼리지 - 루이스-클라크 주립대학교 |
신체 | 183cm / 88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4년 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256번 ( SF) |
소속팀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97) 시카고 화이트삭스 (1997~200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3) 보스턴 레드삭스 (2004~2006)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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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카고 화이트삭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었던 마무리 투수.2. 커리어
1993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14라운드 지명자였지만 포기하고 1994년 다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9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자이언츠에서는 선발 자원으로 육성했으나, 빅리그 데뷔시즌인 1997년 11경기에 나와 8점대라는 눈 뜨고 못 볼 피칭을 했다. 결국 시즌 중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1]그러나 화이트삭스에서는 그를 바로 불펜으로 기용하였고 바로 3점대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포텐이 터진 19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 연속으로 2점대[2]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불펜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2002년 시즌 종료 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마무리이자 그 해 좋은 성적을 거뒀던 빌리 코치(Billy Koch)와 몇몇 선수들을 포함한 빅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빌리 코치는 이 해 메이저리그 최초로 10승-40세이브를 동시에 거둔 선수였다. 다만 그는 3점대 방어율이었고 84경기씩이나 등판했기에 부상 위험성도 있어 메인 카드들로만 따지면 전혀 수지가 맞지 않았다. 예상대로 코치는 무너졌고 인성 문제까지 보여주었다. 이후에는 팀을 옮겨다니다 2004년 시즌 이후 스캠 도중 방출당했다는 이후로 홧김에 은퇴를 선언한다.[3]
2003년 폴크는 예상을 넘어 ERA 2.08, 43세이브(1위)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오클랜드는 또다시 디비전 탈락에 그쳤다.
그리고 시즌 후 FA가 된 그를 보스턴 레드삭스가 데려가면서 퍼즐을 맞췄다. 결국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 마지막 아운카운트 자료 화면의 장본인이 되었다. 그러나 우승 이후로는 수 년간 많은 이닝을 던져온 것, 노쇠화, 팔꿈치 통증 등의 이유로 기량이 급하락하며 5점대 후반에 그쳤다. 이 때 레드삭스의 팬들의 야유에 극성팬들을 ' 버거킹의 자니'[4]라고 비유하는 등 과격하게 반응하며 먹튀에 철면피로까지 매도당했다.
부상 회복 후 2006년 재기를 시도했지만 이미 팀의 클로저 자리는 그가 없는 사이 등장한 괴물 조나단 파펠본이 차지해 버렸다. 심지어 이 시즌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니 폴크는 4.35의 평균자책점으로 2005년보단 나아졌단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가, 2008년 갑자기 돌아와 오클랜드에서 4.0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진짜 은퇴했다.
3. 여담
전성기 리그 정상급의 마무리 투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산 세이브가 191개에 불과한데, 이는 그가 세이브 기회 자체를 적게 부여받은 것의 영향이 크다. 우선, 지명을 1년 미룬 대학 선수로서 20대 중반에 빅리그로 승격되었다. 다음으론 포지션 문제가 있었다. 그는 상당 경기를 셋업맨으로서 등판하거나 비세이브 상황에서 멀티 이닝을 소화했다. 같이 트레이드되었던 하우리도 세이브를 제법 챙겨먹었으며 2002년에는 3인 마무리 체제[5]를 경험했다. 이후에는 파벨본이라는 넘사벽 괴물의 등장과 기량 하락 때문에 자리도 없어졌다.비록 적은 세이브 갯수 때문에 저평가받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가 스테로이드 시대의 정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특급 마무리였다. 롭 넨은 짝수년도 1점대+홀수년도 3점대의 널뛰기를 했고, 마리아노 리베라는 이 시기 3년 연속 2점대로 상대적으로 부진[6] 했으며, 트레버 호프만은 이 때 30대 중반부터 은퇴까지의 커리어보다 홈런을 더 잘 맞았다.
[1]
빅네임 투수들이 여럿 오간 트레이드였다. 자이언츠에서는 키스 폴크, 밥 하우리 등 / 화이트삭스에서는 대니 다윈, 윌슨 알바레즈, 로베르토 헤르난데스 등을 보냈다.
[2]
420경기, 평균자책 2.43
[3]
그러나 이 트레이드의 진짜 결과는 화이트삭스의 승리였다. 트레이드에 얽힌 다른 선수들은 별볼일없었지만, 화이트삭스로 넘어온 닐 코츠라는 투수가 2005년 1점대 불펜으로서 플루크시즌을 보내며
우승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4]
알바 인생이나 루저에 빗댄 거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참고. 여기에 더 문제가 된 건 하필
조니 데이먼이 팀동료이자 스타였다. 그러나 데이먼이 이 시즌을 끝으로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자 폴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까였다.
[5]
폴크와 나머지 둘이 각각 11,11,10세이브를 기록했다.
[6]
리베라의 19년 커리어 중에서 데뷔시즌이자 선발로서 뛴 1995년을 제외하면 11번의 1점대 / 6번의 2점대 / 1번의 3점대 시즌이 있었다. 은퇴 직전인 40대 시즌에서조차 2년 연속 2점대 초반을 기록하였으나, 저 3연속 2점대 시기에는 2점대 후반을 2번이나 찍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