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4:04:21

인왕산

한양( 서울특별시)의 풍수지리
구분
내사산() 북악산 (342 m) 인왕산 (338.2 m) 남산 (270.85 m) 낙산 (125 m)
외사산(四山) 북한산 (836.5 m) 덕양산 (124.8 m) 관악산 (632 m) 용마산 (348 m)

인왕산
仁王山 | Inwangsan
<colcolor#fff>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대문구
좌표 북위 37° 35′ 6″
동경 126° 57′ 33″
높이 338.2m
면적 1,111,664.9㎡[1]
산맥 광주산맥
파일:인왕산 사진.jpg

1. 개요2. 상세3. 여담
3.1. 겸재 정선과 인왕산3.2. 한자 표기
4. 사건 사고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대문구에 걸쳐있는 고도 338.2 m의 으로, 산 중에서도 바위산에 속한다. 한양도성의 산으로는 북악산보다 3.8 m 낮은 2위이며 평균 경사도는 5.12%이다.

2. 상세

2.1. 역사

  • ‘좌 청룡 백호 주작 현무’에서 ‘우백호’를 담당하는 산이라고 한다. 이는 경복궁 정전에서 남쪽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인왕산이 있기에 붙여진 것이다.[2]
  •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로 매우 유명한 산이었다.[3] 따지고 보면 지리산이나 금강산이 훨씬 더 웅장해서 호랑이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야산 격인 이 인왕산의 호랑이가 더 유명하다.[4] 정조 대왕 때만 해도 호랑이가 서울에 흔했고, 이들 호랑이가 민가는 물론 궁궐까지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인 듯. 참고로, 1868년, 북악산 등에서 잡은 호랑이 다섯 마리를 마지막으로 도성 내 호랑이는 모두 사라졌다.
  • 인왕산 정상에 자리한 ‘치마바위’의 이름 유래와 관련한 조선 왕조 일화가 유명한데, 중종의 왕비였던 폐비 신씨는 날마다 중종이 있는 경회루 쪽을 향해 매일 시비를 시켜서 놓아 두었다고 한다. 이러한 폐비 신씨의 절개를 기려 치마바위라는 명칭을 유래하였다고 한다.
  • 인왕산 남쪽 기슭에 있는 활터인 ' 황학정'이 있는데, 1898년 활쏘기를 장려하는 고종황제의 칙령에 따라 세워진 국궁장이다. 고종황제가 직접 활을 쏘기도 하여 황제를 초대 사두로 친다. 본래 경희궁에 있었는데 1922년에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며 옮겼다.
  • 절벽 중 한 곳에 정체 불명의 파인 흔적이 잔뜩 있는데, 이는 1939년 9월 16일에 새겨진 일제의 선동 문구 흔적이다. 대일본 청년단 대회 기념으로 대동아 공영권을 선동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는데 독립 후 누군가에 의해 훼철되어 현재는 글자는 알아볼 수 없고 파낸 흔적만 남아있다. #

2.2. 등산·경관·명소

파일:NcXNZBF.jpg
인왕산
주말 등산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다만, 범바위까지는 순조로울 순 있어도 치마바위(정상) 쪽부터 기암괴석이나 암벽 지형이 등장하므로 어린이나 노약자가 등산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로도 산악 사고도 빈번한 곳이므로 매우 주의가 필요하다.[5]

2.2.1. 인왕사()

파일:인왕사.jpg
인왕사를 이루는 군락(ⓒBBS)
인왕사는 조선 개국과 함께 1393년 무학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조계종, 태고종 등 서로 다른 5개 종단의 작은 암자 14개가 모여 인왕사라는 절을 형성하였다. 그래서인지 사찰이 다소 특이한데, 산자락에 군락형으로 자리잡혀 있다. 실제로 가 보면 하나의 작은 마을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부속 건물도 다른 사찰과 달리 '극락전', '보광전', '대웅전', '관음전', '선암정사'로 다양하다(보광전은 현재 전소 상태). 이렇게 특이한 형태로 이어져 오다가 1988년에 전통사찰로 지정됐다.

​인왕사는 봉은사에서 갈라져 나온 말사로 규정하고 있다. 절의 체계도 복잡한데 지주가 4명이며 해마다 번갈아가면서 맡고 있다. 언급했듯이 1910년대 이래로 여러 암자가 통합되지 않고, 제각기 독자적으로 활동해온 흔적으로 보고 있다. 입구 현판은 仁王寺[6]로 되어 있으나 행정상 ‘산’만 王이지 사찰은 여전히 仁旺寺가 표준이다.

명목상 절의 중심으로 보고 있는 ‘인왕사 본원정사(前 선암정사)’는 국사당 바로 아래에 있다. 평소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사당 쪽 산 샛길로 200m 정도 올라가다 보면, 부처 그림이 새겨진 바위와 약수터가 나오는데, 지도 안내판상으로는 그곳이 ‘실질적 인왕사의 기원’임을 시사하고 있다.

2019년 4월 경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인왕사의 전각 하나에 불이 나 전소된 일이 있었다( 서울 종로구 인왕사 화재, ‘보광전’ 전소).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화재 원인은 2년이 지난 이후에도 불명인 상태이다.

인왕사에 가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하차한 뒤 무악현대 아파트와 인왕산 아이파크 아파트단지 속을 가로질러야 빠르다. 아파트 단지 보도 경사가 생각보다 심하므로 다리를 적당히 풀어 줘야 할 것이다. 또 일반적인 인왕산 등산 코스로는 이곳을 통하기 어려우므로 유의할 것.
2.2.1.1. 선 바위(禪岩)

파일:나무위키+유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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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시 소재 수도권 전철 4호선의 역명에 대한 내용은 선바위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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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eonbawi.jpg
인왕산 선 바위
인왕사 일대에 선 바위가 우뚝하게 자리하고 있는 바위. 선()을 행하는 바위라고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한자 표기는 선암(禪岩)이며 ‘선 바위’처럼 띄어 쓰는 게 표준인 것으로 보인다. # 국사당 쪽 산자락 어귀에서 샛길로 올라가다 보면 선 바위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인왕사 선 바위는 조선 초기 불교와 유교 간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중요한 유물로, 무학대사 정도전 사이의 갈등에 중심에 놓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선 바위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투옥되었던 서대문형무소가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봄철에는 이곳에서 서대문 쪽을 내려다볼 때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개한 진풍경이 펼쳐진다.

2.2.2. 국사당(國師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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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ntmnews.co.kr/1277185767-12.jpg
인왕사 군락에 있는 국사당
서울의 신을 모시는 신당이다. 인왕사랑 인접해 있어서 불당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이 있으나, 국사당의 분야 분류는 불교가 아닌 민간신앙으로 등록되어 있다. 1973년 중요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2.2.3. 수성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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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인왕산 수성동 계곡.jpg
인왕산 수성동 계곡[7]
수성동 계곡. 1971년 옥인시범아파트를 지으면서 콘크리트 속에 묻혔던 계곡을 2012년 복원했다. 중간에 정선의 그림을 반영한 '기린교'라는 돌다리가 있다.
파일:〈수성동〉.png
정선 作, 〈수성동〉
위 그림이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중 〈수성동〉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 수성동 계곡이 등장한다.

'수성동'이라는 단어는 청담동, 홍제동 같은 부류의 단어가 아니다. '수성동'에서 '동'은 현재 법정동 혹은 행정동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동'이 아닌 '골짜기'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따라서 수성동 계곡이 있는 지역을 표기할 때에는 '수성동'이 아닌 '옥인동'으로 표기해야 한다.

'수성동'이라는 지명은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물 수(水), 소리 성(聲), 마을 동(洞)자가 합쳐졌다.

2.2.4. 백운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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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시도기념물_제40호_인왕산백운동계곡_바위글씨.jpg
글자 '백운동 계곡의 각자바위[8]

2.2.5. 윤동주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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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xfL0lB.jpg
윤동주문학관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문학관. 2005년 철거된 구 청운시범아파트 자리에 윤동주를 기념하여 만든 공원인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9] 그 옆의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연결된 청운공원에서는 도심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싶다면 서울 버스 1020, 서울 버스 7022, 서울 버스 7212를 이용, 자하문고개 정류장에 하차하면 된다.

3. 여담

  • 등산이나 지형보다는 역사·문화 쪽으로 더 유명한 산이다. 사실 인근 주민이 아니라면 골수 서울시민들이나 토박이들에게도 존재감은 별로 높지 않은 이긴 하다. 다만 택견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성지에 가깝다. 구한말 택견꾼들이 마지막까지 수련했던 곳이 바로 이 인왕산이었기 때문. 지금은 감투바위 수련터가 복원됐다. 다만 파비앙 코르비노 나 혼자 산다에서 등산을 했는데 역사적으로 설명을 하면서 올라가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었고 이 덕분에 존재감이 많이 올라가기도 했다.[10]

3.1. 겸재 정선과 인왕산

파일:K054pdB.jpg
〈수성동〉과 그에 기초하여 복원된 수성동 계곡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고향이 바로 인왕산 옆 현재의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등지.[11] 인왕산이 코앞인 데다가 동네 어디에서나 인왕산의 암벽이 보이는 곳이다보니 인왕산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잘 알려진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당대 장동팔경(壯洞八景)의 하나로 꼽혔던 인왕산의 수성동 계곡을 그린 그림도 유명하다. 실제로 2000년대에 아파트와 콘크리트로 복개된 수성동 계곡을 복원할 때 정선의 그림을 참고했을 만큼 사실과 비슷한 작품.
파일:jinRBbK.jpg
〈인왕제색도〉
윗 그림은 인왕산을 그린 산수화 〈 인왕제색도〉로, 위 사진과 암벽의 모양을 비교해 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사실과 가까운지를 알 수 있다. 진경산수화의 대표격으로 흔히 언급되며 국보 제216호로 지정받은 그림이다.

3.2. 한자 표기

일제강점기 일제가 인왕산의 한자 표기 ‘仁山’을 ‘仁山’으로 변경했다는 낭설이 있다. 王자 앞에 일본을 상징하는 日을 넣어서 같은 발음의 旺으로 바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러 문헌으로 인왕산의 한자 표기를 고증해보면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仁旺山’ 표기는 다수 발견된다.
  • 仁旺山이라는 표기는 일제강점기보다 200년이나 훨씬 앞선 《 영조실록》에 등장한 적이 있다.
  • 승정원일기》에서는 '仁旺山' 표기가 일제강점기 이전, 무려 102회나 발견된다.
  • 조선 순조 8년(1808)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의 〈군정편(軍政編) 훈련도감(訓鍊都監)〉 조에는 '왕을 호위(扈衛)할 때 척후와 복병이 지켜야 할 도성 분담 구역'을 거론하면서 '북악, 인왕산, 안현, 돈의문 바깥 삼거리'를 들고 있는데 여기서 인왕산은 '仁旺山'이라고 표기돼 있다.

따라서 일제가 '仁王山'을 '仁旺山'으로 바꾸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어느 한쪽이 정식 표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仁旺山'와 '仁王山' 모두 같이 썼던 것으로 보인다.

1995년에 서울시 지명위원회는 인왕산의 한자 표기를 ‘’ 표기를 표준 표기로 채택했다. 이 때에도 서울시는 "일제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고친 이름을 바로잡았다"며 그 취지를 설명했으나 근거 없는 이야기다.

한편 여기의 사찰인 인왕사는 여전히 표기가 정식이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4. 사건 사고

4.1. 2023년 서울 인왕산-북악산 산불

2023년 4월 2일 오전 11시 53분경, 인왕산 중턱에서 화재가 발생했었다. 자세한 문서는 2023년 서울 인왕산-북악산 산불참고.


[1] 출처 - 서울의 공원. [2] 마찬가지로 좌 종묘•우사직에 해당되는 사직단도 인왕산 인근에 있다. [3] 338.2m인 산에서 호랑이들이 많았다는 게 의아할 수 있지만 사실 호랑이는 산보다 물가가 있는 곳에서 많이 살아서 호랑이 분포도가 적당히 유지되었고 근처에 여러 산들도 있어서 인왕산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근처의 산에도 왔다갔다 했을 것이다. [4] 송덕기 옹에게 택견을 가르친 스승인 임호의 별명도 인왕산 호랑이였다고 한다. [5] 절대적인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얼핏 볼 때 고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데다가, 주말 등산 및 야경 명소로 SNS 등지에서 유명해지다 보니 아무나 대충 신고 가도 올라갈 수 있는 산으로 오해받는 경향이 있다. 남산처럼 전 지역이 공원화되지 않아 잘 정비된 계단으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산은 아니다. [6] 본래 ‘旺’ 부분이 었던 곳에 땜질하여 ‘王’으로 바꾼 흔적이 보인다. [7]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8]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9] 문학관은 과거 이용되던 상수도시설을 활용해 만들었는데,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명작 18위에 오를 정도로 잘 지은 건물이니 방문을 권한다. [10]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인왕산 영상 대다수에 파비앙이 언급된다. [11] 당시엔 '장동'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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