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01:40:24

원 히트 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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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의3. 원 히트 원더인지 구분
3.1. 짧은 기간 동안에 복수의 히트곡(혹은 복수의 앨범)을 화끈하게 내고 사라진 경우3.2. 한 곡의 메가 히트곡과 함께 다수의 인기곡을 가진 경우3.3. 하나의 메가 히트곡 이후 조용한 경우3.4. 한 곡의 중박 또는 소박의 히트곡을 낸 경우3.5. 기준이 되는 차트에 따라 여부가 바뀌는 경우3.6. 해외 가수들의 경우3.7. 옛날 가수들3.8. 여담
4. 오해5. 대표곡(signature song)에 따른 분류
5.1. 대표곡(signature song)
6. 사례7. 의미 확장
7.1. 음악 외의 예술
7.1.1. 비디오 게임7.1.2. 코미디 프로그램
7.2. 스포츠7.3. 성우계7.4. 원 히트 원더 명칭만 사용되는 경우
8. 참고9. 여담

1. 개요

one-hit wonder, nine-day's wonder. 대한민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곡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 히트 원더는 대중음악에서 딱 한 개의 싱글(혹은 곡)만 큰 흥행을 거둔 아티스트를 의미하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한곡만 반짝 흥행하고 잊히는 아티스트이다. 종종 퇴물처럼 멸칭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팀이 명멸하는 음악계에서 한 곡이라도 히트를 기록하는 것 역시 굉장히 대단한 일이다.

특히 1집만 내고 사라지는 가수들도 많은 걸 감안하면 인기가 없어도 여러 음반을 냈다거나, 히트곡이 하나라도 있는 아티스트면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냈다고 보면 된다. 지금도 음악 방송 출연은커녕 음반이나 뮤비만 남기고 사라져 가는 가수들이 여럿 있다는 걸 생각해보자.

히트 친게 하나라도 존재하는데 수명이 어째서 끝나는가 하면, 대중들이 기억하는건 히트 친 것을 우선으로 기억하기에, 대중 입장에선 다음 곡이 히트 곡과 연결력이 설득력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순간, 히트곡 이전이나 이후에 팬이 된 사람이 아닌, 그냥 지나가던 일반 대중들은 더이상 다음 곡을 들어줄 이유가 안생긴다.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SF같은 곡으로 히트 쳤는데 다음 곡이 뜬금없는 트로트계열이면 이건 팬이 아닌 이상 일반인들은 당연히 이전곡과 갭이 심해서 듣다가 포기한다(...) 그래서 오래전에 대박을 쳤던 원 히트 원더들의 이름을 주변사람에게 물을 경우 누군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들의 히트곡을 들려주는 순간 "아 이 노래!"하는 반응을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원 히트 원더들은 대중음악 역사 전반에 걸쳐 등장하지만 대부분 디스코, 뉴 웨이브, 그런지 등 유행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던 장르가 유행했던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2. 정의

어떤 아티스트를 원 히트 원더라고 칭하기 전에 정의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음악 산업 종사자들은 빌보드의 핫 100 차트의 40위 안에 든 것을 "흥행"(hit)이라 간주한다. 따라서 이러한 점만 본다면, 원 히트 원더는 핫 100 차트 40위 안에 한 번만 진입했던 아티스트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강남스타일로 일약 유명해진[1] 싸이는 원 히트 원더가 아니다. 다음 싱글 GENTLEMAN과 HANGOVER가 각각 빌보드 핫 100 5, 26위까지 올랐기 때문.

웨인 잰식의 《The Billboard Book of One-Hit Wonders》(1998년)라는 책에서는 원 히트 원더를 좀 더 보수적으로 정의하는데, 이에 따르면 "원 히트 원더는 빌보드의 전국 톱 40 팝 차트에 딱 한번만 진입한 그룹(act)"이다. 따라서 그는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등을 원 히트 원더 가수의 범주에 넣었다.

영국에서 원 히트 원더는 영국 싱글 차트의 40위 안에 딱 한번만 진입했던 가수나 밴드를 지칭한다. 이 용어는 기네스 북의 "히트 싱글 편"(Guinness Book of Hit Singles)에서 1970년대부터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정의는 훨씬 엄격하여, "단 하나의 싱글 차트 1위"만 낸 가수로 정의 내렸다.

위의 원 히트 원더의 정의와 비슷하게 국내 차트를 기준으로 쓸 수도 있다. 음악계의 규모가 미국이 크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국 빌보드의 40위 이내와 적절히 대응되는 건 한국 음악 차트 10위 이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에도 가요톱의 영향으로 10위 안에 1번이라도 들어야 히트곡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멜론 차트 실시간 10위 안에 잠깐 들었다고 해서 히트곡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기준들과는 다르게, 대중들은 보통 어느 한 싱글의 인기가 넘사벽인 경우를 칭한다. 나머지 싱글이 상업적으로 성과를 냈어도 인기가 충분히 엇비슷하지 않다면 원 히트 원더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화개장터의 조영남, 호랑나비의 김흥국, 편지의 김광진이 대표적인 사례. 세 가수 모두 대 히트곡들 말고도 히트곡들이 많이 있음에도 저 노래가 많이 기억되다 보니 착각되곤 한다.

딱 1곡이 인기를 끈 것은 맞지만 충분히 히트하지 못했으면, 원 히트 원더가 아니라 반짝 가수, 중박 가수 등으로 부르는 게 맞다. Hit도 아니고 wonder도 아니니까.

3. 원 히트 원더인지 구분

3.1. 짧은 기간 동안에 복수의 히트곡(혹은 복수의 앨범)을 화끈하게 내고 사라진 경우

이들은 원 히트 원더라고 볼 수는 없다. 사례를 둘로 나눌 수 있긴 한데, 몇 년에 걸친 짧은 기간에 복수의 앨범으로 여러 히트곡을 낸 경우와, 한 앨범으로 여러 히트곡을 낸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몇 년에 걸친 짧은 기간 동안 복수의 앨범으로 여러 히트곡을 낸 경우로는, 외국에서는 처비 체커, 데비 깁슨, 티파니, MC 해머가 있고, 국내에서는 투투, 미스터투, 이정현[2]이 있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들은 분명히 히트곡이 여러 개이고 적어도 그 시기는 충분히 한 획을 그으며 풍미했다. 특히 처비 체커 같은 경우는 아예 음악 장르 하나를 만들어 버릴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 장의 앨범으로 화끈하게 여러 히트곡을 낸 예로는 김민우가 좋은 예시이다. 하지만 김민우는 단순한 히트곡이 아니라, 메가 히트곡이 다수인 경우라서 원 히트 원더로 볼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이들에게 시비를 붙이자면 전성기의 기간이 짧으므로 반짝 가수 정도라고는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딱 한 앨범에서 히트곡이 여러 개인 경우, 짧은 기간에 다수의 앨범을 집중적으로 내었고 거기에서 히트곡이 여러 개인 경우가 있기는 한데, 후자의 경우라면 몰라도 전자의 경우에는 반짝 가수라고 하기도 참 뭣하다. 심지어 MC 해머는 다이아몬드 앨범(1천만 장 이상 판매)이 2장이 있기 때문이다. MC 해머가 음악적인 평이 그렇게 좋지 않게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 시기를 완전 풍미했던 가수라는 것 자체는 절대 부인할 수 없다. 어쨋든 한 장의 앨범에서 다수 메가히트곡을 낸 김민우에 원 히트 원더라는 단어는 상당히 실례되는 단어라는 것이다.

3.2. 한 곡의 메가 히트곡과 함께 다수의 인기곡을 가진 경우

역시 원 히트 원더로 볼 수 없다. 김흥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호랑나비는 분명히 메가 히트곡이지만 59년 왕십리 역시 인기가 높았고 인기가 1년 내내 꾸준했다. 다른 인기곡들이 메가히트곡처럼 대박을 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성과를 폄하할 수 없다. 다른 예시로는 "뿌요뿌요"의 UP가 있는데, 데뷔곡 1024도 엄연히 가요 차트 프로그램에선 10위권의 노래였으며 상당히 오래 버틴 노래다. 특히 경쟁이 치열했던 1996년 가요계 때 나온 것도 감안해야 한다.

3.3. 하나의 메가 히트곡 이후 조용한 경우

'원 히트 원더'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1년 "옛이야기"로 메가히트를 달성하면서 가요톱텐 1위 후보에 오른 국내의 김규민을 예로 들 수 있다.[3]

3.4. 한 곡의 중박 또는 소박의 히트곡을 낸 경우

"원 히트"는 만족하지만 "원더(wonder)"에는 도달하지 못한 경우다.

3.5. 기준이 되는 차트에 따라 여부가 바뀌는 경우

해외의 곡들은 빌보드에서 중박이더라도 전 세계적으로는 히트 친 경우가 존재하므로 빌보드 40위 밑이라고 천편일률적으로 wonder가 아니라 중박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 예로 해더웨이나 스핀 닥터스가 여기에 해당되며 해더웨이의 What is Love는 빌보드 싱글차트 11위, 스핀 닥터스의 Two Princess는 빌보드 싱글차트 7위에 머물렀지만 그 당시 세계적으로는 거의 씹어먹었다.

국내에서는 가요프로그램에서 30~40위권의 노래 달랑 한 곡을 낸 것을 원 히트 원더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고 차호석의 내 안의 눈물이 본 문서의 사례에 올라와 있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야말로 처참하게 망한 수준이며 방송 3사 차트에서는 30위 이내에 든 적이 없었고 음반은 더 처참하다.

3.6. 해외 가수들의 경우

  • 90년대 이후로 국내 팝 시장은 가요 시장에 역전당하면서, 현재 팝 관심도는 현저히 떨어져 있다. MC 해머나 데비 깁슨은 둘째치고 알 켈리(!)[4]가 이 문서에서 존재하는 이유이다. 한두 곡의 히트곡만 기억하는 현 대한민국의 팝 시장으로 볼 때 이 항목 근처에도 오지 말아야 할 가수들이 어이없게 제시되는 경우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특히 2010년대 들어 유튜브 지수가 반영되면서 빌보드 상위권에 올랐다가 고속으로 광탈하는 곡들이 많기 때문에 국내에서 보는 해외 가수들의 기준이 더욱 애매하게 되었다.

3.7. 옛날 가수들

음반 녹음 및 제작 기술과 여건이 좋지 않고 시장이 좁던 과거, 대략 국내 기준 1950년대 이전, 해외 기준 40년대 이전에는 어떤 가수가 여러 곡을 내는 것이 어려웠다. 원통형 레코드를 쓰던 축음기 시절은 단 한 곡, 디스크형으로 바뀐 후에도 LP나 CD 이전에는 양면으로 해도 두 곡밖에 싣지 못했으니, 히트곡을 단 한 곡만 남긴 가수가 수두룩했다. 그리고 이런 1910년대~50년대까지의 음악 산업 발전기에 해외 국내나 대규모 전쟁이라는 엄청난 단절 요소가 있었다. 그래서 바닷가에서를 부른 안다성, 빈대떡 신사 한복남, 눈물젖은 두만강 김정구[5]같은 과거의 가수를 원 히트 원더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3.8. 여담

  • 미쿠 레이카( 未来玲可) -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발매한 데뷔 싱글 '바다와 너의 이야기'(海とあなたの物語)은 90년대 J-POP의 황제 코무로 테츠야가 프로듀스한 곡으로 일본 황금시간대 드라마 게츠쿠의 라인업이자, 아다치 미츠루 원작 진베의 메인타이틀 오프닝 곡으로 타이업되면서 312,830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렸다. 이에 유명 음악방송 뮤직 스테이션에 나가는 영예를 얻었다.[6] 문제는 처음 나간 방송 무대에서 심히 불안하고 듣는 사람도 불안하게 만드는 무대를 선보였다는 것이다. MC 타모리가 열심히 실드를 쳐줬지만 본인도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음악 소비자들 사이에서 굉장한 화제가 되었으며, 그 후로 이 싱글이 수록된 앨범 한 장을 내고 은퇴했다.

4. 오해

1980 ~ 1990년대에 활동하며 엄연히 많은 히트곡을 남겼던 레전드나 준레전드 가수들까지 도매금으로 억울하게 원 히트 원더라고 오해받는 경우가 있다.

김흥국은 호랑나비[7]가 너무 국민적 유행을 끌어서 그렇지 59년 왕십리, 정아, 흔들흔들 같은 히트곡이 있고 육각수도 다시, 명동별곡, Mr.건망증 같은 히트곡들이 많다. 이용의 경우 조용필을 상대로 1위를 했던 노래가 여러 곡 있고, 심지어 10월만 되면 다시 재생되는 노래도 있다.

5. 대표곡(signature song)에 따른 분류

대표곡(signature song)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원 히트 원더를 분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유일하게 하나의 히트곡만을 가진 엄밀한 경우, 즉 아주 좁은 의미의 원 히트 원더만을 원 히트 원더로 분류하고, 그 이외의 넓은 의미의 원 히트 원더는 가수의 대표곡으로 보면 된다. 근거는 다음의 세 가지다.

① '원 히트 원더'라는 표현 자체가 멸시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해당 아티스트나 유족들에게 모욕적일 수 있다.
② 무엇이 '히트'인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하다.
③ 아무리 히트곡이었어도 극소수를 빼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잊혀지는 게 자연스럽다.

즉, 이 글과 하위 문서에서 계속 싸우고 수정전쟁이 벌어지듯, 무엇이 원 히트 원더이냐, 이 곡이 히트곡이었네 아니었네, 이 가수가 히트 가수였네 아니네 따위로 논쟁할 것 없이, 정말 문자 그대로 '원' '히트' '원더'인 경우만 원 히트 원더로 보고, 나머지는 퉁쳐서 이 가수의 대표곡으로 보면 가수와 유가족들에게도 기분나쁘지 않고 논쟁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위의 '오해'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5.1. 대표곡(signature song)

가수를 상징하는 곡으로, 보통 팬들이 가장 좋아하고, 음반판매량도 가장 높으며, 가수의 콘서트에서 마지막 곡으로(혹은 앵콜 송으로) 불려지는 노래다. 여러 곡인 경우도 있지만 보통 한 곡인 경우가 많고, 가수가 슈퍼스타였는지 원 히트 원더였는지 무관하게 가수에게는 한 곡의 대표곡은 있는 것이 보통이다. (단 한 곡의 대표곡도 없는 가수라면 무명인 채로 잊혀질 것이므로) 압도적인 수준에서 한 곡의 대표곡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무엇이 대표곡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갈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마이클 잭슨이 원 히트 원더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의 대표곡이라 하면 누구나 Billie Jean을 뽑을 것이다.[8] 굵직한 가수 인생을 보낸 노사연에게 '만남'으로 원 히트 원더라고 말하면 무례한 표현이 되겠지만, '노사연의 대표곡은 만남이다'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원곡자의 유명세와는 상관 없이 이 대표곡이 너무 유명해지고 수명이 길어지면 민요 마냥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다들 한번 쯤은 들어본, 그런 경지까지 오르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는 신해철 그대에게가 있다.[9]

배우의 경우 초히트작을 만나면 그 히트작에서의 캐릭터에 갇혀 이후의 연기 인생이 내리막을 타는 씁쓸한 경우도 많은데, 가수의 경우 배우처럼 노래의 인기가 가수를 묻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 즉 대표곡을 통해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가수로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가수마다 다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곡만 불러주기를 요청한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기계처럼 계속 부르게 된 자신의 대표곡을 진절머리내며 싫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돈나는 Like A Virgin을 거의 10년이 넘게 안 불렀었고, 라디오헤드 Creep을 죽어도 안 부르다가 2010년대 들어서 조금씩 부르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너바나 Smells Like Teen Spirit을 라이브 중 건너뛰는 경우도 있었고 아예 셋리스트에 넣지도 않은 경우도 많이 있었다. 셀린 디옹의 경우 'My Heart Will Go On'을 정말로 소름끼치게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매 공연마다 팬들을 위해 꼭 부르고 있다. 선술한 이들 모두 대표곡 뿐만 아니라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매한 레전드이나, 콘서트에서 대표곡만을 듣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대표곡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6.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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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의미 확장

7.1. 음악 외의 예술

특정 작품으로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후에 별 달리 눈에 띄는 활동이 없는 예술인 또한 원 히트 원더라 칭할 수 있다.

문학의 경우, 인종 차별을 다룬 걸작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쓴 미국의 작가 하퍼 리[10], 누구나 적어도 이름은 들어본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미국의 소설가 마거렛 미첼, 그리고 뒤늦게 재평가된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쓴 프랑스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딱 앞서 언급한 대표작 하나만 집필한 후 절필했기 때문에 원 히트 원더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메밀꽃 필 무렵 빼고는 자신의 작품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효석이 대표적이다.

웹툰의 경우 폭풍의 전학생 그린 강냉이 작가가 있다. 폭전이 데뷔작이었고 연재 당시 인기는 신의 탑을 능가 할만큼 폭발적이었으나 이후 차기작들을 줄줄이 말아 먹거나 예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는 등 폭전을 능가하는 작품이 아직까지 없다.

영화의 경우에도 수없이 많은 배우와 감독들이 데뷔작으로 반짝 떴다가 금방 사라지지만, 아무래도 이 분야의 최고봉은 닐 블롬캠프 감독. 데뷔작 디스트릭트 9으로 대박을 친 이후로 차기작을 거듭할수록 평가와 흥행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히 그란 투리스모(영화) 로튼 토마토의 팝콘 지수에서 무려 98%라는 좋은 평가를 받아서 닐 블롬캠프는 더 이상 원 히트 원더는 아니게 되었다.

보드게임의 경우에도 카르카손의 작가 클라우스-위르겐 브레데를 들 수 있다. 카르카손이 메가 히트작이긴 하지만 그 외의 작품들은 공기 라인이다.

일본어로는 잇파츠야(一発屋)라고 하는데[11], 이 경우 게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AV 여배우가 데뷔작 한 편만 찍고 은퇴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

7.1.1. 비디오 게임

현재 게임계의 원 히트 원더가 될 위험이 높은 게임사는 바로 미디어토닉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만든 게임의 수가 무려 100개가 넘어감에도 거의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모르는 게임이며 현재 Fall Guys만 흥행에 성공한 상태다. 게다가 Fall Guys도 일명 맵밴 논란으로 인해서 시끌시끌한데다 유저들의 분노도 폭발해서 트위터에서 플레이어 #SaveFallGuys 캠페인까지 할 정도로 미디어토닉과 유저간의 사이가 멀어졌다. 설상가상으로 SS4에도 흔히 맵밴이라고 불리는 맵 로테이션을 한다고 미디어토닉이 공식 발표했다. 이를 감안하면 앞으로의 대응에 따라서 원 히트 원더가 될 지 안 될 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SS4에서는 업데이트로 맵밴을 강화시켜서 해외에서는 R.I.P. Fall Guys라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까지 게임에 대한 상황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

모장 스튜디오 마인크래프트로 비디오 게임계에 역대급 족적을 남겼지만, 정작 이후 개발한 작품들 중에서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다. 마인크래프트의 스핀오프였던 스토리 모드, 던전스, 레전드 모두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디지털 익스트림즈 또한 Warframe 전후로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는 원 히트 원더 상태인데, 워프레임 이후로 간만에 내놓는 대형 프로젝트인 Soulframe의 흥행에 따라 원 히트 원더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듯.

검은사막의 모바일판 스핀오프 작품이 사실상 흥행에 실패한 후[12]로 신작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 사실상 검은사막 하나로만 버티고 있는 펄어비스도 비슷한 상황이다. 물론 CCP 게임즈, 빅게임스튜디오 등 자회사의 게임이 있지만, 전자의 대표작 이브 온라인의 경우에는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고, 후자는 한시적인 오픈시기 버프 이후 아예 듣보잡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결국 차기작인 붉은사막, DokeV, 플랜 8[13]의 흥행에 따라 원 히트 원더 탈출 여부가 결정될 듯하다.

반면에 라이엇 게임즈처럼 한 때 원 히트 원더 상태였다가 최근에 신작 흥행작들을 여러 개 내놓아 원 히트 원더의 수렁에서 무사히 탈출한 케이스도 있다.

7.1.2.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코너나 혹은 캐릭터가 크게 인기를 끌었지만 그 이후 활동이 없거나 예전의 인기를 얻지 못한 코미디언도 다수 존재한다.

KBS 개그콘서트의 사례를 보자면 우비 삼남매 김다래, 출산드라 김현숙[14], 현대생활백수 고혜성 강일구, 우격다짐 이정수[15], 황해 정찬민, 깐죽거리 잔혹사 조윤호, 준교수의 은밀한 매력 허미영, 문화살롱 '신마담'의 신고은, 갈갈이 삼형제 '느끼남' 이승환 등을 뽑을 수 있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사례는 엔딩 코너 비둘기 합창단 ' 리마리오'의 이상훈, 택아 윤택, 행님아 김태현[16], 누구야 김범용 한지형, 맨발의 코봉이 '콩팥송'의 박보드레, 흔한남매 장다운 한으뜸을 꼽을 수 있다.

기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블랑카 정철규, 사모님 '김기사'의 김철민[17], 최국의 별을 쏘다 '죄민수'의 조원석을 꼽을 수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쇼 비디오 쟈키 네로 25시의 '침묵리우스' 손경수가 원조 원 히트 원더 사례라 할 수 있다.

음악계처럼 원히트원더로 오해받는 사례가 종종 있다. 예시로 김병만, 김미려, 정만호, 송형수 등을 뽑을 수 있다. 김병만의 경우 달인이 메가 히트 코너라서 원히트원더로 오해 받을 수 있으나 무림남녀, 풀옵션, 불청객들, 김병만의 역사스페셜도 대박 친 코너였으며, 김미려는 김철민과는 다르게 사모님 외에 '이런 면접'과 '세 여인들'이라는 대박 코너가 2개나 더 있었고, 정만호는 1년 남짓되는 전성기 동안 ' 왜 없어'의 만사마 외에 ' 막무가내 보이즈', ' 들이대', ' 그룹 싸쓰' 등을 히트시켰고, 송형수는 원 히트 원더에 부합할만한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지만 자주찾기가 워낙 흥해서 그렇지, 이후 친절한 형수씨라는 코너에서도 한번 더 대박을 터뜨린 바 있다.

7.2. 스포츠

스포츠의 경우 평생의 커리어 동안 단 한번의 이벤트 동안만 스포츠 팬들의 주목을 받은 선수들을 원 히트 원더라 부른다.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그저 그런 커리어를 보낸 댈러스 브레이든, 필립 험버가 예시이다. 끝판왕은 무려 월드 시리즈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돈 라슨이 있다.

KBO 리그에서는 1군 데뷔 첫 타석에서 대타로 나와 초구 9회말 2사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고 사라져버린 송원국[18], 914 대첩을 만들어내고 사라진 황정립, 초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만루홈런을 때리며 MVP를 땄던 김유동, 1994년 LG 트윈스 신바람 야구를 대표하는 신인라인 중 한명이자 데뷔한 해에 10승이라는 쾌거를 이룬 후 부상의 장기화로 인해 급격히 몰락하여 1999년 시즌 이후 은퇴한 인현배, 2016 시즌 신인왕을 수상했지만 이후 성적은 계속 내리막을 타다 2022 시즌 이후 은퇴한 투수 신재영, 신인 시절 신인왕 후보에도 올릴정도로 성적이 좋았지만 군 전역후 영원히 1군에서 모습을 감춘 박주현 등을 들 수 있다.

국내 팬들에게는 거의 인지도가 없지만(혹은 감독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포인트가드 스캇 스카일스도 있다. 10년동안 주전 반/벤치 반으로 지극히 평범한 커리어를 보낸 스카일스는 올랜도 매직에서 뛸 당시 무려 NBA에서 역대 한 경기 최다 어시스트 기록(30개)을 냈다. 당시 확장팀 2년차로 약체팀이었던 매직은 90-91시즌 당시 리그에서 득점이 전체 1위/실점도 전체 1위(...)인 극단적인 공격올인팀이자 리그 꼴찌 덴버 너깃츠를 맞아 155대 116으로 무자비하게 박살내면서 이런 기록을 냈다. 스카일스는 그전까지 4년동안 두 자리수 어시스트를 단 10번 밖에 넘겨보지 못한 평범 그 자체인 선수였고, 그 시즌에 기량발전상(MIP)을 수상하지만 그 이후로도 평범 그 자체인 커리어를 보낸 선수이다. 즉, 약체팀의 평범한 선수가 매직 존슨, 존 스탁턴같은 레전드 슈퍼스타들도 못하고 그 이후 30년 넘게 깨지지 않고 있는 대기록을 낸 것이다.[19]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는 개별 선수들의 폼과 게임 메타가 같이 널뛰기하는 특성상 원 히트 원더가 꽤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2020 LCK 스프링에서 3번의 펜타킬을 기록하며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며 한때 차기 한체원 후보로 언급되기도 했지만 이후의 시즌에서 그 당시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일본 리그까지 떨어진 HyBriD, T1 시절 본격적인 주전 경쟁을 시작한 21시즌에 페이커/클로저와 함께하는 정글러로써 나름 좋은 포텐을 보여줬지만 이후 광동으로 넘어오자 순식간에 최하위급 정글러로 기량이 하락해버린 Ellim, 2018시즌 LMS 리그에서는 물론 MSI, Worlds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한화생명으로 이적해왔으나 이후 빠르게 몰락해버린 MooJin 등이 있다.

다만 2021 LCK 스프링이 플루크 시즌이었다고 평가받았던 kt 비운의 유망주 Noah와 은퇴까지 선택했던 4대 유망주 미드라이너 SOLKA가 해외리그 이적을 통해 각각 2023 프나틱과 2024 플라이퀘스트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반례도 있기 때문에, 결국은 프로게이머 하기 나름이다. 한편 원 히트 원더의 범위를 팀 자체에까지 확장하면 월즈의 역사를 따질 때 유일한 마이너리그 우승팀이라는 타이틀로 반드시 거론되지만 이후에는 GPL 리그의 패왕 노릇이나 하다 월즈 우승팀 중 최초로 해체된 팀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져버린 Taipei Assassins이 LOL 프로씬에서 가장 큰 원 히트 원더에 해당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2010~2020년대의 여자프로테니스의 경우 원히트 원더를 양산하고 있다. 옐레나 오스타펜코, 소피아 케닌, 비앙카 안드레스쿠, 에마 라두카누 등 2023년 현재 이 숫자는 더 늘어나리라 예상된다.[20]

7.3. 성우계

드물지만 성우계에서도 사용된다. 대표 배역은 있긴 한데 팬층이 매우 얇거나 커리어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경우.

7.4. 원 히트 원더 명칭만 사용되는 경우

웹 애널리틱스 분야에서는 '검색 엔진을 타고 어느 페이지에 접속하여 자신이 필요한 컨텐츠만 확인하고 기타 상호작용(광고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휙 떠나버리는 유저'들을 원 히트 원더라고 일컫는다. 약쟁이들 사이에서는 한방에 훅 가버리도록 강하게 제조한 약물들을 원 히트 원더라고 부른다. 이름만 빌렸을 뿐 상관이 없다.

8. 참고

9. 여담

톰 행크스가 주연, 감독한 ' That Thing You Do'는 바로 이런 원 히트 원더 그룹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로 영화명과 동명의 주제곡이 매우 유명한 작품. 인터넷에 보면 작품 내의 원더스 자체를 원 히트 원더 그룹으로 알고 찾는 문의가 쇄도하는데... 실화가 아니라 가상 인물이다.


[1] 물론 대한민국 밖에서의 기준으로. [2] "와"로 유명한 이정현과 동명이인의 남자 가수. [3] 데비 분의 경우에는 "You Light Up My Life"가 10주 연속 차트 1위를 했고 이후 컨트리 뮤직과 CCM으로 2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므로 해당 사항이 없다. [4] 알 켈리 본인의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90년대, 00년대, 10년대에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한 가수이다. 단지 I Believe I Can Fly만 주야장천 대한민국에 알려졌을 뿐이다. [5] 사실 김정구의 경우에는 무려 보관문화훈장까지 표창받을 정도의 거물이라 원히트 원더로 꼽는 것 차례가 상당히 실례다. [6] '데뷔 무대'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것이,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음악 방송으로 데뷔한다는 개념이 뚜렷하지가 않다. 대신 메이저 싱글 발매일을 더 중시한다. [7] 참고로 이 곡은 리메이크 곡이다. [8] 사실 마이클 잭슨을 대표하는 곡은 너무나 많다. Smooth Criminal이나 Beat It등도 엄연히 그의 대표곡에 속한다. 한국에서의 인지도만 Billie Jean에 묻힐 뿐이다. [9] 물론 원곡자는 90년대의 아이콘 중 하나였을 만큼 유명한 가수고 그 외에도 수많은 히트곡이 있다. [10] 2015년 앵무새 죽이기의 속편 파수꾼(소설)이 발간되긴 했으나 망했으니 여전히 원 히트 원더다. [11] 실제로 원히트원더는 일본어 위키백과의 一発屋로 인터위키된다. [12] 정확히는 본문의 전자는 사실상 소수정예 유저들과 없데이트로 연명중이며, 후자는 얼리 엑세스 상태에서 그대로 서비스 종료했다. [13] 다만, 이들은 사실상 베이퍼웨어 상태라 불안하다. [14] 단 이 사람은 공채로 들어온 적이 없으며, 연극배우 출신이기 때문에 코미디언이 아니며,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로도 유명세를 탓었기 때문에 개그콘서트 한정으로만 해당되는 케이스. [15] 사실 이정수도 봉숭아 학당의 선도부 역할과 충무로라는 코너도 상당히 인기를 끌어서 원 히트 원더라고 보기 애매하다고 볼 수 있다. [16] 사실, 김태현도 행님아 외에도 단무지 아카데미의 단선생 역으로 대박을 친적이 있다. [17] 이도 조금 애매한게 사모님 김기사 외에 노블X맨이란 코너도 호평을 받아서 원히트라기에는 조금 애매한 편이다. [18] 단, 송원국은 2004년에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서 선수 생활이 일찍 단축된 점은 감안해야 한다. [19] 그 뒤 올랜도 매직은 2년 연속 1라운드 1번픽을 건지는 행운과 함께 샤킬 오닐, 앤퍼니 하더웨이의 입단으로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부상한다. 페니는 3번픽으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됐으나 1번픽 크리스 웨버와 드래프트 현장에서 맞트레이드됐다. [20] 다만 원히트 원더 우승자들이 자주 나오는 것과는 반대로, 꾸준함을 상징하는 지표라 할 수 있는 연말 랭킹 1위 자리는 극소수의 선수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절대적 지배자였던 세레나 윌리엄스가 마지막으로 연말 랭킹 1위를 찍었던 2015년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케르버(2016년)-할렙(2017~2018년)-바티(2019~2021년)-슈비온텍(2022~2023년)에 이르기까지 8년 간 4명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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