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536349> 오트란토 해전 Battle of the Strait of Otranto Battaglia del Canale d'Otranto Seegefecht in der Straße von Otran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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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의 일부 | |||
승전 후 퇴각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함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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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
1917년 5월 14일 ~ 5월 15일 | |||
장소 | |||
아드리아해 오트란토 해협 일대 | |||
협상국 | 동맹국 | ||
교전국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이탈리아 왕국| ]][[틀:국기| ]][[틀:국기| ]] [[프랑스 제3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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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연합국 [[틀:깃발| ]][[틀:깃발| ]][[알포레도 엑튼| ]] |
오스트리아-헝가리 [[틀:깃발| ]][[틀:깃발| ]][[호르티 미클로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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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경순양함 3척 구축함 10척 수상기모함 1척 |
경순양함 3척 장갑순양함 1척 구축함 2척 잠수함 1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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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
경순양함 1척 대파 구축함 3척 침몰 비행기 1기 격추 |
경순양함 1척 대파 | |
결과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승리 | |||
기타 | |||
오트란토 봉쇄선 파괴 목적의 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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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7년 5월 14일부터 5월 15일까지 아드리아해 오트란토 해협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왕국의 연합 함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2. 배경
2.1. 지중해와 아드리아해의 해군력
동맹국은 협상국에 비해 열세인 해군력을 극복하기 위해 주력함끼리의 직접적인 정면 충돌은 피하고 잠수함을 활용하여 연합국 함대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피해를 강요하고 있었다.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마찬가지였는데 전쟁 초반에는 비슷한 적수였던 이탈리아 해군을 상대로 안코나 포격을 비롯해 여러 작전들을 수행하였지만 이내 프랑스, 영국의 해군까지 합세했고 1917년 부터는 일본과 미국까지 지중해에 해군을 파견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항구와 만으로 숨어들어 협상국 함대와의 숨바꼭질이나 하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협상국 입장에서도 아드리아해에 진입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을 완전 박멸하기에는 갈리폴리 전투로 인해 흑해와 지중해의 해군전력이 분산되어 버렸기에 무리가 있었다.2.2. 오트란토 해협 봉쇄선 구축
이에 협상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해군을 고사시키기 위해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를 잇는 오트란토 해협에 구축함과 트롤선을 이용해서 봉쇄선을 구축하였다. 협상국은 50여척의 구축함과 트롤선을 투입하여 대잠수함 그물망과 기뢰들을 부설했고 20여척씩 2개의 부대로 나누어 밤낮으로 순찰을 돌며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함선 및 잠수함이 발견될때 마다 공격을 가했다. 물론 오트란토 해협이 넓었던만큼 잠수함의 이동이 전혀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해가 갈수록 오트란토 해협 봉쇄선이 점점 견고해지는 데다가 잠수함이 부상하거나 잠망경이 관측되는 즉시 연합군의 폭뢰공격이 이어져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활동에 큰 제약을 걸었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은 오트란토 해협 봉쇄선을 해체 하기 위해 아껴 두었던 수상함 전력을 동원했고 연합군 역시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함대를 투입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 중 아드리아해에서 벌어진 해전 중 가장 큰 규모의 해전이 발생했다.3. 함선
3.1.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 경순양함 : 3척
- 노바라급 경순양함
- 노바라
- 사이다
- 헬리골란트
- 장갑순양함 : 1척
- 장크트 게오르크급 장갑순양함
- 장크트 게오르크
- 구축함 : 2척
- 타트라급 구축함
- 체펠
- 발라톤
- 잠수함 : 1척
3.2. 협상국
- 영국 해군
- 경순양함 : 2척
- 타운급 방호순양함
- 다트머스
- 브리스톨
- 이탈리아 해군
- 경순양함 : 1척
- 니노 빅시오급 방호순양함
- 마르살라
- 구축함 : 7척
- 수상기모함 : 1척
- 에우로파급 수상기모함
- 프랑스 해군
- 구축함 : 3척
4. 전개
4.1.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봉쇄선 해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해군 제독 호르티 미클로시는 오트란토 해협 봉쇄선을 해체하기 위한 작전을 수립하였다. 봉쇄선 해체를 위해 노바라급 경순양함 3척(노바라, 사이다, 헬리골란트)을 배치하였고 타트라급 구축함 2척을 봉쇄선 지원을 위한 협상국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알바니아 해역으로 출항시켰다.5월 14일 새벽,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은 야밤을 틈타 협상국 트롤선을 위협해 나포했고 투항하지 않는 배들은 공격하였다. 5월 14일부터 15일까지 이어진 작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은 인근 해역을 호위하고 있던 이탈리아 해군의 구축함 보레아와 화물선 1척, 트롤선 14척을 격침시키고 72명의 승조원을 포로로 잡는 성과를 거두었다.
4.2. 협상국의 추격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공격에 협상국은 이들이 작전을 마치고 후퇴할 때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영국 해군의 타운급 방호순양함 다트머스와 브리스톨 2척, 이탈리아 해군의 로솔리노 필로급 구축함 5척이 합세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을 공격하기 위해 출격하였고 인근 해역을 초계 중이던 이탈리아 해군의 미라벨로급 구축함 1척과 프랑스 해군의 구축함 3척도 전투에 참여하였다.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은 봉쇄선을 성공적으로 파괴한 후 협상국이 공격하기 전에 모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북쪽으로 항해하고 있었으나 오전 7시쯤 이탈리아 해군의 미라벨로에게 발견되었다. 이들은 짧은 포격전을 벌였으나 화력에서 열세였던 이탈리아 해군이 떠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은 계속 북쪽으로 항해 하였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은 영국 해군의 다트머스함을 포함한 협상국 해군의 주력을 먼저 발견하였고 호르티 미클로시는 전투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양측은 북쪽을 향해 항해하면서 포격전을 준비하기 시작하였고 9시 28분 영국 해군 경순양함 다트머스의 함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 함대의 선두에 있던 노바라를 직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트머스와 브리스톨의 함포사거리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타트라급보다 길었으므로 이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호르티 미클로시는 양측 함대간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소구경 함포를 사용하여 연막을 형성하면서 협상국 함대를 향해 천천히 접근하였다. 한편 협상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이 해전을 회피하고 빠르게 탈출할 것으로 예상하여 이들을 추격하기 위해 오히려 오스트리아-헝가리 함대로 다가가는 오판을 하였다. 협상국의 포격이 오스트리아-헝가리 함대의 선두인 노바라에게 집중면서 큰 피해를 입혔지만 덕분에 나머지 함대들은 큰 피해 없이 협상국 함대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후 쌍방의 포격전이 이어졌다.
계속되는 포격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함대의 선두에 있던 노바라는 기동 능력을 잃고 정지해 버렸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협상국 함대의 선두 다트머스의 뒤를 따라오던 브리스톨도 상태 이상으로 인해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에 다트머스와 브리스톨간의 거리가 크게 벌어졌다. 그러자 노바라를 뒤따르던 사이다가 노바라를 예인하였는데 이에 다트머스는 노바라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사이다를 포격하였으나 헬리골란트가 엄호하면서 포격을 가하였다. 다트머스가 헬리골란트와 포격전을 하는 동안 이탈리아 구축함이 사이다에 포격을 퍼부었지만 사이다에 의해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으며 다트머스 역시 퇴각하여 협상국 본대와 합류하였다.
호르티 미클로시는 이때의 상황에 대해 다트머스가 본대와 합류하여 다시 공격할 줄 알고 패배를 직감했다고 밝혔는데 다행히도 협상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증원함대를 우려하며 퇴각하였다.
그러나 협상국 함대는 퇴각하는 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잠수함 U-25에 의해 어뢰공격을 받아 다트머스가 대파되고 구축함 2척도 귀항 중 부설된 기뢰에 의해 침몰되었다. 다트머스는 침몰은 면했지만 항해능력을 잃어 전투 후 인양해와야 했다.
5. 결과
승전 후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진 기록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경순양함 1척이 대파되었지만 오트란토 봉쇄선을 성공적으로 파괴하고 협상국의 함대도 격퇴하면서 오랜만에 해전에서의 승리를 거두었다.
협상국은 양적, 질적에서 배 이상 우세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경순양함 1척 대파, 구축함 3척 침몰의 피해를 입었고 오트란토 봉쇄선을 파괴하고 철수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을 무사히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 해전의 결과로 오트란토 봉쇄선이 파괴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이 다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드리아 해 연안에서의 협상국의 해상봉쇄를 풀어낼 수 있었지만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기에는 무리였으며 전쟁에는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 승리는 전혀 기대하지도 못했던 해전에서, 그것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연합함대를 상대로 거둔 대승이였기에 일시적으로나마 국내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었으며 호르티 미클로시는 일약 전쟁영웅이 되어 훗날 배 없는 나라의 해군제독이자 왕 없는 나라의 섭정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