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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로색슨 7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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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로색슨 7왕국
Heptarchy
파일:external/pre02.deviantart.net/heptarchy_by_c00lfr0g-d6dcfp2.png
7왕국의 통상적인 강역도
시기 5세기 ~ 925년

1. 개요2. 등장 배경3. 사회4. 잉글랜드 통일 왕국의 탄생5. 기타6. 창작물

[clearfix]

1. 개요

5세기 앵글로색슨족 그레이트브리튼섬에 세운 7개의 왕국과 그 왕국이 존속한 시대를 의미한다. 이후 브리튼인 잉글랜드 지배는 끝나고,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게르만 계통이 이어가게 되었다.

7왕국(Heptarchy)이라는 표현은 12세기 잉글랜드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고, ' 일곱'을 뜻하는 고전 그리스어 ἑπτά(hepta, 헵타)와 '통치하다'라는 뜻의 ἀρχή(archē, 아르케)의 합성어였다. 다만 이 영단어가 보편적으로 통용된 것은 16세기 이후부터였다.

앵글로색슨족의 브리타니아 정복에 대한 기록이 길게 남아 있지만 《앵글로색슨 연대기》같이 수사적, 신화적이고 간략한 기록이 남아서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보니 정복 과정의 연도나 국가들의 판도가 제각각 다르게 나온다. 편의상 잉글랜드 지방의 고대 왕조들을 7왕국이라고 한데 모아 부르지만 시대 구분을 위한 것이고, 실제로는 각자 개별적인 왕국들이었다.

2. 등장 배경

이민족이 국경 전역을 강타하자 국력이 급속도로 감소한 로마 제국 속주의 군대들을 전부 소집해 제국을 방어하고자 했다. 일부 군대가 남아 있었지만 407년 콘스탄티누스 3세 황제를 참칭하며 브리타니아 주둔군을 이끌고 갈리아를 침공했고, 그곳에서 전멸하는 바람에 본토는 무방비로 노출되고 말았다. 410년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가 브리타니아로 편지를 보내 스스로를 지키라고 명령하며 로마 제국은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전격적으로 철수되었다. 이어서 그 빈자리로 주트족, 앵글족, 색슨족 등 게르만 대병력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거주하던 브리튼인들을 스코틀랜드, 웨일스, 브르타뉴, 콘월로 몰아냈다.

주트족 이주민들은 처음에는 브리튼인들과 함께했지만 꾸준히 브리타니아의 항구들을 확보해나가며 세가 불어나자 스스로의 세력을 구축하고, 브리튼인과 반목했다. 그리고 먼저 잉글랜드 동남부에 켄트 왕국을 세웠다. 그리고 뒤이어 같은 게르만계 민족인 색슨족, 프리지아족, 앵글족도 이 정복 활동에 동참해 웨식스, 서식스, 머시아 등 잉글랜드 곳곳에 자신들의 왕국을 건국해 로마 제국의 보호가 없는 브리튼인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정복 활동을 벌였다.

앵글로색슨의 7왕국이 등장해 브리튼인을 공격하자 웨일스, 콘월, 바다 건너 브르타뉴 지방으로 브리튼인들이 피신했다. 이 과정에서 브리타니아 중남부를 장악한 앵글족의 이름으로부터 잉글랜드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앵글로색슨계 왕국들은 주변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했다.

3. 사회

기본적으로 앵글로색슨 왕국들의 사회는 가장 큰 단위인 왕국을 지배하는 왕( 대군주)와 그 하위 지역을 지배하는 귀족(earldorman이라고 불림) 또는 독립적으로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부족 지도자가 있었고, 그 밑에는 자유민(ceorl)과 노예로 구분되었다. 자유민은 앵글로색슨인 평민들로 구성되었고, 노예는 절대다수가 로만 브리튼인들의 후손들로, 이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데인인의 침공으로 사회가 초토화되기 이전까지 매우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상인이나 수도자와 같이 이에 속하지 않는 계급들은 왕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체올(ceorl)이라 부르는 자유민은 기본적으로 게르만 부족사회에서 유래한 것으로, 후스카를처럼 한 개의 대가족의 수장이었으며, 그의 가문과 그에 속한 가문원들은 가장(자유민)에게 속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들은 필요할 때 자체적으로 무장하였으며, 왕국의 법의 적용을 받았다. 물론 재판을 걸 수도 있었다.

반면, 농지를 경영하는 농부들은 이런 체올들과는 별개로 여겨졌는데, 앵글로색슨의 토지는 내야-외야 토지로 구분되었으며 농부들은 대게 외야 토지를 경영했다. 그들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가졌으며, 대군주(왕)에게 지대와 몇몇 의무들을 지불, 또는 수행하여야 했다. 농부들은 이를 통해 자신이 속한 친족 및 문화적 집단 내에서 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이들과 별개로 각 왕국들 내에서 자치를 유지하는 부족들이 7왕국을 통틀어 35개 존재했다. 이들은 Tribal Hidage라고 불렸는데, Hidage는 하이드세를 뜻하는 단어로 토지 1 하이드(Hide) 단위로 왕에게 바치는 세금을 뜻한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각 왕국별로 이들 부족들의 영토와 부족원의 수를 측정하고 세금을 매기기 위해 1하이드 단위로 쟀기 때문이다. 이 각 부족들의 족장들은 자신들이 통치하는 지역에 있어서 왕가가 통치하는 지역과 동등하게 여겨졌으며, 공물이나 세금도 따로 냈다. 이 부족들 대부분은 6세기에서 늦어도 7세기까지는 각 왕국들에 통합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앵글로색슨인이었지만 예외적으로 브리튼 부족들이 그대로 자치권을 인정받은 경우도 있었다. 한편 이 Tribal Hidage에 속하지 않는 반독립적인 부족들도 존재했다. 이 부족들은 Tribal Hidage에 포함되기에는 너무 크지만 그렇다고 독립적인 왕국을 이루기에는 애매한 부족들로, 때때로 그들이 속한 왕국이 혼란에 빠지거나 힘이 약해졌을때 왕을 자칭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머시아 동남부 동앵글리아국경에 인접한 중앵글족(Middle algles)이나 동앵글리아의 귀르워스(Gyrwas)족, 서식스의 해스팅가스 또는 하에스팅가스(Haestingas)족 등이 있다.

중앵글족은 머시아와 동앵글리아 국경에 끼인 앵글족들을 이르는 말로, 이들 이외에 밑에 남앵글족(South Angles)나 북쪽에 북앵글족(North Angles)도 있었으나 이들은 독립적인 단위를 이루지 못하고 소멸했다. 중앵글족 역시 독립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7세기 머시아의 펜다 왕 통치 기간에 머시아에 병합되었으나 이후로도 머시아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적인 영토 단위로 간주되어 광범위한 자치를 누렸으며, 교회 교구도 따로 설치되었다. 한때는 머시아 교구와 중앵글리아 교구가 동등한 단위로 주교를 각기 임명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늦어도 8세기까지는 독자의식이 희미해지고 머시아의 일부로 완전히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귀르워스족은 앵글로색슨족이 주변에 가득한 상황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로만 브리튼계 부족으로, 어떻게 살아남았냐면, 그들이 사는 지역은 현재 케임브리지셔 구역과 정확하지는 않으나 얼추 일치하는데, 당시는 이곳이 육지가 아니라 늪지대였다. 앵글인들은 굳이 그 지역까지 진입하는 것을 꺼렸기에 브리튼계이면서도 거의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앵글로색슨어로 Gyr는 깊은 늪지대라는 뜻으로, 깊은 늪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들 부족은 각각 머시아와 동앵글리아에 분할 점령되었다.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하에스팅가스족은 오늘날 헤이스팅스 지명의 어원이 된 부족으로, 바로 그 유명한 헤이스팅스 전투가 그들이 사는 영역에서 발발했다. 하에스팅가스라는 이름은 하에스타라는 족장의 부족이라는 뜻이다. 한때 이들이 프랑크족이라는 가설이 제안되었으나 현재는 켄트 왕국의 주트족과 동계라고 본다. 6세기 또는 늦어도 7세기에는 정착했으며, 686년 켄트가 웨식스에게 국경지대 영토를 할양했을 때 이들도 웨식스령으로 넘어갔으나, 771년 머시아의 오파 대왕이 에식스, 켄트, 서식스, 웨식스를 개발살 내놨을 때 이들도 오파에 맞섰으나 대패하고 이후로는 서식스에게 귀속되었다. 이들은 무려 11세기까지 독자성을 유지했다고 한다. 참고로 7세기 말~8세기 초에 켄트와 서식스가 모두 개판일 때 거의 완전한 독립을 누렸는지, 서식스에서 이 부족의 지도자를 '왕'이라고 자신들과 동등하게 언급하는 서신이 존재한다.

앵글로색슨 사회에서 엘리트적인 귀족 가문의 존재는 상당히 중요했다. 앵글로색슨 잉글랜드 내 패자를 뜻하는 브레트왈다는 본래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의 지도자를 부르던 명칭이라고 하며, 이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지역 게르만 부족왕국들이 그랬듯 전쟁에서 싸우는 전사에 가까웠고 왕권의 기반 또한 전쟁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워딘( 오딘)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신화적인 가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왕국에 속한 이들에 대해 ' 친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배했다. 왕은 군대를 소집해 전쟁을 벌일 수 있었으나 대신 음식이나 숙소, 무기를 병사들에게 지원해주어야 했던 의무관계였다. 또 왕은 자유민들로부터 식량을 빌렸으며, 약탈에 나서 획득한 약탈품들을 통해 잉여가치를 만들어냈다.

한편 앵글로색슨족은 7세기를 기점으로 매장이 쇠퇴하고 무덤을 만들게 되는데, 동시에 무역을 위한 무역소들이 설치되고 약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물품들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소 또한 설치되었다. 그 결과로 이전에 약탈에 의존하던 시절보다 수지가 크게 개선되었고, 잉여생산물이 증대됨으로써 왕들은 무덤에 화려한 귀금속과 같은 것들을 같이 묻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동시에 사회적 부의 재분배 또한 이전보다 크게 활발해져, 사회적 계층 형성이 뚜렷해지고 토지 및 영토에 대해 더 수월한 관리가 가능해졌다. 또 브레트왈다의 정의가 명확해지고 전체 앵글로색슨 권역이 단순한 regnum(왕국)들의 집합체가 아닌 하나의 imperium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각 왕국들 간의 정치적 역학관계도 변화했다. 머시아의 펜다나 오스위우, 오파 같은 왕들이 브레트왈다로서 주변국들에게 삥을 뜯고 내정에 간섭하며 사실상 속국으로 삼았던 행위들은 이러한 관념의 변화를 상징한다. 한편 오스위우는 북부의 픽트족이나 컴브리아인처럼 앵글로색슨의 권역에 포함되지 않는 부족들에 대해서도 통제를 시도했다. 이 시도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훗날 전체 브리튼 섬을 통합한 단일 국가라는 관념이 이미 이 시기에 아주 미약하게 싹텄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발전의 결과로 독립을 누리던 부족들이나 군소 왕국들은 서서히 더 큰 왕국들에게 통합되었고, 최종적으로 9세기 즈음에는 잉글랜드를 통틀어 5개의 나라만이 멀쩡히 독립을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단순히 사회적인 변화를 통해 군사적으로 정복함으로써 영토를 단순히 확장하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베오울프 서사시에서 표징되는 것처럼 더 강한 세력을 가진 왕이 더 약한 세력을 가진 부족/소왕국들을 '보호'한다는 관념에 가까웠다. 위에서도 설명했듯 7왕국에는 여러 부족들이 자치와 명예를 누렸고, 이들은 왕국에 종속된 것이 아닌 보호를 받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서서히 왕국 그 자체에 통합되어 이런 의미가 퇴색된 경우가 상당수이기는 하나, 서식스 왕국의 경우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서식스는 멸망할 때까지 합병한 부족들의 자치와 권역을 그대로 보존했기 때문이다.

한편, 색슨족에게는 '위태나게모트'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의회 비스무리한 것이 있었다. 이것의 본질적인 역할은 왕에 대한 조언 정도였지만, 이들은 실제로는 더 강력한 영향을 발휘해 토지 소유나 전쟁, 교회 문제 등 더 복잡한 사안을 처리했으며 때때로 웨식스의 경우처럼 왕위 승계에 관여하기도 했다. 한편 서식스 같은 경우는 고대 게르만족의 고유한 의회였던 '팅그'가 정기적으로 열렸다. 초반에는 이들은 불과 수백 명 단위가 간편한 장소에 모여 회의하는 것에 불과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점 이들의 위상이 올라가 지방행정조직 간의 정기적인 만남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또 법원의 역할도 수행했다.

한편, 9세기에는 최초로 '사제', '전사', '노동자(농민)'으로 구성된 세 계급이 언급되었다. 이는 왕이 자신의 통치를 펼치기 위해 이 세 계급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에서 나온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이 세 계급의 협조를 얻지 못하는 왕은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없었다. 또 바이킹의 침략으로 인해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알프레드 대왕은 왕국의 방어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는 명분을 들어 이 세 계급이 통치에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는데, 그는 이를 통해 단순히 자신의 통치권을 정당화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지주나 농민들의 토지 소유권들을 적극적으로 회수하였다. 이전까지 토지 증여는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영구적인 소유권 이전을 의미했다. 그는 이 토지를 교회에 증여했고, 이를 통해 교회의 권위를 확립함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토지 소유를 퍼트렸다. 또, 이러한 개념의 도입은 토지의 세습을 정당화했으며, 곧 그 토지에 부속된 작위의 세습까지도 인정되었다. 이전 앵글로색슨 시대에는 대륙의 백작에 해당하는 지방행정관 earldorman은 세습되는 작위가 아니었으나, 이제는 세습되는 대륙식 백작 또는 공작과 유사해졌다. 이로써 고전적인 부족적 전통에 기반해 있던 앵글로색슨 왕국들은 봉건제 기독교에 기반한 중세적 국가로 재편되었다.

4. 잉글랜드 통일 왕국의 탄생

7왕국 초기는 당대 기록이 없어서 형성 과정이 명확하지 않으며 이들의 경계도 서서히 생겨났다. 잉글랜드인들은 대체로 서로를 정복하기보다는 가장 강력한 왕에게 복종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가장 강력한 종주국 왕을 아일랜드 아르드리처럼 브리튼의 지배자라는 의미로 ' 브레트왈다'(brytenwalda)로 불렸다. 브레트왈다와 종주국은 나머지 왕국들을 명목상 종속국으로 삼았고, 각 왕국들에게 봉토를 수여하는 형태로 각 소왕(小王)들의 봉지를 인정해주는 대신 주종 관계를 유지했다. 7왕국 시절의 초창기인 5세기에는 남부 서식스, 이후에는 7세기 초 번영한 동부의 패자 동앵글리아, 7세기 중엽 펜다 왕과 8세기 오파 왕의 시절 번영한 중서부의 패자 머시아, 버니시아와 데이라의 연합 왕국인 북부의 패자 노섬브리아, 남부의 패자 웨식스 등 5개 왕국이 번갈아가면서 군림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웨식스가 주변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잉글랜드 통일의 발판을 다졌다.

최초의 종주왕은 켄트 왕국 애설버트라고 할 수 있다. 켄트는 해안가에 있어서 대륙과 접촉한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616년 애설버트가 죽고 동앵글리아의 왕이었던 조카 레드월드에게 잠시 권력이 넘어갔다가 노섬브리아가 부상했다. 7세기 초는 노섬브리아의 전성기였다. 에드윈은 서쪽 바다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북쪽으로도 국경을 확장하여 요새(Edwin's burgh)를 지었는데 곧 오늘날의 에든버러(Edinburgh)이다. 그러나 에드윈은 632년 그위네드와 머시아의 귀족 팬더의 동맹군의 침공으로 전사하여 머시아에 권력이 넘어갔다. 팬더는 중부 잉글랜드를 연합하여 왕이 되었다. 머시아는 654년 노섬브리아를 침공했다가 패배하여 노섬브리아 왕 오스위가 다시 브레트왈더가 되었다. 그러나 670년 오스위가 사망하고 내분에 휩싸여 다시 머시아가 부흥했다.

머시아의 특출난 왕으로 오퍼(757-796)가 있다. 오퍼는 이남으로 세력을 넓혀 런던까지 판도에 넣었다. 오퍼의 업적으로 오퍼의 방벽이라는 토성이 있다. 오늘날 웨일스와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건설된 240km 길이의 대규모 토목 공사였다. 오퍼는 내치에도 관심을 기울여 법률, 경제, 무역, 종교 여러 면에서 업적을 세워 앵글로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프랑크 샤를마뉴가 오퍼를 동등한 왕으로 대우한 것이다. 그러나 오퍼가 사망하고 웨식스의 대두, 바이킹의 침입, 무능한 후계자로 권력이 웨식스로 넘어갔다.

이처럼 7왕국은 대략 100년 단위로 번갈아가며 흥망성쇠했는데 500년대에는 켄트 왕국, 600년대에는 노섬브리아, 700년대에는 머시아가 강성하다가, 800년대부터는 웨식스가 부상했다. 웨식스 왕 에그버트(802-839)는 엘렌던 전투에서 머시아를 물리치고 브레트왈더로 인정받았다. 에그버트는 남부 잉글랜드 전역을 지배했으나 연합은 느슨했고 지배권도 확고하지 않았으며 바이킹을 막아낼 군대가 없었다.

앵글로색슨인에게는 뚜렷한 우주관이 없었고 자신들의 종교보다 권위에 복종하고 상속권을 규정하는 등 여러 기독교의 교리가 국가 운영에 더 잘 부합했기 때문에 잉글랜드 왕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잉글랜드인들은 로마 교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켈트족의 교회라는 두 경로로 기독교를 접하여 서로 대립하기도 했다. 부활절 날짜도 달라서 왕과 왕비가 다른 날을 지켜야 하는 경우도 었었다. 663년 결국 노섬브리아 왕 오스위는 회의를 소집해서 로마 교회의 손을 들어주어 로마 교회가 잉글랜드를 종교적으로 통일했다.

나머지 6개 국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간의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동쪽에서 침공해 들어오는 바이킹들의 침공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9세기 무렵 앵글로색슨 왕조들은 데인족 바이킹의 침략을 받아 잉글랜드의 패권을 둔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웨식스의 명군이었던 앨프레드 대왕의 맹활약으로 유일한 독립국인 웨식스를 바이킹으로부터 지킬 수 있었다.

브리튼 섬에 정착한 바이킹들을 바로 데인족이라 부른다. 그들은 노섬브리아 남부, 동부 머시아와 에식스 및 서식스, 그리고 동앵글리아를 정복했다. 그곳의 데인족들은 덴마크 노르웨이의 고향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으며, 지속적으로 브리튼 제도의 패권을 두고 웨식스와 교전을 벌였다.

이 시기를 데인로(Danelaw)라 부르는데 9세기 중반부터 925년까지 이어진다. 앨프레드 대왕 사후 여러 명의 왕을 거치면서 웨식스-머시아 연합군과 데인족들의 왕국은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 받았고, 10세기에 들어서자 연합군이 서서히 데인족들을 압도하기 시작해 그들이 점령한 도시들에서 하나 둘씩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머시아 동부의 도시들을 시작으로 동앵글리아의 왕 구트룸 2세를 전사시키며 동앵글리아를 합병했고, 노섬브리아의 데인족들을 성공적으로 정복했다.

7왕국의 잔재와 바이킹의 잔존 세력을 모조리 격파한 웨식스는 통합 앵글로색슨 왕국인 잉글랜드 왕국으로 국호를 변경했고, 애설스탠이 잉글랜드 왕국 최초의 왕으로 즉위했다. 다만 이후에도 잉글랜드에는 바이킹을 비롯한 이민족의 침략이 계속되어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1세 노르만 왕조까지는 정복 왕조가 반복되었다.

5. 기타

20세기 영국 역사학자들은 이 시대를 7왕국으로 표기하는 것이 과연 적당한지를 두고 여러 논쟁을 거쳤다. 고대, 중세 등의 시대 구분도 아니고 애초에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7개 국가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의 깃발 유니언 잭 아래 합병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지의 역사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통용되어 온 보편성 탓에 7왕국이란 명칭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1]

베데의 저서, 《색슨 연대기》, 전설들에 따르면 이때 잉글랜드로 넘어온 앵글로색슨 지도자들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적으로 'Woden'( 오딘)이 나온다.

이들이 숭배한 북유럽 신들의 이름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전쟁의 신 티우(Tiw)는 화요일(Tuesday)의 어원이며, 주신 워든(Woden)은 수요일(Wednesday), 천둥의 신 토르(Thor)는 목요일(Thursday), 평화의 여신 프리그(Frig) 혹은 미의 여신 프레이야(freyja)에서 금요일(Friday)이 나왔다.

6. 창작물

영국의 역사에서 분리된 시기가 길었던 때인 만큼 이후의 영국 문학 등에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다.
[1] 직접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중국 전국시대 당시 정확히 7개 국가는 아니었지만 전국칠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