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4:16:14

앤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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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스튜어트 왕조 초대 국왕

Anne
파일:Dahl,_Michael_-_Queen_Anne_-_NPG_6187.jpg
출생 1665년 2월 6일
잉글랜드 왕국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제임스 궁전
(現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제임스 궁전)
사망 1714년 8월 1일 (향년 49세)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잉글랜드 미들섹스 켄싱턴 궁전
(現 영국 잉글랜드 런던 켄싱턴 궁전)
묘소 웨스트민스터 사원
재위 기간 잉글랜드 여왕[1]
1702년 3월 8일 ~ 1707년 5월 1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여왕
1707년 5월 1일 ~ 1714년 8월 1일
서명 파일:앤 여왕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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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53b4><colcolor=#fff> 가문 스튜어트 왕조
아버지 제임스 2세 & 7세
어머니 앤 하이드
형제자매 찰스, 메리 2세, 제임스, 찰스, 에드거
배우자 덴마크의 조지 (1683년 결혼 / 1708년 사망)
자녀 윌리엄
종교 성공회 ( 잉글랜드 국교회) }}}}}}}}}

1. 개요2. 생애3. 기타4.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마지막 잉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이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초대 국왕이며, 동시에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다. 언니 부부인 메리 2세 윌리엄 3세도 자녀를 모두 일찍 잃었고, 앤도 마찬가지라 결국 스튜어트 왕조는 앤의 대에서 단절되며, 영국 왕위는 방계 친척의 후손인 하노버 왕조로 넘어간다.

2. 생애

제임스 2세의 차녀이자 메리 2세의 동생. 명예혁명 이후 후계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윌리엄 3세 메리 2세 공동 국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였다. 군주로서의 인지도는 다른 왕들만큼 높지 못하지만,[2] 그녀의 재위 당시 잉글랜드는 중요한 사건을 많이 겪었다.

전 수석 시녀였던 사라 처칠이 궁정에서 쫓겨난 후 악의를 가지고 쓴 회고록 때문에 저평가받던 왕이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역사학계에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현대에는 성실하고[3], 예술과 문학에 관심이 많으며[4], 토리와 휘그 양당을 어느 한 세력이 커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균형을 맞춘 군주로 평가된다. 앤의 치세에 영국은 육군 강국이 되었고 문화적으로 번성했으며 알렉산더 포프, 조너선 스위프트 등의 문호들이 활약했다.[5] 숱한 건물이 그녀의 이름을 따서 건축되었는데, 이 시기 지어진 건물 양식을 앤 여왕 양식(Queen anne style architecture)이라고 하며, 화사한 색깔과 부드러운 마감, 그늘이 드리우는 입구 등 르네상스 양식을 본뜬 아름다운 건축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6]

재위 중 자코바이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복 남동생인 제임스[7]가 성공회로 개종한다면 왕위 계승을 보장하겠다는 언질을 주기도 했고, 이복 여동생인 루이사 마리아와 당시 차차기 왕위 계승자였던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8]와의 혼담을 주선했지만 이는 1712년 루이사 마리아가 천연두로 요절하면서 무산되었다.

앤은 재위 기간 내내 선왕이자 형부이며, 사촌 오빠[9]였던 윌리엄 3세에 의해 사실상 개입하게 되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치렀는데, 이 전쟁의 결과 위흐레흐트 조약을 통해 지브롤터 등을 확보하면서 잉글랜드는 해군력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잉글랜드의 유명한 세력 균형책이 시작되었다. 또한 즉위 이후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반란을 진압했고, 1707년 통합법에 의해 동군연합이었던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을 통합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하였다. 한편 앤이 즉위하면서 윌리엄 3세 때 결성된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동군연합은 1대 만에 해체되었다. 네덜란드의 왕위는 침묵공 빌럼 1세의 동생의 후손이 이어받았다.

재위 기간 동안 앤은 토리당과 휘그당의 불화를 이용하여 왕권을 유지하였으며, 토리당과 휘그당을 번갈아 중용한 후에 한 세력이 너무 강해진다 싶으면 실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10]

앤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말버러 공작 부인 사라 처칠[11][12]을 가까이 했었다. 사라는 휘그당 편에 서서 국정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했었는데, 토리당 소속 귀족을 실각시키려 하다가 정치적 균형을 추구하던 앤과 사이가 멀어졌다. 이후 앤은 사라에 대한 총애를 거두고 대신 자신의 시녀 애비게일 힐을 가까이하기 시작했고, 이에 분노한 사라는 앤과 애비게일이 레즈비언이라는 루머를 퍼뜨려 여왕의 평판을 떨어뜨렸다.[13]

1708년에 남편인 덴마크의 조지가 사망한 후 큰 충격을 받아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으며, 사망 1년 전인 1713년부터는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국정을 돌보다가[14] 1714년 8월 1일에 사흘 동안 이어진 어전 회의를 버티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대해 여왕이 동생인 제임스 2세의 아들과 접촉하여 그를 복권시키려 하자 주위의 반대파들이 두려워해 여왕을 암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황상 암살의 가능성은 없다.

스튜어트 왕조의 직계가 제임스 2세 이후로 끊어졌기 때문에, 영국에는 그녀의 즉위 이전부터 왕조 교체가 예정되어 있었다. 앤의 사후 왕위 계승법에 따라 제임스 1세의 외손녀 팔츠의 조피의 아들, 즉 앤의 육촌인 하노버 선제후국의 게오르크가 영국 국왕 조지 1세로 즉위함으로써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앤 여왕과 메리 2세의 이복 남동생인 제임스는 제임스 3세를 자칭하며 계속 영국 왕위를 주장했고,[15] 그의 후손도 마찬가지였다. 자코바이트 항목 참조.

영국 역사상 국왕의 거부권을 행사한 마지막 군주이다. 1708년 영국 의회를 통과한 Scottish Militia Bill 1708에 대해 앤 여왕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당 법안은 스코틀랜드 민병대[16]를 강제 해산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1707년에 한 나라가 되었는데 이때 마침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한테 “잉글랜드와 한 나라가 된 이후 잉글랜드의 뒤통수를 치자"고 제안한 사실을 잉글랜드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킨 이후에야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내각 신하들은 여왕한테 해당 법안을 승인(Royal Assent)하면서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 민병대를 무장 해제 시킬 경우, 프랑스가 스코틀랜드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영국을 침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따라서 앤 여왕은 해당 법안을 거부하고 프랑스가 영국을 침공할 명분을 없앴다. 스코틀랜드의 민병대(군대)를 해산하는 것은 빅토리아 여왕 때 가서 성사된다.

1708년에 행사된 이 거부권 이후 2024년 지금까지 영국 국왕은 내각과 의회를 통해 입법된 법안에 대해 단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왔다[17]. 조지 5세 1912년 아일랜드 자치 법안에 대해 승인을 보류(Postpone)한 적은 있다.

3. 기타

파일:mw00147.jpg 파일:살찐앤여왕.jpg
공주 시절 (20대) 여왕 시절 (30대)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심각한 비만이 되어 평생 건강이 좋지 않았다.[18] 영국 역사상 가장 뚱뚱한 군주였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알현실에서 왕의 방을 잇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서 왕의 방바닥을 뚫어 알현실과 오가는 승강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임신을 18번이나 했지만 항인지질항체증후군[19]으로 인해 대부분 유산/ 사산했고, 그나마 무사히 태어났던 자녀도 모두 어렸을 때 사망했으며, 금슬이 좋았던 남편 덴마크의 조지도 앤보다 먼저 사망하고 말았다.

세계 과학사를 빛낸 대학자 아이작 뉴턴에게 귀족 작위를 수여한 인물이기도 하다.[20]

영국사에서 유일하게 앤이라는 이름을 쓴 왕이라 그냥 '앤 여왕'이라고만 불린다.[21] 훗날 앤이라는 이름을 쓰는 여왕이 또 나온다면 그때부터 '앤 1세'라고 불리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찰스 3세의 손자 대까지 왕위를 이을 첫째가 모두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앤 2세가 탄생할 날은 요원해 보인다.

20세기부터 각 유럽의 왕실에 남녀 평등 상속법이 자리 잡기 전까지 기록된, 유럽 역사상 유일하게 확정 상속인 자격으로 왕위를 계승한 여왕이었다. 메리 2세 사후에 윌리엄 3세가 재혼해서 자식을 낳을 경우 계승 순위가 앤의 다음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원래 윌리엄 3세가 앤보다 계승 순위가 후순위였기 때문에 생긴 특례다.


헨델은 1713년 앤 여왕의 48세 생일을 기념하여 축가를 작곡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아리아Eternal source of light divine은 300여 년 후, 해리 왕자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곡으로 사용되었다.

4. 매체에서

빅토르 위고의 소설인《 웃는 남자》에 등장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네임드 캐릭터 중 유일한 실존 인물. 제임스 2세의 딸임이 언급되며 비만, 덴마크 출신 남편 등의 요소가 고증되어 있다. 작중 배경도 재위 시기인 1705년. 아버지의 사생아 배다른 여동생 조시아나 여공작과 사이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국 여배우 올리비아 콜먼이 분했으며 폭군, 나약한 인간, 아이 같은 모습 등을 모두 능숙하게 연기하면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먼나라 이웃나라 영국 편에서는 금발이며 무뚝뚝한 여성으로 등장한다. 아빠 제임스 2세에게 영국을 떠나라고 무뚝뚝하게 답변한다.


[1] 스코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 여왕 겸임. [2] 2018년 개봉한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이후로는 그나마 인지도가 조금 늘어났다. 그러나 영화 내용과 달리 앤은 레즈비언이 아니었다. [3] 앤은 아픈 몸을 이끌고도 전임자인 윌리엄 3세와 후임인 조지 1세보다 훨씬 많은 회의에 참석했다. [4] 그녀의 통치 기간에 예술, 문학, 과학, 건축 분야는 크게 발전했다. [5] 앤은 조너선 스위프트와 편지를 주고받는 등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도 했다. [6] 더글라스 하우스, 블루코트 챔버스 등의 건물. [7] 아버지 제임스 2세와 새어머니 모데나의 마리아의 아들. [8] 당시 부인인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와 이혼한 상태였다. [9] 고모 프린세스 로열 메리의 아들. [10] 조선 후기의 숙종 환국 정치와 유사한 면이 있다. 이런 방식은 원래부터 왕권이 다소 강했던 국가의 왕권 강화 방법이다. 중요한 점은 정치적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의 정권 교체는 절대로 하면 안 되고, 군주는 당색을 숨기고 양당의 심판 역할에 충실하며 왕 자신이 한 당파의 일원으로 다른 당파의 정적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11] 결혼 전 성은 제닝스(Jennings)였다. 존 처칠과 결혼했는데, 사라를 총애하던 앤이 즉위 이후 존 처칠에게 말버러 공작위를 주어 사라도 공작 부인이 되었다. [12] 앤의 언니 메리 2세는 사라를 싫어했다. 메리가 재위 중 사라를 궁정에서 추방하여 앤이 반발한 일도 있었다. [13] 이 세 사람의 갈등 관계를 다룬 작품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다. 해당 영화에서는 사라와 앤이 애증 가득한 연인 관계였던 것으로 묘사한다. 실제 앤 여왕은 독실한 기독교도였으며 보수적인 여성관의 소유자였다고 하여, 사라하고든 애비게일하고든 동성연애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한다. [14] 이런 때는 보통 후계자나 왕실의 종친이 섭정을 하지만 마땅하게 섭정을 세울 인물이 없었다. 부군 덴마크의 조지는 이미 사망했고, 스튜어트 왕조는 씨가 말라 앤 여왕이 유일한 왕족이었으며, 설상가상으로 후계자인 팔츠의 조피는 바다 건너 독일 하노버에 살고 있는 데다가 여왕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80대의 노인이었다. [15] 그가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외된 건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앤 여왕 시기에도 토리당에서는 제임스의 왕위 승계를 주장했으나 영국 국교회로의 개종이 조건이었다. 제임스가 이를 거부하자 토리당에서도 미련을 버렸다. [16] 구() 스코틀랜드 군대 [17] 의회제는 중세의 등족 회의로부터 비롯되어 오랜 세월에 걸쳐 관행을 쌓음으로써 국왕의 거부권을 소멸시키고 내각의 지위와 권한을 확립하였다. # [18] 비만으로 인해 고혈압, 당뇨병, 통풍, 고지혈증을 앓았다고 한다. 사망 원인도 이들 질환의 합병증으로 인한 뇌졸중이었다. [19] 항인지질 항체가 태반의 인지질 항원과 결합하여 태반 성장을 억제하고 태아와 임부를 연결하는 태반 혈관에 혈전증이 생겨 임부로부터 태아에게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연 유산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기 쉽다. [20] 해당 작위는 하급 기사인 Knight Bachelor였다. 이는 그녀의 재위 4년 째인 1705년의 일이었다. [21] 빅토리아 여왕을 '빅토리아 1세'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