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8:13

막 베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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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매체에서

1. 개요

중세 게일어: Mac Bethad (막 베하드)
스코틀랜드 게일어: MacBheatha (막바허)
영어: Macbeth (맥베스)

재위: 1040년 8월 14일 ~ 1057년 8월 15일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왕. 핀들라크 막 루어드리(Findláech mac Ruaidrí)의 아들로, 풀네임은 막 베하드 막 핀들라크(Mac Bethad mac Findláech).[1] 한국에서는 영어식 이름인 맥베스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1033년 말 콜룸 2세가 사망하자, 외손자 돈카드 1세(인자한 던컨, Gracious Duncan)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막 베하드는 일단 굴복했으나, 그 자신은 외가 쪽으로 말 콜룸 2세의 손자였으며, 아내는 1003년에 말 콜룸 2세와 싸우다 죽은 케네스 4세의 손녀 그루오크[2]라서 혈통으로만 놓고 보면 돈카드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런 막 베하드에게 아내 그루오크가 끊임없이 복수심을 불어넣었고, 사람이 아닌 존재도 그를 부추겼다고 한다. 어느 날 맥베스의 꿈에 체격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 명의 여인[3]이 나타나 그를 크로마티의 호족이자 머레이의 호족,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돈카드 왕이 앞의 두 작위를 내리자, 세 번째의 실현, 즉 왕위 등극을 노리고 칼을 잡게 된 것이다.[4]

1039년, 막 베하드는 엘진 근방의 보스고완, 혹은 스미스 하우스라는 곳에서 돈카드 왕을 습격하여 살해했다. 왕위에 오른 맥베스는 폭군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의지가 굳고 정의롭고 공평한 군주였다는 평가도 있다. 막 베하드의 성미가 거칠어지고 신하들을 박대한 것은, 돈카드의 장남 말 콜룸이 잉글랜드의 노섬벌랜드에 머물면서 스코틀랜드 내의 돈카드 파를 재건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파이프의 호족 맥더프가 막 베하드의 위협을 견디다 못해 스코틀랜드 궁정에서 도망친 뒤 노섬브리아 백작 시워드 에스트리드손(Sigurdr Astrídarsunr)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054년 스코틀랜드에 노섬벌랜드의 시워드와 스트랏 클럿의 말 콜룸 연합군이 쳐들어갔다. 막 베하드는 던시네인 근방에서 패배한 뒤 1056년에 럼페넌에서 살해당했다. 실제 역사의 막 베하드는 돈카드의 아들 말 콜룸과의 다툼에서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이야기한 스트랏 클럿의 왕 말 콜룸과 노섬벌랜드 백작 시워드의 연합군에게 살해당했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에서 두 맬컴을 혼동하여[5] 맥베스가 맬컴 3세에게 패배한 것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돈카드의 아들인 말 콜룸이 곧바로 스코틀랜드 왕인 말 콜룸 3세로 즉위하지는 못했다. 막 베하드의 의붓아들[6] 룰라크가 왕좌에 앉았고, 말 콜룸은 수 개월 후 그를 살해하고서야 왕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막 베하드의 지지세력도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룰라크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자손들은 1130년까지 세력을 보유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때문에 흔히 '막나가는 폭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1054년 잉글랜드의 침공을 막아내는 등 군사적인 재능도 있었다.

오래된 연대기에는 뱅코나 그 아들 플리언스같은 내용이 없기 때문에 이런 전설은 스튜어트 왕조의 윤색으로 보인다.

3. 매체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는 이 인물의 생애를 다룬 것이다. 줄거리는 역사와 비슷하다.

[1] '막 베하드'는 '베하드의 아들'같은 게일어 부칭이 아니다. 이름이 부칭과 비슷한 형태가 된 이유에 대한 가설이 몇 가지 있다. [2] 그루오크는 던컨에게 복수를 꾀하다 치명상을 입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 밖의 다른 일로도 여러 차례 복수를 꾀했기 때문에 역사상 가장 잔혹한 여인으로 불리게 된다. [3] 켈트 신화의 바이브 카허나 북유럽 신화의 노른이 연상되는 전설이다. [4] 당시 막 베하드의 직위였던 머레이 백작은 스코틀랜드 왕과 거의 동급으로 높은 지위였다. 크누트 대왕에게 스코틀랜드 왕과는 따로 신하를 칭했을 정도다. [5] 혹은 각색하여 [6] 즉, 아내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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