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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게일어: Eochaid mac Rhun (오하드 막 룬)
영어: Hector (헥터)
(?~889? 890?, 재위:878~889)
1. 개요
지금의 스코틀랜드 서남부 지방에 있던 어스트라드클라이드 왕국의 국왕이자 스코틀랜드 왕국의 전신인 픽트 왕국의 국왕이다. 재위 기간이 겹치는 기리크 막 둥갈 왕과의 관계가 주목받는다.2. 통치
그의 아버지 룬 압 아르트갈은 선대 왕 아르트갈이 870년에 아일랜드 더블린 왕국의 바이킹 아믈리브에게 대패당한 후 픽트 왕국의 카우산틴 1세의 사주로 암살당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룬의 아내, 오하드의 어머니는 키나드 1세의 딸이었다. 878년 그의 외삼촌 아드 막 키나다가 자신의 동료, 많은 기록에 의하면 기리크 막 둥갈에게 암살당하면서 픽트 국왕으로도 재위하게 되었다. 그의 치세에 어스트라드클라이드 왕국, 혹은 어스트라드클라이드와 픽트 두 왕국에 번영기가 찾아왔다고 하는데 픽트의 번영기를 이끌었다는 기리크의 기록과 일정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어스트라드클라이드는 바이킹으로 인한 노섬브리아와 컴브리아 지방의 정치적 혼란을 이용해 남진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기리크와 같은 시기에 행적이 묘연해지는데, 성 키리쿠스 축일의 일식으로 공동 통치하던 두 사람이 같이 퇴위당했다거나 통상적으로 픽트 왕국 내에서 오하드보다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심지어 오하드를 종속 관계에 두고 있었다는 설까지 있는 기리크의 사망이 오하드도 퇴위시키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3. 기리크 왕과의 관계
여러 기록에서 기리크 왕과 치세 기간이 겹치고, 심지어 아예 아드 왕의 후임이 바로 돔날 2세라고 기록한 문서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역사학자들이 둘의 관계를 파악하려고 시도했다. 키나드 1세에 대한 연구 결과 중 픽트족에게 모계상속 문화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기리크는 일반적으로 알핀 가와의 연관을 찾기 힘든 반면 오하드는 어머니가 키나드 1세에 딸이므로 그가 훨씬 픽트 왕위 계승권이 높았을 것임에도 스코틀랜드 역사가들은 기리크 왕에 훨씬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근대의 역사가 존 라이스 경은 기리크는 왕족의 혈연이 아니었으며, 어스트라드클라이드에서 들어온 브리튼인인 오하드를 이용해서 권력을 누린 픽트 실권자로 추정했다. 윌리엄 스킨은 기리크의 아버지 둥갈의 이름을 오하드의 할아버지 디프날과 연관지어 기리크와 오하드가 삼촌-조카 사이였을 것이라는 설을 냈다. 반면 현대 역사가인 아치발드 던컨은 사실 기리크가 혼자 픽트 국왕으로 재위했으며, 그가 오하드의 후견인이었다는 기록은 양쪽의 라틴어 표기의 오류[1] 주장했다. 알프레드 스미스는 아예 그가 돔날 1세의 아들이자 키나드 1세의 조카라는 설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실 기리크와 오하드는 공동 통치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기리크는 픽트 왕국을, 오하드는 어스트라드클라이드 왕국을 같은 시기에 각자 지배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벤자민 허드슨은 그가 알핀 가가 아닌 다른 소왕국의 왕족 혈통이며 기리크의 형제인 알려지지 않은 왕 카우산틴의 존재를 주장했다. 지금도 기리크와 오하드 간의 관계는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으며, 많은 연구 중에 있다.
[1]
수호자는 라틴어로 Alumpnus, 그냥 삼촌은 라틴어로 Auunclu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