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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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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1997年 Asia 金融 危機
1997 Asian financial crisis
<nopad> 파일: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png
<colbgcolor=#bc002d> 발생 국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
시기 1997년 ~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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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1997년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전반에 걸쳐 생긴 금융위기다. 1997년 7월, 태국 정부가 태국 바트 미국 달러 사이의 고정환율제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태국 바트의 가치가 하락했고 이로 인해 태국에서는 똠얌꿍 위기(วิกฤตต้มยำกุ้ง)라고 불리는 금융위기가 7월 2일 발생했는데 그 여파가 주위 국가로 번지면서 위기가 악화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외에도 인도네시아가 크게 위기가 찾아왔고 홍콩,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에도 큰 충격이 있었으며 대만,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 일본, 중국도 피해를 입었다.

2. 배경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1990년대에는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투자로 인한 해외 자본이 몰리면서 많은 국가들이 빠르게 성장을 하고 있었다. 특히,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은 연간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약 10%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차츰 경상수지 적자를 겪었으며 정부에서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기 위해 외채를 늘려가는 선택을 하게된다. 그러다, 중국 위안의 화폐 가치 하락, 플라자 합의로 인한 일본 엔의 가치 절상, 반도체 가격 하락 등이 겹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한편, 미국 정부는 경기 불황이 끝나가면서 인플레이션이 생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금리를 올리면서 달러의 강세로 이어졌다. 이와 더불어 금융위기에 간접적인 원인으로 홍콩 반환을 꼽는 학자들도 존재한다. 당시 아시아의 경제 허브 역할을 하던 홍콩이 영국으로부터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는 재벌들의 심각한 정경유착이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3. 전개

3.1. 정부

외환위기가 찾아오자 각 국에 대출을 해주던 기관들은 패닉에 빠져 자금을 빠르게 회수하기 시작했고 이는 회사들에 대규모로 부도가 발생했고 이에 투자자들 또한 투자금을 빼내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중앙은행들은 이에 대응해 금리를 올렸고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고정환율제를 유지할만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자 고정환율제를 버리게 된다. 결국, 이는 자국 화폐 가치의 절상으로 이어졌고 환율이 높아지게 된다.

3.2. 국제통화기금

국제통화기금(IMF)은 금융위기로부터 구제하고 대규모 디폴트 사태를 막기위해 각 국에 개입하게 되었다. IMF는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 개혁과 정부지출을 줄이고 부실한 금융기관들을 폐쇄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높은 금리로 정책을 변환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금융위기 완화가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다소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했고 이로 인해 각국 정부와의 마찰이 존재했고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4. 영향

4.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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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기업들의 심각한 부채 상황과 은행들의 대규모 불량 채권으로 인해 위기를 맞이했고 결국 한보를 시작으로 대규모 부도사태를 맞이하게 되면서 1997년 외환 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문민정부는 IMF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였고 구제금융을 받아내면서 상황의 안정화를 도모했다. 금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경제위기를 벗어났으나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4.2. 말레이시아

태국 바트의 가치 하락 이후로 투기자들은 말레이시아 링깃를 거래하기 시작했고 익일물 금리가 8%에서 40%로 빠르게 상승했다. 결국 링깃의 가치는 절반으로 하락했다. 말레이시아는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강력한 자본 통제와 고정환율제로 위기 타파를 도모했고 마하티르 빈 모하맛 총리는 투기를 금지하고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거부했다. 빈 모사함 총리는 조지 소로스 등을 비롯한 여러 투자자들이 자국 화폐 투기를 한다며 비난을 했었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오랫동안 경제 발전을 통해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났지만 타국에 비해서 비교적 느리게 위기로부터 벗어났다.

4.3. 몽골

몽골은 1996년에 수차례 발생한 자연재해와 구리 가격 상승으로 인해 경제가 침체되어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를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의 여파와 함께 이중고로 받았다. 몽골은 1997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며 국제사회로부터 3억 달러의 지원을 받았다.

4.4. 미국

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는 아니었으나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도 타격을 입었다.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가 악화되고 주변국으로 퍼지면서 이에 대한 충격과 불안감으로 인해 1997년 10월 27일에는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가 7.2%나 하락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를 완전히 침체시킬만한 영향으로 이어지진 않았고 경제성장률도 4.5%를 기록했다.

4.5.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 침체가 왔으나 싱가포르 정부가 나서서 싱가포르 달러의 완만하게 가치 절상을 20%까지 허용했고 경제 연착륙에 성공하면서 금융위기의 여파를 빠르게 벗어났다.

4.6.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적은 인플레이션과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초반에 금융위기의 여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싶었으나 태국 바트가 무너지면서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 루피아의 환율을 8%~12%로 조정했고 결국 루피아의 화폐 가치가 절상되어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되었다. 특히, 9월에는 가치가 최저로 내려갔으며 무디스는 인도네시아의 장기 차입금을 정크본드로 분류하게 된다. 금융위기 초반에 인도네시아의 회사들은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대출을 받고 있었는데 초반에는 루피아가 달러에 비해 강세가 이어졌기 때문에 부채가 줄어들어드는 효과를 보았나 이후 루피아가 빠르게 약화되자 대출을 받은 회사들의 상황도 빠르게 악화됐다. 금융위기 전에는 1달러당 2600 루피아였던 환율은 약 1년후 1998년 6월에 1달러당 14000 루피아로 5~6배 정도 상승했다.

수하르토 정부는 중앙은행인 인도네시아 은행의 소에드랏자드 지완다노 은행장을 해임시키며 위기를 모면하려고 시도했으나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5월에 1998년 5월 인도네시아 인종 폭동이 일어나면서 수하르토는 하야했다.

4.7. 일본

일본은 일본 엔화의 가치 상승과 주변국들의 가치 절상된 화폐들로 인해 경제적인 압박을 받았다. 결국, 1997년에는 경제성장률이 5%에서 1.6%로 빠르게 하락했으며 엔화 가치 상승으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한 일본 회사들은 부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1998년에는 일본 정부가 직접 은행의 부도를 막기 위해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한편, 일본은 아시아 통화 기금 설립을 제안했으나 미국에서 이를 거부했고 중국 또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사실상 안건은 폐기되었고 대신에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300억 달러 상당의 지원을 했다.

4.8. 중국

중국은 금융위기 당시 환율을 고정한다는 선택을 했다. 화폐 절상된 타국 회사들과의 경쟁력을 잃어버려 결국 중국도 화폐 절상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으나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1994년에 고정시킨 1달러당 8.3 위안을 유지했다. 특히, 태국과 대한민국과 같이 해외자본이 증권으로 몰리는 반면 중국은 자본운용을 폐쇄적으로 운용하면서 세계와 단절시켰고 이로 인해 영향이 크지 않았다. 중국은 오히려 주변국들에 40억 달러를 지원하면서 지역의 안정화를 꾀했다. 또한, 중국의 화폐가치 유지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빠르게 진정될 수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4.9. 태국

태국은 금융위기의 첫번째 희생자로 가파르게 상승하던 경제 상황이 한순간에 위기를 맞았다. 차왈릿 용짜이윳 태국 총리는 바트의 가치 절상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당시 미국 달러에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던 태국이 이를 유지할만한 외환이 바닥을 드러내자 결국 태국 바트는 가치가 절상되었고 1998년에는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졌다. 회사들은 경제 위기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태국의 주식시장은 75% 가량 하락했고 당시 태국에서 가장 큰 회사였던 파이낸스 원이 부도하게 됐다. 태국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고 2001년부터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고 2003년이 되어서야 태국은 이를 다 갚아낼 수 있었다.

4.10. 필리핀

필리핀은 태국으로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정부가 환율 시장에 개입했으나 필리핀 페소의 가치 하락을 막지 못했고 1달러당 26페소였던 환율이 1998년에는 1달러당 46.5 페소로 2001년에는 1달러당 53페소로 가치가 절반 이하로 하락했다.

2001년, 경제적으로는 안정화가 시작되었으나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스캔들로 인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맞이하고 탄핵 위기까지 갔고 결국 하야했다. 이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가 집권하면서 상황이 나아졌고 2007년에는 경제성장률을 7%를 찍으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4.11. 홍콩

홍콩은 1983년부터 미국 달러와 고정환율제를 유지해왔으나 홍콩의 인플레이션이 미국의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높은 상태가 수년 간 이어지자 홍콩 화폐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고 투기자들에 의해 공격을 받아 결국 경제적인 압박으로 이어졌다. 홍콩 정부는 화폐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10억 달러를 투입했고 방어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빠르게 나빠졌고 10월 20일부터 약 사흘간 항셍지수가 23% 하락했다.

홍콩 금융관리국과 도널드 창은 투기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150억 달러 어치의 홍콩 회사 주식을 사들이면서 방어에 성공했다. 이후 1999년에 정부는 이때 사들인 주식을 팔면서 40억 달러의 이익을 기록했다.

5. 이후

투자자들은 개발도상국에 투자를 하는 것을 이전처럼 활발하게 하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들은 IMF의 조치에 대한 비판이 반서방 정서로 이어졌고 특히 조지 소로스 등과 같은 투자자들에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워싱턴 합의에 대한 불신이 반세계화의 시작이 되었고 민족주의적인 정서도 강화되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정부의 약화를 틈타 이슬람 분리주의자들과 독립주의자들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던 경제부문도 화교들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한민국, 일본, 홍콩에서는 자살율이 이 여파로 인해 크게 증가했으며 약 10,400명이 당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범아시아 통화 스와프를 시행했다.

중국은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부채를 대량으로 사들였고 이 시기에 미국에 들어간 대량의 자본은 결국 미국의 주식과 주택시장의 버블로 이어졌고 대침체에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6. 관련 문서

7.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