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5 10:26:55

실향민/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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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문제로 북한을 선택하거나, 남북경계의 변동, 그리고 납북자 혹은 월북 등으로 인해 북한에서도 실향민이 생겼다.

1. 개별 문서가 있는 인물
1.1. 서울1.2. 경기, 인천1.3. 부산, 울산, 경남1.4. 대구, 경북1.5. 충북1.6. 충남1.7. 전북1.8. 전남1.9. 강원1.10. 제주
2. 그 외

1. 개별 문서가 있는 인물

1.1. 서울

1.2. 경기, 인천

1.3. 부산, 울산, 경남

1.4. 대구, 경북

1.5. 충북

1.6. 충남

1.7. 전북

1.8. 전남

1.9. 강원

  • 심영(강원 철원군) : 고향 철원군이 북한 지역이었을때 월북했으나, 고향이 남한땅이 되어 실향민이 됨
  • 이태준(강원 철원군) : 고향 철원군이 북한 지역이었을때 월북했으나, 고향이 남한땅이 되어 실향민이 됨
  • 최용달(강원 양양군) : 고향 양양군이 북한 지역이었을때 월북했으나, 고향이 남한땅이 되어 실향민이 됨
  • 최태규(강원 정선군)

1.10. 제주

2. 그 외

6.25 전쟁 와중 전선이 요동치는 과정에서 삼팔선 이북의 수복지구에 살고 있던 주민 상당수는 후퇴하는 공산군에 의해 강제로 납북당해 실향민이 되었다. 납북을 피해 용케도 살아남는데 성공해도 자신의 고향이 비무장지대 민간인 출입통제선 이북에 위치하는 바람에 민간인 거주가 금지되어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농지개혁의 경우 민통선 이남 지역에서의 전쟁 이전 월남했던 사람이 다시 돌아와 경작 의사를 밝힌 경우를 제외하면 북조선인민위원회 치하에서 실시된 토지개혁 결과를 그대로 인정해 줌으로써 대부분 해결되었지만 민통선 인근 정착촌의 토지 소유권 문제는 경작자에게 소유권이나 경작권을 준 뒤 그 판매나 임대차 수입으로 보상하기로 해결되었다.

전쟁 이후에도 북한 당국에 의해 납북당해 강제로 이산가족 겸 실향민이 된 경우도 많다. 재일교포 북송으로 실향민이 된 사례가 있는데 당시 재일교포의 대다수가 일본과 가까운 남한 지역에 본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탈북에 성공한 운 좋은 일부를 제외한 절대다수가 본적인 남한으로도, 북송 이전 살던 일본으로도 돌아가지 못했다.

북한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도 상당수가 고향이 남한이라 실향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