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바야 (인도네시아) | ||
수라바야시 (Kota Surabay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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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인도네시아 | |||
주 | 동부자바주 | ||||
면적 | 326.81km2 | ||||
인구 | 3,000,076명 (2023년) | ||||
설치근거 |
법령 1950년 제12호 Undang-Undang No.12 Tahun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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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행정구역 | 31면(Kecamatan) 163촌(Desa/Kelurahan) | ||||
시간대 | WIB (서부 인도네시아 시간대 : Waktu Indonesia Barat) | ||||
한국과의 시차 | -2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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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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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바 섬 동부에 위치한 도시. 동부자바의 주도(州都)이다. 별칭은 '영웅의 도시'(Kota Pahlawan).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과정에 영국군과 인도네시아 독립군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수라바야 전투(1945년 10월–11월)를 기려 영웅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인구는 약 300만 명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권으로 확대하면 인구가 1,200만 명에 달한다. 자카르타와 반대편에 있는 위치나 도시 규모나, 한국으로 치면 부산광역시 비슷한 도시이며, 실제로 부산의 자매도시이다.
일상생활 언어로는 자바어가 많이 쓰이지만 사무언어는 공용어인 인도네시아어가 많이 쓰인다. 이 지역의 화교들도 수마트라섬이나 칼리만탄섬의 화교들과 다르게 복건어를 쓰지 않고 언어적으로 많이 동화되어 자바어를 많이 쓴다.
2. 지리
2.1. 기후
자카르타나 반둥 등 서부 도시들과 달리 수라바야는 열대 사바나 기후(Aw)를 띤다. 대략 수라바야 인근부터 자바 극동부의 사바나 기후대가 시작된다. 계절은 12~5월의 우기와 6~11월의 건기로 나뉜다. 우기에 강수가 집중되는 것은 자카르타 등 몬순 기후대와 같지만, 건기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아주 건조한 날씨가 된다. 전반적으로 습도가 우기에는 65~70%, 건기에는 55~60% 정도로 자카르타에 비해 훨씬 낮아 건기에는 쾌적하다.자카르타나 반둥에 비해 더운 편이다. 특히 우기에 평균 기온이 조금 떨어지는 자카르타와 달리 수라바야는 우기에도 기온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2.2. 인구
인구 구성이 복합적인 자카르타, 순다인이 대다수인 반둥과 달리, 그리고 스마랑과 유사하게 수라바야 인구의 대부분(약 83.7%)은 자바인이다. 7.5%의 마두라인, 7.3%의 화인도 유의미한 소수 민족 집단을 구성한다.2017년의 인도네시아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수라바야 인구의 약 80.1%가 무슬림, 9.1%가 개신교도, 9.0%가 가톨릭, 1.5% 정도가 불교도였다. 즉, 상기한 민족 구성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의 자바인도 무슬림이 아닌 기독교도였다고 볼 수 있다.
수라바야의 자바인들은 동부 방언군에 속하는 자바어의 수라바야 방언을 사용한다. 경어법 체계가 매우 복잡한 표준 자바어(중부 마타람 방언)와 달리, 수라바야 자바어는 경어법이 유럽어 수준에 가깝게 간략화되어 있다. 수라바야 자바인들의 문화 역시 중부와 달리 보다 수평적, 개방적인 편이다.
3. 역사
1037년, 자바 동부를 통합한 카후리판 왕국의 아이를랑가 왕이 브란타스강에 댐을 짓고 후중갈루(Hujung Galuh)라는 항구를 개발했다는 비문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서 후중갈루는 오늘날의 수라바야 또는 인근에 속하는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일부 지역 연대기 등 기록에 따르면, 1275년 싱하사리 왕국의 크르타나가라 왕이 수라바야 지역에 도시를 창건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15세기까지 수라바야 지역을 상세하게 다루는 사료는 찾기 어렵다.수라바야가 본격적으로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6세기로, 마자파힛 제국이 말기에 이르러 붕괴되면서 속령들이 제각기 독립할 무렵이었다. 당시 자바 동부에서 주요 항구 중 하나였던 수라바야의 영주는 자바에서 비교적 빠르게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마자파힛이 붕괴한 후 드막 술탄국이 16세기 전반 수라바야를 지배하였지만, 드막도 16세기 중반에 붕괴되자 수라바야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 세력 수라바야 공국이 등장하여 자바 동부의 여러 도시 국가들을 느슨하게 결속시키는 구심점이 되었다.
수라바야 공국은 교역에서 탄탄한 입지를 갖추고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자바 동부의 주요 세력으로서 경제적·문화적으로 번영하였지만, 자바 중부를 새로이 통합한 마타람 술탄국이 16세기 말부터 수라바야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마타람의 정복군주 술탄 아궁은 마침내 11년에 걸친 장기전 끝에 1625년 수라바야 공국을 굴복시키고 마타람에 합병하였다.
그러나 수라바야는 마타람 술탄국에 병합된 후에도 반독립적 세력을 유지하였고, 17세기 마타람의 정치에서 수라바야 세력이 여러 번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18세기 초에는 마타람 중앙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킨 적도 있지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연합한 마타람 중앙군은 이를 진압했다. 1740년대 자바 전쟁으로 자바가 혼란스러울 때 수라바야가 반란군의 거점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자바 전쟁의 결과로 마타람 술탄국은 수라바야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할양했고, 18세기 중반 이후 정치적으로 안정화된 수라바야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자바 동부 거점 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네덜란드인들은 지역에서 자바인 및 화인 유력자들과 제휴하여 통치를 수행하며, 대규모 항만 시설과 해군 시설, 군수 공장 등을 건설했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1871년 수라바야는 상하이처럼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없앴다.
수라바야는 자바 서부의 바타비아, 중부의 스마랑과 함께 식민지 시대 자바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으며, 18세기와 19세기 내내 바타비아조차 능가하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최대 도시였다. 1900년까지만 해도 수라바야는 약 14만 7천 명의 인구를 가진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제1도시였으며, 당시 바타비아의 인구는 11만 6천 정도였다. 바타비아가 수라바야를 앞지르고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제1도시가 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었다.
19세기 후반 무렵부터는 수라바야도 차츰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878년에는 최초로 수라바야를 지나는 철도 노선이 개통되었는데, 수라바야와 파수루안을 잇는 115km 길이의 노선이었다. 1886년 수라바야 시내에도 증기 동력 노면차( 트램)가 도입되었다. 1923년에는 노면전차(전동 트램)도 도입되었다. 1913년에는 오늘날 아이를랑가 대학교의 전신이 되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의과대학(Nederlandsch-Indische Artsen School, NIAS)이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두 번째 의대로 수라바야에 설치되었다. 수라바야에는 1928년 네덜란드령 동인도 최초의 치대도 설치되었다.
태평양 전쟁 과정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일본 제국에 점령되어 일본령 동인도가 되었으나, 일본 항복 직후 인도네시아 독립파(인도네시아 공화국)가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과 네덜란드 식민 세력에 대해 무력으로 맞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발발하였다. 자바 동부의 주요 항구이자 주요 공군 기지를 보유한 수라바야는 특히 독립전쟁 초기에 독립군과 영국군이 격렬하게 대립한 곳이었다. 1945년 말에 벌어진 수라바야 전투에서 독립군 12만 명은 처절한 저항 끝에 패배하였으나, 그 과정은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영웅적 항거로 추모되고 있다. 수라바야 전투에서 독립군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11월 10일은 '영웅의 날'(Hari Pahlawan)로 기념되고 있다. 수라바야 소재 명문 공대 11월 10일 공과대학교의 이름도 영웅의 날을 기린 것이다.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수라바야는 자바 동부의 경제 중심지인 인도네시아의 제2도시로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 왔다. 인도네시아에서 수라바야의 경제적 중요도는 반둥, 스마랑, 마카사르, 메단 등 자카르타를 제외한 다른 주요 도시들보다 높다. 2007년 인도네시아 증권 거래소가 인도네시아의 단일 증권 거래소로 출범하기 전, 자카르타 외에 유일하게 수라바야에서도 독립적인 증권 거래소를 운영했을 정도였다.
4. 경제
수라바야는 자바 동부의 경제 중심지로, 자바 동부나 인근의 마두라섬, 드물게 발리 등지에서 제조업, 농업, 광업 등의 사업을 벌이는 경우 수라바야를 거점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자바 동부의 물류 중심이기도 하며, 수라바야의 탄중페락(Tanjung Perak) 항구는 물동량이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많다. 또한 여러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조선업 및 해양 기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수라바야시는 인도네시아의 도시 가운데 자카르타를 제외하면 비교 대상이 없는 월등한 지역총생산(GRDP)을 보유하고 있다. 2019년 인도네시아 통계청 집계 기준 수라바야의 명목 GRDP는 $411억이었고, 1인당 GRDP는 $14,180(PPP $46,610, 당시 인도네시아 1인당 GDP의 3배 이상)으로 인도네시아의 인구 100만 이상인 도시 가운데[1] 자카르타 다음으로 2위에 해당했다.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비교하면, 동 시기인 2019년 베트남 제2도시 하노이의 명목 GRDP가 $396억으로 수라바야보다 조금 작았고, 제1도시 호찌민 시는 $573억으로 수라바야보다 상당히 컸다.
수라바야시는 인구 약 1000만을 보유한[2]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권인 수라바야 광역권의 중심지이며, 2019년 기준 수라바야 광역권의 명목 GRDP 규모는 $762억(1인당 $7,710)이었다. 수라바야 광역권의 경제 규모는 미얀마, 스리랑카, 불가리아, 가나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5. 관광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 수라바야는 볼 것이 많은 행선지는 아니다. 작은 자카르타 느낌으로, 도시나 도시 인근을 목적지로 하는 관광이라면 차라리 반둥이나 스마랑이 더 볼 것이 많다. 수라바야는 자바 동부의 화산이나 소순다 열도, 마두라섬 역사 지구 등을 가기 전에 들르는 중간 기착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수라바야 안의 관광지를 찾는다면 Cheng Hoo 모스크, 수라바야 차이나타운, 삼푸르나(Sampoerna) 담배 박물관, 수라바야 구시가지(kota tua), Sanggar Agung 불교 사원 정도가 둘러볼 만한 곳이다. 그 밖에 인도네시아의 다른 해안 대도시처럼 쇼핑몰이나 테마파크, 워터파크 등 일반 위락시설도 있다.
6. 교육
수라바야는 동부자바의 교육 중심지로, 명문으로 인정받는 아이를랑가 대학교와 11월 10일 공과대학교가 소재한다.7. 교통
7.1. 항공
주안다 국제공항이 있다. 이 공항은 IATA코드는 수라바야의 도시코드를 따라서 SUB를 사용하지만, 행정구역 상으로는 수라바야가 아니라 시도아르조 군에 있다.7.2. 철도
2021년 기준 수라바야와 인근 광역권을 잇는 5개 노선, 23개 역 규모의 통근열차 노선이 운영되고 있다. 지하철은 아직 없지만, 개념 설계안들은 논의되고 있다. 경전철 도입에 대해서도 논의가 활발한 편이며, 시장과 지역 사회의 의지만 있으면 비교적 근시일 내 도입될 수도 있다.또한, 총연장 약:730km의 자카르타-수라바야간 고속철도(현재 자카르타-반둥은 1단계구간)를 만들 예정이다.
7.3. 버스
인도네시아에서 웬만한 대도시를 포함한 20곳 이상의 지역에서는 BRT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지만, 2021년 기준 아직 수라바야는 BRT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대신 체계화된 시내버스 수로보요 버스(Suroboyo Bus)가 있다. 수라바야에서도 시내 교통 혼잡을 줄이는 방편으로 BRT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시외버스를 이용하면 수라바야에서 동부자바 각지로 이동할 수 있다. 특히 수라바야와 마두라섬을 잇는 수라마두(Suramadu) 대교가 놓여 있으므로 마두라섬 동부까지 버스로 이동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