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4 19:42:10

카후리판 왕국

1. 개요2. 역사

1. 개요

서기 1019년 세워지고 1045년 몰락한 왕조.

2. 역사

한때 보로부두르를 세우기까지 하면서 패권을 누렸던 마타람 왕국은 시간이 지나며 쇠락했다. 특히 저멀리 수마트라섬 스리위자야 왕국의 집중공격을 받으면서 조금씩 약화되었던 것. 그러던 중 스리위자야 왕국이 마타람 왕국의 신하들 중 하나였던 우라와리를 지원해 반란을 선동했고, 결국 우라와리가 마타람 왕국의 수도 와투갈루를 공격해 불태우면서 마타람 왕국은 멸망하고야 만다.

그와중에 와투갈루의 대재앙에서 피신한 왕족이 단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다르마왕사 왕의 조카이자 발리의 왕자인 아이를랑가(Airlangga, 990-1049)였다. 아이를랑가는 3년 후인 1019년에 와해된 마타람 왕국의 호족 세력 일부를 규합하여 카후리판 왕국(Kerajaan Kahuripan)을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 스리위자야가 남인도의 촐라 제국과의 전쟁으로 약화되어 자바에 간섭하기 어려워진 틈을 타 아이를랑가 왕은 마타람의 고토로 진격, 주변 군소 세력을 정복해 나갔으며 1032년에는 반역자 우라와리와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계속된 아이를랑가의 원정으로 카후리판 왕국은 마타람의 기존 강역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동부 자바 전역을 석권하기에 이르렀다.[1] 아이를랑가는 맏딸 상그라마위자야 공주(Sanggramawijaya)에게 왕위를 넘겨주려 시도했으나,[2] 그녀가 출가해 승려가 되자 1045년 어린 두 왕자에게 왕국을 둘로 쪼개 나누어주곤 본인 역시 속세를 떠나 수도 생활으로 들어갔다.

이후 카후리판 왕국은 동쪽은 장갈라 왕국, 서쪽은 크디리 왕국으로 나뉘어졌다.


[1] 아이를랑가 왕은 문학과 예술 발전에도 신경을 썼다. 1030년대 초 궁정 시인 음푸 칸와(Mpu Kanwa)는 아르주나의 이야기를 다룬 《아르주나위와하》(Kakawin Arjunawiwaha)를 아이를랑가 왕의 후원으로 완성하였는데, 작품의 주인공 아르주나는 아이를랑가 왕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2] 아이를랑가의 왕비 다르마프라사도퉁가데위(Dharmaprasadottungadewi)는 촐라 제국의 침공에서 도피한 스리위자야 왕국의 공주, 혹은 적어도 왕과 가까운 왕족이었다. 1035년 아이를랑가 왕은 '스리위자야스라마'(Srivijayasrama)라는 불교 사원을 지어 다르마프라사도퉁가데위 왕비에게 헌정했는데, 이 역시 왕비가 스리위자야 왕국의 고위 왕족이라는 설에 대한 간접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