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e10510><tablebgcolor=#e10510> |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 역대 컨스트럭터 챔피언 |
[1]
10라운드 이탈리아 GP 연습 주행 도중 사고로 사망
[2]
14라운드 이탈리아 GP 레이스 도중 사고로 사망
[3]
5라운드 벨기에 GP에서 예선 도중 사고로 사망.
[4]
3라운드 산 마리노 GP 레이스 도중 충돌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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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 GP 포뮬러 1 팀 Brawn GP Formula 1 Team |
|
<colbgcolor=#fff> 본사 | Brawn GP Limited |
타이틀 스폰서 | - |
국적 | (영국) |
본부 | 영국 블랙클리 |
팀 수장 | 로스 브런 |
역사 |
티렐 레이싱 (1968~1998) 브리티시 아메리칸 레이싱[BAR] (1999) 럭키 스크라이크 BAR 혼다 (2000~2005) 혼다 레이싱 F1 팀 (2006~2008) 브런 GP 포뮬러 1 팀 (2009)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팀 (2010~) |
드라이버 |
22.
젠슨 버튼 23. 루벤스 바리첼로 |
섀시 | BGP 001 |
우승 기록 | |
드라이버 챔피언 (V1) |
2009 |
컨스트럭터 챔피언 (V1) |
2009 |
1. 소개
모나코 GP에서 폴 투 윈으로 우승한 젠슨 버튼의 모습 |
젠슨의 뒤에 있는 차가 BGP-001이라는 섀시명을 가진 팀의 경주차이다. 당시에는 스폰서가 없어서[1] 누가 보면 마치 테스트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 당시 F1에서 가장 빠른 차였다. 일부에선 덕지덕지 붙은 광고판이 없어서 F1카들중 그나마 깔끔하고 보기 좋은 차라고 평가한다.
철수 팀의 섀시를 인수해 스폰서 없이 출전했으나, 데뷔 시즌인 2009년 시즌에 더블 타이틀( 포뮬러 원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 포뮬러 원 월드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모두 따내고 대형 메이커 회사에게 인수되면서 승천하는, F1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써낸 희대의 레전드 팀으로 2009시즌 이후 메르세데스 GP로 인수되었다.
2. 역사
2.1. 창단
사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BAR(British American Racing) 혼다 팀에서 출발한다. F1에서는 그 축적된 기술과 인력이 매우 중요하고 단기간에 이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새 팀을 창단할 때는 밑바닥부터 만들지 않고 스폰서가 기존에 존재하던(주로 쇠퇴 중인) 팀을 사들여 만든다.때문에 브런 GP는 어느날 홀연히 나타나서는 맥라렌, 페라리 등을 압도하며 F1을 정복하고 떠난 그런 팀은 결코 아니다. 브런 GP의 전신은 혼다 레이싱이며, 혼다가 BAR을 인수하여 창단했다. BAR은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가 운영하던 팀이었는데, F1에서 담배 광고가 금지되어서 혼다에 매각되었다.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 F1 최고의 엔진을 만들던 혼다[2]가 버블 경제 붕괴와 회사의 내/외부에서 닥쳐온 위기들로 하여금 F1에서 철수하였다가 2000년에 엔진 공급사로 F1에 돌아왔고, 2004년에는 BAR-혼다가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F1에 담배 광고 규제가 시작되고 혼다는 BAR의 지분 45%를 인수, 2006년에는 나머지 지분까지 인수했다.
그러나 2006년 젠슨 버튼의 1승 이후 변변찮은 성적으로 일관해오다가, 07-08시즌에는 친환경 캠페인이랍시고 2007년에는 새파랗게 도색한 차량에, 2008년에는 새하얀 차체에 지구마크를 뒤덮는 해괴한 리버리를 차를 차에 붙이고 와서 스폰서가 다 떨어져 나갔다. 무엇보다 이 때 혼다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데, 바로 자사의 모토GP 개발 팀인 HRC 소속 엔지니어인 나카모토 슈헤이를 HRD의 기술 감독 자리에 부임시킨 것이다. 물론 나카모토가 HRC에서 바로 F1 프로젝트에 낙하산으로 꽂힌 것은 아니었고, 이미 2000년 부터 혼다 F1 소속 인력이였지만 그가 앉은 자리가 엔진 개발 뿐만 아니라 차량 전체의 개발을 도맡은 총 책임자의 자리라는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그가 대체한 사람은 에어로 전문가인 제프 윌리스. 그가 설계랍시고 만들어 놓은 RA107과 RA108은 에어로 설계가 개판 5분전이였고, 혼다의 컨스트럭터스 챔피언십 순위는 무게 규정 문제로 산마리노 GP를 포함하여 3경기 연속으로 DSQ 및 출전 정지를 당했던 2005년 보다도 밑으로 추락하였으며, 2007 시즌에는 8위, 2008 시즌에는 9위로 대폭 내려가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혼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2000년대 초반 페라리 강점기를 만들었던 로스 브런을 데려온다. 로스 브런은 2000년대 초중반에 F1을 지배한 페라리 군단[3] 라인업의 핵심 멤버였으며, 슈마허가 은퇴한 후 혼다가 적극적으로 영입한 인재였다.
특히나 2009년에는 F1 역사상 가장 큰 규정 변화 중 하나일 것으로 예상되는 변화가 예고되어 있었는데, 에어로 규제와 더불어 KERS의 도입이 그것이였다. 이에 따라 혼다는 2008년 시즌 전체의 걸쳐 인 시즌 개발을 포기, 모든 개발 인력을 2009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또한 2008년 초반 슈퍼 아구리가 철수하면서 남겨진 엔지니어들을 혼다에서도 받아들여 그들 또한 2009년의 설계에 투입 되었다.
문제는 2007년 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2008년 들어서 미국과 전세계를 강타하기 시작하였고, 미국 시장에 매우 의존하고 있는 혼다로서는 F1에 매년 몇천 억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작금의 경제적 상황을 버틴다는 것이 불가능했다.이러한 이유로 혼다는 2008년을 마지막으로 F1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혼다 레이싱 F1 팀은 RA109의 설계를 지휘한 2008년 당시 혼다의 팀장인 로스 브런에게 상징적인 금액인 단돈 1파운드(£)에 팀을 넘기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혼다는 브런과 브래클리의 전 혼다 팀 본부로 하여금 2009 시즌을 끝마칠 수 있도록 1천억이 넘는 돈을 지원해 주었다. 브런의 소유가 된 새로운 팀의 이름은 그렇게 브런 GP가 되었다.
팀의 구색은 갖추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2009 시즌 참여 자체도 엎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섀시는 이전부터 쓰던 버전을 개량해 진작에 완성했지만 정작 섀시에 얹을 엔진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F1에는 2007년 부터 시행된 엔진 개발 동결이 진행 중이였기 때문에 그냥 혼다의 2008년 엔진을 쓰면 되는게 아니었나 싶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F1의 V8 엔진들의 성능이 나뉘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에서 말 했듯 FIA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2006년 후반에 도입된 엔진 스펙으로 10년간 엔진 개발을 동결할 것을 발표하였는데, 문제는 2007년과 2008년 메르세데스와 페라리 등은 "내구성 업그레이드"를 FIA의 허락을 받고 도입했다는 것이였다. 이 "내구성 업그레이드"들은 실질적으로는 성능 업그레이드였으며, 단순 내구성 증가 뿐만 아니라 엔진의 출력 자체도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에 따라 르노, 혼다, 토요타, 코스워스 등의 팀은 V8 성능에 있어 메르세데스와 페라리, 특히 메르세데스에게 뒤쳐지게 되었다. 여기에 맥라렌제 ECU가 도입되었고, 르노 등의 팀이 적응을 못하자 FIA는 2008년 후반 2009년의 새로운 규정에 앞서 뒤처진 엔진 제조사들에게 한시적 개발 동결 해제를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혼다는 이미 2008년 철수를 결심한 상태였고, 당연히 개발 동결 해제고자시고 간에 새로운 엔진을 개발할 돈도 시간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브런이 혼다의 2008년 엔진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였다. 이에 따라 브런 GP에게 엔진을 공급해줄 공급사가 새롭게 필요해졌는데, 브런 GP는 FIA에서 배려를 한 덕분에 메르세데스 엔진을 사용하는 특혜를 얻었다.[4] 비록 메르세데스 엔진이 당시 그리드 최강의 엔진이였지만, 이렇게 급하게 넘겨진 신생 팀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다 때부터 드라이버 라인업을 지키던 젠슨 버튼과 루벤스 바리첼로 역시 당시까진 평가가 신통찮았다. 둘 다 풍부한 경험을 가졌으나, 버튼은 2006년 1승 이후 크게 두드러진 활약이 없었고, 바리첼로는 베테랑이며 페라리에서 슈마허와 함께한 전적이 있었으나, 언제나 슈마허한테 눌리는 2인자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드라이버인 동시에 당시 그리드 내 최고령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 드라이버들은 팀에 끝까지 남아 신의를 지켰고, 그렇게 역사적인 2009 시즌이 시작되었다.
2.2. 2009년의 챔피언이 되다
브런 GP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번째는 더블 덱 디퓨져를 비롯한 엄청난 섀시 성능, 두번째는 KERS를 달지 않은 것, 세번째는 FIA로부터 메르세데스 엔진을 장착할 수 있도록 배려 받은 것이다.
위에서 적었듯 2009년 시즌은 대대적인 에어로 규정 변화를 맞았는데, 이러한 새로운 에어로 규정 중 하나는 차량의 플로어와 디퓨저의 관한 내용이였다. 2009년의 규정상으로 플로어의 플랭크와 레퍼런스 플레인, 플로어에는 앞에서 뒤로 평평해야했으며, 여기에는 어떠한 홈도 있으면 안 되었고, 여기에 더해 차량 뒷 바퀴 중십 축을 기점으로 그 350mm 뒤까지의 차량의 밑에서 보이는 바디워크는 레퍼런스 플레인[5]의 175mm 이상의 높이를 가지면 안되며, 디퓨저의 크기는 높이 175mm, 길이 350mm, 폭 1000mm로 규정되어 있었고, 이 부분과 간섭하는 어떠한 종류의 평면체도 차량 밑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계속되는 선을 그려야 했다. 이는 F1 차량의 다운포스 발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플로어 아래와 디퓨저를 통과하는 공기에 간섭하는 공력장치를 장착하는 것을 막고 디퓨저에서 발생하는 다운포스의 양을 제한하기 위함이였다.
하지만 2008년 혼다에서 근무하던 미네가와 사네유키라는 엔지니어[6]가 규정의 허점을 찾아냈는데, 규정에는 바닥과 수평인 면의 관한 설명은 명시되어 있었으나 레프런스 플레인과 플로어 사이를 연결하는 수직의 트렌지션 구간의 관해서는 명시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미네가와는 여기서 착안하여 트랜지션 구간에 홈을 내서 공기를 통하게 하고, 여기서 빠져나온 공기를 메인 디퓨저 위의 두 번째 디퓨저, 즉 규정에서 명시하는 차량 하부에서 보이지 않는 더블 덱 디퓨저로 내보낸다면 디퓨저의 높이가 실질적으로는 175mm를 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러한 규정 상의 허점은 이미 시즌 시작 전에 더블 덱 디퓨저가 등장할 거란 예고가 있었으며 이미 토요타와 윌리엄스 같은 팀들은 FIA에 적법성 확인까지 받은 상태였음으로, 혼다나 브런 GP만이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니었다. 일설에 따르면 2008년 당시 슈퍼 아구리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들이 알아낸 사실이 슈퍼 아구리가 해체되면서 이들 엔지니어가 다른 F1 팀들로 흩어지자 알려진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KERS를 탑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있었는데, 2008년 당시 혼다는 KERS가 실패작일 경우를 대비하여 KERS를 장착한 RA109K와 그렇지 않은 RA109라는 차량을 따로 개발해 테스트 한 바 있었고, 브런 GP는 자금상의 이유로 KERS를 달 수가 없었기 때문에 RA109K가 아닌 KERS가 없는 RA109를 BGP 001로 쓰게 된다.
더블 덱 디퓨저의 성능은 이미 프리시즌 테스팅에서 드러나고 있었는데, 토요타와 윌리엄스의 차량들은 상당한 페이스를 보여주었고, 특히 만년 하위권이던 토요타가 그러한 페이스를 낸다는 것 만으로 더블 덱 디퓨저의 효과는 입증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브런 GP의 경우 운영 및 자금 상의 이유로 프리시즌 테스팅의 시작 부터 참가하지는 못했는데, 막상 브런 GP가 참여하자 모두의 이목은 엄청난 속도의 BGP-001을 들고온 브런 GP로 집중되었다.
흔히들 더블 덱 디퓨저의 성능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브런 GP의 프런트 스플리터 설계 또한 기발하기는 마찬가지였으며, 혼다가 2008년 시즌 전체와 HRD의 사력을 다해 개발한 RA109의 차량 성능은 굳이 더블 덱 디퓨저가 아니더라도 모든 부분에 걸쳐서 최고라 할만한 수준이였다.
여기에 더해 시즌이 개막하자마자 KERS를 탑재하는 것이 패착이었다는 게 드러났을 땐[7] 이미 서킷에서 BGP-001을 막을 차량이 없었다.
메르세데스 엔진을 얻을 수 있었던 것 또한 크나큰 행운이였는데, 당시 르노 엔진은 개발 동결 일시적 해제 덕분에 출력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출력상 메르세데스를 따라가지는 못했으며, 토요타 또한 그리드 내 출력 꼴지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경쟁자들보다 뒤떨어지고 있었다. 반면 메르세데스의 엔진은 확실히 당대 그리드 최고의 엔진이였으며 젠슨 버튼에 따르면 단순히 출력을 넘어 운전성 자체가 타 팀들보다 현격히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시즌 초반, BGP-001은 7개 레이스 중 6개의 레이스에서 우승을 가져갔으며, 전반기를 완전히 지배하다시피 하였다. 다만 여름 휴가 이후인 후반기부터 브런 GP의 자금 부족으로 인해 업데이트를 거의 하지 못하면서 다른 팀들에게 따라잡히다 못해 추월당하기 시작했으며, 버튼은 심지어 같은 팀메이트인 바리첼로에게 포인트 추격을 당했고, 아드리안 뉴이가 드디어 레드불에 더블 덱 디퓨저를 적용함에 따라 레드불과 페텔에게 점점 포인트를 따라잡혀가게된다. 특히 당해 레드불 RB5는 더블 덱 디퓨저 외에도 아드리안 뉴이가 즐겨 사용하던 배기 블로운 디퓨저가 장착된 차로서, 후반기에는 업데이트 되지 못한 BGP-001을 압도하는 성능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버튼이 초반에 벌어놓은 포인트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어서 벨기에 GP의 리타이어 빼면 모든 레이스에서 최소 1포인트 이상씩을 계속 적립하였기에 브런 GP와 젠슨 버튼은 간발의 차로 2009 시즌의 양대 타이틀을 사수할 수 있었다.
당시 BGP-001은 스폰서가 없어서 하얀색과 형광색의 심플한 리버리를 갖춘 차량이였는데, 레이스가 하나 둘 씩 지날수록 높은 성적 덕에 스폰서가 하나 둘 붙기 시작하더니, 후반부 부터는 버진 갤럭틱, 방코 도 브라질, 이타이파바, 마프레, 캐논 등등의 굵직한 업체가 잠깐 후원을 해주기도 하였다.
3. 만약 혼다가 브런에게 팀을 팔지 않았더라면?
브런 GP는 메르세데스 엔진 덕에 시즌을 이길 수 있었다는 말이 많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로, 메르세데스의 엔진이 2009년 당시 페라리 엔진과 함께 성능이 가장 뛰어난 엔진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당시 실제 레이스 결과는 엔진의 성능보다는 섀시와 에어로 성능에 더욱 큰 영향을 받았고 또 FIA가 성능 하위권 엔진 제조사들을 대상으로 엔진 개발 동결을 해제하여 엔진 성능이 동등한 수준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만약 혼다가 2008년 F1에서 철수하지 않았더라면 혼다도 르노와 같이 엔진 개발 동결이 해제될 예정이었기에 "내구성 업그레이드"로 엔진 성능 격차를 벌렸던 메르세데스를 따라잡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 편으로 메르세데스의 엔진이 성능 자체는 더 좋았지만 RA109는 혼다의 빡빡한 설계가 적용된 엔진에 맞추어 설계된 차량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BGP-001은 메르세데스 엔진을 탑재하게 되면서 엔진 성능이 늘어났지만 차량 중량이 증가하고,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 구성요소의 위치와 형상이 조절되면서 차량의 밸런스도 나빠지는 악영향을 함께 받게 되었다. 이는 RA109와 RA109K의 디자인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인데, 혼다는 2009년의 KERS 도입에 맞춰 다른 팀들과는 상당히 다른 형식의 빡빡한 패키징을 도입할 예정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다가 해당 시즌에 F1에 남아 있었으면 브런 GP가 겪은 자금 문제를 겪지 않고, 따라서 여름 휴가 중에 다양한 업데이트를 적용하면서 브런 GP처럼 시즌 후반에 다른 팀들에 뒤쳐지지 않고 압도적인 성적으로 시즌을 끝내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혼다 측도 RA109의 성능을 알고 있었지만 새 엔진을 개발하거나 시즌 중 팀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할 여력이 없어 F1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4. 이후
그러나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맥라렌과의 관계에 조금씩 뒤틀림이 보이던 엔진 제공업체였던 메르세데스-벤츠가 오랜 구상이었던 독자적 워크스팀 창설의 일환으로, 높은 차체 개발기술을 지니고 자사의 엔진과의 좋은 궁합으로 시즌을 제패한 브런 GP의 지분을 대부분 인수함으로서 상술했듯, 메르세데스 GP라는 이름의 대형팀으로서 재탄생했다.게다가 영국태생으로만 팀을 꾸린 맥라렌에 대응해서인지는 몰라도 독일 태생으로만 팀을 꾸리려던 메르세데스는 각각 맥라렌과 윌리엄스로 간 버튼과 바리첼로 두 드라이버를 대체할 초대 메르세데스 드라이버로 일찌감치 니코 로즈버그를 영입해놓았으며 그의 파트너로는 F1에 복귀한 왕중의 왕, 미하엘 슈마허가 팀 메이트가 되었다.[8]
노련한 7회 F1 챔피언과 실력을 인정받는 베테랑의 매우 안정
[1]
이후에 스폰서가 점점 붙어서 프런트/리어윙에
캐논,
소니 픽처스 같은 광고가 붙기 시작했다.
[2]
아일톤 세나의 맥라렌 전성기 당시 엔진이 혼다였다.
[3]
미하엘 슈마허, 장 토드, 로스 브런, 로리 번.
[4]
당시 규정상 엔진 제조사는 최대 2 팀에게까지만 엔진을 판매할 수 있었고, 메르세데스 엔진은 이미 맥라렌과 포스 인디아가 구매한 상황이었다.
[5]
플랭크 바로 윗부분이다
[6]
일설로는 슈퍼 아구리 출신이였다고 한다.
[7]
이 기술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당시엔 처음이라서 생성 출력 80 마력에 비해 무게가 지나치게 무겁고 다루는 것 또한 힘들었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정도였다고 한다.
[8]
근데 마치 브런 GP의 두 드라이버가 떠나버려서 메르세데스가 드라이버를 구한 것처럼 서술되어 있지만, 상술했듯이 메르세데스는 팀을 명실상부한 독일 대표팀으로 만들려고 했다. 버튼은
맥라렌의 론 데니스에게 계약 제의를 받아 맥라렌으로 갔지만 바리첼로는 이렇다 할 계약 제의가 없었고 메르세데스가 로즈버그와 슈마허와 계약을 해버리면서 사실상 팀에서 방출되어 윌리엄스와 접촉을 해 계약을 하게 된 것이다.
[9]
2021년에는
막스 베르스타펜이 폐막전 SC 상황의 논란 속에서 챔피언이 되어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 연승 기록은 끊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