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9 13:08:51

에디 어바인


영국의 前 레이싱 드라이버
파일:Eddie Irvine 2020.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에디 어바인
Eddie Irvine
출생 1965년 11월 10일 ([age(1965-11-10)]세)
영국 북아일랜드 다운 뉴타우너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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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횟수 148경기
월드 챔피언 0회
그랑프리 우승 4회
포디움 26회
폴 포지션 0회
첫 경기 1993년 일본 그랑프리
첫 그랑프리 우승 1999년 호주 그랑프리
패스티스트 랩 1회
마지막 경기 2002년 일본 그랑프리
마지막 그랑프리 우승 1999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
소속 조던 그랑프리 (1993~1995)
스쿠데리아 페라리 말보로 (1996~1999)
재규어 레이싱 (2000~2002)

1. 개요2. F1 커리어3. 연도별 성적
파일:Eddie Irvine 1999.jpg
데뷔 첫 우승을 차지한 1999년 호주그랑프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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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前 F1 드라이버. 스쿠데리아 페라리 소속으로 1999 시즌에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미카 하키넨과 경쟁하며 드라이버 챔피언쉽에서 2위를 차지한바 있지만 페라리 뛰던 4년간 대부분 슈마허에게 크게 밀린 탓에 다른 페라리 드라이버들에 비해 크게 기억되지 않는 드라이버이다.

2. F1 커리어

93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조던팀을 통해 데뷔했다. 데뷔전임에도 불구하고 팀메이트인 루벤스 바리첼로와 함께 데뷔 첫 포인트를 획득했다. 그러나 레이스 도중에 1바퀴가 뒤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일톤 세나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고 분노한 세나에게 레이스가 끝난뒤 주먹을 맞는다. 그럼에도 2경기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다음 시즌 조던의 시트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94년에는 첫번째 그랑프리인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대형사고를 유발하며 3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는다.
이후 포르투갈 그랑프리의 프리 프랙티스에서 또 한번 데이먼 힐을 전복시키는 대형사고를 일으킨다.

95년 캐나다 그랑프리에서는 57랩동안 레이스를 리드 하던 미하엘 슈마허의 차에 이상이 생기며 스티어링휠을 교체하기위해 피트인 해야했고 덕분에 페라리의 장 알레시가 그의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어바인은 3위로 피니쉬 하며 데뷔첫 포디움을 차지한다! 동시에 바리첼로 역시 2위로 피니쉬 하며 조던팀 역사상 최초로 더블 포디움 피니쉬에 성공한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96년 페라리로 이적하며 이미 2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미하엘 슈마허와 함께 뛰게된다.

96년 페라리에서의 첫 그랑프리인 호주 그랑프리의 퀄리파잉에서 92년부터 무려 56경기동안 단 한번도 퀼리파잉에서 팀메이트에게 밀린적 없던 미하엘 슈마허를 0.236초 차이로 앞지르며 슈마허의 기록을 56회에서 중단 시켰다![1] 동시에 본 경기에서도 3위로 피니쉬하며 좋은 시작을 하는듯 하였으나.. 첫경기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포디움을 기록하지못했고 7연속 리타이어를 기록하는등 팀메이트인 슈마허가 3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59 포인트를 기록하는동안 고작 11포인트만을 기록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특히 슈마허가 비속에서 레인 마스터의 면모를 보여준 반면에 어바인은 비가오는 족족 스핀하며 리타이어를 기록했다.

97년도에는 전년도 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슈마허가 5번의 우승을 포함 78포인트를 기록하며 자크 빌르너브와 마지막 그랑프리까지 챔피언쉽 배틀을 이어나가는동안 1번의 2위와 4번의 3위 피니쉬에 그치며 24포인트를 따내는데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경기에서 슈마허가 고의충돌로인해 시즌 전체가 실격 처리되었고 어부지리로 챔피언쉽에서 슈마허보다 위인 7위로 시즌을 마친다(...)

98년에도 팀메이트인 슈마허는 5번의 우승을 차지했지만 어바인은 8번의 포디움 피니쉬를 기록했을뿐 페라리에서 3년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채 47포인트로 4위로 시즌을 마친다. (어째 획득 포인트가 매년 2배씩 늘어난다.)
99년 시즌 첫 그랑프인 호주 그랑프리는 매우 뜨거운 날씨속에 치러졌고 팀 메이트인 슈마허는 포메이션 랩을 돌기도 전에 엔진이 과열 되어 맨 뒤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이후 자크 빌르너브의 사고로 인한 세이프티 카 상황이 끝나는 시점에서 미카 하키넨의 엔진 또한 과열되며 어바인은 리스타트 상황에서 손쉽게 리드를 차지하고 그대로 데뷔 첫 우승에 성공한다!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슈마허와 함께 1,2위로 피니쉬하며 페라리팀 역사상 처음으로 모나코 서킷에서 페라리의 원투 피니쉬를 연출해냈다!
캐나다 그랑프리에서는 95,96,97 챔피언인 슈마허, 힐, 빌르너브가 모두 한 코너에서 리타이어하는 진 풍경이 펼쳐졌다. 쿨싸드와의 충돌로 맨뒤로 떨어진 어바인은 데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스티스트 랩까지 기록하며 차례 차례 추월쇼를 펼쳤고 3위로 포디움 피니쉬에 성공한다.

프랑스 그랑프리에서는 비가오는 퀄리파잉 속에 스튜어트 그랑프리의 바리첼로가 폴 포지션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고 어바인은 고작 17그리드에서 시작하는데 그쳤다. 대부분의 랩을 바리첼로가 리드하던 가운데 44랩에 슈마허가 바리첼로를 추월하며 리드를 차지했지만 차에 문제가 생기면서 스티어링휠을 교체하기위해 피트인 해야했고, 이후 조던의 하인츠하랄트 프렌첸이 바리첼로를 추월하면서 시즌 첫 우승을 가져간다. 슈마허와 어바인은 각각 5,6위 피니쉬.

영국 그랑프리에서는 슈마허가 좋지 않은 스타트로 어바인에게 뒤쳐진후 무리한 추월을 시도하다가 벽에 충돌하며 다리 부상을 당했고, 그 여파로 당분간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페라리는 페라리의 테스트 드라이버인 동시에 미나르디 F1 팀에서 뛰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루카 바도어 대신[2] 이미 시즌 초 부상당한 리카도 존타를 대신해 BAR에서 1997 월드챔피언인 자크 빌르너브를 팀메이트로 상대하며 나쁘지 않은 드라이빙을 보여준 핀란드인 미카 살로를 대체 드라이버로 임명하며 어바인을 서포팅 하는 역할을 맡긴다. 어바인은 어부지리로 페라리에서 퍼스트 드라이버의 자격을 얻게 된 것.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는 맥라렌의 데이빗 쿨싸드가 팀에이트인 미카 하키넨과 첫번째 랩에서 충돌하면서 자멸했고 이후 피트스톱 전략을을 통해 손쉽게 리드를 차지한후 그대로 2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챔피언쉽 배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독일 그랑프리에서는 팀메이트인 미카 살로에게 1위를 양보 받으며 연속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챔피언쉽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른다![3]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는 교체되어 들어온 미카 살로 보다도 느린페이스로 퀄리파잉에서 고작 8위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살로가 3위로 포디움에 오른 반면에 6위로 피니쉬 하며 1포인트를 따오는데 그친다. 반면에 하인츠하랄트 프렌첸이 비교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조던팀의 차로 시즌 2번째 우승을 거머쥐면서 60포인트를 기록하고있는 어바인과 하키넨을 단 10점차로 추격한다.

이후 페라리는 다음시즌 슈마허의 팀메이트로 어바인이 아닌 스튜어트의 루벤스 바리첼로를 영입한다고 발표한다. 반대로 어바인은 스튜어트(2000년부터는 재규어 레이싱으로 바뀌는)로 이적하게 된다.
유럽 그랑프리에서는 엄청난 이변이 일어나는데 30랩 내내 레이스를 리드하던 하인츠하랄트 프렌첸이 차에 이상이 생겨 리타이어 하고 쿨싸드,피지켈라, 랄프 슈마허등 레이스 리더들이 줄줄히 리타이어 한것. 그 와중에 어바인은 피트 스톱 도중 피트 크루가 타이어를 챙겨오지않아(...) 피트에서 많은 시간을 잃게된다. 이후에 결국 하키넨에게 추월당하며 7위로 피니쉬하며 단 1포인트도 챙기지 못하게된다.[4]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는 슈마허가 부상에서 복귀했고 슈마허는 복귀하자마자 어바인을 0.947초 차이라는 압도적인 페이스로 밀어내며 폴 포지션을 차지한다(...)[5] 그러나 슈마허의 역할은 어바인이 월드챔피언이 되기위해 서포팅 하는것 이었고, 그랑프리가 시작되자 슈마허는 팀 오더에 의해 어바인에게 1위 자리를 내준뒤[6][7] 뒤에서 추격해오는 하키넨을 막는 역할을 맡았다.이후 2위로 추격해 오던 쿨싸드는 리타이어하면서 어바인은 손쉽게 4번째이자 그의 커리어 마지막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어바인은 마지막 그랑프리인 일본 그랑프리에서 폴 포지션인 슈마허보다 무려 1.5초나 뒤쳐지며[8] 5번째 그리드에서 시작하는데 그쳤다. 경기에서는 하키넨이 좋은 스타트로 폴 시터 슈마허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고 어바인 역시 좋은 스타트로 4위로 올라섰고, 후에 쿨싸드가 리타이어 하며 3위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어바인은 이미 하키넨 슈마허와는 너무 차이가 벌어져 있어서 추월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결국 어바인이 월드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슈마허가 하키넨을 따라잡는 수 밖에 없었는데[9] 하키넨은 경기내내 슈마허에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고 결국 슈마허를 5초차이로 따돌리며 그랑프리우승을 차지하며 1999년 월드챔피언에 등극했고, 어바인은 그대로 3위로 피니쉬 하는데 그치며 단 2포인트 차이로 월드 챔피언이 되는데 실패한다.

시즌 최종 기록은 74포인트로 2위. 그럼에도 어바인,살로,슈마허의 활약으로 페라리는 16년만에 컨스트럭터 챔피언쉽에서 우승한다!


이후 경쟁력이 없는 재규어의 차로 고군분투하며 2번의 포디움 피니쉬[10]를 해낸 후, 재규어 팀에서 어바인 대신 마크 웨버를 영입해서 어바인은 f1에서 은퇴하며 커리어를 마감한다.

3. 연도별 성적

3.1. 포뮬러 1

시즌 경기 우승 폴 포지션 패스티스트 랩 포디움 포인트 순위
1993 조던 그랑프리 2 0 0 0 0 1 20위
1994 13 0 0 0 0 6 16위
1995 17 0 0 0 1 10 12위
1996 스쿠데리아 페라리 16 0 0 0 1 11 10위
1997 17 0 0 0 5 24 7위
1998 16 0 0 0 8 47 4위
1999 16 4 0 1 9 74 2위
2000 재규어 레이싱 16 0 0 0 0 4 13위
2001 17 0 0 0 1 6 12위
2002 17 0 0 0 1 8 9위

[1] 2020시즌에 조지 러셀이 36회를 달성하며 슈마허,세나에 이어 역대 3위를 기록하며 이 기록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슈마허와 비슷하게 조지 러셀 역시 메르세데스에서의 첫 경기에서 발테리 보타스에게 밀리면서 기록이 끊기게 되었다. [2] 이때 선택받지못한 루카 바도어는 10년후인 2009년에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펠리페 마싸를 대신하여 페라리에서 뛸 기회를 얻게된다. [3] 이후 어바인은 살로에게 우승트로피를 양보해주었다. [4] 결과적으로 어바인은 2포인트 차이로 월드 챔피언이 되지못했고 결국 페라리의 결정적 피트스톱 실수가 어바인의 타이틀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5] 어바인은 2위 [6] 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슈마허가 팀 오더에 의해 우승을 양보하는 진귀한 장면이다. [7] 자리를 비켜주는게 익숙지 않았던 슈마허는 어바인에게 1위를 내주다가 3위로 달리던 맥라렌의 데이빗 쿨싸드에게 2위까지 내주고 만다.. [8] 2020시즌 비판을 받던 알본 막스 베르스타펜과의 차이가 평균 0.5초 정도라는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페이스임을 알수있다. [9] 슈마허가 어바인에게 2위를 비켜주면 포인트상으론 76점으로 동점이지만 우승회수가 더 많은 하키넨이 월드챔피언을 차지하게된다. [10] 2000~2004년의 재규어 팀에서의 유일한 포디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