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7:40:04

부산영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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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색으로 굵은 글씨 대한민국 역대 전직 대통령의 화장 의식을 거행한 화장시설이다. }}}}}}}}}
부산영락공원
釜山永樂公園
Busan Yeongnak Park
파일:logo_n.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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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1996년 9월 26일
운영시간 09:00 ~ 18:00
유형 화장시설
관리 기업 부산시설공단
주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금정도서관로 108
홈페이지 파일:logo_n.gif
1. 개요2. 역사3. 시설 구성
3.1. 장제동(장례식장)3.2. 공원묘지(매장묘)3.3. 화장동(화장장)3.4. 영락원(봉안당)3.5. 영락정(유택동산)
4. 가는 방법
4.1. 시내버스4.2. 도시철도4.3. 자가용
5. 사건 사고6. 이곳에서 안장되거나 화장의식을 거행한 주요 인물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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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정도서관로 108 ( 두구동)에 위치한 종합장사시설이다.

부산시설공단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장례식장은 물론, 화장장, 봉안당(납골당), 공동묘지가 한 곳에 위치해 있다.

부산광역시에 거주하거나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가끔 영락공원을 처음 들어본 외지인들은 그냥 일반적인 공원인 줄 아는 경우도 있다.[1] 어쨌든 부산에서의 화장률이 90%를 넘는데 대부분의 부산시민들이 살면서 맨 마지막으로 이용하는 시설이다. 장례는 다른 곳에서 하더라도 화장만큼은 이 곳으로 오게 되기 때문이다.

2. 역사

1929년 1월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인근 부지[2]에 '부영화장장' 신설.
1955년 5월 부산진구 당감동 이전 부지 확보
1957년 12월 10일 당감동 부지로 이전하여 화장장 이전 개장식 및 '당감동 공설 화장장'으로 업무시작.
1966년 9월 두구동에 제1묘원 준공.
1967년 10월 묘지 안장 시작.
1977년 1월 봉안당(영락원) 안치 시작.
1978년 당감동 화장장 이전 추진 및 택지 검토. (부산지역 5개소, 경남지역 16개소).
1981년 11월 동래구청으로 묘지 관리권 이양.
1987년 11월 30일 업무 중단.
12월 당감동 화장장 폐쇄. 부산시교육위원회에 부지 매도.
1988년 1월 동래구에서 금정구가 분구되어 금정구청으로 묘지 관리권 이양.
1989년 4월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가 부전동(현 서면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부지)에서 화장장 부지로 이전해옴.
1995년 1월 영락공원관리사업소로 관리권 이양.
3월 금정구 두구동 묘지 이름을 영락공원으로 변경.[3] 화장장 운영 시작.
1999년 1월 부산시설공단에서 수탁 관리.
당감동 화장장이 업무를 중단한 1987년부터 영락공원이 개원하는 1995년까지 약 8년 간 공백이 있는데[4] 이때 부산이 양산처럼 화장장이 없어서 마산, 진해, 밀양화장장을 분산하여 이용하다가 1992년에 마산화장장 시설만 이용하였다.

혐오시설이 우리 동네에 있어도 욕하고 없어도 욕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3. 시설 구성

3.1. 장제동(장례식장)

시설 개소 비고
1층 88평 형 빈소 6개소 291.4㎡
염습실 1개소
안치실 1개소 18구 안치가능[5]
영결식장 1개소
관리사무실 1개소
상담실 1개소
2층 100평 형 빈소 5개소 337.5㎡
식당/휴게실 1개소
접객실 11개소

3.2. 공원묘지(매장묘)

총 29,021구의 시신이 매장 가능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으나 1980년 분양이 완료되어 현재는 매장 불가. 단, 개장 또는 이장[6] 하여 빈 자리가 생길 경우 분양 가능.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인해 최초 매장 후 15년 간, 10년 씩 3회에 한하여 연장이 가능하다.[7]

3.3. 화장동(화장장)

화장로 총 15기를 구비하고 있다.

1일 55~65구[8] 화장이 가능하며, 1월을 포함하여 윤달 등의 특수한 시기에는 1일 최대 70구까지 화장이 가능하다.

수골실은 총 3개소가 있다.[9]

3.4. 영락원(봉안당)

총 3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시설 안장 구수 현황 비고
제1 영락원 16,520구 만장 [10]
제2 영락원 63,600구 [11]
제3 영락원 7,623구
만장(滿葬)이라 함은, 포화 상태를 말하며 즉,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추가로 안장할 수 없다. 단, 봉안기간 15년+(연장 5년*최대 3회) 로 30년이 초과되어 유가족이 유골을 반환하여 공실(空室)이 발생할 경우 부산광역시 장사 등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에 의거하여 순번대로 봉안이 가능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망자들은 부산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3.5. 영락정(유택동산)

산골[12]이라는 장사방법이 있지만 자연환경 훼손을 사유로 권장하지 않는 관계로, 유골만 모을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유골을 일반적으로 유골함에 넣어 봉안당에 안치시키는 것이지만 영락정으로 가면 유택동산이라하여 별도의 산골 장소가 있다.
이 산골은 소위 "뿌린다"라는 용어로 쓰이기도한다.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가장 좋은 방식인데, 일반인들 인식은 아직 좋은 생각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4. 가는 방법

4.1. 시내버스

이들 노선을 타고 범어사역 정류장에 하차하여 금정2-1번 마을버스로 환승하면 된다.

4.2. 도시철도


금정2-1번 마을버스 이용 (영락공원에서 하차)
택시(기본요금) - 금정도서관로를 이용하는 루트로 간다.
걸어가면 15분 정도 걸린다.
택시(7천원 가량) -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루트로 간다.

4.3. 자가용

번영로를 타고 구서IC까지 간 다음에 구서IC에서 부산TG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영락IC로 진입하면 영락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고속도로 진입이 불가능하여 금정도서관로를 통해 진입해야하는데, 철문을 개조한 지금은 철문 뒤에 있는 틈을 통해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영락공원 내부로 진입할 수 있다. 과거에는 자전거는 영락공원 입구에서 두 도로로 나눠진 부분에서 잠시 끌바를 한 뒤 다시 자전거 타고 영락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오토바이는 철문으로 인해 들어갈 수 없어서 영락공원 밖에 주차시켜놓은 뒤 걸어서 들어가야했다.

5. 사건 사고

2006년 이곳에서 칠성파와 20세기파 등 조직폭력배 간의 난동이 벌어졌다. 기사

6. 이곳에서 안장되거나 화장의식을 거행한 주요 인물

7. 기타

근처에 금정도서관이 있다.

아들을 추모하러 온 전동휠체어를 탄 90대 노인이 영락공원에 갔다가 그대로 고속도로를 타고 역주행한 사례가 나왔다.

명절 때마다 경부고속도로 부산 톨게이트 옆의 갓길들이 주차장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원묘지에서 금정구민운동장(임시주차장) 가는 길에 올라갈 수 있는 숨겨져 있는 가파른 계단이 있는데, 그곳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부산시장이 쓴 걸로 추정되는데 한자로 적혀 있다. 1960-7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공무원 시험 과목인 행정법을 공부하다 보면 영락공원에 화장장이 생긴 1995년에 대법원에서 영락공원에 대해 판결한 판례가 나온다. 관련 판례

KNN 기획보도 장사 대란, 존엄한 이별은 없다에서 화장장 포화, 갈 곳 없는 유족들으로 방영되었다.

[1] 화장장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공원이라고 명칭을 바꾼 것인데, 전국의 화장장들 중 이렇게 이름을 바꿔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시도를 한 곳이 몇 군데 있다. 특히나 부산에서는 대형교회인 부산영락교회가 원도심에 있기 때문에 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공원인 줄 아는 사람들도 소수 존재한다. 주로 영락교회가 있는 원도심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며, 나머지 부산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그런 착각은 없는 편이다. 잠깐만, 그럼 부산시 전체잖아? 외지인에게는 삼락생태공원의 인지도가 더 높다보니 간혹 혼동하기도 한다. 0락 1락 2락 3락 [2] 부산광역시 서구 까치고개로 159, 아미동 천주교아파트 자리이다. [3] 영락공원 홈페이지에서는 이날 영락공원이 '개원'했다고 적혀 있는데, 여기에 묘지는 1966년 준공 이래 계속 있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명칭을 바꾼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4] 1984년 10월 하순에 철마면 고촌리 산75번지 일대의 4만 1천여평 가량의 화장장 이전부지(현재의 실로암 공원묘원 진입로 인근이다.)를 확정했고 현지 주민들의 동의와 중앙부처의 승인을 받은 상태로 당감동 화장장 부지 매각을 진행했으나 중간 지점의 해운대구 반송동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철마면 이전이 취소되었는데, 문제는 당감동 화장장 폐쇄 및 부지매각은 그대로 진행됐다고 한다. [5] 분향소를 차리지 않거나, 무연고자를 위한 임시 안치냉장고 7기 포함. [6] 기존에 매장되어 있던 시신을 다른 곳에 옮겨 매장하거나, 유골을 화장하여 처리하는 것. [7] 즉, 최장 45년 간 매장이 가능하다. 이후에는 개장하여 화장처리 하여야 한다. [8] 총 15기의 화장로가 있다고 해서 모두 가동하지 않는다. 고장, 점검 등을 대비해서 여분의 화장로는 가동하지 않는다. [9] 즉, 동시간대에 화장이 끝난 3구의 유골을 수습할 수 있다. [10] 1995년 03월 부 안장 가능 ~ 1999년 1월 부 안장 불가. 국가유공자 유골 280기 안장 중. [11] 1999년 03월 부 안장 가능 ~ 2007년 1월 부 안장 불가. 무연고자, 태평양 전쟁 피해자, 외국인 유골 안장. [12] 화장한 유골을 가루로 만들어 지정된 장소나 산, 바다 등에 뿌리는 것. 한국에서는 강에 뿌리는 것을 금하고 있다. [13] 안상영 본인이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안상영의 유족들이 조용하게 넘어가고 싶어서 그리고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길 원해 결국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서 최초로 화장을 한 정치인이 노무현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지만 사실 최초는 안상영이 맞다. [14] 화장 이후 남편인 문용형 옹과 매장된 무덤에 같이 합장되었다. 정확하게는 천주교 부산교구 하늘공원이다. [안장] 이쪽은 화장은 여기서 하지 않고 안장만 되어 있는 경우.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돌아가신 의인 이수현 씨가 일본 도쿄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비행기를 통해 유골함이 국내로 인계되어 안장되어 있다. 영락공원 내에 표지판에도 나와 있다. 자세한 사항은 이수현(1974) 신오쿠보역 승객 추락사고 문서로. [16] 화장한 고인의 유해는 김해 상동에 있는 경남영묘원 신어공원추모관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