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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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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직 규모에 관하여 개요 문단에 최대 규모 조직이라고 단정하지 않되, 최대 규모 조직이라고 보도한 기사가 있음을 서술하며 해당 기사의 신뢰성을 부가하는 요소(기자의 경력 등)을 함께 서술한다. 다른 조직을 최대 규모 조직이라고 보도한 기사도 있음을 서술한다.

2. 범서방파와의 갈등에 관하여 갈등이 존재하였으나 원로들의 중재 끝에 타협했다고 서술한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는 식의 서술은 하지 않는다. 해당 사건 이후 수사 등으로 인해 범서방파가 와해되었다는 기사가 있고, 그렇게 알려졌으나 와해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사도 있음을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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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두목3. 역사4. 여담

1. 개요

칠성파()는 부산광역시를 기반으로 하는 국내의 유명한 대형 폭력 조직이다.[1] 조직원은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으나, 2015년 기준으로 어림잡아 핵심조직원이 100 ~ 150명, 전체조직원은 약 500명이라고 한다. 기사 2022년 기사에 따르면 현역 조직원만 100명 정도라고 한다. #

2. 두목

신동아 기사

1950년대 세븐스타라는 피난민 건달들에서 시작된 칠성파는 부산의 칠성다방 주변에서 거점을 삼아 칠성파란 이름이 붙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세븐스타의 초대 두목이었던 황홍이 2대 두목 이경섭에게 물려주고 다시 그 이경섭이 세븐스타를 확대개편해서 칠성파를 창건하게 된다.[2] 초대 두목 이경섭[3]은 70년대 초에 후대 두목 이강환에게 조직을 물려주고[4] 2011년경 3대 두목 한홍신이 두목이 됐는데 칠성파 정통이 아니라 조직 내에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후계구도는 깨끗하게 정리가 된 것 같다. 2013년 한 씨가 라이벌인 20세기파를 작업하라고 지시했다가 구속되자 권모씨[5]가 실질적인 두목으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2020년에 한 씨가 출소했다.

3. 역사

부산의 완월동 사창가 지대를 장악하고 유흥업소 및 각종 뒷세계의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7~80년대에는 일본 야쿠자 및 이황순과 손잡고 필로폰 거래에 뛰어들었다.[6] 80년대 말 이강환은 부산의 여러 폭력조직들을 모아 화랑신우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화랑신우회는 자유당 정권 시절 이정재의 동대문사단과도 같은 연합조직으로 부산·경남 지역의 주요 조직이 연대한 것이다. 발족 당시 회원은 약 300명에 이르렀다. # 이후 이강환과 오사카의 재일교포 야쿠자 사카우메구미의 가네야마 고사부로가 교다이 사카즈키(형재배)를 맺었다. 근데 이 가네야마가 축하금 명목으로 준 1억원을 조직을 위해 쓰지 않고 유용하는 바람에 불만이 쌓인 부두목급 김영찬이 신칠성파를, 부두목 천달남이 영도파를 만들어 칠성파에서 갈라져나오게 된다. 이후 영도파는 독자생존하는데 성공했지만 신칠성파는 조직원들이 다시 칠성파의 회유로 원대복귀하거나 뿔뿔히 흩어지자 결국 칠성파로 다시 합치기로 결의, 1999년경 칠성파로 다시 흡수되었다. 김영찬은 거리에서 칼까지 맞고 전치 12주의 중상을 당하는 등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결국 이강환하고 화해하고 은퇴했다.

칠성파는 부산 지하세계를 장악한뒤 각종 슬롯머신 도박과 성인 오락실, 심지어 참깨밀수까지 하면서 사업을 확장 했다고 한다. 관련 영상

이후 부산에서 칠성파 및 그 계열 조직들과 반칠성파의 갈등이 심각해 종종 전쟁이 터졌다. 2006년 벌어진 부산영락공원 난동 사태도 그 일환이다. 기사

2007년경 이강환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공병권이 내시경 검사를 하다가 의료사고로 사망하였다. 기사 이 때문에 칠성파 후계구도가 복잡해졌다. 이후로 칠성파 세 확대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또 벌어진다. 부산 서면 칠성파 살인사건 문서 참고.

칠성파에서 분가한 광안칠성파는 원래 칠성파의 주요 간부인 강모씨[7]가 세운 조직으로 강씨는 공병권의 사망 이후 이강환의 신임을 받았으나 칠성파 내부 파벌 싸움 및 여러 사건에 휘말려 한때의 신임을 잃고 후계자 구도에서 밀려났다. 그러자 자신을 따르던 동생들을 데리고 칠성파에서 독립하여 광안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에 칠성파와 광안칠성파는 한때 사이가 험악해져 몇번의 난투극과 전쟁이 있었다. 현재는 어찌어찌 잘 화해를 했는지 칠성파의 내부계파로 범칠성으로 인정을 받았다. 다만 도움 요청이나 윗선의 지시가 있으면 범칠성으로 도와주지만 본가와 갈등도 있고 데면데면한 사이라는듯 하다. 한편 광안칠성파는 학생 폭력조직을 후진 양성으로 써먹는다고 한다. #

호남의 국제PJ파, 벌교파 등과 동맹을 맺었다고 한다. #

2009년경 범서방파와 서울에서 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원로들의 중재끝에 가까스로 타협을 보았다. 기사[8][9]

2015년 11월 3일 두목급 간부인 권 모씨가 서울 송파구의 잠실의 롯데호텔 월드에서 일부 유명 연예인들을 포함,[10] 1,000여명의 하객을 초대해 놓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칠성파가 NAVER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결혼식 현장에서는 경찰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식이 진행중인 호텔을 230여명이 둘러싸고 대기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경찰은 식 도중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으며 조직원들은 식이 끝난 후 아무 일 없이 부산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2022년 8월 조직폭력배 일제 단속으로 칠성파와 20세기파 조직원 약 70명이 붙잡혔다. #

2022년 10월 칠성파 전 두목 이강환의 팔순잔치가 열렸으며 비교적 조용히 끝났다고 한다. #

2023년 7월 19일, 칠성파의 전 두목 이강환이 지병으로 사망하자 경찰은 만약의 사태를 막기 위해 장례식장에 경찰 인력을 파견했다. #

4. 여담

부산의 군소 조직을 흡수해 조직을 프랜차이즈화 해서 구역별로 온천장 칠성, 서동 칠성, 연산 칠성, 기장 칠성 등으로 부르며 지부 조직을 만든다고 한다. 조직의 규모를 키우면서도 한꺼번에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완월동[11] 칠성파가 일명 본가 칠성으로 불리는 핵심 조직이다. 지금은 대부분 본가 칠성과 광안리 칠성으로 재편됐다고 한다.

칠성파의 경우 정작 조직의 주요 수뇌부들이 공권력의 집중견제로 감옥을 들락날락하면서 세가 죽었지만, 칠성파 출신 + 부산 지역의 반달들이 칠성파의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해 칠성파로 사칭한다고. 특히 부산 출신 양아치들이 '나 칠성파 조직원이야.' '나 칠성파 행동대장이야.' 라면서 허세를 부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영화 친구가 부산 칠성파와 20세기파의 실제 구도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려져서 더 유명해젔다.

칠성파의 행동대장으로 추명종이 유명하다. 여러건의 칼부림으로 무투파로 유명했으며 마포 서교호텔 살인사건[12]으로 쫒기다 마지막 조폭 반장으로 불리던 안흥진 경위에게 체포됐다. 경찰수사에서 끝까지 윗선을 안불고 본인 혼자 모두 책임지고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멀쩡히 밖에서 조직생활을 했으면 그도 두목급의 물망에 올랐을 것이다. 목포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가 2020년 8월 교도소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유서등 윗선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남기질 않았다.

2018년 7월 16일에는 칠성파 조직원이 OCN의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촬영 현장을 급습하여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2021년 6월에는 칠성파 전 두목 이강환이 부하 20대 남성에게 부적절한 성행위를 강요하는 등 동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됐으나 합의로 마무리지었다. 기사 그 뒤 그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 형편이었으며, 결국 2023년 7월 19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2024년 10월 칠성파 간부 결혼식 때 부산시 국회의원들이 축기를 보내 논란이 되었다. #


[1] 여러 기사에서 국내 최대 조직이라는 기사, 기사, 기사도 있고 국내 최대 조직 중 하나라고 알려졌다는 기사도 있다. #, 또한 다른 지역 조직보다 특히 강하다는 20년간 조폭을 취재한 모 기자의 증언이 있는 2007년 기사도 있다. 다만 부산 최대 폭력조직이라는 기사도 있으며 여러 다른 기사에서는 다른 조직이 국내 최대 조직이라는 기사도 있다. 파라다이스파 #, 범서방파 #, #, #, #,청하위생파 #, #, # 등등. 사실 한국의 조직폭력배의 규모는 범단 계보에 오른 인원을 제외하고 숨어있는 조직원과 추종세력 등등 정확히 몇명인지 확인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라 여러 기사마다 말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제3자가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 [2] 다만 경남도민일보 기사에서는 1950년대 활약하면서 칠성파를 창건한 조인환이란 사람도 있었다고 하며, 이 사람은 1970년대 중반에 은퇴했다고 한다. 이 조인환 두목이 황홍이나 이경섭 두목의 선배급인지 혹은 비슷한 시기 세븐스타에서 활동하던 멤버인지 계보는 정확하지가 않다. [3] 어느 기사에는 이경협이라 되어 있기도 하다. [4] 이 초대두목은 이강환의 손윗 동서라 한다. [5] 권씨는 한씨의 선배급으로 원래 이강환의 뒤를 이어 차기 두목급이었는데 여러 사정상 고사하고 두목급 원로로 칠성파에 남았다. 돈을 많이 벌었으며, 부산 생활을 접고 서울로 이사했다고 전해진다. 2015년 재혼을 했는데 화려한 결혼식으로 또 뉴스를 탔다. 한편 그는 이강환이 구속됐던 시절에도 대행두목을 맡은 바 있기에 한씨의 구속시절에도 조직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권씨의 오른팔이 친구 유오성의 모티브인 정씨이다. 그도 차기 칠성파 두목 물망에 올랐으나 칠성파 담당형사에 따르면 알콜 중독에 시달리고 있고, 오랜 빵생활로 인해 조직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2년 후배인 한씨에게 양보했다고 전해진다. # [6] 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마약왕이다. 이강환은 이로 인해 약 5년간 수감되었다. [7] 부산의 여러 유흥업소를 꽉 쥐고 있고, 카드깡으로 돈을 많이 벌어 칠성 실세로 불렸으며 두목급 간부 권씨의 직계로 권씨가 살인사건으로 경찰에 쫒길 때 스티로폼에 생선회를 싸서 보낼 정도로 충실해서 신임이 컸다고 한다. [8] 기사에 나오는 칠성파 부두목 정씨는 한홍신 회장의 부두목 정씨로 영화 친구 모티브인 원로 간부 정씨와는 다른 사람이다. [9] 해당 사건 이후 범서방파는 경찰에 조직이 노출돼서 어느정도 타격을 받아 와해됐다는 기사, 기사. 기사도 있으나 2009년 사건 이후 여전히 끈질기게 활동한다는 기사, 기사도 있기 때문에 상투적인 와해설과는 달리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또한 2014년 대거 검거로 큰 타격을 받기도 했으나 #, # 2016년 춘천생활파와 서울에서 조직원을 지원 받아 원정 전쟁을 하고 전두환 아들 전재용의 돈을 갈취하고 2020년엔 행사장에 300명이 모이는 등 #, #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 그 중 김민종 손지창이 참석해 진행을 맡았다고한다. [11] 현 서구 충무동. 집창촌으로 인하여 완월동의 이미지가 매우 나빠져 충무동과 통합되어 사라져버렸다. [12] 칠성파 두목급 간부가 되는 그 권씨와 노래방 인계 문제로 다툼을 하던 강성환이라는 사람을 같이 간 추명종이 칼로 찔러 살해했다. 권씨는 살인사건으로 쫒기다 붙잡혔으나 재판과정에서 무죄로 풀려났고 추명종만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