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미사카 미코토의 작품 내외적인 인기와, 그녀의 인기투표 전반에 걸친 행적을 정리한 문서.2. 작품 내적으로
어떤 시리즈가 2020년대 들어서 옛날보다 인기가 떨어졌지만, 현재까지도 명실상부 라노벨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꼽힌다.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인기가 많아져, 미코토가 주인공인 《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라는 오피셜 외전 만화도 나오면서 유래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1] 여러 인기투표에서의 활약상과 더불어 수많은 츤데레 캐릭터의 대표격 위치에 있으며,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이 연재된 지 21년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넘사벽의 인기를 자랑하는 시점에서 이 캐릭터의 인기가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높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3. 작품 외적으로
또한, 츤데레 캐릭터들의 대표답게, 일본 츤데레 캐릭터 인기투표를 할 때마다 매번 1위를 독차지한다. 어마금이 나온 지 21년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항상 현역이며, 2014년 애니 오타쿠 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츤데레 랭킹에서 압도적으로 1위에 랭크인되었다. 또한 2012년도에 진행된 츤데레 캐릭터 인기투표에서 역시 1위, 2018년에 일본 라노벨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츤데레 캐릭터 인기투표에서도 또 다시 1위를 차지했다. 여담으로, 2013년 중국 라이트 노벨 캐릭터 랭킹에서도 여성 캐릭터 부문 1위를 차지한 바 있다.이렇게 미코토는 동시대에 츤데레 캐릭터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꼽혔던 스즈미야 하루히, 아이사카 타이가, 샤나가 2010년대 들어 상위권에서 내려오고 있음에도, 혼자서만 살아남아 압도적인 1위를 독식해오고 있다.[3] 물론 다른 작품들과 달리 어마금이 현역인 이유도 있지만, 그녀가 고전 츤데레가 아닌 개량된 후발 주자라 라이트 팬덤을 품을 수 있었기에 츤데레의 얼굴마담이 될 수 있었다.
3.1. 이 라이트 노벨이 대단하다!
{{{#!wiki style="margin:-8px; word-break: keep-all" | <tablebordercolor=#fff,#2d2f34>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미츠카이 도쿠로 박살천사 도쿠로 |
키노 키노의 여행 |
호로 늑대와 향신료 |
스즈미야 하루히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
아마노 토오코 문학소녀 시리즈 |
|
<rowcolor=#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미사카 미코토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
|||||
<rowcolor=#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유키노시타 유키노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
미사카 미코토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
||||
<rowcolor=#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카루이자와 케이 어서오세요 실력지상주의 교실에 |
시이나 마히루 옆집 천사님 때문에 어느샌가 인간적으로 타락한 사연 |
||||
<rowcolor=#fff> 2025 | 2026 | 2027 | 2028 | 2029 | |
시이나 마히루 옆집 천사님 때문에 어느샌가 인간적으로 타락한 사연 |
|||||
}}}}}}}}} |
코노라노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대회의 독재자. 2010년부터 11년 간 1위 9회, 2위 1회,3위 1회라는 너무나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아예 적폐라고 부를 정도. 코노라노 2009 에서 여성부 5위, 전체 캐릭터 순위 9위에 처음 순위권에 진입한 이후, 2010년에 여성부 1위 전체 캐릭터 6위를 기록하더니 2014년까지 여성부에서 전대미문의 5년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전체 캐릭터 부문에서도 여러 번 1위를 기록했는데, 소드 아트 온라인의 애니화로 인기가 급상승한 유우키 아스나마저 그녀에게 밀려 2위 2회에 그쳤다.
2015년에는 내청코의 애니화로 인한 인기몰이와 같은 작품의 쇼쿠호 미사키, 오티누스의 인기 급상승 + 인덱스와의 표 분할 때문에 유키노시타 유키노에게 1위를 빼앗겼지만, 이듬해 다시 유키노를 2위로 밀어내고 그 결과를 설욕했다.
2017년 애니화로 미코토의 자리를 위협할 후보였던 렘과 메구밍이 각자 2, 3위에 그치면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후 18-19년에도 1위를 차지하며 두 번째 4연패를 달성하며 그 위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이로써 1위를 총 9번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대기록을 달성했다.[4] 8년간의 3기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애니화 버프를 받은 인기 히로인들이 뛰어넘지 못한 것만 생각하도 놀라운데, 2021년 전까지 미코토를 제외하면 2회 이상 여성부 1위를 차지한 캐릭터는 단 하나도 없었고, 남성부 최다 1위는 고작 4회이다.[5] 하지만 20년도 이후부터는 카루이자와 케이에게 1위를 내주게 되었다.[6]
4. 모에 토너먼트 기록[7]
모에 토너먼트에서 온갖 괴물같은 전적을 보유한 본좌 캐릭터로 평가된다. 76개나 되는 인기투표 타이틀 뿐 아니라, 54개에 육박하는 모토 우승 + 21개의 준우승으로 총 75회의 결승을 치렀으며, 14년 연속으로 매년 1회 이상 모에 토너먼트를 우승한 유일한 캐릭터이다.[8] 게다가 미코토는 2011년 12월에 V10을 찍고 샤나로부터 모토 최다 우승 타이틀을 빼앗은 후,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타이틀을 지켜냈다.
또한 미코토는 6대륙의 모토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최초의 캐릭터가 되어[9], 한때 중국 모토 팬덤에게서 금황소육합(禁皇所六合)이라 불렸다. 이어서 2011년 말부터, 2010년대에 걸쳐 모토 최초로 10회 ~ 40회 우승에 도달했다. 저런 선례없던 미코토의 활약상 덕에 중국에서 모토 우승자를 뜻하는 萌王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였고, 그녀의 고정 팬층 역시 이를 계기로 두텁게 자리잡았다. 비록 모토가 생겨나기 이전 세대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6-97), 하루히즘 이전 세대의 건담 시드(2003-04), 바로 직전의 케이온!(2010)처럼 씹덕 세카이를 통일했던 사례가 없는 게 아니지만, 미코토의 올드팬이 당시에 유독 많이 생겨난 이유는 10년대 초 장르 격동과 연결된 재분열기에 굴기한 뒤 도장깨기를 계속하며 천하를 홀로 평정해 나갔고 결국 단일 캐릭터로서는 최초로 인기투표계를 통일했던 스토리[10]에 있다.
사실 미코토는 의외로 최전성기(11, 13-14년도)가 파편화된 편이고, 12/15시즌 등 왕좌에 있던 시기에도 꽤 심한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11], 이를 감안해도 모토사에 유래가 없을 만큼 현역으로 있던 시기가 매우 길었다.[12] 물론 언제나 발군의 성적을 거뒀던 국제 사이모에 리그에 커리어가 다소 쏠려있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2010년대 초중반 내내 마이너 모토를 지배하였으며, 왕조 말기 시절엔 Best Girl Contest같은 다른 메이저 대회에서도 활약했다. 그 꾸준함은 다른 최장수 히로인인 세이버에 준할 정도이며, 쿠루미나 아스나를 능가할 정도.
첨언하자면 2010년대 초반 ~ 2010년대 중반의 미코토 왕조 치세 7년은 애니 + 라노벨 위주 메타가 절정에 달했으며, 하렘물의 성행으로 한 캐릭터를 파는 팬덤이 역대 고점을 찍었다. 동시에 모토의 규모는 정체되어 있던 때여서 그녀와 자주 비교되는 렘과는 반대의 환경에 있었고, 그래서 매년 풍족한 신인 풀에 대비해 한 캐릭터당 평균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입상 경력은 많지 않은 편이었다.[13] 이런 시대적 배경을 이유로 한국에서 그녀의 위상도 중국 못지 않게 높은데, 대다수의 3세대 오타쿠가 신작 애니 중심으로 돌아가던 이 때 입덕했거나 한창 덕질을 했기 때문에 상술한 미사카 최전성기 시절을 곧 씹덕 황금기와 같은 의미로 여기는[14] 사람이 많다. 실제로 상술한 두 명이 씹덕판에서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동북아시아에서 각 민족별 전전대 및 전대 왕조에 대해 생각하는 그것[15]과 매우 유사한 편이기도 하고.
4.1. 최고모에토너먼트
최모토에서는 09년 96강에서 하이바라 아이에 밀려 탈락했고, 10년에는 센조가하라 히타기에게 8강에서 밀려 탈락했다. 대신 번외 대회였던 2010 슈퍼모에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결승 득표는 2809표로 대전 상대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3555표에 터무니없이 밀렸지만 슈모토가 팀전이었기 때문에, 페어인 오리하라 이자야가 2283표로 하루히의 페어인 카제하야 쇼타보다 표를 800표 이상 뽑아주며 승리할 수 있었다.2011년에는 유독 여러 번 중복투표 사건에 휘말렸다. 우선 96강에서 와쿠라 유이나에게 패해 조기 탈락했는데, 유이나의 후반 500표 몰표가 밝혀져 부정투표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정작 32강에 올라간 유이나는 미키 사야카에게 힘도 못 쓰고 압도적으로 패하는 바람에 의혹은 더욱 증가했고, 후에 아케미 호무라와 카나메 마도카도 허무하게 탈락하자 마침내 최모토 운영자 측에서 부정투표 가능성을 인정하고 경기를 중단하였다. 그리고 96강 진출 캐릭터들끼리 재투표에 들어가는 방향으로 결정. 마마마 진영의 예기치 않은 도움에 힘입어 운 좋게 재도전의 기회[16]를 얻었지만 기쁨도 잠시, 결국 16강에서 카나메 마도카와 또 중복표 사건을 터뜨리며 200표차 이상으로 패배했다.
비록 마도카 쪽의 중복표가 110표 정도 나왔지만 그걸로 결과는 뒤집힐 수 없었고, 최종적으로 4강까지 올라간 사텐 루이코에 비해 다소 부진한 성과를 냈다. 그래도 한일 양국의 모토에서 모두 16강에 드는 데 성공했으며, 특히 양국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초강세 신작 마마마 진영에게 위협을 가했다. 꽤 오래 우려먹은 사골 캐릭터임에도 2011년도 신작을 상대로 강캐 포스를 유지하였던 것.
4.2. 사이모에 토너먼트
2010 사이모에 당시 우승후보 중 한 명으로 평가되었는데, 조별 라운드 결승전에서 케이온!의 아키야마 미오와 나카노 아즈사를 상대하게 되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미오와 아즈사 모두 케이온 진영에서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케이온 진영의 표가 갈려 미코토가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케이온 팬들이 최모토에서 이미 우승을 한 미오를 버림패로 쓰고 쌩신인 아즈사를 밀어주기로[17] 합의함에 따라, 아즈사가 근소한 차이로 미코토를 제치고 승리한 뒤[18] 해당 대회의 우승까지 차지해버렸다.2011 사이모에 토너먼트에서도 유력한 우승후보 중 한 명으로 강캐 포스를 발휘했으나, 16강에서 아스타롯테 위그바르를 만나 탈락했다.[19] 대신 다른 부분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본선 1회전에서 신작 버프까지 받고 있는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아케미 호무라를 꺾어버리는 위엄을 발휘했던 것. 대결 상대인 사라와 호무라의 표를 합쳐도 미코토에 못 미쳤다고. 그 당시 마마마 진영이 견제를 많이 받고 있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마마마 진영의 나머지 4명은 서로 대결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올라왔으며 끝내 우승 & 준우승까지 차지했던 걸 생각하면 유난히 강세였던 마마마 진영의 일각, 그것도 마마마 최고 인기 캐릭터였던 호무라를 광탈시킨 것은 대단한 성과.
사이모에 토너먼트는 가면 갈수록 사키의 횡포가 달했고, 어과초 2기로 출전한 2013년에는 2회전에서 하라무라 노도카에게 패해 광탈했다. 이 시즌 마마마 진영은 호무라가 마도카와의 팀킬로 탈락한 걸 제외하면, 나머지 주연 4명에서 우승 & 준우승을 나눠먹을 만큼 폭주했다.[20]
4.3. 국제 사이모에 리그
최모토와 사이모에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대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토 대회[21]였던 국사모에서는 자신의 진가[22]를 제대로 발휘하였다.
미코토가 2010년대 초반 ~ 중반까지 인기투표의 넘사벽 원탑으로 자리매김했던 이유는, 2010년대 초반 모토계의 흐름 전반이 미코토에게 웃어주었기 때문이다. 13년은 1세대 대회인 최모토, 사이모에가 추악한 병폐로 완전히 몰락한 모토 정체기다. 이렇게 신뢰할 만한 인기투표가 사라지던 시절, 미코토는 천사와 함께 그야말로 모토판 메호대전을 찍으며, 그나마 믿을 만한 국사모에서 무쌍을 찍었다. 거기다 점차 유명세를 타던 코노라노에서 사상 최초의 5연패와 초전자포 2기 버프가 겹치는 역대급 행운까지 따라주며 투표자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반면 그 시절 샤나는 불리해진 흐름을 마주해야 했다. 작안의 샤나가 완결 1년차인 13년을 기점으로 신전기 장르의 몰락과 함께 오와콘 취급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23] 그리고 2010년대 초반 대형 신인 풀이[24] 마시로를 제외하고 10년대 초반 모토에서 유래없는 집단 부진을 겪는 호재마저 따라주었다. 그 결과 10시즌부터 6시즌 36회 우승에 성공한 미코토는, 국사모 내 활약을 위시하여 2010년대 초중반 모토계에 왕조를 세웠다. 그녀는 모토 V10 멤버들 중 가장 압도적인 커리어를 쌓아올렸는데, 수상 실적이 당시 2-3위와 3배 가까운 차이가 날 정도.
위와 같이 2010년대 초반 모토계에 미코토 중심의 질서[25]가 형성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대회가 국사모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첫 번째 통일왕조를 수립했던 미코토가 2012시즌 대위기로 휘청인 발단도 바로 국사모였고, 오히려 이 때는 반대로 국사모 밖의 요인들이 그녀에게 파비우스의 승리를 가져와 2013년 브레이크 없는 폭주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어쨌든 국사모는 미코토와 그 흥망성쇠를 이 정도로 함께했던 것에 의의가 있으며, 그래서 중화권 팬들이 그녀의 대회 업적을 오래토록 기리는 것[26]이다.
4.3.1. 2009년 ~ 2012년
미코토를 옛날부터 봐 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녀는 2008년 4분기에 데뷔하고 나서 초전자포 1기 방영이 종료된 2010년 1분기까지 무명 츤데레 캐릭터 취급[27]을 받았음을 기억할 것이다. 2000년대 후반 당시에는 샤나와 아이사카 타이가 같은 쿠기미야 리에의 주류 츤데레 캐릭터들이 여러 인기투표에서 무쌍을 찍고 다녔기에 그녀의 자리가 없었기도 하고. 그랬기에 첫 참가인 2009년 대회에서는 40패를 박고 리그 42위에 그쳤지만, 이듬해 들어 케이온! 진영이 모에 토너먼트 8룡의 치세를 뒤엎어버리고 인기투표 판 자체를 리셋시켰으며, 이 희대의 기회를 초전 버프를 받은 츤데레포는 놓치지 않고 붙잡는 데 성공하며 비상하기 시작한다.2010시즌 대회에서 정규시즌 성적이 4위까지 오르고[28], 루비 목걸이를 획득할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떡상한 인기를 보여주었다. 이어진 결선에서도 정규시즌 1위였던 샤나[29]를 승자조 4강, 패자전 결승에서 2번이나 떡실신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이렇게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대로 샤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아키야마 미오[30] 에게 승자조 결승과 최종 결승 2번 다 압도적으로 털리는 바람에 준우승.
하지만 11시즌에 돌입하자 안 그래도 높은 인기가 더 치솟았다. 초반부터 아쿠아마린 목걸이를 획득, 그 이후 타치바나 카나데와 정규시즌 1, 2위를 끊임없이 다투었다. 결국 마지막 49라운드에서 카나데와 대결해 간발의 차로 졌는데 이게 그 해 유일한 패배로, 최종 48승 1패를 거뒀다.[31] 이어진 결선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나가, 4강에서 천사에게 역전승을 거둔 이변의 주인공 샤나를 꺾고 국사모 우승을 차지했다.[32]
2012 국사모에서도 여전히 1티어 우승 후보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루비 목걸이를 따고, 노바/스텔라로 리그가 분할된 덕에 카나데를 만나지 않고 압도적인 격차로 스텔라 1위를 차지했다. 다만 지난해에는 승리했던 나가토 유키에게 일격을 맞으며 34승 1패로 전승에는 실패. 1시드로 참가한 스텔라 부문 결선 유키에게 리벤지하고 타이가를 누르며 우승을 차지, 다이아몬드 서클릿을 확득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티아라 결정전에서 이것은 좀비입니까?의 유클리우드 헬사이즈를 8강전에서 만나 1560표 차이로 완패하며 탈락했다. 최종 성적은 6위.[33]
이렇게 그녀는 당시 국사모 최종보스였던 천사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34] 라이벌로 등극했고, 이 구도는 거진 모토계 전체에 대격변이 일어나는 패권기(2015~2018)가 찾아오기 전까지 국사모 내외에서 지속되었다.
4.3.2. 2013년 ~ 2017년
2013 국사모에서는 예년처럼 강캐 포스를 보여줬지만, 목걸이 획득은 실패. 그래도 정규시즌 3위로 진출한 스텔라 부문 결선에서 세이버, 아즈사를 이기고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영원한 라이벌 카나데에게 패하며 탈락. 이후 티아라 결정전에서는 호라 모 젠젠, 얀데레 히로인를 떨어뜨리고 4강에 올랐지만, 여기서 또 한 번 천사에게 꺾이면서 4위로 대회를 마무리 했다.2014 국사모에서는 아쿠아마린 목걸이를 획득하고, 스텔라 부문 전승으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부문 결선에서도 그 화력은 죽지 않았는지 역대 인기 츤데레들인 스즈미야 하루히, 샤나, 아이사카 타이가를 연속으로 격파하였다. 그러나 결승 상대는 강력한 우승후보이고 전부터 자신을 여러 번 물 먹인 상대인 천사.[35] 결국 19표차로 아깝게 다이아몬드 서클릿은 놓치고 만다. 한편 최종 결선에선 화력이 다했는지 요시노와 쿠루미에게 연패하며 광탈하는 굴욕을 겪었지만, 나머지 경기에서 전승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2017, 2018 국사모 ToC 우승 삽화 |
4.3.3. 2018년 이후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렘이라는 신흥 절대강자가 나타나 18년 이후 인기투표 전반에서 무쌍을 찍으며 상황이 급변했다. 츤데레포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인기투표에서 부진하며 우승이 5개 이하에 그칠 때[37], V20조차 못 찍었던 렘은 그 기간에 30개가 넘는 우승을 기록했다. 그 결과 20년 5월 미코토는 모토 최다 우승 기록을 렘에게 빼앗기고 말았다.[38]2020년 어과초 3기 버프를 받아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미코토는, 2010년대 후반 신흥 강호들인 사쿠라지마 마이, 바이올렛 에버가든, 시노미야 카구야와 베테랑인 유키노시타 유키노와 유우키 아스나의 방영 버프에 맞서야 했다. 대신 렘이 리제로 2기 너프를 맞아 미코토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고, 예선에선 여성부 전체 1시드, 본선에선 토우마와 커플 에메랄드를 획득하는 활약을 펼쳤다. 이어 결선에선 치카, 린, 카구야를 차례로 두들기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2회 우승에 대한 참여자들의 반감으로 인해 결승에서 유키노에게 석패하고 말았다.[39]
2021년 국사모에서는 일레이나가 예상 외의 미칠 듯한 선전을 보여주었으나, 작년 준우승이 우연이 아니라는 듯 2년 연속 여성부 1시드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그 일레이나와 같이 정규시즌 전승을 질주했지만, 최종전에서 카구야에게 일격을 맞고 2위로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승후보답게, 4강에서 또 다시 카구야를 이기고 결승에 가면서 역대 최초 단일 메이저 모토 2회 우승에 닫은 듯 했다. 결승에서도 개표 초반 일레이나를 압도했지만, 12시간 이후 빠르게 따라 온 일레이나에게 역전패하여 우승이 좌절되었다.
2022년은 국사모가 마지막 대회가 되면서 역대 우승자들이 총출동하고, 신인인 키타가와 마린, 포저 모녀, 니시키기 치사토가 참가하고 쿠루미와 카구야도 애니 버프를 직격으로 받았으며, 여기에 쿄애니 진영이 국사모 마지막 대회에서 유독 강세를 드러낸 상황이었다.[40] 여기에 본인과 달리 우승이 없는 마시로, 아스나 같은 노장들에게 향할 동정표 같은 요소들도 있어, 이전 2년보다 미코토에게 더 어려운 시즌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런 여러 우려들을 기우에 지나지 않았을 정도로 만들 만큼 그녀의 라스트 댄스는 찬란했는데...
본선 1차 72강과 본선 2차 42강에서 전승을 달성하고, 첫 두 번의 목걸이 결정전에서 토파즈, 자수정을 연달아 손에 넣으며, 국사모 최초로 7색 목걸이를 완성하였다. 정규리그 1위를 달성한 뒤 맞은 더블 엘리미네이션 승자조 결승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던 타카나시 릿카를 손쉽게 제압하고, 기세를 몰아 최종 3인 결승에서 렘과 바이올렛을 상대로 압도적인 원조 패왕의 품격을 드러냈다.[41] 그녀는 20-21년 연속된 준우승의 아픔을 씻어내고 최초의 동일 메이저 모토 2회 우승, 와이어 투 와이어 전승 우승으로 마지막 국사모를 화려한 피날레로 장식했다.
2011, 2022 국사모 우승 삽화 |
그리고 국사모가 23년에 폐지를 번복하고 부활함에 따라 미코토는 2023년에 ToC에 다시 출전했으며, 다시 한번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이기고 우승하면서 ToC 통산 V3를 달성하고 해당 대회의 전설다운 모습을 보였다.
4.4. 애니플러스 캐릭터 토너먼트
어과초 3기가 애니플러스에서 방영되면서 애캐토 2020에 참가했다. 허나 3차 예선에서 최종보스 일레이나와 17년 우승자인 카후우 치노와 한조에 묶여, 3위로 예선 탈락하는 불운을 맞았다. 그리고 일레이나는 8강에서 치노를 더블 스코어로 압살하고 기어코 우승까지 거머쥐었다.한편 어마금 진영이 다음 참가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미코토는 메이저 모토가 2개나 존재한 한국에서 해당 타이틀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후 동양에서 인기가 더 치솟은 일레이나는, 이듬해 21시즌 국사모 결승에서 또 미코토를 좌절시키며 그녀에게 가장 쓰라린 악연이 되었다. 허나 일레이나가 모토계에서 쇠퇴하고, 미코토가 최후의 승자가 된 22시즌엔 정작 둘이 만나지 못했다.[44]
4.5. Best Girl Contest
Best Girl Contest 2016 우승 | ||||
2015: 유키노시타 유키노 | → | 미사카 미코토 | → | 2017: 토오사카 린 |
4.6. 애니타운 모에토너먼트
앤모토에서도 09년 3, 4분기, 10년 슈퍼모에토너먼트(연간 통합전), 13년 2분기 부문을 우승하면서 통산 4관왕을 차지했다.
[1]
처음 등장 시 인기가 적었다는 게 아니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2권에 왜 미코토 안 나오냐는 원성도 받았다고 하지만, 미코토의 인기가 급격히 올라간 건 여러 통계에서 볼 수 있듯, 어과초 1기 방영 후인 2010년부터다.
[2]
다만 이 투표는 주작 논란이 있다. 처음에 미사카가 1위였으나, 2ch의 장난질로 히노 진사쿠라는 듣보잡 살인마가 몇 주만에 수십만 표를 받아 선두를 달리고, 로마 교황과 게코타가 몰표를 받았다. 또한, 카미조 토우마, 액셀러레이터도 17, 13등에 그쳤다.
[3]
다만 해당 투표는 미코토보다는 랭킹에 전부 여성 캐릭터가 올라온 와중에 혼자 랭크인한 남성 캐릭터
베지터가 더 주목받았다.
[4]
이를 뒤집어 말하면, 2015년의 유키노는 미코토의 10연패를 저지한 셈이다. 단기 포스로나마 미코토를 꺾는데 성공한 유키노의 무시무시함도 드러나는 부분.
[5]
그 주인공은
아야노코지. 3회 우승을 달성한 남성 캐릭터조차
하치만,
키리토,
토우마로 3명 뿐이다.
[6]
카루이자와는 20, 21년도에 남친 아야노코지와 남녀 동반 1, 2위를 기록했는데 22, 23년에는
시이나 마히루에게 밀려났다.
[7]
출처:
중국 모에걸위키
영어 사이모에 위키
모토 수상기록
[8]
2009년부터 2022년까지 계속된 기록. 2위는
아이사카 타이가의 기록으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간 매년 1회 이상 우승했다.
[9]
두 번째로 이 기록을 달성한 캐릭터는
렘으로, 이 기록은 모든 캐릭터를 통틀어 저 둘만이 가진 기록.
[10]
폭발기 이전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건담 시드가 나올 때는
모에 캐릭터 판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
8룡 시대에서 이어진 전대 케이온 통일기는 겨우 1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후대의 렘은 패권기 대난투 당시
모든 경쟁자의 공멸까지 기다린 뒤 천하를 집어삼켜 그녀만큼 서사가 극적이진 않고, 세이버는
미연시 -
모바일 게임의 성격도 띈 타입문 IP 내에 여러 루트나 해석, 파생이 많아 단일 캐릭터로 보기 곤란하다.
[11]
그녀 이후의 렘
왕조도 19년 하반기에 위기를 맞긴 했다. 그러나 그 때
사쿠라지마 마이는 15시즌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위세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렘은 18-22시즌 초까지
무려 4년이 넘는 최전성기를 이어갔다.
[12]
미코토와 렘은 모토계에서 쇠락하는 과정도 달랐다. 전자의 왕조는 15 - 17시즌을 거치며 서서히 무너졌으며, 이미 전성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내여귀와
니세코이의 악영향으로
츤데레가 쇠퇴하는 등
외적 환경이 불리해질 조짐이 보였다. 반면 후자의 왕조는
오랜 평화가 독이 되었고,
코로나 블루 이후 예고도 없이 시작된
몇 년치 대형 신인 집중 포화를 맞았기 때문에 22년 중반 이후 1년만에 소멸하였다.
[13]
그래서 정량적으로만 보면 렘은 인기투표에서 미코토의 절반 정도의 시기만 굴렀음에도 커리어가 그녀의 1.6배나 된다. 허나 렘 전성기 때가 미코토의 그 때에 비해 수상 경력을 쌓기 수월했다는 정성적인 변수를 고려할 경우 둘은 거의 대등하며, 이것이 모토판의 일반적인 평가다.
[14]
2010년대 후반 ~ 2020년대 초반의
렘 왕조 치세 7년은, 바로 다음 시대이지만
한국의 기존 씹덕들에겐
백년국치 수준으로
이미지가 나쁘다.
갓세계물발
라노벨 하향평준화, 오덕 매체의 양지화로 인한
얼치기 팬 증가,
코로나19발 신작 감소,
트페미 양산과 젠더 갈등, 씹덕
모바게 쪽
갓겜충의 활보 등이 그 이유.
[15]
일본의
무로마치-
센고쿠 시대와
에도 막부,
한국의
고려와
조선,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 같은 케이스. 모두 전대보다 후대 왕조가 객관적으로 국력이 더 셌지만, 후대 왕조 말기의 병폐만 현대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공통적으로 대외적인 이미지는 전자가 훨씬 좋고, 현 시대 문화에 남긴 영향은 후자가 압도적이다.
[16]
이는 미코토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쿠로코나 사텐도 96강 탈락자였기 때문에 재도전권이 주어지는 등 초전자포 진영에 여러모로 득이 되었다.
[17]
초대
국사모 결선에서 사이모에 우승자
카가미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기에 내린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다.
[18]
케이온! 진영 전체의 연합이었는데, 미코토와 불과 30표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19]
웃기게도 아스타롯테 위그바르 역시 8강에서
에리카 하르트만을 만나 탈락했으며 에리카는 유일한 비마마마 캐릭터이자 4강 멤버들 중 최약체였고 결국 사쿠라 쿄코에게 압살당했다.
[20]
11년에는 마미가 4강에서 마도카, 결승에서 쿄코를 잡고 우승했으며 사야카도 8강에서 마도카에 졌다. 13년에는 마도카가 4강에서 쿄코, 결승에서 사야카를 이기고 우승했으며 사야카는 절친에게 두번 졌지만 대신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선배를 8강에서 잡아냈다.
[21]
가장 규모가 큰 대회는 사실 투표자 수가 40만명 이상도 갔던
Bilibili Moe였다. 그렇지만 이 대회가 국사모보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문서 참조.
[22]
국사모 통산 결승 진출이 총 5회로, 2년 연속 결승 진출 기록은 그녀 뿐만 아니라 천사도 가지고 있다.
[23]
이 때문에 샤나는 데뷔 최초로 2년 연속 모토 무관에 빠지게 된다. 이 점까지 들고 올 필요도 없이 국사모의 예시만 봐도 이는 명백한데, 통산 43패 중 12년까지 누적 패배보다 13년 이후 각 해의 패배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미코토의 47패를 넘지 않았다는 점과 9년 평균 5패 미만이라는 점이 경이로울 뿐.
[24]
마키세 크리스,
카시와자키 세나,
유우키 아스나,
유키노시타 유키노,
타카나시 릿카,
지탄다 에루,
토키사키 쿠루미 등. 크리스-유키노-에루-쿠루미는 15년 이후에야 포텐이 터졌고, 아스나는 데뷔 8년차에
메이저 모토 우승을 할 수 있었으며, 예외였던 마시로는 미코토의 JC 직속 후배였다.
[25]
선행 주자였던 미코토는
케이온!의 모토 리셋 직후 준동한 모든 반 JC 세력을 처음부터 정리해내야 해서, 데뷔 후 4년이 넘은 2013년 초 성립전이 마무리된 직후에야 왕조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반면 후발 주자로 비교되는 렘은 미코토의 쇠퇴 당시 세력 구도를 그대로 승계받아
제로부터 시작하는 입장이 절대 아니었고, 데뷔 후 3년차인 2019년 중반에 신성전이 마무리되며 8흉수로 대표되는 신질서가 잡혔다.
[26]
관련 여담으로 중국인들이 여기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모에소녀위키의 유저 '야토가미 마카'와 '샤오한스카디'를 중심으로 한 두 세력이 츤데레포의
인기투표 전적 항목에서 대규모
토론이라 쓰고
병림픽으로 읽는다을 열었다. 너무 싸움이 커졌는지
QQ와
바이두 티에바에서도 화제가 되었고, 결국
모에소녀위키에서는 사태 해결을 위해 관리자가 캐릭터별 모토 전적 데이터를
일괄 천안문해버렸다(...)
[27]
유키노 역시 데뷔 이후
역내청 2기가 방영하는 2015년 이전까지 이런 상황을 겪었다.
[28]
국사모, 아니 전체
모에 토너먼트 역사상 이런 극적인 순위 상승을 이룬 사례는 16-17년
국사모의
카토 메구미나 22-23년
BGC의
토키사키 쿠루미 정도밖엔 없는데, 이 두 사례는 부정투표 논란이 거세기 때문에 순수 캐릭터 파워로 이뤄낸 건 미코토와 14-15시즌 유키노가 유이하다.
[29]
샤나의 2010 국사모 리그 성적은 48승 1패에, 목걸이만 3개를 독식했다.
[30]
10시즌의 미오는 모토 역사 전체로 봐도 역대급 강캐였다. 미코토 등 역대 츤데레들에겐 재앙 수준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히타기나 카나데 등 초대형 신인들도 털어먹으며 3대 메이저 모토 중 2개를 혼자 먹은 최종보스였으니.
[31]
이 승리로 천사는 국사모 최초의 전승 신화를 달성했고, 다음 시즌에도 승승장구하며 112연승까지 한다. 반면 작년 우승자인 미오는 인기가 1년 만에 매우 떨어져, 16강에서 재작년 우승자
카츠라 히나기쿠에게 발렸다.
[32]
당시 결승 득표 맵에서 보면 알겠지만, 중국은 당시 샤나를 지지했다. 이후 모토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시점이 되어서야 중화권은 미코토를 적극 푸쉬하기 시작한다.
[33] 유클리우드는 작품의 마이너한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국사모 한정으로 방영 당시엔 잠깐 반짝했다. [34] 2010년대 초중반 국사모에서 저 두 명이 벌이던 무쌍이 워낙 모토계에서 유명했기 때문에, 이런 짤이 돌기도 했다.
[35] 자고로, 카나데는 국사모에서 미코토에게 7승 4패로 상대 전적이 크게 앞선다. [36] 2015년 이후 우승자가 정규 시즌에 출전 금지됨에 따라 우승자들만이 참여하는 대회. [37] 이미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시대의 흐름이 츤데레에게 너무 안 좋아졌다. 게다가 이 해 방영된 어마금 3기는 여러 가지 악평을 들었고, 미코토는 애니 버프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38] 물론 그럼에도 미코토는 렘에게 동양권 국가에서 인지도에서 항상 앞서 왔다!
[39] 참고로 역대 국사모에서 모든 예선 총합 1위는 최종적으로 우승에 실패했었다. 이 징크스는 같은 해 남성부의 시로가네 미유키가 최초로 깼다. [40] 21년 남성부에서도 토가시 유타가 준우승까지 할 정도로 특히 중2코이가 2020년대 국사모 말기에서 이변을 일으키고 다녔다. [41] 이 당시(23년 초) 렘은 모토계에서도 운명하기 직전의 상태여서 거기까지 온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해당 결승은 실질적으로 미코토와 바이올렛의 싸움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둘의 득표수를 합쳐도 그녀를 못 넘는 압승이 나온 것. [42] 실제로 2017년 미코토는 겨우 무관을 면할 정도로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고, 이듬해 반등의 여지가 조금 보이는 듯 했다만, 다시 2019년부터 완전히 몰락하여 국사모 밖에서는 현역이 아닌 수준이 되었다. [43] 실제로 여러 중국 커뮤니티에서는 22년 초 미코토의 우승은 힘들다고 자조했었다. 그러나 그 예상을 깬 데는, 상술했듯 그녀가 인기투표계에서 무명에서부터 천천히 비상하고, 이후 서서히 추락했었기에 오래된 팬층을 많이 남겨서였다. 지금 시점에서 결승전 완승 서사까지 비교하면 23시즌 T1의 스토리와도 비슷하다. [44] 일레이나는 결선 2회전에서 유키노에게 패하고, 패자조 3R에서 바이올렛에게 패해 완전 탈락했다. 저 둘이 미코토에게 잡힌걸 감안하면 일레이나가 최종 결승까지 가도 미코토를 이길 가능성은 적었다. [45] 2022년 여성부와 남성부, 2023년 여성부. 이들 모두 미코토처럼 수십번째 시드로 우승을 차지했다.
[33] 유클리우드는 작품의 마이너한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국사모 한정으로 방영 당시엔 잠깐 반짝했다. [34] 2010년대 초중반 국사모에서 저 두 명이 벌이던 무쌍이 워낙 모토계에서 유명했기 때문에, 이런 짤이 돌기도 했다.
[35] 자고로, 카나데는 국사모에서 미코토에게 7승 4패로 상대 전적이 크게 앞선다. [36] 2015년 이후 우승자가 정규 시즌에 출전 금지됨에 따라 우승자들만이 참여하는 대회. [37] 이미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시대의 흐름이 츤데레에게 너무 안 좋아졌다. 게다가 이 해 방영된 어마금 3기는 여러 가지 악평을 들었고, 미코토는 애니 버프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38] 물론 그럼에도 미코토는 렘에게 동양권 국가에서 인지도에서 항상 앞서 왔다!
[39] 참고로 역대 국사모에서 모든 예선 총합 1위는 최종적으로 우승에 실패했었다. 이 징크스는 같은 해 남성부의 시로가네 미유키가 최초로 깼다. [40] 21년 남성부에서도 토가시 유타가 준우승까지 할 정도로 특히 중2코이가 2020년대 국사모 말기에서 이변을 일으키고 다녔다. [41] 이 당시(23년 초) 렘은 모토계에서도 운명하기 직전의 상태여서 거기까지 온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해당 결승은 실질적으로 미코토와 바이올렛의 싸움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둘의 득표수를 합쳐도 그녀를 못 넘는 압승이 나온 것. [42] 실제로 2017년 미코토는 겨우 무관을 면할 정도로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고, 이듬해 반등의 여지가 조금 보이는 듯 했다만, 다시 2019년부터 완전히 몰락하여 국사모 밖에서는 현역이 아닌 수준이 되었다. [43] 실제로 여러 중국 커뮤니티에서는 22년 초 미코토의 우승은 힘들다고 자조했었다. 그러나 그 예상을 깬 데는, 상술했듯 그녀가 인기투표계에서 무명에서부터 천천히 비상하고, 이후 서서히 추락했었기에 오래된 팬층을 많이 남겨서였다. 지금 시점에서 결승전 완승 서사까지 비교하면 23시즌 T1의 스토리와도 비슷하다. [44] 일레이나는 결선 2회전에서 유키노에게 패하고, 패자조 3R에서 바이올렛에게 패해 완전 탈락했다. 저 둘이 미코토에게 잡힌걸 감안하면 일레이나가 최종 결승까지 가도 미코토를 이길 가능성은 적었다. [45] 2022년 여성부와 남성부, 2023년 여성부. 이들 모두 미코토처럼 수십번째 시드로 우승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