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13:23:46

문명 6/등장 문명/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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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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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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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inese_(Civ6)_19.06.png
중국
China
문명 특성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Chinese_%28Civ6%29.png
왕조 주기론
(Dynastic Cycle)
유레카와 영감은 사회 제도 및 과학 기술에 40%가 아닌 50%의 상승 효과를 제공합니다. 불가사의를 완공하면 해당 불가사의 시대의 무작위 유레카와 영감을 하나씩 얻습니다.
고유 유닛 파일:external/hydra-media.cursecdn.com/Icon_unit_chinese_crouching_tiger.png
와호
(Crouching Tiger)
중국 특유의 중세 시대 유닛입니다.
사정거리가 1이고 매우 강한 전투력을 가진 원거리 유닛입니다.
고유 시설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Great_Wall_%28Civ6%29.png
만리장성
(Great Wall)
중국 특유의 만리장성을 건설할 수 있는 건설자 능력을 잠금 해제합니다.
금 +2를 제공합니다.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서로 연결된 만리장성 타일에는 금 보너스를 제공합니다.
기술 발전표의 진전에 따라, 연결된 만리장성 타일에 문화 및 관광이 추가로 부여됩니다.
제국 국경을 따라 일렬로 건설해야 합니다.
(몰려드는 폭풍) 자연재해로 의해 약탈당할 수 있지만, 파괴되지는 않습니다.
[ 역사적 배경 펼치기/접기 ]
중국은 문명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중국의 발명품은 종이, , 낚시얼레, 화약, 나침반, 격벽, 놀이용 카드, 유정, 목판 인쇄, 비단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또한 중국은 유교, 도교, 제례, 이족의 비마교를 비롯한 위대한 종교와 묵가, 법가, 자연주의, 신도교 등의 위대한 철학을 문명에 선사해 주었습니다. 시내암 우청안 등의 중국 소설가, 한간 및 마원 등의 화가, 그리고 위양보 및 채염 등의 작곡가는 문명을 매우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한 중국은 노예, 일부일처제, 간자 행위, 전복, 정치 선전, 도시화, 능지처참의 개념을 도입한 국가입니다.

기원전 475년경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이어진 소위 ' 전국시대'의 고대 중국에서는 일곱 왕국(제, 초, 진, 연, 위, 한, 조)이 계속해서 무력 충돌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진나라의 왕인 영정이 중국을 통일하는 위엄을 달성했고 마지막 적군인 기나라를 정복한 후 자신을 진시황(진나라의 초대 황제)이라 선언했습니다. 진시황은 찬란했던 재위 기간 동안 고서를 불태우고 그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산채로 매장시켜 버렸습니다. 당시에는 전국시대로 인해 진보 철학과 자유로운 철학과 사고들이 복잡하기 얽힌 제자백가가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었습니다. 진나라는 대규모의 도로 및 운하 건축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또한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만리장성을 건설하기 시작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물론 성공하지 못하고 기원전 210년에 승하했습니다. 장안의 영묘에 안장되고, 진시황의 묘를 건축하기 위해 700,000명의 '무보수 노동자'가 투입되었으며 유명한 병마용이 왕을 근위했습니다. 하지만 진시황 사망 이후 진나라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207년, 평민 출신의 반군이자 태생이 말썽꾼이었던 유방은 야망에 부푼 초나라의 장군, 항우와 함께 진시황의 무능한 후계자를 왕좌에서 밀어내고 동맹을 배반한 후 한 왕조를 세웠습니다. 신 왕조에 의해 잠시 방해를 입기는 했지만 한나라는 언어 통합, 문화적 실험, 정치적 표현, 경제 번영, 탐사 및 확장, 그리고 기술 혁신의 시대를 통치해 나아갔습니다. 좋은 시절이 이어졌습니다. 무제가 흉노 연합군을 초원에서 박살내고 중국의 전통을 새롭게 정비하면서 태평성대가 찾아왔습니다. 한나라 상인들은 멀게는 파르티아 제국 인도까지 진출했으며 한나라의 유적지에서는 로마인들이 제작한 유리공예품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나라 황제들은 재향 군인들의 경작 공동체를 서부 평야로 분산시켜 중국 내륙의 비단길을 정착시켰습니다.

조조의 집권은 한 황제의 몰락을 의미했습니다. 서기 208년, 조조는 황제의 최측근이었던 삼공을 혁파하고 본인이 직접 재상의 직위에 올랐으며 215년에는 황후와 이혼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맞이하도록 헌제에게 강요했습니다. 한의 '천명'이 다했음을 보여주는 예언과 징후가 목격되었고 헌제는 220년 12월에 조조의 아들인 조비에게 선위했습니다. 조비는 위 왕조를 선언했고 통일 중국은 곧 다시 분열되었습니다.

황건의 난에 이어 60년 동안 이어진 ' 삼국시대'(중국학자들의 '뛰어난' 창의력을 토대로 명명됨)에는 세 왕국이 진과 한 같은 통일 제국을 재건하기 위해 경합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위, 촉, 오로 이루어진 삼국은 이를 달성할 수 없었으며 막상 통일을 실현한 나라는 진나라였습니다. 사마염 조환에게 위나라의 왕위를 내놓도록 강요했습니다. 위나라는 뛰어난 군사 작전으로 ''을 263년에 ''를 279년에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진나라는 황세자 간의 집안 싸움으로 매우 약화된 상태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북부 및 서부 지방에 대한 지배력을 잃고 동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 한 번 중국학자들이 '창의력'을 발휘하여 명명한 오호십육국 시대가 439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피바다를 토대로 이루어진 몇 차례의 통일에 대한 노력이 있었지만, 중국 대륙은 계속 분열 상태가 지속되다가 589년에 수나라로 통일됩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세워진 당나라는 907년까지 통일 중국의 황좌를 지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나라와 통치 방식이 비슷했던 당나라는 상업과 외교를 강조하여 안정과 번영을 실현했으며 종교와 문화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수나라에서 시작한 대운하의 건설이 완공되었고 비단길이 다시 개방되었으며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특히 개정된 법으로 인해 여성의 재산권이 확대되었고 정부 관료 선출을 위한 과거제가 시작되었으며 약간의 혁신이 목격되었습니다. 세금은 계급에 따라 표준화되었고 모두가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중국 최초의 인구 조사가 시행되었습니다. 이백 두보 등의 뛰어난 시인들이 당대를 찬양했으며 중국 문학은 향후 몇백 년에 걸쳐 큰 발전을 이룹니다.

하지만 당 제국은 100년에 걸쳐 계속된 자연 재해에 몸살을 앓았습니다. 황허 강과 대운하가 범람했고 가뭄의 확산으로 최악의 기근이 발생했으며 경제는 붕괴되었습니다. 농산물 생산량이 절반으로 감소되었고 절망에 빠진 백성은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지도자를 원했습니다. 907년에 끝이 없는 반란에 지친 주온은 당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폐위시켰습니다. 그는 과거 소금 밀매상이었다가 군부 총독의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이었습니다. 드디어 960년까지 지속된 오대십국(다섯 왕조와 10개의 왕국) 시대가 들어서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어진 400년 동안 다섯 왕조(, , , 서하)는 재통일된 중국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원은 몽골인들을 이끌고 만리장성을 넘어간 쿠빌라이칸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각 왕조의 기술적 발견, 철학적 통찰력과 사회적 진보 요소가 다양하게 중국 대륙 문명에 추가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문명의 대권을 차지한 나라는 바로 명 왕조였습니다.

중국 내부에서는 몽골인이 통치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습니다. 1340년대의 기근과 역병으로 더욱 감정이 악화되었으며 결국에는 다수의 농민이 봉기하였습니다. 하늘이 쿠빌라이의 후손들을 버린 것은 확실했습니다. 가난한 소작농에서 반군 지도자의 자리까지 올라간 주원장(현재 홍무제라 알려짐)은 1368년에 현재 북경으로 알려진 당시 수도를 탈환한 후 자신을 명나라의 황제로 선포했습니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주원장은 일곱 혹은 여덟 형제 중 막내였으며, 여러 명의 형제가 굶주린 가족을 살리기 위해 팔려갔다고 합니다. 범람한 황허 강이 마을을 덮치고 남은 가족이 역병으로 목숨을 잃자 주원장은 불교 사찰에 몸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 조로아스터교의 반란군을 상대로 보복을 자행 중이었던 몽골군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주원장은 자연스럽게 반군에 참여하게 되었고 30세의 나이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부르는 법이죠.

명 왕조는 중국에 황금기를 가져왔습니다. 왕좌를 차지한 태조(복잡한 인물을 위한 두운체 이름으로 한 왕조를 세운 첫째 임금에게 붙이던 묘호)는 여러 가지의 정책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이전 왕조부터 황국 안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온 환관의 출세길과 영향력이 제한되었습니다. 나중에 명 왕조가 직면한 몇 가지 문제는 환관이 영향력을 되찾아 사실상 동등한 행정부를 구축한 데 기인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 체제에서는 상류층, 농부, 장인 및 상인, 이렇게 4개의 계급이 인정되었고 각 계급에는 나름의 권리와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후대의 명 황제들은 상인 계급에 더 많은 혜택을 부여했으며,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국가를 위한 부와 세금이 창출된다고 여겼습니다. 몽골의 위협을 막아내는 일 외에도 한국 및 일본과의 전쟁으로 많은 비용이 지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자연 재해가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640년에는 농민 집단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세금을 내기는커녕 끼니를 때우기조차 힘들었으며 패배가 잦았던 명의 군인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에는 ( 만주족) 왕조가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유럽인들이 풍파를 일으키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 왕조는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마르코 폴로와 가끔씩 상인과 모험가들이 뒷문을 통해 중국을 드나들기는 했지만, 1513년에는 조르제 알바레스라고 칭하는 포르투갈인이 중국 연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명 황제를 속여 마카오에 무역을 위한 '소수 민족 거주지'를 건설할 수 있도록 인가를 얻었으며 1557년에는 이곳의 초대 총독이 업무에 착수했습니다. 한편 청나라는 정복 사업이 활발하지 않아 정치와 경제가 안정적이었습니다. 도시는 계속 성장했고, 문맹률이 낮았으며, 정부가 지원하는 출판 산업과 내적 자아에 대한 평화로운 성찰을 강조하는 유교의 확산으로 창의적인 예술과 철학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서예, 회화, 시, 연극, 조리 양식을 비롯한 전통 예술과 공예가 다시 활성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가신 외부인들은 계속해서 내정에 간섭하려 했습니다. 19세기 초가 되자 중국 제국은 유럽,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압도적인 해군, 성능 좋은 무기, 서로 간의 전투를 통해 연마한 탁월한 통신 기술과 전략을 갖춘 식민 강대국들은 청나라 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무역을 장악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했습니다. 1842년, 청은 영국을 상대로 제1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하여 악명 높은 난징 조약에 강제로 서명해야 했습니다. 이후로도 계속된 '불공정한' 무역 조약으로 인해 1900년에는 청의 경제가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발 빠른 근대화를 실현하고 식민지 전쟁에 참여한 일본은 한국과 대만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하도록 청에 강요했습니다. 청의 통치자는 유명무실한 존재로 남은 반면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강대국들은 중국 대륙 전체를 독점적인 '세력권'으로 분할했습니다. 한편 미국은 청을 상대로 일방적인 '문호개방정책'을 선언했습니다.

중국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1899년, ' 의화단'이라는 인민주의단체에서는 청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한 의화단 운동을 시작했지만 안타깝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1901년의 참담한 평화 조약에서 의화단의 공격을 받은 '8개국'은 의화단을 지원한 청 정부의 모든 인원을 처형하고 수도의 외국 부대 주둔을 위한 여건을 제공하도록 강제했으며 연간 국세 수입보다 높은 보상 비용을 청구했습니다. 나라 안에서는 시민 소요가 확산되었고 서태후는 지방 총독들로부터 개혁 제안을 소집했습니다. 비록 획기적이고 전면적인 개혁안이 성공적으로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1908년 11월에 황제가 갑자기 승하했고 다음 날에는 서태후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둘은 비소 중독으로 암살되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수많은 반란 및 모반 사태에 이어 1912년에는 융유 황후가 어린 푸이 황제를 설득하여 퇴위하도록 했습니다. 이로써 2,000년이 넘게 지속되었던 중국 제국이 막을 내렸으며 중국은 경쟁과 피에 굶주린 군 지도자들로 표현되는 또 다른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 개요2. 지도자3. 고유 요소
3.1. 문명 특성3.2. 지도자 특성3.3. 와호3.4. 만리장성
4. 운영
4.1. 진시황(천명)4.2. 진시황(통일한 자)4.3. 쿠빌라이 칸4.4. 잘 어울리는 승리 유형
5. 변경사항
5.1. 흥망성쇠5.2. 몰려드는 폭풍5.3. 뉴프론티어 패스5.4. 2021년 4월 최종 밸런스패치
6. AI
6.1. 진시황6.2. 쿠빌라이칸6.3. 측천무후6.4. 영락제
7. 도시 목록8. 자연 환경9. 시민 이름10. BGM
10.1. 시대별 BGM10.2. 인게임 BGM
11. 대사 목록
11.1. 진시황11.2. 쿠빌라이칸11.3. 영락제11.4. 측천무후
12. 스플래시 아트13. 여담

1. 개요


5번째로 공개된 문명 6 등장 문명. 미묘하게 진시황답지는 않지만 어쨌든 중국 유저들이 그렇게 바랐던 과학적인 특성이 있는 문명으로 등장했다.
뉴 프론티어 패스에서 몽골과 중국의 공동 문명 지도자[1] 쿠빌라이 칸이 추가되었다. 쿠빌라이 칸은 몽골 제국의 5대 카간(대칸)이었을 뿐만 아니라 원나라의 초대 황제였기에 중화 왕조의 황제로도 평가되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리더 패스에서 영락제 측천무후, 기존 지도자인 진시황의 페르소나가 추가되어 총 5명의 지도자를 보유하게 되었다.[2]

2. 지도자

2.1. 진시황

파일:Chinese_(Civ6)_19.06.png
진시황(천명)
Qin Shi Huang (Mandate of Heaven)
파일:진시황(문명 6).png
파일:진시황(통일한 자) 중국 색상.png
진시황(통일한 자)
Qin Shi Huang (Unifier)
파일:문명6_진시황통일.png
인용문
"중국이 전쟁으로 끊임없이 고통받는 이유는 제후와 왕에게 있다. 짐이 이를 바로잡겠다."(천명)
(天下汹汹之大乱,皆由于封建。寡人即将一之。)[3]

"짐은 제국의 모든 저서를 수집했으며, 쓸모가 없는 것들을 전부 태웠다." (통일한 자)
(寡人盡收天下之書,其不中於用者皆焚之。)
소개
진시황이시여, 당신의 가장 큰 힘은 당신의 백성에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당신이 통일한 중국의 큰 벽과 우뚝 솟은 불가사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불가사의를 열심히 그리고 빠르게 만드는 당신 백성들의 손길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백성을 잘 보호하면 당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지도자 특성
(천명)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Qin_Shi_Huang_%28Civ6%29.png
초대 황제
(The First Emperor)
고대 및 고전 시대 불가사의를 건설하는 경우 건설자의 건설 횟수를 소진하여 원래 불가사의 비용의 15%를 기여할 수 있습니다.
(몰려드는 폭풍) 건설자에게 1회의 추가 건설 횟수가 부여됩니다. 석조기술로 운하가 잠금 해제됩니다.
지도자 특성
(통일한 자)
파일:문명 6 진시황 페르소나.png
삼십육계
(Thirty-Six Stratagems)
근접유닛이 야만인 전향 행동을 받습니다. 이 행동은 야만인 유닛을 아군 유닛으로 전향시키지만 이 행동을 한 근접 유닛은 제거됩니다.
안건
(천명)
만리장성
(Wall of 10000 Li)
불가사의를 위해 경쟁하지 않는 문명을 좋아하며,[4] 가능한 때마다 불가사의를 건설합니다.
불가사의를 다른 문명에 빼앗기는 것을 싫어합니다.
안건
(통일한 자)
사해
(Sihai)
모든 야만인이 자신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야만인 전초기지를 파괴하는 문명을 싫어합니다.
[ 역사적 배경 펼치기/접기 ]
중국을 통일한 무자비한 독재자 영정이 아니었다면 전국 시대는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책을 태우고 말을 듣지 않는 학자들을 처형한 영정은 만리장성의 기틀을 다지고, 국가 차원에서 도로와 수로를 정비했고, 먹으면 불로불사한다는 약을 찾아다녔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그는 스스로의 업적에 감탄해 진시황으로 개명했습니다. 이후로 2,000년 동안 중국의 통치자들은 진시황의 업적을 기리며 스스로 황제라 칭합니다. 그리고 무덤의 병마용은 현대인에게 진시황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서 사기를 보면 영정은 기원전 259년 진의 장양왕과 후궁 조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장양이 재위 3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13살의 영정이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당시 중국은 이른바 '전국 칠웅'인 연나라, 위나라, 제나라, 조나라, 진나라, 초나라, 한나라가 패권을 놓고 다투던 시기라 승상 여불위가 영정 대신 국사를 좌지우지했습니다.

영정이 왕이 되자 여불위는 곧 영정을 몰아낼 계책을 세웠습니다. 그는 노애라는 자를 궁정에 불러 몰래 영정의 어머니 조씨를 유혹하도록 했고 조씨는 노애와의 사이에서 2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기원전 238년에 영정이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함양을 떠나자 여불위의 지시를 받은 노애가 조씨의 옥쇄를 빼앗고 군대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영정은 이에 대장군 장평을 보내 반도를 섬멸케 하였고 전투에서 패배한 노애는 도망쳤습니다. 영정이 노애의 목에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자 결국 붙잡혔고, 노애의 동조 세력을 모두 참수한 영정은 노애를 능지처참하고 3대를 멸했습니다. 조씨는 죽을 때까지 감금했으며 여불위는 붙잡히기 전에 음독자살했습니다. 이 반란은 기원전 235년에 끝났습니다.

몇 차례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영정은 마침내 타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기원전 230년경 먼저 한나라를 정복한 진에는 뛰어난 장수가 많았으며 왕 또한 병법에 능했습니다. 영정은 또한 무자비한 군주로 악명을 떨쳤는데, 기원전 229년에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조나라에 모종의 자연재해가 발생하자 휘하 장수 왕건을 보내 1년 만에 조나라를 정복했습니다. 기원전 223년에는 연나라, 위나라, 초나라를 정복했습니다. 바보가 아니었던 제나라 왕은 진나라와 국경을 맞댄 서쪽을 수비하기 위해 200,000명의 무장 농민을 보냈는데 영정이 북쪽에서 침공해 왕족을 사로잡고 제나라를 합병했습니다. 이후로 영정은 진시황으로 개명합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입맛대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먼저 세습 봉건제도를 없애고 전국을 군과 현으로 구분해 자신이 직접 다스렸습니다.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하고 기원전 210년경 반량전을 발행해 조세가 편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제국 전역에 새로 닦은 길에 맞도록 마차 바퀴의 폭도 통일했습니다. 문관 이사를 통해 법률 문자를 통일해 역사에 길이 남을 통일된 중국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진시황의 이런 업적은 그가 중국 전역에 뿌리를 내린 각종 철학의 박해로 다소 희석되었습니다. 전국 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혼란의 시기였지만 중국 문화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철학자들이 나타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유가와 도가의 영향을 받은 수백 가지 학파가 생겨 문화 황금기가 도래했습니다. 만민이 평등함을 강조한 묵가, 자연주의와 오행을 다루는 음양오행설, 중농주의, 제설 통합주의, 논리학 등 중국의 문화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준 많은 사상이 이때 태어났습니다. 백성들이 서로 다른 사상을 놓고 논쟁하는 것이 싫었던 진시황은 법치주의를 제외한 모든 사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탄압했습니다.

기원전 213년, 점차 진시황의 신임을 얻은 승상 이사는 황제를 종용해 천문학, 점술, 의학, 농업 및 역사서를 제외한 모든 책을 모아다 태웠는데 이 사건이 바로 분서갱유입니다. 특히 시경이나 서경을 가지고 있다가 적발되면 무겁게 처벌했습니다. 사기를 보면 진시황은 금서를 가지고 있다가 적발된 460여 명의 학자를 생매장했다고 합니다. 현대 중국 역사가들은 이를 유가에서 꾸며낸 이야기로 치부하지만 상당한 이야깃거리임은 틀림없습니다. 진실이야 어쨌든 진시황은 학계를 굴복시켜 황제의 권위를 오롯이 하려고 했음은 분명합니다.

이런 업적을 이룬 진시황은 말년에 수하들을 보내 불로불사의 약을 찾아다녔는데, 자신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천년만년 즐기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바다 건너로도 많은 이들을 보냈는데, 대부분 실패했다고 보고하기가 두려워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황제 자신도 세 번이나 '영생을 주는 산'이 있다는 전설의 섬을 찾아갔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진시황은 기원전 210년에 동쪽 지방을 여행하다 세상을 떠났고, 황제의 죽음이 알려지면 중국 전체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이 두려웠던 승상 이사는 진시황의 행렬이 수도에 돌아와 진시황의 둘째 아들 호해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할 때까지 진시황의 죽음을 숨겼습니다.

2.2. 쿠빌라이칸

파일:Chinese_29_29.webp
쿠빌라이칸(중국)
Kublai Khan (China)
파일:중쿠.png
인용문
"이제부터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합니다. 우리는 모든 국가가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5]
(Одооноос эхлэн бие биетэйгээ найрсаг харилцаатай байгтун. Бид бүх улс орнууд нэгэн гэр бүл гэж үздэг болой.)
소개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이시여, 할아버지에 대적할 만한 제국을 규합하십시오. 당신은 이득을 얻기 위해 굽혀야 할 때와 공격해야 할 때를 압니다. 당신의 기지와 정치적 위용은 전투 실력만큼이나 정복에 요긴히 쓰일 것입니다.
지도자 특성 파일:쿠빌라이중.png
게레지
(Gerege)
모든 정부에 경제 정책 슬롯이 1개 더 추가됩니다. 다른 문명의 도시에 처음으로 교역소를 세우면 무작위 유레카 및 영감을 얻습니다.
안건 팍스 몽골리카
(Pax Mongolica)
강력한 군대와 높은 턴당 금 생산량을 보유한 문명을 좋아합니다.
군사력이 약하고 수입이 낮은 문명을 싫어합니다.
[ 역사적 배경 펼치기/접기 ]
누군가 몽골 제국을 확장하고 통일할 수 있다면, 그건 징기스칸의 손자일 것입니다. 서기 1260년부터 1294년까지 통치했던 쿠빌라이칸은 한반도부터 현재의 바그다드 국경 끝에 달하는 제국을 세웠습니다.

서기 1215년, 쿠빌라이는 툴루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유능한 기마병이자 전사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군사 작전에 참가했고 십 대에 이미 훌륭한 투사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학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쿠빌라이는 원나라의 황제가 된 후 도움이 될 중국 예술과 문학을 배우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쿠빌라이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왕위 계승 서열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드디어 대 칸의 칭호가 쿠빌라이의 큰형인 몽케에게 넘어왔습니다. 쿠빌라이는 처음에 형의 통치를 지지했고 그 충성심으로 일한(총독)의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형에게 배울 것을 배우고, 동맹을 형성하고, 고문들을 모으고, 필요할 때 전장에 나가 전사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서기 1259년 큰형의 사망 후 대 칸의 자리를 두고 동생인 (쿠빌라이보다 인내심이 매우 부족한) 아리크부카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아리크부카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쿠빌라이는 중앙아시아 전역에 걸쳐 더 많은 자원과 여러 제후의 지지를 얻어 대 칸이 되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합니다.

하지만 쿠빌라이는 “대 칸”이 된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던 쿠빌라이는 할아버지 유산의 잔재인 분열된 제국을 보고, 다시 한번 통일을 달성하고 더 큰 제국을 만들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는 중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중국에 대한 최초 침공은 5년이나 걸렸지만, 쿠빌라이는 서기 1276년 남송의 수도인 린안을 차지할 때까지 샹양과 판청을 시작으로 착실하게 중국의 도시를 점령해나갔습니다. 관대한 지도자였던 그는 중국의 어린 황제와 그 어머니의 목숨을 살려주었고 자신의 궁궐에 포로로 들였습니다. 1278년 쿠빌라이는 결정적인 해상 전투를 통해 그의 길을 막고 있는 마지막 제후를 물리치고 황제가 되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승리를 통해 그는 중국 전체를 지배한 첫 번째 몽골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원나라를 건국하고 세조가 됩니다.

쿠빌라이는 중국 황제의 전통 의상을 입어 전략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백성과 신하들에게 억지로 자신과 몽골의 방식을 따르게 하는 대신, 그는 손에 박힌 가시처럼 고통은 있지만 참을만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물론 쿠빌라이는 몽골인들이 권력, 특히 정부 고위직을 거머쥐게 했지만 새로운 신하들을 탄압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제국에서는 상인, 장인, 중앙아시아인 및 몽골 귀족이 상위 계급을 차지했습니다. 한족은 중간 및 하위 계급으로 밀려났고 정부 관료로 일할 수 없었습니다. 일부는 행정직 지위를 유지했지만 고등 교육을 받은 자에 한정됐습니다. 그는 다른 종교를 용인했고 유교적 이상을 장려했으며 전통적인 몽골의 왕권제 대신 한족이 익숙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통치하기까지 했습니다.

쿠빌라이는 황제로 재위하는 동안 몇 가지 경제 및 계급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거래 시 지폐 사용을 촉진하고 서방 교역을 장려했습니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서방의 선교사를 수용하는 것과 교황 그레고리 10세와의 친교도 포함됩니다. 또한 니콜로 폴로의 아들인 마르코와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그의 일기에서 쿠빌라이를 긍정적으로 묘사했고 두 사람의 친교는 17년 이상 유지됐습니다. 중국 도자기의 진가를 알아본 쿠빌라이 덕분에 새로운 정권하의 상인과 장인은 부분적 세금 우대 조치를 받았습니다. 귀중한 교역로를 통제 및 보호하는 몽골인의 능력 덕분에 쿠빌라이의 관리하에 경제가 성장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쿠빌라이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자애로운 황제로 보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에게 동의하거나 그의 정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족은 새로운 계급 구조와 그에 따라 높아진 세금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쿠빌라이의 사촌 카이두는 쿠빌라이의 정권 내내 지속적인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대 칸 및 황제 자리를 빼앗으려는 카이두의 수많은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쿠빌라이는 재위 기간 내내 이미 방대한 제국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금방 항복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저항하는 지역도 있었는데, 가끔은 전투 기량보다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일본을 두 번 침략했으나, 일본의 우월한 해군 또는 시기적절한 폭풍인 가미카제(“신이 일으키는 바람”) 때문에 두 번 모두 실패했습니다.

34년간 지속한 쿠빌라이의 치세는 1294년 그가 사망하며 끝났습니다. 비록 79년이나 살았지만, 그가 총애한 아내와 장남의 죽음이 그를 우울증으로 내몰았습니다.

2.3. 측천무후

파일:China2.png
측천무후
Wu Zetian
파일:문명6_측천무후.png
인용문
"인간은 부활할 수 없다. 모든 게 운명이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자들이 계속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死者不可復生,此天命也。然存者有繼著而行,為此為重。)
소개
측천무후, 당신은 초라하게 시작하여 세상의 중심에 서서 중국의 여제가 되셨습니다. 궁정의 권모술수에 굴하지 말고, 그들을 지혜로 압도하십시오. 화가의 붓, 말솜씨, 혹은 독 묻은 단검을 사용해서라도 당신은 적을 밟고 오를 것이며 세상은 당신 앞에 납작 엎드릴 것입니다. 그 이유가 사랑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다를 건 없습니다.
지도자 특성 <colbgcolor=#999999> 파일:문명 6 측천무후.png
나직경
(Manual of Entrapment)
모든 스파이 작전이 1레벨 상승한 상태로 진행됩니다. 공격 스파이 임무가 성공할 때마다 목표 도시가 턴마다 획득하는 문화와 과학, 신앙의 100%를 얻습니다. 방어술 연구 후 무료 스파이와 추가 스파이 최대치를 받습니다. 신앙으로 스파이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안건 궁중 음모
(Court Intrigue)
위협이 되지 않는 문명을 좋아합니다. 강한 군사력을 가진 문명이나 가까이에 도시가 있는 문명을 싫어합니다.
[ 역사적 배경 펼치기/접기 ]
중국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황제의 자리를 차지한 여성인 측천무후는 암살과 조작, 교묘한 궁중 전략을 통해 황좌를 차지했습니다. 궁중의 일에 집중하기는 했지만, 측천무후는 중국의 정치를 귀족의 후원이라는 방식에서 벗어나 더 능력주의 체계로 작동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다들 600년대를 암흑기라고들 부르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건 유럽의 관점일 뿐입니다. 이슬람 세계의 성장에 대해 다루든, 촐라 제국의 통합이 됐든, 다른 세계에서 이 시기는 확장과 상호 연결의 시대였습니다. 중국의 경우에 이 시기는 한나라의 뒤를 이은 당나라라는 거대 제국의 재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은 더 나아가 일련의 다민족 속국을 구축하고 후대에 더 위대한 중국 제국이 등장할 무대를 마련할 예술을 번성시켰습니다.

당나라 시대는 궁중 문화의 시대였습니다. 도자기와 차, 실크로드에서 나오는 모든 이익이 제국의 성공에 이바지했으며 수도인 장안은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였습니다. 후대의 명나라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조공 체제를 통한 보호령은 저 멀리 인도와 이란까지 도달할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시와 예술은 당나라 때 절정에 달했습니다.

궁중 문화에는 궁중의 악당이 필요합니다. 그 자리에 측천무후가 들어옵니다. 측천무후의 가문은 부유한 목재 상인 가문이었고 당시 강력한 가문이 으레 그랬듯 태종 황제 치하의 황실에 딸을 첩으로 보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태종이 죽고 병약한 고종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고종에게는 왕 황후라는 아내가 있었지만, 고종은 첩인 소씨를 좋아했고 소씨와 자녀를 낳았습니다. 왕 황후는 소씨로부터 고종의 관심을 돌리고 궁중에서 측천무후의 지위를 높이려 했습니다. 이는 역효과를 냈습니다. 측천무후가 부상하면서 왕 황후와 소씨 모두 몰락했습니다. 왕 황후는 측천무후의 딸을 침대에서 목 졸라 죽이면서 끔찍하게 몰락했습니다. 항간에는 측천무후가 자기 딸을 죽이고 왕 황후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웠다고도 합니다. 두 사람이 비교적 모호하게 죽은 후, 측천무후는 그들의 혼령이 출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고종에 대한 측천무후의 영향력은 점차 커졌습니다. 특히 고종의 건강이 악화된 이후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측천무후의 영향력은 주로 궁전 음모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한국 북부에 있었던 고구려 정복에도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측천무후는 고종의 모든 회의에 참석하여 진주 장막 뒤에서 조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종이 죽자 그녀의 아들 이현, 즉 중종 황제가 즉위했지만, 곧 중종은 어머니 대신 외척에 호의를 보였습니다. 이에 따라 두 가문 사이에, 그리고 측천무후의 그림자 통치와 정식 통치 간에 충돌이 발생했으며, 이 충돌의 승자는 측천무후였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들을 폐위하고 684년에 그보다 어리고 순종적인 이단, 즉 예종을 즉위시켰습니다.

여기서 측천무후의 권력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690년에 그녀는 공개적으로 명령을 내려 자신을 군림하는 여제로 선포하면서 자신만의 왕조, 주나라를 세우며 중국 유일무이의 여성 황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말년에 기력이 쇠하면서 점점 측근들, 특히 장역지와 장창종 두 형제에게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을 잡으면서 야심이 생긴 두 장씨 형제는 측천무후가 자신들의 세력 밖에 있는 인물과 관계를 맺거나 관직에 임명하면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궁중의 경쟁자들이 장씨 형제를 죽이려고 모의했고 측천무후는 처음으로 자신의 적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장씨 형제가 살해되고 측천무후는 마침내 폐위되었습니다.

대내적으로 측천무후는 자신의 비교적 초라한 출신을 반영하고 그녀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장벽이 되는 여러 가지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측천무후는 여성 공연가를 억제하고 여성의 패션에 제한을 두는 공공 개혁을 시작했지만, 모든 남자들에게 과거 시험을 치를 길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황족의 모든 분가를 제거하고 중국 권력의 초점을 권세가에서 중앙 집중식 관료제로 옮기면서 놀라운 권력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측천무후의 정권은 비밀경찰을 통해 유지되었으며 그녀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은밀한 폭력의 위협이 수반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주로 궁중을 향한 폭력이었습니다. 일반 서민에게 측천무후는 비교적 계몽적인 통치를 펼쳤습니다. 군대를 줄이고, 능력 있는 관리를 진급시키고, 많은 황가의 땅을 서민에게 주었습니다.

대외적으로 측천무후는 불교를 장려하고 심지어 자신을 부처가 될 미륵의 화신으로 선언하기도 했지만, 티벳 및 서부의 투르크족과 공공연하게 충돌했습니다. 티벳이 독립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티벳 제국은 과거에 차지했던 기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측천무후가 투르크 지역을 잠식해 들어갔지만, 서부 유목 세력은 수 세기 후 전성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2.4. 영락제

파일:China4.png
영락제
Yongle
파일:문명6_영락제.png
인용문
"수많은 국가가 백성들을 헤아리지 못한 통치자 때문에 멸망의 길을 걸었다."
(诸國多以人君不恤民事而毀之也。)
소개
세상이 명나라의 위대한 영락제를 기다립니다. 손을 뻗어 세상의 부와 지식을 거머쥐십시오. 당신의 왕국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모두가 당신에게 애원하게 하십시오. 누구도 비난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십시오. 역사는 다시 쓰일 수 있습니다.
지도자 특성 <colbgcolor=#999999> 파일:문명 6 영락제.png
이갑제
(Lijia)
모든 도시가 생산력의 50%를 식량, 신앙 또는 금의 경우 100%로 전환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받습니다.
(흥망성쇠) 인구가 10 이상인 도시는 턴마다 도시의 인구당 금 +2, 과학 +1 및 문화 +1을 받습니다.
안건 원보
(Yinding)
턴당 수입이 지출보다 많은 문명을 좋아하고 턴당 수입이 지출보다 적은 문명을 싫어합니다.
[ 역사적 배경 펼치기/접기 ]
명나라 황제 중 가장 진취적이고 외향형 정책을 폈던 영락제는 명나라 국제 체계의 기반을 구축하고 인프라를 재건했습니다. 그는 정당성을 위한 무자비한 시도를 통해 자신을 의심하는 모든 자의 반대를 격파했지만, 그런 다음에는 외부로 확장하여 전형적인 중국 제국이 되기 위한 지지와 외국의 금을 모았습니다.

명 왕조 시대는 중국에게 있어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겪은 후 수 세기 동안 지속되고 번영할 한족 중심의 권력을 확립한 재통합의 시기였습니다. 명나라는 부유하고 평화로웠으며... 한동안은 진보한 국가였습니다. 명나라는 이웃 나라를 명나라의 위성 국가로 통합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조공 체제를 통해 동아시아의 수많은 지역을 보호 동맹으로 묶었으며, 이는 지역 안정과 유교적 가치의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나라는 안주하며 고립되었습니다. 명나라는 경쟁국보다 앞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결국에는 약해졌고 외국의 금에 지나치게 의존했으며 주변 세상의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영락제의 뜻이 이어졌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락제는 1360년에 주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또 다른 명나라의 위대한 황제인 홍무제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원나라의 잔재이자 서방의 대칸국이기도 한 몽골과 싸웠던 중요한 인물이자 군사령관이었습니다. 주체는 형인 주표에 이어 왕위 계승 서열 2위였습니다. 그게... 소문에 따르면 주체가 황제의 정실의 아들이 아니라 천한 첩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총애를 받은 건 주표였습니다. 이러한 총애는 주표의 가족, 그 아들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주표가 갑자기 죽자 홍무제는 주체가 아닌 주표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했고... 주체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주체는 3년 동안 전쟁을 치르고 승리했고, 자신을 영락제라 칭했습니다. 그런 다음, 조카의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관료들을 숙청했습니다. 평화로운 통치를 수용하라는 유교의 지침을 떠올려보면 이는 상당한 수준이었으며, 많은 학자가 이러한 정권 탈취에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이가 여기에 휩쓸렸습니다. 영락제는 특히 유명한 방효유뿐 아니라 방효유 재임 기간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 모두, 그리고 방효유의 10촌 친척까지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게다가 영락제는 원나라 치세에서 지배적이었던 몽골 문화 형식을 금지했습니다.

그런 다음, 영락제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영락제는 환관의 역할을 확대하여 황제에게 충성하는 비밀경찰인 동창까지 설립했습니다. 또한, 적어도 그의 조카를 역사에서 없애기로 동의한 역사가(영락제를 한국인 후궁이 아닌 황후의 아들로 역사를 고쳐 쓴 역사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와 학자의 역할도 확장했습니다. 이러한 규칙은 새로운 원천, 몽골 국경에 더 가까워 전쟁을 이끌기 더 좋았고 영락제의 옛 전초기지와도 가까운 베이징을 새로운 수도로 인식시키기 위해 건설된 자금성에서도 확장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만리장성을 재건하고 다시 요새화했으며 대운하를 다시 개통했습니다.

영락제의 아버지 홍무제는 고립주의자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립주의는 명나라에 있어 재앙이었습니다. 하지만, 영락제는 그와 반대였습니다. 영락제는 조공 체제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확장했습니다. 그게 바로 정화가 미래의 새로운 조공국을 찾으러 원정을 떠난 이유였습니다. 정화의 원정은 인도, 페르시아 만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이어졌지만, 조공국은 동아시아에서만 나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티벳의 구애였습니다. 티벳은 중국 역사의 많은 부분에서 불교 지식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명나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군사적으로 말하면 영락제는 몽골과 베트남을 공격하여 베트남을 중국 제국에 통합하고 쩐 왕조 귀족의 학살을 촉발했습니다.

또 다른 업적으로는 당시까지의 모든 중국 지식을 요약한 방대한 저작인 영락대전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은 거의 없지만, 그때까지 알려진 모든 것을 모은 모음집이었습니다.

영락제는 1424년 몽골과의 전쟁 중에 64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3. 고유 요소

3.1. 문명 특성

  • 왕조 주기론 - 유레카와 영감의 효과가 10%p 증가[6], (2021년 4월 패치 추가) 불가사의를 완성하면 해당 불가사의의 시대의 무작위 유레카 및 영감을 하나씩 획득
    본작에서 새롭게 도입된 유레카와 영감을 심플하게 강화시킨다. 똑같이 유레카와 영감을 터뜨린다는 가정 하에 대충 1턴씩 다른 문명보다 빠르게 기술이나 사회 제도를 올릴 수 있는 효과를 보인다. 사실 유레카와 영감을 더 잘 터지게 해주는 효과는 없는지라 그렇게까지 와닿는 특성은 아니고 소소한 보너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후반까지 효과가 유효하기에 누적되는 것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도움이 되는 수준은 된다.

    2021년 4월 패치 이후 불가사의 완성에 따른 유레카나 영감 촉발 효과가 추가되어 다소 미묘했던 성능이 올랐다. 특히 건설자를 갈아넣어 고대 및 고전 시대의 고성능 불가사의를 쓸어담을 수 있는 진시황(천명)과 궁합이 아주 뛰어나며, 현대 시대 이후의 불가사의 건설을 통해 점점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영감과 유레카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3.2. 지도자 특성

  • 초대 황제 (진시황 - 천명) - 건설자의 건설횟수 1회 추가, 건설자가 건설횟수를 1회 사용하여 고대/고전 시대 불가사의 건설 진척도를 15%p 늘릴 수 있음
    건설자를 불가사의 건설에 갈아넣는 효과는 관련 정책 카드나 신에게 바치는 기념비 종교관, 브뤼셀의 종주국 보너스 등 불가사의 건설에 보너스를 주는 효과를 전부 중첩해서 받는다. 더 빠른 시설 구축은 더 많은 산출량 획득, 더 빠른 도시 성장으로 이어지므로 문명 특성과 더불어 강력한 내정 문명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사막이 있다면 피라미드를 짓고 거기서 나온 건설자를 다섯 번 갈아넣어 다른 불가사의를 손쉽게 차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대~고전 시대에 얼마나 많은 원더를 확보하느냐가 중국 운영의 핵심이다. 같이 붙어있는 건설자 횟수 증가도 영구적으로 피라미드의 효과를 보는 만큼 유용하며, 상기한 불가사의 가속과 연동해 내정에 여러모로 유용성을 준다.

    명예를 찍고 장군을 뽑아다 일단 정복으로 달리는 게 유리했던 전작의 중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도서관에서 금 좀 받던, 다른 문명에 비해 조금 좋은 내정 능력이 본작에서는 엄청나게 향상되었고,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한 고유 시설 및 유닛에 비욘드 어스에서 가져온 것 같은 불가사의 가속 및 노동자 강화도 붙어서 완전히 내정 문명으로 선회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이는 통일 대업을 이룬 정복 군주 진시황으로서의 모습보다는 만리장성과 병마용, 여산릉 등 장대한 건축물로 유명한 진시황의 이미지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7]
  • 삼십육계 (진시황 - 통일한 자) - 근접 유닛이 야만인 전향 능력 획득, 능력을 사용한 유닛은 제거됨
    근접 유닛 하나로 최대 6기의 야만인 유닛을 얻을 수 있지만, 이론상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근접 유닛 하나로 야만인 유닛 2~3기 정도를 얻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사용법은 야만인 러쉬로 다수의 야만인 유닛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을 때 한번에 전향하는 것. 그 외 게임 중반쯤부터 볼 수 있는 반란군도 야만인 취급이니 여기에 쓸 수도 있다. 또한 도시국가에서 징병한 유닛으로도 전향이 가능하다. 이름이 통일한 자(Unifier; 통합자)인 이유는 진시황이 당시 분열된 중국을 통합하고 진나라를 세웠기 때문. 특성이 야만인 유닛 전향 및 흡수인 것은 그것을 반영한 것이다.
  • 게레지 (쿠빌라이칸) - 모든 정부에 경제 정책 슬롯 1개 추가, 다른 문명의 도시에 처음으로 교역소를 세우면 무작위 유레카 및 영감 획득
    지도자로 쿠빌라이칸을 선택하면 얻게 되는 지도자 특성. 몽골의 쿠빌라이칸과 같은 지도자이므로 특성도 같다.

    우선 경제 정책 슬롯 추가는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해준다. 특히 게임 초반 족장제 상태에서 다른 문명이 신왕과 도시 계획 사이에서 고민할 때 쿠빌라이칸은 가볍게 둘 다 집을 수 있다. 이후에도 경제 정책에는 유용한 정책이 많으므로 꾸준히 도움이 된다. 교역소 보너스는 중국으로 플레이할 때는 교역소 설립이 느릴 수밖에 없으므로 집중적으로 노리기는 어렵지만, 어찌되었건 외국 교역로는 만들게 되어있으므로 보너스 느낌으로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이 효과 역시 10%P 추가 가속 효과를 받는다.
  • 이갑제 (영락제) - 모든 도시에 생산력 전환(식량/신앙 - 생산력 50%, 금 - 100%) 프로젝트 추가, 인구 10 이상인 도시는 턴마다 도시 인구당 금 +2 / 과학 +1 / 문화 +1
    이갑제는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돌리는 도중에 생산력을 다른 자원으로 치환하는 방식이다. 이갑제(신앙), 이갑제(금), 이갑제(식량) 세 가지 프로젝트가 있어 각각의 자원으로 바꿀 수 있으며, 조건 없이 게임 시작부터 돌릴 수 있다. 생산력이 일반적으로 신앙 2배의 가치, 금 4배의 가치를 가졌기 때문에, 이갑제(신앙)이나 이갑제(금) 자체는 25퍼센트 수준의 환산으로 손해지만 이갑제(신앙)으로 극초반에 빠르게 종교관을 확보하거나, 이갑제(금)으로 만리장성이 깔리기 전에 금이 부족할 때 금을 뽑아낼 수 있으며, 이갑제(식량)은 도시가 크기 위해 필요한 잉여 식량을 크게 뽑아낼 수 있어 도시 성장을 빠르게 일으킬 수 있다. 인구 10 이상일 때 받는 과학, 문화 효과는 교육자 핑갈라를 어지간하면 첫 총독으로 고르는 이유와 같을 정도로 사기급 능력이다. 이갑제(식량)과의 시너지로 인해 인구 부스트만 적절하게 이루어져도 캠퍼스, 극장가를 안 지어도 과학, 문화가 평범하게 벌릴 정도이다.
  • 나직경 (측천무후) - 모든 공격 스파이 작전 레벨 +1, 공격 스파이 임무가 성공할 때마다 목표 도시가 턴마다 획득하는 문화와 과학, 신앙의 100% 획득. 방어술을 발견한 후 무료 스파이 1명 획득 및 스파이 상한 +1. 스파이를 신앙으로 구매 가능.
    측천무후는 프랑스의 카트린처럼 첩보에 특화된 특성을 가졌다. 측천무후의 지도자 특성은 특히 공격 스파이에 집중되어 있으며, 스파이 활동을 통해 문명 특성과 연계해서 기술과 제도의 상승을 일으키는 플레이를 권장하고 있다. 개발진은 걸작을 쉽게 훔치는 능력과 만리장성의 관광을 고려할 때 측천무후에게 문화 승리가 가장 적합하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문화와 과학을 50%씩 획득하는 것이었으나, 여러모로 프랑스의 카트린보다도 못하다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었는지 2023년 8월에 신앙까지 포함해 100% 획득으로 바뀌었고 아예 스파이를 신앙으로 살 수 있는 등 큰 상향을 받았다.

    특성 이름인 '나직경'은 측천무후 시대에 모반죄 날조와 정적 고문으로 악명 높았던 관료 내준신(來俊臣)이 어떻게 죄를 덮어씌우는지를 저술한 모략서의 이름이다. '나직(羅織)'은 '없는 죄를 만들어내다', 즉 중상모략의 뜻을 담고 있다.

3.3. 와호

파일:external/hydra-media.cursecdn.com/Icon_unit_chinese_crouching_tiger.png
와호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Crouching_Tiger_%28Civ6%29.png 파일:external/well-of-souls.com/civ6_tiger_cannon1.jpg 파일:external/well-of-souls.com/civ6_tiger_cannon2.jpg
9세기경에 화약을 개발한 중국인들은 불꽃놀이와 아름답고 화려한 폭발물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만 화약을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화약이 전쟁에서도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얼마 안 가 화승총과 대포가 아시아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루용샹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잘 알려진 바는 없지만, 폭격기와 대포 사이의 특정 시점에 '와호'라는 무기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는 화약이 전쟁에서 사용된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 조잡한 장치는 기본적으로 한쪽 끝을 틀어막고 두꺼운 밧줄로 내구성을 보완한 후 포신이 약간 위로 향할 수 있도록 2개의 짧은 다리를 장착한 쇠통이었습니다. 만약 이 짧은 다리를 장착하지 않았다면 포탄이 적을 제압하는 대신 땅에 처박혔을지도 모릅니다. 와호는 명나라 초기 1368년경에 사용되었고 1592년까지 한국에 주둔 중인 일본군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와호는 발포 시 800보의 사거리를 가졌고, 당시 이보다 사거리가 먼 무기가 없었던 만큼 적에게 까다로운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다음 유닛으로 승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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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포
필요한 과학 기술 테크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Machinery_%28Civ6%29.png 기계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Civ6Movement.png
이동력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Civ6StrengthIcon.png
근접
전투력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Civ6Ranged_Strength.png
원거리
전투력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Civ6Range.png
공격
범위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Civ6Production.png
필요
생산력
파일:external/946afca9aacd6f4c7519e9620b2f7efbefec750c59e02cc30f91bdffc33fdac4.png
유지비
2 30 50 1 140 3
기타
특성
원거리 진급을 따름.
중국 고유의 중세 시대 원거리 유닛이다. 영문명인 Crouching Tiger를 직역한 듯 와호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사실 이 무기의 정식명은 호준포(虎蹲炮)다. 역자들의 조사 부족이 느껴지는 아쉬운 번역. 하지만 도전 과제 가운데 '와호장룡'과 연관된 퀘스트도 있으니 그 쪽에 맞췄을 수도 있다. 명나라 때 사용된 전장식 포로 홍이포가 들어오기 전까지 활용되었으며, 주로 왜구를 때려잡는 데 사용되었고 임진왜란에서도 활약한 바 있다.

사정거리는 1이지만 강력한 원거리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 원거리 진급을 따르고 산업 시대에 전장포로 업그레이드되지만, 같은 시대 원거리 유닛인 석궁병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석궁병보다 높은 전투력을 가진 만큼 화력 자체는 엄청나다. 전투력 50이라는 수치는 두 시대 뒤 유닛인 전장포의 60보다 10밖에 안 낮은 수치로, 장군 등으로 버프를 발라주면 신 난이도 유닛들도 한 방에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리는 후덜덜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전에서 유저가 쓰기에는 영 어정쩡한데, 바로 사거리가 1이기 때문이다. 보통 이 시대의 원거리 유닛들은 뒤쪽에 배치되어 상대 유닛들을 체력 손실 없이 잡아내거나 도시의 체력을 야금야금 깎아먹는 데에 쓰이는데, 와호는 사거리가 1이기 때문에 포지션을 근접 유닛처럼 잡아야 한다. 거기다가 먼저 공격할 때는 무시무시한 화력을 자랑하지만 먼저 맞았을 때는 종잇장 같은 맷집을 가져서 가까이 다가가면 맞아 죽고, 멀리 있으면 공격을 하지 못하는 모순되는 상황이 나온다. 도시에 박아놓고 근처 근접 유닛들을 하나하나 잡을 때는 든든하지만, 공격용으로 쓰기는 어려운 유닛이다.

반대로 AI가 썼을 때는 매우 짜증나고 귀찮은 유닛이기도 하다. 도시의 원거리 전투력은 해당 문명이 보유한 가장 강한 원거리 전투력을 가진 유닛의 전투력을 따르는데, 와호의 전투력은 도시에 추가된다. 원거리 전투력이 40인 석궁병도 초반 러쉬를 할 때 AI가 뽑으면 가장 상대하기 싫은 유닛으로 손꼽히는데 와호의 원거리 전투력은 50이다. 그래서 와호와 성벽이 있는 도시에 접근하면 도시 원거리 공격 한 방에 내 유닛이 의문사하는 어이없는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거기다가 테크도 빠르고 AI는 자신의 고유 유닛에 대한 선호도가 꽤 있어 빠르게 중국을 밀지 못하면 와호 때문에 공격이 막히게 될 수 있다. 전형적인 내가 쓰면 별론데 남이 쓰면 짜증나는 유닛이라 할 수 있다.

즉 와호를 제대로 쓰려면 도시나 만리장성에 박아두고 수비용으로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본작의 중국의 특성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전작처럼 호전적으로 갈 것이 아니라 불가사의를 마구 지으면서 적들이 불가사의가 가득한 도시를 먹지 못하도록 수호하는 스타일이 더 어울린다.

여담으로 게임상 모습에 보이는 포구 근처의 호랑이 머리 장식은 중국의 호준포와 닮은 인도의 박격포인 덱의 특징으로, 한국의 화차와 마찬가지로 고증에는 맞지 않는 외형이다.

내용 출처까지 분명한 영문 위키 호준포 문서에 따르면 호준포는 명나라 초기부터 사용된 것이 맞으며, 척계광은 호준포를 개발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들을 본인의 저서에 기록한 것이다.

3.4. 만리장성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Great_Wall_%28Civ6%29.png
만리장성
파일:만리장성큼.jpg
일부 문명에서 미개인을 차단하기 위한 시도에 돌입하면서 요새화된 국경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다수의 제국에서는 '거대한 성벽'을 건축했으며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성벽, 촐라-판디아의 마두카라이 성벽, 사산의 고르간 대성벽, 프랑스의 마지노선과 중국의 만리장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벽은 흙과 돌로 건축되었고 언덕, 강과 호수 등의 천연 지형을 품었으며 성벽 곳곳에 요새나 주둔군이 배치되었습니다. 또한 성벽은 단계별로 건축되었고 간혹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용도와 관련해서는 크게 효과를 발휘한 성벽이 없었습니다. 외부인들은 성벽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몇 번이고 계속해서 국경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성벽들은 제국의 국민들에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었고 변방 정착지에 대한 야만인들의 약탈을 완화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이러한 성벽들은 대부분 황폐화되어 잊히거나 관광지로 전락했습니다.
필요한 과학 기술 테크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Masonry_%28Civ6%29.png 석조기술
입지 조건 기본 산출
사막, 설원, 초원, 툰드라, 평원, 화산토
사막(언덕), 설원(언덕), 초원(언덕), 툰드라(언덕), 평원(언덕)
국경 타일
파일:2금.png 금 +2[8]
추가 보너스
[펼치기/접기]
인접한 만리장성 하나당 파일:2금.png 금 +2 추가[9][10]

과학 기술 연구 이후
인접한 만리장성 하나당 파일:2문화.png 문화 +2 추가[11]

과학 기술 비행 연구 이후 파일:1문화.png 문화 산출량만큼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Tourism6.png 관광 생성
기타 특성
만리장성 타일에 들어간 유닛은 자동으로 요새화되며 파일:external/vignette4.wikia.nocookie.net/Civ6StrengthIcon.png 요새화 전투력 +4 보너스를 얻음.
만리장성 타일은 올라가고 내려갈 때 언덕 타일 이동력 적용. 만리장성은 자연재해로 인해 약탈당할 수 있지만, 파괴되지 않음
(좀비 방어 모드) 이 타일과 인접 타일에 들어오는 적 유닛에게 10 피해를 입히고 통제 지역 영향력을 행사함.
문명 1에서부터 불가사의로 등장했던 만리장성이 본작에선 중국의 고유 시설이 되었다. 시설이기에 당연히 건설자를 투입해야 하며, 예로부터 성벽 자체가 약탈당할 걱정 없는 안전한 교역 통행로로도 활용된 역사가 있다는 점을 반영하여 금을 준다. 시간이 흐르면 문화와 관광을 주는 건 전작의 프랑스의 샤토를 생각나게 하는데, 샤토도 금을 주긴 했다. 초반에는 안정적인 골드 수급과 국토 방위를 책임진다면, 후반에 제공하는 문화와 관광은 막판 시빅 트리 스퍼트와 국경 확장,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을 수 있는 위치는 짓기 직전 도시의 영역에 따라 결정된다. 도시 영역이 주변 2타일 정도만 차지할 때는 2타일 정도의 경계선에 바로 지을 수 있지만, 이때 지은 만리장성을 놔두면 장성 너머로 확장된 영토에 바로 장성을 지을 수는 없다. 장성을 확장하고 안쪽 영토를 재활용하려면 있던 장성을 허물고 대체 시설을 지은 다음 도시 영역 경계선에 다시 지어주면 된다. 너무 일찍 지어버리면 도시 성장에 필요한 농토, 광산, 특수지구 부지가 막혀버리기 때문에 도시 영토가 충분히 넓어지고 개간할 타일은 대부분 개간한 상태에서 짓는 게 낫다. 그래서 진시황이 실제로 살았던 고대~고전 시대보다는 빨라도 중세, 르네상스, 산업 시대에 손보게 된다. 그런데 현대의 만리장성이 진시황 이후로 수많은 연장과 개축을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도 틀린 고증은 아니다.

문화 승리를 위해서는 딱히 지을 게 없는 수도 근방 타일에는 만리장성을 팍팍 도배하고 원거리 유닛들을 쭉 세워주자. 금은 금대로, 문화는 문화대로 들어온다. 만리장성 위에 올라탄 유닛들이 자동 요새화되어 뚫기 짜증나는 건 덤. 뒤에 이차림까지 깔아서 동선을 방해하면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기병 계통의 기동성을 견제하기에는 이만한 조합이 없다.

중국을 침략한 문명에게 막대한 금을 선물해주는 시설이기도 하다. 보통 대량으로 지어져 있기 때문에 약탈 진급을 찍은 경기병으로 돌아다니며 하나씩 꼼꼼히 약탈해주면 재정이 촉촉해진다. 이웃의 중국이 만리장성을 짓고 있다면 오직 약탈만을 위해서 전쟁을 선포해도 괜찮을 정도다. 다만 만리장성은 언덕 판정이라 1턴에 최대 2개밖에 약탈하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쉬운 점이다.

2019년 4월 패치로 기본 금 +2와 파괴 불가능 옵션이 추가되면서 떡상했다. 원래도 수비 용도나 후반 관광 산출 용도로 괜찮게 쓰이던 시설이 2인접 만리장성 기준으로 6금 + 4문화를 산출하는 내정용으로도 사기 시설이 된 것이다. 꽤 좋은 평가를 받는 말리의 광산이 1생산력과 주변 타일의 매력도를 희생해서 4금을 산출하는 것을 생각하면 평지에도 건설 가능한 만리장성이 사기 시설이라고 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몰려드는 폭풍에서 추가된 파괴 불가능 옵션도 아마도 제국 국경에만 추가할 수 있는 제한 때문에 만리장성이 약탈로 파괴당하면 다시 지을 수 없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추가된 듯 하지만, 여하튼 큰 이득을 본 변경 사항임에는 틀림없다. 기존에 최고의 시설로 평가받던 호주의 아웃백 목장이 가뭄 자연재해가 추가된 이후 평가가 상당히 떨어진 것과 달리 만리장성은 추가 버프까지 이루어져서 본작의 최고의 고유 시설로 보는 사람도 상당히 많을 정도이다. 중국을 플레이한다면 만리장성을 거르고 광산을 지을 이유가 거의 없을 만큼 좋다. 뉴 프론티어 패스에서도 이 위상은 여전해서 사기로 일컬어지는 자연 경관 파이티티 2인접 타일의 산출을 시설로 만들어내는 걸출함을 보여준다.

4. 운영

4.1. 진시황(천명)

고대~고전 시대 불가사의 가속 효과를 이용해 효율 좋은 불가사의들을 먹고 이를 바탕으로 스노우볼을 굴리는 문명이다. 기본적으로 스톤헨지를 선점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빌드이기 때문에 스타팅 근처에 석재가 없거나 운 없게 뺏겼다면 재시작하는 것이 좋다.

보통 스톤헨지나 대욕장은 신 난이도에서 거의 관상용 취급 받는 원더인데, 중국만큼은 예외로 처음에 정찰병을 뽑고 바로 건설자를 뽑아 스톤헨지나 대욕장을 짓기 시작하면 꽤 높은 확률로 먹을 수 있다. 스톤헨지를 지었다면 종교를 창시할 시 신의 계시 교리(모든 세계 불가사의에서 신앙 +4)를 먹고 아르테미스 신전, 오라클, 피라미드 등의 다른 원더들도 먹는다. 이렇게 하면 고전 시대에는 100% 황금기에 돌입할 수 있고 엄청난 신앙으로 개척자와 건설자를 구입해 도시를 발전시키면 된다.

물론 스톤헨지를 지을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운영도 가능하다. 원더 하나보다 건설자 두 기가 더 싸니 사회 정책으로 장인 정신을 찍고 소작료 정책 카드로 노동자를 뽑고, 노동자로 불가사의를 가속할 때만 도시의 생산 큐를 불가사의로 바꿨다가 턴 종료 전에 노동자로 바꿔 뽑는 방식을 사용하자. 신 난이도에서도 쓰레기를 제외한 고대 시대 꿀원더를 독식하는 것이 가능하다. 불가사의를 짓기 전에 인접 보너스를 얻을 수 있는 극장가를 지을 위치를 생각해서 설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단 초반에 건설자를 뽑고 원더에 갈아넣어야 하는 예열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극초반 인접 문명이나 야만인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 만약 공격을 받아 내정에 큰 손실을 입었다면 초반 원더 먹기로 인한 스노우볼링의 효과도 줄어들기 십상이다. 미리 대비를 하거나 공격에 대처하는 것을 연습하는 요령도 매우 중요한 편이다.

중국은 고대~고전 시대가 지나면 원더 가속 효과도 없고, 위인이나 걸작 같은 부류의 부스팅도 없다. 그래서 중후반의 문화와 관광 산출은 만리장성에 맡겨야 한다. 만리장성은 제국 국경에만 건설할 수 있기에 영토가 확장되어 두 도시의 영토가 연결되면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게 되므로 만리장성을 활용하고 싶으면 짓고 싶은 곳에는 미리 지어두는 것이 좋다. 종특 덕택에 건설자의 건설 횟수가 넉넉하니 만리장성을 지을 때 필요한 건설자의 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멀티플레이에서는 불가사의를 막 짓다가 보물 고블린이 되어 멸망하는 일이 없도록 항시 장군 포인트와 군사력을 체크하도록 하자. 불가사의를 잘 먹어가면서 극장가 인접 보너스를 통하여 쿠마시 없이도 초중반부터 엄청난 문화를 뽑아낼 수 있다.

중국의 기묘한 후반 문화 스퍼트는 불가사의에서도 드러나는데, 진짜 진시황의 것이었던 병마용갱을 완성하면 고고학자가 남의 영토에 무단으로 들어가서 유물을 파낼 수 있다.

4.2. 진시황(통일한 자)

특성을 극대화하고자 한다면 AI의 안건처럼 야만인 전초기지들을 일부러 방치해 러쉬를 유도, 러쉬 온 유닛들을 대량으로 전향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대량으로 전향한 유닛과 자신의 유닛을 합쳐 정복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야만인 부족 모드를 활성화하면 독수리 전사나 불멸자 등의 특정 문명 고유 유닛들도 얻을 수 있으니 참고. 그 외엔 일반적인 중국 특성에 따라 유레카, 영감, 불가사의, 만리장성에 집중해 플레이하면 된다.

4.3. 쿠빌라이 칸

건설자의 원더 가속 능력은 진시황의 지도자 특성이기 때문에 불가사의 올인 전략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시황과는 다른 운영이 필요하다.

쿠빌라이칸 중국의 운영 핵심은 경제 정책 슬롯 추가이다. 경제 정책에는 내정에 도움이 되는 카드가 아주 많기 때문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초반에는 신왕과 도시 계획을 둘 다 채택할 수 있어 진시황과는 다른 느낌으로 초반부터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다. 물론 진시황의 원더 가속에 비해서는 초반 스퍼트가 느리지만, 고전 시대가 지나면 무특성인 진시황과 달리 꾸준히 특성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훨씬 뛰어나다.

외국 도시에 처음 교역소를 세웠을 때 유레카와 영감을 얻는 특성도 있다. 사실 이 특성은 교역소가 즉시 세워지는 몽골로 플레이할 때 더 와닿는 특성이라 중국으로 플레이할 땐 노리고 써먹을 만한 특성은 아니다. 그러나 게임을 플레이하면 결국은 외국 문명에 교역로를 꽂게 되므로 장기적으로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운영하자. 왕조 주기론은 문명 특성이므로 교역소로 얻은 유레카와 영감도 10% 추가 가속을 받는다.

문명 특성인 왕조 주기론도 진시황만큼은 아니지만 활용하기 좋다. 경제 정책 중에는 시대별 원더 15% 가속 카드가 있기 때문에 꾸준하게 원더를 노리면서 유레카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원래 원더 가속 카드는 다른 카드를 밀어내면서까지 집어넣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는데, 쿠빌라이칸은 추가되는 경제 정책 슬롯에 원더 가속을 넣어줄 수 있다.

특화된 분야가 없이 스노우볼을 굴리는 운영이므로 비밀 결사는 딱히 가리지 않는다. 단 미네르바를 임명했을 때 오류가 있으니 주의. 지도자 특성과 미네르바가 모두 경제 정책 슬롯을 주어서 족장제에서 3개의 경제 슬롯을 갖게 되는데, 사회 제도 연구 전엔 경제 카드가 둘밖에 없어 한 칸이 비게 된다. 문제는 이 상태에서는 정책 확정이 안 된다는 것. 그렇다고 강제로 턴을 넘기면 아예 정책 선택을 안 한 것으로 쳐버린다. 만약 미네르바를 가고 싶다면 경제 정책이 추가로 해금된 뒤에 임명하자.

요약하자면 추가 경제 정책 슬롯을 활용해 꾸준히 내정에 이득을 보고, 그러면서 불가사의 건설과 외국 교역소를 통한 유레카와 영감으로 서서히 스노우볼을 굴리며 승리를 노릴 수 있다.

4.4. 잘 어울리는 승리 유형

지도자가 다섯 명으로 본작의 문명들 중 가장 많으므로, 문명 특성과 고유 유닛, 고유 시설물 등 공통 분모를 먼저 적고 각 지도자별로 나누어 서술한다.

* 과학
공통 요소 중에는 문명 특성 덕분에 유레카를 터뜨릴 때마다 과학을 추가로 얻으며, 불가사의를 지을 때마다 유레카를 받는다. 물론 영감과 문화 쪽에서도 보너스를 제공받으며, 과학이나 생산력만은 못하지만 과학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문화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천명 진시황의 경우 고대~고전 시대 불가사의 중에는 할리카르나소스 영묘나 대도서관 등 과학 승리에 기여할 수 있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쿠빌라이칸은 교역소가 지어질 때마다 유레카와 영감이 터지며, 경제 카드 슬롯도 활용하기에 따라 유용할 수 있다. 측천무후는 스파이 임무로 과학을 추가로 얻으며, 영락제의 경우 도시의 인구를 두 자리 수로만 만들면 과학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통합자 진시황은 과학 승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야만인 유닛들을 대거 포섭한 뒤 이웃집과의 전쟁에 갈아넣어 세력을 불리고 기초 체급 차이로 승부를 보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건 웬만한 정복 문명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플레이다.

* 문화
공통 요소 중에는 문명 특성 덕분에 기술과 정책 발전이 빠르며, 만리장성이 문화와 관광을 대량으로 제공한다.

천명 진시황은 문화 승리와 무척 잘 맞는데, 건설자를 갈아넣어 고대~고전 시대 불가사의를 여럿 지어올릴 수 있고 시대가 지나면 불가사의 자체가 관광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 예술가, 음악가 영입을 위한 오라클, 박물학자와 록밴드를 구입하기 위한 신앙을 제공하는 제벨 바르칼, 위대한 기술자에 보너스를 제공하는 할리카르나소스 영묘 등 잘 어울리는 불가사의도 많다. 쿠빌라이칸은 과학 승리와 마찬가지로 경제 카드 슬롯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며, 측천무후는 스파이 임무로 문화와 신앙을 추가로 얻을 수 있다. 영락제는 인구 10 이상의 도시로부터 과학뿐만 아니라 문화도 받아먹을 수 있다. 통합자 진시황의 경우 이렇다 할 보너스가 없어 정복 승리가 곤란할 경우 대안으로나 생각해 볼 만하다.


* 외교
잘 맞지 않는다. 그나마 시너지를 찾아보자면 만리장성이나 영락제가 제공하는 금을 구호 프로젝트에 부어 외교적 환심을 얻는 것과, 천명 진시황으로 아파다나를 지어 사절을 추가로 얻어 도시국가 종주권을 가져와 외교적 환심을 얻는 정도이다.


* 지배
통합자 진시황을 제외하면 잘 맞는 지도자가 없다. 통합자의 경우 야만인 유닛들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 손쉽게 대군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게임 내에 과학적이면서도 군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문명이 있다면 더 좋은데, 야만인은 기술이 가장 앞선 문명의 수준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빌론인데, 운이 따른다면 앞선 기술력을 자랑하는 유닛들을 그 기술을 연구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다. 바빌론 문서에도 나오듯이 바빌론이 게임에 있으면 대다수의 문명들이 골머리를 앓게 되는데 통합자만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 종교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천명 진시황이 스톤헨지를 빠르게 지어 종교 창시를 보장받거나 제벨 바르칼을 지어 신앙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이것 외에는 신앙이나 종교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받는 보너스가 없다.[12] 측천무후의 경우 신앙으로 스파이를 살 수 있지만 종교 승리와는 무관하다.

5. 변경사항

5.1. 흥망성쇠

흥망성쇠에서 유레카와 영감의 기본 부스트가 50%에서 40%로 감소하면서, 중국의 문명 특성인 왕조 주기론 역시 60%에서 50%로 수치가 하향 조정되었다. 물론 어차피 다 약화된 거 덜 약화된 셈이니 타격은 적은 편.

한편 지도자 특성인 초대 황제는 간접적으로 강화되었는데, 총독 중에서 측량사 량의 기본 능력 덕분에 정착한 도시 한정으로나마 땅 골라가며 피라미드 짓느라 고생할 필요 없이 건설자의 건설 횟수를 추가로 받을 수 있기 때문. 량이 정착하면 건설자 하나가 고전 시대까지의 불가사의의 75%로 치환되며, 피라미드까지 지었다면 거의 건설자 하나마다 불가사의 하나 짓는 수준까지 갈 수 있다.

또한 불가사의 건설이 시대점수의 주요 출처이니만큼 중국은 보통 고전-중세는 거의 무조건 황금기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이점. 하지만 불가사의 건설만 하다 보물 고블린 신세가 되기 쉬운 중국인데 옆에 황금기 문명을 파괴해버리는 마푸체라도 있으면 그냥 재시작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다만 만리장성 우주방어가 언덕을 무시하는 조지아와 마터호른 때문에 약점이 생겼다.

5.2. 몰려드는 폭풍

몰려드는 폭풍에서 중국이 수나라 시절 대운하를 건설한 것을 고증으로 했는지 석조기술 연구만 끝나면 다른 문명보다 운하를 훨씬 일찍 건설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버프를 받은 셈이 되었다. 일단 특성이 적용받을 수 있는 고대 고전 불가사의의 숫자가 증가한데다가 먹을수만 있다면 무조건 좋다고 평가받는 꿀원더인 대욕장을 신난이도에서조차 사실상 확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큰 장점이다.

5.3. 뉴프론티어 패스

뉴 프론티어 패스에서는 원래도 강한 내정이 뱀파이어의 등장으로 더 강해졌다. 거기에 영웅의 등장으로 고대,고전 시대 불가사의 도배가 더 용이해져, 수도에 모든 불가사의를 도배하는 플레이도 가능해졌다. [13]그것도 신난이도에서!

1월 패치로 쿠빌라이 칸이 몽골과 중국의 공동 지도자로 등장했다. 몽골의 대칸이었다가 원나라를 세우며 중국 황제가 된 것을 반영한 듯하다. 지도자 특성은 추가 경제 정책 슬롯을 제공하고 다른 문명에 처음 교역소를 세웠을 때 유레카와 영감을 주는 '게레지'이다.

5.4. 2021년 4월 최종 밸런스패치

문명 특성에 불가사의를 건설하면 그 불가사의 시대의 무작위 유레카와 영감을 하나씩 얻는 효과가 추가되었다. 진시황의 불가사의 가속 특성과 잘 어울리는 특성으로 중국의 초반 전략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6. AI

6.1. 진시황

2016년 가을패치 전에는 농장도 안 짓고 만리장성만 무한정 깔아대다가 식량, 생산력, 과학 면에서는 꼴찌를 먹으면서도 사회정책 테크만 몇 시대 앞서서 찍어버리는 기행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불가사의 완공 소식은 기가 막히게 주워들어서 비난을 날리다가 급기야는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려서 혼자 왕따당해 쭈그러드는 일이 잦았다. 물론 패치 이후에는 이러한 삽질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불가사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

진시황은 종교를 잘 펴는 쪽이지만, 도교를 기본 베이스로 종교를 창시하면 포교하지 않는다. 플레이어에 대한 적대감은 없는 대신, 타 문명에 대한 어그로는 엄청나게 잘 끌어대는지라. 실상은 플레이어 빨만 믿고 덤비는 AI라서, 전쟁만 걸지 않는다면 그저 그런 무난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정복욕은 낮은 쪽인지라 비난은 많이 받지만, 전쟁에 대한 욕구가 낮아서, 그냥저냥 이웃으로 지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첨꾼 아젠다가 붙으면 무조건 군사동맹을 제안하며, 이 때부터는 알아서 호구로 전락하기 때문에, 알아서 유닛을 미친 듯이 뽑아대는 위용을 보여주니 이 점을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통일한 자의 진시황은, 카이사르와는 정 반대다. 야만인을 무조건 회유하려 하며, 무조건 날로 먹으려 하는 AI를 가지고 있다. 지도상에 바빌론이 있다면 더더욱 좋아 죽는다. 기본 유닛이 전사인데, 야만인이 검사나 중갑병이면 무조건 회유가 들어가는 특성 때문에, 야만인 ⇒ 아군유닛 으로 인식해 버리기 때문, 따라서, 바빌론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하는게 났다. 통일한자의 특성이 그나마 나은게 있다면, 불가사의 가지고 투덜 거리는 모습은 안봐도 된다는게 특징.

6.2. 쿠빌라이칸

팍스 몽골리카 아젠다를 붙인 쿠빌라이는 대처가 까다롭다. 턴골드와 금 보유량을 가지고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밑도끝도 없이 물고 늘어지니 주의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확률적으로 유래카가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스노우 볼을 무진장 굴려대므로, 대처가 어렵다.

중국 계통이 내정인지라 만리장성 도배만으로도 자체 방어가 되기 때문에, 방위전에 능하고, 후반부에 이를 뚫을려면 고생을 꽤나 해둬야 한다. 자체 생산량 만으로도 금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면 쾌적도가 박살나기 쉬우므로 주의. 만리장성을 한번 뚫은다음,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바로 약탈이 가능해진다. 물론, 성벽 방어도와는 별도로, AI는 만리장성을 거의 건설하지 않는다.

6.3. 측천무후

첩보에 특화되어 있지만 AI는 거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다. 다만 플레이어가 측전무후보다 과학력이 앞서거나 1시대 이상 앞질러 갈 경우 무조건 스파이를 보내 기술을 빼오려 한다. 그러므로 수도를 공개하지 않는 게 좋다. 첩자가 잡혀도 오리발을 내밀며 자신과는 전혀 관계 없다는 발뺌을 하면서 위기를 무마하려 하니, 바로 갈아 버리자. 다만 플레이어보다 시대를 앞서나간 경우 금 빼돌림, 지지자 모집, 총독 무력화 등등을 자주 남발해서 혈압을 올리게 만드므로, 초기에 척살하는 것도 방법이다.

6.4. 영락제

AI로 만나면 꽤나 귀찮은 적이다. AI 특성상 농장을 많이 깔아대는지라 인구가 전반적으로 높은데, 인구만 많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특성상 중반부에서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나마 턴 골드만 많으면 뭐라 하지도 않으며, 딱히 내정에 간섭하지는 않는편. 그저 옆에서 보기에 뭔가 좀 아니다 싶으면 한소리 하는 점잖은 아저씨 정도로만 보면 된다. 다만 종교 쪽에서는 꽤 날카로운 비판을 해댄다.

7. 도시 목록

도시 이름으로 몇 번째 도시인지 알 수 있었던 문명 1~5와 달리 수도 이름만 고정되어 있고, 그 후에 세워지는 도시는 리스트에 있는 이름에서 무작위로 나온다. 아래 리스트는 게임 데이터 순서대로 되어 있다. (수도는 ★)

시안(Xian) ★ - 진시황의 수도[14]
베이징(Beijing) ★ -쿠빌라이칸, 영락제의 수도
센두(Shendu) ★ - 측천무후의 수도[15]
타이위안(Taiyuan)
청두(Chengdu)
자오둥(Jiaodong)
창사(Changsha)
룽시(Longxi)
광저우(Guangzhou)
한단(Handan)
선양(Shenyang)
상하이(Shanghai)
우한(Wuhan)
이양(Yiyang)
슈롱(Xiurong)
첸(Chen)
싱저우(Xingzhou)
취현(Quxian)
난징(Nanjing)
랑팡(Langfang)
린쯔(Linzi)
주장(Jiujiang)
카이펑(Kaifeng)
쉬저우(Xuzhou)
허페이(Hefei)
신젱(Xinzheng)
루안(Luan)
취푸(Qufu)
장저우(Jiangzhou)
뤄양(Luoyang)[16]
인촨(Yingch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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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자연 환경

9. 시민 이름

문명의 시민들. 시대가 지나가면 이름의 형식이 바뀌는 것이 특징. 소문 탭을 통해 타 문명의 동향을 전하는 일반 시민들로는 대표단, 기자, 상인(소문 한정)이 존재한다. 그 외에 스파이, 고고학자 등 일부 소수정예 유닛들에게 시민의 이름이 주어진다.

고대~르네상스(남성) -
천(Chen)
파이(Fai)
쿵(Kong)
콴인(Kuan-yin)
레이(Lei)
룽(Long)
샤이밍(Shaiming)
션(Shen)
싱(Shing)
Sying

고대~르네상스(여성) -
찬주안(Chan-juan)
챵(Chang)
팡인(Fang-yin)
환위에(Huan-Yue)
쟝리(Jiang-li)
리메이(Li-mei)
밍유에(Ming-ue)
칭위안(Qing-yuan)
슈앙(Shuang)
신치엔(Xin-qian)

현대 이후(남성) -
빙원(Bingwen)
창푸(Changpu)
딩시앙(Dingxiang)
구이런(Guiren)
후이중(Huizhong)
룽웨이(Longwei)
샨위안(Shanyuan)
팅펑(Tingfeng)
얀린(Yanlin)
저둥(Zedong)

현대 이후(여성) -
창잉(Changying)
다시아(Daxia)
둥메이(Dongmei)
리링(Liling)
메이펑(Meifeng)
밍시아(Mingxia)
밍주(Mingzhu)
차오리옌(Qiaolian)
싱주안(Xingjuan)
전전(ZhenZhen)

10. BGM

10.1. 시대별 BGM

  • 풀버전

  • 고대 시대
  • 중세 시대
  • 산업 시대
  • 원자 시대

10.2. 인게임 BGM















원곡은 모리화. 스플래시 아트의 어두운 만리장성과 매우 어울린다.

11. 대사 목록

음성 대사 중 텍스트와 음성으로 구분된 건 텍스트로 출력되는 내용과 실제 말하는 내용이 다른 경우이다,

11.1. 진시황

중국의 지도자인 진시황은 고어 문법으로 된 관화[17]를 사용한다. 그리고 중화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성우는 Junchao Huang

텍스트 뿐만이 아니라 음성대사를 보면 어째서인지 ''이 아니라 ' 과인'이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각각 항목에도 잘 나와있지만 사실 전국시대 당대의 예법으로는 군주가 스스로를 과인이라고 칭하기도 했기 때문에 꼭 틀린 묘사는 아니지만, '중국의 첫 황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중국 문명의 대표로 나온 진시황의 어법으로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진시황 대사 목록
음성 대사
최초 조우
(텍스트)그대는 불로불사의 천자, 위대한 진시황 앞에 어떤 일로 왔습니까?
(음성) 이제 오셨군. 진나라의 산천을 보고자 하는가? 과인이 바로 진나라의 왕일세.
(今汝之來也,豈欲觀秦國山川之勝? 寡人乃秦之主也。)
어젠다 긍정적
(텍스트) 그대가 우리 영광스러운 진 제국과 경쟁하려 들지 않아 다행입니다. 우리의 업적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음성) 과인을 방해하지 말게. 이 세상에서 과인의 진나라에 맞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네.
(勿犯寡人。寡人之秦,天下莫之與抗。)
어젠다 부정적
(텍스트)중국의 영광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불가사의는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음성) 그대는 과인을 보라. 국토는 넓고, 문화적으로나 무력으로나 왕성하네. 그러나 귀국은 어찌 그러한가?
(汝觀寡人,疆域之廣,文武之盛,而貴國何有乎?)
플레이어로부터 선전 포고를 당함
(텍스트)그대가 전쟁을 원한다면 제가 기꺼이 이에 응하지요.
(음성) 싸울 테면 싸워 보자. 과인이 곧 장차 너를 꾸짖고 벌할 것이다.
(戰則戰矣[18],寡人即將誅懲爾等!)
진시황이 플레이어에게 선전 포고
(텍스트) 그대는 악의 원천이니, 사라져야 합니다.
(음성) 하늘을 노하게 하다니! 과인이 대군을 보내 그대의 종묘를 파괴하고 백성들을 멸할 것이다.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敢犯天威, 寡人將發大軍,毀汝宗廟,滅爾人民,誓無遏抑!)
패배
(텍스트)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음성) 과인은 미처 일찍 헤아리지 못하였소.……어찌 그대의 잘못이겠소.
(寡人未曾料及……爾焉非也。)
정보 대사
수도 정보 교환
그대는 우리의 웅장함을 봤을 것입니다. 그대 수도의 웅장함은 우리 수도 반이라도 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플레이어를 근처 중국 도시로 초대
인근에 우리 도시가 있습니다. 방문해 보겠습니까? 우리 조각가들의 테라코타 작업 실력이 상당해지고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진시황을 근처 도시로 초대
수락하겠습니다.
★방문
그대에게 복이 있기를.
거래 관련 대사
플레이어가 보통 거래 승낙
감사합니다.
플레이어가 보통 거래 / 대표단 거절
운이 없군요.
★진시황이 국경 개방 승낙
물론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대가 중국에 감히 어떠한 위협이라도 가할 수 있겠습니까.
★진시황이 국경 개방 거절
안 됩니다. 우리 경이로운 제국을 외국인들이 망치게 허락할 수 없습니다.
★진시황이 국경 개방 제안
그대의 영토를 지나가야 하는데, 그 영역 통과의 허가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우호 관련 대사
진시황이 우호 제안 거절
그대는 아직 우정을 맺을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진시황이 우호 제안 승낙
그대가 중국의 소중한 친구라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진시황이 우호 선언 제안
부디 그대의 우정을 우리가 갚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플레이어가 우호 제안 거절
운이 없군요.
플레이어가 우호 제안 승낙
감사합니다.
★진시황이 동맹 제안
동맹을 형성하겠습니까?
전쟁 관련 대사
진시황이 플레이어를 공개 비난
영원토록 그대의 명성은 더럽혀질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진시황을 공개 비난
감히 벌레만한 자가 용을 위협하려 하다니, 현명하지 못한 처사군요.
★진시황이 평화 협정 승인
감명받았습니다. 우리 사이에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진시황이 평화 협정 거절
그대의 간청을 무시하겠습니다.
★진시황이 평화 협정 제안
평화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 전쟁을 끝내시죠.
플레이어 군대가 중국 국경에 접근
그대 군대는 이미 기습의 이점을 잃었습니다. 병력을 철수하고, 전략을 다시 세워보십시오.
대표단 관련 대사
진시황이 플레이어의 대표단 수용
그대의 교역 대표단을 기쁘게 환영합니다. 그들이 받아야 마땅한 예우로 대접하겠습니다.
진시황이 플레이어의 대표단 거절
그대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진시황이 대표단을 보냄
곧 우리 대표단이 중국 최상의 향신료, 차와 비단 선물을 가지고 도착할 것입니다. 즐기시길 바랍니다.

11.2. 쿠빌라이칸

쿠빌라이칸은 몽골어를 사용한다. 성우는 Erdenechuluun Tumurbaatar
쿠빌라이칸 대사 목록
음성 대사
최초 조우
짐은 쿠빌라이라네. 언젠가 온 세계가 황제이자 위대한 칸으로 짐을 알게 될걸세.
(Би бээр Хубилай бөлгөө. Намайг эзэнт гүрнийг удирдагч, агуу хаан гэдгийг бүх дэлхий мэдэх ажгуу.)
어젠다 긍정적
그대는 잘 제련된 강철처럼 지혜와 힘의 조화를 보여주네.
(Мэргэн ухаан хийгээд хүч чадал чинь зангидсан гар лугаа нэгдмэл аж!)
어젠다 부정적
잘 통치할 수 없다면, 더 나은 통치자가 와서 그대를 타도할 걸세. 역사의 가르침일세.
(Хэрвээ чи сайн удирдаж чадахгүй бол илүү сайн удирдагч ирж чамайг унагах болой. Бүхий л түүх бидэнд үүнийг зааж өгдөг.)
플레이어로부터 선전 포고를 당함
영토 구석구석에 병사를 모았네. 그대와의 전쟁 때문에 이런 고통을 감수한것을 영광으로 알게.
(Би эзэнт гүрнийхээ өнцөг булан бүрээс их цэргийг хуралдуулсан. Та нартай дайтах гэж ийн биеэ чилээсэн минь та нарын хувьд нэр төрийн хэрэг ажгуу.)
쿠빌라이칸이 플레이어에게 선전 포고
저 지평선의 먼지 구름은 전쟁을 시작하는 수천 명의 기병일세. 대비하게!
(Тулаанд бидний мянга мянган морьт цэрэг тэнгэрийн үй түмэн үүлс лугаа хуйлран орж ирэх бөлгөө. Өөрийгөө бэлдтүгэй.)
패배
이제 가게.짐을 슬픔 속에 내버려두게.
(Одоо яв. Намайг уй гашуутай минь үлдээгтүн.)
정보 대사
수도 정보 교환
짐이 실크 로드의 진주라 불리는, 부하라에 대해 말해도 되겠나? 그대의 영토에 대해 말해주겠나?
플레이어를 근처 몽골 도시로 초대
짐의 수도에서 우리의 가장 강한 두 전사 간의 씨름 경기를 열도록 하겠네. 어서 와서 짐과 함께 발효된 말젖을 마시게나!
플레이어가 쿠빌라이칸을 근처 도시로 초대
그래.
★방문
반갑네.
거래 관련 대사
플레이어가 보통 거래 승낙
그래.양측에서 이익이 샘솟기를.
플레이어가 보통 거래 / 대표단 거절
황금 군단은 이런 거래로 강대해진 것이 아니네.
★쿠빌라이칸이 국경 개방 승낙
그대의 말들이 몽골 제국의 스텝 지대와, 몽골 제국이 정복한 영토의 길을 밟아도 좋네.
★쿠빌라이칸이 국경 개방 거절
국경의 존재는 이유가 있는 법이네. 그대를 몰아내기 위해서지.
★쿠빌라이칸이 국경 개방 제안
갇힌다는 것은 고사한다는 뜻이네. 국경에 가로막힌다면, 우리는 죽을 걸세. 통과해도 되겠나?
우호 관련 대사
쿠빌라이칸이 우호 제안 거절
친구라면 충분히 있네.
쿠빌라이칸이 우호 제안 승낙
오, 최고의 벗이여! 풀이 그대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네.
쿠빌라이칸이 우호 선언 제안
와서 맛 좋은 와인과 낮은 목소리의 노래를 즐기고,해와 달이 오갈때까지 술을 마시세!
플레이어가 우호 제안 거절
자네는 칸의 친선 제안을 거절했군.그 의미를 곱씹도록 하게.
플레이어가 우호 제안 승낙
오,최고의 벗이여!풀이 그대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네.
★쿠빌라이칸이 동맹 제안
함께 타세! 먼저 타시게.
전쟁 관련 대사
쿠빌라이칸이 플레이어를 공개 비난
그대의 왕국이 들불 속 잔디처럼 불타는 날이 다가올 것이네. 그날이 오면, 짐은 기뻐할 걸세.
플레이어가 쿠빌라이칸을 공개 비난
그대의 행동이 의도적이었든 무지에서 비롯됐든, 결과는 같네. 그대는 오랫동안 짐을 화나게 했고, 짐은 더 불손함을 참아주지 않겠네.
★쿠빌라이칸이 평화 협정 승인
전쟁의 활은 부러졌네. 이제 말들을 살찌우세.
★쿠빌라이칸이 평화 협정 거절
내 칸들은 아직도 전쟁에 굶주려 있네.
★쿠빌라이칸이 평화 협정 제안
말들은 수척해지고, 기병들은 고향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있네.
플레이어 군대가 몽골 국경에 접근
그대의 부대가 스텝 지대의 경관을 가리는군. 이동시키게.
대표단 관련 대사
쿠빌라이칸이 플레이어의 대표단 수용
그대의 대표단에 씨름 경기를 몸소 제의했다.그들이 멍들었어도 놀라지 말게.
쿠빌라이칸이 플레이어의 대표단 거절
우리에겐 시,합성궁,말젖이 있네. 그대의 잔반은 필요치 않네.
쿠빌라이칸이 대표단을 보냄
낙타 무리가 비단과 향신료,말젖과 양고기,그리고 위대한 칸의 이야기를 싣고 국경에 접근했네.

11.3. 영락제

영락제는 관화를 사용한다. 성우는 Jing Chu.
영락제 대사 목록
음성 대사
최초 조우
짐은 영락제요. 해상 무역을 하는 이들에게는 친구지만 짐에게 대항하는 자들에게는 공포의 군주지.
(朕永樂帝也, 商舶之來者即朕之友, 違逆朕志者豈有來日乎。)
어젠다 긍정적
짐은 당신처럼 거래할 상품이 있는 자만 상대하오.
(朕唯召見前來朝貢者,如親黨尓。)
어젠다 부정적
지게꾼부터 황제까지 부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朕其求財於天下,自牧伕至於國君。)
플레이어로부터 선전 포고를 당함
차라리 하늘을 정복하겠다고 하시오. 당신의 화살이 얼마나 높은 곳까지 닿는지 짐이 지켜보겠소.
(何妨討平天界,哈哈哈,吾等始知汝控弦之所至。)
영락제가 플레이어에게 선전 포고
짐의 목표는 군사 정복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구려.
(力征天下實非吾願,然別無他途。)
패배
지나온 길은 어둡고, 검은 건 주변의 소나무구나. 오호, 통재라. 위로는 하늘이, 아래로는 땅이 보이지 않노라.
(前路暗昧,週松森然如堵,天地渾然似漆。)
정보 대사
수도 정보 교환
자금성의 태화전을 보면 마음이 정화될 거요.
플레이어를 근처 명나라 도시로 초대
짐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하오. 그대는 이 세상의 중심에 온 것이고.
플레이어가 영락제를 근처 도시로 초대
하늘의 뜻인가 보군.
★방문
부름에 응답하러 왔소. 무슨 일이오?
거래 관련 대사
플레이어가 보통 거래 승낙
모두가 동의하면 거래 또한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법일세.
플레이어가 보통 거래 / 대표단 거절
고작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짐을 불렀는가?
★영락제가 국경 개방 승낙
누구나 이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소.
★영락제가 국경 개방 거절
당신은 내게 통행을 허가해 달라고 했고 짐은 거절했소.
★영락제가 국경 개방 제안
짐에게는 당신의 땅에서 장사하고 싶어 하는 선단과 상인이 있소.
우호 관련 대사
영락제가 우호 제안 거절
친구는 대등한 존재요. 당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지.
영락제가 우호 제안 승낙
우리를 보고 뭔가 배울 수 있을 거요.
영락제가 우호 선언 제안
짐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을 규합하고 있소. 당신도 들어오겠소?
플레이어가 우호 제안 거절
그런 거래는 동의할 수 없소.
플레이어가 우호 제안 승낙
서로 이득을 보세.
★영락제가 동맹 제안
중국과 함께하는 것, 명나라와 함께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업적이 있겠소?
전쟁 관련 대사
영락제가 플레이어를 공개 비난
악행을 멀리하라고 계속 말하지 않았소? 이제는 말하기도 지치는군.
플레이어가 영락제를 공개 비난
어디서 개가 짖는군.
★영락제가 평화 협정 승인
지상이 평화로우면 하늘도 평화로운 법.
★영락제가 평화 협정 거절
당신은 중원의 뜻에 한사코 반기를 드는군.
★영락제가 평화 협정 제안
전쟁은 과부를 만들 뿐이오. 남는 장사를 하려면 다른 취미를 찾아보시오.
플레이어 군대가 중국 국경에 접근
짐은 오랑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소.
대표단 관련 대사
영락제가 플레이어의 대표단 수용
짐은 그대의 백성들에게 선정과 예절, 재치가 가져다주는 이득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했소. 하지만 짐의 뜻이 잘 전달되었지는 모르겠구려.
영락제가 플레이어의 대표단 거절
짐의 제국에도 이미 있소이다.
영락제가 대표단을 보냄
비단과 도자기, 차와 옷감이오. 중국 제국을 움직이는 원천이지.

11.4. 측천무후

측천무후도 진시황, 영락제와 마찬가지로 관화를 사용한다. 성우는 Wang Shan.
측천무후 대사 목록
음성 대사
최초 조우
짐은 무조(측천무후)요. 중국 유일의 여황제이자 백성들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군주지.
(朕乃武曌,民皆愛之畏之,天下唯一之后主。)
어젠다 긍정적
당신은 내관만큼이나 대하기 편하군.
(子於朕也甚慰。其忠同於朕之左右。)
어젠다 부정적
설마 짐을 계략에 빠트리겠다는 거요? 짐은 계략을 짜는 사람이오!
(自以為朕為所謀,然而朕是謀之。)
플레이어로부터 선전 포고를 당함
칼을 휘두르며 고함치는 남자 무리가 오는군. 이 난장판을 '예술'이라고 불러드릴까?
(群備武劍,焦躁呼號,吾為斯行為藝能乎?)
측천무후가 플레이어에게 선전 포고
자, 저승으로 떠날 때가 왔소.
(阿郎,時完已,可去也。)
패배
뭔가... 타협의 여지가 있을 거요. 짐의 제국이 이렇게 끝나야 하는 거요?
(拜託,如自信能處治然廢棄終也,如其信乎?)
정보 대사
수도 정보 교환
당나라의 수도는 역사의 현장이자 예술의 도시요. 와서 보시겠소?
플레이어를 근처 당나라 도시로 초대
모든 길은 주나라로 통하지.
플레이어가 측천무후를 근처 도시로 초대
물론이오.
★방문
앉으시오. 이 차도 좀 들고. 그 잔이 아니라 이 잔이오. 당신을 위해 만들었지.
거래 관련 대사
플레이어가 보통 거래 승낙
척 봐도 훌륭한 제안이군요.
플레이어가 보통 거래 / 대표단 거절
그것보다는 더 줄 수 있지 않소?
★측천무후가 국경 개방 승낙
짐은 숨길 것이 없소.
★측천무후가 국경 개방 거절
거절하겠소. 금지된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지. 그렇지 않소?
★측천무후가 국경 개방 제안
당신과 내 제국의 국경을 측정해 봅시다. 그러면 서로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우호 관련 대사
측천무후가 우호 제안 거절
짐을 찬양하는 이들은 이미 충분하오만.
측천무후가 우호 제안 승낙
멋지군. 당신을 짐의 자식처럼 대해주겠소.
측천무후가 우호 선언 제안
당신을 더 잘 알아가고자 하오.
플레이어가 우호 제안 거절
짐은 당신과 어울려서 얻을 것이 없소.
플레이어가 우호 제안 승낙
야망의 사다리를 올라가려면 친구가 필요하오.
★측천무후가 동맹 제안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아니 친구라면 응당 가까이 둬야 하지 않겠소?
전쟁 관련 대사
측천무후가 플레이어를 공개 비난
짐이 적으로 여기는 이들은 많다오. 당신도 그중 하나고.
플레이어가 측천무후를 공개 비난
말에 날이 섰구려. 다른 건 더 날이 섰고.
★측천무후가 평화 협정 승인
비명만 지르지 않는다면 죽음은 훨씬 더 즐거운 볼거리일 텐데.
★측천무후가 평화 협정 거절
당신은 내가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측천무후가 평화 협정 제안
이 전쟁에는 이제 영감이 없소.
플레이어 군대가 중국 국경에 접근
당신과 당신 군대는 참 뻔뻔하군.
대표단 관련 대사
측천무후가 플레이어의 대표단 수용
당신이 보낸 대표단 대부분은 멀쩡히 돌아갔소!
측천무후가 플레이어의 대표단 거절
오... 한 왕조였다면 흥미로웠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구식이 되었구려.
측천무후가 대표단을 보냄
당신에게 옥으로 조각한 말과 중국 최고의 무희들 그리고 최고의 비단을 선물하겠소.

12. 스플래시 아트

진시황
파일:external/downloads.2kgames.com/qin_hero.jpg

13. 여담

  • 정면을 바라보는 영락제의 표정이 포착되어 그대로 스샷으로 박제되었는데, 얼굴에 담긴 무표정인지 멍 때리는건지 알 수 없는 기묘함 때문에 레딧과 X(구 트위터) 유저들로부터 'LIVE YONGLE REACTION(실시간 영락제 반응)'이라는 밈이 되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이제 팬아트에서 영락제를 그릴 때는 무표정으로 그리는 것이 국룰. 나중에는 은근슬쩍 뇌절에 몸을 맡기고 지켜보며 즐기던 본사가 작정하고 밈을 받아들여 도전과제 업데이트 당시 영락제로 승리하는 도전과제 이름이 "라이브 영락제 리액션"으로 지어졌으며, 이 도전과제명은 추후 영락제 단독으로 등장하는 8월 이달의 도전 제목으로 다시 쓰였다.


[1] 영국 프랑스의 공동 지도자 엘레오노르의 아키텐과 같은 케이스이다. [2] 진시황의 페르소나를 따로 치고 몽골과의 공동 지도자인 쿠빌라이도 셀 경우이다. 5명이면 본작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이외에는 영국이 4명, 미국, 이집트, 프랑스가 셋이다. [3] 한국식 독음은 '천하흉흉지대란,개유우봉건. 과인즉장일지'이며 한어병음은 Tiānxià xiōngxiōng zhī dàluàn, jiē yóuyú fēngjiàn. Guǎrén jíjiāng yī zhī이다. "제후와 왕에게 있다" 까지는 사마천 사기에 비슷한 구절(天下共苦戰鬭不休以有侯王)이 실려 있다. [4] 안건을 만족시키면 관계창에서 "진시황은 당신의 불가사리 수가 적어 기뻐함"이라고 뜬다. [5] 1268년에 쿠빌라이 칸이 고려를 통해 일본에 보낸 조서의 내용 중 일부분으로, 이 부분만 딱 잘라서 보면 훈훈한 분위기지만 조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조공을 바치지 않으면 군사를 보내 직접 받으러 가겠다는 협박이다. [6] 이 10%P는 어떤 상황에서도 고정이다. 오리지널에서 흥망성쇠로 넘어오며 유레카와 영감이 40% 촉진으로 하향되었을 때 중국은 여기에 10%P를 더한 50% 가속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모드를 이용해 유레카와 영감의 가속량을 바꿔도 중국은 무조건 +10%P이다. [7] 실제로 전국시대 통일은 진시황 전대에 이미 확정되었고 진시황은 숟가락만 얹은 정도이다. 진시황의 진정한 업적과 악명은 수백 년간 분리된 중국을 하나의 체계로 다시 통일하고 기념물들을 건축한 것에서 온다. [8] 오리지널 기준 금 +1. [9] 오리지널 기준 금 +1. [10] 이 효과 자체는 석조기술을 연구해야 적용되지만, 만리장성의 잠금 해제 기술도 석조기술이기에 의미가 없는 제한이다. [11] 오리지널 기준 문화 +1. [12] 굳이 더 들자면 마하보디 사원을 지어 사도 둘을 얻음으로써 신앙을 전혀 소모하지 않고도 종교 강화를 끝내는 정도지만, 이걸 노리고 마하보디를 짓느니 더 유용한 불가사의가 분명히 남아있을 것이다. [13] 히폴리타의 이동력 부활 효과를 이용해서 한 턴에 불가사의에 두 번 생산력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플레이다. 전제정치 정부를 선택하고 강제 노역 카드까지 이용하면 2턴만에 불가사의가 건설된다! [14] 시황제가 통치한 진나라의 수도는 함양으로, 현재 중국의 시안 시 바로 위에 붙어있는 센양 시(咸陽, Xiányáng)가 바로 그곳이다. 오히려 시안(장안)은 전작인 문명 5의 중국 지도자인 측천무후 통치하던 시절의 수도이다.(측천무후가 황후인 시절에는 장안이 수도였지만, 측천무후가 본격적으로 황제로서 즉위하던 시기에는 낙양으로 천도하기도 하였다. 죽은 뒤에는 다시 장안으로 천도.) 하지만 위치 상으로 바로 위에 붙어있는데다 항우가 함양에 입성했을 때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고 한나라에서 사실상 새로 새운 장안이 오랜 세월동안 여러 왕조들의 수도로 작용했기 때문에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15] 神都. 무주 시절 뤄양(낙양)을 부르던 말로, 측천무후는 장안에서 뤄양으로 천도했다. [16] 위 각주에 나오듯이 측천무후의 수도 셴두가 뤄양의 다른 이름인 만큼, 측천무후가 지도자일 경우 따로 세워지지 않는다. [17] 중국어 방언의 하나로, 북방어, Mandarin Chinese라고도 함. [18] 직역하면 '전쟁은 곧 전쟁이다'인데, 이 표현은 임진왜란 동래성 전투의 그 유명한 '팻말 문답'에서도 나온 표현이다. '싸우려거든 싸워 보자'는 의미가 더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