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4 22:29:13

맥라렌 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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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맥라렌 로고_1.jpg
파일:맥라렌 F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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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 McLaren F1

1. 개요2. 모델3. 제원4. 프로토타입
4.1. XP14.2. XP24.3. XP34.4. XP44.5. XP5
5. 특징
5.1. 무게5.2. 3시트 구조5.3. 엔진
6. 파생형
6.1. GTR6.2. GT6.3. LM
7. 기록8. 평가9. 기타10. 미디어
10.1. 게임10.2. 만화
11. 모형화12. 정신적 후속작13. 둘러보기

1. 개요

영국의 차량 회사인 맥라렌에서 생산했던 슈퍼카.[1] 또한 원래는 F1 레이싱 팀이었던 맥라렌이 최초로 자체 생산한 모델이기도 하다. 이 차량이 세상에 나온 계기가 특별하다. 설계자인 고든 머레이를 비롯한 맥라렌 팀 관계자들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눴다.
"왜 우리가 슈퍼카 한 대 사려고 굳이 이탈리아까지 비행기 타고 가야 하지?"

" 우리가 직접 만들면 되는데!"

라는 말이 오간 후 개발에 돌입했고,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슈퍼카가 세상에 등장하였다.[출처]

2. 모델

파일:맥라렌 f1 전면.jpg
파일:맥라렌 f1 후면.jpg
<colcolor=#000> 전면 <colcolor=#000>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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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맥라렌 f1 전측면.jpg
파일:맥라렌 f1 후측면.jpg
전측면 후측면

3. 제원

F1
제조 국가 및 제조사 영국, 맥라렌
최초 생산 년도 1993년
차량 가격 63만 5,000파운드 (출시 당시)
엔진 형식 미드쉽 자연흡기 6.1L 12기통[3]
미션 형식 수동 6단
구동 방식 후륜구동
배기량 6,064cc
최고 출력 626마력 @ 7,500rpm
최고 토크 62.9kg.m @ 4,000rpm
제로백 (0→100km/h) 3.2초
제로 이백 (0→200km/h) 9.4초
제로 삼백 (0→300km/h) 22초
최고 속도 391km/h[4]
연비 8.5km/ℓ (유럽 기준)
승차 인원 1+2명
전장 4,290mm
전폭 1,820mm
전고 1,140mm
공차 중량 1,140kg
생산 모델 쿠페

4. 프로토타입

최종 양산형은 1992년 모나코 그랑프리 전야제에서 공개되었다.

프로토 타입이 나오기전에 알버트(Albert)에드워드(Edward)라는 이름의 시험용 차량이 2대 존재했었다. 이 둘은 울티마 스포츠 MK3 키트[5]를 베이스로 만들어졌으며 테스트 후 보안상의 이유로 폐기되었다. 이 두 차량 덕분에 맥라렌에서는 F1에 들어갈 설계를 크게 수정할 수 있었으며, 울티마 측에서는 해당 업적을 기리며 이 두 차량에게 고유 배지를 수여했다.
파일:맥라렌 F1 Albert.jpg
<colcolor=#000> 알버트(Albert)
구통계통과 전자장비 테스트용으로 BMW S70/2 엔진과 비슷한 토크를 내기위해 쉐보레 V8 엔진이 올라갔다. 또한 중앙 운전석과 카본 브레이크 등도 실험했다.[6]

파일:맥라렌 F1 Edward.jpg
<colcolor=#000> 에드워드(Edward)
BMW S70/2 엔진과 윌리엄사의 변속기, 현가장치, 냉각계통 등 테스트용.

이후 총 5가지의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다.

4.1. XP1

파일:맥라렌 F1 xp1 프로토타입.jpg
최초의 러닝 프로토타입. 1992년 12월 23일 제작되었다. 1993년 3월 24일에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테스트 도중 전복되어 기름 유출로 폭발하여 소실되었다. 당시 운전자는 부서진 앞 유리창을 통해 빠져나와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고 하며, 이후 맥라렌 전 CEO 겸 회장 론 데니스가 XP1의 잔해를 모두 모아 상자에 담아서 묻어놓았다고 한다.

4.2. XP2

파일:맥라렌 F1 xp2 프로토타입 충돌 테스트.jpg
충돌시험용. 테스트 후 다시 고쳤다고 한다.

4.3. XP3

파일:맥라렌 F1 xp3 프로토타입.jpg
서스펜션 테스트와 내구성 시험용. 버터플라이 도어가 인상적이다.

4.4. XP4

파일:맥라렌 F1 xp4 프로토타입.jpg
기어박스 테스트용. 아시아 투어에도 사용되었다. 출력은 양산형보다 41마력 적은 585마력.

4.5. XP5

파일:맥라렌 F1 xp5 프로토타입.jpg
마케팅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최고속도 기록(391km/h)에 사용된 차량이다.

5. 특징

5.1. 무게

혼다 NSX에 큰 영향을 받은 자동차인 만큼 경량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고든 머레이의 주도하에 개발되었는데 경량화에 많은 노력을 투자했다. 클러치 페달에 사용할 볼트의 크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6mm 볼트는 좀 부족하고 8mm 볼트를 쓸 정도로 힘이 가해지지는 않는다 생각해서 표준 규격에 없는 7mm 볼트를 만들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공구를 사용할 수 없어서 전용 티타늄 공구박스를 줬다. 또한 당시로는 생소한 소재였던 CFRP(Carbon Fiber Reinforced Plastic;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을 대량으로 사용하여 모노코크 차체를 제작한 최초의 차량이다. 심지어는 켄우드 사가 특수 제작한 CD 플레이어에 들어가는 자석은 가볍지만 자성이 없는 알루미늄에 철 가루를 코팅했다. 덕분에 1,140kg의 엄청나게 가벼운 무게[7]를 가지게 되었다.

5.2. 3시트 구조

파일:맥라렌 F1 3시트 실내.jpg
<colcolor=#000> 맥라렌 F1의 실내
다른 일반적인 스포츠카의 구조와는 다르게 운전자가 가운데에 위치하고, 운전자 좌우로 조수석이 있는 매우 독특한 3시트 구조를 채용하고 있다. 설계자인 고든 머레이가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구조라 한다. 무게 중심이 좌우로 쏠리지 않고 운전자의 시야가 보장되며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 구조이다.[8] 많은 맥라렌 F1 팬들은 이 구조에 대해서 극찬하지만 후술할 문제점 때문에 후대에 이 3시트를 채용한 슈퍼카는 극소수에 불과하고[9] 맥라렌에서도 F1 이후 제작한 슈퍼카들은 스피드테일을 제외하면 모두 일반적인 2인승 구조를 택하고 있다.

사실 이 구조는 양산차에 흔히 채용되는 일반 도로에 초점을 맞춘 구조가 아니다. 중앙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서킷에서 레코드라인을 운전자가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현되었을 뿐이며 1인승으로 만들려다 좌우에 임시 시트 한 개씩 추가한 정도에 중앙선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도에서는 중앙선을 넘어서 추월할 때 일반 차량보다 전방 시야가 훨씬 나빠 운전에 많은 애로가 따른다.

그리고 동승자에 대한 배려 문제도 있고, 승객을 양 옆에 태웠을 때 운전자가 가운데에 끼여서 미칠 듯이 답답한 문제와 좌우의 시선[10], 그리고 측면 충돌시의 위험 등... 이런 이유들로 인해 공도용으로 계속 만들어 낼 수는 없어 결국 이후의 맥라렌 차량들은 기존의 평범한 2시트 구조를 채용하고 있다.[11] 의도는 좋았지만, 정작 실사용 시 많은 문제점이 따라 버려진 비운의 구조다.

5.3. 엔진

파일:맥라렌 f1 S70/2 엔진.jpg
<colcolor=#000> BMW 6.1L V12 S70/2 엔진
개발 당시 맥라렌 포뮬러원 팀은 혼다와 엔진공급 계약을 맺고 있었고, 고든 머레이와 엔지니어들 또한 혼다제 엔진을 희망하였다.[12] 허나 혼다에 문의를 하니 맥라렌이 원하는 엔진 제공이 곤란하다고 일축했고,[13][14] 그 이후 이스즈에서 호감을 보여 자사의 3.5L V12 레이싱 엔진을 로터스의 차체에 얹어 선보였지만 요구 사항에 맞지 않아 불발되었다.[15] 결국 고든과 맥라렌은 BMW M 측에 엔진의 제작을 의뢰하였고[16] BMW M 스포트(Sport)의 마스터 엔지니어인 폴 로쉐가 이에 흥미를 보여 850CSi에 들어간 S70 엔진에 기존의 SOHC 방식 대신 DOHC 헤드를 올리고 배기량을 6.1L로 증가시켜 개조한 BMW의 S70/2 엔진을 제작했고 이를 공급받아 사용하게 되었다.[17] 독립 12 스로틀과 흡배기 가변타이밍 캠축(더블 바노스)를 적용하여 627마력을 발휘하고, 드라이 섬프를 채택하여 엔진 장착위치를 낮출 수 있었다.

6. 파생형

6.1. GTR

파일:F1GTR 06R섀시 전면.jpg
파일:F1GTR 06R섀시 후면.jpg
<colcolor=#000> 일반 모델[18]
파일:F1GTR 롱테일 25R 섀시 전면.jpg
파일:F1GTR 롱테일 25R 섀시 후면.jpg
롱 테일 모델[19]
파일:맥라렌 F1 로고.png 파일:맥라렌 F1 GTR 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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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GT

파일:맥라렌 F1 GT.jpg

F1 GTR 롱 테일의 단 두 대만 생산된 로드카 버전이자, 공도 주행이 가능한 트랙 특화 파생형이다.
  • 프로토타입: 실버스톤 그린 색상이다. 유럽과 미국의 모터쇼나 자동차 행사에 매우 가끔씩 모습을 비춘다.
  • 하사날 볼키아 소유: 블랙 색상이며, 가장 최근에는 맥라렌 MSO 부서에서 목격되었다.
  • 나고야 ZAZ 박물관 전시품: 원래는 BMW 칼립소 레드 색상이었으나, 2007년에 마그네슘 실버 색상으로 리페인팅되었다.

6.3. LM

파일:맥라렌 F1 L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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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맥라렌 F1 LM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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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 파일:맥라렌 F1LM 로고.png [20]
F1 GTR의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드카. 기존의 F1 GTR에 적용된 각종 제한을 없애면서도 기존의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를 디스크 브레이크로 교체하는 등 공도 주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놓은 사양인데, 케블라, 탄소섬유, 금 등 각종 소재를 아낌없이 사용한 결과 무게는 1,062kg으로 여태까지의 맥라렌 F1 중 GTR을 제외하면 가장 가벼운 무게를 가진다.[21] 엔진은 기존의 GTR에 쓰였던 S70/2 엔진을 그대로 옮겨 제한을 풀었으며, 이로 인해 680마력의 괴력을 자랑한다. 이러한 무게와 출력으로 인해 F1 LM은 약 1.56kg/hp이라는 경이로운 마력 대 중량비를 이룰 수 있었다.[22] 다운포스를 염두에 둔 각종 에어로 파츠들로 인하여 최고속도는 기존 F1에서 더 느려진 362km/h이다.

실내는 기존 F1 GTR에서 공도 주행에 맞게 손봐놓은 사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존 GTR에서 제거된 2개의 조수석을 다시 되돌려놓고 운전자의 시트 공간을 늘리기 위해 스위치 패널의 크기를 줄였다. 또한 흡음재의 부재로 인한 소음으로부터의 청력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LM 로고가 새겨진 헤드셋을 제공한다.

해당 모델의 상징 컬러는 파파야 오렌지라는 색상인데, 맥라렌의 창립자인 브루스 맥라렌의 상징 색과 동일한 색상이며, 그를 기리기 위한 의미로 도색되었다. 하지만 이 차를 두 대나 구매한 하사날 볼키아는 이 중 한 대에 파파야 오렌지가 아닌 특별 도색을 주문하였고, 해당 차량은 F1 LM 생산분 중 유일하게 색이 다르다.

총 5대 한정 생산되었다.[23]

루이스 해밀턴이 맥라렌 팀에서 활약할 적에 이 차를 가지려 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맥라렌의 총괄 수장이었던 론 데니스에게 본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F1 LM인 XP1(프로토타입)[24]을 가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은 적 있었는데, 론은 간단하게 F1 2008 시즌 챔피언십(드라이버 / 컨스트럭터)에서 모두 이기면 차를 주겠다고 했지만 불발되었다.[25]

맥라렌 관계자에 따르면 이때 루이스는 자신이 이기면 XP1을 얻을 수 있겠지만 팀에서 진품이 아닌, 하술할 LM 스펙을 XP1과 똑같이 만들어서 주는 건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여 나중에 자신에게 진짜 LM XP1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LM XP1 어딘가에 작은 표시를 해서 그렇게 XP1의 가치는 몇 배로 뛰게 되고... 나중에 받고 나서 이 표시를 찾아낸 다음 맞는 차임을 확인하려 했다고 한다. 물론 맥라렌 측에서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LM XP1을 면밀히 조사했지만, 표시를 찾아내지 못했다. 후일 맥라렌 측에서 판매하려 내놓았을 때나, 자신이 돈을 주고 구입할 기회가 왔을 때 진짜 XP1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 표시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파일:맥라렌 F1 LM-스펙.jpg
파일:맥라렌 F1 LM-스펙 2.jpg
파일:맥라렌 F1 LM 스펙 로고.png
1997년 맥라렌 F1의 생산이 종료되고 맥라렌에서는 F1 일반 모델을 기반으로 실내는 그대로 둔 채 F1 LM의 스펙을 그대로 적용하여 LM-스펙[26][27] 이라는 모델을 단 두 대만 만들었는데, 여태까지의 F1 중 가장 희귀한 사양의 모델이며, 2019년 RM 소더비 경매에서 무려 1,980만 달러[28]에 팔린 전적이 있는 만큼 그에 맞는 몸값을 자랑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7. 기록

<colcolor=#000> 무편집본 <colcolor=#000> 요약본[29]
1998년 경 rpm 제한이 해제된 XP5 차량으로 242.9mph에 도달한 기록을 담은 영상

1992년 생산에 돌입하여 1996년까지 프로토타입과 파생모델을 포함하여 총 107대가 생산되었다.[30] 당초 계획은 총 300대를 제작할 계획이었는데 당시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도중에 양산이 중단되었다. 1994년 독일 나르도 링에서 조나단 팔머가 운전한 XP3 차량으로 231mph(약 371.8km/h)에 도달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량으로 등극했다. 이에 대해서 팔머 측에서는 원형 트랙의 빡빡한 구조만 아니었다면 더 높이 도달할 수 있었다고 밝혔으며, 당시 고든 머레이 측에서도 기어비를 높이면 최소 230mph 이상으로 더 빨리 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맥라렌은 멈추지 않았고 1998년에 폭스바겐 소유의 에라-레지앙 테스트 트랙에서 앤디 월리스가 5.4마일 직선 왕복 2회 주행으로 평균 240.1mph(386.4km/h)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F1의 잠재력을 확인한 월리스는 RPM 리미터를 해제하고 242.9mph(391km/h)에 도달하였다. 시간이 지나 수많은 슈퍼카, 하이퍼카들이 맥라렌 F1의 속도 기록을 넘어섰지만[31] 아직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연흡기' 차량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32]

기록 당시 6단 기어에서 출력이 7,400rpm에서 최대치를 발휘했고 391km/h의 최고 속도가 7,800rpm에서 관측된 것으로 보아[33] 7단 기어를 추가하거나 기어비를 더 높이면 400km/h를 넘길 거란 의견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바램일 뿐, 실제 고든 머레이는 맥라렌 F1이 시속 400km/h를 낼려면 750마력 정도의 출력이 필요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34]

8. 평가

The greatest supercar ever built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슈퍼카
각종 매체에서의 공통된 평가[35]

20세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슈퍼카,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명차로 평가받는다. 1994년 영국의 AutoCar 매거진은 맥라렌 F1에 관한 로드테스트를 실시한 뒤 "맥라렌 F1은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뛰어난 시판용 자동차다", "F1은 자동차 역사의 위대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며 이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가 될 것이다." 라는 평을 남겼다. 상술했듯이 실제로도 세계에서 제일 빠른 자동차였으며, 이 타이틀을 나중에 부가티 베이론 16.4가 가져간 이후로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제일 빠른 자연 흡기 자동차라는 타이틀을 당당히 가지고 있다.

맥라렌 F1이 등장하면서 불러온 파급력도 막대했는데, 당시 20세기 후반은 포르쉐 959, 페라리 F40, 재규어 XJ220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슈퍼카 제조사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던 시대였다. 그러던 도중 시대를 초월한 압도적인 패키징과 스펙을 가진 차가 갑자기 등장하더니 현존하는 슈퍼카들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기록을 우후죽순 내놓아 전 세계의 자동차 업계를 충격에 빠뜨리기엔 충분했다.

맥라렌 F1의 패키징은 그라운드 이펙트와 같은 각종 공기역학, 파워트레인 등 각종 최신 기술을 절묘하게 세팅해 표면상 스펙 대비 압도적인 성능을 낼 수 있었고[36] 서킷과 일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편의성까지, 운전자가 그 막대한 성능을 아무 때나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어 당시의 포르쉐마저 능가하는 실용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37]

이러한 세팅의 여파로 생김새에 비해 차고가 높아, 시승기들을 보면 포르쉐 911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일상생활에 아주 큰 불편함은 없다고 한다. 수납 편의성은 거의 포기한 대부분의 슈퍼카들에 비해서 트렁크를 차량의 양쪽 측면에 마련하여 수납공간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편이다. 위에서 말했듯 애초에 개발사상이 데일리카로서 사용하다가도 원한다면 언제든지 막대한 출력을 낼 수 있는 차량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니 당연한 것이다.

이 우수한 설계를 발판삼아, 맥라렌 F1은 20세기의 가장 빠른 양산차 경쟁을 반쯤 종결해 버린 것도 모자라 고든 머레이의 우려와는 달리 뛰어난 포텐셜로 모터스포츠에서도 수많은 업적을 남겨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개발 당시 맥라렌 F1의 개발 사상에 영향을 준 차량이 바로 혼다 NSX이다. NSX처럼 쾌적하면서도 경량의 슈퍼스포츠 모델을 지향했다고. 고든 머레이도 NSX를 극찬했으며[38], 맥라렌 F1의 개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9. 기타

미칠 듯한 경량화를 위한 독자 부품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가격이 치솟아 당시 60만 파운드가 넘는 가격으로 출시되었고[39] 2008년 기준 시세는 200만 파운드가 넘는다.
파일:맥라렌 f1 지면 효과.jpg
<colcolor=#000> 맥라렌 F1의 보조 팬 관련 설계도. 그라운드 이펙트를 지원하는 원리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준다.
리어 디퓨저와 차체 안에 숨겨진 2개의 작은 팬으로 인해 벤츄리 효과, 그로 인해 생기는 그라운드 이펙트를 지원하는 최초의 양산차다. 사실 F1 역시 고든 머레이가 창조한 여러 개의 팬 카 중 하나였던 셈이다.[40]

페라리는 이 차를 이기기 위해 경쟁 차량으로 페라리 F50을 출시했지만 F1의 아성에 미치지는 못해 그냥 적당히 잘 만든 페라리 슈퍼카 중 하나로 남게 되었고[41] 레이스에서 승부를 보려고 F50 GT도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출전 직전에 모종의 사정으로 F50 GT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당시의 기술을 총집합해 탄생한 차량답게 원래 가격도 고가이지만, 거기에 감가상각까지 역으로 적용되는 슈퍼카로도 유명하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중고가격이 내려가기는 커녕 오히려 올라가기만 한다는 것인데, 슈퍼카 시장에서 이런 예는 손으로 꼽을 만큼 희귀한 케이스라고 한다. 전무후무한 행적과 성능으로 인해 자동차 역사상 최고의 명차 중 하나로 평가받으면서, 그 폭 역시 급상승하여 현재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 가치는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42] 매에서 무려 40억이 넘는 가격으로 낙찰되어 대한민국 인터넷 뉴스에까지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43] 대한민국에도 한 대 있다는 소문이 존재한다.[44]

심지어 아직도 비닐도 안 뜯은 새 차가 있다. 관련기사 섀시넘버 060인 차량으로, 차량 테스트와 탁송을 위해 주행한 239km가 총 마일리지라고 한다. 평균 거래가격이 1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조금 더 가격이 비싸게 호가될 것으로 보인다. 허나 일반적으로 클래식카는 오히려 너무 안 타면 내부의 그리스나 오일류가 굳거나 산패되는 문제, 고무류의 경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주행거리가 짧다고 해서 무조건 가치가 높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 가치의 슈퍼카라면 보존을 위해 항온 항습실에서 질소충전백에 싸여 보관되고 있을 수 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MSO에서 복원할 수 있는 상태이으므로 상태가 정말로 신차 그대로일 가능성도 있다.

이 차의 뉘르부르크링 랩타임은 수많은 자동차 애호가들의 영원한 떡밥. 일단 한 드라이버가 7분 45초를 기록한 동영상이 존재하기는 한다. 또한 7분 11초를 기록했다고 말하는 매체도 있으며, 6분 후반대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 차량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인 횡가속도 0.86G에 불과한 코너링성능( 닷지 바이퍼가 동시대에 무려 0.96G를 기록했다)때문에 7분 11초와 함께 사실불명. 7분 45초에서 단축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 하다.

하사날 볼키아를 포함해 브루나이 왕실에서 이 차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45] 원래는 몇 대가 더 있었으나 볼키아의 동생이 가지고 있던 일반 버전 1대(티타늄 노란색, 슈마허 싸인이 되어 있던 모델. 현재는 미국인에게 매각되어 흰색으로 도색되었다.)는 경매로 넘어갔고[46], GT 모델은 영국 MSO 본사로 점검을 위해 갔다가 다시 브루나이로 돌아왔다.

일본에 10대 정도 있다고 하며 대한민국에는 은색 차량 하나가 90년대 후반에 잠깐 있다가 일본에 간 것으로 전해진다.
파일:https___artofgears.com_files_2015_06_2015.6.9.-MrBean.jpg
파일:Mr-Bean-McLaren-F1-101-626x313.jpg
<colcolor=#000> 로완 앳킨슨의 한정판 맥라렌 F1과 사고 당시 사진
미스터 빈과 함께 자동차 애호가로 유명한 영국의 배우 로완 앳킨슨 자주색 F1 한 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2번의 사고로 2번 다 반파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똑같은 모델을 새로 사는 것이 더 나은 수준임에도 본인의 의지로 완전한 수리를 거쳤다. 2011년 2번째 사고에서는 보험사에서 90만 파운드를 받아, 영국에서 개인이 받은 가장 큰 보험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한정판+유명인 프리미엄으로 2015년 경매에서 어지간한 무사고 차량보다 더 비싼 가격인 122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유명 코미디언인 제이 레노도 이 차를 소유하고 있다.

이 차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20년 전의 구형 노트북 컴퓨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외국에서 멕라렌 F1 GTR에 디젤을 넣어버린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당사자는 아무 생각없이 디젤은 안된다는 문구가 있었음에도 그냥 주유구에 맞는다는 이유로 디젤을 넣었다고 한다. 일단 들어간 디젤을 겨우 다 빼내서 고장나는 신세를 면했지만 물론 결말은 당연히도 차키 압수.

F1을 시작으로 맥라렌의 모든 차량들이 전부 버터플라이 도어를 채택하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개발자 고든 머레이는 이웃이 소유한 토요타 세라라는 자동차의 디자인에 반해서 그 문의 형태를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맥라렌 F1의 디자인 요소에 그대로 적용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맥라렌 F1보다 3년 앞선 시기에 시판된 일본 소형차의 영향으로 지금의 맥라렌들이 큼지막한 버터플라이 도어를 달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이퍼카의 의미를 정의한 부가티 베이론 16.4가 출시되기 한 참 이전의 차량이지만[47] 시대를 앞서간 설계와 성능, 그로 인한 막대한 파급력[48]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F1을 최초의 하이퍼카라고 칭하기도 한다.[49][50]

2023년,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힐클라임 코스를 주행 중이던 F1 GTR이 그립을 잃고 스핀하여 건초더미로 만든 배리어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이 사고로 차량의 앞 범퍼가 파손되었으나, 다행히도 피해는 경미한 편.

사이드미러는 폭스바겐 코라도의 것을, 후미등은 보바 후투라(Bova Futura)라는 대형 버스의 것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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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과는 크게 관련은 없지만, 스쿠데리아 카메론 글리켄하우스(SCG)는 F1의 내부 구조에 영향을 받은 전방 운전석 1시트 + 후방 조수석 2시트 구조의 스포츠카인 004S 모델 프로토타입을 제작 중이다.

10. 미디어

10.1. 게임

  •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
    업데이트로 등장했는데, 성능은 Gr.3 카테고리 내에서 사기급. 그야말로 빠른 최고 속도와 좋은 코너링에 멍~한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이 차는 1990년대 중반 GT1 차량이라 GT3는 물론, GTE보다도 느린 건 말도 안 된다. 그란 투리스모 7에서는 ACO-BPR 통합 GT1 규격 차량이 Gr.2로 등장한다.
  • CSR Racing 2
    F1, F1 GT, F1 LM이 등장한다. F1은 레전드 시리즈 차를 전부 복원하면 보상으로 획득할 수 있다. F1 LM은 레전드 V2 시리즈의 모든 차량의 엘리트 레벨을 최대치로 올리면 보상차로 받을 수 있다.

10.2.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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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 황금로봇 골드런에서 등장한 맥라렌 F1
주인공인 드란(킹스톤)이 금색의 맥라렌 F1으로 변신한다.

11. 모형화

12. 정신적 후속작

F1은 슈퍼카의 역사 전반에 걸친 높은 기여를 한 차량으로서 수십년이 지나서도 F1의 특징들을 이어받은 정신적인 후속차량이 나오고 있다. 맥라렌 오토모티브에서 만든 P1과 스피드테일, 그리고 고든 머레이 오토모티브에서 만든 T.50이 있다.
P1를 제외하면 3인승 좌석으로 대표되는 F1의 주요 특징들을 갖고 있고 하드코어 레이스카와 상반된 부드러운 GT 성향을 띄고 있다.

P1과 스피드테일은 8기통 트윈터보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고, T.50은 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세 모델 모두 F1의 컨셉을 이어받고 있지만 세세한 디테일들이 개발자에 의해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이 세 차량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53]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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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는 최초의 하이퍼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선 후술한다. [출처] : 고든 머레이를 비롯한 주요 개발자들의 저서 Driving Ambition: An Official Story of Mclaren F1 [3] BMW의 엔진이다. [4] 이 기록은 2005년 부가티 베이론 16.4가 나오기 전까지 약 8년간 양산차의 최고 속도라는 타이틀을 가졌었다. [5] 맥라렌이 요구했던 F1의 무게 중심과 차체 비율이 이 키트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6] 이후 F1의 정신적 후속작의 시험용 차량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7] 참고 대상인 NSX보다도 더 가벼운 무게다. [8] 기존의 스포츠카의 탑승 인원이 달랑 2명이 끝이라는 걸 생각하면, 나름의 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9] F1 이후로 3시트 구조를 채용한 차량은 F1의 정신적 후속작으로 평가받는 고든 머레이 T.50과 맥라렌 스피드테일 밖에 없으며, 영국 이외 다른 나라들까지 따지면 미국의 스쿠데리아 카메론 글리켄하우스 004 시리즈, 캐나다 퀘벡의 슈퍼카인 HTT 플레토어 LC750 등이 있다. [10] 몇몇 자동차 잡지나 평론가들은 이 점을 비틀어 카사노바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차라고 농담조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11] 그러나 고든 머레이가 디자인한 시티카 T25와 전기차인 T27이 있었는데, 이 모델들도 바로 운전석이 가운데에 있고 양 옆으로 조수석이 있는, F1과 동일한 형태의 좌석을 채용한 모델이다. 고든 머레이는 아직 3시트 레이아웃을 포기하지 않은 채 차량의 개발을 이어가는 중이며, 그 결과 그의 야심작인 하이퍼카 T50 또한 3시터로 나오게 되었다. 사족으로, 현재는 고든 머레이가 관여하지 않는 맥라렌에서도 F1과 P1의 포지션을 이어받는 3시트 레이아웃의 하이퍼카를 개발했다. [12] 이 당시 맥라렌은 엔진을 독자 개발하기엔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타 제조사의 엔진을 공급받아 써야 했고, 이 중 맥라렌 F1 개발 프로젝트의 주축이였던 고든 머레이가 혼다 NSX에서 좋은점을 가져와 개발했기에 혼다의 것을 쓰길 원했다. [13] 이 당시 고든과 맥라렌이 요구했던 엔진 사양은 250kg보다 가볍고 558마력 이상의 자연흡기 포뮬러 1 기반 엔진이였다. 이처럼 동시기 라이벌이던 페라리 F50처럼 F1 엔진을 넣어서 포뮬러 1 기술과 접목시킬려고 했으나, F50조차도 Tipo 036 엔진을 그냥 얹지 못하고, 흡배기는 물론이고 엔진의 각 부분을 시판차에 맞게 마개조 수준으로 개량을 해서 겨우 얹었는데도 700마력에서 다운된 520마력에 그쳤다. 혼다는 페라리와 달리 이런 리스크를 감당할 리가 없어 결렬된 걸로 보인다. [14] 사실 포뮬러 1 엔진을 양산차에 얹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리스크가 따른다. 앞서 말했던 F50은 고사하고, 포뮬러 1의 엔진을 최대한 그대로 이식했다고 평가받는 2022년에 출시한 메르세데스-AMG AMG ONE마저 엔진의 이식을 위해 rpm의 엄격한 제한은 물론 내구성 확보를 위해 전자적으로 많은 제약을 걸었고, 엔진에도 보이지 않는 많은 개조를 가했으며 환경 문제 때문에 소음기에도 특수적인 조치를 가했다. 이를 위해 수 년이 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으며 이에 따라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투자됐다. 이에 벤츠 측에서도 AMG ONE의 개발 프로젝트를 정말 무모한 도전이라고 입장을 표하는 등 포뮬러 1의 엔진을 양산차에 얹는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맥라렌 F1를 개발하던 그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더더욱. 물론 벤츠와 페라리는 그에 맞는 막대한 자본이 있었기에 이를 성공하고 양산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만 맥라렌은 그렇지 못하였고 혼다 역시 굳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순 없었던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15] 맥라렌, 정확히는 디자이너들이 원했던 것은 모터스포츠에서 검증된 신뢰성 있는 엔진이였다. 그런데 이스즈는 혼다처럼 모터스포츠 쪽에서 그렇게 유서 깊은 제조사가 아니었다는게 문제였다. 결국 신뢰성의 문제였던 셈. [16] 그 당시 엔진의 요구사항은 리터당 100마력 이상의 자연흡기 V12 엔진이였다. [17] 요구 사항은 충족했지만 포뮬러 1 기반의 엔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든 머레이와 맥라렌을 만족시키고 후술할 많은 전설적인 기록들을 세운 것을 보면 BMW의 우수한 엔진 제조 능력을 증명하는 서사였던 셈이다. [18] 해당 모델은 "Harrods Backing"의 리버리가 적용된 섀시 06R 모델이다. 이후 P1 GTR, 세나 GTR로 오마주되었다. [19] 해당 모델은 "Gulf"의 리버리가 적용된 섀시 25R 모델이다. 이후 P1 GTR-18로 오마주되었다. [20] 사진은 프로토타입 모델인 LM XP1이다. [21] GTR을 포함하면 1997년 롱 테일 모델이 910kg으로 제일 가볍다. [22] 이는 18년 뒤 정신적 후속작이 나오고서야 뛰어넘을 수 있었던 수치다. [23] 프로토타입 포함 총 6대. [24] 상단 사진의 차량이 그것. [25] 2008년에 루이스 해밀턴은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1점 차로 챔피언 타이틀을 가까스로 따냈으나, 컨스트럭터 타이틀은 팀메이트인 코발라이넨의 부진으로 실패하였다. 이후 론은 루이스와 재협상하여 남은 시즌동안 해트트릭으로 챔피언 타이틀 2개를 연속해서 더 차지하면 차를 주겠다고 했으나 2009년은 브런의 젠슨 버튼이, 2010년부터는 레드불의 제바스티안 페텔이 차지하였다. [26] 이러한 LM의 바디킷은 맥라렌 측에서 HDK(High-downforce Kit)라고 부르며, 이에 따라 이 모델을 맥라렌 F1 HDK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27] 이는 훗날 메르세데스-벤츠와 합작하여 개발한 SLR의 파생형 이름으로도 쓰였다. [28] 당시 기준으로 한화 약 229억원. [29] 무편집본에서 필요없는 부분을 제거하여 가속력과 최고 속도를 요약한 영상이다. [30] 일반버전 64대, GTR 28대, GT 3대, LM 5대, 프로토타입 7대 [31] 기네스북 월드 레코드 기준, 가장 빠른 양산차 문서 참고. [32] 최근 슈퍼카의 추세는 2010년 이후로 자연흡기가 아닌 터보차저가 된지 한참 되었으며 현재까지 자연흡기를 고집하는 제조사는 이제 얼마 없다. 최근 스포츠카/슈퍼카 제조사들은 다운포스를 더 중요하게 여겨 최고속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며, 자연흡기 관련 기술력에 해박한 페라리 역시 엔초 페라리의 후속으로 발표한 라 페라리에서 순수 자연흡기가 아닌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채용하였다. 또한 자사의 플래그십 V12 라인업을 제외하면 전부 터보 또는 하이브리드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니 맥라렌 F1의 자연흡기 기준 1등 기록이 깨질 가능성은 점점 멀어진다. [33] rpm 리미터가 해제된 F1의 레드존은 8,300rpm이다. [34] 이는 고든 머레이가 부가티 베이론 16.4를 비평한 내용의 일부이기도 하다. 머레이는 빠른 차의 미덕을 공기 역학에 중점을 두고 생각했으니, 407km/h를 내기 위해서 1,001마력이나 소모해야 하는 베이론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 [35] 맥라렌 공식 사이트에서도 F1를 소개할 때 이 멘트를 인용했다. [36] 상술했지만, 후에 나온 부가티 베이론 16.4의 그 육중한 쿼드터보 W형 16기통 엔진으로 400km/h를 돌파했다. 그에 반해 F1은 그에 반해 2/3도 안 되는 출력으로 그에 근접하는 속력을 낼 수 있었다. [37] 동시대의 959 역시 그저 공도 주행이 가능한 레이스카에 불과했던 페라리 F40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일상 주행에도 초점을 맞춰 데일리 용도로도 적합하다고 평가받았다. 이마저도 몇 수는 압도하는 성능에 더 실용적이기까지 한 F1의 패키징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38] 개발 중 개인 차로 NSX를 타고 다녔었다. [39] 애초에 가격 제한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만들었다고 한다. 일례로, 엔진룸은 발열을 고려해서 24K 금박을 입혀 놓았다. 방열재로써 금박은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 자재인데, 특히 무게 대비 방열 성능이 월등하기 때문에 경주용 자동차 제작및 항공우주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소재다. [40] 브라밤 BT46과 이 차의 정신적 후속작인 T.50 등 고든 머레이는 이 팬 구조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1] 다만 현재는 1990년대의 아이콘격인 자동차 중 하나라는 점, 당대 페라리의 최신 기술 특히 레이싱에 적용되었던 기술이 아낌없이 들어갔다는 점, 페라리의 브랜드 밸류 등의 영향으로 나름 재평가받고 있으며, F1만큼은 아니지만 경매가도 상당히 고가에 들어간다. [42] 각종 거래 사이트를 근거로, 맥라렌 F1의 평균 시세는 자그마치 2000만 달러를 능가한다. 2023년 4월 초를 기준으로 한화 260억원을 넘는 가격이다. 특히 상태가 좋은 차량이나 유명인 소유 전적이 있는 차량, GTR 모델들은 이마저 능가하는 가격으로 거래된다. [43] 2008년 10월 29일 런던 경매에서 섀시넘버 065번 로드카 차량이 2,530,000 파운드에(약 410만 달러) 낙찰되었으며 이는 맥라렌 F1 거래가 중 최고가 기록이다. 당시 주행거리는 고작 484km에 불과했다고. [44]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현재 파악된 섀시 넘버 중에 대한민국에 있다고 파악된 넘버는 없다고 한다. [45] GTR 2대, GT 1대, LM 2대, 일반 버전 2대. [46] 볼키아의 동생이 부패와 횡령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재산은 압수되었다. [47] 물론 그 이전에 파가니 존다, 코닉세그 CC가 있었으며 하이퍼카의 전신으로 평가된다. [48] 비슷한 케이스의 XJ220는 가격 책정의 문제와 각종 이유로 인해 절륜한 성능에 비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묻혀버림에 비해 맥라렌 F1는 각종 걸출한 기록을 줄줄이 세우고 자동차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침으로 인해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고 네임밸류에도 영향을 끼쳐 가장 위대한 슈퍼카 라는 명예를 얻기에 이른다. 즉, 맥라렌 F1는 성능도 성능이지만 그것을 충분히 입증함으로서 세간으로부터 칭송을 받는 것이다. 요즈음 하이퍼카 업계에서 LS 엔진의 우수한 튜닝 포텐셜을 믿어 성능 수치를 높게 세워놓고 정작 수 년 넘게 개발을 안 하고 파산하는 회사들이 많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XJ220는 개발까진 성공했지만 마케팅의 문제로 실패했음을 생각하면 우수한 하이퍼카를 만드는 데에는 상당한 시련이 따름을 알 수 있다. 부가티, 코닉세그를 비롯한 주요 하이퍼카 제조사들이 네임밸류가 괜히 뛰어난게 아닌 것이다. [49] XJ220, One-77, 카레라 GT 같은 부류도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 논쟁이 일어나기 일쑤다. 하지만 맥라렌 F1은 이들과 달리 모든 면에서 하이퍼카의 사전적이고 포괄적인 기준을 완벽히 충족하며, 각종 기록들과 시대에 따른 지속적인 평가가 이를 뒷받침하기에 논란이 전혀 없이 슈퍼카, 하이퍼카 이 두 표현이 혼용되는 것이다. 각자의 시선에 따라 그 표현이 달라질 뿐, F1은 그와 관계없이 하이퍼카로 마땅히 불리만한 제원을 가지고 있다. 쉐보레 콜벳(정확히는 Z06 트림 이상) 역시 비슷한 체급의 타 슈퍼카와는 달리 체급 대비 가격이 월등히 싸지만 성능은 이들과 대등하거나 능가함을 충분히 입증함으로서 매체에서도 내로라 하는 슈퍼카들과 당당히 비교되는 엄연한 슈퍼카로 인정되는 동시에 여전히 콜벳은 슈퍼카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공존한다는 점 역시 F1과 비슷한 예시를 갖고 있다. 테슬라 로드스터같은 경우 역시 하이퍼카로서의 성능을 명목적인 제원으로 따지면 완벽하게 가지지만, 가격과 희소성을 비롯한 차량의 체급 면에선 그렇지 않다. 상단의 콜벳과는 달리 트림별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아 정확한 경쟁 차량을 유추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발표 이래 출시만 연기된 채 정식 양산 소식도 없이 성능을 입증할 도리가 아직 전혀 없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다른 차종인 모델 S 역시 지속적인 성능 면에 있어 약한 면 때문에 스펙 면에서 뻥튀기 의심을 받는 시점에서 로드스터 역시 양산되더라도 해당 문제에선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50] 즉, 요약하자면 차량 자체는 기준을 완벽히 충족하고도 남지만 몇몇 요소로 인해 관점이 달라질 수 있고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공존한다. 취향껏 불러도 되는 정도. [51] 니드 포 스피드 에디션 기준 어두운 청색 [52] 니드 포 스피드 에디션 기준 어두운 올리브색 [53] P1와 스피드테일은 각각 F1과 F1 GT를 현 맥라렌의 패밀리 룩으로 완전히 새로 디자인 했다면, T.50은 원래의 F1 디자인을 토대로 현대적인 리파인을 가했다. 전체적인 설계 역시 P1은 F1와 큰 관련점 없이 성능과 디자인상 후속작임만을 강조했으며, 스피드테일은 3시트 구조를 이어받으며 기존 F1의 특징을 어느정도 강조함으로서 P1에 비해 F1와의 연관성이 더 뚜렷해졌다. T.50은 F1의 주요 특징들을 최대한 살렸으며 그라운드 이펙트 팬 등 F1의 실험적인 부분 역시 오마주한 것이 특징이다. 고든 머레이의 실험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