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23:14:06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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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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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2011)
My Way
파일:external/img.movist.com/40_p2.jpg
<colbgcolor=#422700> 장르 전쟁, 드라마
감독 강제규
각본 강제규, 나현[1], 김병인
출연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
제작사 디렉터스
배급사 SK플래닛, CJ엔터테인먼트
촬영 기간 2010년 10월 15일 ~ 2011년 6월 12일
개봉일 2011년 12월 22일
상영 시간 137분
월드 박스오피스 $16,653,488
총 관객수 2,139,802명
국내 등급 파일:영등위_15세이상_초기.svg 15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예고편3. 시놉시스4. 출연5. 줄거리6. 평가
6.1. 각본6.2. 언어6.3. 전투 묘사
7. 흥행8. 논란
8.1. 여론 조작 의혹8.2. 친일 논란
9. 실제와의 차이10. 기타11.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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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르망디의 한국인 이야기를 토대로 한 강제규의 2011년 영화.

2. 예고편

티저 예고편 공식 예고편

3. 시놉시스

그들이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목숨이 아닌 희망이었다.

1938년 경성.
제 2의 손기정을 꿈꾸는 조선청년 준식(장동건)과 일본 최고의 마라톤 대표선수 타츠오(오다기리 조).
어린 시절부터 서로에게 강한 경쟁의식을 가진 두 청년은 각각 조선과 일본을 대표하는 세기의 라이벌로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준식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고
그로부터 1년 후, 일본군 대위가 된 타츠오와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던져진 두 청년은 중국과 소련, 독일을 거쳐 노르망디에 이르는 12,000Km의 끝나지 않는 전쟁을 겪으며 점차 서로의 희망이 되어가는데…

적으로 만나 서로의 희망이 된 조선과 일본의 두 청년
국적을 초월한 인간애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다음 영화

4. 출연

5. 줄거리

노르망디에서 연합군을 피해 둘은 도망가지만 마지막에 김준식은 유산탄 파편을 가슴에 맞고 죽게 된다. 죽으면서 김준식은 하세가와 타츠오에게 자신의 군번줄을 받아 조선인인 척해서 살아남으라고 하고, 타츠오는 김준식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어, 준식의 꿈인 올림픽 출전을 1948 런던 올림픽에 출전해 대신 이뤄준다.[2]

6. 평가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블록버스터 대서사시로 전체적인 완성도는 지금 봐도 이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캐릭터 개연성이나 시나리오상 문제는 틀림없이 아쉬운 부분이나, 전투씬 등 제작 완성도는 지금까지도 이 작품을 능가한 전쟁 블록버스터가 충무로에서 나오지 않았을 정도이다. 당시 친일 논란과 CJ의 과도한 밀어주기로 관객 여론의 반감을 산 것이 완성도에 비하여 특히 낮은 평가를 받은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 말고 스케일 블록버스터 영상미 감상한다는 취지라면 충분히 볼만한 영상미는 되는 편. 반대로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개연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구멍들이 많다. 21%의 매우 혹평인 전문가 평점 대비 77%의 무난한 관객 평점이 나오는 로튼토마토 평점 IMDB 점수 7.8, Amazon 별점 4.7 등 평론가와 관객의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IMDb에선 관객 평점도 그렇거니와 상당히 호평을 받는데, 대부분 미국 기준 저예산인 제작비로 저런 비주얼을 냈다는 사실에 바치는 경탄 및 부하를 팀킬한 오다기리 조가 소련 정치장교에게서 일전의 자기를 발견하고 공황상태에 빠지는 시퀀스를 기가 막히다고 하는 유형이다.

일본에서의 평가도 대체로 좋지 못한데, 그 이유는 일본을 악하게 묘사했다는 것에 심한 반감을 가지면서 '반일 영화'로 받아들여진 것이 크다. 여기에 일부 관객들은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만화 해피 타이거의 표절작이라며 비아냥거렸다.[3] 반일 영화로 비춰진 것과 해피 타이거 도작 의혹의 두 가지 사유가 이 영화의 반응이 좋지 못한 큰 이유로 자리잡았다. 일본인이 조선인의 이름과 정신을 계승했다는 결말 내용은 엔간한 일본측 입장에선 피가 거꾸로 끓어오를 내용인데다 아직까지도 인터넷에 떠도는 말도 안되는 노몬한 전투(할힌골 전투) 장면 즉, 일명 반자이 어택 장면과 너무나 과장된 일본군과 일본인의 묘사 등을 보면 반일 영화가 맞다.

아무리 강점기 시절의 일본 역사 교과 과목이 빈약해 무지하다 해도 일본 사람 입장으로써는 아무리 참아도 정색 이하의 반응이 나오기 힘들다.

그 외 소수의 비평으로는 구성 상의 허술함이나 고증 오류를 지적하는 등,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가를 볼 수 있다.

6.1. 각본

  • 영화는 앙숙이 된 김준식과 하세가와 타츠오의 화해가 주요 내용인데 드러난 스토리만 봐서는 왜 둘이 화해하고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가 많다. 몇 번씩 죽다 살아나는 위기를 겪으며 아무 이유도 없이 준식 쪽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데, 둘이 진짜 화해를 하려면 그동안 서로간에 쌓인 울분을 상대방에게 바닥까지 몽땅 토해내든가, 아니면 서로간에 위기에 빠져 도움을 주고받는 전개가 있어야 하는데, 영화에서는 그저 타츠오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자 김준식이 그런 타츠오를 구한다. 이유는 극중에서 설명되지 않는다.[4] 다만, 작중 화해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 분명 있는데 굴라그의 싸움에서 소련군 수용소장이 칼을 던져주고 김준식과 하세가와 타츠오가 결판을 내라고 명령한다.[5] 당연히 둘은 죽도록 싸우다 김준식이 결국 칼을 쥐게 되어 내려 치려하나 차마 못하고 얼굴 옆에 칼을 꽂는다. 작중 상황을 보면 전쟁통에 보다 인간적인 김준식에게 타츠오가 감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연출을 매끄럽게 했어도 이런 클라이막스가 필요없을 수 있었다. 준식과 타츠오는 일본군 시절 이전부터 면식이 있는 관계인 데다 초반인 할힌골에서 일본군이 완전히 털리고 포로로 잡혀 남의 나라 전쟁에 총알 받이 끌려가는 상황이니만큼, 코쟁이들 사이의 한줌 동양인으로서 인종적 동질감을 느낌으로써 서로 힘을 합쳐 화해하는 식으로 가더라도 설정 구멍 수준으로 크게 오류가 생기지 않는다.[6] 하지만 두 주인공이 서로 죽일듯 증오하고 물고 뜯다 갑자기 화해하는 전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 하세가와 타츠오의 경우, 어렸을 때 조부가 독립군의 폭탄 테러로 죽는 것을 목격한 후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경도되다 전쟁을 겪으면서 개과천선하는 과정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할힌골(노몬한)에서는 도망치는 부하들을 향해 권총을 쏘며 돌격을 외치던 타츠오가 독소전에 끌려가서는 똑같은 짓을 하는 소련군 정치장교를 보며 자신의 과거 모습이 겹쳐 경악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일본 개봉판은 러닝 타임이 8분 정도 더 길어 타츠오의 서사가 더 보강됐다.
  • 정작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김준식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내면 묘사가 거의 없다. 행동의 개연성이나 감정 변화 과정도 부족하고 억지스럽게 착하기만한 캐릭터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한 하세가와 타츠오나 이종대에 비해 김준식은 캐릭터성을 파악할 거리가 없다. 심지어 중반에는 하세가와 타츠오를 죽여야만 하는 순간이 왔는데도 그냥 살려주고 이유도 말해주지 않는다. DC인사이드 2차 세계대전 갤러리의 한 유저의 의견 참조.[7]
    개봉 전 채널CGV에서 방영한 영화 제작 다큐멘터리에서는 장동건이 직접 '준식이는 그저 달리고 또 달린다. 영화 촬영 중에 달린 거리를 다 합치면 준식이는 벌써 경성에 가고도 남았을 것이다.'라는 나레이션을 하는데, 그 말대로다. 김준식에 대한 극중 묘사는 거의 언제 어디서건 꾸준히 달리는 장면 뿐이다.
  • 김인권이 맡은 이종대는 훨씬 설득력 있고 개연성 있으며, 무엇보다 임팩트도 강렬하다. 처음에는 평범한 감초 역할이지만 굴라그로 무대를 옮기면서 '안똔'이라는 새 소련식 이름과 다른 포로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얻으며 사람이 변한다. 이때, 친구를 처형하는 순간의 고뇌하는 표정이라든가, 일본군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면, 그리고 사회주의에 경도된 사람처럼 보이려 소련군 앞에서 애쓰는 모습 등을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 오죽하면 노르망디의 한국인 사진에 더 어울리는 캐릭터는 김준식이 아니라 이종대라는 평까지 나온다.[8]
  • 할힌골(노몬한)에서 만나는 중국 여자 저격수 쉬라이는 통편집해도 스토리에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오글거림이 줄어든다.[9] 김준식이 쉬라이를 도와주는 이유도, 쉬라이가 김준식을 구해주려는 행동에도 딱히 당위성이 설명되지 않으며, 마치 프라이스 대위처럼 단 한 발로 소련군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장면이 있다. 탄을 흩날려 운 좋게 맞는 연출이라면 이해가 가겠는데, 단 한 발의 저격으로 전투기를 떨군다는 건 과장된 연출이다.[10]
  • 경성과 할힌골(노몬한), 그리고 소련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의 타임라인은 어느 정도 연속성이 있었지만, 김준식과 타츠오가 헤어진 1941년에 난데없이 3년을 건너뛰고 노르망디로 가버린다. 아무리 러닝타임의 한계가 있고 노르망디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넣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상당히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극장에서 관객들도 갑툭튀한 '3년 후'를 보고 의아해하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 노르망디에서 김준식과 타츠오가 재회하는데, 타츠오는 김준식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회상 장면까지 보여주면서 영화는 그 부상이 이전에 소련 형벌부대에서 우라 돌격을 하던 중 포탄이 터졌을 때 입은 상처라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그 부상을 입은 장면 직후에도 김준식은 이종대와 멀쩡히 대화를 나눈다.
  • 이 영화는 《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즉 전후, 김준식이 1948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 참가해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 장면에는 큰 문제가 있다. 비록 뒷모습만 보이지만 눈썰미 있는 관객은 두상이나 어깨 넓이로 쉽게 그 배우가 장동건이 아니라 오다기리 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김준식과 타츠오는 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조선과 일본 신문에 나란히 얼굴이 박힌 유명한 마라토너인데 별로 닮지 않은 얼굴로 김준식인 척 해봐야 위장 신분인 것이 금방 들통날 것이다. 즉, 억지로 액자식 구성으로 만들려다 결말의 감동마저 묻어버리고 말았다.[11] 정 액자식 구성을 하고 싶었으면 위에 언급한 대로 플롯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노르망디 장면으로 시작해 과거를 회상하고 결말도 노르망디에서 끝내는 편이 더 보기 좋았을 것이다. 작품의 모티브인 노르망디의 한국인 사진에도 걸맞다.

거대한 스케일만 믿고 보려고 해도, 이렇게 서사가 생략된 부분이 심하게 많으니 개연성이 부족해 몰입이 안 된다는 평이 많다. 애초에 원작 소설 《D-DAY》를 읽어보면 내용이 너무 길어 영화 한 편에 넣는 게 어려워 보이기는 했다.

6.2. 언어

거의 모든 배우가 설정된 배역의 국적과 맞는 언어로 말한다. 조선인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혼용하며, 일본인은 일본어로, 쉬라이는 중국어로, 소련군은 러시아어로, 독일군은 독일어로, 프랑스인은 프랑스어로, 미군과 영국인은 영어로 말한다. 언어에 있어서는 위화감이 거의 없다. (한국 배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배우들이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해 연기한 듯. 다만 노르망디 해안 방어선에서 병사들에게 연설한 독일군 지휘관은 독일인이 들으면 괴리감을 느끼기 쉽다. 쓸데없이 소리를 지르는 히틀러식 화법에 집중한 바람에 말의 억양이 부자연스러운 편이기 때문. 당시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헤어 스타일은 덤. 이외에도 독일군 동방부대 투르키스탄 군단의 병사들이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도 소련에서 공용어로 썼을 러시아어도 아니고 독일어로만 대화하는 것도 약간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부대에는 다양한 국적의 병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독일어를 민족간 통용어로 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12], 그들의 모국어가 단 한 번도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여러모로 아쉬운 편이다. 마이 웨이가 다루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이들 투르키스탄 군단의 병사들도 같은 전쟁의 피해자로서 어느 정도 비중 있게 조명해볼 필요성이 있기 때문.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독일군이 미군 병사들에게 항복하며 체코어로 말하다 총에 맞아 죽는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13] 특이한 점이라면 일제 강점기 시절이 배경이라 한국 영화인데도 일본어가 80% 이상이며, 한국어는 러시아어보다도 적게 나오는 수준이다. 그것도 이종대가 죽은 이후로는 한국어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일본어도 어색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당시 일본군에서는 1인칭으로 철저히 남성적인 '오레'를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중성적이고 점잖은 '와타시'를 사용한다거나, '대좌님'에 대한 호칭이 '사마'와 '도노'를 왔다 갔다하는 등 사소한 부분에서 걸리는 것이 많다. 덤으로 자막을 쓸데없이 과격하게 의역했다. 그냥 '와레와레(우리)'라고 한 부분을 '우리 황군'이라고 강조하거나, 일본어로는 들리지 않는 비속어가 자막에 나오는 등.

6.3. 전투 묘사

대체적으로 돈을 들인 데에 있어서는 이전의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넘사벽급 규모라는 것에 동의한다.[14] 세차례의 대규모 전투 씬은 대체로 품질이 좋다. 공중 촬영 등으로 전장 전체를 부감으로 잡은 장면도 자주 나오며, 전쟁터 한복판에 있는 현장감을 표현하려 했는지 가끔 포탄이 떨어지거나 카메라로 총알이 날아올 때마다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거나 붕 떠오르고 기울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확실하게 큰 화면으로 보는 값은 한다. 영국에서 굴리는 BT-5[15]를 공수해 찍은 할힌골 전투는 다른 영화에서 짜깁기한 다른 전투씬과 비교되는 명장면. 반면 일본군 대전차 반자이 어택은 고증과는 상관이 없다.

따라서 고증을 제외한다면, 할힌골 전투 묘사에 있어서는 여태껏 할힌골 전투를 다룬 영상들 중 감히 최고봉이라 해도 된다. 딱히 마이웨이에서 잘 만들어진 장면이 나왔다기 보단 거대 자본을 투입해 할힌골 전투를 다룬 영화가 별로 없어 그렇지만 유튜브에서도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낸 클립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고증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외국 밀리터리 덕후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편이다. 다만 일본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군은 아무래도 미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마이웨이의 일본군은 비인도적이고 처참한 꼴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할힌골 전투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작중에서 묘사한 것처럼 일본군이 일방적으로 개박살난 것에 가깝지 않고 일본과 소련-몽골 연합군의 양측 사상자는 비슷하다. 또 자폭 트럭과 지뢰 자폭도 지나친 과장으로 이 당시만 해도 1940년대 중반에 접어든 시점과 같이 일본군이 극한에 몰린 상황이 아니었기에 아무리 일본군에게 전술적, 전략적 측면의 문제가 심각하여 무모하다 못 해 말이 안 되는 짓들을 많이 했다지만 이런 식의 육상 가미카제 같은 방법은 절대 사용될 리가 없었다. 순수히 역사대로 화염병과 대전차 총검술로 까는데 만족했다면 이런 비판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 반응을 보면 의외로 자폭 트럭과 자살 돌격이 외국 밀덕들에게 큰 흥미를 일으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

전투 장면을 보면 감독이 사실은 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19세기 워털루 게티스버그 같은 보병 방진과 기병 돌격 시절 전쟁의 밑그림에 2차 대전 군복과 무기를 입혀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문제는 고증 뿐만이 아니라 개연성 부분에서도 심하게 터져나오지만... 특히 전체적으로 모든 전투 장면에서 병사들이 지나치게 조밀하게 모여 있다. 이미 1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전투 대형은 영화보다 훨씬 산개되었다. 노몬한 전투는 마치 전근대 전열보병처럼 들판에서 조밀하게 모인 병사들끼리 회전을 벌이는 것처럼 묘사했다. 군복과 무기는 2차 대전인데 전투는 중국 무협 사극 같은 느낌이다. 물론 나쁜 쪽으로...

태극기 휘날리며 때와 마찬가지로,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한 고의적 위반으로 보인다. 그나마 나아진 점이라면 전투 장면들은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 병력을 몰아넣고 다수의 희생자를 만들어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렇게 심하게 어색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 그리고, 소련 육군 전차 승무원들은 트럭들이 그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주포나 포를 너무 소극적으로 쏜다거나, 멀쩡히 달린 동축 기관총을 한 발도 안 쏜다거나[16], 바보같이 보병이 전차 바로 앞에 붙어 칼질, 총질, 자폭을 하는 와중에도 아무도 차 안으로 안 들어가고 상체를 계속 내놓다 죽는 점 등 또한 너무 말이 안 된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실 고의적 위반 수준으로 봐주기에는 감독의 현대전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전차와 같이 와야 하는 보병이 보이지 않는다. 실제 전투에서는 소련군 전차에 보병이 붙어 다니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사실 일본쪽 전차도 엄연히 존재하나 영화 내에선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일본측은 트럭 몇 대를 앞세운 보병만 있고 반대로 소련측은 따라오는 보병 하나 없이 전차들만 오는데 심히 어색해 보일 수밖에 없다.

보병을 제압할 시야 확보 때문에 전차장들이 밖으로 상체를 내놓을 수도 있지만, 이미 코 앞까지 접근한 상태에선 내부로 숨는 게 당연하고, 제대로 된 전차 승무원들이라면 이미 보병들이 그 거리까지 오기 전에 차 안에서도 포탑에 장착된 기관총만 가지고도 다 갈아버릴 수 있다.[17]

할힌골 전투의 일본군은 실제로는 참호를 지나가는 소련군 전차에게 대전차포와 화염병 공격으로 대부분의 전과를 거뒀기에 병사들이 앞뒤 안 가리고 돌격해 자폭하는 대전 말기 상황을 떠올리는 연출은 매우 처절하긴 하나 할힌골 전투 당시의 상황에는 전혀 맞지 않다.

전투의 규모에 걸맞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주인공 보정이 심하게 들어간 점도 깬다는 사람들이 많다. 엑스트라들은 수류탄 수준의 폭발물에 휘말리면 중상이나 사망하는 게 다반사인데, 유독 주인공 준식과 타츠오는 포탄의 여파에 휘말리고도 사지가 멀쩡하다.[18] 특히 할힌골 전투 마지막에 두 사람이 아예 전차의 포탄에 정통으로 휘말렸는데도 아무 일 없듯이 포로로 끌려가는 장면은 보는 사람에 따라선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7. 흥행

7.1. 대한민국

강제규의 신작답게 큰 기대를 받았으나 시사회 날부터 반응이 안 좋았다. 공통적인 평은 "화면만 놓고 보면 괜찮은데 전체적인 만듦새가 시원치 않았다"로, 시사회 때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CJ에서는 거액을 투자한 만큼 CJ 계열 케이블 채널들에 전부 마이웨이 특집 편성을 했는데 여기엔 투니버스 온게임넷까지 포함되어 많은 팬들에게[19]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개봉 첫날 성적은 10만명으로 영화의 규모와 기대치를 감안하면 못 미치는 수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6만명이 든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 밀려 예매율 2위를 기록했다. 둘 다 오락 영화지만 미션 임파서블의 경우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상업 영화의 정점"이라고 하는 반면 마이웨이는 스토리 평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공교롭게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한국 배급도 CJ인데, 거기에 IMAX로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이니 마이웨이가 망해도 CJ는 괜찮을 것 같지만, 사실 CJ 입장에선 대작 영화를 2개 배급하는 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상영관 수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슨 영화가 잘 나갈지 모르는 마당에 성급하게 관을 조절하다간 이도 저도 아니고 둘 다 벌 수 있는 것도 못 벌고 끝장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마이웨이 개봉 전에 개봉한 손예진, 이민기 주연의 러브 코미디 영화 오싹한 연애가 예상 외로 상당한 관객을 모았는데도 CJ는 이 두 대작 개봉 때문에 상승세인 영화의 상영관을 줄였다.

2011년 12월 28일에는 상영관 수가 2배에 가깝게 차이나는데도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에도 밀려 흥행 순위 3위로 밀려났다. #

2012년 1월 5일에는 퍼펙트 게임에게 역전을 허용하며 4위로 떨어졌다. #

손익분기점은 900만명이나, 전국 최종 관객은 214만명에 그쳐 망했다. CJ가 제작, 홍보비 포함 120억원을 들인 영화치고는 맥 빠지는 결과.

장동건은 연타석으로 대작을 말아먹은 것과 동시에 연기력까지 비난받게 되었다. 캐릭터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빼준다고 해도 태극기 휘날리며식의 연기 반복과 불분명한 대사 처리 때문에 관객들은 실망했고, 장동건 이름을 보고 극장에 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여론이 옳았다는 것만 남겼다.

강제규는 영화 개봉 직전만 해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아는 재능을 지닌 감독이라는 인식이 아주 강했지만[20] 흥행 및 비평에서 참담한 실패를 거둠으로써 2023년에 개봉한 1947 보스톤 이전까지는 대형 자본이 투입되는 영화를 하지 못했다. 1947 보스톤도 엉망인 선택적 고증과 시대착오적인 빈약한 연출로 흥행에서 실패함으로 문제점 개선이 그닥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7.2. 일본

배급은 토에이가 담당하며 '마이웨이 12,000킬로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2012년 1월 14일에 개봉했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는 크레딧도 오다기리 죠의 이름이 가장 첫번째로 나오며(장동건은 두번째) 예고편도 타츠오의 시점에서 다루는 등 흥행을 위해 타츠오를 주인공으로 삼은 듯 하다. #

개봉 3주차에 박스오피스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며 실패했다.

7.3. 북미

미국 내 22개 극장에 리미티드 개봉을 하여 흥행 수입 7만달러(약 8천만원)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박스오피스모조 차트 미국 개봉하면서 나온 인터뷰에서 강제규 감독의 패기를 알 수 있다. 기사 본문으로는 자신의 능력 부족은 별 언급이 없다.

8. 논란

8.1. 여론 조작 의혹

개봉 이후 평점 알바가 깽판을 친다며 DVD 커뮤니티 DVD프라임에서 의혹을 제기했다. 일부 알바로 추정되는 아이디 여럿이 마이웨이의 별점을 높이고 경쟁작 별점을 깎았다는 것.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 기준은 아무래도 지금 제일 잘 나가는 영화이기 마련인데 현재 관객이 제일 많이 몰리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로 사람들이 가는 것을 막고 마이웨이로 한 명이라도 더 사람들이 가게 하는 게 CJ에게는 더 이익이다. 둘 다 배급을 하지만 마이웨이에 들인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밀어주려 총력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평점 알바들도 동원해 부정적인 여론을 돌리려는 것인데 캡쳐된 사진이 인터넷에 돌면서 신나게 까이고 네이버 자동 완성 검색어로 마이웨이 알바가 등록됐다.

거기에 CJ측에서는 씬 레드 라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의 제작비 대비 적은 제작비로 만든 마이웨이의 완성도가 높다고 홍보해 비난을 받았다. 기사

8.2. 친일 논란

친일 영화가 아니냐는 논란이 개봉 전부터 계속 제기되었는데, 스토리로 따졌을 때 이게 친일 영화면 일본인이 긍정적으로 그려진 영화는 모두 친일 영화라는 논리 밖에 안된다. 정작 일본에서는 반일 영화라고 비난받았다. 조선인 주인공이 너무 착하게 그려지고, 일본인 등장인물은 물론 소련, 독일 측 인물은 전부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것.

간단히 요약하면 전형적인 일본 군국주의자 하세가와 타츠오가 김준식에 의해 갱생하는 내용으로, 당시 일본군의 자살 폭탄 테러 묘사라든지, 전선이 완전히 돌파 당했는데도 현실을 보지 못하고 무조건 돌격을 명령하는 장면, 자살 폭탄 테러가 일본인으로서 위대하게 죽을 수 있다면서 조선인은 차별하고 또 차출한다든지 등 이같은 하세가와 타츠오가 마지막에 갱생하는 것을 보고 제대로 이해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좀 애매모호한 건 초반 독립 운동가의 폭탄테러로 타츠오의 할아버지가 사망하고 그 문제로 김준식의 아버지는 오해로 인해 처벌 받으며 타츠오가 타락하는 계기가 된다. 즉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의 우정이 박살나고 대립 된 모든 근원은 독립 운동가였다는 이야기가 된다하지만 타츠오의 할아버지가 조선인들 시점에서 악인인 걸 생각하면...

영화의 일본군과 독일군 진영 묘사를 보면 같은 추축국임에도 하늘과 땅 차이다. 일본군은 똘끼 넘치는 막장 행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데 반해, 노르망디의 독일군 진영은 부대별 축구까지 할 정도로 분위기가 상당히 널널하다. 어쨌든 상관이 전장으로 갈아넣는 건 같지만...[21]

이외에 영화 외적으로 당시 강제규가 모티프를 얻은 노르망디의 한국인들은 한국으로 송환되면 다시 일본과 싸우겠다고 했단 얘기가 퍼져, 일본인과의 화해를 다룬 본 영화가 문제가 됐다. 이에 더욱 비난이 커지자, 이 점에 대해 장동건은 사과를 받아내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고 예술인은 화해시키는 것이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지금은 노르망디의 한국인 문서에서 알 수 있듯 알려진 내용 자체가 없다.

거기에 예고편에 지도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일본 예고편에는 동해를 "Sea of Japan"으로 표기한 게 밝혀져 논란이 됐다. 다만, 시대적 배경에 맞춘 재현이라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만 일본해로 표기한 건 여론을 의식한 구색 맞추기라는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어찌보면 타이밍이 나빴다고 할 수 있는 게, 영화 개봉 시점 직전에 터진 일이 수요집회 1000회와 위안부 평화비 제막, 그리고 일본 정부의 철거 요구 등 한일관계가 악화된 시점이라 제작진이나 영화사 입장에선 이렇게 타이밍이 안 좋을 수 있나 싶기도 할 듯.

9. 실제와의 차이

전반적으로 각본은 재앙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최악이다. 세세한 부분에도 현실적인 묘사에 충실한 《 태극기 휘날리며》를 제작한 사람이 맞나 싶을 수준. 물론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영화 연출상 전술적으로 6.25 전쟁에 맞지 않는 장면들이 나오긴 했지만 마이웨이는 연출과 전술 문제를 떠나서, 아예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장면(영화적 허용으로 납득할 수준을 넘어선)들이 다수 등장한다.

9.1. 경성부 ~ 할힌골 전투(노몬한 전투)

  • 1938년까진 민간인 육상 선수였던 타츠오가 할힌골 전투가 일어난 1939년에 뜬금없이 육군 대좌로 등장한다. 타츠오의 할아버지가 조선총독부 총독이긴 하지만, 이런 고속 승진은 총독이 아니라 황족이라도 불가능하다.[22] 일본이 대전 말 초급 장교용으로 속성으로 키운 학병 출신 간부사관들도 소위로 임관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23] 설사 타츠오가 다카쿠라보다 훨씬 밑인 대위로 나왔다고 해도 무리수다. 비슷한 시기에 군생활을 한 일본 육사 49기 채병덕은 1937년에 졸업해 1941년에 대위를 달았다. 따라서 대위는커녕 대좌 계급을 달았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원작 소설 D-DAY에는 준식과 료이치(영화에선 하세가와 타츠오)가 일등병으로 나온다.[24] 대체로 이 문서에 있는 개연성 문제는 거진 영화에만 등장하는 오리지널 설정이다.
  • 하세가와가 달리기 시합에서 이길 때 "덴노 헤이카 반자이", "다이 니폰테이코쿠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라고 외친다. 실제론 일반인들은 이 말을 하기 어려웠고 정부 고위층만 할 수 있었다.[25]
  • 일본군에는 전차가 아예 없다고 나오나 실제로는 100여대가 있었다. 자세한 건 할힌골 전투 문서 참조.
  • 타츠오의 할아버지가 소포로 위장된 독립군의 폭탄을 받았을 때, "일본 국방성에서 보내온 선물"이란 자막이 나온다. 다만, 준식의 아버지로 분한 천호진의 일본어 대사로는 '육군대신'으로부터 왔다고 하는 걸 보면 자막 표기의 실수 내지는 한국관객들은 육군대신이란 직위가 뭔지 모르겠지? 라는 생각에 쓸데없이 친절하게 바꾸려다가 사달이 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에는 육군성, 해군성이 별도로 존재했고 국방성이라는 기관은 없었다.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항목 참조.
  • 하세가와가 소련군의 BT전차로부터 포탄을 맞는데[26] 그냥 쓰러지기만 한다. 실제로는 가루가 되어야 하나 영화적 연출로 봐야 할 듯. 전투 마지막에는 하세가와와 준식이 포탄에 직격당해 둘 다 공중에 떠오르기까지 할 정도인데 찢겨 죽기는 커녕 큰 부상도 없이 멀쩡하게 포로로 잡힌다.[27]
  • 손기정이 김준식의 대표 선수 선발전 서류를 가져와 보여줄 때 서류의 국명 항목에 '일본국(조선)'이라고 적혔다. 당시 일본의 정식 국명은 대일본제국으로, 국명이 일본국으로 바뀐 시점은 패전 후 평화헌법 제정시다. 정작 다른 장면들에선 대일본제국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지라 제작진의 실수로 보인다.
  • 1930년대에는 이미 경성운동장이 건설되어 쓰였기에 조선총독부 앞길을 틀어막고 마라톤 대회를 벌일 이유가 없다. 1938년의 육조거리( 세종대로)를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영화적 허용일 수도 있겠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미 포장되어 노면전차가 다니는 육조거리를 흙길로 만들어버렸다. 사실 모던보이같은 일부 특이작품을 제외하곤 일본 안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였던 경성을 무슨 60년대 읍내로 만드는 일이 허다하다.
  • 1938년의 경성에서 치안 및 시위 진압을 모두 육군 헌병들이 담당한다. 1910년대의 헌병 경찰 시대도 아닌데 보통 경찰들이 안 보인다.
  • 마라톤 대표 선수 선발전 장면에서 임석한 일본 고관들이 1910년대에 입었던 검은색 육군 예복을 입었다. 육군 장교 등에게는 검은색 예복이 제정되었고, 필요시 자비로 맞춰 입게 했지만, 야전이나 일상 근무, 작중에 나온 마라톤과 같은 가벼운 행사시엔 입을 일이 없는 옷이다.
  • 1938년에 조선인을 일본 육군에 복무시키는 것은 조선인 지원병제가 비슷한 시기에 실시되었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지 않나 싶을 수 있지만, 이때 일본은 만에 하나라도 조선인들이 군복무 중에 탈영같은 사고를 치는 것을 우려해 거주지 읍면장의 추천 등 까다로운 조건하에 고작 200명을 선발했고, 그나마도 모두 조선 내에만 주둔시켰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황군에 복무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28] 병력이 모자라 마구 징집한 대전 말기가 아니고서야 정말로 하자없는 사람만이 군대에 갈 수 있었고, 그때조차도 일본 군부는 믿을 수 없는 조선인들이 천황폐하의 정강한 황군에게 들어오면 황군이 조선인들에게 장악당한다고 경기를 했으며 엘리트주의가 심한 해군은 끝까지 못받겠다고 버텼다. 도조 내각이고 천황이고 다 안된다고 하는 것을 상태가 너무 처참해진 후에야 겨우 실시한 것이다. 하물며 병력 상황이 훨씬 양호했던 1938년 일본의 입장에서 김준식과 그의 동료들은 불령선인이라 감옥에 넣으면 넣었지, 군대, 그것도 최전선에 보낸다는 건 상식적으로 전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애초에 이 설정 자체가 연구를 제대로 한게 아니라 인터넷의 양경종 떡밥을 그냥 베껴온거니 어쩔 수가 없다. 원작 소설 《D-DAY》에선 준식이 교장과 싸워 감옥에 가는데, 면회 온 교장이 "자네가 군에 지원서를 낸다면 내가 자네의 학생 자격을 복구시켜 주겠네... 고소도 취하할 걸세."라며 스스로 지원하게 만들었다. 학교에서 황군에 입대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 자체는 학교 입장에서 매우 영예로운 일이라서 채병덕처럼 전도유망한 학생들을 일본인 교직원들이나 장교들이 입대를 권유하는 경우가 있던 걸 감안하면 그나마 좀 더 개연성 있는 전개다.
  • 그닥 중요한 설정은 아니지만, 작중 일본군이 황토색 가쿠란 형태에 세로형 견장 계급장이 달린 45식 군복을 입는다. 실제 할힌골 전투 당시의 일본군은 국민복 형태에 칼라 계급장이 달린 98식 군복을 입었다. 물론 98식 군복의 디자인이 워낙 구리다 보니 배우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멋있는 45식 군복을 입힌 것으로 보이며, 후술할 대머리 논란과 마찬가지로 대충 작중 영상미를 위한 영화상 허용이라 보아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군복/일본군 문서 참조.
  • 김준식과 타츠오를 비롯, 등장하는 군인들의 머리가 너무 길다. 당시 일본 육군의 머리 스타일은 병사고 장군이고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 삭발이었다.[29] 해군만 하사관들부터 올백 정도로 기를 수 있었다. 심지어 전체적으로 군국주의 문화가 깊게 벤 나머지 꼭 군인이 아니라고 해도 성인 남자가 머리가 길다고 지적을 받는 일도 있었다. 상술했듯이 배우들의 외적 스타일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이는데, 잘생긴 배우 앞세워서 흥행 노리는 영화에서 빡빡머리로 내보내서 흥생성을 깎기 싫기 때문. 이 때문에 사극에서 온통 투구를 안쓰고 존재한 적도 없는 기괴한 생머리 차림으로 돌아다니는데 영화 화려한 휴가에도 헤어스타일 문제가 지적된 적이 있다.[30]
  • 노다가 준식과 종대를 기합 줄 때 '저 중국년이 김치냄새라도 맡았대냐?'라고 갈구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주고쿠'란 단어를 쓴다. 당시 일상생활에서 중국을 중국으로 부르는 것은 진짜 일본 내부에서 엄청난 친중 진보파나 가능한 것이고 외무성이 마지못해서 공개석상에서 지나란 표현을 중국으로 바꿔준지도 얼마 안된 시점이다. 당시 대중강경파가 넘쳐나던 일본군은 당연히 중국을 멸칭인 지나라고 표현했다.
  • 할힌골 전투는 일방적으로 일본군만 박살난 전투가 아니었다. 당장 소련군이 사상자나 전사자가 더 많고, 전차와 전투기도 더 많이 잃어, 그 때문에 격분한 스탈린이 장성을 숙청할 정도였다. 특히 할힌골의 소련 공군은 일본 육군항공대가 초반에 비행장을 공습해 사실상 가동 불능 상태였다. 러일전쟁을 생각하고 아직도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갈 거라 오판한 일본군은 말로는 박살내버리겠다며 한껏 허세를 떠는 관동군이었으나 이후로는 대본영 명령을 꼬박꼬박 들으며 소련과의 마찰을 최소화했다. 이에 일본은 독일과의 양동전선 대신, 석유로 인한 대미결전에 집중했고, 이는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패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9.2. 굴라크 ~ 독소전쟁

  • 굴라그에서 우샨카에 붉은 별이 붙은건 사소한 오류지만, 형벌부대의 경우 즉시 별과 그외 계급장 등 상징을 제거한다. 소련측에서 보냈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 독소전쟁 개시 후 병사들이 트럭을 타고 전장으로 갈 때 안톤이 분위기 고조를 위해 군가 성스러운 전쟁을 부르는데 성전은 독소전쟁 개시 이틀 뒤에 작사했다. 작중 상황은 개시 직후로 보이며, 이틀 뒤라고 하여도 퍼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기에 사소한 오류로 보인다.
  • 독일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 영화 브레스트 요새에 묘사한 것처럼 1941년 6월의 초여름이지만 마이웨이의 독소전쟁 개시 시점의 소련이 혹한기로 묘사했다. 소련의 8~9월은 북시베리아도 15~20도 내외의 기온을 유지한다. 물론 작중 시간적 배경은 1940년 1월부터 1941년 12월까지의 포로 생활이다.
  • 전투 전개 자체도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연출한 소련군에 대한 우라돌격의 선입견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총과 총알 몇 개만 나누어주고, 잘 만들어진 진지에 돌격을 시키는 전개가 거의 똑같다. 사실 태극기 휘날리며 제작 때부터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으니만큼 좋게 말해서 오마주고, 나쁘게 말해서 열화판 재탕인데 그게 최악의 독이 되어버린 케이스.
  • 1941년에 MG42를 사용한다. 그런데 10초 전쯤 장면에서 3호 전차와 함께 MG34가 등장함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단독 씬도 2초쯤 하나 잡힌다. 또, M1910과 MG42의 연사력이 서로 바뀌었다. 졸지에 MG42는 연사력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 반면 맥심은 두 배 가까이 빨라졌다. MG42의 위력을 아는 사람이 보면 매우 이상해 보인다.[31]
  • 다른 군대보다 소련군복의 재현은 특히 더 엉망이다. 소련군보다 중공군에 가까워 보이며 한국전쟁을 다룬 매체에 중공군이 입는 그것에 훨씬 가까워 아무리 동양인들이라고 해도 소련측에서 보낸 사람들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와 같은 깔깔이 형태의 방한복은 텔로그레이카라는 실제 있었던 소련군복이다. 문제라면 계급과 병과를 표시하는 칼라탭이 없다. 심지어 준식의 복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이다.
  • 독일 병사들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심하게 밀집해 배치하고 그 사이로 전차들이 다닌다. 아군들을 죄다 다진 고기로 만들려는 게 아닌 이상 저런 정신 나간 짓거리는 안 할 것이다. 심지어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투 씬 직전에 전투의 무대가 되는 광장 전경을 보여주는데, 광장 바깥쪽 골목은 텅텅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광장에만 병사를 몰아넣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앞에 나온 할힌골 전투 묘사 때도 그렇고 영화상 전근대 회전과 2차 대전이 구분이 안되고 있다. 이 역시 미장센뽕 +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참조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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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방패가 3호 전차 E형과 매우 비슷하다. 아래 그림이 VK30.01(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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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규의 전작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그럴듯하게 구현해 낸 M4 셔먼 전차는 물론, 평양 전투 장면에서 최민식이 타고 다닌 소련군의 GAZ-64라던지[32], 전복되는 소련제 BA-64 장갑차 등 장비 고증면에서 신경을 크게 썼던 것을 생각하면 마이웨이에서의 독일 전차 고증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 영화에 나오는 지명 중 쿤그르스크와 제도프스크는 가상 지명이다.

9.3. 노르망디 상륙 작전

  • 해안쪽에 계단을 세워놔 공격군이 계단으로 쉽게 올라온다. 해안 상륙씬은 제작진이 라트비아 현지에서 당국의 허가를 못 받아 급히 찍어야 했는데, 이때 현장에 있던 계단을 어찌할 수가 없어 생긴 오류다. 이 부분은 결국 CG로 편집했다.
  • 연합군 폭격기에서 폭탄 떨어지는 걸 찍은 모습이 영화 진주만을 연상시킨다. 즉, 진주만에서처럼 폭탄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오류를 범하는데, 실제 사진을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항공 폭탄은 본래 수평 폭격을 가하는 경우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고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떨어진다.
  • 폭격하는 연합국 폭격기가 예고편 영상에서는 C-47 수송기였으나 네티즌들의 지적을 받고 CG를 수정해 본편에는 B-17 폭격기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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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륙 지원 포격을 하는 전함 및 중순양함들은 모두 아이오와급 전함을 비롯한 미 해군 함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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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는 아이오와급은 전부 태평양 전선에 있어, 노르망디는 영국과 미국의 구형 전함들이 포격 지원을 담당했다.[33] 그리고 아이오와급 전함은 단 4척만 건조했다. 게다가 전함 함포 사격인데 위력이 너무 약하다. 구경이 현재 쓰이는 자주포의 4배나 되는[34] 16인치 거포를 쏴대는데 맞는 쪽을 보면 위력이 수류탄급이다. 기본적으로 전함들은 강철 덩어리인 같은 전함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전함이 장비한 주포는 1톤 가량의 탄환을 날려대는 만큼 일단 표적에 맞추면 수백mm의 강철도 두부살 가르듯 파고 들어가 해안에 전차호 수준의 구멍을 뚫어버린다.[35]
  • 연합군의 상륙작전과 동시에 함포와 공습 지원이 화려하게 나오지만, 원래는 전날과 당일 새벽에 사전 준비로 다 써먹은 상태에 상륙 당시에는 해도 안뜬 아침이라 지원 효율도 낮았다.
  • 연합군의 해안 타격 이후에 미 육군의 공수부대가 쏟아져 내려온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심이 있거나, 하다 못해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모든 공수부대는 이미 새벽에 전부 후방으로 강하해 상륙 당시에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이 없었다. D-Day 당일 아침에는 한참 작전 실행 중이어야 한다. 아무래도 당시에 찍힌 사진과 상륙 부대와 공수 부대의 작전 위치를 잘못 판단해 넣은 걸로 보이나, 강하를 추가 배후지도 아닌 적 방어선 바로 위로 - 그나마도 전과확대 단계에서 - 전투 강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게다가 아군의 함포 사격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 장교가 주인공들을 토치카에 가두는데 토치카는 안에서 잠기지 밖에서 잠기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주인공 둘이 외국인 포로 출신인 걸 생각하면 일부러 그런 구조를 택했을 수도 있다.[36]
  • 토치카로 기어올라온 미 육군 병력이 빤히 들여다 보며 수류탄을 던진다. 실제라면 줄에 매달려 피할데도 없는 그는 함께 폭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류탄이 터지는 속도도 매우 느리다. 미군이 수류탄을 투척하고 나서 잠긴 문을 부수고 뛰쳐나갈 때까지 10초 이상 터지지 않으며 나간 이후에야 폭발한다.
  • 상륙작전이 벌어진 6월 6일 아침은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어둠이 남아 있을 때이다. 그런데 영화 내에선 거의 한낮에 가깝게 묘사한다. 게다가 당일엔 연합군 사령부의 골치를 아프게 만든 그 폭풍우의 여운이 남아 상륙작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비가 내리는 등 잔뜩 흐린 날씨였는데 영화에선 매우 맑은 날씨로 나온다.
  • 주인공들의 위치가 어중간하게 나오지만, 미군의 상륙이나 부대 언급을 보면, 유타 해변으로 보인다.[37] 함포 사격 등의 지원 화력도 제대로 들어가는데 실제로는 독일군의 해안포 사격으로 인한 피해와 태평양 전선의 상륙 경험을 가진 미 해병대의 충고를 싸그리 무시하고 오인 사격을 우려한 나머지 해군 측에서 제대로 된 지원 사격을 하지 못했다. 결국 한참 뒤에야 구축함들이 해안에 최대한 접근해 직사를 가한 뒤에야 겨우 지원 화력이 더해졌다. 해안포 MG42 같은 독일군의 대응사격이나 이후의 독일군의 반격으로 인한 미군의 피해도 적지는 않지만, 실제 오마하에서의 상륙에 비하면 유타는 적은 수준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상륙전 장면과 비교하면 고증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독일군 시점인 주인공 입장에서 본 것이란 점을 감안해도 너무 차이가 뚜렷하다.
  • 당시 독일군은 장비의 통일이 없어 다들 제각각 군장을 챙겨와 장착하고 다녔는데 여기에선 완벽하게 통일해 나타난다. 장비는 고작 두개인데 가방과 허리에 차는 수통이 전부다. 심지어 전군에 보급된 원형 방독면 통도 없다. 꽤 많은 독일군들이 가지고 다닌 야전삽도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장비 묘사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 주인공들이 독일 육군 군복 안에 입는 셔츠가 육군에서 보급한 녹회색이 아닌, 공군용에 가까운 파란색이다. 이들을 지휘하는 독일 육군 소령 또한 뒷머리가 지나치게 길다.
  • 짧은 시간 안에 독일군 MG42와 미군 M1919를 발사하는 장면이 번갈아 등장하는데, MG42를 비출 땐 M1919 특유의 느린 연사음, M1919를 비출 땐 MG42 특유의 빠른 연사음이 들린다. 두 기관총의 특성을 잡아내어 음향을 만들었지만 편집 단계에서 실수한 듯하다.

10. 기타

  • 오다기리 조의 코다 쿠미 사인 사건 등 여러가지 기행(항목 참고)이 구설수에 올라 여론의 반감을 샀고, 결국 오다기리 조는 시사회장에서 정식으로 사과했다. #
  • 2012년 8월, 케이디 미디어에서 특별 한정판 DVD를 발매하였다. 디자인이나 구성은 매우 훌륭하다는 평가. 군대 용품을 연상시키는 국방색 케이스의 디자인도 호평을 받았고, 3DISC에 부가 영상을 꽉 채워넣은 점도 성의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감독의 코멘터리가 빠진 것은 아쉬운 점으로 지적받았다. DVD 특별 한정판은 판매 실적이 저조한지, 12월까지도 계속 팔렸다. 블루레이도 발매했으며 이쪽은 1DIS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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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할힌골 전투 장면을 이용하여 만든 뮤직비디오가 있다. 유튜버 Radio Tapok의 앨범 <Наследие>에 수록된 노래 <Халжин-Гол>로 제목대로 할힌골 전투를 다뤘다. #
  • 극중 무카이와 노다라고 불리는 일본군이 조연급으로 등장하는데, 의도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난징 대학살 당시 벌어졌던 100인 참수 경쟁 사건의 피의자들의 성씨와 같다.

11. 관련 문서


[1] 2017년 3월에 개봉한 한석규, 김래원 주연의 영화 프리즌의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2] 극우 일본인이자 군인이었던 하세가와 타츠오에게 식민지 피해자인 조선인 김준식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종교적 의미의 용서를 담은 모습을 보이며, 김준식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하세가와 타츠오가 올림픽에 준식의 이름으로 출전한다는 것은 그에게 감화되었음을 의미한다. [3] 두 작품의 소재가 겹치는 것을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홈페이지에는 영화에 대한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인터뷰가 올라왔다. # [4] 원작 D-DAY에는 이런 과정이 꽤 자세히 나오지만 전부 잘렸다. [5] 이전에도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이 자주 싸웠는지 " 야폰스키 카레이스키 사이니 서로 척진 게 많겠지"라고 중얼거린다. 근데 러시아에서 xx인을 xx스키라고 부른다는 건 그냥 한국에서 멋대로 오역한거고 러시아에선 그렇게 안부른다. [6] 태평한 주인공들 대신 일반적인 한일 감정을 대표하는 인물들은 이종대와 노다( 독소전에서 타츠오의 총을 빼앗으려다 독일군의 총에 맞고 '엄마!'라는 단발마를 지르며 사망한 일본군 등장인물)가 있다. [7] 김준식과 그 가족들이 타츠오 할아버지의 하인으로 나름 유복하게 살았고, 김준식 그 자신도 타츠오를 제치고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타츠오 할아버지의 치하를 받았을 정도로 어느 정도 은혜를 받은 데다, 타츠오의 아버지도 할아버지가 독립군이 보낸 폭탄에 폭사당한 후에도 조선인들을 치료했다는 내용이 영화 내에 은연 중에 흘러나온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김준식의 내면 표현이나 설명을 했다면, 그나마 김준식이 타츠오를 구한 이유에 대해 관객들에게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장면이 되었을 것이다. [8] 원작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오리지널 캐릭터로 시나리오 원안에는 김준식이 이종대의 역할까지 함께 하는 역할이었다고 한다. [9] 아마도 중국 개봉을 위한 토큰 캐릭터일 가능성이 높다. [10] 다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극중에 등장하는 전투기는 I-16으로, 엔진을 덮은 장갑이 매우 얇은데다 구멍까지 잔뜩 뚫려 피탄되면 쉽게 불이 붙는다. 극중 상황을 보면 조선인 병사들이 쓰던 일본군의 38식 장소총을 받아온 것 같은데, 아리사카 소총은 실제로는 성능이 상당히 좋은 편으로 그런 만큼 소총의 기능은 충실히 하는 물건이라(한국에서의 쓰레기 이미지는 대다수가 대전 말기의 급조품(last ditch model)에서 비롯된 것) 솜씨만 확실하면 맞추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99식의 7.7mm였으면 모를까 군용 볼트액션 소총의 탄환치고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인 6.5mm로 그게 될지 의문이지만... [11] 원작에서는 타츠오가 김준식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하여 메달 따고 김준식의 동생과 행복하게 한국에서 사는 게 결말이다. [12] 현대 한국에도 여러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이는 산업현장에서 한국어가 공용어가 되는 사례는 자주 볼 수 있다. [13] 독일에 거주하는 터키인들은 재미한인과 마찬가지로 세대를 거듭할수록 튀르키예어 사용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터키인의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투르키스탄 현지인보다 독일에 거주하는 터키인이 배역 캐스팅에 수월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14] 이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3개의 대규모 전투 씬의 퀄리티는 인정한다. [15] 영국군 FV-432 장갑차의 차대를 이용한 촬영용 레플리카 전차. FV-432 장갑차는 독일군 3호 전차의 리인액트 및 영화 소품용 레플리카 차량을 만들기 위해 서구에서 애용하는 차대이다. [16] BT-5에는 동축 기관총으로 7.62mm DT가 한정 장착되었다. 대공용 기관총은 없었기에 기관총 사수가 해치 밖으로 나온 것 자체가 고증 오류가 된다. [17] 물론 소련군의 기관총에 일본군 보병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투신 자체가 그런 면에서도 심히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18] 그것도 꽤 여러차례 휘말리는데, 마지막 폭격을 제외하면 사실상 생채기에 불과한 경미한 수준의 부상이다. [19] 이미 내부 직원용으로 표를 돌렸다는 제보가 나왔는데 CJ 계열 식당에서는 직원들한테 공짜표를 줬다고 한다. CJ 계열 직원 한 사람에게 표 네 장 할당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나 빛의 속도로 삭제됐다. 관련 기사 [20] 데뷔작이자 서울에서만 70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 은행나무 침대>부터 시작해 당시 최고 흥행 외화 < 타이타닉>의 기록을 깼으며 한국판 첩보물의 역사를 시작한 < 쉬리>, 그리고 천만 관객을 돌파한 전쟁 영화 <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세 편 연속 대박 행진을 기록하여 국내 감독들 중에는 기대치가 아주 높은 감독들 중 하나였다. [21] 사실 프랑스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까지는 거진 후방 취급이었고 비상령이 해제되자 주력 부대는 영국과 제일 가까우면서 V2 발사지인 파드칼레로 이동해 상당히 여유로웠기에 일선의 일본군과 일대일 비교하기는 다소 무리한 면이 있다. [22] 프로파간다적 성격으로 인해 일본에서 일부러 일정 부분 이상 높은 위치를 유지해줘야 했던 왕공족 영친왕조차 일본군 중장이 되기에는 시간이 상당히 걸렸고(영친왕은 일본 육사 29기로 1917년에 졸업했고 일제 패망 직전에야 중장이 되었다.), 다카히토 같은 황족들도 위관급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LA올림픽 승마 금메달 리스트에 귀족 출신인 니시 남작도 군생활 20년하고 이오지마에서 전사할 당시에 중좌에 불과(?)했다. [23] 이 때문에 1944년 1월 21일에 입대한 조선인 학도병들은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단 한 명도 소위를 못 달았다. 전쟁이 끝나고 군대가 해산하는 9월쯤에야 다른 일본인 사관후보생들과 함께 일괄적으로 소위를 달아 주었다. [24] 일본군은 신병 훈련이 끝나는 입대 6개월 뒤에야 일등병으로 진급할 기회가 있고 늦어도 1년째는 다 진급시켜 준다. [25] 당시 일본은 철저한 계급 사회였고, 신분에 따라 그 차별이 엄격했다. 적어도 덴노에 관해 언급이라도 하려면 고등관 정도는 되어야 했다. 그래서 대부분 영화에서는 상급자가 선창하면 후임자들은 반자이만 외치거나, 자살특공을 할 때에나 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26] 포탄이 몸뚱아리에 직격으로 꼬라박은 건 아니고 눈앞의 땅에 날아와 터진다. [27] 다른 엑스트라들은 주변에 포탄이 떨어진 정도로만 네다섯명씩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죽는다. [28] 당시 일본은 군국주의 국가라 군인 계급의 사회적 지위가 굉장히 높았다. 평범한 국민의 경우 상등병 이상으로만 전역해도 동네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고, 혹여라도 장교로 복무했다면 고등관이라 해서 사회적 지위가 일반 국민과 아예 다른 수준이 되는 등 일본에서 군인은 굉장히 높은 위치였다. 박정희가 교사로 일하면서 일본인 교사들과 순사들에게 하도 괄시를 당하다가 만주군 장교가 돼서 고향에 한번 왔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자신과 원한이 있는 일본인들을 불러다가 무릎 꿇린 것이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29]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 육군 최고 계급에 해당하는 도조 히데키 츠지 마사노부, 그리고 무타구치 렌야가 어떤 머리 스타일을 했는지 보면 쉽다. [30] 별개로 태극기 휘날리며도 장동건과 원빈 머리 길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존재했다. [31] 오죽하면 히틀러의 전기톱이라는 별칭이 있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4대가 수천명을 죽였다는 과장까지 돌아다닌다. [32] 이전까지 한국전 배경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의 북한군 차량 역할은 Kubelwagen A 181이나 미군 윌리스 지프가 등장했다. [33]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한 전함은 다음과 같다. 라밀리즈, 워스파이트, 로드니, 아칸소, 텍사스, 네바다. [34] 탄의 중량은 부피에, 부피는 길이의 세제곱에 비례하므로 탄의 길이-구경비와 재질, 탄속이 모두 같다고 가정할 경우, 구경이 4배가 늘어나면 파괴력이 64배나 늘어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단순 계산에 의한 것으로 탄 종류나 사용한 장약 등의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35] 그래서 전함 주포탄이 지상에 떨어지면 수영장만한 구덩이가 생긴다고 해서 미국 전함의 14인치 주포에 붙은 별명이 수영장 제조기다. [36] 한국 전쟁 당시 인민군이 철수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징집한 의용군이나 국군 포로들에게 족쇄를 채우고 기관총 사격을 시킨 경우도 있다. [37] 미군은 두 곳을 담당했는데, 오마하는 정예부대가 방어해, 사실상 유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