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2 16:19:39

낙태/종교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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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종교계에서는 대체로 태아 또한 사람이기에 인권 영혼을 지녔다고 본다. 그렇기에 낙태는 도덕적으로 살인에 준하는 죄악이라 여긴다.

무속신앙에서는 임신 중절을 하면 태아령이 남는다고 보기도 한다.

"태아 또한 보호 받아야 할 생명(life)이고, 낙태는 살인"이라는 Pro-life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1]
종교 낙태에 대한 입장
유대교 분파에 따라 다르나, 대부분 죄로 봄
천주교 강력 반대
정교회 강력 반대
개신교 강력 반대
불교 원칙적으로 반대하나, 실질적으로 묵인함
원불교 조건부 찬성
이슬람교 임신 4개월 이하만 낙태 허용
힌두교 강력 반대

2. 기독교

2.1. 가톨릭

② 낙태를 주선하여 그 효과를 얻는 자는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
교회법 제1397조 제2항.
낙태

2270 인간의 생명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인간은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인간의 권리들을 인정받아야 하며, 그중에는 모든 무죄한 이들의 생명 불가침의 권리도 포함되어 있다.[46][2]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예레 1,5).

제가 남몰래 만들어질 때, 제가 땅 깊은 곳에서 짜일 때, 제 뼈대는 당신께 감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시편 139[138],15).

2271 교회는 1세기부터 모든 인위적 낙태를 도덕적인 악으로 단정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변하지 않았으며, 불변하는 것으로 존속한다. 직접 낙태, 곧 목적이나 수단으로서 의도한 낙태는 도덕률의 중대한 위반이다.

낙태로 태아를 죽이지 말고, 갓난아이를 죽이지도 마시오.[47][3]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생명 보존이라는 숭고한 직무를 인간에게 맡기시어 인간 품위에 알맞은 방법으로 이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생명은 임신 순간부터 최대의 배려로 보호받아야 한다. 낙태와 유아 살해는 흉악한 죄악이다.[48][4]

2272 낙태에 대한 분명한 협력은 중죄가 된다. 교회는 인간 생명을 거스르는 이 죄를 교회법적 벌인 파문으로 제재한다. “범죄 사실 자체로”,[49][5] 그리고 교회법으로 정해진 조건들에 따라,[50][6] “낙태를 주선하여 그 효과를 얻는 자는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51][7]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가 자비의 영역을 제한하려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이 범죄의 중대함과, 죽임을 당한 무고한 태아와, 그 부모와 그리고 사회 전체에 끼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2273 무죄한 모든 개개인의 생명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는 시민 사회와 그 법률의 기본 요소가 된다.

“시민 사회와 정치권력은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들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권리는 어느 개인이나 또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어느 사회나 국가가 특권으로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 본성에 속하는 것이며, 사람의 기원이 되는 창조 행위로써 인간 안에 타고난 것이다. 이러한 기본권 가운데, 임신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모든 인간이 갖는 생명권과 육체적 완전성에 대한 권리를 지적해야만 한다.”[52][8]

“일단 민법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의 보호를 실정법이 어떤 범주의 사람들에게서 박탈한 순간, 국가는 법 앞에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가 개개 시민의 권리, 특히 더 힘이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지 않을 경우 법치 국가의 기초는 흔들리게 마련이다. …… 임신되는 순간부터 보장되어야 할 출생 전의 아이에 대한 존중과 보호 의무에 따라서, 법은 아이의 권리를 의도적으로 박탈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적절한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53][9]

2274 배아는 임신되는 순간부터 인간 대우를 받아야 하므로, 가능한 대로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보호받고, 보살핌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산전 진단(産前診斷)은 “배아의 생명과 온전성을 지키고 배아를 하나의 개체로서 보호하거나 치료할 목적으로 행해진다면,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 …… 진단 결과에 따라서는 유산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도덕률을 심히 거스르는 것이 된다. 진단이란 사형 선고와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54][10]

2275 “인간 배아에 대한 개입은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만 받아들일 수 있다. 곧 배아의 생명과 온전성을 존중하여야 하고, 배아에게 부적절한 위험이 없어야 하며, 질병 치료, 건강 상태의 호전 또는 개별 태아 자체의 온전한 생존을 지향하는 개입이어야 한다.”[55][11]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생물학적 실험 재료’로 쓰려고 배아를 만들어 내는 일은 부도덕하다.”[56][12]

“염색체나 유전 물질을 변화시키려는 일부 시도들은, 치료 목적이 아니라 특정 성(性)이나 미리 정한 다른 기준에 따라서 우수한 인간을 선택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조작들은 인간 존재의 개별적인 존엄성과 온전성, 그리고 (그 유일하고 다수로 복사될 수 없는) 주체성에 어긋나는 것이다.”[57][13]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2008(제2판), 2270-2275항.
62. 더 최근의 교황 교도권은 이러한 공통된 교의를 강력하게 재천명하였습니다. 특히 비오 11세께서는 당신의 회칙 「정결한 혼인」(Casti Connubii)에서 낙태에 대한 허울 좋은 정당화를 물리치셨습니다.65)[14] 비오 12세께서는 모든 직접적인 낙태, 예컨대 “생명의 파괴가 목적이든, 아니면 단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든”66)[15] 직접적으로 태중의 인간 생명을 파괴하려는 의도를 가진 모든 행위를 물리치셨습니다. 요한 23세께서는 인간 생명은 “그 시작부터 ‘하느님의 창조 행위’와 관련되어 있으므로”67)[16] 신성한 것이라고 재천명하셨습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낙태를 단호하게 단죄하였습니다. “생명은 임신 순간부터 최대의 배려로 보호받아야 한다. 낙태와 유아 살해는 흉악한 죄악이다.”68)[17]

교회의 법 규범은 초세기부터 낙태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형벌을 부과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역사상 다양한 시기에, 다소 엄하거나 덜 엄한 처벌을 부과하면서 확인되어 왔습니다. 1917년의 『교회법전』은 낙태를 파문의 벌로 다스렸습니다.69)[18] 개정된 교회법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낙태를 주선하여 그 효과를 얻는 자는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70)[19]고 규정합니다. 이러한 파문은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 이 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도움 없이는 낙태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공범자들도 파문에 포함됩니다.71)[20] 이러한 반복되는 제재를 통해서 교회는 낙태가 가장 심각하고 위험한 범죄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로써 이러한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지체 없이 회개의 길을 찾도록 용기를 북돋우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파문의 처벌이 지니고 있는 목적은, 개인이 어떤 죄가 지닌 심각성을 충분히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뉘우치도록 도우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일관된 교리적 법적 전통 속에서, 바오로 6세께서는 이러한 전통이 변함없는 것이고 변경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하실 수 있었습니다.72)[21]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에게 부여하신 권한으로, 주교들과 일치하여, 저는 직접적인 낙태, 곧 목적이나 수단으로 의도된 낙태는 무고한 인간 존재를 고의로 죽이는 것이므로 언제나 심각한 윤리적 무질서를 구성한다는 것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주교님들께서는 비록 전 세계에 퍼져 계시지만, 다양한 기회를 통해서 낙태를 단죄하여 왔고, 앞에서 말씀드린 바 있는 자문을 통해서 이 교리에 대해서 만장일치의 동의를 표하여 주셨습니다. 이 교리는 자연법과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교회 전승은 이 교리를 전달하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교도권은 이 교리를 가르칩니다.73)[22]

어떠한 상황도, 어떠한 목적도, 어떠한 법도, 그 무엇도 본질적으로 불법적인 행위를 합법적인 행위로 만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고, 이성 자체로 알 수 있으며, 교회가 선포한 하느님의 법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1995.3.2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2012(제2판), 62항, AAS 87(1995), 471-472면.
교황은 여기서 인간생명의 신성함과 불가침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독특한 형식으로 장엄하게 선포한다. 즉 교황은 이 장에서 3차례, 즉 무고한 사람에 대한 직접적이고 고의적인 살인(57항), 낙태(62항), 안락사(65항)를 금지하는 것은 『자연법과 성문화한 하느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교회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통상적이고 보편적인 교도권이 가르쳐온』교리임을『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에게 부여하신 권위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과 친교를 이룬 가운데』라는 명시적 표현을 쓰면서「확인한다」(낙태의 경우는「선언」한다).

이러한 교도권의 행사는 그 행위와 내용의 구조로 보아 무류성을 지니는 것이다(교회헌장 25항, 교회법749조 참조).
교황 새회칙 「생명의 복음」 해설 4
② 보편(세계)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이 신앙과 도덕의 스승들이며 재판관들로서 보편 교회를 위하여 신앙이나 도덕에 관하여 확정적으로 고수해야 할 교리를 선언하여 교도권을 행사하는 때, 또는 전 세계에 산재하여 있으면서도 상호 간에 또 베드로의 후계자와 친교의 유대를 보전하면서 교황과 함께 신앙이나 도덕의 사항들을 유권적으로 가르치는 주교들이 하나의 의견을 확정적으로 고수해야 할 것으로 합의하는 때, 주교단도 교도권의 무류성을 지닌다.
교회법 제749조 제2항.
"다수의 이름으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인간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합법적인 것으로 미화하고, 정말 가장 약하고 스스로 보호할 힘조차 없는 인간존재에 대해 폭압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도 대중의 합의에 의한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덕적 가치들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변했다고 해서 인간 생명이 가치없는 것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최창무(안드레아) 대주교, 《윤리신학 3권》서문에서.
" 지난 세기에, 전세계는 나치 인종청소에 대해 경악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낙태 시술 의사의) 하얀 장갑을 끼고 똑같은 짓을 벌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교황), 2018년 6월 17일 바티칸 연설에서 낙태를 나치의 우생학 인종청소에 비유하며.

특히 가톨릭에서는 낙태를 매우 강력하게 반대한다. 현존하는 종교 중 낙태 반대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종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낙태를 시술한 사람, 낙태 당사자, 그리고 낙태를 종용하고 관계된 사람은 즉시 교회법상 자동 파문제재를 받게 되며, 2016년 이전에는 한국을 제외한 해외에서는[23][24] 일반 신부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었을 정도로 중대한 죄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당연히 가톨릭 교회의 일곱 성사에도 참여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이 낙태 허용 법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낙태 허용 시위에 참가하거나, 낙태 허용 법안에 찬성투표를 던지는 것 역시 엄격히 금지된다.[25] 이 때문에 가톨릭 신자이면서 낙태죄 합법화에 찬성한 낸시 펠로시는 '대죄인'으로 분류되었고 같은 가톨릭 신자에 현직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낙태 찬성론자이지만 미국 가톨릭 신자 상당수가 반대한다.

현재 낙태권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서구권의 가톨릭 신자들은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신자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적 죄(morally wrong)라고 생각하더라도 법적 처벌(illegal)은 반대하는 천주교도도 있다. 미국 가톨릭 신자들만 여론조사를 해 보면 낙태를 죄라고 생각하는 신자는 51%지만 낙태가 합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자도 53%로 다수이다. 종교의 자유의 관점, 마약 합법화와 비슷한 이유로 볼 수 있다.

가톨릭 윤리신학적으로, 낙태는 십계명의 계명들을 네 가지나 동시에 어기는 '대죄'이다. 우선 인간 생명을 죽인 죄로 5계명( 살인하지 말라)을 어기게 되고, 거기다 약하고 무죄한 저항 불가능한 인간생명을 낙태한 것이기 때문에 죄악성이 더 가중된다. 뿐만 아니라 산모나 부친되는 낙태 시행자 본인은 자녀를 살해한 것이기 때문에 4계명(네 부모를 공경하라 - 가족주의 윤리[26])를 거스르고, 낙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생명을 잉태하게 한 하느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니 1계명(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을 위반하는 죄이며, 성적 쾌락은 누렸으면서 올바른 부부관계를 통한 자녀 생명의 전달 의무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6계명(간음하지 말라[27])도 어기게 된다.[28] 만일 낙태죄를 고해성사하려는 경우에는, 고해성사 진행 중에 고해신부에게 낙태죄로 이러한 여러가지 계명을 침해했음을 밝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낙태를 옹호하고, 정치적인 낙태 합법화를 추진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 정치인들 역시 가톨릭에서 말하는 대죄를 짓게 되며, 공개적 죄인으로 분류되어 일곱 성사를 받을 수 없고 영성체에 참여할 수 없다. 관련 기사[29] 2013년 미국에서는 공개적으로 낙태 합법화를 지지한 가톨릭 신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당시 바티칸의 레이몬드 버크 추기경에 의해 교회법 915조[30]에 근거하여 영성체를 금지당하기도 했다. 한국 가톨릭 교회가 이러한 성사참여 금지 같은 징계 조치 등을 명시적으로 내리지 않을 뿐이다.

낙태 합법화를 찬성하여 가톨릭의 공식 경고와 성사참여 금지를 받고 있는 서구의 천주교도 정치인들에 대한 영어 위키백과 문서

낙태, 동성애, 줄기세포연구 지지 정치인에 대한 미국 콜로라도 교구의 성사참여 금지령(2004년)

베네딕토 16세 교황 재임시기 낙태 지지 정치인에 대한 영성체 금지령(신앙교리성, 영성체 지침 중에서)(2004년)

멕시코 시티 대교구장 리베라 카레라 추기경의 낙태 지지 정치인 영성체 금지령(2007)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 재임시기 지시한 낙태 지지자에 대한 영성체 금지명령(2013)

2019년에도 미국 일부 지역( 뉴욕, 버지니아)에서 리버럴 정치인들에 의해 낙태 자유화 입법바람이 불자, 해당 지역 주교들은 명백한 낙태 반대와 낙태 지지자에 대한 영성체 금지를 선언했다.

교회법에서는 영성체 불가만 언급하지만, 가톨릭에서 합당하게 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애초에 비신자 상태에서 받는 세례성사나 죄를 지은 신자가 받는 고해성사를 제외한 나머지 5가지 성사[31]를 받으려면 모두 '대죄가 없는 은총 지위 아래' 있어야 한다. 때문에 고해성사를 제외한 나머지 성사들을 받기 위해서는 그 전에 고해성사를 합당하게 받아야 하는데, 고해성사 문서에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입으로만 나불대는 거짓 회개를 방지하기 위해 고해를 하는 모든 가톨릭 신자는 자신이 저지른 공공연한 죄의 상태를 되돌리거나 끊어버리지 않는 이상 고해성사는 모고해(무효)가 되어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 외적인 낙태 옹호행위도 마찬가지다. 공개적으로 타인과 대중 앞에 입법행위나 연설 등으로 낙태를 옹호했다면, 이를 회개하기 위해선 공개적으로 낙태지지를 철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 회개(=거짓 고해)가 되며 이에 따라 영성체를 할 수 없고 성사를 합당하게 받을 수 없다. 교회법에서 규정된 '공공연한 죄인'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즉, 사실상 조당 상태가 되는 것.

많이 하는 오해 중 하나가 가톨릭에서 수정 직후 영혼 주입이 일어난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도권은 영혼 주입의 순간에 관한 철학적 선언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일치된 전통은 없고, 학자들의 입장도 여전히 나뉘어 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첫 순간에 시작된다고 하며, 다른 이들은 그것이 적어도 착상 전에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13. (영혼 주입의 시기에 대한 논쟁과는 완전히 별개로)19)[32] 현대 유전학은 이 불변의 증거에 대한 귀중한 확증을 제공해 준다. 곧 첫 순간부터, 이 생명체가 자라서 이미 잘 결정된 특징을 지닌 한 사람-개인이 될 프로그램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수정 때부터 한 인간 생명의 모험이 시작되고, 그의 위대한 능력이 각각 수립되어 활동할 준비를 갖추려면 시간이 요구된다. 최소한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발달한 현대 과학은 낙태를 옹호하는 자들에게 아무런 실질적 근거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인격체가 형성되는 시기와 낙태의 정당성과 같은, 고유하게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대하여 결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생물학에 속하지 않는다. 이제 도덕적 관점에서 이것은 분명하다. 수정의 열매가 이미 인격체라는 사실에 어떠한 의심이 있을지라도, 살해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심각한 죄이다. “인간이 될 자는 이미 인간이다.”20)[33]
교황청 신앙교리성성, 인공 유산에 관한 선언 「낙태 문제」(Queastio de Abortu), 13항, AAS 66(1974), 738-739면.
더군다나 이미 교회 초창기부터 세례성사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영유아의 구원에 대해 고성소와 관련된 치열한 신학적 논쟁이 오늘날까지도 오가는 상황에서 교리 차원에서라도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낙태에 대해 천주교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가톨릭 시초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전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즉, 가톨릭 입장에서 낙태는 영유아의 구원(유아세례)의 기회를 원천 박탈한다는 측면에서 구원관 측면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직자들조차 피임이나 동성애는 물론 혼외출산까지 용인할지언정[34] 낙태는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 교내 진보파 중 일부는 강간,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이나 낙태가 필요할 만큼 임신부의 건강이 위태로운 경우에만 낙태를 용인해줘야 하지 않냐는 의견을 보이는 경우가 있으나 교황청을 비롯해 가톨릭 교도권에서 칼같이 거부한다. 또 간통과 같이 당사자의 책임이 큰 사유로 인한 임신에까지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천주교는 진보파조차도 낙태의 전면적인 자유화(합법화)는 반대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교리적으로 이 문제는 가톨릭 생명 윤리와 관련된 한 단 한 발자국도 양보할 수 없는 문제들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가톨릭이 이러한 입장을 조금이라도 번복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생명윤리에서 가톨릭이 일관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가톨릭은 같은 이유(생명윤리)로 사형제에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35] 실제로 가톨릭이 다수를 차지하거나 그 영향을 크게 받은 브라질[36], 프랑스, 이탈리아, 베네수엘라[37] 같은 나라들을 보면 대부분 사형제가 없고, 아무리 가혹하게 처벌해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법정 최고형이다. 또 마찬가지 논리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시행하는 가혹한 사형 위주 정책에도 가톨릭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임산부의 생명이 위험할 때와 같은, 흔히 말해 '어쩔 수 없는 경우'의 낙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많은 신학자들과 교회 내의 철학/윤리학자들 간의 논쟁이 있지만 대략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근거로는 '더한 악(산모와 태아가 같이 사망하는 것)보다는 덜한 악(태아만 사망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 낫다'가 있다. 물론 일견 타당해보이는 이 근거를 둘러싸고서도 수많은 머리 아픈 공방전이 일어나고 있다. 일반 사회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조차도 이 경우만큼은[38] 다수가 불가피하다고 보지만 천주교인들 중 보수적인 입장의 천주교인들은 이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임산부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더라도 낙태는 정당화될 수 없다이고, 보통 강간 피해나 산모의 건강이 문제되는 경우는 낙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당연히 " 강간으로 인한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한 낙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간이나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해설은, 물론 강간은 끔찍한 이며, 이에 대해서는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산모에게도 정신적, 물적 치유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간죄의 흉악성이 그 결과로 수태된 죄없는 배아, 또는 태아가 _본인의 의사와도 관계없이 죽임을 당해야 할 이유는 절대 될 수 없다_라는 것이다. 산모의 강간범에 대한 혐오, 또는 억울함이 '죄없이 수태된 생명'을 죽일 당위성, 합리화는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 강간 피해에 대한 보상은 결코 낙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가톨릭은 현재 모자보건법 14조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보충설명을 하자면, 약간의 예외사항이 있다. 바로 산모의 목숨이 매우 위태로워서 의료행위를 했는데 이 와중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써 태아가 사망(유산)하는 경우는 용인한다는 점이다.[39] 그러나, 이것은 산모를 구하는 과정에서 태아가 불가피하게 죽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산모의 생명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능성만을 가지고 태아를 인공유산 시킬 수 있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니다. 사실 이쯤 되면 낙태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참고1 참고2 예를 들어 임산부가 알고 보니 암환자였는데, 아이가 태어나서 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면 산모가 죽을 확률이 높아서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다 태아가 유산된다든지, 자궁 외 임신이어서 어차피 아이를 살릴 수 없는 상황인데 놔두면 난소나 나팔관 등의 파열로 산모가 죽을 수 있으므로 발견 즉시 제거 수술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허용된다는 범위 역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낙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낙태와 관련해서 2015년 5월 8일, 2016년 '자비의 특별 희년' 기간에 낙태 여성, 낙태 시술을 한 의사 간호사 낙태와 관련된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 교황이 사제단을 세계 각국에 파견할 것이라고 언론이 보도했다. 이러한 조치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특별 희년 기간에만 허용되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으나, 자비의 희년이 종료된 후인 2016년 11월 21일 낙태한 여성에게 고해성사를 줄 권한을 주교급 사제에서 모든 사제로 확대시킨 자비의 희년 때 조치 기한을 1년에서 무기한으로 연장했다. 이와 별도로, 한국 천주교에서는 낙태한 여성에 대한 자동 파문의 사면이 본당 주임 신부에게 위임되어 있다.[40]

이 일련의 행보를 보면서 오해하면 안 되는 사실이 있는데, 낙태죄 사면 권한을 확대시킨 가톨릭의 이 조치는, 절대로 낙태를 '현실적으로 용인'하자거나 현실과 타협해서 낙태죄를 별것 아닌 죄로 격하시키자는 주장이나, (몇몇 사람들이 왜곡하는 것처럼) 낙태를 한시적으로 허용하자(...)[41]는 식의 조치가 아니다. 오히려 낙태죄의 만연함과 이것이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또는 필요불가결하다는 식으로 왜곡되는 현 사태를 개탄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낙태를 저질러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된 여성들, 낙태 관련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화해의 자세를 교회에서 먼저 취한 것에 가깝다.

사실 강간으로 임신한 아이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산모 혹은 그 가족이 그렇게 많지 않다.[42] 비록 산모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더라도 결국 가족에 의해 힘든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매우 민감하고 또 중대한 문제이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위와 같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하여 파문 상태에 처하게 된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와 화해함으로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는 낙태죄를 저지르지 않게 독려하기 위한 사목적 배려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11월에 발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희년 폐막교서 <자비와 비참>에서는 이러한 자비를 통해 죄인들을 회개시키자는 교황 본인의 취지가 잘 드러나 있다.[43]

가톨릭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이들의 교리상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는 교회가 한 치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방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조차도 낙태를 막기 위해 미혼모들과 혼외출생아에 대한 대우에 관대해지자고 했을 정도. 즉 이런 대원칙에 하나둘씩 예외 조항을 교회법 혹은 교리상으로 끼워넣다 보면 결국 대원칙 자체가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며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교회는 그런 결과를 초래한 많은 사례들을 이미 겪어 왔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 역시 주교와 같은 재치권자 혹은 사목자의 사목적 배려를 통해 해결할지언정, 교회 자체의 원칙에서는 한 발자국도 물러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탈출기 21장에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할 경우 (죽이지 않고)[44]남편이 제시한 벌금을 무조건 내되, 재판장의 판결에 따른다"는 구절을 보면 구약에서는 태아의 생명을 좀 더 낮게 여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론 태아를 생명으로 본다는 점과, 구약이라는 점[45]에서 낙태를 허용한다거나, 태아의 생명이 출산 이후의 인간보다 작은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낙태 금지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태아/배아/수정란은 산모의 지체도, 종속물도, 부분도 아니다. 비록 산모의 몸에 의존하기는 해도 태아/배아/수정란은 존엄성과 생존권을 지닌 엄연한 인간이다. 낙태는 ' 대죄'다.
  • 태아/배아/수정란은 산모의 권리에 대한 불의한 침탈자로 간주될 수 없다. 비록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 할지라도, 산모가 행하는,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복수, 혐오감, 생활고 등의 이유만으로 자기 죄없이 잉태당한 또 다른 인간이 낙태당할 어떤 당위성도 주장하거나 합리화할 수 없다.
  • 산모나 태아/배아/수정란의 건강이 불확실할 것이 예상된다거나 장애가 있다거나 기타 우생학적 문제가 있더라도 낙태는 절대 불가하다. 이는 장애자나 정신박약자에 대한 살해가 부당한 이유와 마찬가지다.
  • 산모와 태아/배아/수정란 둘 중 하나밖에 목숨을 구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임이 확실한 경우, 더욱 확실하게 구할 수 있는 생명을 살리도록 용인되는데,[46] 이는 절대로 한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폄하되어서가 아니라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는 선의로 해석되어야 한다.
  • 위에서 나온 모든 낙태는 그 방법을 막론하고 금지된다. 모닝 애프터 필 같은 사후피임약과 미프진 등 낙태약, 기구사용, 수술 등 모두 ' 대죄'로서 금지된다. 산모의 몸에 해가 되는 방식으로 하는 낙태 역시 더욱 '대죄'이다. 또 가톨릭의 낙태죄는 그 적용범위가 대단히 넓다. 낙태한 임산부, 이를 종용한 남성, 가족, 낙태 시술을 집도한 의사, 이를 거든 모든 의료관계자(간호사, 동료 등) 등이 낙태죄의 협력자로서 ' 대죄' 및 신자일 경우 자동 파문 대상이 된다.

이 영향 때문인지 가톨릭의 교세가 큰 남미 폴란드의 여러 나라에서는 낙태가 불법인 경우가 많다. 특히 2018년 아르헨티나에서 하원을 통과한 낙태죄 폐지 안건이 상원에서 부결된 이유도 가톨릭계 입김이 강한 의원들의 반대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폴란드에서는 아예 헌법까지 바꿔가며 태아에게 생명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였다. 또 이러한 낙태죄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가톨릭에서는 낙태 반대 시위나 홍보 같은 생명운동에 가장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국가들에서도 가톨릭이 Pro-Life 운동을 비롯해 낙태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 예시로, 2019년 미국 버지니아 주 알링턴 교구에서는 교황청과의 협의 및 허가를 받아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연례적 대규모 낙태반대 시위인 '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Life)[47]에 참여하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격려의 의미로 대사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

2017년에 이와 같은 낙태에 관련한 천주교 교리를 둘러싸고,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과 한국 천주교 사이에 오해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을 달면서, 낙태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엄격한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조국이 " 프란치스코 교황이 낙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라는 식으로, 마치 가톨릭이 낙태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오해를 할 만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이에 한국천주교에서는 즉각 반박성명을 내고 "조 민정수석의 발언은 가톨릭 교리,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왜곡한 것"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또한 낙태죄 폐지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개시하여 낙태죄 폐지에 대한 헌법소원을 기각해달라는 민원과 함께 헌법재판소 제출하였다. 결국 조국 민정수석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이용훈 마티아 주교를 방문하여 "교황 발언 인용에 실수가 있었다"라며 공개 사과했다.

2018년 2019년에도 헌재에 낙태죄 폐지 반대운동 청원서를 전달하거나, 한국 가톨릭 주도로 낙태 반대 생명대행진에 나서며,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주최하는 등 한국에서 벌어지는 낙태 반대운동의 최전선에 가톨릭이 계속 나서고 있는데, 이 때문에 낙태를 적극 옹호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세력의 분노를 사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같은 심각한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2019년에 헌법재판소의 현행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직후에도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즉각 유감성명 표하고, 가톨릭 차원에서 헌재 결정 이후로도 낙태 반대, 생명존중을 멈추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였다. 이후 2019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연례적으로 발표하는 지역 주교들의 전 신자들에게 보내는 사목교서에서도 각 교구 주교들의 "낙태 반대 및 생명존중을 멈추지 말라"는 지시가 들어갔다.

가톨릭의 낙태 관련 입장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가톨릭의 낙태 관련 생명윤리 가르침(가톨릭평화방송), 모자보건법 14조 반대 기사도 참조하자.

낙태에 대한 강경한 입장 때문에 페미니즘 계열을 필두로 가톨릭이 태아 성감별 낙태에는 침묵했으면서 낙태죄 폐지를 반대한다는 주장을 제기한 적 있다.

하지만 가톨릭계는 당연히 태아 성감별 낙태도 강경하게 비판했다. 90년대 초반 한국 천주교 매체에서 낙태를 비판하는 글의 상당 부분은 이런 태아 성감별 낙태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가장 독재가 강경했던 유신정권 시절에도 낙태허용규정이 있던 모자보건법이 73년 제정되자 바로 반대하는 성명을 낸 집단이었다. # 또한 1986년에는 주교위원회 가정사목담당 박토마 주교(춘천교구장)가 11월 26일 '하나낳아 알뜰살뜰'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80원짜리 우표를 가톨릭 신자들이 사용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가톨릭은 사형제 폐지를 요구할 정도로 생명윤리에 관해서는 일관되게 강경한 입장이므로 남아선호사상에 의한 낙태에만 선택적으로 침묵했다는 식의 비판은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아무래도 한두 세대 전 옛날 일이다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뿐이다.

2.2. 정교회

동방 기독교는 낙태를 반대해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법과 고백성사 지침, 그리고 보다 공식적인 윤리 교육 안에 구현되어 있는 윤리적 가르침은 낙태를 살인의 한 형태로 정죄합니다...(중략)... 성 대 바실리오스는 자신의 두 번째 카논(교회법)에서 특별히 형성된 태아와 형성되지 않은 태아의 인위적 구별을 금지[48]했습니다.(The Rudder, pp. 789-790) 이렇게 해서, 어떤 낙태도 악행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인간 실존의 육체성과 인격적 측면은 우리 인성의 본질적 구성 요소로 이해되기 때문에, 태아는 비록 결핍되고 불완전하더라도 정상적인 상황에서 결코 파괴될 수 없는 것입니다. 동방 정교회 윤리학자들은 경제적 사회적 이유에 호소하여 생명을 돈, 명예, 편리보다 가치가 적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대 논리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거부합니다. 현대의 유전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그들은 또한 여성은 자기 자신의 몸을 통제할 자격이 있기 때문에 낙태가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거부합니다. 자기 결정이라는 기본적인 확신은 거부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거부되는 것은 태아가 산모의 신체조직의 일부라는 주장입니다. 태아는 결코 산모의 몸이 아닙니다. 태아는 산모가 돌보고 양육하도록 맡겨진 또 다른 인간 존재의 몸이고 생명입니다. 산모의 생명이 태아로 인해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낙태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이 도덕적으로 적절합니다. 하지만 여기서조차 가장 주된 가치는 생명의 보전입니다. 비록 대부분의 경우에 산모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선택될지라도, 여러 가지의 신중한 고려들이 이뤄질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건의 악함은 인정되지만 당사자의 인격적 죄책은 경감되는 “비고의적 죄”로 구분됩니다.
한국 정교회 대교구, 건강과 생명에 관한 윤리 서한 중 낙태에 관하여.
낙태로 태아를 죽이지 말고, 갓난아이를 죽이지도 마시오.
디다케 2장 2절 중.
낙태하기 위해 약을 먹는 여성,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죽이기 위하여 독을 먹는 자들은 살인자이다. 이 건(낙태)은 살인이라는 것 외의 생각할 여지는 없다.
성 대 바실리오스, 암필로키오스(Amphilochius)에게 보낸 서간 중. (347년)
모태에 있는 태아는 수정된 순간부터 생명이기 때문에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든 낙태라는 방법으로 태아를 지울 수 없으며 이는 살인과 같은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자의로 생명을 해칠 권리가 없습니다. 특히 태아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할 힘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생명을 더욱 보살피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스 정교회 주교 공의회의 낙태에 관한 결정문, 2022년 9월 8일 성모 탄생 축일

정교회는 교회의 규범과 신학적으로 자궁의 생명 시점부터 보호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낙태를 살인 행위로 간주한다. 따라서 낙태 행위는 물론 낙태 권유나 협조도 마찬가지로 금지다. 낙태를 시술하거나 이를 요구하는 이는 부도덕한 행위를 자행하는 일이며 회개해야 한다.

정교회에서는 인간 실존의 육체성과 인격적 측면을 우리 인성의 본질적 구성 요소로 이해하기 때문에, 태아가 비록 결핍되고 불완전하더라도 정상적인 상황에서 결코 파괴될 수 없다고 본다. 아울러 태아가 산모의 신체 조직의 일부라는 주장을 거부하며, 태아는 결코 산모의 몸 일부가 아니라 산모가 돌보고 양육하도록 맡겨진 또 다른 인간 존재의 몸이고 생명이라고 가르친다.

유일하게 사목적 배려 차원에서 산모의 생명이 태아로 인해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낙태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이 도덕적으로 적절하다고 보긴 하지만, 여기서조차 가장 주된 가치는 생명의 보전에 두고 있다. 비록 대부분의 경우에 산모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선택될지라도, 여러 가지 신중한 고려들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낙태 역시 악이지만, 당사자의 인격적 죄책은 경감되는 “비고의적 죄”로 구분하고 있다. 낙태를 강경히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의료적으로 낙태가 불가피할 경우에 있어서는 가톨릭보다 덜한 주장을 보이는 것.

2.3. 개신교

개신교도 가톨릭과 정교회와 같이 기독교이기에 낙태에 반대하는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개신교는 단일 교파가 아니어서 그 허용에 대한 입장이 각자 갈린다. 특히 진보적 교단과 보수적 교단은 그 기준이 크게 갈라진다. 다만 낙태 금지라는 근본적 주장은 모두 같다.[49] 하지만 이 뉴스나 이 뉴스를 보면 알겠지만 미국 복음주의 성향을 강하게 보이는 교파는 가톨릭과 정교회보다도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모습을 보이는지라 낙태에 대해서도 더 엄격하게 적용할 때도 있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낙태를 실시한 의사들에 대한 개신교 극단주의자의 테러(살해)가 일어나기도 한다.

상기했듯이 교파마다 입장이 갈리고 개신교 전체를 합산하면, 가톨릭과 정교회에 비해서는 덜 엄격한 편이긴 하다. 즉,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나 산모가 위급한 상태[50]에서 낙태를 하는 경우에는 가톨릭이나 정교회보다는 덜 강경하다.

한국의 개신교는 미국식 복음주의 교단이 대부분이기에 낙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교단의 공식적 입장은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성폭행에 의한 임신, 산모가 치명적인 질병 혹은 부상을 갖고 있어서 임신이 치명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낙태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 주류이다. 단 이들의 활동이 미국과는 달리 성소수자 문제에서만 집중이 되다보니 상대적으로 안 부각이 될 뿐이지, 실제로는 보수 개신교 계열[51]을 필두로 낙태죄 폐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 한국 교계에서도 낙태에 대한 다른 관점, 즉 낙태를 허용하거나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극소수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교회는 한국에도 여러 곳 있지만, 구성원 개인의 주장을 넘어 낙태죄 폐지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한국 내 교회는 섬돌향린교회 외에는 찾기 어렵다.

2.4.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복주의 교파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에서도 낙태를 반대하고 있다. 몰몬교는 19세기부터 낙태를 살인 행위로 규정하고, 낙태를 행하는 회원이나 이를 주선하는 행위를 교회 선도의 대상으로 삼고 제재를 가해왔다. 만약 몰몬교 교인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일반적으로 낙태를 저질렀거나 참여하였다면 감독이나 선교부 회장에게 고백하고 이를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몰몬교에서도 강간이나 근친상간, 혹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임신한 것과 같은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낙태를 허용한다. 대신 낙태를 하기 전에 감독에게 충분히 상의하라고 되어있다.

3. 이슬람교

쿠란 등에서 '자식을 살해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 구절에 따라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에선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때를 제외하고 낙태가 금지되어 있다. 다만 기독교에서는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수정란부터 알라가 생명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아이의 살과 피가 만들어지고 120일 후에 알라가 생명을 불어 넣어 준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쿠란이 '자식을 살해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건 맞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식'은 4개월 이상의 태아인 것이다.

일단 ' 하디스'에서 무함마드가 밝힌 아기가 탄생하는 과정은 이렇다.
너희들의 창조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정액의 형태로 40일간은 그 정액이 응혈되고 그 다음 40일간은 살 덩어리가 되느니라. 그리고 나서 알라께서는 천사를 보내시는데 그 천사는 그(그녀)에게 영혼을 불어 넣느니라. 천사는 다음과 같은 4가지를 기록하라고 명령을 받느니라. 그(그녀)의(얻을) 양식, 일생, 행위 및 선한 사람일지 악한 사람일지가 바로 그 4가지이니라. 그분 외에는 숭배받을 존재가 없는 알라께 맹세하니 너희들 중 누군가 천국에 들어 갈 자들의 행위를 실천하여 그(그녀)와 천국 사이에 한 척(46-56cm) 거리가 남았지만 그(그녀)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기록된 정명이 그러하다면 그(그녀)는 지옥에 들어갈 자들의 행위를 실천하고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느니라. 또한 너희들 중 누군가 지옥에 들어갈 자들의 행위를 실천하고 그(그녀)와 지옥 사이에 한 척 거리가 남았지만 그(그녀)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기록된 정명이 그러하다면 천국에 들어갈 자들의 행위를 실천하여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느니라.

그러니까 요약하면, 이슬람 세계관에서는 남성의 정자가 여성의 자궁에 들어가 피와 살로 변하다가 120일 후에 영혼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4개월 미만 태아는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낙태가 아니라 피임이라는 논리로서 허용된다. 이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초기 낙태를 할 수 있는 Abortion pill의 판매는 합법이다. 실제로 튀니지, 인도네시아, 모로코, 바레인 등 비교적 세속적인 국가뿐 아니라 상당히 근본주의적인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지 에서도 낙태용 약물은 정식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약물 낙태는 대체로 7주 이내에 이루어지고 4개월이 넘어가서 배가 나오기 시작할 즈음엔 어차피 수술을 해야 하므로 교리를 충실히 적용해도 판매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4개월이 넘은 태아는 영혼이 숨쉬는 '인간'으로 보며 이 시점에선 낙태는 살인죄다. 120일이 지난 후 영혼이 만들어지면, 그때 산모와 아버지는 부모가 되며 아기의 생명이 만들어진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쿠란에선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것을 심각한 죄악으로 본다.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와 같은 원리주의가 공고한 국가에서는 이 4개월이 넘은 태아를 사람으로 본다는 개념이 매우 확고하기 때문에 부모의 자의에 의한 낙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과실로 인한 유산 역시 살인으로 간주한다.

즉 어떤 사람이 임산부와 언쟁을 하다 화가 나서 밀었는데, 임산부가 넘어지거나 충격을 받거나 하여 유산을 해버렸다면, 상대는 살인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도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굉장히 난처해진 두 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놔두고 간병인이 외출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침대에서 낙상을 하여 다치게 되었는데, 이를 알게 된 노인의 아들이 화가 나서 간병인을 밀쳐서 집에서 내쫓아버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5개월이었던 간병인이 유산을 하게 되어 버리고, 간병인의 남편은 화가 나서 노인의 아들을 실제로 살인죄로 고소해 버린다. 이 때 피고인이 간병인의 임신 사실을 알았느냐 하는 점이, 영화 내에서의 가장 큰 쟁점. 만약 임신 사실을 몰랐다면 불운한 사고로 간주되지만, 간병인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노인의 아들은 살인범이 되어 하루아침에 인생이 끝장나기 때문이다.

다만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경우 허용한다는 것이 교리로 명시되어 있다. '태아의 생명과 산모의 생명 모두 소중하지만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엔 산모를 택하는 게 옳다'고 본다. 물론 보수 가톨릭계와 마찬가지로 낙태 자체를 완전 금기시하는 해석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튀르키예 종무성 테프시르등이 있다. #[52]

근거 구절은 쿠란의 6:151, 17:31이다.
일러가로되 내게로 오라 내가 하나님이 금기하신 것을 일러 주리라 그분께 아무것도 비유하지 말며 그대의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난을 구실로 너희 자손을 살해하지 말라 너희와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양식을 주리라 또한 나 타나는 것과 나타나지 않는 죄악 에 가까이 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신성시한 생명을 살해하지 말라 그것이 그분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여 지혜를 배우도록 한 것이니라 쿠란 6장 151절
궁핌의 두려움으로 너희 자손을 살해하지 말라 하나님이 그 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나니 너희에게도 마찬가지라 그럼으로 그들을 살해하는 것은 큰 죄악이라 쿠란 17장 31절


요약하자면 이슬람교의 논리에서는 낙태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고 성관계 후 120일을 기준으로 피임 아니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을 사용한다. 이는 낙태를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120일 전의 태아를 강제로 낙태하는 경우에도 태아를 생명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태아의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있는 논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슬람교의 논리는 현대의 낙태에 대한 논리에 직접적으로 대입되지 않기 때문에 사례로 사용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4. 유대교

이슬람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에서도 산모와 아이의 목숨을 둘 다 책임지지 못할 경우에는 낙태를 허용한다. 탈무드에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이때 유대교 교리에 따르면 아이는 태어나기 전까지는 개별적인 생명이 없는,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생명이 위태로울 경우 팔이나 다리를 자르는 것처럼 아이를 희생시킬 수 있는 거라고 말하는데, 이때 기독교 사제와 격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유대교 교리에 따르고 아이를 잃게 되지만, 나중에 다음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물론 언제까지나 산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상황이었기에 허용한 것이다. 허나 근래 유대교인들은 사회경제적 이유에 따른 낙태,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낙태 등도 허용하자는 분위기가 많다.

5. 불교

불교 역시 낙태에 있어서는 극도로 부정적이며 살생을 금하니 말할 것도 없다. 불교의 율장인 <십송률> 제2권에 따르면, 태아를 죽이기 위해 낙태법을 써서 낙태하면 그것은 '바라이죄(波羅夷罪)'[53]에 해당한다고 못박고 있는데, 바라이죄는 출가 수행자가 승단에서 내쫓기는 가장 무거운 처벌로서 살생 등의 중죄를 범한 경우에 적용되는 조항이다.

대표적인 경전을 살펴보면 우선 잡아함경 19권 512경의 제목은 타태경(墮胎經)으로, 키자쿠타 산에서 수행중이던 석가모니 부처의 제자 목갈라나(목건련)가 어느날 락카나라는 비구와 함께 라자가하(王舍城)로 탁발을 나갔던 길에 온몸에 가죽이 없고 모양은 살덩이같이 생긴 몸이 큰 중생이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목갈라나는 씁쓸하게 웃었고, 락카나 비구는 목갈라나에게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라고 물었지만 목갈라나는 탁발을 마칠 때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죽림정사로 가서 석가모니 부처를 만난 자리에서야 목갈라나는 자신이 본 것을 부처에게 말하고 그 사연을 물었다. 이때 석가모니 부처는 "그 중생은 과거 세상에 이 라자가하에서 살았던 사람인데, 태내에 수태된 생명을 떨어뜨렸다. 이 죄로 말미암아 그는 지옥에 떨어져 이미 백천세동안 한없는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그 고통을 계속해서 받고 있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당시의 고대 인도에서 낙태가 행해졌는가에 대해서는 불경 속에서 공공연하게 암시가 되기는 한다. <대불전경>[54]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의 후원자이면서 마가다 왕국의 왕이었던 빔비사라 왕의 왕비 웨데히가 아이를 가졌을 때, 웨데히 왕비는 기이하게도 남편의 오른팔에서 나온 피가 먹고 싶어졌고, 이걸 차마 입 밖으로 말할 수가 없어 끙끙 앓고 있다가 결국 남편에게 털어놓았고, 빔비사라 왕은 "임신한 아내를 위해 그까짓 거"라며, 스스로 팔에 상처를 내어 피를 내서 아내에게 마시게 해 주었다. 그런데 이게 왕비의 태중에 있는 아이가 장차 아버지 빔비사라 왕을 살해할 것이라는 징조였기에, 이를 알게 된 웨데히 왕비는 자신의 몸 안에 자기 아비를 죽일 원수를 품을 수는 없다며 낙태를 하려고 정원으로 나가서 험한 땅에서 몇 번이나 몸을 굴렸고, 빔비사라 왕이 놀라서 말리고 "태어날 애가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도 모르는데 죽이기는 왜 죽이냐. 예언만 믿고 애를 낙태시켰다가는 오히려 그게 더 악명이 될 것이다"라며 이후 왕비가 낙태를 아예 하지 못하게 감시자를 붙였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아자타삿투였다. 그리고 아자타삿투는 데바닷타의 꾐에 넘어가서, 결국 예언대로 아버지 빔비사라 왕을 유폐시키고 왕위를 빼앗는 결말로 이어졌다.[55] 이때 웨데히 왕비가 수도 없이 낙태를 시도한 그 정원은 훗날 ‘맛다쿳치(maddakucchi)’, 즉 ‘낙태가 행해진 정원’이라 불렸다고 한다.

낙태에 대해 명백하게 '죄'라고 명시한 불경은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으로[56] 약칭 장수멸죄경이라고도 불리는 해당 불경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사람들이 전생의 죄를 지어서 육도윤회를 반복하다가 어쩌다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오래 살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문수보살에게 석가모니 이전의 부처 가운데 하나인 보광정견여래의 시절에 살았다는 전도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전도라는 여인은 가난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8개월 된 태아를 약을 먹어 지운 일이 있었다. 후에 어떤 사람이 전도에게 와서 "태아를 상하는 사람은 생전에는 중병이 들어 목숨이 단명하고 죽은 뒤에는 아비지옥에 떨어져 무서운 형벌을 받는다"고 했고, 전도는 두려워서 보광정견여래에게 와서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과 출가를 청했다.[57] 이에 대한 보광정견여래의 말은 다음과 같다.
“여인아, 네 어린 것이 태 안에 있을 때에는 사람의 형상을 갖추어 마치 지옥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며, 어미가 더운 음식을 먹으면 더운 지옥과 같고,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차가운 지옥과 같아서, 종일토록 괴로워하며 어둠 속에 있는 것이다.[58] 네가 또한 나쁜 마음으로 독약을 먹었으니 이 악업으로 스스로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죄인은 다 너와 같은 무리니라.”
보광정견여래로부터 이러한 대답을 들은 전도는 놀라서 그만 졸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보광정견여래에게 매달려 지옥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설법을 청하고 있는 와중에 공중에서 전도를 향해 “너는 태아를 죽인 죄로 단명한 업보를 받을 것이다. 나는 귀신의 사자로서 너를 잡으려고 왔노라.”라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다. 이때 보광정견여래가 그 목소리를 향해 "이 사람이 내 앞에 참회하러 왔으니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 설법을 할 동안만 잠깐 기다려달라"고 말한 다음 전도에게 설법을 행한다는 것이 장수멸죄경의 줄거리이다. 전도는 해당 경전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자신의 뼈를 뜯어서 붓대를 삼고 눈을 뽑아서 흘린 피로 경을 필사했는데[59]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불교에서 낙태를 어떤 이유에서건 엄연히 무간지옥에 떨어질 죄악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흘리는 것과 동급으로 간주되고 있다.

일본 불교의 경우, 낙태아의 영혼을 공양하는 '미즈코(水子)' 공양이라는 의식을 마련하고 있다. 미즈코 공양은 일본에서 낙태가 일반화된 1970년대 이후에 흔히 나타난 것이다. 이는 불교적인 의식보다는, 일본의 원령 신앙이 낙태아에게까지 확대된 것에 가깝다. 한국 불교에서도 유산 영가(유산된 아기의 혼)를 위로하는 천도제를 지내는데, 물론 이 중에는 자연유산도 있지만 낙태아도 포함된다. 이러한 유산 영가 천도를 전문적으로 하는 절도 있다.

하지만 불교는 가톨릭이나 개신교, 이슬람처럼 낙태에 대한 일관적이고 명확한 원칙이나 해결 방법이 따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종파마다 해석하는 것이 달라서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영가 천도를 하는 것을 권유하는 종파도 있고, 꼭 절을 끼고 천도하지 않더라도 부모 본인이 사경이나 수행 등을 하며 참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곳도 있으며, 일부는 태아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를 부정하면서 영가 천도를 해주지 않고 "다만 쌓인 업이 있으니 선행을 통해 좋은 업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권고만 하는 곳도 있다.

단, 어느 종파든 간에 여성 당사자나 가족에게 좋지 못한 카르마가 쌓인다고는 보는 편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의 경우 “기본적으로 낙태에 반대하지만 다수의 낙태그 이뤄지는 현실을 감안해 한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기독교에 비해 비교적 애매한 입장을 내놓있다.

성평등불교연대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성평등불교연대는 지난 12일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는 제목의 성명에서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보장받는 것임을 확인해 준 이번 판결을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여성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성적 자기결정권,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평가하는 한편 “낙태는 결코 선업(善業)이라고 할 수는 없기에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는 불교 생명관에도 함께했다.

6. 원불교

원불교는 여성의 권리로 보며 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여성계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폭넓은 허용을 요구하고 무조건적 찬성을 보내는 입장은 아니지만 종교계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찬성하는 편이다. 또한 원불교 교리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낙태의 조건부 찬성이란 입장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소태산 박중빈은 원불교 계율에 '연고 없이 살생하지 말라'는 항목을 넣어두었는데 이 때 그 '연고'라는 것이 바로 불가피한 사유를 의미한다. 그래서 강간을 당했다거나, 어린 나이에 임신해 아이를 도저히 키울 수 없어서 낳을 수 없다거나, 산모의 건강이 우려된다거나 하는 객관적으로 보아 낙태가 훨씬 합당하다고 여겨질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임신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원불교에서는 고통과 행복은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에 의해서 결정이 되고, 생각과 가치관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지금 당장 낙태가 더 나은 선택으로 보여서 그렇게 선택하더라도 나중에 이로 인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어 후회하고 불행할 수도 있으므로, 부득이 낙태가 시행될 상황에서는 인과보응의 원리에 비춰 충분한 자기성찰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원불교 신문 강지숙 원광대 간호학과 원장)


[1] Pro-life라는 단어가 만들어지자 반대 측에서는 "태아는 여성의 신체의 일부일 뿐이며, 그 여성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선택권(choice)은 오직 당사자에게 있다"는 의미에서 Pro-choice 운동을 시작했다. Choice라는 단어가 "오랜 세월 여성 자신의 신체에 관한 여성의 결정권은 남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에 의해 탄압받았으며, 여성은 이를 되찾아야 한다"는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에도 부합하여 널리 쓰이고 있다. [2] 46. 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 1, 1: AAS 80(1988), 79면 참조. [3] 47. 「디다케」, 2, 2: SC 248, 148(Funk 1, 8). 「위(僞) 바르나바 서간」, 19, 5: SC 172, 202(Funk 1, 90);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간」, 5, 6: SC 33, 62(Funk 1, 398); 테르툴리아누스, 「호교론」, 9, 8: CCL 1, 103(PL 1, 371-372) 참조. [4] 48. 사목 헌장, 51항. [5] 49. 교회법 제1314조. [6] 50. 교회법 제1323-1324조 참조. [7] 51. 교회법 제1398조. [8] 52. 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 3항: AAS 80(1988), 98-99면. [9] 53. 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 3항: AAS 80(1988), 99면. [10] 54. 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 1항 2: AAS 80(1988), 79-80면. [11] 55. 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 1항 3: AAS 80(1988), 80-81면. [12] 56. 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 1항 5: AAS 80(1988), 83면. [13] 57. 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 1항 6: AAS 80(1988), 85면. [14] 65. 비오 11세, 회칙 「정결한 혼인」(Casti Connubii), 1930.12.31., II, AAS 22(1930), 562-592면 참조. [15] 66. 비오 12세, 생물 의학 협회 ‘San Luca’에서 한 연설, 1944.11.12., 『연설과 라디오 담화』, VI(1944-1945), 191. 이탈리아 가톨릭 산파 조합에서 한 연설, 1951.10.29., 2항, AAS 43(1951), 838면 참조. [16] 67. 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 1961.5.15., 3항, AAS 53(1961), 447면. [17] 68. 사목 헌장, 51항. [18] 69. 구 교회법 제2350조 1항. [19] 70. 교회법 제1398조. 동방 교회법 제1450조 2항 참조. [20] 71. 교회법 제1329조; 동방 교회법 제1417조 참조. [21] 72. 바오로 6세, 이탈리아 법조인 총회에서 한 연설, 1972.12.9., AAS 64(1972), 777면; 「인간 생명」, 14항, AAS 60(1968), 490면 참조. [22] 73. 교회 헌장, 25항 참조. [23] 고해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사제들도 등급이 있어, 일정 이상의 중대한 죄의 경우 그 죄의 경중에 따라 신분이 높은 성직자에게 사죄권이 부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낙태의 경우 2016년 이전까지는 주교 이상의 성직자에게만 사죄권이 있었다. [24] 한국 천주교는 선교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어 과거부터 일반 신부들이 낙태죄를 용서하고 파면을 풀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며, 자비의 희년 이후에는 본당 주임신부에게 유보되어 있다. [25] "법 자체가 비윤리적일 경우, 기독교 신자들은 결코 그 법을 따를 수 없으며, 인공유산(낙태)의 합법성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그런 법을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 신자는 아무도 그러한 법을 옹호하는 선전운동이나 지지투표에 가담할 수 없다. 더욱이 그런 법의 시행에 협력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의사 간호사가 인공유산에 직접 협력하게 하거나, 또한 그리스도인이 법과 자기의 직업위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 교황청 신앙교리성, 《인공유산의 반대에 관한 선언》, 1974년 11월 18일 발표》 [26] 가톨릭 교리에서의 십계명 중 4계명은 자녀가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뿐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올바로 돌볼 의무도 포함된다. [27] 가톨릭 교리에서의 6계명과 9계명은 인공 피임 등을 포함한 생명전달을 격리시키는 성적 관계도 죄악으로 규정한다. 가톨릭 항목 참조. [28] 단, 강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수태된 산모는 하느님의 섭리를 위반한 죄(강간은 악한 죄악이지 하느님의 뜻이 아니므로)와 6계명에는 저촉되지 않을 수 있겠다. [29] 기사를 보면, 외국에서는 낙태 지지 정치인에게 영성체를 금지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외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원칙적으로 한국이나 해외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공개 낙태 지지를 하는 순간 교회법상 '대죄' 상태가 되어 회개하지 않으면 영성체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성체를 받는다면 '모령성체'라는, 지옥에 가게 되는 중대한 죄를 또 짓게 된다. 죄의 종류는 다르나 동성애 행위와 동성결혼 공개 지지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30] 가톨릭 현행 교회법 915조는 " 파문당한 자와 완강하게 '중죄(중대한 죄, 대죄)'에 머물러 있는 자는 성체를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31] 병자성사, 혼인성사, 성품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32] 19. 이 선언은 영혼 주입의 순간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일치된 전통은 없고, 학자들의 입장도 여전히 나뉘어 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첫 순간에 시작된다고 하며, 다른 이들은 그것이 적어도 착상 전에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과학의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불멸하는 영혼의 존재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철학적 논란이며, 이 도덕적 선언은 거기에 의존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① 지연된 영혼 주입을 상정하더라도, 태아에게는 부모로부터 받은 본성을 완성하는 이 영혼을 준비하고 요청하는, 막 시작된 인간 생명(생물학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이 이미 존재한다. ② 영혼의 존재가 개연적이라는 것(그 반대가 결코 증명되지 않을 것)으로도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에게서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는 사람만이 아니라 이미 영혼을 부여받은 사람까지 죽일 위험에 빠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33] 20. 「호교론」, IX, 8, PL I, 371-372: CCL I, 103면, I, 31-36. [34] 물론 묵인에 가까운 용인이지 옹호가 아니다. 여기서의 묵인은 동성애에 대한 적극적 옹호가 아닌, 신자의 동성애에 대해 사제가 개인적인 차원 고해성사를 권면하거나 영성체 참여 제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이건 엄격히 말해 사제로서 직무유기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닌 행위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사제가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적인 사생활을 일일이 캐묻거나 체크할 수도 없는데다 성생활을 하고 있는 동성애자는 행위가 죄가 되어도 동성애 '성향'이 있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므로, 본인이 떳떳하다고 영성체를 하러 나왔는데 그 자리에서 '당신은 동성애자니까 영성체 하면 안 된다' 고 면박을 주며 성체분배를 거부하기도 곤란한 노릇이라 일선 본당에선 어쩔 수 없이 신자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흔히들 착각하지만, 천주교에서도 혼외출산과 동성 간 성행위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무서운 중죄로 보고 있다. 다만 실질적인 제재 수위에 차이가 있어서 동성애 행위와 혼전성교 등은 고해성사로 풀어야 할 중죄로 본다면, 낙태는 그 자체로 위에 교회법에 나와있듯 자동파문 대상이다. [35] 참고로 사형제에 대해서는, 2018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도로 교회법 개정이 이루어졌는데, 낙태와 마찬가지로 생명 존중의 원칙에 따라 '사형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라는, 생명 윤리를 더 엄격하게 따르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36] 여기는 아예 가톨릭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37] 세계 최초로 사형제를 완전 폐지했다. [38] 미국에서 강간에 의한 임신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수준의 상당히 보수적인 낙태 금지법이 제출된 적이 있는데, 거기서조차 "산모의 생명에 위험이 초래될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규정이 들어가 있었다. [39] 출처 : 인간 생명권에 대한 교황 비오 12세의 1951년 10월 29일 담화. 단 여기서도 유산한 태아의 영혼 구원을 위해 몸 밖으로 나오면 세례를 베풀라는 점을 강조했다. 유산된 태아 역시 인간 생명으로 보는 점을 확실히 한 것. [40] 가톨릭에서 교회법에 따라 낙태는 자동으로 파문되는 '대죄'로 여긴다. 파문에 대한 사면은 소속 교구의 교구장 주교로부터 받을 수 있으나, 한국 천주교에서는 낙태 여성에 대한 사면은 본당 주임 신부에게도 위임되어 있어왔다. 한국은 분류상 선교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전국사제공용권한에는 낙태에 대한 고해성사 권한이 이미 주어져 있다. 물론 이것은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권한이다. 성품성사 참조. [41] 몇몇 언론들에서 자비의 희년 교서 낙태죄 사면범위 확대의 시행목적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42] 자신의 자유의지로 혼전성교나 혼외성교라는 종교적 관점에서는 '문란한 자발적 성행위'로 임신한 경우라면 그 아기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라는 시각이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자신의 탓 없이 강제적으로( 강간) 이루어진 임신에 대해서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해당 여성과 그 가족의 입장에서 매우 가혹한 처사이다. [43] 교계라고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낙태 or 산모 혼자의 책임으로 접근하지 않고 낙태를 제외한 다른 현실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만하다. 과거 지방 행정력이 약했던 중세에는 교회나 성당이 지금의 고아원이나 학교의 역할을 대신한 것을 생각하면, 기독교 쪽에서 미혼모 가정이나 고아원에 대한 지원 등도 고려할 만하다. [44] 탈출기에서는 생명에 대해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해 사람을 고의로 죽이면 죽인 사람을 사형한다. [45] 그 예시로 "여자와 어린이"를 위해 예수님이 임하신 신약에서는 구약보다 남녀를 평등하게 본다고 할 수 있다. 저 구절이 있는 탈출기에서 서술된 구절 중 적지 않은 수가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수정되었다. [46] 예로, 아이의 유산을 직접 의도하지 않는 치료약 사용으로 불가피하게 태아가 유산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47] 2017년과 2019년에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이 시위에 참가하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영상으로 시위 지지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들에서도 매년 시위가 열린다. [48] 즉, 태아가 배아 상태에 있던지,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던지 모든 낙태는 죄라고 보는 것이다. [49] 개신교 진보파에서도 아이를 양육하는 데 특별한 문제가 있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 아닌데도 단지 아이를 원치 않아 낙태하는 것(낙태 자유주의)은 빼도 박도 못하는 큰 죄악으로 여긴다. 다시 말해서, 몇몇 '불가피한'(논란이 되는) 사유(대표적으로 강간ㆍ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유전병, 기형아 임신, 산모의 건강 사유)로 인한 경우에는 용인을 하되, '슈퍼에서 물건을 사듯이' 마음대로 하는 낙태 자유주의는 큰 죄악으로 본다는 것. [50]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 포함 [51] 예장합동이나 예장통합 등 대부분의 장로교 계통 [52] 다만 튀르키예 종무성은 대부분 학파에서 낙태가 하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53] 산스크리트어로는 파라지카(parajika)이다. [54] Ⅷ, 교화부 제5권. 밍군 사야도 지음, 최봉수 역주, 190~191쪽 축약 인용 [55] 참고로 아자타삿투는 나중에 자신의 악행을 후회하면서 데바닷타 무리들을 버리고 석가모니에게 찾아가 참회하고 석가모니의 교단을 후원했다. [56] 장수멸죄경의 산스크리트어본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고려시대에 이미 이 경전은 한국에 들어와 있었고 조선 태종 16년(1416년)에 간행한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이 대한민국 보물 제1092호로 지정되어 있어,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는 이미 해당 경전이 유포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7] 여담으로 장수멸죄경에는 이때 전도의 나이가 49살이었다고 적고 있다. [58] 임신 중일 때의 산모의 건강 및 심리 상태에 따라 태아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인식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59] 여담으로 불교에서 경전이 '문자'로 성문화된 것은 제3차 결집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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