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02:10:01

김유선(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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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선
출생 1988년 12월 1일 ([age(1988-12-01)]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화곡초 - 영남중 - 덕수정보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2007년 1차 지명 ( LG)
소속팀 LG 트윈스 (2007~2012)
파주 챌린저스 (2017)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LG 트윈스 시절
3. 방출 이후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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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G 트윈스의 前 투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덕수고등학교 시절에는 시속 140km 중후반대의 속구를 뿌리는 좋은 체격의 좌완 투수로 스카우트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덕수고등학교 시절 1, 2학년 합쳐서 6경기에 등판해 5⅔이닝을 투구했을 뿐이었으며, 3학년 때는 아예 마운드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지명타자로만 1경기에 출전했다.[1] 따라서 '부상을 당했다', '투구 밸런스가 붕괴되었다', '프로 구단과 사전 계약을 했다' 등 다양한 소문이 돌았다. 어쨌든 2006년은 김광현, 임태훈, 이용찬, 이원재 등 대어급 투수들이 많이 쏟아져나온 해였기 때문에 김유선의 실종이 큰 이슈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2007년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는 김유선을 1차 지명하여 무려 계약금 3억 5,000만 원을 주고 입단시켰다. 팬들 사이에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1년 간 한 경기도 등판하지 않은 투수를 거액의 계약금을 줘 가면서 입단시켰느냐는 회의적인 반응과, 그래도 빠른 공을 던지는 좌완투수라고 하니 기대는 해 볼 만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 엇갈렸다.

당시 LG의 선택에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건 사실이다. 당시 서울 지역 팜은 황폐 그 자체였다. 특히 1차 지명에서 선호되는 투수는 더욱 그러했는데, 이용찬과 임태훈을 제외하면 뽑을 인재가 없다는 것이 중론. 당시 2차 지명을 보면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데, 1라운드에는 서울 지역 선수가 없고, 2라운드 가서 두 명 나오는데 모두 야수, 3라운드에야 기껏 이승우 정도가 나오는 수준이었다.

1990년대까지 주사위 던지기로 서울권 1차지명 우선권을 경쟁하던 LG와 두산은[2] 2000년대 들어서는 주사위 던지기 대신 더 높은 계약금을 제시하여 계약에 먼저 성공한 팀이 해당 선수를 선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A팀이 한 선수와 계약에 성공한 뒤 먼저 발표하면 B팀이 이를 수용하는 방식인 셈. 그런데 하필 유난히 서울 팜이 흉작이던 이 해에 뜬금없이 1차지명이 2명으로 늘어났다.[3] 이러자 두산은 당시 그나마 서울지역 팜에서 뽑을 만한 선수는 장충고 이용찬과 서울고 임태훈 말고는 없을 거라는 판단을 하여 한 발 빠르게 움직였고, 일단 먼저 이용찬에게 4억 5000만원을, 임태훈에게도 4억 2000만원을 안기며 두 선수를 모두 확보했다.

LG 역시 이용찬과 임태훈을 1차 지명 후보로 두고 영입을 준비했으나, 두산이 두 투수 중에 하나를 뽑으면 나머지 한 명을 뽑으려고 손놓고 있다가 두산이 두 선수를 모두 선점하는 바람에 당했다. LG는 부랴부랴 남은 자원 중에 지명하려고 선수를 찾아보지만, 남아있는 투수 자원은 김유선과 김강률 정도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1차 지명을 하려는 그 타이밍에 고양시 출신의 김강률 경기고로 전학을 온 사실이 드러나 전학생 1차 지명 금지 조항에 걸리면서 LG가 손쓸 수 없게 됐다. LG 프런트는 망연자실.

그 때 LG 프런트에게 동아줄이 내려왔는데, 그게 메이저리거였던 봉중근이다.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온다고 하자 LG가 만세를 부르며 1차 지명에서 봉중근을 붙잡았고,[4] 그제서야 LG는 1차 지명에서 두산에 형편없이 밀린 상황을 그나마 만회할 수 있었다. 1차에서 거물을 붙잡고 나서 느슨해진 LG 프런트가 남은 자리에 지명한 것이 김유선이었다.

한편 전학생 규정에 발목잡혀 LG의 선택을 받지 못한 김강률은 그 해 두산 베어스의 2차 4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이러나저러나 LG는 1차 지명에서 하위 2차 지명급 선수들을 저울질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2.2. LG 트윈스 시절

김유선은 입단 후 1군은커녕 2군 경기조차 등판하지 못했다. 원인은 부상도 아니고 그냥 못 해서... 투수로서의 기량이 완전히 함량 미달이었다는 것. 제구, 구속 어느 것 하나 도저히 쓸 수 없는 수준이어서 당시 LG 트윈스의 2군 투수코치였던 신사 중의 신사 김용수한테서 “저 새끼 던지는거 보면 돌아 버릴 지경입니다”라는 명대사가 터졌다. 그래서 나온 별명이 구리구장 관리인[5].

여기에 입단 2년차인 2008년에는 경기에 등판하지 못하는 와중에 싸이월드에는 '놀러가고 싶다' 등의 글을 올렸다가 뚜껑 열린 LG 팬들과 충돌하기까지 했다. 일단 본인은 재빨리 사과했으나, 정작 친구들이 어그로를 끌어 갤진용 사건을 촉발시키는 바람에...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해 복무를 마치고 신고선수로 팀에 남아 있다가, 2012 시즌이 끝난 후 신고선수 계약이 해지되어 방출되었다.

3. 방출 이후

방출 후 LG 팬들은 이 선수의 지명에 대해 온갖 썰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프런트 내 고위직 자제설부터 해서 심지어 구씨 가의 숨겨진 자손이라는 드립까지 나왔을 지경. 당시 LG 트윈스 스카우트였던 이효봉은 김유선 지명 때문에, 스카우트에서 짤린 후 오랫동안 LG팬들에게 까이곤 한다.[6]

그러다 2013년 중순, 뜬금없이 광나루역 인근에 있는 최원호 피칭연구소를 찾았다는 글이 엠팍에 올라왔다. 이후 강창주와 함께 2013년 9월 kt wiz 공개 트라이아웃에 지원하였으나, 1차 트라이아웃에서 탈락하였다. 관련기사

2014년 1월 고양 원더스의 피칭 테스트를 봤으나 탈락하였다.

2014년 3월 일간스포츠의 베이스볼긱에 전 LG 투수 김유선 인터뷰가 올라왔다.

인터뷰에 따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블래스 신드롬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야구에서 멀어진 이후에야 그 두려움을 극복했고, 과거 LG 시절 인연이 있던 최원호의 조언을 받아 재기에 도전했던 듯하다. 150km/h를 던졌다는 증언이 나온 것으로 봐서는 제구가 완전히 무너졌던 듯하다. 또한 팔이 말리는 증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니 공을 제대로 던질 리가 없었다. 물론 의도하지 않게 숨긴 본인 책임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반짝 활약한 선수에 선뜻 지명한 스카우트들이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kt와 고양 원더스 테스트에서 연달아 탈락한 이후에는 야구를 완전히 관두고 조선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16년 12월 28일에 새로 창단된 독립구단 파주 챌린저스의 트라이아웃에 참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감옥님이 감독으로 있는 그 팀이다. 또한 LG 시절 팀 선배이자, LG에서 방출된 후, 훈련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최원호가 당시 그 팀에서 투수코치로 일하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듯이 전 소속팀이었던 LG의 유니폼을 입고 트라이아웃에 참여하였다.

2017년 1월 11일 파주 챌린저스 트라이아웃에 합격했는지 선수단 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조용히 퇴단했다.

4. 관련 문서



[1] 당시 동기생 최종인이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혼자 4승을 거두며 우승을 견인했다. 최종인은 최우수선수로 선정됐고 김유선과 같이 LG에 지명됐으나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방출당했다. [2] 이 당시까지만 해도 주사위 던지기는 매번 LG가 이기며 OB는 LG에게 임선동, 이상훈, 심재학, 이병규 등 대학리그 최대어들을 내주고 말았다. 1994년 신인지명의 경우 애초에 LG가 유지현, OB가 류택현으로 선택이 갈리면서 주사위 던지기를 시행하지 않았으나, 좌완투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지현 대신 선택한 류택현은 정작 OB에서는 부상 등으로 인해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다가 트레이드된 뒤에야 포텐이 터졌는데, 그 팀이 하필 LG 트윈스였다. 그나마 주사위 던지기가 폐지되기 직전인 1998년 간만에 주사위 던지기에서 이겨서 뽑은 김동주가 리그를 대표하는 우타자로 거듭난 후로는 두산은 LG보다 신인 지명에서 풍년을 이루게 된다. [3] 2007년 한 해만 1차지명이 2명으로 늘었다가 1년만에 바로 폐지됐다. 당시 지역 연고지 문제로 1차지명권이 박탈되어 1차지명을 행사하지 못하던 현대 유니콘스를 물먹일려는 의도였다는 썰도 있다. [4]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 구단을 거치지 않은 채 해외로 진출한 선수가 국내로 돌아온다고 할 경우 2년 유예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 조항은 1999년 이후에 해외로 떠난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조항이었다. 당연히 이 조항이 생기기 전인 1997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봉중근의 경우 이 조항과는 아무 상관 없었고 그래서 LG는 봉중근을 별 문제 없이 1차 지명할 수 있었다. [5] 당시 LG 2군 홈구장 및 클럽하우스 소재지가 구리였다. 다른 LG 및 GS 소속 구단과 함께 쓰다 LG 트윈스만 이천으로 이전. [6] 다만 김유선 지명은 유지홍 팀장의 독단이었고, 이효봉은 힘없는 말단이었다는 썰도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