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25 01:09:34

김교수

파일:태극무공훈장 약장.png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02E3A, #D02E3A 20%, #D02E3A 80%, #D02E3A); color: #fff"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태극무공훈장 부장.png
||<tablewidth=100%><table bgcolor=#fff,#191919><tablecolor=#373a3c,#ddd><width=20%> 1950
더글라스 맥아더
미 육군원수 ||<width=20%> 1951
이근석
공군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백선엽
육군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정일권
육군대장 ||<width=20%> 1951
심일
육군소령 ||
1951
이명수
육군일등상사
1951
김용식
육군일병
1951
홍재근
육군일병
1951
홍재근
육군일병
1951
김용배
육군준장
1951
박노규
육군준장
1951
김백일
육군중장
1951
김홍일
육군중장
1951
함준호
육군중장
1951 1953중복수훈
손원일
해군중장
1951
최용남
해병소장
1951
김성은
해병중장
1951 1952중복수훈
김정렬
공군중장
1952
이형근
육군대장
1951
권동찬
육군준장
1952
김종오
육군중장
1952 1953중복수훈
신현준
해병중장
1953
장덕창
공군중장
1953
최용덕
공군중장
1953
마크 클라크
미 육군대장
1953
김교수
육군대위
1953
김한준
육군대위
1953
김용배
육군대장
1953
민기식
육군대장
1953
임충식
육군대장
1953
한신
육군대장
1953
김점곤
육군소장
1953
이성가
육군소장
1953
이용문
육군소장
1953 1954중복수훈
임부택
육군소장
1953 1954중복수훈
강문봉
육군중장
1953
김동빈
육군중장
1953
김종갑
육군중장
1953
백인엽
육군중장
1953 1954중복수훈
송요찬
육군중장
1953
유재흥
육군중장
1953
최영희
육군중장
1953
함병선
육군중장
1953
최치환
총경
1954
김만술
육군대위
1954
허봉익
육군대위
1954
김경진
육군중령
1954
김웅수
육군소장
1954
송석하
육군소장
1954
엄홍섭
육군소장
1954
임선하
육군소장
1954
백재덕
육군이등상사
1954
최득수
육군이등상사
1954
김옥상
육군일병
1954
조재미
육군준장
1954
안낙규
육군중사
1954
박병권
육군중장
1954
이응준
육군중장
1954
이준식
육군중장
1954
장도영
육군중장
1954
최석
육군중장
1954
최창언
육군중장
1954
박옥규
해군중장
1954
김석범
해병중장
1955
김창룡
육군소장
1955
정긍모
해군중장
1956
서정학
이사관(치안국장)
1960
미군무명용사
-
1961
김금성
공군준장
1961
국군무명용사
-
1964
박정희
대통령
1966
이종세
육군상사
1966
강재구
육군소령
1966
이인호
해병소령
1967
송서규
육군대령
1967
채명신
육군중장
1967
지덕칠
해군중사
1967
정경진
해병대위
1967
신원배
해병소위
1968
최규식
경무관
1968
이익수
육군준장
1968
최범섭
육군중령
1970
이세호
육군중장
1972
이무표
육군대위
1972
임동춘
육군대위
1975
찰스 B. 스미스
미육군중령
1980
전두환(취소)
육군대장
2002
장철부
육군중령
2006
김영옥
미 육군대령
2011
조달진
육군소위
2015
윌리엄 스피크먼
영 육군병장
2021
에밀 카폰
미 육군대위
2023
랄프 퍼켓
미 육군대령
}}}}}}}}} ||

<colbgcolor=#000><colcolor=#fff> 김교수
金敎洙
출생 1923년 6월 19일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함흥시
사망 1953년 7월 14일
학력 함흥공과대학
육군종합학교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51년 ~ 1953년
최종 계급 중위 ( 대한민국 육군)[1]
주요 참전 금성 전투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교암산 전투 고지 방어전에서 6사단 1개 중대 병력을 이끌고 중공군 연대급 부대를 상대로 고지를 8시간 동안 사수하였고 전투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으며, 2016년 10월의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되었다.

2. 생애

1923년 6월 19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북한 치하의 2년동안 흥남공과대학에서 수학한 후 1950년 12월 흥남 철수작전 당시 월남하여 국군에 자원입대하였고 1951년 8월 18일에 육군종합학교 제 32기로 육군소위(군번 : 214398)로 임관하였다. 이후 6사단 2연대 소속의 소대장으로서 여러차례 고지 쟁탈전에 참전하여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으며, 중위로 진급한 후에는 육군 제 6사단 제 2연대 제 2대대 6중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휴전를 불과 2주 앞둔 1953년 7월 10일 금성 전투에서 중공군 최후의 대공세에 앞서 금성돌출부를 방어하기 위해 김교수와 6중대는 12일 교암산의 전초기지인 '가'고지에서 방어전을 펼쳤고 이는 중공군의 대공세를 가장 먼저 가장 오래 버텨하는 곳이였다. 다음날 김교수 중위와 6중대는13일 중공군 199사단 주력인 4개 대대 규모의 연대급 부대를 상대로 일개 중대의 규모로 대항하며 포병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동시에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격전을 펼쳤다.

결국 진지가 돌파되자 중공군의 진내사격 이후 유/무선 통신이 완전두절되었고, 진지 내 돌입한 중공군과 수류탄과 총검을 들고 백병전을 벌이며 항전했고 14일 새벽까지 8시간 동안 진지를 사수하며 혈전속에서 중공군 1200명을 섬멸했다.

압도적인 물량공세 속에서 김교수 대위는 총탄을 복부에 맞고 현장에서 전사하였고 김교수 대위가 이끄는 6중대는 6명을 제외 전원 전사하며 교암산을 상실하였지만, 이들의 희생 덕분에 6사단은 인접부대들을 화천 방향의 주저항선으로 안전하게 철수시키고 금성천 일대의 전선을 정비하여 반격하는 계기되었고 이로 인해 현재의 휴전선을 확보 할 수 있었다.

순국 이후 1953년 7월 14일 최후의 순간까지 고지를 사수한 김교수 중위의 공훈을 기려 1계급 특진 및 1953년 10월 13일, 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 132호)과 화랑무공훈장, 방위포장이 수여되었다.

3. 여담

6사단은 그를 부대혼 정신의 상징적 인물로 추앙하며, 현재까지 철원군 월정공원의 故 김교수 대위 추모비 앞에서 매년 사단장, 지역 단체장, 6사단 2연대 장병들이 김교수 대위와 당시 6중대 장병들의 공훈을 기리는 추모식을 실시하고 있다. 2024년 추모식


[1] 사후 대위로 1계급 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