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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남

파일:태극무공훈장 약장.png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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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극무공훈장 부장.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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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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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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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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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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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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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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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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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최용남
崔龍男
파일:1000129350.jpg
출생 1923년 10월 15일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구성군 사기면 향산동 구도심지
사망 1998년 11월 26일 (향년 78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학력 신의주동중학교
연희전문학교중퇴
본관 전주 최씨
계급 소장
복무 기간 1942~1945(일본군)
1946~1965(한국군)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2. 생애

1923년 10월 15일 평안북도 구성군 사기면 향산동 구도심지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평안남도 용강군 용강면 후산리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42년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진학하여 공부하다 같은 해인 1942년 일본군 학도병으로 입대했다.[1]

태평양 외딴 섬에 사병으로 배치되었다가 장교시험에 도전했고 육군 소위가 되었다. 보름 뒤 일제가 항복했다. 1945년 해방 이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에 복학 하려했으나 교장인  유억겸의 권유로  손원일을 만나 해방병단 소위가 되었다.

1946년 5월 1일 80048의 군번을 부여받고 해군 소위로 임관과 동시에 진해기지 교육대 교관에 보임되어 함정부 부관과 신병 교육대장 등을 역임하다. 6.25전쟁을 불과 두 달 앞둔 1950년 4월에 제2함대  백두산함 함장으로 부임하였다.[2] 1950년 6월 25일 동해안에 괴선박이 출현해 상부로부터 긴급출동 명령을 받아 백두산함을 타고 출항했고 8시쯤 수상한 물체를 확인하려 전조등을 켜 부산으로 침투하려던 600여명의 무장병력을 실은 1천 톤급 북한 무장 수송선이였고 지휘 혼선이 있었으나 이튿날에 교전허가를 받고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격침하였다. 이 전투가  대한해협 해전이다. 이 전공으로 태극무공훈장, 미국의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인천 상륙작전에도 참가해 충무무공훈장도 받았다. 하지만 전공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했고 해군 내에서 일부 시기하는 세력이 있었다. 당시 해방병단 동기이자 해병대 창설 멤버인 김성은 중령이 해병대에 올 것을 제안했고 1952년 육군보병학교에서 교육을 마친 후 해병으로 전과하였다.

해병대에만 복무하며 해병학교 교장, 해병대 사령부 작전과장, 참모부장, 군수부장을 역임하고 제1해병사단 참모장,부사단장을 지냈다. 1955년 11월 해병 준장으로 진급해 1959년 제1해병여단장. 1960년 진해기지 사령관. 1962년 7월 해병대 부사령관. 1963년 1월 해병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1964년 1월 제1해병사단 사단장으로 근무하다 1965년 5월 예편하였다.

1998년 11월 26일 별세하였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

3. 여담

  • 해군과 안좋게 헤어졌기 때문에 생전 대한해협 해전 행사 당시 참가했으나 상당히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1] 아버지가 조선일보 지부장이였고 독립운동을 돕고 있었다. 학도병 징집을 피하기 위해 최용남을 만주에 있는 큰누이집으로 숨겼으나 순사가 아버지를 체포, 고문끝에 만주까지 따라오자 더 이상 아버지를 괴롭히지 말라고 다짐받고 입대했다. [2] 백두산함은 당시 해군이 보유한 유일한 전투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