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14:21:30

강인규(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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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군사령부 부참모장 겸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강인규
Kang In-kyu
파일:Kang_Inkyu.jpg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91년 ~ 현재
학력 대천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 (외교안보학 / 석사[1])
임관 육군사관학교 (47기)
현재 계급 소장 (대한민국 육군)
현재 보직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참모장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주요 보직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육군포병학교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육군본부 비서실장
지상작전사령부 화력처장
제2포병여단
한미연합군사령부 지구사 화력처장
제3군단 화력참모
제3보병사단 포병연대
육군미사일사령부 작전처장
제3포병여단 922포병대대장
제2보병사단 포병연대 작전과장

1. 개요2. 생애3. 주요 직위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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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군인. 현재 계급은 소장이다.

2. 생애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으로 대천고등학교를 졸업 후 1987년에 육군사관학교 47기로 입교(독일어 전공)하여 1991년 졸업과 함께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직능은 작전이다.

2009년 8월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에서 외교안보를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3. 주요 직위

4. 여담

  •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인 김병주 의원(예비역 대장)과도 인연이 깊다. 김병주 의원이 3군단장이었을 적 군단 화력참모(대령)를 지냈다. 이후 강 장군은 김병주 의원이 여단장으로 지냈던 제2포병여단장이 되었다.
  • 훈련 및 작전간에는 포병 작전 및 화력운용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통해 상급부대 및 지휘관의 인정을 받은 능력자이기도 하다.
  • 포병 병과로는 드물게 이라크 파병[14]을 다녀온 경력이 있으나 그로 인해 포병 작전직능에서 필요한 보직을 제 때 이수하지 못해 육사 출신 + 포병 작전 직능 임에도 중령 진급을 1차에 하지 못해 제2보병사단 포병연대 작전과장[15]으로 근무중 2차로 진급하여 인근 제3포병여단 922포병대대장으로 부임하였다.
  • 포병연대 작전과장 임무수행간의 일화로 항시 과중한 업무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도 단 한 번도 부하들에게 화내거나 짜증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지휘통제실에서 야근으로 늘 고생하는 작전과 소속 작전장교, 연락장교, 정훈장교, 화학장교 등의 후배 장교들은 물론이고 작전상황병 병사들에게까지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상급자가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고 있고,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는구나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기에 부하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며, 그 당시(2008년경)의 군대에서는 찾아보기 드물 정도의 훌륭한 인성을 소유한 덕장이었다.
  • 2016년 3사단 포병연대장 시절 통일컵 풋살대회 우승상금을 인근 지역 6.25 전쟁 참전용사에게 전달했다.
  • 제2포병여단장 시절 대대 무사고 기념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병사들의 아쉬움 점들을 귀 담아 듣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소장진급 후 이례적으로 육본 인사참모부장을 역임하였지만 이후 사단장직은 받지 못하고 한직인 포병학교장을 지내다가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보임되었다.[16] 그리고 이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참모장으로 보직되었다. 사실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참모장 보직은 대장을 동기나 후임으로 둔 소장이 주로 가는 보직으로, 권태오 전인범 같은 기상천외한 예외를 제외하면 거의 무조건 군복무 마지막 보직이다. 강인규의 경우는, 동기인 손식이 대장에 오른 상태이다.
  • 학군사관 59기로 2021년 3월 소위 임관한 아들이 있다. 3공수특전여단 11대대에서 모범적으로 군생활을 하였다.


[1] 석사 학위 논문: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방안 연구 : 한·미간 군사지휘 및 협력체계를 중심으로 (2009. 08.) [2] 해당 직위 이전 이라크 파병을 다녀왔다. [3] 전임자 권영현, 후임자 김정혁 [4] 전임자 양태봉 [5] 남영신 총장 [6] 동기 중 선두주자인 양태봉, 김봉수, 곽종근 소장 등은 2019년 11월 진급. [7] 본래 소장 진급 후에는 1차 직위인 사단장에 보임되지만 이례적으로 2차 직위인 주요 참모부장을 맡았다. 인참부장은 육본 내에서 정보작전참모부장과 함께 군단장 진급 0순위로 꼽혀 통상 사단장을 마친 인사직능 소장의 2차 직위로 주로 보임된다. 다만 인사를 총괄하는 특성상 육군참모총장의 측근이 주로 보임되고, 강인규 장군은 남영신 총장의 측근이기에 발탁되었다. 하지만 남영신의 측근인 게 되려 독이 되어, 2022년 5월, 대통령이 윤석열로 바뀌는 정권교체가 되자 이 이후 보직이 진급이 막히는 병과학교장 중 하나인 육군포병학교장으로 가게 된다. [8] 포병병과에 작전직능인데 인사참모부장을 역임했다. [9] 전임자 여운태, 후임자 김권 [10] 전임자 방성대, 후임자 양태봉 [11] 전임자 양태봉 후임 서진하 [12] 전임자 최인수 [13] 다만 최근에는 그냥 타이밍이 맞는 인사직능 소장이 사단장을 마치고 오는 경우가 많다. 강인규 장군처럼 인사직능도 아니고 오직 총장 측근이라는 이유로 소장 진급과 함께 기용된 건 요즘엔 이례적이다. [14] 이라크 파병 당시 포병부대 자체가 파병되지 않았다. 즉, 포병장교가 이라크에 파병되었다는 것은 병과를 초월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15] 포병연대 작전과장은 중령(진)으로 보아도 무방한 요직중의 요직이기에 야전에서 진급을 앞둔 모든 포병병과 소령들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보직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야근과 격무의 연속이라 어마어마한 직무 스트레스를 받는 보직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당시 2사단 포병은 예비사단 소속으로 군단 전 작계지역을 커버하다보니 사단 직접지원, 일반지원에 추가적으로 군단 포병들과 함께 전방 사단 포병의 화력 증원 임무도 함께 수행하는 특성상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과중한 업무량이 작전과에 부여되었다. [16] 동기인 김봉수, 김규하 장군은 중장으로 1차 진급하였다. 공교롭게 두 장군 모두 후방 사단장직을 역임하였고 국방부 정책기획관, 합참 전략기획부장직을 역임하면서 커리어를 잘 쌓아 중장으로 진급했다. 참고로 중장 2차 진급자는 강호필, 손식 장군이다. 이후 손식 장군은 2023년 10월 대장 진급에 성공하여 지상작전사령관이 되었다. 그 결과 강 장군은 중장 진급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