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07:20:03

My Way(프랭크 시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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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작품명 <colcolor=#373a3c,#ddd> My Way
종류 싱글
아티스트 프랭크 시나트라
헌액 연도 2000년 }}}}}}}}}'''

<colbgcolor=#2182C4><colcolor=#fff> My Way
발매 1969년 3월 21일
녹음 1968년 12월 30일
장르 트래디셔널
길이 4:35
작사/작곡 클로드 프랑수아, 자크 르보, 폴 앵카
프로듀서 소니 버크
레이블 리프라이즈
B-사이드 Blue 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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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가사4. 커버5. 매체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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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랭크 시나트라 1969년에 발표한 그의 대표곡.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내용의 곡이다.

프랑스 샹송가수 클로드 프랑수아 Comme d'habitude(꼼다비뛰드, 여느 때처럼)[1] 번안곡이다.

2. 배경

발표 당시에는 빌보드 핫 100 20위권에 머물렀지만 그 후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한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고, 지금까지도 팝송계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꼽힌다.

성공한 영화배우이자 가수로 승승장구하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이 노래를 낼 1969년 당시에는 이혼과 영화 사업 실패[2] 및 아버지 앤서니 시나트라의 별세 등의 악재가 겹치는 사건들로 인해 연예계를 은퇴하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던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이미 노년을 바라보는 54세. (참고로 그는 1998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노래는 자크 르보(Jacques Revaux)와 질 티보(Gilles Thibault)가 만들고 클로드 프랑수아가 1967년에 발표한 Comme d'habitude란 제목의 프랑스 노래로 폴 앵카가 영어로 가사를 다시 썼다. 원래 가사는 일상적 생활로 인해 사랑이 죽은 결혼 생활의 끝을 맞이한 남자의 심경을 노래한 곡으로 폴의 가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폴은 1967년 프랑스 남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가 이 곡을 들었다. 그리고 듣자마자 파리로 날아가 저작권을 협의했다. 폴은 2007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 들었을 때 곡은 좋지 않았지만 뭔가 끌리는 게 있었다. 그래서 협상하러 갔고 따로 돈을 주지는 않고 저작권만 작곡가에게 모두 주었다.”

폴은 뉴욕으로 돌아와서 새벽 한 시에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뉴욕에는 비가 오고 있었는데 그 느낌으로 인해 영감을 받았다. 가사를 쓰면서 자신이 존경하는 “프랭크라면 어떻게 말할까?”를 염두에 두고 그가 자주 사용하는 말들을 떠올리며 썼다. 그리고 멜로디도 살짝 바꾸었다. 다 쓰고 나자 새벽 5시가 되었고 폴은 프랭크에게 전화를 걸어 프랭크만을 위한 특별한 곡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가사는 죽음을 앞 둔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고백을 담고 있다.

이 곡은 프랭크를 상징하는 곡이 되었지만 정작 프랭크는 이 곡을 지겨워했고 좋아하지 않았다. 프랭크의 딸 낸시 시나트라는 2000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빠는 이 곡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노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싫어했죠. 딱 달라붙어서 벗지 못하는 신발 같이 여겼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이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제3의 전성기를 열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오리지널 가수이던 클로드 프랑수아 프랑스에서 인기가수였지만, 어처구니없게도 1978년 3월 11일, 집에서 목욕하다가 깨진 전구를 엉겁결에 만지고 감전사로 39세 한창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데이비드 보위도 Comme d'habitude를 영어로 리메이크하려고 했는데 폴 앵카가 먼저 리메이크를 해 묻히고 말았다. 그 후 작업했던 버전을 다시 수정해서 만든 곡이 Life on Mars?.

3. 가사

And now the end is near
이제 끝이 다가오네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난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마주하고 있네
My friend, I'll say it clear
내 친구여, 분명히 말해둘게 있네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확신을 가지고 내 이야기를 풀어주겠네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난 충만한 인생을 살았고,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갈 수 있는 모든 길을 가보았다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I did it my way
난 나만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네

Regrets, I've had a few
후회라, 몇 번 있었지.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네
I did what I had to do
나는 내가 했어야 할 일을 했고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예외라곤 없이 끝까지 해나갔지
I planned each charted course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그려나갔고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 way
그 길을 신중히 걸어왔다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I did it my way
난 나만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네

Yes, there were times,
그래, 그럴 때도 있었지
I'm sure you knew
자네도 물론 알고 있을거야
When I bit off more than I could chew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있었을 때
But through it all when there was doubt
그 모든 일들을 겪으며,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I ate it up and spit it out
난 결국 해내었지
I faced it all
난 당당히 받아들였고
And I stood tall
모두 버텨냈지
And did it my way
그리고 나만의 길로 걸어갔다네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난 사랑도 했고, 웃고 울기도 했다네
I've had my fill, my share of losing
충만감도, 상실감도 겪었지
And now as tears subside
그런데 이제 눈물이 가라앉고 보니
I find it all so amusing
이 모든게 즐거웠다고 느껴지네
To think I did all that
내가 그런 일을 다 해냈다고 생각하니 말일세
And may I say,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Not in a shy way
부끄러운 점 하나 없이 말이네
"Oh no, oh no, not me
"오, 아니, 난 아니야
I did it my way"
난 나만의 길로 걸어왔다네"

For what is a man?
사나이란 무엇인가?
What has he got?
무엇이 사나이의 자격이겠는가?
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스스로 자신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네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느낀 바 말을 진실히 전하고,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비굴한 자처럼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네
The record shows,
지나온 날들이 말해주듯,
I took the blows
난 시련들을 버텨냈고
And did it my way
나는 나만의 길을 걸어냈네

Yes,
그래,
It was my way
내가 걸어왔던 나의 길이었네.

4. 커버

5. 매체

각종 영화에서 주제곡으로 쓰인다. 마이 웨이는 단지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경향이 있다. 워낙 비장한 노래고, 가사를 관객들이 대강 알고 있다.
  • 승리자('The Winners', 1972): 남아프리카공화국 영화로, 이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노래가 주제가[6]로 쓰였기에 마이 웨이라는 부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금은 듣보잡이 되었지만 1975년 광복절에 한국에 개봉해 그해 외화 2위 기록인 서울 35만 5천 관객을 기록하며 대박을 거뒀다. 참고로 그해의 외화 1위 흥행이 바로 49만 관객을 기록한 엑소시스트이고, 한국 영화 흥행 1위는 36만 관객을 기록한 영자의 전성시대. 더불어 1982년 1월 3일 KBS1 새해특선으로 밤 10시 30분 더빙되어 방영되었고 1988 서울 올림픽 특선으로 스포츠 영화가 특별 방영되거나 소개될 때 이 작품도 이 노래를 배경으로 소개된 바 있다. 줄거리는 아들들이 반항기에 접어들고 뭐 중후년으로 멀쩡히 살아있던 주인공이 가정불화와 여러 모로 시달리고 아들 몇몇은 사고로 잃는 불행이 닥쳐오자 젊은 시절에 하던 마라톤을 하는 줄거리. 막판에 그래도 다 완주하기 직전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나 기어코 결승점을 넘게 된다. 제법 흥행이 좋은지 1977년에 속편도 나왔지만 이건 정말 묻혀졌다. 감독인 에밀 노팔(1926~1986)이나 주연배우인 조 스튜어드슨(1927~1997)같은 배우들도 한국에선 이게 인지도가 있을 뿐이다. 2019년 독립영화관에서 44년만에 고화질 보정판을 재개봉했는데 프랭크 시내트라가 부른 마이 웨이로 엔딩 전에 나오던 장면에 수록했다.
  • : 마이크가 공연 때 부른 곡으로 나왔다.
  • 좋은 친구들: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로 시드 비셔스의 리메이크 버전이 나왔다. 영화가 다 끝난 후 뜬금없이 조 페시가 등장하여 관객에게 총을 쏘는 장면과 함께 나오는 곡인데, 이는 비셔스의 "My Way" 뮤직비디오에서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장면을 역으로 패러디한 것이다.
  • 친구: 주인공 준석(유오성)의 애창곡 18번이기도 하며, 작중 술집 노래방에서 직접 부르기도 했다.
  • "캐피탈리즘 호!" 하는 만화: 28화에서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으며 이 노래의 가사에 맞춰 진행된다. 28화만큼은 꼭 배경음악을 재생하고 감상할 것을 추천할 정도로 주인공이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에 어울린다.[7]
  • 킹스맨 2: 첫 트레일러에 삽입되었다.
  • 해피 피트: 주인공인 멈플 피트가 부르는 곡...은 아니고 사실 라몬이라는 펭귄(성우는 로빈 윌리엄스)이 멈블이 글로리아와 잘되는 걸 도와주기 위해서 립싱크를 해준다. 영화 내 등장 생물들 중 유일하게 스페인어로 부른다.
  • 환상의 커플: 감독판에서 김성민이 분한 빌리가 안나를 99일동안 기다리는 장면에서 나왔다.[8] 빌리의 상황과 역할을 맡은 배우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6. 기타

  • 영국의 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틀어놓는 곡인데, 가사 자체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자기 일생을 돌아보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소룡도 이 노래를 좋아하여 미리 써둔 유언장에 장례식에 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여 이 노래가 틀어진 적이 있다. 또한 축구 명감독 거스 히딩크의 18번곡이며 간혹 스포츠 스타의 은퇴식 때 이 노래를 틀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박철순 투수 은퇴식이다.
  • 임종 환자를 돕는 영국의 자선 단체인 마리 퀴리는 임종 환자를 잃은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죽음을 앞둔 임종 환자가 마지막 순간 가장 듣고 싶어하는 노래 1위가 이 노래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
  • 로스트아크의 총괄 디렉터인 금강선이 2021년 12월 24일 당시 진행한 깜짝 이벤트에서 좋아하는 노래라고 밝혔다. 그리고 2022년 5월 13일 진행 된 생방송에서 금강선 디렉터가 건강 문제로 인한 사임 소식을 전하게 되면서 이 노래가 다시 회자되었다.
  • 스펀지 서프라이즈 등에서 필리핀에서는 이 노래가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곡이라는 도시전설을 소개했는데, 의외로 영어권에서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영어 위키백과 문서 이 곡이 부르기 어려워 목소리가 높거나 낮아서 잘 부르지 못하면 시비로 이어지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많은 필리핀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조롱을 당하기 쉽다고 하는 데다가, 이곡의 가사[9]가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이 노래로 인해 살인사건이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필리핀 일부 노래방에서는 아예 이 곡을 삭제했다고 하지만 물론 도시전설답게 실제로 필리핀의 노래방에 가면 이 곡이 당연히 있다. 다만 곡의 인기에 비해선 다들 잘 안 부르긴 한다. 실제 필리핀 현지에서는 과거에 이 곡 덕분에 살인사건도 났다고 얘기한다. 물론 현재는 그런 거 없다.
  • 1989년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하는 대신 '동구권 국가들 자신의 길은 국가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며 My Way의 마지막 부분의 가사인 "... and (I) did it my way"를 인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근간의 정책에 대해 시나트라 독트린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고르바초프의 이 발언은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촉매제가 됐다.


[1] 1967년 영상 [2] 일본과 합작인 <승자는 없다>(None But the Brave, 1965)에서 주연과 감독을 맡았으나 이건 일본인 소설을 원작으로 도호에서 제작한 사실상 일본과 미국 합작 영화로 일본군이 억지로 전쟁으로 나와야 했다는 일본의 피해자 행세 같은 느낌을 많이 준다. 일본군이 비겁하지도 않고 무사도를 지키네 뭐네 한국이나 피해국에서 보면 껄끄러운 영화. 존 윌리엄스가 알려지지 않았을때, 음악을 맡고 시나트라 본인도 주연으로 나왔으나 흥행은 실패했으며 2차대전이 끝나고 겨우 20년이 지났으니 참전군인들이 40대로 많이 살아있던 미국에서도 반응도 차디찼다. 참전 미군을 겪어본 미국 중년들은 지옥같은 전선과 일본군의 가혹한 학살을 겪었는데 이 무슨 개소리냐고 분노했기에 시나트라는 이후로 다시는 영화감독을 하지 않았다. [3] 원곡이 프랑스 샹송이고, 차기 개최국은 미국이라는 점이 맞아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프랑스에서 열린 올림픽의 폐회식에서 부르기에 여러모로 적합한 곡이 되었다. [4] 시기상으로 볼 때 위 "캐피탈리즘 호!" 하는 만화를 카피한 듯 하다. [5] 한 가지 옥에 티라면,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 컷에서 병에 CH3COO...라 적혀 있다. 아마 '초산 테러 사건'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적은 듯. (질산은 HNO₃이라 적어야 맞는다) [6]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노래 버젼이 아니다. 다만 2019년 재개봉 당시에는 시내트라가 부른 노래가 수록되었다. [7] 주인공 루세트는 여자인데 가사에선 기본적으로 man, he, himself 등 남성형 (대)명사를 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색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문법적으로 성별이 불확실하거나 격식을 차리는 경우엔 여자에 대해서도 man, he, himself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없다. 또한 man에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8]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 패러디. [9] 특히 'When there was doubt…ate it up and spit it out. I did it my way' 부분이 사람들을 자극하기 쉬운 부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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