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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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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시즌별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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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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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시즌 2010 시즌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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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2010 시즌
감독 넬로 빙가다
주장 박용호
부주장 김진규
시즌 성적
파일:/image/139/2010/11/16/SK004_20101116_130201.jpg 우승
(2전 1승 1무 0패 4득점 3실점)
파일:/image/018/2010/02/26/1267149783.749436_PS10022600059.jpg 우승
(28전 20승 2무 6패 58득점 26실점)
파일:/image/216/2010/05/13/%25C6%25F7%25BD%25BA%25C4%25DA%25C4%25C5_2010_%25BF%25A5%25BA%25ED%25B7%25B3.jpg 우승
(7전 4승 3무 0패 17득점 6실점)
파일:FA컵(대한민국) 심볼.svg 16강 탈락
(2전 1무 1패 2득점 3실점)
최다 득점 데얀 다먀노비치 (19골)
최다 도움 데얀 다먀노비치 (10도움)

1. 선수단2. 리그&컵대회&FA컵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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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포스코컵 우승

파일:서울쏘나타우승.jpg


쏘나타 K리그 2010 챔피언십 우승

1. 선수단

FC 서울 2010 시즌 선수 명단
번호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포지션 국적 생년월일
1 김용대 Kim, Yong Dae G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9년 10월 11일
2 최효진 Choi, Hyo Ji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년 8월 18일
3 이규로 LEE Kyuro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년 8월 20일
4 윤홍창 Yoon, Si Ho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년 5월 12일
5 에스테베즈 Ricardo Felipe dos Santos Esteves MF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1985년 7월 13일
5 천제훈 Chun, Je Hu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년 7월 13일
6 김진규 Kim, Jin Kyu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년 2월 16일
7 김치우 Kim, Chi Woo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년 11월 11일
8 아디 Adilson Dos Santos DF 파일:브라질 국기.svg 1976년 5월 12일
9 정조국 JUNG Jogook FW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년 4월 23일
10 데얀 DEJAN DAMJANOVIC FW 파일:몬테네그로 국기.svg 1981년 7월 27일
11 방승환 Bang, Seung Hwan FW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년 2월 25일
13 현영민 HYUN Youngmi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9년 12월 25일
14 김한윤 KIM Hanyoo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4년 7월 11일
15 박용호(주장) Park Yong Ho FW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년 3월 25일
16 하대성 Ha, Daesung FW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년 3월 2일
17 이종민 LEE Jongmi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년 9월 1일
18 고요한 Go, Yo Ha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년 3월 10일
19 이정열 Lee, Jung Youl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년 8월 16일
20 한태유 Han, Tae You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년 3월 31일
21 여효진 YEO Hyonji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년 4월 25일
21 최원권 CHOI WONKWO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년 11월 8일
22 고명진 Koh, Myong Ji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년 1월 9일
25 이윤표 LEE Yunpyo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년 9월 4일
26 문기한 MOON Kihan FW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년 3월 17일
27 배해민 BAE Haemin FW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년 4월 25일
28 이승렬 LEE SEUNGYEOL FW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년 3월 6일
29 이현승 LEE Hyunseung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년 12월 14일
30 정다훤 JEONG Dahwo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년 12월 22일
31 강재욱 Kang, Jae Wook G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년 4월 5일
32 강정훈 Kang, Jung Hun FW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년 12월 16일
33 어경준 Ou, Kyoung Ju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년 12월 10일
33 최태욱 Choi, Tae Uk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년 3월 13일
34 조수혁 JO Suhuk G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년 3월 18일
35 최현태 Choi, Hyun Tae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년 9월 15일
36 김동우 KIM Dongwoo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년 2월 5일
37 최현빈 Choi, Hyun Bi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년 1월 16일
38 최종환 CHOI Jonghoa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년 8월 12일
39 김태환 KIM Taehwa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년 7월 24일
40 한일구 Han, Il Koo G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년 2월 18일
41 리마 Joao Maria Lima do Nascimento FW 파일:브라질 국기.svg 1982년 9월 4일
42 최원욱 Choi, Won Wook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년 4월 27일
43 이윤호 Lee, Yoon Ho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년 3월 20일
44 윤동민 YOON Dongmi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년 7월 24일
45 박영준 Park, Young Junl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년 5월 4일
46 이광진 Lee, Kwang Ji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년 7월 23일
47 정승용 Jung, Seung Yong FW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년 3월 25일
48 송승주 JANG HUNWOO D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3년 5월 26일
49 전호연 Jeon, Ho Yeo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년 5월 6일
50 정상호 Jung, Sang Ho FW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년 8월 17일
88 제파로프 Server Jeparov MF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1982년 10월 3일
임대 중인 선수 목록
포지션 이름 포지션 이름
MF 천제훈 광주 상무 MF 어경준 대전 시티즌
DF 여효진 도치기 MF 안상현 경남 FC
FW 김현성 대구 FC DF 최원권 광주 상무

2. 리그&컵대회&FA컵

겨울 이적시장 동안 귀네슈 감독을 비롯해 기성용, 김호준, 김승용, 이상협 등 많은 선수들을 떠나보내고 넬루 빙가다 감독을 시작으로 김용대, 최효진, 방승환, 하대성, 에스테베즈 등을 영입해 선수진을 대대적으로 탈바꿈했다.

팀을 리빌딩 하면서 귀네슈 시절에 쌓아왔던 강한 모습이 지워질거라 예상됐지만 대전과의 개막전에서 5-2 대승, 눈폭탄 세례의 강원과의 경기에서 3-0 대승를 거두면서 그런 걱정을 단번에 잠재웠다.

3월 14일 벌어진 전북 현대와의 홈 개막전에서 녹색 의상을 입은 티아라에게 거하게 엿을 먹고[1][2] 겨울동안 서울에서 전북으로 이적한 심우연에게 한 골을 얻어맞아 패배했다. 그리고 이 날부터 구단에서 홈경기 때 경기장 동쪽에 V맨, V걸스라는 응원단을 조직해 선보이기 시작했다.

포항 스틸러스와의 5라운드 경기에서는 후보 선수들 위주인 상대팀을 맞아 1대 0으로 신승했다.[3]

4월 4일 벌어진 슈퍼매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6라운드 경기에서는 데얀의 맹활약에 힘입어 3-1 대승을 거뒀다.[4][5] 서울은 2007년 슈퍼매치에서 기록한 최다관중 기록을 넘을 경우 미스터 도넛 무료 교환권을 나눠준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아쉽게도 역대 2위인(당시 기준. 현재는 3위) 48,558명이 입장했다. 하지만 홈 경기 승리에 고무된 구단은 '다음에 2,000명 마저 채워주세요.'라면서 그냥 나눠주었다. FC 서울 대인배 오오

참고로 이날 기록한 48,558명의 관중은 유럽에서도 맨유- 리버풀이나 엘 클라시코 같은 유명 더비가 아니면 보기 힘든 숫자다. 더군다나 볼게 축구밖에 없는 유럽과는 달리 야구라는 최고 인기 스포츠를 필두로 스포츠 지도가 분산되어 있고 스포츠 외에도 여가수단이 무척이나 다양한 한국에서 나온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다.

4월 11일에는 전 수석코치인 이영진 감독이 이끄는 대구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3-2 펠레 스코어 승리를 거뒀다. 아쉬운 점이라면 개막 후 6경기째 스타팅 멤버와 교체 멤버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 구단이 정책적으로 10년 넘게 공들인 시스템과 각급 대표팀을 거쳐 육성된 유망주들이 출장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6]

4월 18일. 1위 울산과의 8라운드 홈경기에서 데얀, 하대성, 아디의 릴레이 골로 3대 0 완승을 거두고 리그 선두로 올라섰다. 재미있는 점은 지난 슈퍼매치 때 3골을 내준 이운재를 두둔한 김영광이 똑같이 3골을 얻어 맞은 것.국가대표 골키퍼의 무덤

4월 26일.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하대성과 김진규가 퇴장당하며 9 vs 11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0-1로 패했다. 선수들의 멘탈이 여지없이 드러난 경기였는데 김진규는 심판을 모욕하는 어처구니 없는 퇴장으로 패배에 쐐기를 박았다. 빙가다 감독은 선수단을 추스르는 한편 퇴장에 대해서는 팀 내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밝혔고 심판 판정에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5월 2일 벌어진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마저 0-3으로 관광갔다. 에이스 데얀의 부상 이후 계속 무기력한 모습. 게다가 이날도 한태유가 퇴장당하며 경기를 어렵게 만들어 멘탈이 팀의 상승세를 막고있음을 보여주었다.

파일:프로스포츠최다관중.jpg
대망의 5월 5일.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역대 최다 관중기록인 60,747명[7]이 입장한 성남 일화와의 홈경기에서 돌아온 데얀의 맹활약(3골 1도움)에 힘입어 4-0 대승을 거두고 같은 날 패배를 기록한 경남, 전북을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데얀은 한 시즌에 득점 해트트릭과 도움 해트트릭을 모두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고 FC 서울은 한국 프로 스포츠 역대 최다 관중동원 기록 1~5위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8] 특히 이번 6만 신기록은 K리그 비인기 구단중 하나인 성남과의 대결에서 기록한 관중 숫자라서 더욱 값진 결과다.[9]

하지만 5월 9일 문학에서 열린 인천 원정에서 부실한 정신력으로 의욕없는 경기를 펼치다 샤다라빠의 저주에 희생되어 후반 41분 이세주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했다. 원정 경기에서 시원찮은 경기력으로 맥없이 진 경기가 벌써 3번째이다.

5월 26일 다시 열린 성남과의 컵대회 홈경기에서는 서울시립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입장 이벤트를 열었다. 경기는 2대 0으로 승리.

6월 6일 제주와의 컵대회 홈경기에서는 5대 1 대승을 거두어 월드컵 휴식기 전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월드컵 기간동안 전 선수였던 기성용, 이청용, 박주영, 현 선수인 이승렬이 남아공에서 활약한 소식을 구단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서울팬들의 자부심을 드높여주었다.

7월 14일에 월드컵 직후 첫 경기인 대구와의 컵대회 홈경기에서는 전반 하대성, 아디의 골로 여유있게 승리하나 했더니 후반전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2대 2로 무승부. 승부차기까서 겨우 승리하였다. 월드컵 멤버였던 이승렬의 활약이 기대되었는데 시차적응을 못해서인지 월드컵 이전 종횡무진 활약하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정조국도 연장밖에 뛰지 않았으면서 체력이 방전되는 등 아리송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3일 뒤에 빗속에서 열린 7월 17일 전남 전에서는 반코트 게임에 가까운 전개를 보여주며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다가 후반 20분에 터진 고요한의 프로무대 통산 1호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하며 후반기 역시 산뜻하게 나아가고 있다.[10]

7월 22일 열린 FA컵 16강전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만나 1-2로 패함으로써 FA컵에서 탈락했다. 08년 귀네슈 시절부터 유독 부산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징크스가 이어지고 있다.

7월 24일 광주와의 경기에서 2-0으로 무난한 승리를 거두었다. 상위권 팀들이 거의 같은 승점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황에서 간격을 벌리는 소중한 승점이었다.

7월 26일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분요드코르에서 2008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제파로프를, 7월 27일 전북 현대 모터스의 윙 최태욱을, 7월 28일 브라질 출신 리마를 영입했다. 이로써 아시아쿼터 포함 용병 4자리를 처음으로 꽉 채우게 됐으며 늘 제3의 용병에서 실패하던 징크스, 일명 히칼도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11]

전북의 판타스틱4 중 한명인 최태욱은 이청용의 이적 이후 계속해서 채우지 못하고 있던 서울의 윙퍼즐을 완성시킬 회심의 영입으로 여겨진다. 한편으로 선수단의 과포화로 정리의 필요성이 있어, 과연 어떤 선수가 나갈지도 관심거리다.

7월 28일 수원과의 컵대회 4강전에서 각각 2골을 넣은 데얀과 이승렬의 활약에 힘입어 4-2 승리를 거뒀다. 서울은 후반 12분 데얀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후반 17분 교체 투입된 김진규의 자책골로 동점을 내줬고 후반 27분 염기훈에게 역전골로 허용했다. 패색이 짙어진 서울은 총력전을 펼쳤고 후반 38분 이승렬이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양팀은 연장전에 돌입했다. 서울은 연장 후반 5분 제파로프의 패스를 받은 데얀이 결승골을 성공시켰고 연장 후반 10분 이승렬이 쐐기골을 기록하며 기나긴 승부를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 이 승리로 컵대회 결승에 진출하였다.

7월 31일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선두 자리를 놓고 일전을 벌여 2대 0으로 승리하고 1위로 올라섰다. 전반전 중반까지 제주의 거센 공격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제주의 마무리 부족으로 위기를 넘겼고 전반 15분, 제파로프가 제주 진영 오른쪽에서 올려준 패스를 아크 서클 중앙에 있던 데얀이 받아 깔끔한 볼터치후 마무리하며 1대 0으로 앞서갔다. 이후 제주는 후반 중반까지 적극적인 공세를 취했고 서울은 김한윤을 중심으로한 협업 수비로 미들에서부터 상대 공격을 저지했다. 시간이 흘러 제주의 기세가 둔화된 후반 37분, 제파로프의 패스를 받은 최효진이 문전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데얀에 가법게 골문에 집어넣으면서 승부에 쇄기를 박았다. 신입 멤버인 제파로프와 최태욱은 가벼운 몸놀림을 보이며 공격을 이끌어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러나 8월 8일 전북 현대와 벌인 중요한 일전에서 0대 1로 석패했다. 중원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서울은 2명이 퇴장당해 11-9로 싸워야 했는데 제파로프는 다소 논란있는 레드 카드를 받았으며 김한윤은 성질을 부리다 불필요한 카드를 받아 퇴장당하며 팀의 추격 의지를 꺾어버리는 병크를 저질렀다. 빙가다 감독은 판정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살짝 불만을 표시했는데 안티들이 이 때다 하고 달려들어 물고늘어졌다. 매번 심판 판정덕을 보면서 불평만 한다면서. 빙가다 감독의 불만표시가 그리 강하지 않았고 조광래 감독을 필두로 한 국내파 지도자들이 시즌 내내 돌아가며 심판을 깠던 사실은 무시했다.

8월 21일에 벌인 강원과의 홈경기에서는 결승골을 기록한 정조국과 30-30클럽에 가입한 최태욱의 활약을 앞세워 2-1로 승리했다. 홈경기 11연승 째였다. 하지만 팬들과 선수들의 관심은 강원 전 승리보다 전북과의 컵대회 결승전에 쏠려있었다.지못미 강원

8월 25일. 대망의 컵대회 결승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를 맞아 3대 0으로 승리하며 4년만의 우승이자 클럽 창단후 2번째 리그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거두었다. 올시즌 두번 상대해 모두 석패했던 전북이었기에 우려를 표하는 팬들도 있었으나 데얀의 선제 결승골을 시작으로 거세게 몰아붙인 끝에 정조국, 이승렬의 쇄기골로 3골차 완승을 거두었다.

8월 28일, K리그 수원 원정 경기에서는 4대 2로 패배했다. 전반 김진규의 자책골과 이상호의 골로 전반을 2대 0으로 끌려갔지만 후반에 하대성이 유도한 페널티킥을 현영민이 침착하게 집어넣고 이어서 데얀이 동점골을 넣으며 치열하게 따라붙었지만 후반 막바지에 이상호와 염기훈의 패스를 받은 다카하라에게 연속 골을 내주었다. 물론 후반전에 선수들 간에 마찰이 좀 있었고 빙가다 감독이 퇴장당했지만 슈퍼매치에 걸맞은 훌륭한 명승부였다. 선수들의 플레이도 그렇고 빅버드를 가득 메운 수원과 서울 팬들도 말이다. 실제로 K리그를 낮아봐 본 J리그 팬들이 이 경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카더라.

9월 1일, 포항과의 원정 경기에선 빙가다 감독이 벤치에 앉지 못하고 데얀도 출전하지 못하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1골 2도움을 기록한 최태욱의 맹활약을 앞세워 4대 1 대승을 거뒀다. 강팀에게는 연패가 없음을 보여준 경기였다.

9월 4일, 광주와의 홈경기에서 3대 0 완승을 거두며 홈경기 12연승을 이어갔다. 전반 내내 주도권을 잡으면서도 골을 넣지 못해 애를 먹었으나 후반 중반 터진 김진규의 대포알같은 프리킥 골을 시작으로 데얀과 최효진이 골을 터뜨리며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로써 홈 12연승 째.

9월 11일에 열린 대구와의 경기에서는 전반전을 무득점으로 끝냈지만 후반전에 최태욱의 미친 측면돌파 골을 시작으로 이승렬, 정조국, 데얀의 릴레이 골로 4대 0 대승을 거두었다. 2010년 대구 전을 3전승으로 마무리하고 홈경기도 13연승 째 이어갔다.

10월 3일 개천절에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1골 1도움을 기록한 제파로프의 활약을 앞세워 2-0으로 승리하며 허정무에게 부임 첫 패배를 안겨주었다. 홈경기 14연승 째다.

10월 9일 한글날에 열린 경남 FC와의 경기에서는 경기초반 서상민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위기에 몰렸으나 후반 31분부터 39분까지 8분 동안 내리 3골을 집어넣으며 후반 43분 한골을 따라잡는데 그친 경남을 3-2로 따돌리며 홈에서 15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다. 후반 교체 투입되어 2골 1도움의 맹활약을 펼친 정조국이 승리의 일등공신. 중요한 경기에서 어렵게 시작하는 것은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전시키는 저력은 지난해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한편 이 날 경기 초반 수비의 핵 아디가 공격가담중 상대 골키퍼 김병지와 부딪쳐 광대뼈에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김병지로서는 축구 인생 최초로 입힌 부상이었다. 박용호에 이어 아디까지 부상당함으로써 시즌 막판 수비진에 비상이 걸렸다.

제주와의 선두다툼에 중요한 분수령이었던 26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줬으나 하대성과 최태욱의 연속골로 연전승을 일궈내며 전날 전북과 무승부를 기록한 선두 제주와의 승점 차이를 2점 차이로 좁혔다. 제주보다 한 경기 덜 치른 상황이라 시즌 막판에 있을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만 잡아낸다면 정규리그 우승도 가능한 상황.

선두자리를 놓고 벌어진 제주와의 결전에서 최태욱의 골로 1-0으로 앞서갔으나 후반 35분 구자철의 패스를 받은 네코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했다. 제주보다 한 경기를 더 남겨둔 상황에서 승점차는 2점차.

10월 31일. 몇년간 중요한 경기때마다 발목을 잡아온 난적 부산과의 경기에선 3-1로 승리를 거뒀다. 정조국, 데얀의 골로 순조롭게 앞서가다 전반 종료직전 만회골을 허용했다. 이후 한동안 부산의 경기력에 고전했으나 교체 투입된 최태욱의 쐐기골로 승부를 확정지었다. 하대성과 김한윤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했고 발이 느린 주전 센터백 김진규가 부진을 면치 못했지만 신예 김동우와 최현태가 좋은 모습을 보이며 공백을 훌륭하게 메웠다.

이날의 승리로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리그 2위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이 확정되었으며 같은날 대구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둔 제주와 승점 2점차를 유지했다. 제주가 인천과의 홈 경기만 남겨둔 상황에서 2경기(성남 원정, 대전 홈)를 남겨뒀다. 일단 다음 라운드 성남과의 원정경기가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그리고 11월 3일, 성남과의 운명의 일전이 벌어졌다.

서울은 데얀-정조국 투톱, 제파로프와 하대성이 중원을 지키고 이승렬과 최태욱이 양 측면, 현영민, 김진규, 김동우, 최효진의 포백에 김용대가 골문을 지켰는데 하대성을 제외하면 미드필더 전원을 공격자원, 측면자원으로 채우는 극단적인 공격전술 이었다.

전반 초반부터 맹렬하게 밀어붙인 끝에 전반 11분 현영민의 크로스를 받은 이승렬이 선제골을 터뜨렸다. 성남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 5분만에 조동건에게 동점골을 내줬지만 전반 27분, 최태욱의 패스를 받은 분유캄프 정조국이 역전골을 터뜨리며 다시 앞서나갔다. 이후 후반 중반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졌고 이후 데얀과 정조국을 빼고 김한윤과 최현태를 투입해 성남의 맹공을 무사히 막아내며 천금같은 승리를 챙겼다.

이로써 19승 2무 6패. 정규리그 한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제주를 1점차로 따돌리고 리그 1위를 탈환했다.

모든 것을 결정할 다음 라운드는 수원에게 6강 탈락의 고춧가루를 뿌린 대전과의 일전이다.

11월 7일, 대전과의 홈경기에서 경기 시작 3분만에 터진 정조국의 선제골로 순조롭게 앞서갔으나 후반 22분 박주현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이후 한동안 대전의 육탄방어에 막히며 무승부로 끝나는가 싶었으나 후반 42분. 정조국의 패스를 받은 김치우가 아크 정면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멋진 결승골을 작렬시키며 인천과 무승부를 기록한 제주를 승점 3점차로 제치고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정규리그 최종 성적은 20승 2무 6패로 승점 62점 58득점(최다득점 1위) 26실점(최소실점 공동2위)이며 대전과의 경기에 입장한 40,982명을 합해 정규리그 홈 14경기서 총 43만1,882명의 팬들을 불러모아 역대 정규리그 최다 관중을 달성함과 동시에 경기당 평균 관중 30,849명을 기록했다. 평관 3만은 K리그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컵대회 포함 18경기에서 489,638명을 끌어모으며 수원이 가지고 있던(08시즌 21경기에서 469,917명) 역대 한 시즌 최다관중기록도 경신했다.

12월 1일 제주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전후반 제주에게 연달아 골을 허용하며 위기에 몰렸으나 빙가다 감독의 빠른 수습으로 반전에 성공, 데얀의 추격골에 이어 김치우가 경기종료 직전 추가시간에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2-2 무승부를 이끌어 냈다. 이로써 챔피언의 자리는 서울에서 가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챔피언 결정전 2차전. 6만 상암구장을 가득 채워준 홈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자신있게 몰아부쳤으나 제주의 투혼도 매서웠다. 전반 10분 데얀의 골이 애매한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고 좋은 기회를 잃어버렸고 전반 25분 산토스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전반 28분 정조국에게 마철준에게 얻어낸 페널티 킥[12]을 직접 성공시켜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후반전. 서울에는 아디가 있었다.

후반 27분. 코너킥 찬스에서 제파로프가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려줬고 1차전에 이어 부상투혼을 발휘한 아디가 멋진 헤딩골로 연결해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후 양팀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나 더 이상의 골은 터지지 않았고 서울은 창단후 네번째 우승이자 더블(리그+컵대회)의 감격을 누렸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수는 무려 56,759명. 4월 성남전에 이어 역대 K리그를 통틀어 두 번째로 많은 팬들이 입장한 기록이자 역대 챔피언결정전 최다 관중 기록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시즌 누적 관중 50만을 돌파하며 K리그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올 시즌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방문한 팬들의 수는 54만6,397명. 1983년 K리그 출범 이후 한 시즌에 50만명이 넘는 관중수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 기타

시즌 종료후 팀 운영 및 연봉에서 마찰을 빚은 빙가다 감독과 결별하고 새 감독찾기에 나섰다. 시즌 중 1위를 달리는 팀에게 소통 부재라는 둥 서울의 플레이가 아니라는 둥 고위직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둥 흘러나오던 괴기사들이 사실이 되었다.
또한 핵심 스트라이커 정조국이 프랑스 리그1 옥세르로 이적하게 되어 공격수 보강이 절실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상태. 물론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가 텅텅빈 탓도 있겠지만 지난해 겨울 이적시장을 주도했던 팀 치고는 너무 조용해서 돈 떨어진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아무튼 경기당 2골 이상씩 넣으며 첫해 더블을 달성한 빙가다의 후임인 만큼 굉장한 네임밸류를 가진 외국인 감독이 예상되었다. 축구팬들 사이에선 빙가다 감독 후임으로 온갖 설레발추측과 하마평이 무성했으나, 결국 서울이 뽑아든 카드는...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 12월 28일 발표된 신임감독은 다름아닌 K리그 경력이 없고 J2리그에서 오이타 감독으로 15위를 했던 서울대학교국가대표 출신 행정가 황보관 이었다...

팬들은 쉽게 이기는게 재미없어서 어렵게 이기는 걸 택했다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으며 다른 팀 팬들의 반응은 ㅋㅋㅋ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준우승을 달성한 감독을 이건 우리의 플레이가 아니라며 해고했다 시궁창에 처박힌 훈련장도 같이 쓰는 옆집 모 야구팀이 생각나는 상황.

그러나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오히려 서울 구단의 야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즉, 오랜 염원이었던 우승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여유가 생긴 지금, 똑똑한 행정가를 영입해 명문구단으로서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의 일보를 내딛었다고도 볼 수도 있으며, 구단 쪽에서 내놓는 언론 기사들도 대충 그런 뉘앙스다. 근데 그럴 거면 프런트로 영입했어야지.재료가 엄청 좋았는데 그렇게까지 막장칠 줄 알았나.[13]

박주영.이청용.기성용 등을 키워내며 나름대로 성공적인 유망주 육성 시스템을 자랑하는 서울로서는, 유망주보다 검증받은 중고참을 선호하는 빙가다 감독의 기용 방식에 불만을 가진 듯 하다. (근데 1년 계약 해놓고 유망주 키워달라는 게 말이 되나.) 아무튼 기존 멤버들 상당수가 팀을 옮기면서 다시 한번 유망주의 성장을 기대해야 할 시점을 맞이했는데, 때마침 우승이란 대의명분마저 달성한 만큼 팀 리빌딩에 착수한 것 같다.

이후 핵심 센터백 김진규를 중국으로 떠나보냈지만 리그 정상급 레프트 백인 김동진을 데려오고 제파로프의 완전 이적에 협의했으며 성남을 아시아 챔피언으로 이끈 '몰느님' 몰리나를 영입함으로써 2011년에도 강력한 스쿼드를 유지하게 되었다.

[1] 알다시피 녹색은 전북의 색깔이다(...). 당연히 초청한 FC 서울에 맞는 빨간 혹은 검은 옷을 입는게 예의다. [2] 경기가 끝나고 며칠 뒤에 티아라 멤버들은 FC 서울 측에 사과하면서 가능하면 FC 서울을 돕고 싶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그냥 빈말로 끝났다. 그러나 이는 티아라 멤버들보단 소속사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시 티아라의 일정은 심각할 정도로 바빴는데, 그 상황에서 멤버들이 따로 옷을 챙겨오기는 힘들고, 회사 측에서 의상을, 하다못해 유니폼이라도 급하게 사서 따로 준비해줬어야 하는게 맞기 때문이다. [3] 심지어 결승골도 굴절되어 어거지로 들어간골(...) 그래도 덕분에 포항을 상대로 절대적 우위를 보이는 징크스를 계속 이어갔다 [4] 득점자는 에스테베즈, 정조국, 최효진. 데얀은 그 득점 3개를 모두 어시스트했다. [5] 참고로 서울의 3골은 10분동안에 터졌는데 짧은시간에 무너진 이운재 골키퍼에게 부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결국 2달 뒤에 있었던 월드컵에서도 골키퍼 주전자리는 정성룡에게 넘어갔다. [6] 빙가다 감독은 이전 다른 리그에 있을 때도 선수 기용폭이 좁고 쓰던 선수만 계속 쓴다는 비판을 받았다. [7] 그해 10월, F1 KOREA GP 결승전에 8만여명이 오긴 했지만 이건 국내 프로 스포츠가 아니라 국제대회이기에 얘기가 다르다. 참고로 A매치 축구 최다 관중기록은 2002 월드컵 당시 4강전 독일과 경기에서 72,490명 [8] 경기 전 서울은 55,555명이 넘으면 무료 도넛 시식권을 제공한다는 공략을 내걸었고 멋지게 성공했다. [9] 그만큼 홈팀 관중들이 많이 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날 경기에서 서울 홈 관중들은 원정팀 응원석인 S석까지 차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10] 정작 고요한 본인은 슈팅후 수비수와의 충돌로 인해 세레머니도 못했다(...) [11] 2013년 현재의 관점으로 보자면 극복한 것은 맞으나... 결국 몰리나와의 공존에 실패 해서 팔아버렸다는게 함정 뭐 결국은 몰리나가 세번째 외국인 선수자리를 차지하고 아시아쿼터로 에스쿠데로를 영입해서 성공적이었으니 저주가 풀리긴 풀렸다 [12] 데얀의 오프사이드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논란이 좀 있었다. 하필 이날 주심이 고금복과 함께 답 안 나오는 걸로 유명한 최광보라... [13] 추측하자면 감독까지 먹물과 외국물을 먹은 인사를 등용해 외국 스타일을 더욱 도입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즉 프런트는 행정을 발달시켜 유스 농장에서 이청용이 계속 튀어나오는 그런 선진 축구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