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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월드 항공 소속의 2707-300 상상도. 애프터버너가 켜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Boeing 2707
1. 개요
미국의 보잉에서 설계한 초음속 여객기 프로젝트이다. 당시 콩코드 여객기의 등장으로 인해 미국은 라이벌 의식과, 또 자국의 항공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전폭적으로 지지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무산되었다.2. 설계
2.1. 초음속 수송기 계획 (SST)
보잉에서 만든 2707 소개 영상. 1967년에 제작되었기에 당시 컴퓨터 기술의 부재로 일일이 그림을 그린 점이 인상적이다.[1]
1950년대부터 미국은 초음속 여객기에 관심이 많았다. 보잉은 1950년대 초부터 소규모 연구를 진행하였고, 미국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며 '국산 초음속 수송기 계획(SST 계획)'을 추진했지만, 초음속 여객기는 회의적이란 반응이 우세했다. 초음속 비행에는 많은 연료가 소모되는데, 여객 산업에 있어서 그것은 효율적인 수단이 아니었다. 특히 존 F. 케네디의 자문, 포드 모터 컴퍼니의 경영가 등 화려한 커리어의 로버트 맥나마라는 이 점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차라리 군사적으로 초음속 폭격기가 쓸모있다고 전망되었고, 미국에서는 XB-70이라는 마하 3 수준의 초음속 폭격기를 개발하고 있었으며 결국 1964년에 마하 2.5 정도의 시제기가 나왔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서 상황은 바뀐다. 1962년 1월에 소련에서는 초음속 여객기의 컨셉에 관해 발표하고, 1963년부터 투폴레프 설계국에서 Tu-144 개발에 들어갔다. 한편 유럽에서 1962년 11월에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야망에 불타는 샤를 드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개발되고 있던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 개발계획이 대외적으로 발표되었고 이후 소련도 비슷한 것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 서방 세계에 알려진다.
결국 초음속 여객기가 일종의 지역/체제 경쟁의 성격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존 F. 케네디 정부도 미국의 발전된 항공기술을 과시하고, 콩코드에 의해 초음속 여객기 시장에서 미국이 밀릴 것을 우려하는 여론을 의식하여 미국 연방항공청(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을 통해 1963년 6월에 전국 초음속 수송(National Supersonic Transport)이라는 사업을 발표하고 SST 계획을 다시 궤도에 올린다. 1960년에 국방장관이 되어 있던 로버트 맥나마라도 이 사업을 막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SST 계획은 당대에는 우주 경쟁 다음으로 큰 사업이었을 정도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였다. 무려 개발비의 75%를 정부가 부담하기로 했다. 그만큼 최소 요구도 원대했는데, 무조건 콩코드보다 더 크고 더 빠른 기체를 만들라고 했다. 게다가 초음속 돌파 시의 강력한 열을 견뎌야 해서 기체 외부를 티타늄 합금이나 스테인레스 스틸 등의 외장재로 만들어야 했기에 개발비도 엄청났다.
사업에서 노스 아메리칸은 NAC-60이라고 불리는, 초음속 폭격기 XB-70의 개량판을 내놓았으나 빠르게 탈락하였고, 남은 보잉과 록히드가 경쟁하게 되었다. 보잉은 2707을 제시했으며 록히드는 L-2000을 제시한다.
2.2. 설계
디자인. 2707-100/-200의 디자인이다.
1963년 보잉은 2707의 설계를 시작하여 1964년 최초 디자인을 연방항공국(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에 제시한다. 날개는 가변익으로 만들고, 콩코드보다 동체를 더 길고 넓게 설계하면서 수송량과 속도는 앞서게 되었지만, 넓어져 광동체가 되어버린 동체 너비와 가변익의 채용은 이륙중량의 증가를 가져왔다.
1966년 2707-100의 목업 모델이 만들어졌고, 동년 12월 심사에서 보잉이 최종 우승하였으나 결국 이륙중량이 발목을 잡았다. 처음에는 동체를 축소하여 2707-200 모델을 설계했지만 거의 달라진 것 없이 이륙중량은 아직도 엄청나서 1968년 결국 엎어버리고 L-2000과 같은 델타익으로 재설계하였다. 그리고 1969년 2707-300의 목업 제작을 완료하였다.
2.3. 취소
그 즈음 유럽에선 먼저 콩코드의 시운전이 시작되었고, 얼마 안 가 초음속 여객기의 실상이 드러나게 된다. 콩코드의 초음속 운항은 소닉붐을 가져왔고, 건물의 유리창이 깨지는 등 주변에 큰 불편을 가져왔다. 환경론자들은 초음속 여객기의 성층권 비행이 오존층 파괴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2]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나 연료였다. 초음속 여객기의 실상은 기름 먹는 하마였으며 이는 경제적으로 매우 큰 약점이었다.게다가 원래 화물기로 만들려 했던 보잉 747의 여객기 버전이 대박을 터뜨리며 2707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점차 보잉사 내에서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각대로 747이 초음속 여객기 보다 훨씬 경제적이었다. 연료효율성에서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차이를 보였으며[3] 연료 효율성 외에도 초음속 여객기의 경우 열에 잘 버텨야 하고, 속도에 따라 엔진의 형상이 변하는 등 수많은 기술력이 필요하기에 개발비도 높았다[4][5]
결국 케네디의 후임 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1971년 3월 미국 상원에서는 SST 계획에 대한 지원금 요청을 거부했다. 많은 사람들이 실업 등을 이유로 SST 계획의 지원을 요구했지만, 5월 20일 하원에서도 자금 지원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SST 계획은 취소되었다. 결국 동년 보잉도 2707의 개발을 취소한다고 발표했고, 이로 인해 보잉 내부에서 6만 명이라는 인원이 감축되었다.
한편 소련의 Tu-144는 1973년의 파리 에어쇼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일으켰고, 1975년 12월에 운항을 시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고들을 일으켜 여객기로는 쓰지 못하고 초라하게 화물용으로나 운용되다가 퇴역하였고, B2707의 대항마로 개발 예정이던 Tu-244 역시 취소된다. 콩코드는 1976년 1월부터 운항을 시작했으나 예상보다 훨씬 적은, 현상유지나 가능할 성공에 만족해야만 했고, 운행 중에도 많은 문제에 시달렸다. 그나마도 환경과는 거리가 멀고 사업성도 떨어져 2003년 콩코드가 퇴역한 이후에는 새로운 초음속 여객기가 등장하지 못하게 되었다.[6]
3. 형식
3.1. 2707-100
2707-100의 목업.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2707-100 상상도.
Revell 모형에서의 일러스트. 기수를 두 번 꺾은 점이 눈에 띈다.
가변익을 채용하였으며, 객실은 2-3-2 배열로 광동체기였다. 수송인원은 300명 남짓. 엔진은 제너럴 일렉트릭의 GE4/J5 엔진을 채용하였다.[7] 팬암, 아메리칸 항공, 트랜스 월드 항공 등지의 항공사에서 주문했었다. 목업은 1966년 공개되었다.
3.2. 2707-200
2707-200의 내부 설계도.
중량 감소를 위해 동체를 줄인 형식으로 최대 수송인원은 277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륙중량은 덜 감소해 여전히 이/착륙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고, 결국 보잉은 가변익을 버리고 재설계해 2707-300을 설계한다.
3.3. 2707-300
2707-300의 목업.
팬암 소속 2707-300의 상상도.
델타익을 채용해 이륙 중량을 꽤 감소시켰다. 게다가 동체를 더 줄여 수송 인원은 234명이 되었다. 하지만 동체의 폭은 그대로 냅두었다. 기수도 한 번만 꺾이도록 줄였다. 목업은 1969년 공개되었지만 그 다음 해인 1970년에 보잉 747이 등장하자 항공사들은 B747을 선택했고, 결국 1971년에 전격 개발이 취소되었다.
4. 같이 보기
[1]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식으로 하거나 실제로 모델을 만들어서 방송을 했다.
컴퓨터로
광고를 본격적으로 보내기 시작한 건 빨리 잡아도 1990년대 초이다.
[2]
맞는 말이기도 했다. 다른 비행기들과 달리 초음속 여객기들은 오존층 위의 성층권에서 비행하기에 배기가스가 직접적으로 오존층에 영향을 준다.
[3]
747-200B랑 기존의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를 비교할때 페이로드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탑재량 기준으로 콩코드는 15.8p*m/g, 747은 클래스 구성에 따라 다르지만 46.4 p*m/g의 연료효율성을 보인다.(Ross, Douglas (March 1978). The Concorde Compromise: The Politics of Decision-making.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거기에다가 콩코드는 연료값을 만회하기 위해 티켓값이 매우 비쌌다. 때문에 콩코드는 항공계에서도
공기수송의 전설이라 실질적으론 120명을 다 채우고 비행하기도 쉽지 않았다. 또한, 두 기체의 항속거리 이내에서 비행한다고 할 때 747은 같은시간 동안 클래스 구성에 따라 320~490명을 수송할 수 있지만, 콩코드는 지상 및 이착륙시의 지연을 무시하는 현실을 무시하는 가정을 하더라도 120명씩 2번, 240명을 수송할 수 있다. 즉, 콩코드는 연비도 낮으면서 수송량도 낮았다. 물론 콩코드는 협동체, 보잉 2707은 광동체이니 2707이 더 낫겠지만, 그래도 747의 연비 및 수송량이 높다. 그 외 연료 소모량 등의 정보는
콩코드,
보잉 747-200B에서도 참조할 수 있다. 747-100/200의 경우 연료효율성은 비행구성에 따라 80p*m/g까지 나오는 자료도 있다.
[4]
콩코드의 개발비는 현재 기준으로 11조 5000억 원에 달하지만, 보잉 747의 경우 8조 1,300억 원으로 콩코드보다 개발비가 낮다. 심지어 747의 경우 원래 군용 화물기로 설계했다가 입찰에 실패하자 여객기로 만들어 본것이고, 2707은 바닥부터 새로 설계해서 만들어야 했다. 즉, 보잉 입장에서 747은 이미 개발비용의 상당량이 매몰비용으로 이미 투입이 되어 있던 상태라 추가비용만 고려하면 더욱 줄어든다. 그런 상태에서 여객형이 대박을 친것이다. 그런데 2707은 개발비는 무지막지하게 들어갈 예정인데다가 아직 이게 성공 할지에 대한 확신 조차 없었다. 그 상태에서 747이 불티나게 팔리니 보잉에서도 2707의 개발 필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만한 계기가 되었다.
[5]
747 여객기는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뜨리면서 747의 초창기 버전인 747-100은 화물기 버전이 없이 여객용만 나왔을 정도이다. 747의 화물기 버전은 후일 747-200부터 생기게 된다. 즉, 747-100에 화물 버전이 있다면 중고 기체를 개조한 것들이다.
[6]
엄밀히 따지자면 콩코드가 현상유지나 가능할 정도의 성공을 거뒀다는 서술은 잘못되었다. 콩코드는 단순히 여객기가 아니라 항공사의 마케팅 목적으로도 엄청난 효과가 있었고, 나름 돈도 꽤 벌었다.
[7]
사실 이 엔진도 SST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초음속기 전용 엔진이다.